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수한자 개요> Ankilog


요약(Summary)

부수한자를 알면 한자의 주요 키워드전체적인 체계를 알 수 있고 복잡한 한자를 단순한 부수한자로 쪼개서 익힐 수 있게 되어 한자의 이해와 수용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함


한자는 현재 대략 5만자로 되어 있는 정말 많은 글자로 이루어진 복잡한 언어체계이다. 글자가 너무 많으니 각각의 글자의 정확한 의미를 알려주는 사전을 갖추어야만 한다. 하지만 모든 글자를 모아서 사전을 만들려고 해도 사람들이 사전에서 원하는 글자를 찾아서 볼 수 있도록 어떤 기준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부수다.

 

부수란 한자를 키워드로 분류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가령, 사람인()이 부수인 한자는 보통 사람과 관련된 내용을 표현하기 위한 한자인 경우가 많다. 즉, 사람이 키워드인 셈이다. 하지만 한자의 복잡함은 키워드로 깔끔하게 분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어서 어떤 경우에는 부수의 키워드가 제시하는 의미와 그 한자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이렇게 엉성해 보이는 부수를 왜 공부해야 하는 것일까?

 

부수는 무척 오래된 한자의 분류체계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자전(字典)인 설문해자(說文解字)부터 벌써 540개의 부수를 사용했고, 기라성 같은 학자들이 이를 다듬고 정련해서 부수로 사용되는 한자를 줄여왔다. 그래서 강희자전에 이르러서는 부수를 214개로 줄였다. 그러다 보니 부수라는 키워드가 모든 한자를 이론적으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많은 고민이 집약된 하나의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 굉장히 쓸만한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수한자 214개를 공부한다는 것은 전체 한자의 키워드를 대략 214개로 축약하고 있는 것이고 214개의 부수 한자를 공부함으로써 전체 한자에 대한 대략적인 지도가 생기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대략적인 지도를 알고 움직이는 것과 아무것도 모르고 움직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한자도 마찬가지다 부수를 알고 한자를 공부하면 해당 글자의 의미와 강조점을 대략 알 수 있기 때문에 한자를 받아들이는 것이 한결 쉬워진다.

 

, 한자는 1획에서 37획까지의 간단한 글자에서부터 매우 복잡한 모양의 글자까지 다양한 조합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러한 한자를 단순히 모양을 외우면서 공부하면 그 복잡함에 질려버리게 된다. 하지만 부수한자를 알고 있으면 아무리 복잡한 글자라고 해도 2~5개의 부수한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글자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 한자의 복잡도가 매우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추후 한자를 공부함에 있어서도 부수한자를 알고 있는가 모르는가에 따라서 그 수용성과 확장성이 확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부수한자를 먼저 공부하기로 한다. 부수한자는 획수별로 1획부터 17획까지 간단한 글자에서부터 복잡한 글자로 나아가므로 점진적으로 난이도를 올리게끔 획수별로 공부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획수별로 포스팅하고 관련 Anki 파일을 올릴 예정이다


Anki 학습파일 : 부수한자_개요.ap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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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에 등장하는 고수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질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다루는 책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러한 책들을 탐욕스럽게 읽어댔다. 그런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하거나 스승없이 수행하면 주화입마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자 두 번째 질문이 튀어나왔다.

 

이 책이 말하는 내용을 어떻게 정확하게 이해할 것인가?

 

한문도 모르고, 배경이 되는 동양철학도 모른다. 일단, 한글로 번역된 책들을 찾아서 읽어본다. 너무 어려워 나에게 맞는 수준의 책을 골라서 읽는다. 수도 없이 책을 펼쳐보고 사보고 읽어본다. 그래도 이해하기 어렵다. 조금 다른 관점으로 말하고 있는 책을 읽어본다. 그랬더니 서로 말이 다르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다시 질문이 나온다.

 

어떤 책은 믿을만 하고 어떤 책을 믿을 수 없을까?

 

어떤 것은 허황된 것 같고 어떤 것은 조금 현실성이 있어 보인다. 읽어본 책들을 현실 가능성, 근거 제시 등으로 신뢰할 수 있는지 판단해보고 신뢰 등급을 매긴다. 그리고 신뢰등급 수준에 따라서 서로 공통으로 지지하고 있는 사실과 서로 비난하는 사실을 나누어 가장 안전하게 공통으로 지지하고 있는 것 위주로 방법을 구축한다. 실행 방법에 있어서도 큰 부작용이 발생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실행하기 편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어 방법을 구축한다. 결국, 이구동성으로 옳다고 말하는 바를 중심으로 실행할 수 있고 큰 부작용이 없을 것 같은 것으로 실행 플랜을 짠다. 그랬더니 갑자기 이 세계가 이해되며 결론에 도달한다.

 

그래서 기공류, 요가류, 명상류 등이 말하는 바는 결국, 심상(心象)의 구축이고 그 외의 내용들은 내 스스로의 욕망에 내가 휘둘리고 있구나 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 모든 것은 스스로 생각하고 연구하는 과정이었다. 관련 내용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비웃음 당하고 선생님들에게 말하면 이상한 눈으로 본다. 부모님은 걱정했고, 친척들은 괴짜에 천방지축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혼자 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중학생이 중2병스러운 집착과 탐욕으로 연구를 하니 연구의 동력은 충분했다. 겉으로는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척 열심히 꾸며댔지만 속으로는 곧 무림이 고수가 되어서 그 결과를 보여주마 하는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돈에 눈이 멀어 무슨 짓이든 마다하지 않는 어리석음처럼 나도 무림의 고수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눈이 멀어 사람들이 아무리 충고해도 그것을 듣지 않고 연구를 계속했다.

 

이것은 분명한 어리석음이었다. 현실적으로 무림의 고수가 있다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것이고 알려질 것이 거의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유명한 무술가는 수십년의 고련 끝에 소의 뿔을 꺽은 최배달, 이소룡, 역도산 같은 이 뿐이었다. 물론, 그들의 무술도 어린 아이 눈에는 너무 대단해 보였지만 너무 어렵고 고된 길로 보였고, 그 때 당시의 현실에서는 도전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친구들 어른들 모두 이러한 어리석음을 바로잡아 주려고 말했지만 스스로는 그럴수록 더 현실을 부정하고 연구를 계속했으니 완전히 탐욕에 물들어 눈이 어두워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어리석었던 것은 분명하고 결과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히, 이 때 잘못 배우고 내린 결론 때문에 20년간 체증에 시달려야 했지만 후회하느냐고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것은 나의 첫 연구였다. 제대로 알기 위해서 노력하고 사색하고 연구하고 진위를 판단하고 실천해보고 하는 과정이 모두 동반되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마다 그 희열에 기뻐했고 기대했던 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낙담하기도 했다. 비록 공부해야하는 중고등학교 시절이었지만 이 탐욕에 눈이 먼 어리석은 연구가 너무 재미있었다. 하루 종일 사색하고 가정하는 버릇이 생겼고 스스로의 머리와 눈으로 진위를 가리려고 노력해볼 수 있었다. 비록 원하는 만큼 좋은 결과를 맺지는 못하고 결과적으로 시간 낭비가 되기도 했지만 다른 친구들이 음악과 게임에 빠지듯이 나도 이러한 연구에 빠진 것이니 꼭 낭비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충분할 정도로 이득을 얻은 것 같다.

 

우선, 나는 개성이 생기고 권위자가 되었다. 전교생 중에서 이런 분야를 잘 알고 있는 친구는 내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좋든 싫든 유일하다는 자신감으로 연결되었다.

 

두 번째로는 이 분야의 공부를 통해서 원하는 결과는 얻지 못했지만 부수적으로 얻은 기술들이 정말 많았다. 심상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공부하기 싫어하는 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명상과 여러 수행을 통해서 단기적으로나마 상당히 강력한 집중력을 쓸 수 있게 되었다. , 이미지 트레이닝 기술, 다독(多讀), 밤새기, 공부를 지속할 경우 발생하는 어깨의 통증과 허리 통증 다루기, 운동 방법, 그리고, 사람에 대한 나름의 이해가 쌓이면서 나의 불안한 기질과 산만함 등을 정면으로 꺾지 않고도 통제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도 큰 이득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연구를 한다는 개념을 알게 되었던 점이 가장 컸다. 궁금한 것을 찾아보고 체계를 세워보고 진위를 가리고 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물론, 그 방법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았기에 잘못된 결론에 도달했지만 그 잘못된 결론도 내가 열심히 머리 싸매고 고민해서 얻어낸 소중한 성과였고 당연히 사랑스러웠다. 단순히 책에서 읽은 것을 주장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살아 움직이는 지식들이 구축되었고 그러한 지식을 구축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이때부터 잘못된 방법으로나마 열심히 호기심을 탐구하고 진위를 최대한 가리고 연구하고 사색하는 버릇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평생 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공부를 사파(邪派)식으로 깨닫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 중간고사에서 들은 친구의 한마디는 머릿속에서 천지개벽을 일으켰다. 모든 것이 모호하고 어떤 일에 대해서 파편화된 지식과 감상이 있지만 이것이 무엇인지 규정하기 어려운 그런 상황이 있다. 그리고 그 때의 나는 스스로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순간순간 많은 궁금증들이 스쳐지나가긴 했다. , 수업을 하지 않는 체육에서 이론 문제가 나오는가? 선생님이 말하지 않은 내용들이 왜 시험문제에 나오는가? 다른 친구들과 나는 왜 성적이 다르게 나오는가? 이런 질문들이 나타날 때마다 그것을 열심히 파고들었다면 좋은 결과를 얻었겠지만 아쉽게도 그저 스쳐지나가는 궁금증들에 불과할 뿐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못했다.

 

그리고 책에 나오잖아라는 친구의 한 마디는 이 모든 것을 하나로 꿰는 마지막 한 조각이었다. 정말,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이해가 되어버렸다. 다음이 그 때 내가 이해한 것들이었다.

 

학교에서 교과서를 주는 이유를 몰랐다. 그저 무겁고,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은 내용들이 있었지만 이것을 어떻게 연결시킬 수 없었다. 그런데 그 한마디로 교과서의 용도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선생님들은 교과서를 그냥 부연 설명하고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선생님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가 주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교과서를 공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실, 이 부분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에는 너무 적확하게 작동했다. 교과서를 공부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교과서를 기반으로 문제를 내면 그 문제를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 그 방법이 어떻든 간에 교과서에서 낸 문제의 답은 그 교과서에 있는 내용이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설명하는 것은 무엇인가? 선생님은 어차피 교과서에서만 시험문제를 낼 수밖에 없지만 그 중 어떤 시험문제를 낼 지는 선생님의 선택사항이다. 결국, 본인의 수업을 잘 듣는 아이들이 좋은 성적을 가질 수 있도록 시험문제를 어떻게 낼 것이라고 끊임없이 힌트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의 수업을 잘 듣고 메모를 하면 그 부분만 공부를 해도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은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80점인가? 시험문제를 하나의 선생님이 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선생님이 같이 제출하는 경우가 많고, 어떤 선생님은 자신의 수업을 잘 들은 학생들 중에서도 더 잘하는 아이를 구별하기 위하여 일부러 자신이 가리키지 않은 부분에서 내기도 하고 단순히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어떤 변덕을 부리든 간에 교과서 내에서만 시험을 내기 때문에 교과서에서 나올법한 내용들을 전부 알고 있으면 선생님의 수업 같은 것은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교과서를 공부해야 하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문제를 내보면 된다. 친구를 하나 붙잡고 교과서를 보면서 문제 내기를 해서 더 많이 맞히는 쪽이 이기는 것으로 내기를 하자고 하면 공부 좀 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한다고 한다. 그러면 교과서를 보면서 친구한테 문제를 내보는 것이다. 서로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서 열심히 문제를 내다보면 어느 순간 바로 이런 것이 문제가 되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기가 과열되면 과열될수록 더 열심히 교과서를 외우고 암기하게 된다. 문제는 더 치사해지고 교묘해진다. 그러다보면 이런 문제가 나오겠구나 하는 감각이 숙달되게 된다.

 

이 깨달음은 정말 컸다. 모든 조각이 모여서 완성된 지식을 갖춘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이 때부터 이 체계는 스스로 성장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시험공부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떠오르고 필요한 수단과 방법이 바로바로 떠오르게 되었다. 시험문제가 제출되는 원리와 그에 따른 대응 방법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마도 처음으로 지식을 갖추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처음으로 어떤 것을 이해한 경험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 경험은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위에 언급한 내가 깨달은 내용은 그야말로 시험공부에 한정된 생각이고 어떤 발전적인 양상을 갖추진 못했다. 지금이라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선생님의 수업은 선생님 본인이 생각하는 해당 과목의 개요이자 포인트이고 하나의 관점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오히려 선생님을 완전히 무시하게 되었다. 깨달음 이후에는 선생님이 진도를 뽑기 위하여 수업을 할 때 해당 수업을 들은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어차피 교과서를 공부하는게 부차적인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것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깨달음의 두번째 문제는 공부를 시험을 보는 것으로 한정지은 것이다. 즉, 공부는 시험 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지식은 그저 시험을 보는데만 쓰여지고 그대로 소모되어 버렸다. 또, 시험을 보는 방식으로만 책을 보기 때문에 책을 축약하고 중심적인 생각을 파악하고 하는 공부의 가장 기본이 무시되어 버렸다. 오히려, 시험문제를 악의적으로 낼 것이라는 생각만 강해져서, 그리고 친구랑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서 가장 지엽적이고 가장 알 필요 없고 파악하기 어려운 것을 찾는 식으로 공부해버리게 되었다. 결국, 이 공부 방식은 그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 암기하기 위한 공부일 뿐 그 이상의 아무런 효용이 없었다. 


그래서 나의 공부방식은 완전히 사파(邪派)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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