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중에 '쿵푸'라는 영화가 있었다. 


지금은 검색을 해보아도 그 영화가 맞는지 긴가민가 하고 있어 제대로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인상깊은 영화였다.


간단하게 기억나는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중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할아버지가 있는데 이 할아버지는 태극권의 초고수이다. 


이 할아버지는 자식들이랑 같이 미국으로 이민왔지만 문화가 달라지고 세상이 달라서 소외감을 느끼고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무력감을 느낀다. 그래서 끊임없이 힘들어하고 갈등한다. 


힘들 때마다 이 할아버지는 태극권을 수련한다.


태극권을 수련하는 동안 이 할아버지는 평화로워졌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영화를 보던 내내 그 할아버지가 무척 부러웠다. 


평생을 공부해서 쌓아올린 태극권은 이 할아버지에게는 즐거움이요 낙이고, 


힘들 때는 자신을 잊고 위로할 수 있는 수단이었고, 


급할 때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호신 기술이고, 


마지막으로는 태극권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밥벌이 수단이 되기도 했다.


결국, 태극권의 고수로서 해당 커뮤니티에서 존경도 받게 된다.


평생을 스스로 노력하고 쌓아올린 결과를 스스로 존중할 수 있고 뿌듯할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스스로 쌓아올린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의미를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공부라는 말은 중국어로 말하면 쿵푸다.


현실에서는 쿵푸를 익혀서 하늘과 땅을 가를 수 없을지라도 이 영화의 할아버지처럼 평생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스스로 살아갈 삶의 수단으로써 쿵푸를 익힌다면 하늘과 땅을 가르지 않더라도 그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되었다. 


살짝 늦은 듯 하지만 나도 이러한 공부를 쌓아올려 보고 싶다. 


조금 늦더라도 하나하나 축적하면서 스스로 익힌 것을 돌아보면서 자랑스럽게 생각해보고,


그걸로 삶이 다할 때까지 공부하고 베푸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알 수 없다.


공부가 중요한지는 여부와 상관없이 힘들지만 재미있다


대한민국에서 흔히 공부를 이야기할 때, 당연히 대입, 취업준비, 승진 시험 등을 생각하기 때문에 어렵게 생각된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을 떼어내고 그냥 공부만 생각해보면 이것은 정말 재미있는 것이다.


공부를 통해서 사람은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즐거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어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대입이나 취직을 위한 스펙이 아닌, 그저 영어를 생각해보면 영어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정말 큰 차이가 있다.


 영어공부를 하는 것은 어렵지만 영어를 잘 할 수 있게되면 해외 뉴스를 통해서 세계를 볼 수도 있고, 


 국내에는 없는 양질의 정보를 바로 접해볼 수 있다. 


 미드나 영화를 자막없이 시청해볼 수도 있다. 자막없이 시청했던 경험은 자막을 보는 것과는 격이 다른 몰입감과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물론, 영어권 친구를 사귀어서 인간관계를 즐겨볼 수도 있다. 


 이처럼 가능성이 생겨나고 삶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확장된다.


영어공부는 너무 식상한 주제라고 생각한다면 프로그래밍은 어떨까?


프로그래밍을 잘 안다면 인터넷 공간이 그저 즐기고 향유하는 공간이 아닐 것이다.


끊임없이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고, 자신이 무엇인가를 만들어볼 생각을 할 수 있는 공간일 것이다.


더 깔끔하고 효율적인 프로그램을 구상하다보면 어느 순간 사업이 될 수도 있고 예술처럼 생각해볼 수도 있다.


위에서 제시한 영어와 프로그램 같이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다양한 잡기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FACE 리딩이나, 바디 랭귀지 같은 것을 공부하면 삶에서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이 정말 흥미로워지는 것을 경험해 볼 수 있다.



그렇다. 공부는 힘들지만 그 결과는 정말 달콤하다.


아프리카 오지를 탐구하여 숨겨진 비경을 찾아보는 모험도 즐겁다.


하지만 그 시간에 열역학을 파고들어 모든 세상을 열과 에너지의 작용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보다 나을까?


그 결과는 공부쪽이 솔직히 더 낫다. 삶에 대한 모든 것이 송두리째 달라지는 경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부가 싫어진 이유는 명쾌하다 공부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그 성과가 공부와는 상관없는 순위 경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공부의 결과가 오직 순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면서 공부는 항상 극한의 점수를 받기 위한 살을 깎는 고통일 뿐이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직 공부 그 자체만을 보고 공부를 해보려고 한다. 


공부 그 자체는 정말 정직하게 우리에게 그 과실을 주기 때문이다. 


그저 공부하면서 스스로의 성과에 기꺼워하면서 자신의 변화를 즐겁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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