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결국 언어적 구조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후에서야 자막 없이 드라마를 보는 것이 조금 편안해졌다. 그리고 드라마나 영화가 실은 실어증 체험이나 언어적인 훈련을 위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다른 자료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큰 기대 없이 영화나 드라마를 쪼개어 가면서 보게 되었다. 즉, 장면 전환으로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끊고 다시 정리하고 보는 식이었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줄여 보니 언어가 없기 때문에 보이는 것들이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소한 손동작이나 표정 등 영상으로 제공되는 모든 것이었다. 이건 언어가 없기 때문에 보인다는 측면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자막이 없기 때문에 보이는 것에 가까웠다. 수십번 반복하면서 본 드라마도 자막 없이 보게 되면 전혀 새로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 자막으로 인한 경우가 많았다. 


자막이 있으면 눈은 끊임없이 자막과 영상을 오가게 된다. 눈으로 영상을 보면서 귀로 대사와 음악을 들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눈으로 영상과 자막을 보고 귀로 음악을 듣는 식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눈은 매우 바쁘게 자막과 영상을 오가게 된다. 앞서 언급한 현실 관찰처럼 눈은 사물을 따라가면서 관찰한다. 눈은 그것이 어떻게 변화하고 움직이고 오가는지를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본능적으로 따라간다. 하지만 대사가 있을 때 마다 눈은 자막을 향한다. 드라마가 언어적 구조물이기 때문에 대사는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모든 장면이 대사에 맞춰 구성되어 대사와 영상은 그 순간 최대의 시너지를 내게끔 되어 있지만 자막으로 보는 사람은 그 순간 가장 중요한 영상을 미묘하게 보지 못하게 된다. 물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장면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누적되면 상당량의 영상을 보지 못하고 넘어가게 된다. 또, 대사가 길면 어떻게 될까? 그 대사를 전부 빠르게 읽어야 한다.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맥락에 따라 파악까지 해야 한다. 당연히 대사가 길어지면 눈은 거의 자막으로 넘어가 있고 빠르게 대사를 읽고 영상으로 눈이 돌아와도 영상에 의식이 집중되지 않는다. 눈은 영상을 보고 있어도 머리는 상황을 파악하느라 정신없는 것이다. 결국, 자막과 함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은 본인은 제대로 보고 듣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내용의 상당부분이 누락된 채로 그것을 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자막과 함께 드라마를 보는 것에 익숙해지면 정말 전혀 불편함이 없다. 자막이 대사와 싱크가 안 맞는 경우를 제외하면 나중에는 자막의 존재 자체를 잊을 정도로 편안하게 시청하게 된다. 나아가 어느 순간부터 배우들이 한국말로 대사를 말하는 것처럼 느끼거나 영어를 바로바로 알아듣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즉, 정리하자면 자막이 있으면 외국어의 어색함도 없고 어떤 문화적인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도 못하며 상당부분의 영상이 누락됨에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모두 드라마 속에 현전하고 있어 시청자가 느껴야하는 것들이다. 당연히 미국과 대한민국은 의사소통하는 법부터 문화적인 코드까지 전부 미묘하게 다르다. 하지만 그런 차이를 전혀 실감하지 못한다. 상당부분의 중요한 영상이 누락되거나 영상을 보는데 방해를 받았음에도 그것을 실감하지 못한다. 외국어를 말하는 것이니 입모양도 한국어와 다르고 억양 발성도 전부 다르다. 또, 결정적으로 모르는 단어를 말하고 있는데 그것을 실감하지 못한다. 영화나 드라마가 언어적 구조물이기 때문에 그 언어적 의미가 소통된다면 당연히 전체의 이야기 전개가 자연스럽게 인식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에 따른 다른 이질적인 요소까지 전부 실감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떻게 여겨야 할까?


반대로, 자막 없이 드라마를 볼 때는 이 모든 이질성이 극대화되어 튀어나온다.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니 제시되는 상황과 배우의 표정 손짓 등 사소한 디테일을 통하여 그것을 해석하게 되는데 공감되는 것도 있고 이질적인 것도 있다. 그리고 그 이질적인 것 중 하나를 찾아낸 것이 페퍼의 눈동자였다. 드라마에서 시공간 널뛰기 없이 어느 정도 연속적인 시선 처리와 제한적인 시공간의 상황을 보여줄 경우에는 많은 디테일한 의미들이 영상을 통해 발견된다.


그렇다면 이제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직접 보는 경험과 비교할 필요가 있다고 느낄 것이다. 이런저런 미국 드라마에 대한 시도가 없었다면 한국어로 된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아무 것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상황과 대사와 표정이 너무 일체화되어 있어서 느끼는 것이라곤 그저 배우가 연기를 잘 하네 못 하네 정도에 불과하다. 무언가 새로 발견할만한 문화나 행동양식이 없고 그저 모든 것이 친숙하고 그저 공감하고 말고 하는 것만 있다. 아마 이것이 미국 드라마를 원어민이 볼 때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발견하기가 너무 어렵다. 반면 모르는 외국어의 드라마는 이 모든 것이 이질적이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발견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외국 드라마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한국 드라마를 보게 되면 조금씩 보이는 것이 있다. 


그것은 대사가 나오기 전에 그 대사가 나올 맥락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 표정 등에 의해서 공감이 발생하고 그렇게 생긴 공감을 언어가 규정하고 전개시킨다. 그래서 상황과 대사가 엉뚱하게 어우러져 오해를 낳기도 하고, 그 모든 상황과 표정을 통하여 그 말의 무게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산전수전 다 뚫고 만나러 가서 절박한 표정으로 “좋아한다.”라고 말할 때 시청자들은 그 캐릭터가 겪은 수많은 간난신고를 통해 그 마음의 진실성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좋아한다.”라는 대사와 함께 마무리된다. 이제 시청자에게 그 “좋아한다.”라는 대사는 그 캐릭터가 수많은 간난신고를 뚫고 행동하게 된 원인이자 그 결과가 된다. 즉, “그 캐릭터가 상대를 그렇게 좋아했다.”라고 짤막하지만 무거운 문장으로 마무리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상황과 맥락이 언어와 연결되면서 그 언어가 실체적인 성격을 갖게 되는 것이 바로 공감이다. 그리고 그렇게 언어로 종결되면서 그 디테일한 부분은 그 감상과 무게를 대사에 더하고 누락된다. 


하지만 자막으로 통해서 보게 되면 장면장면에서의 맥락 설정이 완전 반대가 된다. 원래 드라마의 구조는 각종 상황과 캐릭터의 표현을 통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것이 대사를 통하여 규정되고 전개되고 마무리된다. 하지만 자막을 읽는 경우에는 먼저 자막을 읽고 언어적 맥락이 먼저 파악된 다음에야 영상을 해석하게 된다. 대사가 짧고 영상이 주된 액션영화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사가 많고 상황이 주로 언어적으로 전개되는 드라마나 말이 많은 영화 장르일 경우에는 자막을 파악하고 해당 자막에 맞춰 영상을 해석하게 된다. 아무래도 언어적 맥락 파악이 우선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막으로 미국 드라마를 보게 되면 그 공감의 상당부분이 퇴색된다. 자막으로 보는 것 때문에 영상의 중요 부분이 누락되고 영상에서 눈을 떼지 않았을 경우 발견했을 가장 사소한 디테일들, 몸짓이나 손동작 등이 누락되고 그만큼 공감되는 정도가 낮아지게 된다. 원작자가 100의 공감을 전달하려고 했다면 자막을 보는 시청자는 대략 80정도 공감하는 것 같다. 세세한 디테일은 사라졌지만 그 이야기의 골간은 분명하게 전달되었기 때문에 드라마는 재미있다. 하지만 만일, 자막 없이 본 드라마를 자막과 함께 다시 보게 될 경우에는 그 헛헛한 느낌과 괴리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또 배우들은 극중 상황에 따른 특유의 문화와 행동양식 등을 충분히 녹이려고 노력하지만 자막으로 보는 경우에는 이미 자막에 맞춰서 모든 영상을 판단하게 되기 때문에 자막에서 제시해주는 언어적 맥락을 지탱해주는 영상이나 내용은 수용되지만 그와 상관없는 세세한 디테일들은 완전히 누락된다. 따라서 배우가 연기를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어지간해서는 판단하기 어렵고 배우들이 전달해주는 생동감도 상당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자막으로 통해서 언어적 맥락이 머릿속에서 전개되고 대사를 맞추기 때문에 짧은 대사는 잠깐이지만 서로 공존한다. 또, 나와 같이 거의 드라마를 외우다시피 했던 경우에는 실은 외운 것은 자막에 불과하다. 그리고 자막을 외웠기 때문에 자막의 첫마디만 봐도 다음 자막의 내용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전개될 정도가 되면 영어를 한국어처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즉, 상대방이 다음에 할 말이 “고맙다”라는 것을 알고 머릿속에는 “고맙다”라는 말이 이미 준비된다. 그리고 배우가 “thanks”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그 말이 머릿속에서는 바로 준비된 “고맙다”라는 대사로 전환되는 식이다. 결국, 영어가 들린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완벽한 오류였던 셈이다. 


자막을 통해 영상과 소리를 통해 제시되는 모든 이질성이 사라지고, 영상과 상황에 따른 전개로 대사가 연결되지 않고, 대사를 먼저 확인하고 그에 따라 영상을 취사편집하게 되는데 스스로 그러한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중에 거의 드라마 대사를 외우다시피해서 자막 없이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거은 매우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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