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에 등장하는 고수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질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다루는 책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러한 책들을 탐욕스럽게 읽어댔다. 그런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하거나 스승없이 수행하면 주화입마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자 두 번째 질문이 튀어나왔다.

 

이 책이 말하는 내용을 어떻게 정확하게 이해할 것인가?

 

한문도 모르고, 배경이 되는 동양철학도 모른다. 일단, 한글로 번역된 책들을 찾아서 읽어본다. 너무 어려워 나에게 맞는 수준의 책을 골라서 읽는다. 수도 없이 책을 펼쳐보고 사보고 읽어본다. 그래도 이해하기 어렵다. 조금 다른 관점으로 말하고 있는 책을 읽어본다. 그랬더니 서로 말이 다르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다시 질문이 나온다.

 

어떤 책은 믿을만 하고 어떤 책을 믿을 수 없을까?

 

어떤 것은 허황된 것 같고 어떤 것은 조금 현실성이 있어 보인다. 읽어본 책들을 현실 가능성, 근거 제시 등으로 신뢰할 수 있는지 판단해보고 신뢰 등급을 매긴다. 그리고 신뢰등급 수준에 따라서 서로 공통으로 지지하고 있는 사실과 서로 비난하는 사실을 나누어 가장 안전하게 공통으로 지지하고 있는 것 위주로 방법을 구축한다. 실행 방법에 있어서도 큰 부작용이 발생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실행하기 편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어 방법을 구축한다. 결국, 이구동성으로 옳다고 말하는 바를 중심으로 실행할 수 있고 큰 부작용이 없을 것 같은 것으로 실행 플랜을 짠다. 그랬더니 갑자기 이 세계가 이해되며 결론에 도달한다.

 

그래서 기공류, 요가류, 명상류 등이 말하는 바는 결국, 심상(心象)의 구축이고 그 외의 내용들은 내 스스로의 욕망에 내가 휘둘리고 있구나 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 모든 것은 스스로 생각하고 연구하는 과정이었다. 관련 내용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비웃음 당하고 선생님들에게 말하면 이상한 눈으로 본다. 부모님은 걱정했고, 친척들은 괴짜에 천방지축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혼자 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중학생이 중2병스러운 집착과 탐욕으로 연구를 하니 연구의 동력은 충분했다. 겉으로는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척 열심히 꾸며댔지만 속으로는 곧 무림이 고수가 되어서 그 결과를 보여주마 하는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돈에 눈이 멀어 무슨 짓이든 마다하지 않는 어리석음처럼 나도 무림의 고수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눈이 멀어 사람들이 아무리 충고해도 그것을 듣지 않고 연구를 계속했다.

 

이것은 분명한 어리석음이었다. 현실적으로 무림의 고수가 있다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것이고 알려질 것이 거의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유명한 무술가는 수십년의 고련 끝에 소의 뿔을 꺽은 최배달, 이소룡, 역도산 같은 이 뿐이었다. 물론, 그들의 무술도 어린 아이 눈에는 너무 대단해 보였지만 너무 어렵고 고된 길로 보였고, 그 때 당시의 현실에서는 도전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친구들 어른들 모두 이러한 어리석음을 바로잡아 주려고 말했지만 스스로는 그럴수록 더 현실을 부정하고 연구를 계속했으니 완전히 탐욕에 물들어 눈이 어두워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어리석었던 것은 분명하고 결과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히, 이 때 잘못 배우고 내린 결론 때문에 20년간 체증에 시달려야 했지만 후회하느냐고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것은 나의 첫 연구였다. 제대로 알기 위해서 노력하고 사색하고 연구하고 진위를 판단하고 실천해보고 하는 과정이 모두 동반되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마다 그 희열에 기뻐했고 기대했던 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낙담하기도 했다. 비록 공부해야하는 중고등학교 시절이었지만 이 탐욕에 눈이 먼 어리석은 연구가 너무 재미있었다. 하루 종일 사색하고 가정하는 버릇이 생겼고 스스로의 머리와 눈으로 진위를 가리려고 노력해볼 수 있었다. 비록 원하는 만큼 좋은 결과를 맺지는 못하고 결과적으로 시간 낭비가 되기도 했지만 다른 친구들이 음악과 게임에 빠지듯이 나도 이러한 연구에 빠진 것이니 꼭 낭비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충분할 정도로 이득을 얻은 것 같다.

 

우선, 나는 개성이 생기고 권위자가 되었다. 전교생 중에서 이런 분야를 잘 알고 있는 친구는 내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좋든 싫든 유일하다는 자신감으로 연결되었다.

 

두 번째로는 이 분야의 공부를 통해서 원하는 결과는 얻지 못했지만 부수적으로 얻은 기술들이 정말 많았다. 심상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공부하기 싫어하는 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명상과 여러 수행을 통해서 단기적으로나마 상당히 강력한 집중력을 쓸 수 있게 되었다. , 이미지 트레이닝 기술, 다독(多讀), 밤새기, 공부를 지속할 경우 발생하는 어깨의 통증과 허리 통증 다루기, 운동 방법, 그리고, 사람에 대한 나름의 이해가 쌓이면서 나의 불안한 기질과 산만함 등을 정면으로 꺾지 않고도 통제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도 큰 이득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연구를 한다는 개념을 알게 되었던 점이 가장 컸다. 궁금한 것을 찾아보고 체계를 세워보고 진위를 가리고 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물론, 그 방법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았기에 잘못된 결론에 도달했지만 그 잘못된 결론도 내가 열심히 머리 싸매고 고민해서 얻어낸 소중한 성과였고 당연히 사랑스러웠다. 단순히 책에서 읽은 것을 주장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살아 움직이는 지식들이 구축되었고 그러한 지식을 구축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이때부터 잘못된 방법으로나마 열심히 호기심을 탐구하고 진위를 최대한 가리고 연구하고 사색하는 버릇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평생 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기공류 등 신비의 세계를 파헤친 결과 얻은 또 하나는 자기 계발서를 발견한 것이다. 정확히는 자기 계발서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한 것이다.

 

, 자기 계발서는 나의 욕망이 현현된 것이고 거기에 심상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이해한 것이다.

 

중학교 1학년인 나에게 자기 계발서는 무공비급처럼 보였다. “○○○을 하시면 ○○○이 됩니다.”라는 단순하고 명확한 구조는 어린 아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 “삼시 세끼를 들깨로 120일간 먹으면 몸을 날릴 수 있습니다.”와 같은 문구는 얼마나 이해하기 쉬운가. 그저 그대로 하면 된다. 특히, 내공류나 기공류의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들보다 훨씬 쉽게 다가오는 친절한 무공비급처럼 보였다. ‘3시간 수면법을 읽고 하루 3시간만 수면하면 하루 21시간의 시간을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타인의 심리를 읽는 법, 여자 꼬시는 법, 사기치는 법, 안마하는 법 등 온갖 책을 읽고 가능한 경우에는 시도도 해보았다. 신비주의 계열도 많이 읽어봐서 점성학부터 연금술까지 열심히 읽어 봤다.

 

자기 계발서는 항상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다. 사람들을 성공시키고 뛰어난 능력을 주고 온갖 신비한 능력을 갖추게 해준다. 이 모든 자기 계발서가 허황된 것은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자기 계발서도 있고 허황되어 보이고 믿을 수 없는 자기 계발서도 있다. 하지만 자기 계발서를 읽는 사람의 마음은 대부분 허황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자기 계발서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모르는 분야,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를 바라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결핍에 대한 반작용으로 욕망이 발생할 때 평소에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도 자기 계발서를 읽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부족한 것이 없을 때는, 자신의 일에 바빠서 그러한 자기 계발서를 들추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기 계발서에 빠지는 많은 사람들이 맹목적이고 어리석어 보이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주는 ‘How to’ 시리즈 같은 매뉴얼이 아니라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것을 다루는 기공류나 연금술, 신비주의 등은 정말 오래된 자기 계발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 계발서는 언어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비유를 사용하고 약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내용을 보면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과 그것을 얻기 위하여 해야할 절차 등을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관과 가치관으로 자연스럽게 전환하여 상상한다. 저자는 그저 독자가 그러한 상상력을 발현할 수 있도록 처음에 욕망을 자극하고 어느 정도 가능해 보이는 절차를 상상해서 제시하고 마지막으로 몇 가지 성공사례를 보여주면 나머지는 독자가 알아서 빠져든다.

 

그런데 그러한 방법이나 내용이 상당 부분 개연성 있게 제시되는 경우가 많다. 잘 알려진 사례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닌자들이 높이 뛰기 위한 기술을 수행하는 방법이라고 하는데 이 방법을 따르면 어지간한 집들 정도는 가볍게 뛰어오를 수 있게 된다고 하는 능력을 익히는 방법이다. 이 기술은 초능력 같은 것을 준다는 자기 계발서의 핵심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방법은 간단하고 명확하다. 핵심은 나무 묘목을 마당에 심고 매일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그 묘목을 뛰어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나무 묘목은 천천히 커진다. 따라서 사람이 매일 열심히 훈련을 하면 그 나무 묘목이 자라는 속도에 맞추어 뛰는 능력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나무는 작은 초가집 정도는 뛰어넘게 자란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능력도 집을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커진다.

 

여기에서 사람들에게 구축하려고 하는 심상(心象)이 보이는가?

 

묘목이 낮게 땅위에 모습만 보인 상태일 경우에는 사람은 당연히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은 사람은 그것을 뛰어넘는 자신의 상태를 당연히 긍정할 수 있다. 그리고 매일 열심히 연습한다면 그 구체적인 연습량이나 발전 정도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나무 묘목이 매일 0.1밀리미터 정도 올라가는 수준이라면 가능하겠지 하는 식의 등식이 성립된다. 따라서 사람은 나무의 성장속도에 따라서 스스로의 점프 실력을 늘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나무가 집보다 커짐으로써 사람의 점프 실력도 자연스럽게 집보다 높이 뛸 수 있게 된다.

 

실제로는 따져야할게 더 많다. 첫 번째는 훈련량이 얼마나 되어야 하며, 매일 훈련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고 두 번째는 인간의 발전 한계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을 문학적인 표현을 이용하여 뛰어넘어 버렸다.

 

, 첫 번째로 묘목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한번 동의하게 되고, 두 번째 구절에서 그 묘목이 적당히 낮다고 스스로 전제하면서 당연히 그 묘목이 커지는 속도에 따라서 일정하게 발전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에 동의하게 된다. 그리고 그 동의가 그야말로 해당 명제에 대한 동의이므로 그냥 나무가 집보다 커진다면 사람의 점프실력도 그냥 집보다 높게 뛸 수 있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동의하게 되면 내 머릿속에 등록된 심상은 충분히 노력한다면 극히 작은 정도의 발전을 언제나 이룩할 수 있다.”가 된다. 이러한 심상은 사실 본인이 가진 욕망 즉, “높이 뛰고 싶다.”라는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스스로 구축한 것이고 그 이면에는 인정 욕구와 성적인 욕구도 아마 동반될 것이다. 사실, 이것 자체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냥 이런 심상을 이용해서 다른 영역에서 스스로 노력할 수 있다면 오히려 노력하게 하고 발전하게 해주는 좋은 심상이 된다. 하지만 진짜로 집보다 높이 뛰겠다고 노력하게 되면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좌절이 심상의 긍정적인 면까지 파괴하게 되고 인생이 헝클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자기 계발서를 볼 때, 그 자기 계발서를 고른 나의 욕망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당연히 내가 낚인 것이라는 생각을 전제로 깔고 보게 된다. 그러면 예외 없이 너는 할 수 있다라는 식의 응원을 본다. 이 부분은 천천히 즐긴다. 현실에서 나를 칭찬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자기 계발서에서라도 가능하다고 말해주니 참 다행이다. 미약하나마 자존감을 추스릴 계기가 되어준다. 그리고 읽는다. 역시 나의 욕망을 자극하니 짜릿하고 흥분된다. 큰 바위를 쪼개고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집을 뛰어넘는 자신을 생각해본다.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으로 일을 쾌도난마로 해결하는 본인의 모습도 상상해본다. 책에서는 그런 자신이 가능하다고 연신 다독여준다. 잠시 고조된 자존감과 함께 그렇게 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방법을 찾는다. 방법을 실천하는 자신을 생각해본다. 거듭 생각하다 보면 거기에 구축된 심상이 보인다. 많이 읽다 보니 어느 순간 패턴이 보이는 것이다.

 

자기 계발서의 기본 패턴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어”, “조금만 노력하면 될거야”, “너의 잠재력을 믿어봐라는 식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나아가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심상을 기본으로 깔고 들어간다. 이것을 설득하는 과정은 대부분 원효대사의 모든 것이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와 같은 패턴이고 이것을 적극적으로 설득한다. 이 부분은 제일 좋아하는 심상이지만 현실에서는 구축하기 어려우므로 자기 계발서를 통해서 고양시킬 수밖에 없었다. 자기 계발서에서는 저마다 근거를 가지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심상을 강조하기 때문에 볼 때마다 새로운 재미가 있고 새로운 관점으로 나에게 이 심상을 제공해주었다. 이 맛에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색다른 재미를 주는 자기 계발서를 찾는 것에 중독되어버리기도 했다.

 

그 다음 즐길 거리는 그들이 제시하는 방법이다. 가능할 것 같은 방법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너무 어렵기도 하고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때로는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방법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다. 그것은 그대로 재미있다. 그야말로 병맛의 최고봉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마주치기 어렵거나 수행하기 어려운 방식이지만 동시에 가능할 것 같다고 상상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쉽다고 생각되는가? 나는 그것도 나름 문학창작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축지법을 쓰는 방법을 해설한 책을 봤는데, 몸을 완벽한 오각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우주가 알아서 축지를 일으켜 준다나? 너무 재미있었다. 완벽한 오각형은 대단한 떡밥 아닌가? 누구도 그 사람의 자세가 완벽한 오각형이라고 말해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해볼법한 쉬운 해결책이고 또, 동시에 객관적으로 완벽하지 않다고 부정하기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믿고 실제로 오각형을 만들려고 버둥대는 내 모습을 생각해보면 너무 웃긴다. 게다가 이런 것을 진짜 축지법을 쓰는 방법이라고 제시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서 역시 세상은 넓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류의 책들은 점점 창의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보았던 책에서는 축지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보폭을 늘려야 한다고 했는데 이제는 완벽한 오각형이라니 아마도 이러한 떡밥은 개연성 위주의 방법을 버리고 신비주의 방식으로 바꾼 것 같다. 다음에는 어떤 방법이 등장할지 내심 기대가 된다. 그러한 방법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도 대단한 창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시도해보지 않을 테지만 정말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면 그것은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 결론적으로 나는 자기 계발서를 이해함과 동시에 그 자기 계발서 읽기에 중독되었다. 이것은 무협과는 다른 읽는 재미가 있고, 때로는 내 정신을 정말 판타지로 옮겨주기 때문에 무척 즐겨 읽었다. 물론, 실행은 조금밖에 하지 않았다. 정말이다.




무협지의 재미있는 점은 미녀, 보석이나 황금, 절세보검 같은 것을 노리고 사람들이 분쟁하는 경우보다는 자신을 발전시키고 뭇 사람들 사이에서 우뚝 솟아날 수 있는 무술의 비급이나 영약을 찾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전부 내공과 연관이 있다. 무술의 비법을 전수하는 책이 무공비급이므로 무공비급을 통해서 무술을 익힐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무협의 세계에서 선호되는 무공비급은 이른바 신공비급이라고 하여 자신의 질적인 존재를 근본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종류의 지혜를 담은 책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혜는 단순히 추상적인 깨달음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현현한다. 경락이 되었든 근육의 구조가 되었든 효율적인 내공심법이 되었든 근본적인 현실적인 변화를 담보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근본적인 현실적인 변화는 내공의 변화로 나타난다.

 

2017년에 대한민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무협과 김용의 무협에 나오는 내공은 그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최근의 무협에서 보여주는 내공은 보유하고 있는 기(), , 에너지의 절대량을 의미한다. 그래서 기술을 구사하기 위하여 해당 에너지를 쓰고, 그 에너지가 고갈되고 나면 더 이상 그 기술을 쓸 수 없는 그런 개념이다. 이는 기존의 무협에 비해서 내공의 개념을 많이 단순화한 것에 가깝고, 사실상 자본주의화 되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대 무협의 내공 개념에 가장 잘 상응하는 것이 경영에서 보여주는 비즈니스 모델이기 때문이다. 내공에서 기()는 현금이고 내공심법은 그 돈을 운용하여 그 돈을 불리는 개념에 가깝다. 불순하고 탁한 내공은 사파의 경우에는 사채로 끌어들인 돈이어서 기간 내에 상환하지 못하면 주화입마를 당할 수 있고, 마도의 경우에는 불법적인 살인, 강도, 약탈 등으로 번 돈에 가까워 언제 잡혀갈지 모르기 때문에 언제 주화입마를 당할지 알 수 없는 돈에 가깝다. 그렇다면 정순한 내공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된다. 따라서 정순한 내공은 열심히 노동해서 티끌만치 돈을 받는 것이니 당연히 모으기 어렵다. 물론, 신공비급이라고 하는 것들은 열심히 일해서 레버리지를 당겨서 몇 배로 모을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준다. 최근의 무협에서 보여주는 내공은 기존의 무협에서 제시한 내공이라고 하는 것을 현대적인 내용에 따라서 변용한 것이다.

 

하지만 김용의 작품에서 읽은 내공은 그런 것이 아니다. 무슨 돈을 쌓듯이 저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변화된 그 무엇이다. 우선, 그것은 에너지라는 단순한 한 가지를 지칭하고 있지 않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내장과 생리 상태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구체적인 지점에서 시작된다. 거기에 내부의 보이지 않는 근육의 구체적인 힘도 포함된다. 근육과 같은 구체적인 힘 외에 활기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몸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정도를 의미한다. 오늘날의 용어로 바꾼다면 신진대사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무협에서의 활기는 단순한 신진대사가 아니라, 몸의 근원적인 생명력을 개선하는 것을 나타낸다. 그래서 몸이 날씨에 따라서 혹은 자연스러운 주기에 따라 어느 날은 몸이 찌뿌둥하고 어느 날은 활기차게 변하는 흐름을 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면서도 최적의 대응을 한다는 개념으로 자연스럽게 노화를 막는다는 개념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이 태초부터 가지고 태어난 잠재력을 해방함으로써 가능해지는데 이 잠재력을 해방하기 위해서는 경락을 타통해야 한다. , 이 경락의 타통을 위해 기공(氣功)에서 말하는 기()가 필요한 것이다. 이 경락의 타통은 도교식, 유교식, 불교식의 다양한 방식이 있고, 이러한 방식은 어떤 형이상학적인 세계관을 전제하고 있지만 단순히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몸에 해당 세계의 특성이 구현되는 것이다. , 무림인이 우주와 인간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단순히 그런가 보다 하고 아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우주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해야 진짜 깨달은 것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이유를 경락의 타통과 내공의 증진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당연히 한계가 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식 내공처럼 기()를 무한정 쌓아서 절대적인 존재가 되는 것과는 달리 당초 무협에서는 무공에서 동원할 수 있는 기의 양보다는 더 효율적이고 미세하고 교묘하게 조정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결국, 김용식 무협에서 내공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기 어려운 까닭은 한 인간의 드러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작용하는 모든 정신적 육체적 작용을 전부 내공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결국, 무협의 등장인물들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근본적 개선인 것이다.

 

영웅문 1부 사조영웅전에서 곽정은 이런 내공의 모습을 꽤 정확히 보여준다. 천성이 우직하고 영리하지 못해 스승이 가르치는 바를 잘 익히지 못하는 곽정은 사실 정직하고 성실한 것을 제외하면 가르치고 싶은 제자의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지나가는 전진교의 도사에게 전진교의 토납술을 배우면서 갑자기 그동안 어려웠던 기예를 익히는 것이 수월해지는 것을 보여준다. , 토납술을 배우면서 정신적인 부분과 육체적인 부분에 있어서 모두 어떤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약을 먹고 내공이 증진되면서 더 강력한 무술을 배울 수 있는 조건이 되고 더 강력한 신공비급인 구음진경을 익히면서 인간의 그릇과 가능성이 근본적으로 점점 넓어지게 된다.

 

지금은 이렇게 내공이니 기공이니 하는 개념을 전부 정리할 수 있지만 중학교 1학년 시절에는 아는 것 없이 그저 막연한 동경뿐이었다. 욕구는 강렬한데 그것을 찾을 방법을 전혀 모르고 괴로워하다가 친척 집에서 중국기공이라는 책을 발견한 것이다. 무협지에서는 무공비급을 발견한 주인공들이 게걸스럽게 책을 읽으면서 참오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내가 딱 그랬다. ‘중국기공을 무공비급 마냥 정성을 다해서 읽은 것이다.

 

아쉽지만 중국기공은 몸이 건강해지기 위한 체조와 약간의 정신훈련, 그리고 마사지 하는 법 등을 소개하고 있을 뿐, 바위를 부수고 잠재력을 개발하고 하는 내용이 없었다. 3일 밤낮으로 연구해도 없었다. 무협지에 나오는 것처럼 행간에 어떤 숨겨진 뜻이 있어 이를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아무리 봐도 없었다. 그냥 건강을 위한 책이었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이런 무공비급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서점을 뒤지다 보면 반드시 원하는 종류의 책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렇게 대형서점을 뒤졌고 처음 고른 책은 바로 소림 내공술이었다.

 

당시, 대형 서점에 가면 김정빈씨의 소설 에 이어 단() 시리즈가 유행하고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게 뭔지 당시에는 전혀 몰랐고 무협지와 무협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림사(小林寺)는 잘 알고 있었기에 소림 내공술을 처음 구매하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천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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