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디펜던스 데이를 본 건 1996년으로 23년 전이지만 지금도 가끔씩 생각나는 영화다. 물론, 재미있어서는 아니다. 뛰어난 영상과 그래픽으로 볼거리가 많은 영화였지만 엉성한 설정과 스토리 때문에 동시에 무척 깨는 영화였다. 그리고 그 깨는 경험이 매우 독특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 영화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1996년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반미감정이 생생하게 살아있던 시절이었다. 대학에 신입생으로 들어가면 선배들은 파릇파릇한 신입생들을 붙잡고 한국 현대사를 가르쳤다. 그리고 그 현대사에서는 미국이 공정한 척을 하면서 어떻게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고 독재정권을 유지시켰는지에 대해서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당시 헐리우드는 이미 식상함의 아이콘이었다. 밑도 끝도 없는 해피엔딩과 남녀의 애정행각, 그리고 은연중 제시되는 미국과 자본주의 진영의 우월주의에 대한 찬양은 늘어난 테이프 마냥 지루하게 반복되었다. 딱히 운동권이 아니더라도 예술가, 평론가, 지식인, 하물며 헐리우드 자신들도 모두 입을 모아 헐리우드식 액션의 꼴사나움과 그것에 대한 대안을 이야기했다. 덕분에 대학가에서 반미 운동은 스스로 세련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까지 참여하던 새로운 세기말적 대안이었다.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를 보기 위해 영화관에 갈 당시의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선배들의 교육과 읽은 책들로 미국에 대한 비판을 많이 듣긴 했지만 솔직히 실감하기에는 너무 큰 이야기였기 때문에 그냥 들려오는 수많은 가능성 중에 하나에 불과했다. 그리고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처음에 매우 흥미진진했다. 항상 외계인의 침공이라고 하면 대충 비행기만한 UFO를 몰고 나타나는 외계인을 상상했던 나에게 외계인들의 압도적인 규모와 화력은 전율적이었고 그 자체로 파격이었다. 더 앞선 과학기술과 능력을 가진 외계인들이 비행기만한 비행접시를 타고 올 것이라는 선입견이 산산이 부서지면서 그 영상에 흠뻑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파격에 정신을 차리고 날것으로 보니 외계인은 너무 강하고 뛰어난데 지구는 너무 약했다. 지구는 멸망하거나 식민지가 될 것 같았다. 핵무기가 사용되었지만 배리어에 막혀 무력화되었다. 인류 최고최악의 화력이 꺾인 셈이다. 영화 중반에 겪는 수많은 재난들은 속절없이 무너지는 지구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희망은 없어 보였다. 속으로는 작은 희망과 반전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도 아무리 생각해도 희망은 없어 보였다. 그 마음의 간극이 긴장감을 낳았고 영화에 몰입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갑자기 컴퓨터 바이러스가 등장했다. 갑자기 확 깼다. 컴퓨터에 감기 바이러스를 살포하면 컴퓨터가 감기에 걸린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오가더니 승인받고 작전이 시도되었다. 갑자기 이야기가 뻔해지기 시작했다. 영화의 설정 상 당연히 그 바이러스 작전이 먹힐 것이다. 속으로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를 연발하기 시작했다. 바이러스가 먹히고, 배리어가 사라지자 노인이 모는 전투기는 가미가제로 적을 들이받아 외계선을 침몰시킨다. 그리고 미국의 대통령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에 외계인을 물리쳤으니 오늘은 미국만의 독립기념일이 아닌 전 세계의 독립기념일이라고 말하는 순간 영화에 대한 몰입은 완전히 깨졌고 그 뒤의 내용은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몰입이 깨졌다고 말한 것은 갑자기 영화가 시시해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순간 생전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 발생해서 더 이상 영화를 볼 수 없었을 뿐이다. 영화에서 미국의 대통령이 “오늘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독립기념일”이라고 말하는 순간 내 마음은 고양되었다. 앞서 가졌던 절망감과 긴장감이 해소되고 전율이 일면서 고양된 것이다. 그런데 동시에 또 다른 마음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그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은 대학에서 너무나 자주 들었던 헐리우드 영화의 목적을 떠올리고 있었다. 헐리우드 영화가 미국 우월주의를 표방하고 미국을 존경하고 동경하게끔 사람들을 세뇌하고 있다는 뜬구름 잡던 이야기가 대통령의 연설 장면에서 갑자기 무척 실감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이야기의 흐름과 상관없이 사족처럼 느껴지는 미국의 독립기념일 운운하는 내용은 무리하게 그 방향으로 사람들을 유도하려는 제작자의 의도를 선명하게 느끼게 해주었기에 더욱 심했다. 갑자기 그 동안 즐겁게 보던 영화가 B급의 싸구려 선전영화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고, 이런 영화에 감동하는 것은 이 영화 제작자의 의도대로 놀아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런 생각을 해도 내 정신은 고양되고 눈에서는 감동의 눈물이 나오고 몸에서는 전율이 일고 있었다. 이건 무슨 현상일까? 몸과 마음이 괴리된 것인가? 의식과 무의식이 괴리된 것인가? 한 번도 이런 일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이 모순된 감정과 모순된 반응 속에서 스스로를 관찰하느라 영화의 후반부는 전혀 보지 못했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스스로의 마음을 관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의식은 확실하게 식었다. 비판적으로 영화를 보고 영화의 의도에 몰입하지 않고 삐딱선을 타면서 해석하기 시작했다. 바이러스는 말도 안되게 유치해 보였고, 가미가제는 쓸데없이 일본식으로 연출해서 군국주의의 망령을 느끼게 해주었다. 특히, 일부러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 사람들을 고양시키고 전율시키고 군중심리에 휩쓸리게 하려는 뻔한 연출이 상세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한편에 있는 마음은 영웅의 희생에 감동하고 전세를 뒤집은 것에 안도하면서 모든 것이 괜찮아지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계속 내 마음을 관찰하면서 내렸던 결론은 의식과 무의식이 따로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알 수 없는 마음의 작용을 전부 무의식의 몫으로 돌렸기 때문에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 기전이 어떻든 간에 그 동안 식상하다고 비난했던 헐리우드식 영화 공식이라는 것이 어떤 실제적 힘이 있어서 내 의식을 거스르고 내 무의식을 컨트롤할만한 힘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내 무의식이라는 것은 헐리우드식 영화 공식같은 것에 조작당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살면서, 종종 내면의 욕구에 시달린다. 뜬금없이 눈앞의 이성에 반해서 운명의 배우자로 생각하고 돈과 시간을 전부 갖다 바치게도 하고, 술, 담배, 게임 등에 몰입하게도 한다. 욕구는 사람을 안달복달시키며 시야를 좁히고 현실을 왜곡한다. 술은 풍류가 되고, 술 없이는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아진다. 담배는 맘속의 공허감을 달래주는 유일한 벗이고 담배가 없다면 답답함이 몰려온다. 우리의 욕구는 상황을 뒤바꾼다. 그 이성을 원하기 때문에 그녀를 신성한 존재로 전환해서 인식해버린다. 술을 원하기 때문에 술을 마셔야하는 상황을 만들고 그 상황을 찬미하게 한다. 담배를 원하기 때문에 담배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유독 담배에 대한 각종 통계자료만 믿을 수 없게 만든다. 그 모든 것이 자발적이고 내 영혼의 어떤 소명으로서 피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마치 운명에 대한 복종처럼 그 욕구에 끌려다닌다. 하지만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는 외계인에 맞서고 상황을 반전시키고 싶어하는 내 욕구를 끌어내었지만 역으로 제작자의 뻔한 의도를 드러냄으로써 의심과 괴리감을 만들어냈다. 마치 사랑스러운 이성을 향해 애정 공세를 했지만 그 이성이 눈앞에서 바람을 피면서 돈과 봉사를 요구하는 꼴이었다. 어떤 이는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휘둘려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모든 사랑의 시련을 극복하리라”라고 말하면서 현실을 왜곡하고 자신을 고양시키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마음이 짜게 식어버릴 것이다. 이 두 경우 모두 스스로 마음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그저 마음가는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마음 둘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각자 자신의 갈 길을 갔다. 여전히 사랑하면서 사랑할 가치가 없다고 동시에 생각하고 그 생각이 유지되어버린 것이다. 덕분에 마음이라는 것이 하나가 아니고 신뢰할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이 마치 영혼의 소명인양 꼭 해야만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마음은 너무 순진해서 누군가에게 놀아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아 버린 것이다.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에 대한 평은 대부분 비슷하다. 뛰어난 그래픽과 영상미를 보여주는 작품이고 몇몇 설정과 노골적인 미국 우월주의로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던 오락용으로 좋은 영화 정도다. 하지만 내게는 어떤 의미에서 인생영화고 다시 볼 가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최고의 명작이다. 지나치게 강력한 영상으로 무의식을 지배했으면서 동시에 지나치게 멍청한 연출로 그것을 깨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대비가 없었다면 의식과 무의식의 서로 다른 반응을 겪어볼 일은 없었을 것이고 내 무의식이 나에게 온전히 소속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조작당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를 처음으로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 경험이었고, 내면의 욕구가 내 영혼의 소명이 아니라는 것을 철저히 자각시켜주어 남은 인생을 피곤하게 만들어 주었던 씁쓸한 경험이었다.

              

덧붙이자면 그 때 영화를 봤던 경험에 대해서 친구들과 이야기해보았지만 그런 전율과 감동을 겪은 사람은 없었다. 그저 모두들 일관되게 영상을 좋았고 재미있었지만 스토리가 별로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나처럼 감동했다는 사람은 없었다. 덕분에 내가 얼마나 쉽게 감동하는지도 잘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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