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좋아하는 매체가 책이고 활자 중독이다 보니 원래 영화를 챙겨보지는 않는다. 영화관에 대한 로망도 없고, 대중문화에도 시큰둥한 편이다. 그렇지만, 보헤미안 랩소디 포스터와 마주한 순간 바로 이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퀸은 내 기억 속에 참 아련한 밴드다. 팜플렛을 보니 91년에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죽었다. 아마도 그 때 나는 중3이었던 것 같다. 퀸이라는 밴드를 아는 친구는 많지 않았다. 많지 않다기 보다는 반에 딱 한 명의 열성팬이 있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지만 키 크고 잘생긴 친구였고 조금 많이 까칠했었다. 그리고 그 까칠함의 근원에는 퀸이 있었다. 반 친구들에게는 퀸이라는 밴드는 그 친구가 너무나 좋아하는 이상한 밴드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동성애자, AIDS 등으로 대변되는 프레디 머큐리였기 때문에 그 시절에 중학교 남학생들이 좋아할 법한 이미지가 아니었다. 반 친구들은 퀸의 열성팬인 그 친구가 너무나 기이하게 느껴졌고 조금 힘 좀 쓴다는 친구들은 종종 프레디 머큐리를 비하하며 그 열성팬 친구에게 시비를 걸곤 했다. 평소 조용하던 그 열성팬 친구는 그 때마다 히스테릭한 까칠함으로 응수하면서 퀸의 좋은 점에 대해서 한바탕 역설했었다. 

      

그저 그런 이야기였다. 반에 단 하나 있는 취향 독특한 친구가 좋아하는 독특한 밴드였을 뿐이다. 가뜩이나 음악과 집안 전체가 거리가 먼 나로서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고 그저 반에서 투닥거리는 일상의 풍경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 그것이 달라졌다. 

      

평소처럼 아침에 안 떠지는 눈 비비고 일어나 어슬렁 학급에 도착했을 때, 교실은 평소에는 없었던 고요함과 어떤 웅성거림이 전해져왔다. 열성팬 친구가 조용히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옆에 있는 친구에게 조용히 물어보니 그 날 프레디 머큐리라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 친구의 슬픔은 진짜였다. 너무나 진한 슬픔에 압도되어서일까? 혹은 그에 대한 경의일까? 평소에 자주 놀리던 친구들도 그 날은 조용히 애도할 수 있도록 그를 내버려 두는 것처럼 느껴졌다. 간혹, 질문이 오가면서 조용히 웅성대곤 했고, 간혹 혀를 차면서 "그깟 밴드가 뭐라고."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그 뿐이었다. 그 친구는 그 날 하루 내내 눈물을 흘리면서 애도를 했고, 그 사건은 조용히 잊혀졌다. 

      

사건은 잊혀졌지만 나에게 그 날은 강력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그 때는 팬이라는 것이 생소한 때였다. 당장 92년만 되었어도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와서 팬덤을 형성하고 뉴키즈온더블록 내한 공연에서 시민이 죽는 일이 생기면서 팬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지만 91년까지 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던 나에게는 그러한 애정과 숭배와 애도는 그 때까지 전혀 볼 수 없는 신기한 일이었다. 

     

나에게 음악은 그리고 노래는 평생의 계륵 같은 것이다. 노래는 조금만 불러도 목이 쉬고 음악은 들어도 좋은 것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노래를 부르며 빠져드는 사람을 볼 때면 그 고양감이 그 내지르는 호쾌함이 너무나 부러웠다. 한 번은 이런 고민을 이야기했을 때, 음악을 가까이하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를 들었다. 그래서 레코드 가게를 둘러 봤을 때 보았던 것이 퀸의 테이프였다. 당장 그 퀸을 숭배하던 친구가 떠올랐다. 아마도 음악에 몰입하는 것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된 것이 그 날 그 친구의 진지한 애도를 목격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주구장창 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4~5시간씩 고등학교 2년과 재수 시절을 퀸과 함께 했다. 듣고 또 들었다. 멜로디는 익숙해지고 알아듣기 어려운 영어 가사를 대충 뭉개면서 따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더 이상 공감도 되지 않았고 어떤 몰입도 없었다. 그냥 가끔 신나고 가끔 흥얼거릴 뿐이었다. 그 친구가 하듯 동경하게 되지 않았고 몰입되지 않았다. 그리고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면서 퀸도 그렇게 잊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포스터를 봤을 때, 한번 지중으로 들어간 지하수가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다시 용출하듯, 오랫동안 잊었던 기억과 정서가 용출되는 것이 느껴졌다. 칙칙하고 어둡고 절망적이었지만 그럼에도 젊고 풋풋했던 시절의 자신과 가볍게 인사하고 싶다는 마음이 영화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22년 만에 퀸은 여전히 익숙하고 또 너무나 새로웠다. 영화는 22년 전의 내가 이해할 수 없었고 공감할 수 없었던 것들을 풀어주었다. 그저 해외의 전설적인 유명 밴드로만 알려져 있었던 그들의 삶을 공감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주었고, 그들이 왜 그렇게 음악을 만들었는지, 왜 그렇게 의미없는 대사를 마구 집어넣었는지 가르쳐 주었다. 퀸이 음반사 사장과 협상하던 장면에서 음반사 사장의 의문은 오랜 기간 내 속에 있었던 질문이었다. 나는 내 속에 그런 질문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퀸은 자신들이 왜 그런 음악을 만들었는지 답을 했고 덕분에 22년간 쌓인 체증이 내려가는 시원함을 맛보게 되었다. 

       

영화는 뻔했지만 즐겁고 감동적이었다. 지금은 빛바랜, 젊은 시절 내내 화두였던 존재에 대한 희구, 자유에 대한 열망, 치열한 삶에 대한 동경 등 이런 것들을 원했던 이유들을 마주치며 다시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이해할 수 없는 음악에 대한 젊은 시절의 오래된 질문과 화해했을 때는 뻔한 스토리임에도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왔을 때, 문득 그런 것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던 오래된 과제가 종결되었음을 갑작스럽게 알게 되었다. 이제 프레디 머큐리의 죽음을 종일토록 진지하게 애도했던 그 친구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나는 여전히 음악을 듣는 것도 하는 것도 관심이 없지만 프레디 머큐리의 죽음은 충분히 애도할 만한 가치가 있었고 지금이라면 나도 그를 애도할 것이라는 것을 이젠 납득했다. 그리고 내가 퀸을 들었던 것은 음악에 대한 열등감도 있었지만 결국, 그 친구가 애도한 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는 것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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