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음소, 이음, 음성체계

 

 영어 음성학 공부를 하는 이유는 단지 멋들어져 보이는 발음을 갖고 싶어서가 아니다. 영어의 음성체계를 머릿속에 설치하여 자연스럽게 언어로써 영어를 습득하고 싶어서다. 그렇다면 그 음성체계라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에는 아마 사람 수만큼 다양한 말소리가 있을 것이다. 어떤 말소리들은 서로 비슷하고 어떤 말소리들은 서로 다르다. 언어는 이 무수한 말소리들을 분류하는데 서로 같은 소리와 다른 소리로 구분하는데 특히 소리에 따라서 의미를 구분할 수 있는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따진다.

 

 가령, 우리에게 'ㅍ'과 'ㅂ'은 서로 다른 말소리다. 왜냐하면 '풀''불'로 초성 하나만 다르게 써도 의미가 서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어 원어민인 우리에게 너무 당연해 보이는 이야기다. 하지만 영어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영어에서 'ㅍ'은 'ㅂ'과 동일한 말소리다. 물론, 소리가 조금 다르게 난다는 점을 영어 원어민도 안다. 하지만 그것은 사소한 차이에 불과하다. 그냥 'ㅂ'발음할 때 숨소리가 섞여 조금 거칠게 발음된 것'ㅍ'일 뿐이다. 숨소리가 섞이는 이유야 강세에 따라 힘을 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말을 시작하면서 숨을 크게 내쉬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영어 원어민은 이 두개의 말소리를 서로 같은 음인 'p'로 생각하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풀''불'의 차이점에 대해서 이야기해도 영어 원어민은 이 두 단어 모두 'pul'로 동일한 단어처럼 생각한다. 또, 같은 이유로 대한민국 여권에 씨는 Park으로 표기 되고 씨는 Paik으로 표기 된다.

 

 음소는 의미를 구분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말소리의 단위를 말한다. 위의 예에서 우리에게 'ㅍ'과 'ㅂ'은 각각 서로 다른 하나의 음소다. 하지만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에게 'ㅍ'과 'ㅂ'은 별개의 음소가 아니라 하나의 음소에 속한 살짝 다르게 변형된 말소리일뿐이다. 이를 이음(異音)이라고 한다. 이음은 동일한 음소에 속하므로 이음들 끼리는 바꿔 사용해도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다.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영어는 'ㅍ'에 해당하는 [] 'ㅂ'에 해당하는 [p]를 모두 /p/의 이음으로 본다. 그리고 음성체계는 수많은 말소리들과 이음이 음소로 분류되어 만들어진 체계를 말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언어권별로 음소와 이음의 음성체계는 조금씩 다르다. 

(이제부터 음소를 표기할 때는 빗금으로 감싸서 /ㅍ/, /ㅂ/, /p/와 같이 적는다. 그리고 이음은 [], [p]와 같이 대괄호로 감싸서 표기한다.)

 

 그럼 이제 음소와 이음으로 구성된 음성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자.

 

 음소는 우리의 정신 속에서 실제 언어로써 작동하고 있는 말소리를 의미한다. 만일, 우리가 /미닫이/라고 말하려고 할 경우 머릿속으로는 /미닫이/로 말하고 있고 스스로 /미닫이/로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구개음화 때문에 [미다지]로 말소리가 나간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미닫이/로 찍힌다. 즉, 듣는 사람은 실제로 [미다지]로 들었어도 머릿속에선 /미닫이/로 자동 전환되어 언어로 이해된다. 즉, 언어에 의한 의사소통은 소리가 머릿속에서 적절한 음소로 전환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는 한국인이 한국어의 이음을 인식하기 쉽지 않아 이해하기 쉽도록 구개음화 현상으로 예를 들었다. 마찬가지로 다양한 이음들도 자신이 속한 음소로 전환되어 머릿속에서 언어로 작동한다. 그런데 이러한 음성체계가 서로 다르면 이음들이 서로 다른 음소로 전환되기 때문에 모국어와 음성체계가 많이 다른 외국어를 배울 때 큰 혼란이 발생하게 된다.

 

 가령, 이음 [l], [r]은 한국어에서는 음소 /ㄹ/에 속하는 이음들이지만 영어에서는 각각 별개의 음소 /l//r/이다. 따라서 영어 원어민은 leaderreader를 구분하여 발음하고 이해하지만 한국어 원어민은 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거나 문맥에 따라 추측해야 한다.

 

 또, 영어와 한국어의 음성 시스템이 서로 복잡하게 꼬인 경우도 있다. 한국어의 /ㅂ/[p], [b] 등을 이음으로 가지고 []는 이음으로 가지지 않는다. 반면 영어는 /p/, /b/가 별도의 음소로 구분되고 [] /p/의 이음으로 들어간다. 다음 그림과 같은 경우다.

 

 

 이렇게 소리들을 음소로 전환하는 음성체계가 서로 매우 다르면 또박또박 천천히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각자의 모국어에 따라서 서로 다른 음소로 전환되어 버리기 때문에 적절하게 음성을 주고받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려면 우선 음성체계를 맞추어 서로 주파수를 맞추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Ankilog 학습파일


학습용 Anki 파일은 아래와 같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Ankilog 파일: 005 음소, 이음, 음성체계.apkg


수정 : 2019-12-02 오전 2:25 문구를 다듬고 이음의 설명 부분 조금 보충함. Anki 파일의 이음 부분도 수정함

수정 : 2019-12-10 오후 2:30 발음기호 수정 [pʰ]으로 교체 Anki 부분은 수정사항 없음

004 분절음과 자음만 발음하기


 말소리는 자음모음으로 나누어진다. 모음은 “이, 에, 애, 으, 어, 아, 우, 오, …” 등을 말하고 자음은 모음이 아닌, “ㄱ, ㄴ, …” 등을 말한다. 말소리의 최소 단위는 이렇게 자음과 모음으로 나눌 수 있기 때문에 분절음(segment)라고 한다. 그래서 발음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부터 차근차근 연습하려면 이 분절된 자음과 모음을 각각 개별적으로 소리 내는 법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어는 항상 자음과 모음을 합쳐서 발음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모음은 개별적으로 발음되지만 자음은 반드시 모음과 합쳐서 소리를 내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에게 자음만 소리 내보라고 하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소리내기 방식에 낯설어 하고 힘들어 하는 사람이 반드시 나오게 된다.

 

 이 때문에 영어를 습득함에 있어 상당한 장애를 가져올 수 있다. 가령, "strong"이라는 단어를 한국어 원어민은 "스트롱"이라고 발음한다.

 

한국말 "스트롱" 발음이다. 

 

영어  "strong"이다.

 

 어떤 차이가 느껴지는가 한국말의 "스트롱"은 각 글자가 또박또박 끊어지면서 세 글자가 비슷비슷하게 들린다. 하지만 영어의 "strong"은 소리가 부드럽게 연결되면서 리드미컬하게 들린다. 이는 한국어의 "스트롱"은 3음절로 발음되었고 영어의 "strong"은 1음절로 발음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스트롱"이라고 발음한다. 또, 영어 원어민이 이야기하는 것을 직접 들어도 "스트롱"으로 들린다.

 

 반대로 영어 원어민에게 한국인이 말하는 "스트롱"은 "sɯtɯlong"이라고 들린다. 여기서 “ɯ”는 한국어의 “”에 해당하는 음성기호다. 영어 원어민에게 우리의 "스트롱""strong"이 아닌 “sɯtɯlong”이라는 완전히 다른 단어다. 실제로 구글 번역기에 "스트롱"이라고 쓰면 이에 해당하는 영문 표기는 “seuteulong”으로 나온다.

 

 위에 제시된 소리를 음파의 파형으로 보면 이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아래에는 영어 "strong"과 한국말 "스트롱"을 발음한 파형을 나타낸 그림이다. 각 파형에서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아래에 해당 글자를 적어 놓았다.

 

한국말 "스트롱"의 말소리 파형

 

 

 

 

 

 

영어 "strong"의 말소리 파형

 

 

 

 

 

 

 말소리 파형을 보면 모음이 올 때마다 진폭이 커지면서 크게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진폭이 클 수록 소리가 커진다. 따라서 실제로 말소리에서 가장 크게 들리고 현저하게 들리는 음이 바로 모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자음에 비해서 모음의 소리가 크므로 다른 자음들은 모음에 얹혀지는 모양새다. 그래서 보통 모음으로 진폭이 크게 부풀어 오른 구간을 구분된 음절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영어의 "strong"은 크게 부푼 파형이 하나밖에 없다. 반면, 한국어의 파형은 크게 부푼 파형이 3곳이 있다. 즉, 영어는 1음절인데 한국어는 3음절로 발음한 것이다.

 

또, 한국말 "스트롱"은 중간 중간 모음 ‘으(ɯ)’에 해당하는 음이 끼어들고 있지만 영어는 ‘으(ɯ)’ 없이 자음들이 바로 붙어서 발음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어 원어민이 영어의 마디마디에 모음을 넣어서 이렇게 음절을 늘리는 식으로 발음하는 것을 듣는 영어 원어민의 느낌은 아마도 일본어 원어민이 한국어의 “~습니다.”를 “~스므니다.”로 한 음절을 늘려 발음하는 것을 듣는 한국어 원어민의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자음만 발음하는 것은 개별 자음을 익히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음성/음운론적으로도 음절이나 언어 구조 등 많은 부분과 연결된다. 따라서 처음에 이 부분을 무시하고 넘어가면 한국어 습관에 의하여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판단하여 가장 처음에 이 주제를 꺼내들었다. 앞으로 개별 자음의 연습을 하면서 자음만 소리 내는 법도 같이 익혀보도록 하자.

Ankilog 학습파일


학습용 Anki 파일은 아래와 같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Ankilog 파일: 004 분절음과 자음만 발음하기.ap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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