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집안이 그러하듯이 나의 집도 공부에 대한 압박이 무척 강했다. 어머니는 매일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했고, 실제로 손을 붙잡고 공부를 시켰다. 학교에 가는 것이 휴식이라고 느낄 정도로 어머니는 공부를 시켰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책을 암기해오라는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나를 보고서도 전혀 좌절하지 않고 그냥 산수와 국어만 줄기차게 공부 시켰다. 공문수학, 재능수학 같은 것을 풀다가 어느 날인가에는 스케치북만한 크기의 문제은행이라고 하는 것을 복사해 와서는 매일 그것을 풀게 했다. 이 문제은행은 정말 더럽고 치사한 방식의 문제들만 모아서 학생들을 고문하기 위한 문제집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이 문제집을 풀다가 6학년에 그만뒀는데 그것을 풀던 형과 나는 문제은행을 더 이상 풀지 않게 되었던 그 날을 ‘해방의 날’로 생각할 정도였다.
나는 반에서 딱 가운데 정도의 성적을 가지고 있었는데, 반에서 가장 공부를 잘 하는 친구들도 그 정도로 문제를 풀거나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우리 집이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정말 슬픈 것은 그렇게 많은 시간을 산수 공부에 투자했지만 산수 성적도 반에서 딱 중간 정도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머리가 나빠서일까? 산수에 재능이 없어서일까? 공부의 효율이 나빴기 때문일까? 아마도 세 가지 전부 원인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젊어서 공부를 정말 잘했다고 한다.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친척들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그냥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가정교사를 부르거나 과외를 하지 않고 어머니가 직접 우리를 가르치셨다. 그런데 정말 인간적으로 너무 설명을 못했다. 처음에는 우리가 설명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중학생이 되니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설명을 정말 못했다. 기본적으로 어머니는 설명하기 보다는 제시하는 식으로 설명했다. ‘이게 당연하다’라는 방식으로 설명했다. 거기에는 꼬맹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의 징검다리는 전혀 없었다. 교과서와 거의 동어반복을 하고 있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설명을 듣고 우리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면 답답해하고 조금 더 윽박지르는 식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의 설명을 듣는 것이 고역이 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상황은 이런 것이다. 초등학교 도덕 시험에서 대충 이런 문제가 나왔다.
문제: 길거리에 떨어진 돈을 주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돈을 가진다.
② 주위를 둘러보고 돈의 주인을 찾아주고, 돈의 주인이 없으면 가진다.
③ 경찰 아저씨에게 준다.
답은 ③번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②번을 골랐다. 당연히 틀렸고, 어머니한테 혼났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돈을 주워서 무조건 경찰 아저씨에게 주는 사람이 있어요? 돈에 주인이 누구인지 적혀있는 것도 아닌데? 옆집 형은 저번에 돈을 주워서 가져왔는데, 그럼 그 형은 잘못된 건가요?”
어머니의 대답은 이랬다.
“하지만 시험에서는 ③번을 골라야 하는 거야?”
당연히 납득이 가지 않으니 “왜요?”라고 하면서 물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머니의 결론은 항상 그게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미 설명이 아니었다. 그저 답에 대한 인증에 가깝다고나 할까?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산수로 넘어가면 더 심해졌다. 그나마 초등학교 산수는 수를 세는 것에 가까워서 참을성과 인내심을 가지고 단순한 작업을 하면 어떻게든 문제를 풀 수 있지만 점점 문제가 복잡해지는 중학교에서는 어머니의 설명을 듣는 것이 만만치 않은 문제였다.
그러다가 계기가 왔다. 중학교 수학에 자주 등장하는 문제 중에서 시계문제가 있다. 시계의 분침이 30분 지나가면 시침은 어디에 멈추는가 하는 식의 문제였다.
분침과 시침이 동일한 시간에 이동하는 각도의 차이를 파악하고 그것을 맞추는 문제인데, 이미 누나와 형이 이 문제를 어머니와 같이 연구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모두 포기하고 이 문제가 나오면 풀지 않고 바로 넘어갔었다. 그리고 다시 내 차례가 와서 공부할 때 다시 이 문제가 나오게 되었고 어머니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때 이 문제를 설명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엄마가 이 문제를 풀 줄 모르는구나. 그런데 모른다고 절대 이야기하기 싫어하시는구나.”
그렇다. 나는 그 때 어머니가 이 문제를 전혀 모른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리고 절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설명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처음엔 왜 ‘모른다고’ 말하지 않을까 이상하게 생각했고 그 다음에는 이 문제를 꼭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문제를 풀어내면 어머니한테 내가 어머니보다 수학을 잘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머니의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을 1~2시간씩 들을 필요가 없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 스스로 그렇게 수학문제를 풀어보겠다고 불타오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어머니의 설명이 끝나고 나는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매일 3~40개의 수학문제를 2~3시간씩 풀어도 전혀 흥미가 가지 않던 수학이라는 학문에 처음으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밖에 나와서 실제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시계의 움직이는 원리를 파악해보려고 끙끙대었고, 시침과 분침의 운동이 서로 일정한 비율로 비례하는 움직임이라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즉, 분침이 한 바퀴(360도)를 돌면 시침이 1시간(30도)을 움직인다는 가설을 세웠다. 당시, 이 가설이 무척 자신이 없었는데, 우리 집 시계는 분침이 한 바퀴를 돌기 전에 시침이 다음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시간을 꼬박 기다리면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시침과 분침의 운동이 내 생각과 똑같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이 문제를 풀 완벽한 논리를 전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정리해서 어머니에게 설명했다.
이 경험은 당초 원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사춘기 특유의 반항심과 경쟁심, 공부에 대한 지겨움과 어머니로부터의 독립심 같은 것들이 엉겨서 반항심 비슷하게 이 문제에 도전하게 되었다. 원했던 것은 어머니의 설명을 그만 듣고 어머니한테 으스대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얻은 것은 어머니부터의 진정한 인정이었다. 그것은 처음 받아보는 것이었다. 그냥 마지못해 잘한다고 이야기해주는 것이 아니라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주는 눈빛과 태도를 읽을 수 있었다. 그 날 이후 어머니는 내가 수학을 잘 한다고 확신하셨고 그 영향으로 내 스스로도 내가 수학을 잘 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 경험은 정말 중요했다. 아마 이 날 얻은 어머니로부터의 인정이 없었다면 그리고 처음으로 스스로에 대한 인정으로 가슴이 충만해지지 않았다면 그 뒤로도 여전히 마지못해 공부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날 이후 수학을 잘 하고 싶은 마음과 수학이 재미있다는 마음이 생겼다. 다른 과목은 시험공부에서 그저 점수만 잘 받으면 되지만 수학만은 정말 잘하고 싶어졌다. 아마도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그러한 인정을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 때마다 스스로에게 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스스로 뿌듯해 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수학에 대한 뜻깊은 경험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슬프게도 나는 수학을 잘 못한다. 계산은 틀리기 일쑤고, 가정을 세우거나 문제풀이 모형을 만드는 것도 사실 매우 서툴다. 그래서 수능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과목도 수학이었다. 사실, 수학에 재능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로 수학을 너무 과도하게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스스로 수학을 잘 한다고 믿기 위해서 노력했다. 수학에 대한 애정으로 인하여 성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수학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버렸다. 그 시간에 다른 수험공부를 했으면 더 좋은 성적을 받았을 것이지만 나는 그 시간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한 착각이 없었다면 아예 공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수학을 못했지만 수학을 통해서 얻은 자존감이 나를 지탱해주는 큰 근간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교훈>
-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 설명도 잘하는 것이 아니다.
- 공부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도 꼭 잘하는 것은 아니다.
- 특히, 좋아하는 과목을 꼭 잘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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