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심리학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런데 심리학 교과서는 지능에 대해서는 납득할만한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고 당황스럽게도 신경세포에 대한 설명을 가장 먼저 하고 있었다.


과학은 현상을 설명할 때, 그 현상을 더 작은 단위로 쪼개어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즉, 기계를 설명할 때, 이 기계의 부속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제시함으로써 해당 기계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이것을 보통 환원주의라고 부르는데, 당시 기계적인 환원주의적 세계관에 대한 많은 비판이 있었다. 심리학에서 사람의 마음을 신경세포의 활동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것도 이러한 환원주의라고 할 수 있다. 즉, 사람의 마음을 신경세포의 작용으로 환원하여 계산하겠다는 발상이다. 


공학도로써 기계적인 환원주의는 가장 명쾌한 방식이다. 보다 작은 단위로 환원된 단위를 이용하여 수학적 모델을 구축하고 정교한 논리와 실험으로 수학적 모델을 개선하여 현상을 꿰뚫어 이해한다. 그리고 그 수학적 모델을 통하여 해당 현상의 변인을 조절하여 원하는 효과를 얻는다. 이 일련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현상의 본질을 완벽히 통찰하고 그것을 지배한다는 감각을 준다


따라서 당시의 기계적 환원주의에 대한 비판은 과학이 모든 것을 정량화하여 인간을 고깃덩이로 이해하는 식의 그 가치를 훼손하는 것에 대한 인문학적인 저항의 목소리일 뿐 과학적인 분석에서 기계적 환원주의를 배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신경세포를 보면서 처음으로 기계적 환원주의가 가진 한계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건 복잡성의 한였다. 우리는 복잡한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것을 인식하는 방법이 단순한 것으로 쪼개거나, 비슷한 것들은 묶어서 동질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실은 기계적 환원주의의 정체다. 그런데 신경 세포들은 그런 방법을 적용하기 어려워 보였다. 


기체 분자는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상호작용을 하지만 우리는 이를 통계적으로 아니 실은, 그냥 하나로 이해한다. 동질적인 부분들을 하나의 계(system)로 묶어서 판단하고 개별 분자의 행동을 일일이 전부 따지지 않는다. 따질 수도 없고 말이다. 그 때, 몇 가지 지표가 있다. 가령, 온도는 기체분자들의 활동성(운동에너지)를 보여준다. 개별, 분자들은 서로 다른 운동에너지를 가지지만 우리는 그냥 해당 계 전체의 평균 운동에너지로 인식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과학의 성공에서 볼 수 있듯이 현실에서 매우 잘 작동한다.


신경세포들도 기체 분자들처럼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상호작용을 한다. 신경세포 자체들도 서로 비슷한 것들이고 비슷한 행동을 하고 비슷한 작용을 한다. 하지만 기체 분자들의 일부분을 제거해도 그들은 여전히 비슷하게 움직일 테지만, 우리의 대뇌를 열어서 뇌의 한 부분을 떼어내면 심각한 손상으로 죽거나 미쳐버릴 것이다. 신경세포들은 서로 비슷하지만 또, 완전히 달라서 개별 세포들의 고유성이 존재한다. 즉, 개별적으로 하는 역할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체 분자들을 다루듯이 하나의 계로 묶어서 이해하는 방식이 적합하지 않다.


그럼 개별 신경세포들을 일일이 관찰할 것인가? 이건 굉장히 어려워 보였다. 첫 번째로는 너무 많다. 개별 신경세포들은 그저 on/off 하듯이 스위치가 켜지고 꺼지고 하는 것만 있다. 이미 당시에도 이것은 밝혀졌었다. 그리고 이런 것이 셀 수 없이 많이 중첩되어 복잡한 정신적 작용을 일으킨다. 너무 단순한 것들이 복잡하게 얽힌 것이다. 결국, 이런 단순한 것들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해야지 정신이 출현하느냐는 문제로 이어진다. 


하나의 방법이 떠오른다.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약 1000억 개가 넘는 개별 신경세포들의 모든 연결을 추적하는 것이다. 즉, 사람의 모든 신경세포의 연결을 파악하여 지도를 작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경세포는 매순간 연결이 달라진다. 가령, 영어를 학습한다고 하면, 학습을 할 때마다 신경세포의 연결이 이루어지고 강화된다. “body”라는 단어를 익히게 되면 글자의 모양에 대한 정보, “body”가 나타내는 각종 몸의 모양, “body”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음성, “body”라는 말을 했을 때의 내 입의 움직임 등이 신경세포들 간의 연결로 전부 결합된다. 그건 이전에 없었던 연결이다. 새로운 신메뉴 음식을 먹었을 때, 재미있는 TV를 시청했을 때 등등 모든 순간에 신경은 다시 배선된다. 


따라서 죽은 사람의 뇌를 잘라서 그 연결을 일일이 파악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살아있는 사람의 뇌의 배선을 전부 파악하고 이렇게 파악된 사람이 활동하면서 발생하는 신경세포의 변화를 추적해야만 우리의 정신을 신경세포로 환원하여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능할리가 없어 보였다(당시에는 불가능해 보였는데 이후 fMRI가 나타나 부분적으로나마 살아있는 인간의 뇌를 스캔할 수 있게 되면서 뇌과학이 무척 발전하게 되었다.).


대안으로 동물의 뇌를 생각해보았다. 즉, 실험용 동물을 복제해서 수천마리의 클론을 만들고 이들을 각종 환경에서 통제된 실험적 환경에 집어넣어 신경계의 변화를 만들어낸 다음 일일이 뇌를 해부하여 변화를 추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의 무식함과 잔인함 외에도 갈 길이 너무 멀어 보였다. 동물의 내적 동기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뇌의 변화와 피실험자 본인이 자각하는 변화를 같이 이야기함으로써 총체적인 정신작용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가령, 수학문제를 풀면서 뇌의 변화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확인하거나 사랑을 느꼈는지? 불안을 느낀 것인지 단순히 똥이 마려운 것인지 주관적이고 내적인 동기를 일일이 확인해볼 수 있다. 하지만 동물은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실험용 동물들이 뇌 해부로 숱하게 죽어나가도 얻을 수 있는 이해에는 큰 제한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동물의 지성을 연구하는 것도 아니니 더더욱 의미 없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지능이나 인간의 정신을 신경세포로 환원해서 연구하겠다는 발상이 얼마나 어려운 길인지 눈치 챌 수 있었다. 기계론적인 환원론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상황이 온 것이다. 마치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처럼 양자를 관측하려고 하는 행위가 양자의 행동을 왜곡시킨다는 것처럼 뇌의 신경세포 간 연결을 파악하자니 사망한 인간의 뇌가 필요하고 살아있는 인간의 행위를 관측하자니 신경세포 간 연결을 파악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어찌어찌 연구한다고 해도 그 복잡성 때문에 어디까지 파악할 수 있는지 그것도 요원한 상황이었다. 


물론, 장기간 데이터가 축적되고 실험이 진행되면서 결국, 조금씩 상황이 개선될 것이고 어느 순간 인식의 장벽을 돌파하고 뇌를 이해하게 될 수단을 구할지도 모르지만 기계적 환원주의가 그것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 문제에 대하여 반대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on/off를 하는 신경세포와 유사한 것을 이용하여 인간의 정신세계를 구현한다면 바로 그것을 통해서 뇌의 작동원리를 밝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신경세포를 통해서 이 간단한 세포의 작용이라도 무수한 조합을 통해서 인간의 정신세계가 출현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를 현실에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구현하는 것이 수많은 동물의 머리를 해부하고 사람을 관찰하는 것보다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 이 당시는 2000년이어서 지금처럼 많은 발견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근의 연구결과는 잘 모르고 당시의 생각 위주로 작성된 내용이므로 현재와 많이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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