어렸을 때 부터 지금까지 늙어 죽을 때까지 아마도 공부하라는 말은 따라올 것 같다.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남들보다 한발짝 먼저 나가라는 메세지가 도처에 범람한다.
아무래도 우리는 공부해야 하는 것 같다.
매순간 눈 돌아가게 바쁘게 발전하는 사회를 보니 왜 공부해야하는지는 알겠다.
그런데 뭘, 어떻게 공부하란 말인가?
각종 첨단기술과 새로운 경영 방식, 트렌드 등등을 가르쳐주는 책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으니 서점에 들러서 책을 둘러보면 대충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는 감이 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공부할까?
잠시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그 시절에 공부는 정말 명확했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공부했다.
시험이 끝나고 받는 점수가 내가 공부한 증거였고 그리고 동시에 내가 외운 지식의 사용기간이 만료되는 시점이었다.
그래서 점수를 잘 받고 싶은 마음에 이해도 가지 않는 문구를 입으로 외웠다.
암기를 할 때 가장 힘든 것은 내가 이것을 암기했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부하는 그 자리에서 암기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책을 덮고 그대로 외워서 말하거나 써보지만 그 자리에서 기억이 난다고 해도 시험을 볼 때 과연 생각이 날까? 라는 의구심이 끝까지 남는다.
아니나 다를까 시험을 보면 역시 열심히 외운 일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공부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니 시험 시간에 딱 붙어서 공부해야 가장 많이 남는다.
시험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그저 시험 점수만 높으면 되는데 구태여 예습 복습하면서 여러번 공부하는 것은 시간낭비 에너지 낭비로 보이고 차라리 시험 전날 열심히 외우는 것이 효율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본능적으로 시험 하루 전날 벼락치기 공부를 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벼락치기하면서 익힌 내용들은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쓰임이 다했으니 순식간에 증발해버린다.
어린 시절에는 시험점수라는 명확한 목적이 있고 시험기간에 쓴다는 명확한 필요 시점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바쁜 시간을 쪼개서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목적도 명확하지 않고 사용해야할 시점도 명확하게 지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도대체 얼마나 막막할까?
아마, 사회에서 나와서 공부한다는 것은 토익이나 토플, 자격증 등을 공부하여 자격을 따는 것을 의미하고 그 외는 그저 독서를 즐기는 수준일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저 책을 읽고 새로운 영감을 받고 즐기는 수준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남는게 잘 없고 발전되지 않고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좀 더 발전하고 싶었지만 발전하려면 전공수준의 책을 읽고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데 그런 엄두가 전혀 나지 않았다.
그러니 수박 겉핥기 수준에서 맴돌기만 할 뿐 뭔가 더 깊은 단계로 나아가는게 너무 어려웠다.
가까스로 조금 난이도가 있는 심도있는 책을 읽더라도 기초지식이 부족함을 느낀다.
또 제자리이고 과거에 읽은 책의 내용은 잊혀지고 인상만 남는 것이 반복된다.
책을 읽고 발전을 하려면 책을 완전히 씹어서 소화시켜 단단한 발판을 만들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이해를 요하는 부분이라면 이해하면 되지만 그것을 두번세번 고민하고 계속 쓰지 않는다면 결국 잊혀진다.
내 삶에 배운 바를 녹이려면 암기하고 반복해서 숙련시켜서 단단한 발판을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암기와 숙련이라는 것은 결코 쉬운 행위가 아니라 정신력이 엄청나게 소모되는 힘든 행위다.
그래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암기를 해보았지만 처음 한번 정도만 가능했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결국엔 그것을 암기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암기노트를 만들어서 매일 그것을 전부 반복해서 암기해보려고 했지만 암기할 분량이 순식간에 너무 많아져서 엄두가 나지 않게 되었다.
또, 숙련도를 쌓는 것도 문제였다. 중고등학교 수준의 공부는 엄청나게 방대한 문제지가 있어서 배운 것을 숙련하기 좋지만 사회에서 스스로 익혀 나가는 것은 문제집이 있을리 없으니 숙련도를 쌓기가 너무 어려웠다.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고 당잘 쓸 것도 아닌데 그렇게 힘들여 암기하고 노력하는게 쉽지 않다.
또, 점점 쌓이는 암기할 공부량을 관리한다면 하루종일 공부에 매달려도 힘들다.
결국,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공부하고 익히고 외우고자 하는 방대한 내용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잘 관리하는 방법이었다.
암기해야할 분량이 너무 많아지면서 망각곡선을 떠올리게 되었다.
즉, 공부할 것을 망각곡선에 따라서 처음엔 자주 암기해서 숙련시키고 점점 드문드문 학습하게끔 하면 공부에 드는 품은 줄이고 효율성은 극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런 소프트웨어를 찾아보았다.
그 때에도 암기에 쓰이는 종이카드를 소프트웨어로 구현한 프로그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찾았고 그 때 찾은 프로그램이 앙키(Anki)였다.
다른 소프트웨어도 많이 있었지만 앙키(Anki)가 가장 많이 끌렸다.
2016년 2월 정도 부터 앙키를 사용했으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엔 거의 1년 반이 지나간 셈이다.
1년 반동안 앙키를 사용한 경험은 정말 대만족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지식을 완전히 소유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부를 하거나 독서를 할 때 느꼈던 영감이나 이해했던 지식 같은 것들이 시간과 함께 사라지고 마는 것을 항상 느꼈기에 지식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고 그저 그 편린을 느끼면서 잠깐 영감을 얻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앙키에 기억하고자 원하는 내용을 넣어놓으면 죽을 때까지 그 지식을 관리하면서 수시로 기억을 환기시킬 것이기 때문에 앙키에 넣은 지식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 내용은 잊혀지지 않는 소유된 지식이 되는 셈이다.
이제 더 이상 암기를 하면서 내가 이것을 필요한 순간에 이것을 기억하고 있을지를 의심할 필요가 없어졌다.
또, 암기해야할 내용이 각종 알고리즘에 의해서 관리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암기할 양이 줄어들면서 점점 부담이 줄어든다.
현재, 500페이지 책 한권 분량 정도를 외우고 있지만 거기에 투자하는 복습 시간은 하루에 30분도 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니 앙키에 공부할 내용을 집어넣는 만큼 지식을 소유한다는 감각이 생겼고, 많은 내용을 집어넣어 놓아도 결국 줄어들어 부담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은 공부를 하고 싶은 욕구가 넘쳐나게 되었다.
순수하게 공부한 만큼 그 성과가 그대로 쌓이는 것을 보게 되는데 어찌 공부할 맛이 나지 않겠는가. 마치 돈을 저축하면서 돈이 쌓이는 것을 보고 즐기는 느낌이다.
또, 명료하게 기억하고 있으니 하나의 공부가 학습되면 그 다음 단계로 순탄하게 공부가 깊어지는 느낌이 정말 짜릿하고 신기하다.
마치, 한달 전까지는 사칙연산을 겨우 하던 사람이 지금은 양자역학을 능숙하게 계산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또, 책 한권을 읽을 때 기억할 부분을 앙키(Anki)에 집어 넣으면서 읽으니 앞부분을 명확하게 기억하기 때문에 뒷부분이 이해가 잘되고, 동시에 뒷부분을 공부하면서 앞부분도 같이 공부하니 앞부분의 내용도 뒷부분과 연계되면서 그 뜻이 살아 움직이면서 머리에 주입되는 느낌을 받는다.
앙키를 사용하면서 평생 느껴보지 못한 많은 긍정적인 것들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앙키에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
우선, 플래쉬 카드 스타일의 학습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영어 단어 암기 같은 단편적인 암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인터넷에 소개되는 앙키 사용법도 대부분 언어 공부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책에서 중요한 구절을 통째로 암기하는데도 앙키를 쓰고 있다.
혹은, 스스로 생각한 아이디어를 기억하기 위해서도 앙키를 쓰고 있다.
또, 수학 공부도 앙키로 해보고 싶다.
다양한 지식의 형태가 있고 필요한 학습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을 느끼고 있지만 이를 어떻게 앙키로 구현할지는 잘 모르고 있다.
이런 부분이 해결되면 보다 내 입맞에 맞는 앙키가 될 것 같다.
입맞에 맞는 앙키 활용을 위해서 우선 앙키(Anki) 매뉴얼과 관련 문서들을 몇개 번역하면서 다양한 학습형식을 고민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이러한 형식에 대한 고민이 끝나면 이러한 내용을 다른 사람들과 나눠보고 싶다.
그래도 앙키 덕분에 정말 충실한 1년 반을 보냈고 늦은 나이임에도 앞으로 무한한 성장과 발전을 마음 두근거리면서 기대하게 되었다.
이런 두근거림이 나만의 경우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분들도 만년에 공부를 시작해보고 싶다면 앙키(Anki) 사용을 진지하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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