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머리로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입과 귀로 훈련해야할 기술이라는 관점에 서서 영어 교재들을 살펴보면 모두 하나같이 발음을 먼저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 발음을 올바르게 하는 방법을 이야기 해주는데 매우 간단하다. 원어민이 발음한 것을 따라서 발음한다. 그리고 그 둘을 비교한다. 이 과정을 스스로 발음한 것과 원어민이 발음한 것이 똑같아 질 때까지 반복하면 된다. 


 절대 음감을 가졌다거나, 소리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들이라면 이런 방법으로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해하기도 실천하기도 어려운 방법이었다. 이미 영절하식 영어 공부를 시도할 때, 깨달았기 때문이다. 안 들리는 발음은 계속 안 들린다. 그런데 안 들리는 발음을 따라하고 비교하라고 하니 답답할 따름이다. 모든 책들이 이런 방법을 강조하니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쪽은 내 쪽인 것 같다. 하긴, 원래 음악을 어려워하고 소리에 민감하지 않은 편이라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안되는 방법을 시도할 순 없었다. 또, 내 영어 공부의 목적은 책과 기사를 읽는 것이다. 영어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거나 영어로 대화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런데 대화할 때에나 쓸모 있어 보이는 발음을 별로 가능성 없어 보이는 방법으로 익히라고 하니 거부감이 들었다. 


 발음에서 영어 훈련에 대한 관심을 접으려고 했지만, 번역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Anki로 책을 통째로 외우다 보니 그저 책을 간단하게 읽어내릴 때완느 다르게 책에 있는 대부분의 문제를 면밀히 파악하게 된다. 오타, 오기, 그리고 이상한 문장들을 전부 발견하고 이것을 수정하려고 끙끙거린다. 특히, 기술 관련 서적들은 슬플 정도로 오류가 많았다. 노골적으로 잘못된 정보가 적혀 있는 경우도 많고, 말을 얼버무리거나 두루뭉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구글 번역기의 여파인지 예전에는 보기 힘든 이상한 역어체와 이상한 번역도 종종 마주치게 된다. 이들은 그저 슥 지나가듯 읽을 때는 제대로 번역된 느낌을 준다. 그런데 한자한자 곱씹어 보면 비문이거나 인간으로서 수용하기 어려운 기묘한 문장인 경우가 많다. 기술 관련 번역서들은 온통 지뢰밭인 경우가 많다. 원작자가 글 재주가 없는 경우가 많고, 번역자가 해당 기술에 무지한 비전공자이거나 반대로 전공자이지만 글 재주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구글 번역기를 얹으면 화룡점정이다. 언뜻 읽으면 서툴게 번역된 느낌을 주지만 제대로 읽으면 읽을수록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의미의 미로를 완성시킨다. 결국, 번역서를 원서와 하나하나 비교하면서 읽거나 원서 그자체로 읽게 된다.


 영어와 마주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번역된 책을 읽으려고 해도 어디서 엉뚱한 오역이 나타날지 몰라 결국 원서를 봐야 한다. 매번 모르는 단어만 찾아보고 어떻게든 의미를 맞춰보고 넘어가는 식의 책 읽기가 싫다. 쓰여진 글의 의미를 찾지만 언어로써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의미를 이리저리 배치해 보면서 딱 맞는 한국어를 찾는 과정이다. 누군가에게 전해들은 풍경 마냥 자신 없는 투로 “제주도가 아름답다.”라고 말하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영어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한국어에 영어 단어를 좀 더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시간은 시간대로 소모되고 투입된 시간과 노력 대비 얻는 것도 적다. 마지막으로 독서 경험이 최악이다. 읽다가 조금이라도 모르는 단어나 구문이 나오면 이리저리 뒤져보다가 호흡이 끊기면서 몰입하지 못하기 일쑤다. 이렇게 문제가 쌓이다 보니 차라리 영어를 어떻게든 익히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영어를 익혀야 한다고 해도 무슨 팁 던져주는 듯이 “이렇게 읽으세요.” 하는 식의 발음 학습들이 발음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 내용을 신뢰하기도 어려웠다. 이런 경우 방법은 하나뿐이다. 시중에 나오는 학습서를 뒤지지 말고 좀 더 전문적인 학술 영역으로 들어가서 자료를 찾는 것이다. 당연히 새로운 개념과 내용을 익혀야 하는 귀찮은 길이지만 그나마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생산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거 하기 싫어서 영어 공부 안 하려고 했던건 데 결국, 이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눈물을 머금고 관련 영역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언어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결국, 음성학이라는 마이너해 보이는 분야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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