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막힘과 무호흡에 대하여...


무호흡에 대해서 조금 더 말해보려고 한다. 


무호흡의 원인이나 치료법 등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무호흡을 치료하고 싶다면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말하고 싶은 것은 무호흡의 은밀성이다.


오늘은 주말의 여유를 한껏 느끼며 깨어났다. 잠도 잘 잤고 컨디션도 좋다. 잠깐 창문을 열고 그날의 대기를 느껴보려고 했지만, 밀려드는 습기와 열기로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려워졌다. 에어컨을 틀어놓고 보니, 근심과 시름은 사라지고 게으름이 튀어나온다. 오래간만에 인터넷에 코를 박고 한량의 삶을 즐겼다. 


 대략 5시간 정도 각종 농담과 글을 읽으며 낄낄대다 보니 머리가 지끈 거리기 시작한다. 두통이 몰려온다. 예전 같았으면 이 때, 어떻게 할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방치하면 이 두통은 점점 더 심해진다. 원인은 코가 막힌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 일정 시간 이상 있으면 머리가 아팠다. 비유가 아니다. 말 그대로 고통스러운 두통이 몰려왔다. 그래서 집에 있는 것을 싫어했고, 가만히 있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그러다가 나가려고 현관문을 열기만 하면 바로 두통이 사라졌다. 이 때는 속으로 집에 있을 수 없는 체질인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나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졌다는 것이다. 나가서도 끊임없이 두통에 시달렸다. 그리고 삶의 파국과 함께 두통은 상시적인 것이 되었다. 


 처음 찾은 원인은 치통이었다. 3년간 방치된 충치는 내 머리를 부술 기세였다. 겨우 충치를 제거했지만 극한의 고통이 사라졌을 뿐, 두통은 계속 남아있었다. 그래서 신체 교정을 생각했다. 좌우의 균형이 흐트러져 몸이 절뚝절뚝 걸었고, 두통은 항상 목이 뒤틀리는 느낌과 함께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모든 것의 근본적인 원인이 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일, 어머니가 코 세척을 시도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시원하게 코를 파고 싶었던 내 호기심이 아니었다면 나는 평생 이 원인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무언가 집중하다보면 손으로 코를 판다. 그런데, 나중에는 코 파기에만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거의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코를 후비고 긁어내면서 그 때마다 쾌감을 느끼는 내 모습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손은 너무 더러워지고, 긁어낸 코 분비물을 보는 것도 유쾌하지 않다. 또, 코 내부 점막에 얼마나 많은 스크래치가 있을지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코 세척 도구를 보았을 때, 코 파기 전문 도구라고 생각했다. 


 코를 세척하니 시원했다. 하지만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어느 날은 분비물이 많이 나오면서 성취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코 내부의 노폐물을 청소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세척된 코에서 나온 이물질을 보면서 얼마나 많이 코 세척을 할지 결정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코를 세척하지 않게 되고 2~3일 한 번 꼴로 코를 세척하게 되었다. 즉, 코가 막히는 느낌을 받을 때 코를 세척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코가 막혔을 때, 세척하니 기분이 상쾌해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그런데 코 세척을 아무리 많이 해도 코 속에 무엇인가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또, 어느 날은 코 세척용 식염수가 코 속으로 진입하기 힘들 정도로 꽉 막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날은 반드시라고 할 만큼 두통이 몰려온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코가 막히면 두통이 온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이 때까지만 해도, 코는 두통의 여러 원인 중 하나였다. 코도 풀어야 하고, 목과 체형도 교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봄이 되자 황사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당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업무에, 집안의 이사, 검찰의 조사까지 받으면서 스트레스가 폭발했다. 그리고 코가 막혀서 뚫리질 않았다. 아무리 코 세척을 해도 코는 풀리지 않았다. 끊임없이 두통에 시달리고 잠을 자다가 헉헉대면서 깨기 일쑤였다. 


 코 세척을 아무리 해도 효과가 없었다. 코 속에 철사를 집어넣어 큼지막하게 걸려있는 노폐물을 긁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면 코를 뜯어버리고 싶었다. 역시, 인터넷과 책을 뒤져보면서 방법을 찾는 와중에 코 세척으로 제거되지 않는 노폐물이 실은 코딱지가 아니라 비갑개라는 내 몸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인체의 조직에서 성기와 코가 바로 피를 빨아들여 부풀어 오르는 조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즉, 사람은 긴장하거나 흥분하면 코가 부풀어 오르면서 콧구멍이 줄어들어 호흡이 빨라진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다가 어느 순간 내 코 속의 제거되지 않는 그 노폐물은 내 마음 상태를 나타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즉, 책상에 편안하게 앉아있지만 실은 내 마음은 이미 조급함과 욕망과 스트레스로 충만할 때, 내 비갑개는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야동을 볼 때, 유난히 코 속이 잘 부풀었던 것 같다. 


 이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코가 막히는 것 같으면 코를 세척한다. 그래도 코가 막혀 있으면 마음을 다스린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별 것 없었다. 그냥 코 속에서 힘을 빼는 느낌 정도였다. 스트레스를 느끼나, 조급함을 느끼나, 무언가에 흥분해 있는가 생각해보면 바로 내 마음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마음을 돌려서 코에 힘을 빼는 느낌을 연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코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런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코를 풀거나 손으로 긁어내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질문이다. 물론, 코를 풀면 코 속의 노폐물을 배출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코의 비갑개도 충혈되어 부풀어 오른다. 심한 경우엔 코를 심하게 풀었을 때, 코피가 나는 경우도 있다. 코에 가해지는 혈압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를 풀고 나면 잠시 시원해졌다가 다시 코막힘이 강해진다. 내 몸의 일부인 비갑개가 코 속의 노폐물로 느껴져 이를 배출하려고 더 심하게 코를 풀지만 그럴 수록 코는 심하게 막힌다. 손으로 긁어내는 경우는 손가락으로 배출할 수 있는 영역이 제한적이라 의미가 없고, 코 내부를 손톱으로 긁을 때마다 미세한 상처가 나서 해당 부위가 헐거나 부풀어 오르게 된다. 따라서 코 세척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코를 여는 방법을 깨닫고 매순간 코를 개방하기 위해 노력하니, 일상의 두통도 전부 사라졌다. 그래서 일상에서 그저 살짝 두통이 느껴지거나, 졸리거나, 정신이 맑지 않을 때, 코 세척을 하면서 코를 열어보았다. 그런데 전부 효과가 너무 좋았다. 두통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정신은 맑아지며 졸음은 물러난다. 이제껏 체형이나 대사질환 등이 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깔끔하게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심지어 목의 통증도 코 세척을 하고 코를 열면 사라졌다. 게다가 날마다 널뛰는 변덕스러운 컨디션도 일정하게 좋아졌다. 이 모든 증세의 원인이 무호흡이었던 것이다. 


 체감하기로는 코가 막힌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2~3일에 한 번 정도였다. 쌓이고 쌓이다가 꽉 막히는 느낌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일상에서 5~6시간에 한 번씩 매순간 코가 막히고 호흡이 부족해지고 있었다. 단지, 그것을 내가 몰랐을 뿐이었다. 내 경우에는 비염이나 코에 대한 대단한 증세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가 자연스럽게 막혔고, 막힌 코로 인하여 언제 두통이 올지 몰라서 살얼음판 같은 매일을 보내야 했다. 모르긴 몰라도 코가 막힌지도 모르고 두통과 스트레스, 컨디션 난조로 고생하는 사람이 상당할 것이다.


 내가 경험한 것이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원인모를 두통과 컨디션 난조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한 번 코 세척이나 코 열기를 시도해볼 가치는 있을 것 같다. 

수면무호흡이 아니라 그냥 무호흡일지도 모른다.


 이번에 이야기 하려는 것은 내가 경험한 수면무호흡이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관찰하거나 연구한 바가 없으므로 이 모든 이야기는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담으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하지불안 증후군이 피곤한 가운데 불편한 감각으로 잠을 재우지 않는다면 수면무호흡은 잠의 질을 현저하게 떨어뜨린다. 수면무호흡이 경미하다면 잠을 자도 이상하게 피로가 안 풀리는 수준에 불과하겠지만, 내 경우처럼 심해지면 잠을 자는 것이 임사체험에 가까워진다. 그냥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악몽에 시달리아가 죽었다 깨어나는 기분으로 일어난다. 거기에 그 날 하루종이 두통이 따라오는 것은 덤이다.


 슬프지만 이 증세가 수면무호흡이라고 의심하게 된 것도 이미 4~5년 정도 시달린 다음의 일이었다. 그것도 수면에 관한 책들을 몇 권 읽어보다가 내 증세를 의심한 것에 불과했다. 의심은 했지만 확신하진 못했다. 왜냐하면 수면과 상관없는 상황에서도 항상 두통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두통은 항상 목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체감된다. 목과 어깨에 살짝 담이 걸리는 느낌을 받으면 1~2시간 내에 반드시 두통이 올라오고, 그 두통은 하루 종일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거북목이나 자세가 원인일 것이라고 보고 자세 교정에 힘쓰기도 했다. 그러다가 엉뚱한 곳에서 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냈다. 그것은 코였다.


 원래, 집안이 유전적으로 코가 별로 좋지 않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때부터 코를 쓰지 못해서 입으로 숨을 쉬었다. 내 경우도 초등학교 때 중증의 축농증이 발병해 입으로 숨을 쉬어야 했다. 그 때는 혼자서 코에 쌓인 농을 입으로 뱉는 법을 깨달아서 문제를 해결했었다. 그 뒤로 코가 종종 많이 쌓이긴 했지만 입으로 뱉고 손가락으로 코를 파면 생활에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코에 관한 것을 잊고 산지 오래되었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코 상태가 너무 악화되어, 식염수로 코를 세척하게 되었는데, 그것을 보고 나도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코를 깔끔하게 청소하면 시원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코를 통해서 온갖 이물질이 나올 때면 시원한 배설의 쾌감을 느꼈다. 몸도 마음도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물론, 코를 세척이 귀찮았기 때문에 코가 꽉 막혔을 때만 세척했다. 일주일에 1~2번 정도 코를 세척했고, 그냥 그 순간 시원해지는 감각만 즐겼다. 


 수면무호흡으로 잠에서 깨어 헐떡대던 순간, 혹시나 코가 막힌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코를 세척해봤다. 놀랍게도 상태가 호전되어 꽤나 숙면을 할 수 있었다. 실은, 이 때, 코가 막혔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고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도한 것이다. 그런데 코를 세척하고 나니 호흡이 훨씬 쉬워졌다. 내 스스로 코가 막힌 것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일주일에 1~2번 하던 코 세척을 매일 하기 시작했다. 하면 할수록 코 세척 이후 컨디션이 급격히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내 증세가 진행되는 상황을 열심히 관찰해보니 깨닫는 바가 있었다. 코는 수시로 막히지만 내 스스로 코가 막혔는지 잘 모른다. 코가 막히고 호흡이 힘들어지면 거기에 맞춰 몸의 활동도 축소되고 생각도 축소되었다. 이 때의 느낌은 몰입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오래 지나면 산소 부족과 함께, 두통이 밀려온다. 비록 손으로 코를 파느라 정신 없지만 딱히 코가 막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호흡이 막힌 상태 그대로 계속 생활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두통이 올 때쯤이면 스트레스로 어깨도 굳어버리고 목도 뻐근해진다. 이런 사실을 파악하고 의식적으로 코를 세척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면 갑자기 정신이 맑아지고, 목이 풀리며, 두통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수면무호흡이 아니라 일상 무호흡이었던 것이다. 


 그 동안 거북목이나 바르지 못한 자세 때문에 두통이 온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은 일상에서 계속 무호흡 상태였기 때문에 두통이 오고 목이 뻐근해졌던 것이다. 목의 아픔도 코 세척과 함께 같이 사라졌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나는 20년간 나를 괴롭혔던 지병을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이것저것 찾아보고 시도를 해보았다. 그리고 몇 가지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방법은 코 세척과 코 속 이완이었다. 코 세척은 코 속의 이물질을 제거해준다. 농이 찬 것이나 이물질 들을 쓸어 내려 준다. 보통, 이물질만 제거해줘도 호흡이 많이 편해진다. 하지만 종종 아무리 코 세척을 해도 코가 막혀있는 경우가 있다. 이는 코 속의 비갑개가 부풀어 오르거나 점막이 부풀어 오른 것이다. 그러면 왜 부풀었을까? 흥분 때문이었다.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내린 결론이므로 과학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단지, 여자 친구한테 흥분할 때, 술을 마셨을 때, 거의 반드시라고 할 만큼 두통이 발생했기 때문에 그렇게 추론할 수 있었다. 즉, 코가 막힌 것은 스트레스나 흥분으로 코에 혈류가 모여 코 속이 부풀어 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코를 세척하고 나서도 코가 막혀있으면 마음을 달랬다. 뭐에 흥분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코 속에 힘이 들어간 부분에서 힘을 빼려고 시도했다. 다행히도 코 속은 매우 쉽게 이완되었고 호흡은 바로바로 좋아졌다. 조금 익숙해지니 이제는 코를 세척하면서 동시에 이완이 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렇게 20년간 나를 괴롭히던 지병을 극복하게 되었다. 더 이상 일상의 두통도 없고, 수면무호흡도 없어졌다. 물론, 잦은 코 세척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긴 하지만 충분히 만족한다.


 원래는 수면무호흡이라는 질병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는데, 겪어보니 내 경우는 일상의 무호흡이었다. 그리고 그 무호흡은 너무나 내 삶을 좌지우지 했다. 무호흡에 시달릴 때에 내 일상은 조울증 그 자체였다. 어느 날은 불안하고, 두통으로 고생하고, 어느 날은 너무 밝아졌다가 이유 없이 다시 우울해진다. 그런데 무호흡이 없어지니 기분과 정서가 차분해졌다. 내 정신이 맑은지 흐린지도 몰랐는데, 이제 코 세척을 하고 나면 정신은 확연히 맑아진다. 


 수면무호흡, 코골이, 비염 등으로 고생한다면 반드시 코 세척과 코 이완을 연습해보자. 별로 어렵지 않고, 부작용도 없다. 유튜브에 검색하면 코 세척 동영상이 수없이 많이 나타난다. 별 다른 증세를 느끼지 않더라도 시험 삼아 코 세척과 이완을 해보자. 무호흡은 자각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왜 내 기분이 매일매일 널뛰기를 하면서 이랬다 저랬다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무호흡이 없어지고 나서야 숨을 잘 못 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그러니 스스로 무호흡에 시달리는지 코 세척을 통해서 실험해보자. 운이 좋으면 자기도 모르는 컨디션 저하나 집중력 저하 등의 원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불안 증후군을 치료하기에 앞서 시도해볼 것 두 가지


 늦은 밤, 눈이 피로로 감기고, 몸은 한없이 늘어져, 침대에 눕는다. 한시라도 곯아떨어질 상황이지만 아쉽게도 불길한 신호가 온다. 그것은 이상한 불편함이다. 자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다리에서 올라오는 불편한 감각은 꿀잠을 허용하지 않는다.


 눕기만 하면 하체에서 발생하는 이 불편한 감각은 초등학교 때부터 간혹 나타났다가 2005년부터는 거의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2017년에는 불편한 감각이 너무 강해져서 침대에 누울 때마다 짜증과 분노를 유발하게 되었다.


 이 불편한 감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통은 아니다. 찌르는 것 같은 느낌도 없고, 욱신거리지도 않는다. 그저 불편하기만 하다. 답답함에 가깝다. 좀이 쑤시는 느낌이고 나가서 뛰어야할 것 같다. 그렇지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운동을 하면 조금 시원해지고 답답함이 풀리는 것 같다가도 다시 누우면 또 그 답답한 불편한 감각이 올라온다. 이번엔 다른 부위다. 


 주먹으로 불편한 감각이 있는 부위를 치면, 치는 순간은 시원한 느낌이 들지만 바로 다시 불편한 감각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그저 잠깐의 시원함을 위하여 불편한 부위를 밤새 두드리기 일쑤다. 그러다 피곤함과 절망과 울분에 북받쳐 해당 부위를 멍이 들 정도로 심하게 때린다. 차라리 그 부위를 때려 부수고 싶다. 하지만 불편한 감각은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등 이내 다른 부위로 이동해서 다시 그 존재감을 강렬하게 어필한다. 


 이런 증세를 병원에서 호소해도 의사들은 속시원하게 병명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에는 ‘성장통’이므로 참으라고 들었다. 또, 나이를 먹고 가니 스트레스를 줄이고, 담배를 끊고, 술을 마시지 말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증세를 설명하는 단어를 인터넷을 뒤져 찾아내었다. 그것이 ‘하지불안 증후군’이다. 알고 보니 그 동안 처방이 없다가 그 시기 즈음에 새로운 병명이 등록된 것이었다.


 하지불안 증후군은 증후군으로 즉, 증세를 알 뿐, 그 원인을 명확하게 찾아내지 못한 증세들의 무리다. 그래서 명확한 치료법이 없다. 의학 관련 내용을 찾아서 해당 처방을 찾아보니, 의사들의 해법은 불편한 감각을 줄여주는 약이었다. 도파민제, 항경련제, 아편계 약물 등이 거론되어 있었고 꽤 오랜 기간 먹어야했다. 그리고 약물의 목적은 완치가 아니라 불편한 감각을 줄여주는 것 정도였다. 재수가 없으면 평생을 먹어야 할지도 몰랐다. 게다가 진료하는 시간과 진료비 그리고 약값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차라리 혼자 방법을 찾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에서 밀려오는 답답함과 짜증으로 다리를 부술 듯이 때리다가 참지 못하고 인터넷을 뒤졌다. 마침, 철분의 결핍으로 하지불안 증후군이 생기는 사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때는 피로, 불면, 다리의 불편한 감각으로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철분 결핍에 전해질을 떠올렸고, 전해질이므로 스포츠 음료를 떠올렸다. 아님 말고, 밑져봐야 본전이며, 어차피 잠들기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편의점에 나가 게토레이, 포카리 스웨트 같은 스포츠 음료를 마셨다. 그리고 즉시, 모든 불편한 감각이 사라지는 치유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 뒤로 집 냉장고에 항상 스포츠 음료를 구비해두고 매일 자기 전에 의무적으로 마셨다. 하지만 이 스포츠 음료는 효과가 있을 때도 있지만 없을 때도 많았다. 그런 날은 스포츠 음료 1리터를 마셔도 효과를 보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 이불을 덮고 자기가 불편하여 다리를 밖으로 빼고 자다가 이불을 포개서 쌓아올린 위에 다리를 올리고 잤다. 그리고 그 며칠 놀랍게도 하지불안 증후군에 시달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런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지만 어느 날 다리에서 불편한 감각이 올라왔을 때 어째서인지 다리를 올리면 나아질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대로 했더니 바로 불편한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처음엔 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워서 두 발을 죽 뻗어 포개놓은 이불 위에 올려놓았지만, 나중에는 무릎 아래에 폼롤러나 베개 같은 받쳐 넣었다. 폼롤러처럼 높고 딱딱한 것은 다음 날  무릎이 꽤 아파왔기 때문에, 베개 같이 부드럽고 적당히 낮은 것을 무릎 아래에 넣으면 하지불안 증후군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두 다리를 전부 올려놓을 필요도 없다. 그저 불편한 감각이 올라오는 다리의 무릎 아래에 아래의 사진처럼 받쳐놓기만 하면 된다. 




 무릎 아래에 베개를 받쳐놓는 것만으로도 모든 하지불안 증후군이 사라졌다. 물론, 자다보면 뒤척이기도 하고 어느새 무릎 아래에 받쳐놓은 베개를 침대밖으로 밀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잠은 잘 온다. 그리고 중간에 깨면 다시 베개를 받치고 자면 된다. 여전히 불편하고 답답한 감각을 느끼고 있지만 이 방법을 발견한 이후로 더 이상 하지불안 증후군 때문에 잠에 들지 못하는 일은 없어졌다.


 효과가 나타나는 빈도를 보면, 스포츠 음료는 1주일에 한 번 정도 효과를 보고, 무릎 아래에 베개를 받치는 것은 항상 효과가 있다.  그러면 스포츠 음료를 마실 이유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스포츠 음료로 효과를 본 적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는 내 몸에 전해질이 부족하고 어느 정도 보충되어야 한다는 신호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스포츠 음료를 마셔주고 있다.


 내 자신이 의사를 찾아가 ‘하지불안 증후군’이라는 확진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러니 어쩌면 내 증세는 ‘하지불안 증후군’이 아닐지도 모른다. 또, 내 스스로 왜 상황이 나아졌는지 이유를 모른다. 어쩌면 내가 제시한 방법이 다른 사람에게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완치를 장담하지도 않고, 그저 불편한 감각을 줄여주는 약물을 기약 없이 먹기 보다는 천원을 투자해서 스포츠 음료 1캔을 마셔보고 무릎 아래에 베개를 받쳐보면 어떨까?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을 것 같다. 


수면 개인사를 쓰면서 불면증과 올빼미 생활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이 기적과 같은 일의 원인이 무엇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엄밀히 말하면 내 속에서 원인이 이것일 것이라고 추상적으로 생각하던 것이 수면 개인사를 쓰면서 구체화되고 있는 것 같다.

 

이 급작스러운 개선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은 내가 밤의 시간과 수면에 대해서 갖고 있는 어떤 모델의 변화였다.

 

원래의 모델은 이렇다.


일단, 밤의 시간에 대한 나의 모델은 아래와 같다.  


밤의 시간은 온전하게 나만의 시간으로 타인의 간섭이나 방해 없이 스스로에게 충실하게 보낼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시간이다. 그래서 하루 중 가장 중요하고 만족스러운 활동은 밤에 이루어지고 낮의 활동은 그저 부과된 의무 같은 것으로 짐에 불과하다. 내 삶의 핵심은 밤에 이루어지므로 낮에는 대충 활동하고 밤에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수면에 대한 나의 모델이다. 


수면이란 것은 그저 배터리가 방전되듯이 꺼지는 것이고 수면은 고갈된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은 나에게 수면은 시간 낭비처럼 느껴지지만 잠을 자지 않고 버틸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잔다. 하지만 수면 시간이 부족하면 신체의 자연스러운 적응으로 더 깊이 푹 잠들기 때문에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할수록 수면의 질이 높아져 이득이다.


수면 개인사를 쓰면서 평생의 수면과의 관계를 생각해보기 전까지는 나에게 이러한 모델이 작동하고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 게다가 불면증이 두통이나 체증, 스트레스, 생활습관 등으로 발생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모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덕분에 이 모델은 그 동안 아무런 검증 없이 자연스럽게 내 속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수면보다 시급하게 해결해야 했던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면서 하나둘 삶의 방향성과 기준을 세우게 되었고 덕분에 혼란스럽던 문제들이 가라앉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수면의 문제가 실체를 드러냈고 위의 모델은 결국 하나씩 깨지고 있었다.

 

밤의 시간이 나의 시간이라는 생각은 직장이나 학생들에게는 그럴 수 있지만 프리랜서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이제는 깨어있는 시간이 전부 소중하고 나의 시간이다. 나이가 들어서 주위에 함부로 간섭해 올 사람도 없고 주위가 시끄러우면 귀마개를 하면 되니 더 이상 밤에만 자유를 누릴 이유는 없게 되었다.

 

두통과 체증이라는 숙원이 해결되면서 삶의 스트레스가 내 스스로 확연하게 느낄 정도로 내려갔다. 그리고 고통이 사라지니 짜증도 줄었다. 나의 패턴상, 고통과 짜증은 그것을 잊을 수 있게 해주는 단순하고 강렬한 자극에 몰두하게 하는데, 금연으로 식탐이 생긴 것 말고는 단순하고 강렬한 자극에 대한 욕구 자체는 줄어들고 있었다. 자극적인 게시판 글이나 정치적 논쟁을 보는 것, 영화나 드라마를 밤새 시청하는 것과 헐벗은 사람들을 보는 단순하고 말초적인 욕구가 가라앉으면서 어느 순간부터 밤의 시간에는 공부를 하거나, 강의를 듣고 운동을 하는 미치도록 건전한 일만 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조건이 무르익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때, 최후의 조각을 맞춰준 것이 리처드 와이즈먼의 나이트 스쿨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에 대해서는 서평을 다시 쓰겠지만 경험적으로 확인해볼 수 있었던 내용이 무척 많아서 정말 쉽고 재미있게 단숨에 읽었다. 자주 낮잠을 자서 공부에 큰 효과를 보았던 나의 경험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한 명쾌한 설명도 있고, 고등학교 때 잠을 자지 않고 버텼을 때 느꼈던 수면 부족의 파괴적 위험에 대한 설명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덕분에 잠을 안 자는 것이 얼마나 큰 손해를 안고 사는 것인지 납득해버렸다. 이 납득으로 수면에 대한 나의 모델이 완전히 깨졌다.

 

불면증이 두통이나 체증, 스트레스, 생활습관 때문에 발생했다고 생각해서 불면증을 치료할 방법을 고민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잠을 못자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을 리는 없다. 당연히, 잠을 못자는 것이 지옥이었다. 단지 그 원인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불면증에 괴로워할 때는 꿀잠을 애타게 원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는 기존의 모델로 돌아오곤 했다. 결국, 더 이상 각성 상태로 있을 수 없을 때야 잠을 시도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리처드 와이즈먼의 나이트 스쿨을 읽으면서 그 동안 내 속에 있던 중2 시절 읽은 3시간 수면법의 논리가 처음으로 깨지고 수면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명확하게 확립되면서 마지막 조각을 맞춘 것이다.

 

이 모든 일을 종합하여 생각해보면, 현재의 개선된 수면상태는 일시적이다. 수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깨졌지만 현재의 낮아진 스트레스와 고통이 개선된 수면상태의 한 축이기도 하다. 이는 지병의 개선도 있지만 현재 일을 쉬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일을 하면 당연히 스트레스와 고통이 다시 밀려올 것이고 그러한 고통에 대한 회피와 일을 한 자신에 대한 보삼심리로 다시 밤의 시간을 열심히 쓰고자 하는 욕구가 생길 것이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다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잠을 자지 않고 놀려고 할 것이다. 또한, 일을 많이 벌리는 본인의 성격상 밤에 일하는 것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불면증을 해결하려고 시도한 것은 불면증이 단지 귀찮고 그 순간 고통스럽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면이 개선된 지금은 개선된 수면 상태의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을 경험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잠을 못자는 삶은 삶아지고 있는 개구리의 처지와 같은 지옥이었다. 마냥 지속되는 고통과 피로, 인내심 저하로 삶이 비틀리고 잘못된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어도 이를 인지하기도 어렵고 저항하기 어려운 그런 지옥이다. 당연히 돌아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항상 여유로운 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마 다시 수면이 박탈된 삶으로 돌아가게 하는 힘들이 우리 주위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추어야 마음이 놓이리라. 그리고 그 시작은 나의 수면 습관을 개선하게 해줬던 최후의 조각인 리처드 와이즈먼나이트 스쿨을 씹어 먹는 것으로 해보려고 한다


몸무게가 세 자리 수를 넘어가기 시작하면 무릎이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기본적으로 한 끼 식사로 6~7천원짜리 시장피자를 먹어왔지만 세 자리수를 넘지 않던 내 몸무게는 담배를 끊으면서 늘어난 군것질에 세 자리수를 넘기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 몸무게를 줄이지 않으면 무릎이 나가고, 고혈압이 치솟아 성질머리가 나빠질 것이고, 무거운 몸 때문에 호흡 하는 것도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건강검진에서도 대사질환 증후군이 있으니 감량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권고해왔다. 이런 모든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몸무게를 대학시절의 몸무게로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현재로부터 20을 감량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다이어트를 아무나 하나 내 스스로를 잘 아는데 무턱대고 절식하기 시작하면 그 요요증상으로 몸무게가 200을 뚫고 올라갈지 모른다. 그리고 다이어트를 열심히 할 정도로 의지력이 세지 않다. 운동은 좋아하지만 운동 후 피자 한판을 먹는 것은 더더욱 좋아하기 때문에 운동만으로 살 뺀다는 생각은 이미 접었다. 존 다이어트 같은 책을 열심히 읽어봤는데 이건 뭐 영양사 공부를 하라는 이야기로 보였다. 인생을 전부 다이어트에 갈아 넣을 각오라면 이런 방법을 실천해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다이어트 관련 책들은 무척 많은데 각종 다이어트 방법들을 읽어보니 이 방법이라는 것이 오히려 문제를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적절한 적응의 기제가 있다면 사람은 그에 맞는 삶의 형태를 보이는 법이다. , 지금보다 20줄어들은 몸무게로 사는 것이 유리한 환경에 있고, 그에 맞는 생활습관과 삶의 양태를 구축하면 자연스럽게 살은 빠지고 정신과 육체는 가장 조화로운 형태를 이룰 것이다. 따라서 살을 빼려면 그러한 상황을 만들고 생활로 고정시켜야 한다. 그래서 다양한 삶을 모형을 생각해보다가 좀 더 단순한 질문에 도달했다. 그 질문은 , 나는 필요 이상 먹는가?” 였다. 삶의 모형을 구축할 필요 없이 딱 필요한 만큼만 먹으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갑자기 이것이 궁금해졌다.

 

다이어트 방법을 고민하면서 여전히 피자 한판을 한 끼 식사로 먹고 있던 삶에서 어느 순간 불면증과 올빼미 생활이 원인불명으로 갑자기 개선되어 버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조화로운 수면을 실천하게 되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야식이 중단되었다. 종종 어떤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해당 문제의 실체가 보이는 경우가 있다. 내 경우에는 야식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야식을 줄여야 한다고 말할 때,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야식이 나의 정상적인 3끼니 중 한 끼니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면증이나 수면관련 이슈를 경험해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잠이 안 올 때는 무언가를 먹어야 그나마 잠을 자기 쉽다. 그래서 나에게 야식은 하루 세끼 먹는 식사로서 당연히 주어진 정당한 식사였고, 그것을 먹지 않는다면 기아에 허덕이게 되고, 잠은 오지 않으며, 정당한 먹을 권리마저 빼앗긴 분노까지 솓구치니 잠을 잘 수 없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그 야식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에 대한 분노도 아쉬움도 허기도 같이 없어져 버렸다.

 

갑자기 사라진 야식은 내가 왜 필요 이상으로 먹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야식은 스트레스와 고통의 반작용이었다. 잠이 와야할 시점에 잠이 오지 않으면 짜증이 올라오고 그 짜증을 벗기 위하여 잠을 자야한다는 핑계로 공격적으로 먹곤 하였다. 한 번 이와 같이 생각이 고정되니 그동안의 온갖 연쇄반응이 보였다. 공부하다가 폭식하고, 다른 사람과 갈등이 있을 때 폭식하고, 잠이 안와서 폭식하고, 문제가 안 풀려서 폭식하고, 일이 생각대로 안 풀려서 폭식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속이 뒤집어지는 두통과 체증 외의 모든 고통에는 항상 식탐이 따랐다. 심지어 두통과 체증도 폭식이 너무 심해서 더 심해진 것이다.


그럼 나는 왜 폭식을 했는가?

 

짜증은 고통이다. 그리고 고통을 마주 보는 것이 싫어 외면하기 위해서 폭식을 했다. 먹을 때는 그 단맛에 주의가 집중되고 쾌락이 따르니 고통과 고통을 일으킨 상황과 자책감 등을 잠시 잊고 거기에 주의를 집중할 수 있었다. 고통이 쉽게 사라질리 없으니 당연히 배가 불러서 정신이 혼미해질 때까지 먹게 되었던 것 같다. 이렇게 간단한 해결책은 쉽게 남용된다. 사소한 짜증이나 귀찮음을 마주치게 되어도 일단 먹었다.

 

고통을 감내하기 싫고 외면하고 싶어서 자극적인 것으로 정신을 돌리는 행동 패턴을 내 안에서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실 이 패턴은 나의 삶의 핵심이었다. 괴로운 것을 잊기 위하여 다른 것에 몰두하는 이런 패턴은 지나친 몰입으로 나타났고 가끔은 성공적인 결과를 안겨주기도 하지만 대부분 나를 궁지로 몰아넣고 상황을 악화시켰다. 그리고 이 패턴을 발견하고 의식하면서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감내하고 나아가 해결하려고 시도하면서 내 삶은 극적인 반전을 이루어 상승무드를 타기 시작했다. 덕분에 고통을 직시하고 피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야식이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스트레스와 고통의 반작용이었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왔다.

 

잠을 자지 못할 때마다 그 순간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낮에 활동할 때는 별로 고통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살짝 피곤하다. 힘들다. 정도였다. 그래서 불면증의 개선은 단지 귀찮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수면이 개선되고 나니 그동안 받고 있었던 고통이 상당한 수준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미묘한 스트레스를 거의 먹는 것으로 풀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평소에 고통을 항상 직시하고 이를 정면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하는데, 수면 난조로 인한 고통은 피로와 인내심 저하의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하루 종일 영향력을 행사하니 단순히 컨디션이 나쁘다고 생각했을 뿐 따로 고통으로 보진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성격의 고통을 직시한다고 해도 이를 정면으로 극복하기는 거의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결국, 고통에 대한 보상심리로 먹는 다는 것을 알았어도 수면의 문제를 개선할 수 없다면 지속적인 고통과 낮아진 인내심의 문제로 먹지 않고 버틸 수는 없었을 것 같다.  

 

그 동안 수면의 문제를 단순히 잠을 못자게 해서 피곤하게 만든다는 수준으로 추상적으로 생각했다. 수면을 개선해도 밤에 잠을 못자는 고통이 해결되겠지 수준이었다. 하지만 수면 습관이 개선되어 보니, 그 정도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전의 삶은 발이 푹푹 빠지는 질척질척한 진창을 걷는 것과 같다면 이후의 삶은 산뜻하게 포장된 아스팔트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이다. 정신은 맑아졌고 하루하루가 상쾌하다. 기억력과 집중력이 좋아지는게 느껴진다. 표정은 산뜻해지고 세상은 아름답다. 하지만 수면의 질이 개선되기 이전의 삶은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미세한 스트레스와 고통 짜증이 상존하고 있었고, 이러한 고통을 잊기 위해서 식탐으로 더한 고통을 자초하고 있는 삶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동으로 다이어트가 되고 있다. 


이전으로 돌아가기 싫다. 하지만 원인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지금은 일을 쉬고 있고 다른 스트레스를 놓아버린 상황이기 때문에 개선된 수면의 상태가 유지되고 있지만 다시 일을 하고 스트레스에 노출되면서 시간에 쫓긴다면 다시 수면을 둘러싼 환경이 바뀌고 개선된 수면도 계속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지금 개선된 수면을 반석에 올려놓아야 한다. 그 동안 수면의 질을 악화시켰던 원인을 찾고 최고의 잠을 잘 수 있는 방법을 몸에 각인해야만 한다. 그래서 다시 수면을 악화시키는 다양한 상황에 처했을 때 방어가 가능하도록 스스로를 훈련시켜야 한다. 



불면증과 올빼미 생활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이 기적과 같은 일의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단순하고 명쾌한 이유가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 동안 쌓아올린 것들이 조금 많았다. 대부분 두통과 체증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지만 수면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몇 가지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한 번의 실험이 있었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최근 대두된 인지심리학과 불교의 영향력이 국제 심리학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었고, 평소 불교에 대한 호기심이 있던 터라 관련 공부를 하다가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실험을 해본 것이다. 그것은 과연 번뇌가 제거 가능한 것인가? 라는 의문이었다.

 

어떤 욕구나 생각이 우리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어찌 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욕구는 그냥 치밀어 오르는 것이고, 생각은 떠오르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적인 규범이나 윤리에 거슬림이 없다면 하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참으면서 사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이다. 어떤 생각이나 욕구가 일어났을 때 그 생각을 억제하거나 배척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는 없다. 평생을 좋지 않은 생각과 욕구를 누르면서 살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런 것 없이 편하게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한 생각과 욕구를 제거할 수 있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도박 중독자는 도박을 안하는 부작위의 행위를 끊임없이 해야만 도박을 안할 수 있고, 담배나 약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부작위의 행위를 의지라고 부른다. , 우리는 번뇌를 의지로 제어할 수는 있어도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는 할 수 없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번뇌를 해탈한다는 식으로 그러한 생각과 욕구를 완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래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에 이 말이 맞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 내가 절대로 끊지 못할 것이라고 여겨왔던 담배를 불교식으로 해탈해보는 과정을 가져보기로 해보았다. 그 결과 20년 정도 담배를 피웠고 10번 정도 담배를 끊으려고 할 때마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구걸하거나 쓰레기통을 뒤져 꽁초를 찾아본 경험이 있던 내가 담배를 완전히 끊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담배를 피고 싶은 욕구를 전혀 느끼지 않고 있다.


이 실험을 통하여 불교적 방법론이 어느 정도 유효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서 명상을 지속해왔다. 그리고 덕분인지 인생에 많은 유의미한 발전이 있었다. 눈에 뜨이지는 않지만 조금씩 삶이 방향성이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단순한 자극에 대한 욕구도 10초 참을 것을 11초 참는 식으로 조금씩 참을성이 늘어났고, 삶의 여유도 그런 식으로 늘어났다. 시도해 보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운동, 공부, 연구를 모두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내용들이 내 속에 축적되면서 그동안 멈춰있던 삶의 거대한 바퀴가 드디어 작동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내 삶을 나락으로 잡아당기던 검은 충동과 마주치게 되었다. 1년에 한 두 번 씩 밑도 끝도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공포를 느끼고, 스스로의 비루한 모습을 열등감과 함께 떠올리며 이룬 것 없이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만 끼치고 흔적 없이 갈 것이라는 불안과 공포가 마음속에 갑자기 떠올라서 생난리를 치다가 사라지면서 기분을 잡치게 해왔었다. 하지만 이 때는 달랐다. 그 날은 침대에 누워서 갑자기 떠오른 공포와 불안감에 몸을 사시나무 떨 듯이 떠는 것은 똑같았지만 그 날은 공포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냥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이 어째서인지 보였다. 그것은 그냥 죽음에 대한 무한한 규정하기 어려운 공포심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외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심어진 터무니없는 공포가 내 속에 남아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죽으면 편해질 것인데 왜 무서워하는가?”(나는 윤회를 믿지 않는다.)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고, 그 즉시 불안과 공포는 사라져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의 삶은 솔직히 대부분의 공포가 사라지면서, 내 스스로 나를 억누르던 많은 기제들이 날아갔다. 사회에서의 낙오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고, 한 번 사는 인생을 충실하게 후회없이 살고 싶은 욕구만 남았다. 나 혼자 고통을 느끼면서 산다는 피해의식도 사라지고, 지금은 고통이 있었기에 그것을 극복하고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인간적 관계나 관습적 관계에 따라 지고 있던 의무감과 부담도 전부 벗어버리고 일도 그만두었다. 그리고 마지막 개선에 몰두한 결과 올해 초에 25년간의 짐인 두통과 체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 결국, 올해에는 모든 것이 노력하면 성과가 나타나고 급격히 개선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불면증과 올빼미 생활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이 기적과 같은 일이 이러한 삶의 상승무드로 인한 것인가?

 

수면의 개선은 너무 즉각적으로 이루어졌고 약을 복용하거나 식생을 바꾼 적이 없고 항상 하던 일과를 해오던 참이라 이 변화의 근저에 심리적인 변화가 원인일 것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심리적인 부분에서 상승무드의 삶이 나의 자존감을 넓히고 삶을 통제 가능한 것으로 어느 정도 느끼게 해주면서 수면을 개선하는데 일조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동안 각종 개선이 있었음에도 수면의 질은 여전히 좋지 않았었고 지금도 여전히 하지불안증후군(Restless legs syndrome)이 남아서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점을 설명할 수 없었고 바로 직전에 리처드 와이즈먼의 나이트 스쿨을 읽었다는 점도 조금 공교롭게 느껴져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불면증과 올빼미 생활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이 기적과 같은 일의 원인은 무엇이란 말인가? 



오랜 노력 끝에 두통과 체증이 사라지면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불면증이 갑자기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동안 불면증은 그저 이빨이 아파서, 두통과 체증 때문에, 생활습관이 좋지 않아 생겨났다고 생각했었지만 모든 것들을 제거하고 나니 불면증은 그러한 증세로 인하여 부차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증상이었다.

 

두통과 체증을 극복했다고 생각한 그 순간부터 삶의 질은 급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세상이 맑고 투명하게 보여 사물 하나하나의 정묘한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고 세상은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천상 세계에 사는 것 같은 이러한 느낌은 대략 2주일이 지나면서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다시 일상이 되었다. 물론, 이전에 비하면 너무나 소중하고 벅찬 일상이지만 일상은 일상이다. 어느새 통증 없는 삶에 익숙해지고 늘어난 시간을 이용하여 이것저것 하면서 다시 시간이 부족해지는 일상이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이러한 일상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면증이 왔다. 이제껏 불면증의 형태는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었다. 치통을 해결하고 악몽을 퇴치한 이후 불면은 많이 완화되어서 잠에 드는 것은 어려워도 일단 자면 피로를 풀 수 있는 만큼은 잘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일이 있고 약속이 있으면 잠을 자지 못하는 것 때문에 밤을 새고 약속에 나가는 등 피로한 삶이긴 했지만 어찌어찌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찾아온 불면증은 그렇지 않았다. 잠은 잘 수 있지만 한 시간이나 두 시간 만에 깨어나고 그 다음 잠을 잘 수 없었다. 그 동안 실천해온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강렬한 고통도 없고, 악몽도 없지만 절대적인 수면 부족은 나를 서서히 말려버리기 시작했다.

 

불면으로 인한 고통은 이런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잠은 오지 않고 그렇다고 생산적이거나 필요한 일을 할 정신적 에너지는 없다더 슬픈 것은 영화나 드라마 게임 등을 즐길 정신적 힘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그저 서서히 말라붙고 모든 것이 우울해진다서서히 고통과 우울함에 잠식된다. 그리고 잠을 희구하게 된다. 불면의 고통을 제대로 묘사하고 싶지만 그냥 힘들고 정신이 하나도 없고, 삶이 힘들다 정도로 밖에 묘사하지 못할 것이다. 겪어보지 않으면 뭐라 설명하기 어렵다. 물론, 개인적으로 두통과 체증이 더 괴롭다고 생각하지만 어떠한 고통이라도 그 순간을 지배하고 있는 고통이 가장 힘들고 괴로운 것이다.

 

자려고 시도할 때마다 찾아오는 다양한 증상은 그 와중에 사람을 더 미치게 했다. 자려고 이불을 덮으면 더워서 몸에서 땀이 나는 끈적끈적한 불쾌한 느낌이 찾아오고, 이불을 벗으면 춥고, 다리에는 하지불안증후군(Restless legs syndrome)이 찾아오고 잡념은 들끓어 올랐다. 이런 증상들은 평소에도 항상 느끼던 증상들이지만 갑자기 유난히 강렬해져서 평정심을 흔들었다. 강렬한 고통도 아니고 마치 약을 올리는 것 같은 불쾌한 감각으로 인한 짜증은 대상 없는 분노를 유발시키면서 나를 괴롭혔다.

 

그런데 이 모든 지옥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갑작스럽게 끝났다. 계기는 불면증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 리처드 와이즈먼의 나이트 스쿨을 읽은 것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평소 리처드 와이즈먼이 글을 가볍게 잘 쓴다고 생각했고 책에 최상의 수면을 위한 모든 것을 개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서 읽어보았는데 그 동안 살면서 수면과 관련된 대부분의 궁금증이 대부분 설명되면서 이해되었고 생각 외로 엄청나게 몰입하여 읽게 되었다. 그런데 직후 바로 불면증이 나았다.

 

나이트 스쿨에서는 최고의 잠을 자는 방법을 소개해주고 있었지만 나는 그 어떤 방법을 실천하기도 전에 그냥 잠을 잘 자기 시작했다. 내 스스로도 어안이 벙벙했다. 아직도 정말 나은 건가 싶다. 게다가 불면증만 나은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저녁 7시부터 정신없이 졸려오기 시작하더니 새벽 4~5시쯤에 깨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년간 바꾸려고 그렇게 노력했고 결국 바꾸지 못했던 25년간의 올빼미 생활이 5일 만에 청산되고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드는 보통 사람들의 수면패턴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평소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나타나던 헛배가 부르거나 정신이 맑지 않다든가 하는 모든 부작용도 흔적없이 사라져 버렸다.

 

수면 개인사를 쓰고 있는 이유는 불면증과 올빼미 생활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이 기적 같은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파악해보려고 쓰는 것이다. 수면클리닉을 다닌 것도 아니고 나이트 스쿨에서 제시하고 있는 방법을 실천한 것도 아닌데 불가능했던 일이 갑자기 가능해지면서 원인 모를 변화에 선후를 따져보기 위하여 수면과 관련된 개인적인 경험을 상기하며 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몇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악몽을 해소하고 난 후에도 여전히 낮과 밤이 바뀌고 종종 밤늦도록 잠이 들지 못하는 나날이지만 체증과 두통의 극복이라는 문제가 더욱 중요했기 때문에 수면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속이 뒤집어지고 머리가 아파오면 그 날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그저 통증이 가라앉을 때까지 5~6시간 동안 걷는 것만이 내가 해볼 수 있는 전부였다. 체증과 두통은 항상 새벽 3~4시가 되어야 가라앉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시간까지 잠을 잘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잠을 자면서 발생하는 통증, 악몽 등의 문제들이 해결된 이후로는 수면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체증이 없고 머리가 지끈거리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매우 소중했기 때문에 맑은 정신에 밤에 잠을 못자면 감사한 마음으로 밤새 이것저것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수면에 관련된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상 생활을 어렵게 하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수면 습관은 밤 3~5시 사이에 잠들어서 정오에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일이 있을 경우에는 일찍 일어나기는 하지만 항상 정신적인 불만족감과 집중력 저하가 있고 헛배가 부르며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 밤에 일찍 자서 충분히 수면을 취하고 일찍 일어나도 반드시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 그래서 항상 정오에 일어나게끔 알람을 맞췄다. 특이한 것은 정오를 넘어서 일어나면 반드시 체증과 두통이 두 배로 밀려온다는 것이었다. 특히, 오후 3~4시에 낮잠을 자거나 그 시간까지 자는 경우가 발생하면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속이 뒤집어지고 오한과 두통에 시달리게 된다. , 잠을 과도하게 자면 하루가 고통스럽고 특정 시간대에 자도 큰 통증과 두통이 밀려오는 현상이 있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서 아무리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자는 삶으로 변화해보려 했지만 결코, 내 몸은 그러한 상황에 맞게 변형되지 않았다. 낮 동안은 깨어 있지만 졸린 상황이니 대부분의 일을 하지 못하고 그냥 커피 마시고 담배 피고 웹서핑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밤이 되어서야 일을 하니 자는 시간은 점점 부족해지고 자기 시간을 전혀 가질 수 없지만 일은 거의 못하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이런 식이니 하루를 쓰는 효율이 극히 나빴다. 이런 상황에 대한 인식 때문에 어떻게든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자는 리듬을 갖추어 보려고 했지만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겪는 증상들은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일의 효율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프리랜서로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길고 긴 시간 동안, 탐색과 연구, 노력 끝에 올해 초 체증과 두통을 완전히 극복하게 되었다. 참 오랜 기간의 노력이 있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명확하게 말하기는 너무 어렵다. 시도해본 것도 많고 그로 인하여 점진적으로 개선된 것도 많았기 때문이다. 심리적이고 육체적인 문제였고 그러한 문제에 대하여 충분히 개선을 시도한 결과 모든 것이 무르익어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러한 시도들은 나의 삶의 중추를 세우기 위한 시도였고 결국 그 중추가 똑바로 서기 시작했다. 이것을 뭐라고 해야할까? 이제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중 수신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느낌이었다.

 

이제 상황은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두통과 체증이 사라지면서 일주일의 대부분의 시간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삶은 의욕적으로 변했고 변화와 발전에 대한 욕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매일매일이 너무 말끔하고 개운하게 느껴진다. 조금만 집중해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두통과 체증이 와서 모든 것을 집어던지고 걷다가 쉬다가 하던 과거에는 하지 못했던 모든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마지막 장애가 내 앞을 가로막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바로 불면증이었다.


대부분의 일이 그렇지만 정말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나면 그 문제보다 간단해 보이던 문제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더 쉽게 느껴졌던 이 문제가 그 전의 문제보다 더 극복하기 힘들고 나를 괴롭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어떠한 종류의 고통이든 그 고통은 우리의 인생을 지배하게 된다.

 

충치를 뽑고 나서 극단적인 통증은 사라졌다. 충치를 뽑은 날 자리에 누우면서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익숙한 고통이 밀려오지 않는 것을 느껴보았다. 정말, 눈물 날 정도로 좋았다. 그리고 반성했다. 2년 전에 이것이 충치라는 것을 알고 이를 해결했으면 사태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흐르지 않았을 것이다. 사소한 방치가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는 점에서 전율이 일었다. 그렇다 이미 인생은 나락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극단적인 고통은 사라졌지만 그 고통이 몸과 마음에 남기고 간 것은 사라지지 않았다대단하지는 않지만 치명적인 후유증이었는데누운 자세가 조금만 불안정하면 숨이 가빠지면서 긴장도가 올라간다몸의 오른쪽 왼쪽으로 모로 누울 경우에도 긴장도가 올라가고 코가 막히는 것 같은 불안감이 생겼다밤마다 필사적으로 고통없는 자세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장하던 버릇이 여전히 남아서 내가 자세를 조금만 바꿔도 그 자세를 매우 불편하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배게 없이 정 자세로 누워서 자는 것이 습관이다. 모로 누워서 잘 수도 없고 그저 정자세로만 자야 한다. 그리고 불면증도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불면증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지쳐서 쓰러져 자는 삶의 패턴이 익숙해서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백수의 삶이 그렇듯이 낮과 밤이 바뀌어도 괜찮았고 이게 불면증인건지 잠자는 시각이 낮으로 결정된 것인지 구별하기도 어려웠다. 오히려 문제는 체증과 두통이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수면에 관련된 가장 중요한 이슈는 바로 악몽이었다.

 

악몽은 그 전부터 계속 있어왔다. 하지만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점점 악몽은 심해졌고 다양한 악몽을 서라운드로 즐기게 되었다. 가장 자주 꾸는 꿈은 검은 개가 나를 쫓아오고 그 개를 피하기 위하여 도망가는데 사막에 발이 빠져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꿈이었다. 깨어나서 생각해보면 기분은 더럽고 숨은 가쁘고 무력감이 드는데다가, 하필이면 개가 쫓아오는 것이어서 개꿈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한번 더 나빠지는 꿈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수면 무호흡으로 호흡이 막히니 내 몸이 도망가는 상황으로 착각하고 그에 맞추어 검은 개에게 쫓기는 꿈을 제공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튼, 이 검은 개는 몇 년간 줄기차게 꿈에서 나타나서 나를 괴롭혔고 나중에는 점점 발전해서 다양한 상황에서 나의 악몽에 거의 대부분 동반하는 악우가 되었다. 그 외에 과거의 잘못했던 부끄러운 기억들, 군대 재입대, 악몽같은 직장에 다시 나가는 꿈 등... 악몽이 너무 많아져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 였다. 그리고 악몽을 겪으면서 사람의 정신구조에 대한 상당히 많은 의문을 품게 되기도 했다. 그 이야기야 여기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므로 넘어가기로 하자.

 

악몽들은 신체적 고통이 현존하고 있을 때는 그냥 그러한 고통에 수반되는 것에 불과했다. , 부차적인 문제들이었다. 하지만 신체적 고통의 문제가 상당수 완화되면서 이 문제는 전면으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삶의 비루함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적의가 누적되면서 악몽을 꿀 때는 생각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고 기분은 끔찍했다. 특히, 체증으로 자주 아픈 두통에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을 악몽들은 넌지시 비추면서 이러한 삶이야말로 나의 몫이라는 듯이 삶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꺾기 위한 최후의 일격을 가하곤 했다. 처음엔 별것 아닌 악몽이 계속 누적이 되고 빈번해지면서 모든 것이 우울하고 암울한 것 같은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당시, 이것저것 책을 읽다가 정신세계사에서 나온 로버트 웨거너의 자각몽, 꿈속에서 꿈을 깨다를 읽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악몽을 직시하고 이 악몽을 껴안거나 물리치는 행동을 꿈속에서 하도록 자기 암시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을 보고 검은 개를 사냥하기로 결심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깨어있을 때 꿈속에서 자주 보는 검은 개를 떠올리면서 한 대 때리는 상상을 지속하고 자기 전에 검은 개를 때려야겠다가 굳게 마음먹고 자는 것이었다. 모든 악몽 중에서 검은 개가 가장 최악의 악몽이었고 항상 동반하는 악몽이었기 때문에 이 검은 개에 대해서 속으로 많이 별렀었다. 책에서 제시한 제일 좋은 방법은 포용하고 흡수하는 것이지만 너무 오랫동안 시달려서 한 대 때리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했다. 간만에 목적이 분명하고 의욕도 충만하고 방법도 명확해서인지 3일 만에 검은 개에게 주먹을 날릴 수 있었다. 주먹을 날림과 동시에 잠에서 깨어났기 때문에 검은 개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손맛을 강하게 느꼈고 때려서 쫓아냈다는 확신이 섰다. 그 일이 있고나서 지금까지 검은 개의 악몽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당시 제대로 쫓아낸 것 같다.

 

악몽을 쫓으면서 로버트 웨거너의 자각몽, 꿈속에서 꿈을 깨다의 주제인 자각몽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자각몽을 통한 수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자각몽의 경험담도 흥미로웠고 시도해보고 싶지만 그러한 흥미로운 순간으로 들어가기 위한 긍정적인 긴장감이 충치가 남겨놓았던 두려움을 상쇄해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비록, 자각몽을 꾸지는 못했지만 자각몽에 들어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잠을 자면, 몸의 자세에서 오는 긴장감, 누울 때마다 느껴지는 심장의 소리와 혈관에서 피가 꿀렁꿀렁 흐르는 감각 등이 자각몽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다는 열망에 의해서 희미해지면서 나의 잠자리는 조금 편안해졌다.


고시에 도전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순전히 재수시절의 기억 때문이었다. 재수생 시절의 마법같은 일이 다시 발생한다면 단 기간에 고시 패스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물론, 이 마법같은 경험은 대학교 공부를 할 때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해 학점은 참혹했지만, 그 때는 청춘의 교우 관계에 힘을 쏟고 각종 행사에 토론에 정신이 없었고 전공 공부에는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대학 시험은 벼락치기로 간단히 넘어가기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차근차근 시간을 들여가면서 대입공부를 하던 때처럼 공부한다면 고시의 수월한 통과가 가능할 것이라고 속단한 것이다.

 

7년을 내리 놀기만 하다가 다시 공부를 하려고 하니 공부가 잘 될 리가 없다. 솔직히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있는 것도 어려웠다. 몸이 공부에 익숙해지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였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 것은 정말 큰 문제였다. 모든 활동을 정지하고 공부에 전력투구하기 시작했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수면에 난조가 왔다. 어차피 다른 활동을 하고 있지 않으니 졸리면 자고 일어나서는 공부하면 되는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묘사해야할까? 졸려서 자려고 누우면 정신이 맑아지고, 잠이 오지 않으니 일어나서 공부하려고 하면 미친 듯이 졸리고 피곤하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다. 누워있어도 고통스럽고 활동을 해도 고통스럽다. 내가 할 수 있는 활동은 오직 강력한 자극으로 정신을 각성시키는 활동만 가능했다. 공부를 하거나 사색을 하거나 책을 읽으려고 하면 너무 피곤하고 눈이 감기며 글은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너무 졸리고 피곤해서 이제 누우면 자겠지 하고 누우면 잠은 오지 않고 이런 저런 생각만 머리를 어지럽힌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이제 시험은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자고 싶었다. 아니 깨어있을 때는 정신이 맑고 잘 때는 푹 쉬고 싶었다. 하지만 오만가지 이유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첫 번째는 소리였다. 눕기만 하면 주위의 소리가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뇌로 쏙쏙 박히는 것만 같아서 계속 신경이 쓰였다. 문 밖에서 소곤거리는 소리, 어디선가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 대로변에서 차량이 이동하는 소리 등 정말 많은 소리가 침범해왔고 나는 그 소리를 감내할 수 없었다. 그 모든 소리에 분노하고 짜증을 내며 소리를 질렀다. 귀마개를 꽂아도 그런 소리는 여전히 너무나 잘 들렸다. 두 번째는 온도였다. 몸이 뜨거운 건지 항상 더워서 땀을 흘리고 그러한 땀이 배는 것을 참지 못하고 일어나게 되었다. 세 번째는 욱신거림이었다. 지금에는 하지불안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확인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해서 원인 불명의 증세가 나를 괴롭힌 것이다. 눕기만 하면 발을 쭉 뻗고 움직이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그 느낌이 신경을 미친 듯이 건드리고 있어 전혀 무시할 수 없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체증이었다. 나는 자주 체했다. 정말 자주 체해서 일주일에 5일은 체해있는 상태였다. 체하면 두통이 밀려오고 속이 뒤집어져서 잠 뿐만 아니라 어떠한 활동도 할 수 없었다. 잠이 들기 전에 체증이 가라앉으면 다행이지만 일단, 체증에 걸려있는 상황에서는 잠을 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지쳐 쓰러질 때가지 걷거나 자극적인 인터넷 세계를 탐방하는 것, 만화책을 보는 것이었다. 그것 말고는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서 체력을 완전히 소모하고 나면 체증이 가라앉고 지쳐 쓰러지면서 잠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이러한 조치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눕기만 하면 누가 머리를 바이스 같은 도구로 조이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어서 꽝꽝 때리는 느낌도 왔다. 그것은 실질적인 통증을 동반했고 정말 무지 아팠다. 이제는 지쳐 쓰러지듯 잠을 자는 것도 만만하지 않게 되었다. 다양한 실험을 해보았는데 일단 베개를 사용하면 머리를 조이는 느낌이 강해졌고, 모로 누워서 잘 수도 없었다. 엎드려 자는 것이 가장 심했기 때문에, 정자세로 누워서 목이 15도 정도 좌우로 기운 상태에서만 잘 수 있었다. 그 자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이제는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엄격한 규칙을 지켜야 잠을 잘 수 있었고, 이러한 규칙은 종종 나를 배반했다.  

 

스트레스가 극심해져서인지 체증은 더 자주 찾아왔다. 이 체증에 대해서는 따로 말해야겠지만 중등 시절부터 자주 겪어온 증세였고 평생의 지병처럼 생각하고 있는 증세였다. 그리고 고시생 시절에야 이 증세의 이름이 체증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 체증은 최근에야 완전히 극복되어서 극복하는데 25년이 걸렸다. 당시, 스트레스가 극심하고 무언가의 균형이 깨졌는지, 체증이 정말 극심해졌다. 평소에는 머리가 아프고 속이 뒤집어지는 정도였다면 이 때 부터는 항상, 오한을 동반하고 몸이 미친듯이 떨리고 고통으로 정신을 하나도 차릴 수 없게 만드니 나중에는 이 체증이 말라리아 같은 학질이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했었다.

 

그러고 누우면 다시 공포스러운 고통이 찾아왔다. 너무 지쳐서 의식을 잃을 때까지 밀어붙여야 가까스로 잠을 잤는데, 일어날 때는 식은땀에 흠뻑 젖어서 고통스러워하며 일어나는게 일상이었다. 잠을 잔 것이 말끔하고 개운한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죽다 살아난 것 같은 기분을 주면서 허우적거리며 일어나서는 그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는 듯이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수면 무호흡증도 심했던 것 같다.

 

당연히, 병원을 찾아가서 이것저것을 하소연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의사들의 말은 한결같이 스트레스를 줄여라.”였다. 물론, 이 모든 증세에 스트레스가 한몫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또 증세로부터 오는 스트레스가 너무 극심했기 때문에 증세를 없애는 것이 우선이어야 했다. 하지만 의사들의 처방은 스트레스 과다였고, 나는 좌절하면서 병원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고시 공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정도로 아프게 되면 아무리 주위 보기가 민망하고 인생에서 낙오하는 것 같아도 내가 살아야 했기에 고시의 포기는 깔끔하게 되었다이 상황을 개선해야겠다는 생각 말고는 어떠한 생각도 할 수 없었고 고시 공부를 포기해서 스트레스를 줄여여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시 공부를 포기했어도 여전히 증세는 계속되었다. 오히려 고시 포기에 따른 우울증까지 겹쳤다. 끊임없이 악몽을 꾸었다. 악몽을 꿀 것을 알아도 자지 않을 수는 없었다. 수면은 어쩔 수 없이 지옥으로 입장하는 것이었지만, 그 지옥도 깨어있는 현실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아귀의 고통이 이런 걸까? 아귀는 먹고 싶은 탐욕에 미쳐있지만 먹을 기회가 거의 없고 가까스로 먹을 것을 구해 먹을 것을 넘길 때 어마어마한 고통을 느낀다. 내가 바로 그러한 느낌이었다. 쉬고 싶고 자고 싶은 열망에 몸부림치지만 잠을 자면 첫 번째로 잠을 잘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미친 듯이 수면에 대한 욕구에 시달렸다. 두 번째로는 잠에 들기 직전까지 반드시 머리를 조이고 때리는 것 같은 고통에 시달렸고, 가까스로 잠을 자면 악몽이 덮쳤다. 그리고 깨어날 때는 전혀 개운하지 않고 죽었다가 살아난 느낌으로 일어났다. 몸은 식은땀으로 젖어서 숨이 부족해 숨을 몰아쉬었고 기분에 끔찍했다.

 

3년을 버티다가 결국 수면제를 받아서 복용해보았다. 이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수면제를 복용했는데, 일단, 잠은 바로 잘 수 있었다. 하지만 1시간 만에 일어났다. 그것은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고통과 함께 잠에서 쫓겨나듯이 일어났다. 처음 겪어본 고통이었던 것 같다. 평소 머리를 조이는 것 같은 고통과 머리를 꽝꽝 때리는 것 같은 고통을 한계가지 밀어붙이면 어떤 고통이 오는지 처음 알았다. 고통을 없앨 수만 있다면 나는 내 머리를 부수어도 좋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머리를 벽에다가 찍었다. 아무런 느낌이 없고 무언가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고통이 가라앉을 때까지 끊임없이 머리를 벽에다가 찍었다. 나는 원래 겁이 많고 소심한 편이라 이런 식의 고통스러운 자해 행동을 매우 싫어하지만 당시는 살고 싶지 않았고 모든 두려움과 걱정은 없었다. 그냥 실행에 옮겼다. 다행히, 고통으로 힘이 없었는지 내 머리가 부서지지도 않았고 고통도 가라앉았다. 이 때의 고통은 지금도 떠올리기만 해도 무섭고 진저리쳐진다.

 

그리고 이 고통을 겪고 나서야 나는 의심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나는 이러한 수면의 장애가 체증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고시에 대한 스트레스, 그리고 평소의 낮과 밤이 바뀐 불규칙한 생활습관이 맞닿아 일어난 증세라고 의심했었다. 체증은 항상 있었고 고시공부를 시작하자마자 너무 갑작스럽게 수면 장애가 왔기 때문에 그렇게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머리를 조이는 통증과 꽝꽝거리는 통증도 그 동일선상에서 왔다고 생각했다그 때 내 스스로가 반쯤은 말 그대로 미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정신병원을 가서 확증하는게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스스로 미치지 않았다고 자위하면서 이 모든 문제를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그래서 통증도 내 자신의 광증의 소산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고시를 포기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건강한 수면 패턴을 다시 찾으면 체증은 어떻게 안되더라도 수면은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그 일환으로 수면제를 처방 받은 것이다(엄밀하게 확인할 정신은 없어서 진짜 수면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가 정신적인 것이었다면 수면제로 인한 그 지독한 고통이 설명되지 않았다. 이 때, 나는 잠시 차분해졌다. 그 동안의 전제를 내려놓고 상황을 둘러보다가 물을 마실 때마다 어금니 쪽이 시려지는 느낌이 갑자기 떠올랐다. 확신이 왔다.

 

치과에서 10년간 교정을 해서 치과에 매우 익숙하면서도 정말 싫어한다. 이빨을 가는 드릴의 소리와 느낌이 이상하고 그 뾰족한 도구들을 보는 것도 싫다. 숱하게 겪었던 치료와 진료도 지겨웠고 교정이 끝나면서 다시는 치과를 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환호했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치과를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날은 그 모든 불쾌감을 무릅쓰고 결연하게 치과에 갔다. 어쩌면 치과를 싫어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동안 충치라는 가능성을 애써 외면해왔던 것이 아닌지, 그래서 그 보다 더 강력한 고통을 겪고 나서야 그 가능성을 떠올린 것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치과 선생님은 한 번 입안을 스윽 보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사랑니가 다섯 조각으로 갈라져 균열이 갔습니다. 고통이 심했을 텐데 빨리 오시지.”

 

그 날 사랑니를 뽑고 집에 돌아오면서 앓던 이를 뽑는 느낌이 무엇인지 정말 확실하게 배웠다.

 

그리고 충치를 뽑자마자 머리를 바이스로 꽉 누르는 통증과 때리는 통증은 사라졌다.

 

하지만 나의 문제는 전부 사라지지 않았다. 극히 일부만 사라졌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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