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무술, 내공, 기공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책을 보다 보면 어느 것이 사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거의 알기 어렵다. 하지만 이 세계를 들여다보게 되는 사람들 대부분이 무협이나 무술 그리고 내공이나 기공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그런 세계를 엿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들여다 본 그곳은 그 사람의 욕망이 그대로 투영된 세계를 보여준다. 강력한 무술을 닦고 싶다고 하면 강력해 보이는 무술이 나타날 것이고, 초능력을 얻고 싶으면 강력한 초능력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나타날 것이다. 불로장생의 비술부터 천인합일의 경지까지 인간이 얻고자 원하는 대부분의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당연히, 그 사람은 자신의 욕망이 이루어질 것 같은 이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사람이 바라는 것을 제시해주는 세계라고 해도 뭘 알아야 반응하는 법이고 그대로 따라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 소림 내공술을 읽으면서 이제 나도 무림의 고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희희낙락 하면서 페이지를 넘기는 와중에 어떤 글귀가 내 눈에 콕 박혔다. 조금이라도 실수하여 익히면 주화입마 증세가 나타날 수 있으니 완전히 알고 깨닫고 수행을 할 것이며 스승을 찾아 도움을 받으라는 경고문이다. 여기서 주화입마(走火入魔)에서 주화(走火)는 온 몸에 불(火)이 달린다는 뜻으로 지랄병을 의미하고 입마(入魔)는 귀신들린 것으로 미치는 것을 의미하니 어린 마음에는 인생 종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 경고문은 정말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수행의 실패는 바로 주화입마(走火入魔)라는 등식이 생길 정도였다. 처음의 희희낙락한 마음은 이제 사라지고 위기감이 엄습해온다. 잘못 익히면 인생을 종칠 수 있는데 계속 익힐 수 있을까? 스승을 구해보려고 했지만 어머니는 당연히 집에서 공부나 하라고 하셨다. 어디 가서 스승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혼자서 해봐야 하는데 잘못되면 인생을 종친다고 하니 신중해지지 않을 수 없다. 슬프지만 무림의 고수가 되보고 싶다는 욕망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이 분야를 더 이상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옵션은 없었다.
이제부터는 탐구가 시작되었다. 오늘날처럼 인터넷이 되지도 않고 주위에 물어볼 어른도 없었기 때문에 대형서점에서 필요해 보이는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가면서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욕망은 당장 하늘을 날고 바위를 깨부수게 해주는 丹 시리즈의 책들(丹의 완성, 丹의 실상, 神功)을 원했지만 이미 주입된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대한 공포로 인해 내가 스스로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책 위주로 살펴보고 이론적으로 검증해보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이 부분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丹 시리즈의 책들(丹의 완성, 丹의 실상, 神功)은 주화입마에 대한 경고문이 거의 없고 너무나 쉽게 선도를 성취하여 초능력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었다. 아마도 앞서 다른 것들을 먼저 접하지 않았으면 그대로 따라하면서 상당한 부작용을 얻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책을 광범위하게 읽다보면 저자들이 서로서로 논박하고 있어서 어느 순간부터 의심이 강력하게 들게 된다. 어떤 사람은 고행에 가까울 정도로 호흡을 멈추게 하는 훈련을 시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호흡을 멈춰선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약(藥)을 쓰는 법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고, 명상 위주로 흐르는 사람도 있다. 신체의 동작이 동반된 훈련을 강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부좌로 앉아있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진실이 무엇인지 검증할 방법이 없었지만 주화입마(走火入魔) 없이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는 가장 소극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계속 해당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연구를 지속하는 한편, 최소한의 공통점을 찾고, 가장 안전한 방법을 선정해보기로 한 것이다. 즉, 누군가가 위험하다고 말하는 방식은 전부 폐기했다. 그래서 일단, 호흡을 멈추는 방식의 수행을 전부 폐기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은 전부 하지 않았다.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진도를 나가기로 했다.
이런 기준으로 수행법을 분류한 결과 이른바 안전해 보이는 나만의 방식을 결정할 수 있었다.
- 계속 관련 내용을 공부한다.
- 이완 훈련을 지속적으로 하여 숙련도를 올린다.
- 호흡을 최대한 길게 숨을 내쉬고 들이쉬도록 연습하되 호흡을 멈추지는 않는다.
- 기(氣)를 모으고 움직이고 하는 내용은 하는 방법을 모르므로 포기한다.
- 스승 없이 익힐 수 없는 역복식 호흡, 약을 이용한 훈련, 차력 같은 것은 포기한다.
-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훈련으로 호흡을 세는 훈련을 한다.
그리고 점차 공부를 해나가면서 기공이나 신비주의 전통에서 수행을 통해서 구축하려고 하는 핵심은 결국 심상(心象)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물론, 그 심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도의 단순한 심상이 아니라 거의 존재 자체를 던질 수 있는 수준의 강력한 심상을 말하고 내 신체에 국한될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현현할 정도의 절대적인 지배력을 발휘하는 심상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이 있는 사람이 이러한 심상을 구축하는데 유리하고 신앙이 없다면 형이상학적인 학문의 뒷받침이라도 받아야 강력한 심상을 구축할 수 있다.
심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대략 4년 정도가 소요되었다. 나의 중학시절은 중2병적인 증세와 함께 시작되어 어떤 분야를 미친 듯이 파고들면서 끝났고 그 모험은 대략 고2가 되었을 때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이것은 나의 첫 번째 완결된 모험이었고, 이 모험은 나에게 무척 큰 자산과 어마어마한 부작용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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