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과 같은 환상과 어울리는 방법 - 03 심리적 문제와 직면하기



 불안감과 공포는 점점 구체화되고 빈번해졌다. 처음에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귀신이 뒤에 달라붙어서 속삭이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 신체적 이상이 있는지 살폈고, 일시적인 기력 저하인지도 실험해보았다. 이것저것 시도해본 결과 이 두 가지 모두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제 남은 것은 심리적 원인뿐이다.


 물론, 누군가 실제 귀신이 있어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반론할 수 있다. 내 경험상 이런 경우 전부 귀신은 아니었다. 오랜 기간 귀신, 악몽, 환상 등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친구였고 이들은 더할 나위 없는 존재감을 내뿜으며 나를 공포와 불안의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트라우마로 군림했다. 처음엔 완전히 패배해서 삶이 파괴되었지만 15년 정도 아등바등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노력하면서 방법을 개발하고 조금씩 상황이 개선되었고 결국, 대부분의 경우 진짜 귀신이 아니었다. 나 자신은 딱히 귀신을 부정하지 않지만 경험상 진짜 귀신이라고 판단할만한 경우는 없었기에 그런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았다.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그 문제와 직면하는 것이다. 직면한다는 것은 그 심리적 문제를 지금 여기에서 마주치는 것이다. 보통 심리적 문제를 직면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갑자기 고독한 사색가가 되어 그 사건을 기억해내어 분석하려고 한다. 기억을 들여다보고 차분히 분석하는 것은 어느 경우에나 통용되는 무척 좋은 방법이지만 결코 직면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기억은 결코 경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담배를 피우고 싶은 흡연자의 경우를 떠올려 보자. 그 사람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고 그저 그 담배의 맛을 기억해서 떠올리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하면 그는 매우 어이가 없을 것이다. 만일, 그가 기억으로 그 맛을 생생하게 떠올린다면 담배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기는커녕 담배에 대한 욕구가 더 강렬해질 것이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게 들이마시는 순간 즉시 모든 욕구가 가라앉고 평온해진다. 하지만 기억으로는 아무리 용을 써도 그런 효과를 낼 수 없다. 이는 기억이 실제 생활에서의 체험을 그대로 불러오는 게 아니라 그저 욕구가 존재했다는 기억과 그 욕구가 해소되었다는 기억 정도만 환기시켜주기 때문이다. 즉, 욕구를 해소시킨 실체는 기억으로 재현할 수 없다. 따라서 기억은 결코 경험이 될 수 없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기억을 통하여 트라우마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 끔찍했던 과거를 떠올리려고 할 때마다 기분이 더러워지고, 불안해질 수 있다. 심하면 발작이 일어나거나 완전히 방어적으로 행동하여 모든 것을 피하고 잠수를 탈 수 있다. 이 때, 기억은 심리적 문제를 불러오기 위한 통로로서의 역할을 한 것일 뿐, 심리적 경험 자체가 아니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이를 혼동하면 엉뚱한 방법을 시도하게 된다. 가령, 지금과 같이 불안과 공포가 귀신으로 구현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이 경우에는 귀신을 기억하기만 해도 불안과 공포가 엄습하고 순식간에 귀신이 생생하게 구현되기 시작한다. 기억과 분석을 통해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귀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미신적 믿음을 질책한다. 스스로 귀신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귀신을 떠올리고 이를 생생하게 느끼는 것이 모순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귀신이 없다고 중얼거리면서 자신의 잘못된 감각기관을 질책하고 이 귀신이 환상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이는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긴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한 것이 아니므로 다시 재발하게 된다. 믿음에 따라 거부된 귀신은 낯선 타인, 범죄자 등으로 본인의 믿음에 부합하는 형태로 계속 모습을 바꾸어 나타난다.


 심리적 문제를 직면하려면 기억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귀신이 나타나 공포와 불안을 뇌 속에 주입하는 상황에 서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이를 바라보는 것이 직면이다.


 심리적 문제와 직면하기 위하여 귀신의 공포가 극대화하는 상황을 만들어 본다. 어두운 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불을 끄고 거의 헐벗은 몸으로 덥고 습한 바람을 맞는다. 무더운 습기가 피부를 덮으면서 피부에는 땀이 흐른다. 습기와 땀이 조금씩 맺히면서 불쾌함이 올라오고 온 몸이 질척질척 거리고 답답해진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피부에 응결된 수분을 증발시키면 무더운 여름의 한 가운데 으스스한 한기가 더해진다. 몸은 더위에 힘들어하면서 땀을 흘리지만 으스스한 한기가 몸에 소름을 돋게 한다. 이렇게 더운데 몸이 으스스한 것은 귀신 때문이라는 근거없는 확신이 뇌리를 덮고 귀신의 존재를 불러온다. 어둠은 귀신의 존재를 더 또렷하게 강조하여 두려움을 키운다. 그리고 그 귀신은 다시 공포와 두려움을 일으켜 마음을 흔든다. 이 때, 마음에 휘둘리지 않고 일어나는 작용들을 차분히 바라본다. 

 

 우선 차분해야 한다. 일상에서 갑자기 공포와 두려움이 엄습하면 거기에 휘둘려 벌벌 떨게 된다. 눅눅하고 음습한 환경과 심리적 요인이 공포와 불안을 불러오고 그 공포와 불안은 귀신을 만들어 구체적으로 현현한다. 그리고 그 귀신이 다시 공포와 불안을 실체화하고 극대화하여 마음을 핀치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일어날 상황을 떠올려 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면 이를 막을 수 있다. 공포와 두려움이 엄습해오면 휘둘리는 마음을 코끝으로 전환한다. 콧구멍에서 들락날락하는 숨을 구체적으로 느낀다. 코끝에 스치는 기류를 생생하게 느끼도록 집중하면 정신적 에너지는 공포와 두려움에서 코끝의 감각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그렇게 하면 공포와 불안을 형성하던 에너지가 코끝으로 이동하면서 귀신을 구체화하던 에너지가 약해진다. 귀신이 희미해지면 그로 인한 공포와 불안도 약해지게 된다. 여기에서 집중력을 더욱 강화하고 유지하면 귀신과 공포 그리고 불안을 완전히 잠재우고 온전히 명상에 들어서 마음을 쉬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봉인하게 되므로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마음의 주도권을 되찾아 차분해지는 정도에서 집중을 멈춘다. 


 마음의 주도권을 찾아왔으면 머릿속에서 활개치고 있는 귀신이나 막연한 불안과 공포를 약간 떨어져서 볼 수 있게 된다. 이 때, ‘본다’라고 하는 행위는 정확히 어떤 것일까? 이는 눈으로 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조금 떨어져서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다. 


 경험상 주의를 기울이면 심상이 보인다. 가령, 코를 스치는 숨을 ‘본다’라고 하면 실제로는 코를 스치는 숨을 눈으로 볼 수 없다. 하지만 코를 스치는 숨의 느낌에 가만히 주의를 기울이면 어느새 숨이 내 코 사이를 들락날락 거리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는 머릿속으로 코를 들락날락 거리는 숨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코에서 느껴지는 실제의 감각과 어우러져 실제로 눈으로 보는 것 같은 경험을 제공해준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많이 겪어볼 수 있는 현상이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머릿속으로 그리고 그에 따라 퍼포먼스를 한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본다’라는 행위는 어떤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면 그 상황에 대한 그림 또는 모델이 본능적으로 그려지고 이를 인식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추상적인 공포와 불안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차분히 주의를 기울이면 그려지는 그림이나 상황 모델을 본다. 공포와 불안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면 그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추상적인 공포와 불안을 직접적으로 느끼기 어렵다면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에 주의를 집중한다. 즉, 으스스한 한기나 피부에 돋은 소름, 귀신의 환상 등 가장 강력하게 느껴지는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다. 그저 공포나 불안 등에 휩쓸리지 않도록 고요하게 주의를 기울인다. 



악몽같은 환상과 어울리는 방법 - 02



 전쟁 같은 환상을 피해 거실에서 숙면을 취하고 난 뒤에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 여행은 순탄했고 지하에서 본 귀신과 묘실 체험도 하나의 무용담 마냥 여행의 이야깃거리가 되었을 뿐 어떠한 불길함도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잊혀졌다.


 여행이 끝나고 밀린 일을 바쁘게 처리하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한 여름에 갑자기 등줄기에 소름이 올라왔다. 장마로 인한 습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러다가 또 소름이 돋았는데, 이번엔 다이어트 삼아 하루 단식을 하던 중이라서 배고픔에 따른 우울감이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장마로 인한 습기를 무척 싫어하는데, 거기에 다이어트로 인한 우울감이 겹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무 취약한 상황이었다. 즉, 체력이 떨어져서 사소한 자극에도 과하게 반응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점점 상황이 심각해졌다. 


 한 번은 밤에 열린 틈으로 화장실 변기 위를 보다가 뜬금없이 거기에 귀신이 앉아있구나 하는 확신이 들면서 소름이 확 끼쳤다. 그 뒤로는 항상 뒤에 무언가 따라오고 있는 느낌을 받으면서 수시로 한기를 느끼게 되었다. 


 바쁜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쫓기던 심신도 조금 쉬었는데도 기가 허한 느낌, 귀신이 끊임없이 따라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고 점점 빈번해졌다. 급기야는 불만 꺼도 그런 느낌에 사로잡히기 일쑤였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하던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우선 신체적인 문제가 있는지 살펴봤다. 의사가 아니므로 병을 진찰할 순 없고 그저 신체에 고통, 불균형, 불편한 부분이 있는지 살펴봤다. 항상 있는 증세들만 있다. 어깨의 통증, 살찐 배의 더부룩함, 골반의 뒤틀림과 밤마다 찾아오는 불편한 감각 등은 항상 그대로 존재했던 그대로 여전했다. 이 증세들은 평생의 지병으로 어차피 병원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므로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런 증세들이 충분히 괴롭지만 그렇다고 지금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요인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활력의 문제일 수 있다. 활력이 떨어지면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기가 허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기가 허해지는 느낌을 계속 받아왔기에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오랜 기간 스스로에게 실험하면서 깨달은 활력의 처방은 홍삼과 운동이다. 운동을 할 의욕과 에너지가 없는데 운동을 하면 운동을 시작하기도 어렵고 운동을 한다고 해도 활기가 도는 것이 아니라 몸이 아파오고 축나는 느낌이 든다. 이 때 잘 써먹는 것이 홍삼이다. 홍삼을 반티스푼 정도만 소량으로 먹어주면 반나절 정도는 각성이 되면서 활동적이 된다. 이렇게 활동적이 될 때, 운동을 하면 몸이 상쾌해지면서 활기를 끌어올릴 수 있게 된다. 


 홍삼을 반티스푼 정도만 먹는 것은 경험을 통하여 익힌 것이다. 홍삼은 내 체질과 잘 안 맞는다. 그래서 평상시에 정량(한 티스푼)을 먹으면 하루 종일 두통에 시달린다. 그리고 식욕이 지나치게 늘어나 과식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홍삼의 부작용에 시달리지 않는 방법은 너무 피곤하거나 힘든 상황일 때 홍삼을 먹거나, 먹고나서 바로 상당한 강도로 운동을 하는 것이다. 이 때 반티스푼 정도로 정량의 반만 먹으면 거의 부작용이 없고 상당한 활력을 얻을 수 있다. 


 기가 허한 것을 보충하고 활기를 끌어올렸지만 여전히 으스스한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심리적인 것이다. 심리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이런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기 보다는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사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이 심리적 문제가 아직은 일상생활에 영향을 줄 정도로 강력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미 다년간의 불안과 고통 속에서 심리적 문제를 다루는 방법을 어찌어찌 스스로 알아내 익혔기 때문에 먼저 스스로 구제를 시도해보기로 한다.


 처음부터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접근하지 않은 이유는 오랜 기간의 경험 때문이다. 누군가 말하기를 모든 마음의 문제는 그 원인이 대부분 몸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경험상 옳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삶을 힘들게 할 정도의 마음의 문제는 대부분 신체나 외부적인 상황에 그 원인이 있었다. 이런 문제를 명상이나 상담 등으로 해결하거나 자신의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버티면 고통을 해결할 수 없다. 가령, 혈압이 오르면 지속적으로 감정이 과잉되고 분노에 시달리기 쉽다. 이를 상담이나 명상 등의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일시적으로 분노를 완화할 수 있지만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근본 원인이 남아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치미는 분노에 결국 먹혀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혈압이 문제라는 것을 알면 간단하게 조절할 수 있다. 따라서 심리적인 문제로 보이는 것들도 우선적으로 몸에 병이 있는지 혹은 노화에 따른 증세가 아닌지 확인하고 병을 치유하거나 영양제 등으로 신체의 문제를 방어하는 것이 먼저다. 


 물론, 모든 것이 신체의 문제일 뿐 심리적인 문제는 부차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진정으로 마음 자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인식하기 어렵다. 그게 자신의 본질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만일, 누군가 조급한 성격 때문에 인생이 망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외부에서 보기에 그 사람의 문제는 조급한 성격이다. 하지만 조급한 성격을 가진 본인은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어쩔 방법이 없다. 그런 성격이 자신의 본질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치 물고기에게 물속에서 사는 것이 모든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릴 것이다. 물론, 사람은 이성적으로 사고하여 자신의 조급한 성격이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바꿀려고 시도할 때마다 그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면서 포기할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자신이 자신이 아니게 되는 참기 어려운 느낌이 치밀어 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다만, 지금의 경우 마음의 구조를 개선하는 수준의 대공사가 아니라 일시적으로 발생한 이상 현상을 바로잡는 수준이므로 마음을 돌아보는 방법을 통하여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악몽같은 환상과 어울리는 방법-01


 최근 가족 여행으로 대부도에 펜션을 빌려 1박을 했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기대했던 활동들을 하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펜션에 배치된 다양한 놀이 활동에 가족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 시간에 나는 지하에 위치한 방에서 홀로 자기로 했다.


 여행을 오기 전날 잠을 설쳤고, 여행 당일도 많은 활동으로 지쳐 비몽사몽한 상황이므로 어서 자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지하방에 눕자마자 뭔가 낯설었고, 불편했다. 눕자마자 으스스한 느낌이 밀려왔다.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잠이 확 달아났다. 그리고 앞에 귀신이 나타났다. 하얀 소복에 검은 머리의 귀신이 천장에서 내려다보면서 톱니같이 듬성듬성 난 날카로운 이빨을 혀로 핥고 있었다. 입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핏줄기가 흐른다. 입으로 ‘여길 봐’라고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을 감고 있었는데도 너무 생생하게 펼쳐지는 상상에 소름이 끼쳤다. 이 상황에서 눈을 뜨면 그 귀신이 ‘드디어 나를 봤구나.’ 라고 말하면서 저주를 내릴 것 같았다. 숨막힐 듯한 공포가 엄습해왔다.


 귀신이 무엇을 기대했는지 알 수 없겠지만 나는 이런 환상과 악몽을 다루는데 이골이 나있다. 지난 10여 년간 이런 악몽과 환상을 진저리나게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거의 좌절과 절망으로 폐인이 되었다가 아득바득 다시 일상성을 회복하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기 때문에 이런 식의 환상은 나락에 빠졌던 과거가 떠올라서 기분 나쁘기도 하지만 또, 그 익숙함에 반갑기도 한 것이었다.

 지하방에 나타난 귀신은 그 동안 겪은 환상과 악몽에 비추어 봐도 압도적으로 생생했다. 평소 겪던 것이 조악한 화질이었다면 이번에 겪은 것은 4K급 4D 영상 급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귀신의 공포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타나는 패턴이 항상 겪던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에 바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화질이 아무리 좋아도 스토리는 뻔했기 때문이다.


 이런 환상은 악몽과 문법이 비슷해서 인과관계가 엉망진창으로 나타난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눈앞에 보이고,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상황이 일어나는데 아무런 의문이 발생하지 않는다. 오직 생생한 공포만 느껴질 뿐이다. 공포는 착실하게 주입된다. 소복 입은 처녀 귀신같은 모양과 그로테스크한 톱니이빨이 전형적인 공포의 외형을 구성했고 거기에 공포의 아우라가 덧입혀져 귀신이 더없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눈을 감고 있음에도 보인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자, 바로 눈을 뜨면 귀신이 공격할 것이라는 공포가 다시 주입된다. 마치 내가 눈을 뜰까봐 협박하는 것 같다. 익숙한 패턴이었다.


 악몽이었다면 잠을 깨고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상황을 정리하고 하는 등 귀찮은 과정을 겪으면 되지만 환상이었기 때문에 바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서 멋대로 전개되는 일련의 환상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그저 코를 스치는 숨의 느낌에 집중한다. 숨의 느낌이 현실적으로 느껴지면서 점차 머릿속이 안정되기 시작한다. 환상이 잦아드는 것을 느끼면서 다시 잠을 청한다.


 사람이 너무 굶으면 머리가 멍해지고 점점 단순해진다. 사람의 정신도 결국,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에너지가 매우 한정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가장 필요한 정신 활동에 에너지를 쓴다. 이 원리를 응용하면 환상을 금방 제거할 수 있게 된다. 즉, 지금처럼 환상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행위로 에너지를 돌리는 것이다. 그 행위로 쏠리는 에너지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환상을 구동하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없어지므로 환상은 힘을 잃고 잦아들다가 결국 사라지게 된다. 물론, 환상을 일으키는 다른 기저 요인이 없을 때 이야기다.


 내 경우 잘 사용하는 방법은 코를 스쳐지나가는 숨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다. 불교식 명상을 훈련해왔기 때문에 이 감각으로 에너지를 모으는 데 익숙하고 이 감각이 매우 중립적이어서 번뇌를 털어버리고 다시 수면하는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중립적이라는 표현은 자극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즉, 공포와 불안을 이기기 위하여 술을 마시거나 매우 자극적인 컨텐츠를 보는 등의 중립적이지 않은 행위는 지금 당장은 공포와 불안을 잠재울 수 있지만 욕망이 자극되고 정신이 각성된다. 이는, 지금 당장 수면에 장애를 주고 장기적으로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공포와 불안을 더 자극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부정적인 악순환을 초래한다. 


 이렇게 코를 스쳐지나가는 숨의 감각에 집중하면서 환상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4K급 화질의 4D로 보던 귀신의 화질이 흑백화면 마냥 조악해지다가 잊혀졌다.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다시 잠을 청하면서 숨에 집중하던 마음을 풀었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 공포와 불안이 튀어나왔다. 


 갑자기 지하에 잠들었다는 점이 머릿속에 퍼뜩 떠올랐다. 머릿속에 끊임없이 ‘지하’, ‘지하’, ‘지하’ 라는 메아리가 들어차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내가 지금 관 짝에 들어가 지하에 묻혔구나 하는 확신이 굳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이 딱 맞는 관에 누운 것 마냥 불편하게 조이기 시작하면서 환상이 사실인 것처럼 몸을 구속했다. 다시 찾아온 환상은 환상 그 자체와 더불어 신체 구속이 발생하는 업그레이드 된 버전이었다. 환상이 너무 빠르고 강렬하여 순식간에 신체와 정신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환상이 공포를 불러오고 신체적 불편함이 그 공포를 실체화시켰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일어나 불을 켰다. 


 기본적으로 불을 키면 환상이 가라앉는 경향이 있지만 이 환상은 그렇지 않았다. 불을 켜니 숙박시설 특유의 몰개성적인 벽지와 삭막한 풍경이 보였다. 낯설고 지루한 공간이다. 생동감을 느낄 수 없는 풍경과 눅눅하고 음습한 느낌은 묘실을 떠오르게 했다. 수천년 동안 단 하나의 변화도 없는 삭막하고 정적인 공간이다. 그러고 보니 이미 수천년간 이 낯설고 지루한 공간에서만 살아왔다는 자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시 수만년은 더 이 공간에서 박제된 채 있어야 한다는 자각과 함께 토할 것 같은 고독감이 밀려온다. 마음이 무너졌다. 통제가 사라지면서 다시 귀신이 부활했다. 더 생생해진 느낌이었다. 


 호흡을 통해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있지만 매우 위태위태했다. 이미 무너진 정신의 한 자락을 겨우 붙잡고 있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집중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너무 리얼한 환상이기는 하지만 일상에서 번뇌를 다루다 보면 이 환상이 상당히 보편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 욕망, 공포, 불안 등의 기저에는 인식하기 어려운 미세한 환상들이 실제로 작동한다. 이런 환상들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 그 순간부터 그 환상에 대한 통제력을 상당부분 되찾을 수 있다. 이게 불교 명상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튀어나오는 환상이나 번뇌를 인식하고 이를 제거할 때에는 보통 그 기저 원인은 이미 사라지고 그 작용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가령, 내 경우 PC방에 놀러가야지 하는 욕망이 나타나면 대략 6시간 전쯤에 그 번뇌의 씨앗이 심어진다. 그리고 대략 6시간 후나 PC방에 갈 수 있는 상황이 형성되면 번뇌는 일어나 작동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경우 이 욕망을 통제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PC방에 가고자 하는 마음에 쏠린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몰입된 마음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해결된다.


 하지만 번뇌의 원인이 끊임없이 작동하는 경우는 그렇지 않다. 가령, 배고픔을 생각해보자. 배가 고프면 몸은 끊임없이 먹을 것을 요구한다. 배고픔은 실제의 허기와 허기로 인한 탐욕,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과 분노 등을 일으킨다. 정신을 집중한다면 허기로 인한 탐욕과 분노 등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허기는 그대로 남는다. 집중력이 무너지는 순간 다시 허기로부터 탐욕과 분노 등이 올라온다. 정신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무너지게 된다. 물론, 고도의 수행을 통해서 확신을 갖추었다면 이를 극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인이 그렇게까지 하기는 어렵다. 이 경우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적절하게 먹는 것이다. 그래서 다이어트가 어렵다.


 두 번째 환상을 보면서 이제 어떤 기저 원인이 실시간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습기로 인한 축축함, 에어컨의 작동으로 인한 한기, 창문 하나 없는 밀폐된 공간, 지하라는 점이 맞물려 번뇌를 끊임없이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거기에 지친 체력과 수면에 들면서 마음이 무저항 상태로 놓이게 되는 것도 원인으로 보였다. 이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극복할 수도 있지만 바로 포기했다. 기저 원인이 없다면 가능하겠지만 이미 계속 작동하는 원인이 있다면 총하나 들고 홀로 백만 대군을 상대로 싸우는 격이고 작은 제방 하나로 홍수를 막겠다고 설치는 격이기 때문이다. 수행이라고 생각하고 싸워볼 수도 있겠지만 이미 지치고 힘든 상황인데다가 다음 날은 또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잠을 자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미 중요한 급소를 찔려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 환상은 이미 내 약점을 찔렀다. 그것은 생사관이었다. 개인적으로 죽음 이후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이런 점에서 불교도가 아니다). 그래서 죽는 과정은 싫지만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그저 죽음이 영원에 가까운 휴식이라면 찰나의 삶 동안은 충만하게 살고 미련 없이 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것이 내 삶의 모델이다. 그런데 이 환상은 나를 사후세계에 영원의 시간 동안 유폐했다.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이 삶의 큰 버팀목 중 하나였나 보다. 사후세계의 영원한 유폐라는 환상은 물밀 듯이 밀려오는 고독과 비애로 내 정신을 무너뜨렸다. 결국, 통제력을 잃고 환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악몽과 환상에 숙련된 환자로서 재빨리 패배를 인정하고 방을 벗어났다. 방을 벗어나 1층 거실에서 눕자 모든 환상이 사라졌다. 마음속에 불안감과 공포는 남았지만 더 이상 기저원인이 작동하지 않아서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오히려 몸과 마음이 너무 지친 나머지 꿈도 꾸지 않고 꿀잠을 잤다.

010 영어 원어민의 자음 발음이 자음과 모음으로 들리는 이유

 


 무성 모음의 발견은 그 동안 아무도 해결해주지 않았던 궁금증을 스스로 풀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궁금증이란 영어 원어민이 자음만 발음한다고 말하지만 아무리 들어도 모음 없이 발음하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앞에서 004 분절음과 자음만 발음하기 편에서 한국어 원어민들이 습관적으로 모음 /으/를 붙여 발음하기 때문에 이런 습관을 교정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론은 충분히 이해했다. 그런데, 내 자신이 한국어 원어민으로서 자음만 발음한다는 영어 원어민의 발음을 듣어 보면 문제가 생긴다. 아무리 들어도 자음과 모음을 붙여서 발음하는 것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즉, 영어 원어민이 ‘strong’을 발음하면 내 귀에는 혀를 굴려가면서 /스뜨롱/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들리지 /ㅅㄸ롱/으로 들리지 않는다. 


 이런 현상에 대한 이유를 고민해보았다. 처음엔 한국어가 음절마다 ‘초성+중성+종성’을 한 단위로 여기는 언어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즉, 한글에서는 모든 소리가 중성에 모음을 집어넣은 소리이기 때문에 이런 구조에 맞추기 위하여 모음이 없는데도 비슷한 모음을 들은 것처럼 착각하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또는 어렸을 때 /ㄱ/의 소리를 ‘그’라고 읽는 식으로 항상 모음 /으/를 붙여서 자음을 읽도록 배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실제론 없는 모음을 어떤 환상 때문에 들은 것이라면 벌써 1년 이상 자음과 모음을 분리해서 들어보려고 노력한 지금에는 어느 정도 들을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 귀에는 영어 원어민이 모음과 자음을 붙여서 말하고 있는 것으로 들린다. 결국, 자음만 발음한다는 것에 납득하지 못했음에도 이론상 타당하니 방법이 없었다. 원어민이 자음만 발음한다고 스스로를 세뇌해야만 했다. 아무리 세뇌해도 한 줄기 솟아나는 의심이 있지만 내 귀가 막귀라서 소리를 잘 분간하지 못한 것이라고 믿어야만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무성 모음이라는 개념을 발견하면서 오래된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건지 깨닫게 되었다. 


 다음은 음소 /h/만 소리내고 있는 영어 원어민의 음성이다.

 

 

 

 내 경우에는 위의 소리가 /하/로 들린다. 물론, 일상생활에서 일반적으로 내는 /하/와 소리와 분명히 다르다. 그래도 머릿속에서는 /하/라고 들린다. 이 부분에서 한국어 원어민이 모든 자음에 모음 /으/를 붙여 발음하도록 배웠기 때문이라는 추측은 깨진다. /h/의 소리는 /으/가 아니라 /아/를 덧붙여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바로 앞 포스팅에서 무성 모음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h/와 무성 모음  의 소리가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 같은 말소리를  음소 /h/와 무성 모음 라고 서로 다르게 부르는 것일까? 이는 하나의 말소리를 서로 다른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음소 /h/는 성대를 떨지 말고 살짝 긴장시키면서 숨을 내뿜으면서 나는 소리다. 밖으로 밀려난 숨이 주변의 음성기관과 마찰하면서 /h/ 소리가 난다. 이 때, 핵심은 기류의 마찰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성대에서 밀려난 기류가 목구멍이나 입과 마찰하면서 나는 음을 /h/라고 하는 것이다.


 반면, 무성 모음 는 구강의 모양과 혀의 위치가 중요하다. 무성 모음 가 음소 /h/와 같은 소리가 나는 이유는 직접 소리를 내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목구멍을 연 상태에서 성대가 떨리지 않는 무성음으로 또 공기를 강하게 내뱉지 않는 무기음으로 소리를 내려고 하면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어떻게 든 소리를 내려면 숨을 강하게 내뱉어 기류를 마찰시키는 것 말고는 소리를 낼 방법이 없다. 무성음이고 동시에 숨을 강하게 내뱉지 않는 무기음으로 소리를 내려고 하면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무성 모음은 필연적으로 유기음이 된다. 하지만 무성 모음에서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은 혀의 위치와 입술 모양 등이지 기류가 마찰하면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영어 원어민이 발음한 음소 /h/의 소리가 무성 모음 와 같은 이유는 음소 /h/의 소리를 낼 때, 혀를 쓸 일이 없어서 혀가 자연스럽게 늘어지고 목구멍을 크게 열기 위해 입을 크게 벌리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혀의 위치와 입의 모양은 유성이든 무성이든 모음 /아/의 혀 위치와 입모양과 동일하다.  즉, 음소 /h/ 소리를 낼 때 모음 /아/의 혀 위치와 입술 모양이 가장 자연스럽고 편하기 때문에 영어 원어민은 그렇게 발음하는 것이고 그 소리가 무성 모음 처럼 들리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어 원어민은 무성 모음 에서 들려오는 모음 적인 부분이든 유성 모음 [아]이든 모두 동일한 음소 /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 소리가 머릿속에서는 /하/로 번역된다.


 중요한건 이 순간 음소 /h/와 무성 모음 는 자음인 동시에 모음이라는 점이다. 그저 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자음이던 것이 모음으로 변하고 모음이던 것이 자음으로 변한다. 동일한 소리를 보는 관점이 두 가지로 갈라진 셈이다. 구강이나 혀의 위치 입술의 모양 등으로 인하여 방출되는 공기의 양상은 모음적인 요소를 드러내고, 어떤 조음 위치에서 기류가 폐쇄되거나 마찰되었는가를 통하여 자음적인 요소가 드러난다. 그렇다면 이는 음소 /h/만 그런 것일까?


 하나의 말소리가 자음적인 면과 모음적인 면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영어 원어민의 자음 발음을 들어 보니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인다. 가령, 영어의 자음 발음에서 /s, z,  t, d, n, l/는 어째서인지 /스, 즈, 트, 드, 느, 르/로 들린다. 자연스럽게 모음 /으/가 첨가된 것 처럼 들린다. 영어 음소/s, z,  t, d, n, l/는 모두 혀끝을 윗잇몸(치경)에 접근시키거나 붙이는 방식으로 소리가 난다. 이 때, 혀의 위치와 입술 모양 모음 /으/를 낼 때의 모양과 유사하기 때문에 한국어 원어민은 자동반사적으로 /으/를 덧붙여 듣는 것이다. 그리고 유성 모음과 무성 모음을 구별하지 않으니  발음할 때는 태연히 유성 모음 /으/를 붙여서 발음한다. 하지만 영어 원어민 입장에서는 유성 모음 /으/는 별개의 음이니 한국어 원어민의 발음은 없는 음을 덧붙인 것철럼 이상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s, z,  t, d, n, l/의 발음에서 추가된 모음 /으/는 실제 모음 /으/를 조음할 때의 혀의 위치와 입술 모양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음은 자음에 비해서 그 소리가 분명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혀의 움직임이나 입술의 모양의 차이라는 것이 미묘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모음은 조금 차이가 나더라도 미묘한 차이점을 무시하고 유사한 모음으로 번역해서 듣게 된다. 따라서 한국어 입장에서는 가장 유사한 모음인 /으/를 덧붙여 듣게 된다.


 결국, 영어 원어민이 자음만 발음할 때, 자음과 모음을 붙여서 들었던 내 귀는 크게 잘못되지 않았다. 단지, 영어 원어민이 모음으로 듣지 않는 것을 모음으로 들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서로 음성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추측하면, 유성음과 무성음을 강하게 구분하는 영어와 그렇지 않은 한국어, 유기음과 무기음을 강하게 구분하는 한국어와 그렇지 않은 영어로 음성체계가 다르고, 한글의 구조상 무조건 모음이 말소리에 있어야 한다는 한국어 소리에 대한 모델이 이런 차이를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음성체계의 차이를 발견하고 나니 그 동안 헷갈렸던 것들이 상당 부분 해소된다. 가령, 어떻게 자음만 발음하는지 명료하게 이해했고, 영어의 비슷한 음들 /s, ʃ/, /z, ʤ/  등 소리는 비슷하지만 조음 위치가 다른 음들을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지 비로소 알 수 있게 되었다.

 


Ankilog 학습파일


학습용 Anki 파일은 아래와 같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Ankilog 파일:  010 영어 자음 발음에서 모음이 들리는 이유.apkg


수정 : 2020-04-04 오전 12:11 Ankilog 문구 다듬기



 

009 무성 모음으로 유성음 경험

 

  이제 무성 모음을 듣고 발음해 볼 차례다. 물론, 무성 모음만 듣고 말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어나 한국어 모두 무성 모음을 음소로 사용하지 않으므로 무성 모음 자체로는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성 모음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유성 모음을 보다 제대로 경험하게 해준다. 그리고 나아가 모음과 자음을 구분하지 않고 한 뭉터기로 발음하고 인지하는 습관을 가진 한국어 원어민이 이를 분리해서 들을 수 있는 경험을 유도해볼 수 있다.

 

 아직, 영어 모음을 따로 공부하지 않았으니 한국어 모음으로 연습한다. 무성 모음 조음을 통해 어디까지나 성대를 쓰는 법을 스스로 자각하기 위해 연습하는 것이므로 딱히 영어 모음으로 연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차례대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한국어 모음 와 이를 무성음화한  그리고 마지막으로  를 발음한 것이다.

 

IPA(국제음성기호)에서 무성음화된 음을 표시할 때 아래에 작은 동그라미를 붙여 표시한다. 이러한 표시를 구별기호(diacritic)이라고 부른다.

 

 

 요령은 간단하다. 가령, 한국어로 를 발음하고 그 상태에서 입 모양과 혀의 움직임을 그대로 둔 채, 성대를 떨지 않고 발음한다. 그리고 이어서  를 발음한다.


 성대를 떨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면 목이 쉬었을 때를 떠올리거나 속삭이듯 말하는 상황을 떠올리면서 연습해본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자신이 성대를 어떻게 쓰는지 느껴본다. 자주 사용하면서 의식적으로 성대를 쓰는 법을 몸에 익힌다.

 

 무성 모음 는 앞서 본 /h/와 소리가 비슷하다. 그래서 음소 /h/를 무성 모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부분은 뒤에 다시 이야기할 것이다.

 

  무성 모음 의 소리가 유사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연속으로 발음해보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는 두 개의 소리를 이어 붙인 것을 느낄 수 있다. 말소리의 파형도 두 개의 이질적인 파형이 접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음과 모음이 별도로 들리는 감각을 익혀보도록 하자.

 

 듣다 보면 무성 모음의 소리가 매우 알아듣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성 모음과 연달아 들을 경우 비슷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개별적으로 들을 경우 전부 숨소리 정도로만 들리기도 한다. 음을 잘 들어보면 숨소리와 유성음 특유의 쨍쨍한 소리가 대비되는 것을 느껴볼 수 있다. 유성음이 소리가 더 또렷하고 더 음량이 높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어의 다른 모음 /이, 에, 애, 으, 어, 우, 오/ 똑같은 연습을 해본다. 

 

 

 

 

 

 

 

 

 

 

 

 

 

 

 

 

 

 

 

 

 

 

 

 

 

 

 

 

 

Ankilog 학습파일

 

학습용 Anki 파일은 아래와 같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Ankilog는 소리를 구분하여 듣는 연습을 위하여 만들었으니 소리를 들을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Ankilog 파일:  009 무성모음으로 유성음 경험(오디오).apkg

 

수정 : 2020-04-04 한국어에서 무성 모음과 유성 모음은 서로 이음 관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여 기존에 음소로 표시한 유무성 모음들을 이음으로 표시함. 또,  발음 수정함(Ankilog도 같이 수정함)


 

008 유성음 박탈 경험

 

 

 음성학을 공부하면서 말소리를 자음이니 모음이니 분석하고 나누게 되었다. 덕분에 이론적으로 자음과 모음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그렇다고 손에 잡힐 듯이 와닿는 그런 개념은 아니었다. 하물며, 유성음과 무성음의 차이라는 것은 더더욱 막연한 이야기였다. 영어를 본능적인 수준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유성음과 무성음을 자연스럽게 구분해서 듣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어 원어민으로 살아온 인생이 너무 길어서인지 아무리 들어도 유성음이 무엇이고 무성음이 무엇인지 잘 구별이 가지 않았다. 억지로 나눈다면 약간 연극적인 톤의 목소리가 유성음 같이 들리긴 했지만 확신하기 어려웠다.


 유성음을 의식적으로 내는 법을 익혀보려고 내 목의 성대 부분에 손을 대고 진동을 느껴보면서 말하는 연습을 해봤지만 일상적인 수준의 음량에서는 진동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진동을 느끼려면 목소리를 최대한 높여야 하는데 그 정도부터는 이미 일상적인 말하기라기 보다는 무슨 연극 연습같아 어색했다. 이 경우 모음은 성대가 떨리는 것을 잘 느낄 수 있지만 유성 자음은 그렇지 않다. 자음은 워낙 짧게 발음되고 이어서 바로 모음의 진동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결국, 유성음을 내서 성대가 떨리는건지 모음으로 인한 진동인지를 구별하기 어려웠다. 물론, 모음도 유성음이지만 워낙 자연스럽게 나오는 소리라서 익힌다는 개념을 떠올리기 쉽지 않았다. 또, 영어에서 자음들이 무성음과 유성음으로 구분되는 것과 달리 모음은 전부 유성음이기 때문에 이를 별도로 익힐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이 쉬었다. 목이 쉬면 보통 말을 자제하고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회복에 집중해왔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달랐다. 음성학 공부로 인하여 내 말소리가 제대로 발음되고 있는지 정확한 입모양과 혀위치를 두고 있는지 관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평소와 다른 내 말소리를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그리고 쉬어버린 내 말소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말소리가 쉬었는지 아닌지는 누구나 들으면 안다. 그래도 특징들을 한 번 잡아보자. 일단, 목소리에 튜브 공기 빠지는 소리 즉, ‘ㅎ~ㅅ~’ 같은 소리가 마구 섞인다. 또, 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는다. 힘을 줘서 강하게 발음하면 바람소리만 더 커지거나 목에 통증이 일어난다. 마지막으로 소리가 명료하지 않다. 이런 말소리는 소리가 작아 듣기도 힘들고 듣더라도 무슨 말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성대가 떨리는 원리는 이렇다. 아래의 그림과 같이 성대가 맞물려 성문이 닫혀있는 상태에서 폐 속의 공기가 성문을 비집고 나오면 그 압력으로 성대가 진동하게 된다. 살짝 닫은 입술 사이로 공기를 밀어내면 입술이 부르르하고 떨리는 것과 같다.

 


 

  그런데 목이 쉬게 되면 아래의 그림처럼 성대가 부어오르고 성대에 작은 결절같은 것이 생긴다. 성대를 떨려면 위의 그림처럼 성대가 잘 맞물려 닫혀야 하는데 결절로 인하여 성문이 벌어지니 공기가 그 사이로 새어나간다. 이것이 작은 구멍으로 바람 빠지는 것 같은  ‘ㅎ~ㅅ~’ 하는 소리가 말소리에 섞이는 이유다. 게다가 성대가 붓고 무거워져서 평소보다 둔해지기 때문에 말을 하는데 힘은 더 들고 소리는 둔탁해진다. 


 

 이렇게 목이 쉰 상태에서 제대로 소리를 내려면 결절이 있는 상태에서도 성문이 닫힐 수 있도록 성대를 꽉 조여줘야 하고 부어서 두텁고 무거워진 성대를 움직일 수 있도록 숨을 강하게 내뱉어야 한다. 결국, 통증이 발생하고 무리한 움직임으로 성대의 손상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요점은 이것이다. 목이 쉬어버리면 성대를 떨 수 없다. 즉, 성대를 떠는 유성음을 전혀 쓸 수 없다는 말이다. 한창 유성음을 듣고 말하려고 발바둥치던 시기였다. 어떤 것을 이해하고 체감하는 방법은 그것과 열심히 접촉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도 있지만 반대로 철저히 배제함으로써 그 빈자리를 파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파악하기 미묘하고 혼란스러운 것들은 이런 방법이 상당히 잘 먹히는 법이다. 친구나 가족의 빈자리를 느끼고 나서야 자연스러웠던 일상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비로소 알게 되듯이 자연스럽게 나오던 유성음을 박탈되면 이 유성음의 사용에 대해서 어떤 통찰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어떻게든 유성음과 친해져보려고 노력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기에 더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제대로 작동했다. 


 첫 번째는 한국어에서 유성음이 사용되고 있다는 확신과 체감을 얻었다. 한국어에도 유성음이 많다. 대표적으로 모든 모음이 그렇고, ‘ㄴ, ㄹ, ㅁ’ 등의 자음도 유성음이다. 또, ‘ㄱ, ㄷ, ㅈ’ 같은 자음은 상황에 따라서 무성음일 때도 있고 유성음일 때도 있다. 하지만 이를 유성음으로 자각하고 쓴 것은 아니기 때문에 체감하기 어렵다. 따라서 구분해서 듣지도 말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목이 쉰 상태에서는 이 모든 유성음들 내려고 할 때마다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거나 목이 찢어지는 통증이 오기 때문에 체감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유성음 사용빈도만큼 내 말소리가 이상해지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유성음을 어디 이론 속의 소리가 아니라 내가 항상 내고 있는 소리 중 하나라는 친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유성음을 많이 사용하면서 이를 구분해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것일까? 구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정신적으로 의미를 구분하는 음성적 단위인 '음소'의 개념을 다시 떠올려야 한다. 한국어가 유성음을 '음소'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채택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국어 원어민은 이 유성음을 딱히 구분하지 않는다. 물론, 귀가 예민한 사람들은 이를 구분한다. 하지만 나 같은 막귀는 전혀 그렇지 않다. 뇌가 자연스럽게 유성음 여부를 파악할 수 있도록 따로 훈련을 해줘야 한다. 다행히도 목이 쉬어 유성음이 박탈된 경험은 나같은 막귀도 해볼 수 있는 훈련 방법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해주었다.


 두 번째로 어떤 훈련을 해야할지 알 수 있었다. 유성음 박탈 경험은 가장 쉬운 연습방법을 보여주었다. 말을 할 때 유성음이 나와야 하는 상황마다 목이 아프거나 기대하지 않던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려오니 자연스럽게 성대의 움직임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평소처럼 소리를 내려고 하다보니 목의 성문이 열리면서 공기가 자연스럽게 유통되는 느낌과 성문을 닫고 소리를 내는 느낌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무의식적으로는 이미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행위들이었지만 의식적으로 이게 성문을 닫는 것이고 이게 성대를 떠는 것이구나 하는 자각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이 훈련은 목이 쉬어야만 가능한 훈련이다.  득음할 것도 아닌데 매번 목이 쉬게 만드는 훈련을 하는 것은 지나치게 과한 연습으로 보였다. 일상 생활에도 지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관찰을 통해 이것저것 체감하다가 불현듯 알게 되었다. 목이 쉬어서 유성음을 내지 못해야 하는데 어떻게든 모음이 발음되고 있었다. 통증 때문에 목구멍을 열심히 열고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여하간 성대의 떨림없이 모음 비스무레한 것이 발음되고 있었다. 성대가 떨리지 않는 모음이니 무성 모음이었다. 목이 쉬었을 때, 한 번 감각을 잡았더니 무성 모음을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내 경우에는 귓속말을 하듯 목소리를 낮추겠다고 마음 먹거나 목이 쉬었을 때를 떠올리면서 흉내내면 자연스럽게 무성 모음이 나왔다. 그 감각을 최대한 살리면서 유성 모음과 무성 모음을 번갈아가면서 연습하니 성대의 움직임과 들리는 소리가 조금씩 어우러지면서 유성음과 무성음이 조금씩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우리가 흔히 만들어내는 모음은 유성음이고 무성 모음은 매우 예외적이다. 그러다 보니 이 방법은 안 쓰는 말소리를 끌어들여 연습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연습으로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이런 방법을 제시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영어를 사용하기 위해서 조음기관을 다시 훈련시켜야 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효과적인 훈련 방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무성 모음과 유성 모음은 확연히 구별된다. 그렇다는 것은 유성음과 무성음을 구별해서 듣기도 힘들어하고 구별해서 소리를 내기도 힘들어하는 나같은 한국어 원어민이 유성음과 무성음을 대조하면서 듣고 말하기를 처음 익히기에 가장 알맞은 연습이 바로 이 유성 모음과 무성 모음을 번갈아가면서 발음하고 듣는 연습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본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몇몇 학자들은 음소 /h/를 무성 모음이라고 부른다.  이 말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어째서 자음을 모음이라고 말하는 지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성학을 공부할 수록 음소 /h/가 무성 모음이라는 점이 납득이 되었고 한국어와 영어 음성체계가 가지는 본질적인 차이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음소 /h/가 다른 음에 섞이면 그 말소리는 유기음이 된다. 그리고 그 유기음은 항상 무성음이다. 음소 /h/가 유성음을 철저히 배제하는 듯한 느낌이다. 또, 영어와 한국어의 음성체계는 유성 여부에 따라서 음소를 나누는가 아니면 유기 여부에 따라서 음소를 나누는가로 서로 다른 기준을 선택한다. 마지막으로 영어에서 음소 /h/는 퇴조하고 사라져가는 소리다. 방언에 따라서는 전혀 발음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이를 종합하면 한국어는 음소 /h/를 주요한 기준으로 선택하면서 음성체계에서 유성 여부는 기준으로 잡지 않았고, 영어는 유성 여부를 주요한 기준으로 선택하면서 음소 /h/를 버리는 것 같다는 인상이다.


 사실, 이런 개인적인 생각과 상관없이 한국어 원어민이 영어의 음성체계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유기음과 유성음을 정확히 구분하고 인지해야 한다. 따라서 유성음을 구별하여 듣고 말하는 연습으로 무성 모음을 익혀서 유성음과 대조하면서 익히는 것이 효과적이고 동시에 앞으로 제시할 유기음들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라도 음소 /h/를 자음 중에서 가장 먼저 다루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Ankilog 학습파일


학습용 Anki 파일은 아래와 같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Ankilog 파일: 경험담이므로 Ankilog는 없음


 


007 음소 /h/와 유기음 소개


 다른 음성학 책들과 달리,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h/를 먼저 다루는 첫 번째 이유는 이 소리가 유기음을 만드는 만드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호흡을 내쉬면서 말한다. 그래서 성대는 말소리를 결정하는 첫 번째 위치가 된다. 성대에서 한 번 만들어진 소리를 혀와 입, 코 등을 이용하여 다양하게 가공한 것이 우리의 실제 말소리다. 따라서 성대에서 1차적으로 가공된 말소리가 모든 말소리의 기초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성대에서 만들어진 소리가 모든 말소리의 기본이 되기 때문에, 모든 말소리를 유성음과 무성음으로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성대에는 유성음과 무성음 말고 다른 구별 기준이 있다. 바로 유기음과 무기음이다. 유기음이란 한국어의 음소 /ㅍ/, /ㅌ/, /ㅋ/들을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 발음해보자. 공기가 거세게 빠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유기음이란 말은 공기의 기류 소리, 거센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유기음을 느껴보고 싶으면 손바닥을 입술 바로 앞에 두고 발음해보자. /ㅂ/, /ㅍ/를 연달아 발음해 본다. /ㅂ/, /ㅍ/가 손바닥에 부딪치는 숨이 더 많은 것을 느껴볼 수 있다. /ㄷ/, /ㅌ/ 또는 /ㄱ/, /ㅋ/를 발음할 때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방법은 입술 앞에 작은 종이 조각을 대고 발음해보는 것이다. 무기음을 발음할 때는 살짝 떨리기만 하던 종이 조각이 유기음을 발음할 때 뒤로 튕기는 것을 볼 수 있다.


 /ㅍ/, /ㅌ/, /ㅋ/를 국제음성기호로 표시하면 /pʰ/, /tʰ/, /kʰ/가 된다. 여기에 위첨자로 붙은 h는 바로 앞에서 살펴본 음소 /h/를 의미한다. 즉, /p/를 발음하면서 /h/를 추가한 말소리가 바로 /pʰ/다. 국제 음성기호로 나타낸 모든 유기음들은 모두 h가 위첨자로 붙어서 나타난다. 결국, 유기음은 /h/가 첨가된 말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기음을 발음하다보면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다. /h/는 성대에서 조음된다고 했는데 왜 성대에서 별다르게 조음되는 느낌이 없을까? 하는 의문이다. /h/는 엄밀하게는 성대에서 음이 만들어진다기 보다는 성대에서부터 날숨이 배출되는 통로를 좁혀 숨이 일반적인 날숨보다 빠르게 나가게 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래서 다른 음과 섞여서 발음할 때에는 실제 조음되는 위치가 성대가 아니라고 느낄 수 있다. 

(한국어에서 /ㅍ/, /ㅌ/, /ㅋ/는 음소이므로 국제음성기호로 /pʰ/, /tʰ/, /kʰ/로 표시했다.)


다음은 한국어 음소 /ㅍ/, /ㅌ/, /ㅋ/와 영어 음소 /p/, /t/, /k/가 어떻게 다른지 서로 비교한 그림이다.

 

 

 


 앞에서 005 음소 이음 음성체계 포스팅에서 제시했던 그림을 조금 확장하여 유기음의 개념을 첨가했다. 한국어는 /ㄱ//ㅋ/, /ㄷ//ㅌ/, /ㅂ//ㅍ/무기음과 유기음으로 구분되어 서로 별개의 음소가 된다. 반면, 영어는 [p][]는 음소 /p/의 이음으로 같은 음소다. 마찬가지로 [t][tʰ]/t/의 이음으로 같은 음소이고, [k][kʰ]/k/의 이음으로 같은 음소다. (영어에서 , tʰ, kʰ는 이음들이므로 [], [tʰ], [kʰ]로 표시했다.)

 

 눈치 챈 사람들도 있겠지만 한국어는 유기음인지 무기음인지에 따라서 음소들을 구분하고 있다. 반면, 유성음인지 무성음인지는 신경쓰지 않는다. 반면, 영어는 유성음인지 무성음인지에 따라서 음소를 구분하고 있지만 유기음인지 무기음인지는 신경쓰지 않는다. 이 부분이 한국어와 영어의 음성체계에서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로 인하여 한국어 원어민과 영어 원어민은 서로의 말소리를 들으면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영어 원어민은 한국어 원어민이 자신들 입장에서는 완전히 다른 유성음과 무성음을 섞어서 쓰기 때문에 혼란스러워 한다. 이들은 본능적으로 성대의 진동 여부에 따라서 서로 다른 음소로 인식하기 때문에, 유성 여부는 무시하고 유기여부에 따라서 음소를 구분하는 한국어의 음성체계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점은 한국어 원어민 입장에서 영어도 마찬가지다. 그런 상이한 음성체계 때문에  '박'씨를 'Park'으로 쓰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쩌면 한국어 원어민이 더 혼란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영어는 유기음을 다른 용도로 상당히 중요하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영어에서 유기음인지 무기음인지로 음소를 구분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유기음과 무기음을 구별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실은 매우 중요하게 사용된다. 영어는 한국어보다 훨씬 연속적인 언어다. 긴 문장을 거의 쉼없이 연속해서 말한다. 이 때, 단어와 단어 사이의 구별이나 강세 여부를 자연스럽게 나타내기 위하여 중간중간 유기음을 사용한다. 유기음이 들려오면 영어 원어민은 자연스럽게 강세이거나 새로운 단어의 시작이라고 이해한다. 이는 한국어 원어민에게는 없는 감각이고 앞으로 익혀야 할 감각이다.

 

 이번엔 유기음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이 유기음이 한국어와 영어에서 완전히 다르게 사용되고 있어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언어 감각을 얻는 데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어와 영어 자음들을 학습할 때, 이들을 비교하면서 명확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우선 간략하게나마 개념을 미리 소개했다. 추후, 개별 음소들을 실제로 살펴보면서 하나하나 귀와 입으로 익혀보도록 하자.

 


Ankilog 학습파일


학습용 Anki 파일은 아래와 같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Ankilog 파일:  영어음성학__007 _h_와 유기음.apkg


수정 : 2020-02-02 오전 12:02 Ankilog 파일 내의 문구를 다듬고 설명을 보충함


 

 

 최근은 그야말로 절망과 좌절의 연속입니다. 독감으로 고생하는 와중에 그림 그리는 것 때문에 크게 고생했기 때문입니다. 원래 그림 그리기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바로 직전에 쓴 글을 보신 분이라면 작대기 두 개를 성대라고 표시하고 있는 제 그림 실력을 바로 보실 있습니다. 아무런 디테일을 표현할 수 없어서 그냥 작대기 두 개를 그렸습니다. 더 슬픈 것은 그 그림을 그리는데 2주가 걸렸다는 점입니다. 말이 2주이지 스스로의 재능과 실력을 깨닫고 자각하고 인정하는 자학의 기간에 가까웠습니다. 그림만 그리려고 하면 모든 것이 멈춰 버리고 셧다운 되어버리는 일상의 나날이었습니다. 재능이 없는 거지요.


 음성학 포스팅에 집어넣을 그림을 위해서 한 달 정도 열심히 GIMP를 익혔습니다만 여전히 다루기 힘들고 어색한 도구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림을 그리려고 하면 멍하니 멈춰 버립니다. 최근에는 드로잉을 익혀보려고 책을 사서 연습해보고 있습니다만 인연이 없다는 말이 무엇인지 다시금 느낍니다. 연습을 해도 무엇인가 되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재미도 없고 점점 멀리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런 게 재능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튼, 원래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은 아니라서 심리적으로 타격을 입지는 않았지만 음성학 포스팅을 올리는게 쉽지 않네요. 아마도 그림이 무슨 필요냐고 말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길게 보면 그림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올릴려고 하는 내용들은 점점 복잡해질 것이고 영어 공부에도 필요하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그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힘들더라도 기본적인 수준까지는 올리려고 노력중입니다. 영세한 블로거로서 디자이너를 고용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다가 최근에는 제가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되었습니다. GIMP는 저에게 적합한 그림을 그리는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그림은 예술적인 영감을 구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간결하고 직관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의사소통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저에게 필요한 것은 그림 보다는 도안에 가깝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럴려면 벡터 기반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툴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찾아보니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런 도구더군요. 저는 그런 오픈소스 쪽을 선호하기 때문에 일러스트레이터처럼 사용할 수 있는 잉크스케이프(Inkscape)를 사용하려고 합니다. 다행히 유튜브에 사용법과 사용례들이 많이 나와서 익히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GIMP와는 달리 잉크스케이프 동영상 강의들을 보고 있으면 할 수 있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역시 저는 이공계여서 그런지 자연스러운 감정을 표출하는 미술보다는 도형과 간단한 선으로 표현하는 것이 그나마 편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또, 그나마 도구의 사용법들이 보이고 어떻게 전개해야할지가 조금 보이기 때문입니다. GIMP에서는 재능의 편린조차 볼 수 없었다면 잉크스케이프에서는 손발은 움직여볼 여유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그나마 얻은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튼, 새로운 툴을 익혀야 하는 상황이 답답하면서도 1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는 것이 재미있고 신기하다고 스스로에게 세뇌하면서 익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오면 앞서 제시한 그림들도 전부 수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독감으로 거의 2주를 고생했습니다. 예전에는 독감을 그냥 체력으로 버틴 것 같은데, 지금은 약먹고 주사맞아도 2주간 아무 것도 못하는 체력이네요. 최근 독감이 지독한 건지 제 체력이 엉망인건지 잘 구별되지 않는 요즈음입니다. 여러분들도 독감 조심하시고 되도록 예방접종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006 음소 /h/와 성대


 이제 실제 음소들을 다뤄보자.

   

 첫 번째로 다룰 음소는 /h/다. /h/는 한국어의 음소 /ㅎ/과 동일하므로 한국어 원어민이라면 이 음소를 말하고 듣는 데 어려움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음소 /h/는 그저 목구멍으로 숨을 조금 내쉬면 나는 간단한 소리이기 때문이다. 한국어 원어민은 /h/ 소리를 쉽고 간단하게 낼 수 있으므로 스스로 소리를 내면서 소리가 나는 원리를 체감하고 이를 음성학에서 어떻게 설명하는지 확인해 볼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또, 앞으로 계속 부딪히게 될 성대라는 조음기관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1. /h/ 소리내기

음소 /h/ 다음과 같이 나는 소리다.

 


 많이 들어본 소리다. 한 겨울 창문에 김을 서리게 하려고 숨을 내 뿜었을 때 나던 소리다. 아니, 그냥 숨소리다.

 한국어 원어민은 /ㅎ/을 발음할 수 있으므로 동일한 /h/ 소리도 아무런 문제없이 자연스럽게 낼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실제로 내는 소리와 음성학에서 말하는 /h/ 말소리를 내는 방법을 비교해보자.

    

음소 /h/ 소리를 내는 방법

 

  목의 성대를 진동시키지 않고 성문을 살짝 연 상태에서 공기를 밖으로 적당하게 밀어내면 공기가 성문과 마찰하면서 /h/ 소리가 난다.

 

 음소 /h/를 소리 내면서 느낌을 관찰해보자. 숨을 조금 강하게 내뿜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목이 긴장되고 목구멍 깊은 곳에서 소리가 올라오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성대의 좁은 틈인 성문으로 소리를 내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소리를 구차하게 말로 설명하고 있으니 괜히 머리만 아프고 쓸데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외국어의 음소들을 발음하기 위해서 조음기관을 써서 의식적으로 소리를 내는 법을 익히는 과정에 있다. 즉, 자연스럽게 내던 소리를 의식적으로 익히는 과정을 시작한 것이다.

 음소 /h/는 좋은 시작점이다. 정말 간단한 말소리이고 우리가 쉽게 낼 수 있으며 한국어와 영어 음성체계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인 성대를 이해하기 좋은 소리이기 때문이다.

 

2. 성대와 성문

 

 폐에서 출발한 공기의 흐름을 처음 조절하는 곳이 바로 이  성대다. 성대는 목의 후두에 있다

성대에는 두 개의 얇은 판막이 아래와 같이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데 그 사이의 좁은 틈을 성문이라고 한다.

 


 그림 실력이 너무 나빠서 성대를 단순하게 그릴 수밖에 없었다. 양해를 부탁드린다. 그래서 부족한 내용은 말로 보충하겠다. 성대는 그 조음기관 전체를 부르는 명칭이면서도 동시에 판막을 움직이는 인대의 명칭이기도 하다. 그리고 성대는 위의 그림처럼 열리고 닫히는 운동을 하지만 소리를 낼 때 성대가 끊임없이 개폐운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입술을 생각하면 된다. 입술처럼 공기를 막다가 토해내고, 공기가 나가는 통로를 넓게 하거나 좁게 한다. 또, 작은 틈으로 공기를 내보내 입술을 부르르 떨기도 한다. 

 성대도 목에 있는 입술처럼 움직인다. 특정 소리를 내기 위해서 폐에서 나가는 공기의 통로를 좁히거나 넓히고 공기를 막다가 토해낸다. 또 성대를 살짝 닫고 그 사이로 공기를 밀어내어 성대를 부르르 떨게 한다.


 

 3. 유성음과 무성음


 음성학에서는 성대로 내는 목소리를 보통 2가지로 분류한다. 유성음(voiced sound)무성음(voiceless sound)이다.

 유성음(voiced sound)이란 성대가 떨리는 음성을 말한다. /아, 이, 우, 에, 오/ 같은 모음들이 대표적인 유성음이다. 성대의 위치에 손을 대고 모음을 말해보면 떨림을 느낄 수 있다. 진동이 잘 안느껴지면 고음으로 소리를 내본다. 음이 높을 수록 떨림이 커진다.

 유성음을 낼 때에는 성대를 살짝 닫고 좁은 틈으로 공기를 밀어내어 성대가 공기의 마찰로 진동하게 한다. 이 진동이 바로 유성음의 진동이다. 

 성대가 떨리는 것을 체감해보고 싶으면 입술을 이용하면 된다. 입술을 위아래로 살짝 닫고 공기를 내보내면 입술이 부르르하고 떨린다. 유성음에서는 이와 비슷한 일이 성대에서 벌어진다. 

 무성음(voiceless)은 성대의 떨림이 없는 음성으로 유성음이 아닌 음성이다.

 모든 말소리는 유성음 아니면 무성음이다. 그리고 이번에 익히고 있는 음소 /h/도 성대의 진동이 없는 무성음이다.

 

4. 조음 방법

 음성학은 말소리를 내는 방법에 따라서 말소리를 분류한다. 이를 조음방법에 따라 분류한다고 하는데 보통 폐쇄음, 마찰음, 파찰음, 비음으로 분류한다. 

 마찰음은 조음기관을 이용하여 공기가 이동하는 통로를 좁혀서 공기가 주변 통로랑 마찰을 일으키게 하는 소리다. /h/는 기본적으로 성문의 좁은 틈으로 공기가 마찰된다.

 

5. /h/ 음소의 음성학적 명명

 음소 /h/를 부르는 음성학적 명칭무성성문마찰음이다. 

 음성학에서는 말소리가 나는 조음 원리에 따라서 이름을 붙인다. 조음 원리는 유성음인지 무성음인지, 조음이 이루어지는 위치가 어디인지, 조음 방법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h/무성음이고, 성대의 성문에서 조음되며, 성문의 좁은 틈으로 공기를 마찰시켜 말소리를 만드므로 무성성문마찰음이다.

Ankilog 학습파일


학습용 Anki 파일은 아래와 같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공지: 앞으로 Anki 파일은 내용과 음성을 분리해서 올릴 계획입니다. 소리를 들으면서 학습할 때에는 이어폰을 연결하거나 소리를 들을 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Ankilog 파일: 006 음소 _h_와 성대.apkg


수정 : 2019-12-15 오후 09:40  Anki 파일 내의 문구를 다듬음

005 음소, 이음, 음성체계

 

 영어 음성학 공부를 하는 이유는 단지 멋들어져 보이는 발음을 갖고 싶어서가 아니다. 영어의 음성체계를 머릿속에 설치하여 자연스럽게 언어로써 영어를 습득하고 싶어서다. 그렇다면 그 음성체계라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에는 아마 사람 수만큼 다양한 말소리가 있을 것이다. 어떤 말소리들은 서로 비슷하고 어떤 말소리들은 서로 다르다. 언어는 이 무수한 말소리들을 분류하는데 서로 같은 소리와 다른 소리로 구분하는데 특히 소리에 따라서 의미를 구분할 수 있는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따진다.

 

 가령, 우리에게 'ㅍ'과 'ㅂ'은 서로 다른 말소리다. 왜냐하면 '풀''불'로 초성 하나만 다르게 써도 의미가 서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어 원어민인 우리에게 너무 당연해 보이는 이야기다. 하지만 영어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영어에서 'ㅍ'은 'ㅂ'과 동일한 말소리다. 물론, 소리가 조금 다르게 난다는 점을 영어 원어민도 안다. 하지만 그것은 사소한 차이에 불과하다. 그냥 'ㅂ'발음할 때 숨소리가 섞여 조금 거칠게 발음된 것'ㅍ'일 뿐이다. 숨소리가 섞이는 이유야 강세에 따라 힘을 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말을 시작하면서 숨을 크게 내쉬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영어 원어민은 이 두개의 말소리를 서로 같은 음인 'p'로 생각하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풀''불'의 차이점에 대해서 이야기해도 영어 원어민은 이 두 단어 모두 'pul'로 동일한 단어처럼 생각한다. 또, 같은 이유로 대한민국 여권에 씨는 Park으로 표기 되고 씨는 Paik으로 표기 된다.

 

 음소는 의미를 구분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말소리의 단위를 말한다. 위의 예에서 우리에게 'ㅍ'과 'ㅂ'은 각각 서로 다른 하나의 음소다. 하지만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에게 'ㅍ'과 'ㅂ'은 별개의 음소가 아니라 하나의 음소에 속한 살짝 다르게 변형된 말소리일뿐이다. 이를 이음(異音)이라고 한다. 이음은 동일한 음소에 속하므로 이음들 끼리는 바꿔 사용해도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다.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영어는 'ㅍ'에 해당하는 [] 'ㅂ'에 해당하는 [p]를 모두 /p/의 이음으로 본다. 그리고 음성체계는 수많은 말소리들과 이음이 음소로 분류되어 만들어진 체계를 말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언어권별로 음소와 이음의 음성체계는 조금씩 다르다. 

(이제부터 음소를 표기할 때는 빗금으로 감싸서 /ㅍ/, /ㅂ/, /p/와 같이 적는다. 그리고 이음은 [], [p]와 같이 대괄호로 감싸서 표기한다.)

 

 그럼 이제 음소와 이음으로 구성된 음성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자.

 

 음소는 우리의 정신 속에서 실제 언어로써 작동하고 있는 말소리를 의미한다. 만일, 우리가 /미닫이/라고 말하려고 할 경우 머릿속으로는 /미닫이/로 말하고 있고 스스로 /미닫이/로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구개음화 때문에 [미다지]로 말소리가 나간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미닫이/로 찍힌다. 즉, 듣는 사람은 실제로 [미다지]로 들었어도 머릿속에선 /미닫이/로 자동 전환되어 언어로 이해된다. 즉, 언어에 의한 의사소통은 소리가 머릿속에서 적절한 음소로 전환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는 한국인이 한국어의 이음을 인식하기 쉽지 않아 이해하기 쉽도록 구개음화 현상으로 예를 들었다. 마찬가지로 다양한 이음들도 자신이 속한 음소로 전환되어 머릿속에서 언어로 작동한다. 그런데 이러한 음성체계가 서로 다르면 이음들이 서로 다른 음소로 전환되기 때문에 모국어와 음성체계가 많이 다른 외국어를 배울 때 큰 혼란이 발생하게 된다.

 

 가령, 이음 [l], [r]은 한국어에서는 음소 /ㄹ/에 속하는 이음들이지만 영어에서는 각각 별개의 음소 /l//r/이다. 따라서 영어 원어민은 leaderreader를 구분하여 발음하고 이해하지만 한국어 원어민은 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거나 문맥에 따라 추측해야 한다.

 

 또, 영어와 한국어의 음성 시스템이 서로 복잡하게 꼬인 경우도 있다. 한국어의 /ㅂ/[p], [b] 등을 이음으로 가지고 []는 이음으로 가지지 않는다. 반면 영어는 /p/, /b/가 별도의 음소로 구분되고 [] /p/의 이음으로 들어간다. 다음 그림과 같은 경우다.

 

 

 이렇게 소리들을 음소로 전환하는 음성체계가 서로 매우 다르면 또박또박 천천히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각자의 모국어에 따라서 서로 다른 음소로 전환되어 버리기 때문에 적절하게 음성을 주고받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려면 우선 음성체계를 맞추어 서로 주파수를 맞추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Ankilog 학습파일


학습용 Anki 파일은 아래와 같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Ankilog 파일: 005 음소, 이음, 음성체계.apkg


수정 : 2019-12-02 오전 2:25 문구를 다듬고 이음의 설명 부분 조금 보충함. Anki 파일의 이음 부분도 수정함

수정 : 2019-12-10 오후 2:30 발음기호 수정 [pʰ]으로 교체 Anki 부분은 수정사항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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