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베르그손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과 상관없는 결론


 본 서평은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책을 기억을 더듬어가며 추억하기 때문에 신뢰할만한 서평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은 2004년 쯤 읽었던 것 같다. 약 15년 전에 읽은 셈이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가 조금 씁쓸한데, 당시 파국을 맞은 내 자신 때문에 행동이 통제가 되지 않으면서 ‘나’라는 주체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파국 이전에는 나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고 다독이며 산다고 생각했다면, 파국 이후에는 알 수 없는 깊은 곳, 즉, 무의식이나, 번뇌, 운명 같은 것이 내 의식을 조작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내 의식을 조작하는 것, 가령, 꿈에 대해서 설명했을 때(링크), 가령, “눈을 감고 있는데, 개의 모습을 본다.”라는 모순적인 정보들이 그대로 유효하게 작동하는 것을 깨달으면서, 의식은 주어진 정보들 사이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과’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사과를 제대로 떠올릴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처럼 모자라고 주어지면 우리는 아내를 머리에 쓰려고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것들을 나는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이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이라는 책을 서점에서 보았으니 내가 어찌 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뭐, 결론적으로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앙리 베르그손은 대중적으로 유명한 분은 아니지만 철학사에서 종종 매우 중요한 인물로 튀어나온다. 현대 철학의 기초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생의 철학이라는 말도 들어봤지만 솔직히 그 내용을 잘 모른다. 그리고 책을 읽었을 때도,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인상만 강하게 받았다. 생각해보면 이분만 어렵지는 않다. 프랑스 철학자들의 글은 항상 너무 난해하고 어려웠던 것 같다. 


 난해한 내용과 번역투의 어투로 거의 이해하지 못했던 책임에도 오래된 기억 속에 이 책이 중요하게 남아있는 이유는 한 가지 이야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이 근육에 힘을 준다고 생각하고 행동할 때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설명한 내용이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이 어떤 근육에 힘을 강하게 주면, 그 근육이 더 강한 힘을 내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부위에서 힘을 준다.”라는 내용이다. 가령, 손으로 꽉 쥐는 힘, 악력을 생각해보자. 처음 힘을 줄 때는 손가락과 손아귀에 힘을 준다. 하지만 조금 더 강하게 힘을 주려고 하면 손목이 밖으로 꺾이고, 그 다음은 팔꿈치와 어깨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리까지 힘이 빡 들어간다. 즉, 우리가 손을 더 강하게 쥐려고 하면, 점점 힘이 들어가는 부위가 많아진다. 어떤 근육 하나에 더 강하게 힘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근육 주변의 다른 근육들이 같이 수축하는 것이다. 이를 질적인 것과 양적인 것의 혼동이라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이야기를 기억하는 이유는 이와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무술가들이다. 벽 너머로 사람을 치거나, 극단적으로 짧은 거리에서 강한 파워를 내는 타격법인 발경을 설명할 때 무술가들이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이렇다. 타격을 넣을 때, 강하게 치고 싶은 마음에 힘을 주려고 하면 오히려 속도가 느려지고 타격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가령, 주먹을 뻗는 근육에 힘을 주려고 하면, 주먹을 당기는 근육도 같이 힘이 들어가서 실제로는 주먹을 뻗는 속도가 둔중해지고 체력 소모는 심해진다. 그래서 무술가들은 필요없는 힘인 졸력(拙力)을 빼는 훈련을 한다. 비슷하지 않은가?


 동양의 무술가에게 들은 이야기를 서양의 철학자로부터 들었더니 무척 신선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양과 서양을 철저히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즉, 동양 특유의 주관적이고 상호적인 세계관과 서양 특유의 객관주의적 개체적 세계관을 대립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동양의 발경법을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서는 저절로 기(氣), 음양오행론, 천인감응 같은 것들이 떠올라 막연하고 추상적인 자연스러운 움직임 같은 것을 상상했다. 즉, 천지에 감응하여 흐느적거리면서 춤을 추는 무희같은 것을 떠올린 셈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베르그손으로부터 이를 생리적으로 분석한 이야기를 듣게 되니 저절로 작동하던 선입견이 사라지면서 무술가들의 발경법이 근육의 생리를 정확히 파악하고 설명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매우 분석적이고 진지하며 효과적이었다. 


 눈을 뜬 기분이었다. 그 뒤로 흥미가 생겨 많은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서양의 연금술, 신비주의 등은 동양의 영향을 받은 티가 심하게 났다. 종교와 오컬트적인 세계관이 맹위를 펼쳤고, 과학자들은 탄압을 받았었다. 이게 근대 이전이다. 서양은 근대 이전에는 오늘날 말하는 동양과 거의 비슷했다. 근대화를 거치면서 연금술과 미신을 배격하던 그들의 계몽 운동이 성공하면서 음지로 들어갔을 뿐이었다. 그리고 연금술과 미신으로 점철되었던 과거 서구의 모습을 동양에 그대로 투영하고 있었다. 


 역으로 동양은 생각보다 더 오늘날 말하는 서구적이었다. 인도와 중국, 아랍의 문명은 찬란했고, 무슨 비논리적이고 신화적이고 주관적인 그런 것이 아닌 논증과 경험을 통하여 납득할만한 지혜들을 전하고 있었다. 물론, 주술과 오컬트, 연금술 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비합리성을 파악하고 비난하는 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 이를 절제하고 있었다. 그들의 논술을 읽어보면 그 면밀하고 구체적인 논증에 오늘날의 지식으로도 설득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을 읽고, 엉뚱하게 동양을 재발견했다. 이는 사소하지만 굉장히 큰 변화였다. 이러한 태도 변화가 있고 나서야 진정으로 동양의 지혜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불교의 큰 지혜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중국의 한의학이나 음양오행론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조금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고대에도 경제와 사물의 법칙을 궁구한 천재들의 지혜가 지금도 유효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신세계였다. 새롭게 발견된 오래된 신세계를 탐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번역된 책들은 솔직히 읽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수학은 거의 번역된 것이 없고, 천문학과 의학 등은 너무 중구난방이었다. 번역은 이해하기 힘들었고, 번역서에는 역자의 개인적인 관점이 심하게 반영된 경우도 많았다. 결국, 원서를 직접 읽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지만, 솔직히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했다. 그저 번역서만 조금씩 흝어보다가 말았다.


 그러나 Anki를 알게 되면서 공부가 시작되었다. 목적은 구장산술(九章算術) 같은 수학이나 기술서, 천문학 같은 책을 원문으로 직접 읽고 이를 블로그로 소개하는 것이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거기까지 가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무려, 15년 전 해보고 싶었던 것을 시도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를 본 건 1996년으로 23년 전이지만 지금도 가끔씩 생각나는 영화다. 물론, 재미있어서는 아니다. 뛰어난 영상과 그래픽으로 볼거리가 많은 영화였지만 엉성한 설정과 스토리 때문에 동시에 무척 깨는 영화였다. 그리고 그 깨는 경험이 매우 독특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 영화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1996년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반미감정이 생생하게 살아있던 시절이었다. 대학에 신입생으로 들어가면 선배들은 파릇파릇한 신입생들을 붙잡고 한국 현대사를 가르쳤다. 그리고 그 현대사에서는 미국이 공정한 척을 하면서 어떻게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고 독재정권을 유지시켰는지에 대해서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당시 헐리우드는 이미 식상함의 아이콘이었다. 밑도 끝도 없는 해피엔딩과 남녀의 애정행각, 그리고 은연중 제시되는 미국과 자본주의 진영의 우월주의에 대한 찬양은 늘어난 테이프 마냥 지루하게 반복되었다. 딱히 운동권이 아니더라도 예술가, 평론가, 지식인, 하물며 헐리우드 자신들도 모두 입을 모아 헐리우드식 액션의 꼴사나움과 그것에 대한 대안을 이야기했다. 덕분에 대학가에서 반미 운동은 스스로 세련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까지 참여하던 새로운 세기말적 대안이었다.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를 보기 위해 영화관에 갈 당시의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선배들의 교육과 읽은 책들로 미국에 대한 비판을 많이 듣긴 했지만 솔직히 실감하기에는 너무 큰 이야기였기 때문에 그냥 들려오는 수많은 가능성 중에 하나에 불과했다. 그리고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처음에 매우 흥미진진했다. 항상 외계인의 침공이라고 하면 대충 비행기만한 UFO를 몰고 나타나는 외계인을 상상했던 나에게 외계인들의 압도적인 규모와 화력은 전율적이었고 그 자체로 파격이었다. 더 앞선 과학기술과 능력을 가진 외계인들이 비행기만한 비행접시를 타고 올 것이라는 선입견이 산산이 부서지면서 그 영상에 흠뻑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파격에 정신을 차리고 날것으로 보니 외계인은 너무 강하고 뛰어난데 지구는 너무 약했다. 지구는 멸망하거나 식민지가 될 것 같았다. 핵무기가 사용되었지만 배리어에 막혀 무력화되었다. 인류 최고최악의 화력이 꺾인 셈이다. 영화 중반에 겪는 수많은 재난들은 속절없이 무너지는 지구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희망은 없어 보였다. 속으로는 작은 희망과 반전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도 아무리 생각해도 희망은 없어 보였다. 그 마음의 간극이 긴장감을 낳았고 영화에 몰입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갑자기 컴퓨터 바이러스가 등장했다. 갑자기 확 깼다. 컴퓨터에 감기 바이러스를 살포하면 컴퓨터가 감기에 걸린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오가더니 승인받고 작전이 시도되었다. 갑자기 이야기가 뻔해지기 시작했다. 영화의 설정 상 당연히 그 바이러스 작전이 먹힐 것이다. 속으로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를 연발하기 시작했다. 바이러스가 먹히고, 배리어가 사라지자 노인이 모는 전투기는 가미가제로 적을 들이받아 외계선을 침몰시킨다. 그리고 미국의 대통령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에 외계인을 물리쳤으니 오늘은 미국만의 독립기념일이 아닌 전 세계의 독립기념일이라고 말하는 순간 영화에 대한 몰입은 완전히 깨졌고 그 뒤의 내용은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몰입이 깨졌다고 말한 것은 갑자기 영화가 시시해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순간 생전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 발생해서 더 이상 영화를 볼 수 없었을 뿐이다. 영화에서 미국의 대통령이 “오늘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독립기념일”이라고 말하는 순간 내 마음은 고양되었다. 앞서 가졌던 절망감과 긴장감이 해소되고 전율이 일면서 고양된 것이다. 그런데 동시에 또 다른 마음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그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은 대학에서 너무나 자주 들었던 헐리우드 영화의 목적을 떠올리고 있었다. 헐리우드 영화가 미국 우월주의를 표방하고 미국을 존경하고 동경하게끔 사람들을 세뇌하고 있다는 뜬구름 잡던 이야기가 대통령의 연설 장면에서 갑자기 무척 실감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이야기의 흐름과 상관없이 사족처럼 느껴지는 미국의 독립기념일 운운하는 내용은 무리하게 그 방향으로 사람들을 유도하려는 제작자의 의도를 선명하게 느끼게 해주었기에 더욱 심했다. 갑자기 그 동안 즐겁게 보던 영화가 B급의 싸구려 선전영화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고, 이런 영화에 감동하는 것은 이 영화 제작자의 의도대로 놀아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런 생각을 해도 내 정신은 고양되고 눈에서는 감동의 눈물이 나오고 몸에서는 전율이 일고 있었다. 이건 무슨 현상일까? 몸과 마음이 괴리된 것인가? 의식과 무의식이 괴리된 것인가? 한 번도 이런 일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이 모순된 감정과 모순된 반응 속에서 스스로를 관찰하느라 영화의 후반부는 전혀 보지 못했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스스로의 마음을 관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의식은 확실하게 식었다. 비판적으로 영화를 보고 영화의 의도에 몰입하지 않고 삐딱선을 타면서 해석하기 시작했다. 바이러스는 말도 안되게 유치해 보였고, 가미가제는 쓸데없이 일본식으로 연출해서 군국주의의 망령을 느끼게 해주었다. 특히, 일부러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 사람들을 고양시키고 전율시키고 군중심리에 휩쓸리게 하려는 뻔한 연출이 상세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한편에 있는 마음은 영웅의 희생에 감동하고 전세를 뒤집은 것에 안도하면서 모든 것이 괜찮아지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계속 내 마음을 관찰하면서 내렸던 결론은 의식과 무의식이 따로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알 수 없는 마음의 작용을 전부 무의식의 몫으로 돌렸기 때문에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 기전이 어떻든 간에 그 동안 식상하다고 비난했던 헐리우드식 영화 공식이라는 것이 어떤 실제적 힘이 있어서 내 의식을 거스르고 내 무의식을 컨트롤할만한 힘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내 무의식이라는 것은 헐리우드식 영화 공식같은 것에 조작당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살면서, 종종 내면의 욕구에 시달린다. 뜬금없이 눈앞의 이성에 반해서 운명의 배우자로 생각하고 돈과 시간을 전부 갖다 바치게도 하고, 술, 담배, 게임 등에 몰입하게도 한다. 욕구는 사람을 안달복달시키며 시야를 좁히고 현실을 왜곡한다. 술은 풍류가 되고, 술 없이는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아진다. 담배는 맘속의 공허감을 달래주는 유일한 벗이고 담배가 없다면 답답함이 몰려온다. 우리의 욕구는 상황을 뒤바꾼다. 그 이성을 원하기 때문에 그녀를 신성한 존재로 전환해서 인식해버린다. 술을 원하기 때문에 술을 마셔야하는 상황을 만들고 그 상황을 찬미하게 한다. 담배를 원하기 때문에 담배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유독 담배에 대한 각종 통계자료만 믿을 수 없게 만든다. 그 모든 것이 자발적이고 내 영혼의 어떤 소명으로서 피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마치 운명에 대한 복종처럼 그 욕구에 끌려다닌다. 하지만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는 외계인에 맞서고 상황을 반전시키고 싶어하는 내 욕구를 끌어내었지만 역으로 제작자의 뻔한 의도를 드러냄으로써 의심과 괴리감을 만들어냈다. 마치 사랑스러운 이성을 향해 애정 공세를 했지만 그 이성이 눈앞에서 바람을 피면서 돈과 봉사를 요구하는 꼴이었다. 어떤 이는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휘둘려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모든 사랑의 시련을 극복하리라”라고 말하면서 현실을 왜곡하고 자신을 고양시키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마음이 짜게 식어버릴 것이다. 이 두 경우 모두 스스로 마음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그저 마음가는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마음 둘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각자 자신의 갈 길을 갔다. 여전히 사랑하면서 사랑할 가치가 없다고 동시에 생각하고 그 생각이 유지되어버린 것이다. 덕분에 마음이라는 것이 하나가 아니고 신뢰할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이 마치 영혼의 소명인양 꼭 해야만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마음은 너무 순진해서 누군가에게 놀아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아 버린 것이다.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에 대한 평은 대부분 비슷하다. 뛰어난 그래픽과 영상미를 보여주는 작품이고 몇몇 설정과 노골적인 미국 우월주의로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던 오락용으로 좋은 영화 정도다. 하지만 내게는 어떤 의미에서 인생영화고 다시 볼 가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최고의 명작이다. 지나치게 강력한 영상으로 무의식을 지배했으면서 동시에 지나치게 멍청한 연출로 그것을 깨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대비가 없었다면 의식과 무의식의 서로 다른 반응을 겪어볼 일은 없었을 것이고 내 무의식이 나에게 온전히 소속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조작당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를 처음으로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 경험이었고, 내면의 욕구가 내 영혼의 소명이 아니라는 것을 철저히 자각시켜주어 남은 인생을 피곤하게 만들어 주었던 씁쓸한 경험이었다.

              

덧붙이자면 그 때 영화를 봤던 경험에 대해서 친구들과 이야기해보았지만 그런 전율과 감동을 겪은 사람은 없었다. 그저 모두들 일관되게 영상을 좋았고 재미있었지만 스토리가 별로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나처럼 감동했다는 사람은 없었다. 덕분에 내가 얼마나 쉽게 감동하는지도 잘 알게 되었다.

주로 좋아하는 매체가 책이고 활자 중독이다 보니 원래 영화를 챙겨보지는 않는다. 영화관에 대한 로망도 없고, 대중문화에도 시큰둥한 편이다. 그렇지만, 보헤미안 랩소디 포스터와 마주한 순간 바로 이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퀸은 내 기억 속에 참 아련한 밴드다. 팜플렛을 보니 91년에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죽었다. 아마도 그 때 나는 중3이었던 것 같다. 퀸이라는 밴드를 아는 친구는 많지 않았다. 많지 않다기 보다는 반에 딱 한 명의 열성팬이 있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지만 키 크고 잘생긴 친구였고 조금 많이 까칠했었다. 그리고 그 까칠함의 근원에는 퀸이 있었다. 반 친구들에게는 퀸이라는 밴드는 그 친구가 너무나 좋아하는 이상한 밴드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동성애자, AIDS 등으로 대변되는 프레디 머큐리였기 때문에 그 시절에 중학교 남학생들이 좋아할 법한 이미지가 아니었다. 반 친구들은 퀸의 열성팬인 그 친구가 너무나 기이하게 느껴졌고 조금 힘 좀 쓴다는 친구들은 종종 프레디 머큐리를 비하하며 그 열성팬 친구에게 시비를 걸곤 했다. 평소 조용하던 그 열성팬 친구는 그 때마다 히스테릭한 까칠함으로 응수하면서 퀸의 좋은 점에 대해서 한바탕 역설했었다. 

      

그저 그런 이야기였다. 반에 단 하나 있는 취향 독특한 친구가 좋아하는 독특한 밴드였을 뿐이다. 가뜩이나 음악과 집안 전체가 거리가 먼 나로서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고 그저 반에서 투닥거리는 일상의 풍경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 그것이 달라졌다. 

      

평소처럼 아침에 안 떠지는 눈 비비고 일어나 어슬렁 학급에 도착했을 때, 교실은 평소에는 없었던 고요함과 어떤 웅성거림이 전해져왔다. 열성팬 친구가 조용히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옆에 있는 친구에게 조용히 물어보니 그 날 프레디 머큐리라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 친구의 슬픔은 진짜였다. 너무나 진한 슬픔에 압도되어서일까? 혹은 그에 대한 경의일까? 평소에 자주 놀리던 친구들도 그 날은 조용히 애도할 수 있도록 그를 내버려 두는 것처럼 느껴졌다. 간혹, 질문이 오가면서 조용히 웅성대곤 했고, 간혹 혀를 차면서 "그깟 밴드가 뭐라고."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그 뿐이었다. 그 친구는 그 날 하루 내내 눈물을 흘리면서 애도를 했고, 그 사건은 조용히 잊혀졌다. 

      

사건은 잊혀졌지만 나에게 그 날은 강력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그 때는 팬이라는 것이 생소한 때였다. 당장 92년만 되었어도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와서 팬덤을 형성하고 뉴키즈온더블록 내한 공연에서 시민이 죽는 일이 생기면서 팬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지만 91년까지 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던 나에게는 그러한 애정과 숭배와 애도는 그 때까지 전혀 볼 수 없는 신기한 일이었다. 

     

나에게 음악은 그리고 노래는 평생의 계륵 같은 것이다. 노래는 조금만 불러도 목이 쉬고 음악은 들어도 좋은 것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노래를 부르며 빠져드는 사람을 볼 때면 그 고양감이 그 내지르는 호쾌함이 너무나 부러웠다. 한 번은 이런 고민을 이야기했을 때, 음악을 가까이하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를 들었다. 그래서 레코드 가게를 둘러 봤을 때 보았던 것이 퀸의 테이프였다. 당장 그 퀸을 숭배하던 친구가 떠올랐다. 아마도 음악에 몰입하는 것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된 것이 그 날 그 친구의 진지한 애도를 목격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주구장창 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4~5시간씩 고등학교 2년과 재수 시절을 퀸과 함께 했다. 듣고 또 들었다. 멜로디는 익숙해지고 알아듣기 어려운 영어 가사를 대충 뭉개면서 따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더 이상 공감도 되지 않았고 어떤 몰입도 없었다. 그냥 가끔 신나고 가끔 흥얼거릴 뿐이었다. 그 친구가 하듯 동경하게 되지 않았고 몰입되지 않았다. 그리고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면서 퀸도 그렇게 잊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포스터를 봤을 때, 한번 지중으로 들어간 지하수가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다시 용출하듯, 오랫동안 잊었던 기억과 정서가 용출되는 것이 느껴졌다. 칙칙하고 어둡고 절망적이었지만 그럼에도 젊고 풋풋했던 시절의 자신과 가볍게 인사하고 싶다는 마음이 영화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22년 만에 퀸은 여전히 익숙하고 또 너무나 새로웠다. 영화는 22년 전의 내가 이해할 수 없었고 공감할 수 없었던 것들을 풀어주었다. 그저 해외의 전설적인 유명 밴드로만 알려져 있었던 그들의 삶을 공감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주었고, 그들이 왜 그렇게 음악을 만들었는지, 왜 그렇게 의미없는 대사를 마구 집어넣었는지 가르쳐 주었다. 퀸이 음반사 사장과 협상하던 장면에서 음반사 사장의 의문은 오랜 기간 내 속에 있었던 질문이었다. 나는 내 속에 그런 질문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퀸은 자신들이 왜 그런 음악을 만들었는지 답을 했고 덕분에 22년간 쌓인 체증이 내려가는 시원함을 맛보게 되었다. 

       

영화는 뻔했지만 즐겁고 감동적이었다. 지금은 빛바랜, 젊은 시절 내내 화두였던 존재에 대한 희구, 자유에 대한 열망, 치열한 삶에 대한 동경 등 이런 것들을 원했던 이유들을 마주치며 다시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이해할 수 없는 음악에 대한 젊은 시절의 오래된 질문과 화해했을 때는 뻔한 스토리임에도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왔을 때, 문득 그런 것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던 오래된 과제가 종결되었음을 갑작스럽게 알게 되었다. 이제 프레디 머큐리의 죽음을 종일토록 진지하게 애도했던 그 친구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나는 여전히 음악을 듣는 것도 하는 것도 관심이 없지만 프레디 머큐리의 죽음은 충분히 애도할 만한 가치가 있었고 지금이라면 나도 그를 애도할 것이라는 것을 이젠 납득했다. 그리고 내가 퀸을 들었던 것은 음악에 대한 열등감도 있었지만 결국, 그 친구가 애도한 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는 것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1998년에 읽었고 그 이후 밀란 쿤데라의 책은 전부 읽어보게 되었다. 밀란 쿤데라의 다른 책은 거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고 단편적인 인상만 남아있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농담만은 여전히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20년이 지나도 당시에 읽으면서 받았던 충격이 종종 환기된다는 점에 종종 스스로 놀라게 된다.

 

20년 전 읽은 책이니 세세한 부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기억은 많이 왜곡되었을 것이고 스스로 미화하거나 덧붙인 이야기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농담을 다시 읽고 기억을 바로잡고 서평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20년 동안 끈질기게 남아있는 것이 무엇인지 쓰고 싶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굉장히 많은 인물들의 디테일한 상황이 펼쳐지고 각자의 생각과 고민이 어우러지면서 전개된다. 하지만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중 거의 중심인물로 보이는 등장인물이 루드비크인데, 그는 젊었을 때 공산주의 학생회 같은 곳에서 활동했는데 항상 유쾌하고 유머감각이 있는 친구였다. 하지만 그의 유쾌한 농담은 당시 경직된 공산주의의 경건함과 잘 맞지 않았다. 결국당시 리더였던 학생회장과 여자친구는 그가 한 농담이 자본주의적인 천박함을 드러낸 것이고 이를 교화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고발을 했고 그 결과 수용소 같은 곳에 들어가 인생이 망가졌다.


그를 고발한 학생회장은 당시 공산당에서 승승장구했고 지금은 명망있는 교수가 되어서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루드비크는 수용소를 나와 자신을 고발한 학생회장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그의 아내를 유혹한다. 

 

각자의 생각과 고민 속에서 사람들은 전통 마을 축제에 모이게 된다. 루드비크는 학생회장의 아내와 잠자리를 갖고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학생회장 곁을 지나간다. 하지만 지금은 교수가 된 학생회장은 그의 부인이나 그가 파멸에 이르게 한 루드비크에 관심이 없다. 그는 옆에 20대의 젊은 여대생과 팔짱을 끼고 축제를 즐길 뿐이다.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이런 이야기였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 충격적이었다. 학생회장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그의 아내와 잠자리를 가진 루드비크는 그 학생회장의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20대의 젊은 여대생을 보면서 오히려 그 학생회장을 부러워한다. 학생회장은 예전의 경직된 모습은 없고 여유롭고 성공한 모습으로 인생을 즐기고 있는데, 자신은 복수해 보겠다고 아등바등 발악하면서 젊고 아름다운 여대생과 비교되는 늙은 부인과 잠자리를 한 것이다. 이러니 오히려 스스로 더 비참해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갑자기 상념에 빠진다.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에 몰두하여 모두가 경건하고 보수적인 시절 농담 한 마디로 인하여 수용소에 들어가 인생이 망가진 자신의 이야기를 미국인처럼 옷차림이 개방적이고 당당한 젊은 여학생에게 말한다면 그 여학생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도 상식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느냐며 옛 사람들이 하는 농담 정도로 듣고 말 것이라고 생각한다.

 

루드비크의 상념이 정확히 그런 상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속에는 그렇게 남아있다. 그리고 그 뒤의 이야기는 어떻게 끝났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밀란 쿤데라는 그 특유의 위트나 그 문체의 여유로움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한 것으로 깊은 인상을 주었던 작가이다. 하지만 농담은 쿤데라 특유의 여유롭고 방관자적인 관조가 잘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었다. 아마도 쿤데라의 다른 소설을 읽고 농담을 읽었다면 기대했던 여유와 위트를 찾지 못해 당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담은 가장 쿤데라적인 위트와 유머감각이 넘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소설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농담이기 때문이다.

 

농담에서 농담은 곳곳에 등장한다. 루드비크를 파멸에 이르게 한 농담은 사건의 결정적 분기점으로 작동한다. 작가는 각종 아이러니한 상황을 제시하면서 유머감각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농담은 마지막 장면에서 결정적 클라이막스에 도달한다.

 

가장 달콤하고 통쾌했어야할 복수의 순간에 루드비크는 학생회장의 옆에 있는 젊은 여자를 보면서 오히려 그를 부러워하고 스스로 비참해진다. 무슨 통찰이나 자신에 대한 성찰을 통하여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젊고 개방적이면서 아름다운 여자가 학생회장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자신의 시대를 통찰하게 되는 것이 무슨 농담 같은 상황이다. 인생의 가장 좋았을 시기를 수용소에서 갇혀 노동을 해야 했고 거의 가진 것 없이 꿈도 희망도 없이 사회에 다시 내던져지고 다시 복수를 하는 서사에서 주인공 루드비크는 나름 그 자신의 서사가 있는 등장인물이었다. 사소한 실수로 숙청당했건, 사상적 차이로 숙청당했건 나름 자신의 비극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주체적인 등장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학생회장 옆에 있는 여성의 매력으로 인하여 한 순간에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일들로 무화되었다는 점이 내가 생각한 작가의 첫 번째 치명적인 농담이었다. 그리고 읽었을 당시에는 속으로는 참 등장인물이 여자를 밝히는 속물정도로 생각했지만 실은 절대적으로 공감해서 20년 동안 기억 속에 남아있다는 점이 나로서는 두 번째 농담이었다.

 

마지막은 농담은 루드비크와 학생회장 등이 각자의 생각과 고민 속에서 아등바등 살면서 했던 선택들이 당사자의 입장이 아닌 다음 세대가 볼 때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일들이라는 점이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은 매순간 자신의 상황 속에서 존재의 이유와 존재 형식을 끊임없이 자문한다. 독자로서 그것을 읽을 때에는 그 등장인물이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동의하게 된다. 그런데 정작 주인공인 루드비크는 젊은 여대생을 보고 갑자기 제 3자의 입장에서 시대와 인생을 통찰하면서 그 동안 아등바등 살았던 자신의 무겁고 질척거리던 인생을 한갖 농담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인생이 한갖 농담으로 전환되는 이 농담은 나에게 뼈를 때리는 아픔을 주면서도 갑자기 그동안 지고 있었던 삶의 무게를 한갖 농담으로 보게 해주었다. 겨우 농담 한번 하고 싶은 것을 참지 못해서 수용소로 간 루드비크나 친구가 겨우 농담한 것을 참지 못해서 수용소로 보낸 학생회장이나 옆에서 그냥 보기에는 무슨 농담같은 일이고 모든 분노와 증오가 예쁘고 어린 여대생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면 거짓말처럼 사라질 것 같은 것도 농담같은 일이다. 마치 스스로가 큰 서사의 주인공인양 스스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끊임없이 역설하지만 실은 자신의 상황에 매몰되어서 비극의 주인공으로 스스로 생각하지만 옆에서 보기에는 그저 희극인 것이다.

 

당시, 무용담처럼 내려오는 선배들의 학생운동 이야기들, 군대 이야기들, 역사들이 소설 농담에 겹쳐졌다. 그리고 내가 매몰되어 있던 삶이 이 이야기에 겹쳐졌다. 내 삶의 이야기들도 결국 술자리에서 풀어놓는 농담같은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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