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는 무수히 많은 소리가 있지만 사람에겐 특별한 소리들이 있다. 그것은 말소리다. 왜 말소리는 특별한가? 말소리는 우리 머릿속에서 의미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특별하다. 그리고 그 의미작용이 우리 정신의 핵심 중 하나이다. 


 말소리가 너무 특수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떤 소리가 말소리처럼 들리면 그 말소리에 몰입한다. 예전에 자주 돌아다니던 괴담처럼 테이프를 거꾸로 돌렸을 때, 누군가의 메시지가 들린다고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어디서든 말소리 비슷한 것이 들리면 소리의 세세한 내용은 사라지고 그 말소리의 내용에 집중하게 된다. 그 때부터 소리는 그저 말소리의 의미를 도와주는 장식 정도의 역할을 한다. 이것은 어디서든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의 본능이다. 그리고 말소리는 의미의 직접적 현현이다.


 말소리는 다른 소리와 매우 다르다. 자연의 소리는 감상이나 분석의 대상 등 외부의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언어로 조직된 말소리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의 머릿속에 들어와 직접적으로 다양한 반응을 일으킨다. “사랑”이라는 말을 들으면 다양한 사랑이 떠오르고 사랑했던 사람과 자신이 하려는 사랑 등이 무수히 떠오른다. 욕설을 들으면 분노, 원망, 복수, 맞받아칠 욕 등이 떠오른다. 모든 것은 자동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욕설을 듣고 안들은 것으로 할 수 없다. 단지 피어오르는 분노와 온갖 상상들을 참거나 다른 방식으로 전환할 뿐이다. 좋은 말을 들으면 절로 마음이 좋아진다. 겉으로 너무 좋아하는 태를 나타내지 않기 위해서 얼굴 표정을 엄숙하게 지어야 한다. 그래서 언어는 단지 소리가 아니다. 소리의 형태로 전달될 뿐, 우리의 정신을 직접적으로 조작하는 일련의 코드다.


 그런데 수십 년간 영어를 언어로 공부하고 사용했지만 그것이 언어로 작동하지 않는다. 언어는 머릿속으로 바로 다이렉트로 꽂혀 작용을 일으켜야 하는데, 아쉽게도 영어는 그저 일련의 암호해독으로 사용된다. 단어를 찾고 이 단어의 한국어식 의미를 도출하고 단어들을 연결해서 가장 그럴 법한 해석을 찾는다. 그리고 그 해석이 완벽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한껏 위축된다. 한국어로 된 어려운 책을 읽을 때는 “뭐 이렇게 어렵게 썼어!”라고 책을 던지겠지만 영어로 된 쉬운 책을 읽어도 그저 해석이 올바른지 여부에 전전긍긍할 뿐이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궁금했고 이리저리 부딪히다 보니 어렴풋하게 입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는 입으로 하는 말의 주체가 입이라는 점을 검증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Anki로 많은 한국어 문장들을 외웠고 이로 인하여 문체와 문장, 글쓰기의 디테일한 과정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덕분에 40년 만에 문장 맛을 보게 되었다. English-Restart를 입으로 따라하면서 영어가 편해지는 느낌을 받았고, 수십 번 본 미드나마 처음으로 자막 없이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자막 없이 본 미드는 그 공감과 감동의 깊이가 달랐다. 마지막으로 음성학 공부와 IPA 발음 연습을 통하여 그 동안 안 들리던 영어가 부드럽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처음으로 영어가 언어로써 직접적으로 머릿속에 꽂히는 느낌을 받았다.


 본격적으로 입을 이용하여 공부하고 연습하면서 평생 없었던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 언어와 관련된 심화된 부분이었다. 이공계에게 없었던 글과 문장에 대한 감수성, 외국어 등이다. 정신적으로 없었던 것들이 생겨난다면 없었던 새로운 신경이 배선된 것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하고 이공계는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입을 움직여 얻어지는 것들을 보면서 입의 운동을 통한 신경배선이 언어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는 개인적인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입의 운동이 언어의 모든 것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입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뇌의 언어 중추는 당연히 입과 연결되어 있고, 입에서 생긴 신호를 다이렉트로 반영할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리고 이제껏 겪어온 바는 이 가설이 완전히 틀린 가설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런 관점 위에서 음성학은 마지막 화룡점정을 찍었다. 음성학은 소리의 알파벳이 있다는 점을 가리켜주었다. 마치 글자처럼 우리 머릿속에 들려오는 말소리를 자동으로 분류하고 조합하여 의미를 만들어내는 가장 기본적인 음성 알파벳이 머릿속에 있는 것이다. 자연에서 들려오는 소리들 중에서 이 소리의 알파벳이 언어적인 규칙에 따라 조합되면 말소리가 된다. 그리고 그 말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닌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코드가 된다. 이 코드를 음성체계라고 부른다. 


 음성체계는 완결되어 닫혀 있다. 음성이 완결된 체계라는 말은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일반적인 한국인에게 어떤 소리를 들려주고 말로 옮기라고 하면 한국어로 옮기게 된다. 칠판을 긁는 소름끼치는 소리를 묘사하라고 하면 ‘끼~잉’ 이나 ‘ㄲ~ㄲ’같은 소리로 어떻게든 유사하게 소리를 내려고 하지만 그 소리 자체가 아니라 한국어로 변형된 소리를 낸다. 그 소리와 얼마나 유사하든 간에 그저 한국어 발음의 변형에 불과하다. 세상에는 무한하게 많은 소리가 다채롭게 있지만 한국인은 그런 모든 소리를 한국어의 음성체계로만 인식한다. 그리고 그 음성체계 밖의 소리는 인지하기 힘들다. 소리 그 자체야 들을 수 있고 감상할 수 있고 소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느끼지만 결국, 언어로 나타낼 때는 한국어 소리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 한국어 소리가 한국인의 머릿속에서 언어로써 활동할 수 있는 유일한 소리다.


 그런데 이렇게 완결된 음성체계가 각 언어권별로 다르다. 비슷한 곳도 있지만 매우 다른 곳도 존재한다. 특히, 한국어와 영어는 음성체계가 매우 달라서 서로의 언어를 듣고 이해하기 매우 어렵다. 따라서 한국인이 영어를 익히려면 한국어의 닫혀 있는 음성체계를 열고 새로운 음성체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 음성체계가 장착되면 그제서야 마치 컴퓨터에 해당 언어팩이 설치되듯 의사소통이 가능해질 것이다. 단어와 문장은 그때부터 찾아도 늦지 않는다.


 그럼 이 음성체계를 어떻게 하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마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재능이 있는 이라면 그저 듣기만 해도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재능이 없다면 하나한 분석하고 따져가면서 공부하고 하나하나 훈련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그 재능 없는 사람이다. 


 내 자신이 재능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전개할 Ankilog는 음성학 이론도 자세히 공부하고 동시에 발음도 충분히 많이 그리고 자세히 연습하려고 한다. 아마도 Ankilog가 빨리 나오지는 못할 것 같다. 한 번 공부했지만 그래도 저자들마다 의견이 달라서 이러한 내용들을 소화하고 그에 맞는 훈련과제를 만들어 Anki로 배포하는 과정이 녹록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말 오래된 과제를 깔끔하게 날려버릴 절호의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 

 영어는 머리로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입과 귀로 훈련해야할 기술이라는 관점에 서서 영어 교재들을 살펴보면 모두 하나같이 발음을 먼저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 발음을 올바르게 하는 방법을 이야기 해주는데 매우 간단하다. 원어민이 발음한 것을 따라서 발음한다. 그리고 그 둘을 비교한다. 이 과정을 스스로 발음한 것과 원어민이 발음한 것이 똑같아 질 때까지 반복하면 된다. 


 절대 음감을 가졌다거나, 소리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들이라면 이런 방법으로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해하기도 실천하기도 어려운 방법이었다. 이미 영절하식 영어 공부를 시도할 때, 깨달았기 때문이다. 안 들리는 발음은 계속 안 들린다. 그런데 안 들리는 발음을 따라하고 비교하라고 하니 답답할 따름이다. 모든 책들이 이런 방법을 강조하니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쪽은 내 쪽인 것 같다. 하긴, 원래 음악을 어려워하고 소리에 민감하지 않은 편이라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안되는 방법을 시도할 순 없었다. 또, 내 영어 공부의 목적은 책과 기사를 읽는 것이다. 영어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거나 영어로 대화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런데 대화할 때에나 쓸모 있어 보이는 발음을 별로 가능성 없어 보이는 방법으로 익히라고 하니 거부감이 들었다. 


 발음에서 영어 훈련에 대한 관심을 접으려고 했지만, 번역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Anki로 책을 통째로 외우다 보니 그저 책을 간단하게 읽어내릴 때완느 다르게 책에 있는 대부분의 문제를 면밀히 파악하게 된다. 오타, 오기, 그리고 이상한 문장들을 전부 발견하고 이것을 수정하려고 끙끙거린다. 특히, 기술 관련 서적들은 슬플 정도로 오류가 많았다. 노골적으로 잘못된 정보가 적혀 있는 경우도 많고, 말을 얼버무리거나 두루뭉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구글 번역기의 여파인지 예전에는 보기 힘든 이상한 역어체와 이상한 번역도 종종 마주치게 된다. 이들은 그저 슥 지나가듯 읽을 때는 제대로 번역된 느낌을 준다. 그런데 한자한자 곱씹어 보면 비문이거나 인간으로서 수용하기 어려운 기묘한 문장인 경우가 많다. 기술 관련 번역서들은 온통 지뢰밭인 경우가 많다. 원작자가 글 재주가 없는 경우가 많고, 번역자가 해당 기술에 무지한 비전공자이거나 반대로 전공자이지만 글 재주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구글 번역기를 얹으면 화룡점정이다. 언뜻 읽으면 서툴게 번역된 느낌을 주지만 제대로 읽으면 읽을수록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의미의 미로를 완성시킨다. 결국, 번역서를 원서와 하나하나 비교하면서 읽거나 원서 그자체로 읽게 된다.


 영어와 마주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번역된 책을 읽으려고 해도 어디서 엉뚱한 오역이 나타날지 몰라 결국 원서를 봐야 한다. 매번 모르는 단어만 찾아보고 어떻게든 의미를 맞춰보고 넘어가는 식의 책 읽기가 싫다. 쓰여진 글의 의미를 찾지만 언어로써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의미를 이리저리 배치해 보면서 딱 맞는 한국어를 찾는 과정이다. 누군가에게 전해들은 풍경 마냥 자신 없는 투로 “제주도가 아름답다.”라고 말하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영어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한국어에 영어 단어를 좀 더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시간은 시간대로 소모되고 투입된 시간과 노력 대비 얻는 것도 적다. 마지막으로 독서 경험이 최악이다. 읽다가 조금이라도 모르는 단어나 구문이 나오면 이리저리 뒤져보다가 호흡이 끊기면서 몰입하지 못하기 일쑤다. 이렇게 문제가 쌓이다 보니 차라리 영어를 어떻게든 익히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영어를 익혀야 한다고 해도 무슨 팁 던져주는 듯이 “이렇게 읽으세요.” 하는 식의 발음 학습들이 발음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 내용을 신뢰하기도 어려웠다. 이런 경우 방법은 하나뿐이다. 시중에 나오는 학습서를 뒤지지 말고 좀 더 전문적인 학술 영역으로 들어가서 자료를 찾는 것이다. 당연히 새로운 개념과 내용을 익혀야 하는 귀찮은 길이지만 그나마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생산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거 하기 싫어서 영어 공부 안 하려고 했던건 데 결국, 이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눈물을 머금고 관련 영역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언어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결국, 음성학이라는 마이너해 보이는 분야를 발견했다.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마라”(이하 영절하) 공부 방법을 듣고 나서 호기심에 무작정 미드를 녹음해서 귀에다 때려 박아보았지만 성과가 없었다. 영어 전반에서 기량이 향상되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주구장창 듣는 미드도 여전히 잘 알아듣지 못했다. 몇 개월이 지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배경음만 점점 친숙해질 뿐이었다. 필시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뭔지 알 수 없었다. 호기심이 늘 그렇듯 효과가 없어 보이니 더 이상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고 그렇게 공부를 접었다. 




 몇 년 후에 도서관에서 “English RE-start” 시리즈를 봤다. 책이 예뻤고 무슨 의도로 책을 만들었는지 명확해보여서 읽어봤다. 적절한 수준의 쉬운 영어로 주변을 묘사하고 단순한 이야기를 그림과 같이 전개하고 있었다. 한국어가 개입되지 않고 직관적인 그림을 보면서 영어를 이해하는 과정을 그려나간 것이 흥미로웠지만 그 뿐이었다. 영어 공부에 관심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인연인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하면서 계속 관련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책도 사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학습하는 앱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앱이 나의 호기심을 다시 자극했다. 






 “English RE-start”는 한 페이지를 4컷으로 분할하여 간단한 이야기를 전개하는 구조를 가진다. 그리고 “English RE-start” 학습 앱은 분할된 컷을 한 화면으로 해서 그림과 함께 텍스트를 보여주면서 원어민이 천천히 텍스트를 읽어준다. 그리고 다음 컷으로 이동한다. 이 간단한 구성이 내게 아이디어를 주었다. 즉, 영절하식 공부 방법을 이 앱을 통해서 구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즉, 영절하 식 공부방법을 “English RE-start”의 한 컷 별로 구현하는 것이다. 한 컷에 들어간 텍스트는 몇 마디 되지 않으니 반복해서 듣기 편하다. 그러니 소리가 들릴 때까지 그 짧은 문구를 반복해서 듣느다. 또, 원어민의 목소리를 바로 따라서 읽으면 흔히 말하는 섀도잉이 된다. 내가 정확하게 들었는지 여부는 짧은 그 문장을 듣자마자 그대로 따라할 수 있는지 확인하면 된다. 문장을 외우지 않아도 짧은 문장이기 때문에 바로바로 따라할 수 있었다. 아이디어는 훌륭해 보였다.


 “English RE-start”의 Basic에서 advanced까지 시간이 되는대로 순차적으로 반복했다. 운동을 하거나 이동시간에 간단히 읊조리면서 반복했다. 그리고 2~3개월 정도 지나자 성과가 나타났다. 처음으로 미드를 자막 없이 온전히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자막 없이 본 미드는 정말 재미있었다.  


 대단한 성과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성과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 드라마 하나만 가능했다. 이미 수십번 반복해서 보았기 때문에 모든 단어와 내용을 완전히 꿰고 있는 에피소드만 자막 없이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여전히 처음 보는 미드는 자막 없이는 보지 못하고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멘붕에 빠지기 일쑤였다.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이전에는 수십 번을 봐도 자막 없이는 감상에 불가능했다. 명백한 발전이고 성취였다. 


 일단, 성취가 생기니 욕심도 같이 생긴다. 성장이 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태를 살펴보고 부족한 점을 찾아봤다. 그 결과 2가지가 문제였다. 


 첫 번째는 듣기가 안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단어를 전혀 듣지 못한다. 자막 없이 볼 수 있었던 미드는 모든 단어와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새로운 단어가 나오면 그게 실제로 아는 단어라 할지라도 소리로는 알아듣지 못하고 힘겹게 유지하던 정신이 무너져버렸다. 한국말이라면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대충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이를 추론해볼 수 있는데, 영어에서는 아예 단어의 소리를 알 수 없으니 이게 되지 않았다.


 두 번째는 맥락이었다. “English RE-start”는 그저 매우 단순한 이야기와 쉬운 말만 사용하고 있어서 사회적 의사소통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았다. 즉, 관용어나 농담, 반어 등 다양한 감정이 섞여서 문장에 반영될 때는 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처음엔 문법을 몰라서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저것 뒤져본 결과, 영어권의 문화와 전통들에 무지하고 관용적인 표현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도 조금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건 언어 형식에 익숙해진 것이었다. 매일 “English RE-start”의 원어민이 발음한 것을 듣고, 따라하며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입으로 영어 문장을 말하는 게 익숙해졌다. 그리고 입이 영어 구조에 익숙해지면서 수십번 반복해서 봐도 어색하던 미드가 처음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수십 년간 문법을 공부하고 좋은 점수를 받아도 익숙해지지 않았던 영어 형식이 입으로 반복숙달하면서 바로 익숙해진 것이다.


 영어를 못해도 20년은 공부했지만 전혀 늘지 않고 그저 영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요령만 생겼을 뿐이다. 그런데 입으로 연습한지 2~3개월 만에 눈에 보일 정도로 실력 성장이 있었다. 이렇게 되니 무엇을 해야할지 매우 명백해졌다. 필요한 것은 영어 공부가 아니라 영어 훈련이었다. 나아갈 길이 보이니 조금 신났다. 도서관과 서점을 뒤지면서 어떻게 영어 훈련을 하면 좋을지 책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영절하식 공부방법에는 더 이상 호기심이 생기지 않게되었다. 나에겐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지만 영어 훈련의 관점에서 보면 별로 효율적인 방법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English RE-start”에서 짧은 컷 단위로 공부해본 마지막 시도에서조차도 영절하식 훈련방법 보다는 입으로 반복한 것에서 더 큰 효과를 봤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호기심에 영미권의 문법책을 보면서 신기한 것을 보게 되었다. 영미권의 문법책은 우선 철자를 제대로 쓰는 법, 잘 틀리는 스펠링부터 지적하고 흔한 실수들, 주어와 술어를 일치시키기 등등 소소한 팁들로 가득 차 있다. 거기에는 말을 만들고 조립하는 내용들이 많지 않다. 반대로 말을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듬어서 좀 더 품격 있는 영어를 쓸 수 있게 할까 하는 내용들 위주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다. 한국어를 하는데 문법이 필요하지 않다. 자연스럽게 알고 익힌다. 그렇지만 말이나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정확하게 전달되고 격조있게 보이려고 한다. 그 때, 문법이 필요하다. 문법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언어들을 좀 더 정련된 방식으로 조직하여 목적에 충분히 부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입말이 있어야 문법도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언어 공부는 먼저 언어를 몸에 붙이고 그 다음에 문법을 익히는 것이 맞을 듯하다.


 그렇다면 입말은 어떻게 완성해야 할까? 듣고 따라하면 된다. 그렇게 반복연습을 하고 어느 정도 이상 공부량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입말은 완성된다. 영어 공부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이야기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영어로 꿈을 꾸게 되면 언어가 장착된 것이다.”라는 말이다. 실제로 친척 중에 이런 현상을 겪은 사람이 있었는데 이상해 보이는 영어를 자랑스럽게 말하고 그것을 외국인이 잘 받아줘서 놀란 기억이 있다. 그런데 입말의 완성에는 큰 난관이 있다. 그건 음성체계가 다르다는 점이다. 


 언어에서 사용되는 말소리는 실제 소리와 다르다. 가령, 개가 짖는 것을 보면, 나라와 상관없이 개들은 비슷하게 짖는다. 하지만 그것을 나타내는 말소리는 다르다. 우리는 ‘멍멍’, 독일은 ‘바우바우’, 러시아는 ‘가우가우’, 일본은 ‘왕왕’처럼 다르게 표시하고 다르게 발음한다. 이는 언어에서 사용되는 소리가 자연의 소리를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그저 흉내만 내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라들 마다 저마다의 음성체계에 따라서 소리를 유사해 보이는 말소리로 옮긴다. 


 그러면 음성체계가 다를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존에게 ‘배트맨’에 대해서 신나게 이야기했을 때, 존은 한 참을 듣다가 내가 배트맨이 박쥐처럼 날아다니는 모습을 묘사하고 나서야 알았다는 듯이 'bat man'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말한 ‘배트맨’을 ‘bat man’이 아니라 ‘pet men’으로 듣고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박쥐 인간이 아니라 애완동물을 다루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음성학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되었다. 영어 원어민에게 우리의 ‘ㅂ’ 발음은 ‘p’에 가깝다. 그래서 여권을 보면 박씨는 ‘Park’씨이고, 백씨는 ‘Paik’이다. 우리 귀에는 ‘b’가 ‘ㅂ’에 더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영어 원어민들은 목의 성대를 울리는지 아닌지를 민감하게 인지하기 때문에 우리가 말하는 ‘ㅂ’를 'p'로 받아들인다. 내가 ‘배트맨’에서 목의 성대를 울리면서 ‘ㅂ’을 발음했다면 존도 알아들었을 것이다. 


 또, ‘배트맨’을 ‘pet men’으로 알아들었을 때 존은 ‘애’를 전부 ‘e’로 들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우리 언어의 변화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애’와 ‘에’의 발음이 우리에게 있었지만 현재는 전부 ‘에’로 융합되고 있다. 즉, ‘애’와 ‘에’를 구별하여 인식하거나 발음하지 못하고 전부 ‘에’로 발음한다. 그래서 이제는 ‘네가’라고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니가’라고 말하게 된다. ‘네가’와 ‘내가’가 말소리로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배트맨’이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실제 한국어 발음은 ‘베트멘’이라고 한 셈이다. 


 존과 나는 같은 언어를 말한다고 했지만 실은 전혀 다르게 듣고 있었다. 음성 체계가 다르니 의사소통이 근본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치 이런 느낌이다. 내가 ‘배트맨’이라고 발음하는 것은 키보드에서 한글로 ‘배트맨’이라고 적는 것과 같다. 상대는 한글 자판이 아니라 영어자판만 있어서 영어 알파벳 'qoxmaos'로 알아듣게 된다. 당연히, 상대는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영어를 하고 있지만 상대는 그것을 들을 때마다 어색해하고 어이없어하며 의문스러워 하니 내 자신이 영어를 제대로 한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


 더 슬픈 것은 우리는 이러한 말소리 차이에 대해서 알기도 어렵고 극복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언어의 말소리는 일종의 대표소리라서 비슷하게 들리는 음들을 하나의 언어음으로 묶어서 생각한다. 따라서 모국어가 있는 사람들은 세상의 소리를 특정 말소리로 뭉뚱그려서 인식한다. 그래서 한국인이 영어를 배우려고 하면 영어의 소리를 한글에 맞춰 인식하기 때문에 영어의 말소리들이 이상해진다. 그래서 아무리 내가 존이 말하는 ‘bat man’을 정확하게 흉내내보지만 나오는 말은 ‘배트맨’이 된다. 이를 모국어 함정이라고 하는데, 모국어의 음성체계 때문에 외국어의 음성체계가 왜곡되어버리는 현상이다. 따라서 절대음감 같이 소리를 미세하게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음성체계의 왜곡으로 인하여 제대로 외국어를 받아들이기 어렵게 된다. 


 그런데 말소리를 정확하게 익히는 것이 중요한가? 모국어 발음이 형편없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이런 사람들도 안 좋은 발음의 모국어를 이용하여 사는데 문제가 없다. 그런데 굳이 외국인인 한국인이 정확한 발음을 지켜야할까? 당연히 중요하다.


 일단, 언어의 본질인 의사소통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정확한 말소리는 중요하다. 기껏 영어를 배워놓고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큰 손해인가? 하지만 그럼 점 외에도 제2외국어로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에겐 정확한 말소리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어야 정확하게 들을 수 있고 정확하게 상대의 언어경험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다 함은 정확하게 입과 혀를 움직이고 성대를 진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겪어봐야 그 미묘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가령, 군대 생활이 얼마나 짜증나는지 아무리 이야기해도 어떤 이는 관심이 없고 어떤 이는 군대를 동경하기도 한다. 하지만 같이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은 눈만 마주치고 대략 ‘군대’라는 말만 해도 어느새 공감 모드가 되어 듣게 된다. 마찬가지로 언어를 발화하는 것도 같은 경험이다. 왜 ‘파티(party)’가 ‘파뤼’로 발음되는지에 대해서 언어학에서 방언이 어떻고 지역이 어떻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실제 ‘파티’를 제대로 발음하다보면 왜 ‘파뤼’라고 발음하는지 느낌이 온다. '파티'라고 발음하면 마지막까지 각 잡고 긴장하며 발음하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파뤼'라고 발음하면 긴장을 풀고 즐기는 마음이 되면서 개방되는 느낌, 캐주얼한 느낌을 준다. 이런 느낌을 받고 경험이 쌓이면 언제 '파티'라고 말하고 언제 '파뤼'라고 말해야 할지 감이 온다.


 발음 연습을 하다보면 정확한 발음과 그 발음의 미묘한 변형, 강세, 억양 등이 결합되어 언어의 맛이 살아나고, 입에 착 달라붙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발화 경험이 쌓이면 상대의 말이 단순히 사전에서 찾은 대응하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그 자리에서 상대의 말을 경험하듯 공감하게 해주는 공통의 언어가 된다. 단순히 상대가 내뱉은 단어 ‘I love you.’를 ‘나 사랑해 너’로 번역하는 게 아니라 지금 이 데이트 자리에서 서로의 감정이 오가는 모든 상황을 ‘I love you’로 공감한다.


 결국, 영어를 공부하려면 우선, 입말을 정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시작으로 정확한 발음과 음성체계를 구축하는 일이 필요하다. 음성체계가 구축되면 이제 스스로 발음하듯 상대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이 때부터는 영어를 정확히 듣고 발화할 수 있어 유튜브나 미드를 이용해서 영어 공부를 하거나 외국인과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어가 발전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런 토대가 없다면 매순간 자막을 보면서 단어를 확인하고 그 단어를 한글화된 발음으로 다시 뭉뚱그려서 익혀야 한다. 언어 경험이 축적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의미 찾기와 해석의 조합을 연습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매번 머리를 싸매고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피곤한 일이다. 그렇게 에너지를 쏟아도 언어 경험의 미묘한 내용들은 전부 놓치게 된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꽤 명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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