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부터 지금까지 늙어 죽을 때까지 아마도 공부하라는 말은 따라올 것 같다.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남들보다 한발짝 먼저 나가라는 메세지가 도처에 범람한다. 


아무래도 우리는 공부해야 하는 것 같다.


매순간 눈 돌아가게 바쁘게 발전하는 사회를 보니 왜 공부해야하는지는 알겠다.


그런데 뭘, 어떻게 공부하란 말인가?


각종 첨단기술과 새로운 경영 방식, 트렌드 등등을 가르쳐주는 책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으니 서점에 들러서 책을 둘러보면 대충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는 감이 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공부할까?



잠시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그 시절에 공부는 정말 명확했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공부했다. 


시험이 끝나고 받는 점수가 내가 공부한 증거였고 그리고 동시에 내가 외운 지식의 사용기간이 만료되는 시점이었다.


그래서 점수를 잘 받고 싶은 마음에 이해도 가지 않는 문구를 입으로 외웠다. 


암기를 할 때 가장 힘든 것은 내가 이것을 암기했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부하는 그 자리에서 암기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책을 덮고 그대로 외워서 말하거나 써보지만 그 자리에서 기억이 난다고 해도 시험을 볼 때 과연 생각이 날까? 라는 의구심이 끝까지 남는다.


아니나 다를까 시험을 보면 역시 열심히 외운 일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공부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니 시험 시간에 딱 붙어서 공부해야 가장 많이 남는다. 


시험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그저 시험 점수만 높으면 되는데 구태여 예습 복습하면서 여러번 공부하는 것은 시간낭비 에너지 낭비로 보이고 차라리 시험 전날 열심히 외우는 것이 효율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본능적으로 시험 하루 전날 벼락치기 공부를 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벼락치기하면서 익힌 내용들은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쓰임이 다했으니 순식간에 증발해버린다.


어린 시절에는 시험점수라는 명확한 목적이 있고 시험기간에 쓴다는 명확한 필요 시점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바쁜 시간을 쪼개서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목적도 명확하지 않고 사용해야할 시점도 명확하게 지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도대체 얼마나 막막할까?


아마, 사회에서 나와서 공부한다는 것은 토익이나 토플, 자격증 등을 공부하여 자격을 따는 것을 의미하고 그 외는 그저 독서를 즐기는 수준일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저 책을 읽고 새로운 영감을 받고 즐기는 수준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남는게 잘 없고 발전되지 않고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좀 더 발전하고 싶었지만 발전하려면 전공수준의 책을 읽고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데 그런 엄두가 전혀 나지 않았다. 


그러니 수박 겉핥기 수준에서 맴돌기만 할 뿐 뭔가 더 깊은 단계로 나아가는게 너무 어려웠다. 


가까스로 조금 난이도가 있는 심도있는 책을 읽더라도 기초지식이 부족함을 느낀다.


또 제자리이고 과거에 읽은 책의 내용은 잊혀지고 인상만 남는 것이 반복된다. 


책을 읽고 발전을 하려면 책을 완전히 씹어서 소화시켜 단단한 발판을 만들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이해를 요하는 부분이라면 이해하면 되지만 그것을 두번세번 고민하고 계속 쓰지 않는다면 결국 잊혀진다.


내 삶에 배운 바를 녹이려면 암기하고 반복해서 숙련시켜서 단단한 발판을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암기와 숙련이라는 것은 결코 쉬운 행위가 아니라 정신력이 엄청나게 소모되는 힘든 행위다. 


그래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암기를 해보았지만 처음 한번 정도만 가능했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결국엔 그것을 암기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암기노트를 만들어서 매일 그것을 전부 반복해서 암기해보려고 했지만 암기할 분량이 순식간에 너무 많아져서 엄두가 나지 않게 되었다. 


또, 숙련도를 쌓는 것도 문제였다. 중고등학교 수준의 공부는 엄청나게 방대한 문제지가 있어서 배운 것을 숙련하기 좋지만 사회에서 스스로 익혀 나가는 것은 문제집이 있을리 없으니 숙련도를 쌓기가 너무 어려웠다.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고 당잘 쓸 것도 아닌데 그렇게 힘들여 암기하고 노력하는게 쉽지 않다. 


또, 점점 쌓이는 암기할 공부량을 관리한다면 하루종일 공부에 매달려도 힘들다. 


결국,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공부하고 익히고 외우고자 하는 방대한 내용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잘 관리하는 방법이었다.


암기해야할 분량이 너무 많아지면서 망각곡선을 떠올리게 되었다. 


즉, 공부할 것을 망각곡선에 따라서 처음엔 자주 암기해서 숙련시키고 점점 드문드문 학습하게끔 하면 공부에 드는 품은 줄이고 효율성은 극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런 소프트웨어를 찾아보았다.


그 때에도 암기에 쓰이는 종이카드를 소프트웨어로 구현한 프로그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찾았고 그 때 찾은 프로그램이 앙키(Anki)였다.


다른 소프트웨어도 많이 있었지만 앙키(Anki)가 가장 많이 끌렸다. 


2016년 2월 정도 부터 앙키를 사용했으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엔 거의 1년 반이 지나간 셈이다. 


1년 반동안 앙키를 사용한 경험은 정말 대만족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지식을 완전히 소유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부를 하거나 독서를 할 때 느꼈던 영감이나 이해했던 지식 같은 것들이 시간과 함께 사라지고 마는 것을 항상 느꼈기에 지식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고 그저 그 편린을 느끼면서 잠깐 영감을 얻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앙키에 기억하고자 원하는 내용을 넣어놓으면 죽을 때까지 그 지식을 관리하면서 수시로 기억을 환기시킬 것이기 때문에 앙키에 넣은 지식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 내용은 잊혀지지 않는 소유된 지식이 되는 셈이다. 


이제 더 이상 암기를 하면서 내가 이것을 필요한 순간에 이것을 기억하고 있을지를 의심할 필요가 없어졌다. 


또, 암기해야할 내용이 각종 알고리즘에 의해서 관리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암기할 양이 줄어들면서 점점 부담이 줄어든다. 


현재, 500페이지 책 한권 분량 정도를 외우고 있지만 거기에 투자하는 복습 시간은 하루에 30분도 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니 앙키에 공부할 내용을 집어넣는 만큼 지식을 소유한다는 감각이 생겼고, 많은 내용을 집어넣어 놓아도 결국 줄어들어 부담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은 공부를 하고 싶은 욕구가 넘쳐나게 되었다. 


순수하게 공부한 만큼 그 성과가 그대로 쌓이는 것을 보게 되는데 어찌 공부할 맛이 나지 않겠는가. 마치 돈을 저축하면서 돈이 쌓이는 것을 보고 즐기는 느낌이다. 


또, 명료하게 기억하고 있으니 하나의 공부가 학습되면 그 다음 단계로 순탄하게 공부가 깊어지는 느낌이 정말 짜릿하고 신기하다. 


마치, 한달 전까지는 사칙연산을 겨우 하던 사람이 지금은 양자역학을 능숙하게 계산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또, 책 한권을 읽을 때 기억할 부분을 앙키(Anki)에 집어 넣으면서 읽으니 앞부분을 명확하게 기억하기 때문에 뒷부분이 이해가 잘되고, 동시에 뒷부분을 공부하면서 앞부분도 같이 공부하니 앞부분의 내용도 뒷부분과 연계되면서 그 뜻이 살아 움직이면서 머리에 주입되는 느낌을 받는다. 


앙키를 사용하면서 평생 느껴보지 못한 많은 긍정적인 것들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앙키에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


우선, 플래쉬 카드 스타일의 학습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영어 단어 암기 같은 단편적인 암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인터넷에 소개되는 앙키 사용법도 대부분 언어 공부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책에서 중요한 구절을 통째로 암기하는데도 앙키를 쓰고 있다. 


혹은, 스스로 생각한 아이디어를 기억하기 위해서도 앙키를 쓰고 있다. 


또, 수학 공부도 앙키로 해보고 싶다.  


다양한 지식의 형태가 있고 필요한 학습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을 느끼고 있지만 이를 어떻게 앙키로 구현할지는 잘 모르고 있다. 


이런 부분이 해결되면 보다 내 입맞에 맞는 앙키가 될 것 같다.


입맞에 맞는 앙키 활용을 위해서 우선 앙키(Anki) 매뉴얼관련 문서들을 몇개 번역하면서 다양한 학습형식을 고민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이러한 형식에 대한 고민이 끝나면 이러한 내용을 다른 사람들과 나눠보고 싶다.


그래도 앙키 덕분에 정말 충실한 1년 반을 보냈고 늦은 나이임에도 앞으로 무한한 성장과 발전을 마음 두근거리면서 기대하게 되었다. 


이런 두근거림이 나만의 경우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분들도 만년에 공부를 시작해보고 싶다면 앙키(Anki) 사용을 진지하게 추천하고 싶다.


인생에 있어서 인상깊은 경험이야 한두개씩 있겠지만 이 블로그의 주제는 공부이므로 공부에 대한 경험담을 한 번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이야기를 해봅니다.


저는 국내 최고의 대학에 재수를 해서 들어갔는데, 제 주위의 친척이나 제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제가 그곳에 들어갔다고 하면 대부분 경악을 합니다.


평소 제가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저는 강남 8학군이긴 하지만 반에서 가장 높았던 성적도 정말 노력해서 대충 5등 정도 였던 것 같고 내신도 높지 않았습니다.


전교에서는 50등 권으로 진입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내신 기준하고 달라서 현재랑 비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시 그 내신으로 그 대학을 지원한다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웠지요.


첫 수능을 치고 그 대학에 면접을 갔을 때, 그 교수가 했던 말이 무척 인상깊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성적으로 여기를 지원할 생각을 했는가?" 라는 것이 교수가 면접시 했던 첫 질문이었습니다.


교수님의 어이없어 보이던 표정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 또 그 대학의 다른 과를 지원했는데 이번에는 합격했습니다. 



당시 재수생활을 떠올려 보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마법같은 일이 벌어졌었습니다.


재수생활은 초6, 중3, 고3의 12년 동안 통학하면서 보냈던 저에게 매우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학원을 다녀야 하긴 했지만 학원은 학교처럼 출석체크를 열심히 하지도 않고 선생님이 강압적이지도 않아서 학원에 빠져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죠.


그래서 학원을 간다고 말했지만 가지 않고 계속 놀러 다녔습니다.


대입에 떨어진 트라우마일까요? 아니면 갑자기 재수 생활이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부적응일까요? 무엇으로 설명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당시 저는 뭔가 나사가 빠진 사람 같았습니다.


잠을 아무리 자도 또 자고 싶고, 의욕이 없었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하고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몸이 움직이는게 정신적으로 매우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삶을 통제할 힘이 없는 것처럼 부평초처럼 그저 상황에 휩쓸려 움직였지요.


당시, 일본의 코믹스 류 만화책이 대거 들어오면서 만화방이 많이 생겼는데, 의욕도 없는 상황에서 만화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거기에 푹 빠져서 살았습니다.


학원가 인근의 만화방을 뒤지면서 매일매일 쉬지 않고 하루 12시간 이상을 만화방에서 살았습니다. 


당시, 5천원을 주면 만화방이 영업을 종료할 때까지 만화책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었는데, 이곳에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저녁 10시에서 11시 사이에 나왔습니다. 


학원에 가서 공부 열심히 하라고 식비와 교통비로 만원 가량을 받았는데, 5천원은 만화방비로 내고 나머지 5천원으로 점심과 저녁을 싸구려 빵같은 것으로 허기만 달랬습니다.


교통비는 없으니 당연히 1시간 가량을 걸어서 만화방에 갔고 다시 만화방에서 집까지 걸어서 왔습니다. 


이런 생활을 매일매일 하루 12시간 이상씩 계속 했고, 정신적으로도 불안했던 것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만화책의 몰입도가 무척 높아졌습니다.


정말 제가 만화책 속에서 살고 있는 느낌이었지요. 


당시 "슛"이라는 만화를 보면서 제가 필드에서 뛰는 느낌과 심장이 쿵쿵거리면서 뛰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 몰입이 너무 즐거운 동시에 제가 미쳐가고 있다는 느낌도 동시에 받았습니다.


멋진 주인공의 몸놀림을 몸으로 재현하는 느낌이 생생했지만 동시에 이런 감각, 현실과 전혀 구분되지 않아서 소름이 끼친 것입니다.


역설적이지만 만화책이 더더욱 좋아진 시점에 경계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친구들과 같이 만화방을 가면 친구들은 5시간 정도가 지나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정말 지친 표정으로 나가자고 하지요. 


하지만 저는 12시간 동안 내리 집중해서 만화책을 보았습니다. 


결국, 그 만화방의 만화를 전부 보고 다시 또 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슬슬 제 상태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습니다.


시험삼아 만화방을 안가보려고 시도해보았습니다만 이미 상황은 중독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벌써 6월인데 공부는 전혀 하지 않고 있고, 만화책 중독이란 듣도보도 못한 일을 겪고 있으니 위기감이 고조되기 시작했습니다.


만화방에서 걸어서 집으로 올 때, 가끔씩 보이던 이상한 사람들, 혼잣말을 하고 집도 절도 없어보이는 사람들이 남일처럼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인생에 있어 낙오한다는 말이 피부로 와닿았습니다. 


하지만 만화책과 만화방은 저의 삶을 뿌리째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만화책 중독이란 말이 있을 줄은 저도 몰랐지만 실제로 그러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전형적인 중독 증상과 금단 증상을 겪었기 때문이지요.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하려고 하면 5분만 지나도 손발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사진으로 찍은 듯한 만화책의 영상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플레이 되고 의식이 날아갑니다. 


정신차려보면 만화방에서 만화책을 보고 있고 그 사이의 기억이 사라져 있습니다. 


이 정도 되면 소름이 끼칩니다. 아 이미 망해버린 인생이구나 싶었습니다. 


괜히 술에 취해 자동차 밑에 들어가신 분이 안쓰러워져서 집까지 부축해주고, 푼돈이나마 적선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악전고투를 시작한게 7월이었습니다. 


7월까지는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지요. 그저 암담한 재수생활이었습니다.


스스로를 통제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방법을 강구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만화방에서 가장 먼 지역의 인기 없는 독서실을 찾았습니다. 


여기서 정말 운이 좋았는지 독서실이 인기가 없어서 큰 독서실의 방에 사람이 저 혼자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만화는 저를 괴롭혔습니다. 공부라는 것을 할 수가 없었지요.


아무리 참고 이를 악물고 해도 어느새 정신차려보면 만화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포기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만화책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도 없었고 행동을 통제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좌절과 스스로의 한심함에 책상에 코를 박고 한 5분 잤습니다. 


자고 일어나니 욕구가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물론, 5분 후에는 다시 만화책에 대한 욕구가 생겨서 튀어나가긴 했지만 처음으로 욕구가 가라앉은 것입니다. 


그 때부터 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1분, 2분, 5분 등 잠깐이라도 의식을 끊었습니다. 


만화방을 갈 욕구만 가라앉는다면 몇시간을 자도 좋고 1분을 자도 좋았습니다. 


그렇게 한달 동안 조금만 욕구가 생겨도 잠을 자니 드디어 조금씩 만화방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더욱더 잤습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7월에 독서실에 들어가서 9월초까지 만화책 중독하고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11월이 수능인데 거의 공부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잠을 계속 끊어서 자다 보니 머리가 맑아지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마법같은 부분인데, 머리가 맑아지니 공부의 효율이 미친듯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보는 집중력이 올라갔고 집중력이 올라가니 바로바로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책을 한번 보고 그대로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수능 전까지 3개월 동안 교재들을 딱 한번 다 보았는데 전부 이해하고 외어버렸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머리가 맑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건 정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이었고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 보면 이해하고, 한 번 보면 사진처럼 명확하게 기억하는 천재들의 이야기를 실제 삶에서 체험해본 것입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 저는 분명히 천재라는 표현을 감히 써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에 이르러서야 인간의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말을 믿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수능은 제 역사상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당당히 최고의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첫번째 수능 성적을 본 교수가 저 같은 성적을 가진 사람이 지원했다고 어이없어 했다면, 두번째 수능 성적을 본 교수님은 이 성적으로 자신의 과를 지원해줘서 고맙다고 했으니 재미있는 일입니다. 



저는 이 마법을 머리가 맑아지는 방법이라고 부릅니다. 


저야 만화책 중독이라는 절망으로부터 도망가고자 하는 절박함이 가장 중요한 동기가 되었고, 독서실의 큰 공간에 저 혼자였기 때문에 행동에 거침이 없고 신경에 거슬리는 것 없이 저 자신에게 완전히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부는 만화책의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인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만화책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좌절감이 큰 만큼 이에 대한 대안으로써 공부를 꼭 필요하고 중요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제반 조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스스로 그 행위에 납득하고 실행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시켜서 1분 5분 단위로 끊어서 자면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의 욕구가 올라오는 시점에 자고 일어나서는 다른 욕구는 다 가라앉아도 공부에 대한 욕구는 남아있어야 했으니까요.


누군가가 자기자신의 욕구가 올라오는 시점을 특정해줄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스스로 납득하고 제반 조건을 갖추어 실행할 수만 있다면 통제된 환경에서 거의 90% 정도 머리가 맑아지고 천재라는 것을 경함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이 경험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내용을 찾아보았고 스스로 이론을 구축한 바도 있지만 그것은 가설에 불과하니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뒷 이야기를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 방법을 무척 신뢰해서 자신있게 고시에 도전했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책상에 엎드려서 짧게 자는 것이 핵심인데 그 때부터 이상하게 엎드려서 잠을 잘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엎드리는 순간부터 머리가 땡기고 누군가 머리를 조이는 듯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지요.


결국, 이 느낌은 엎드려서 자는 것 뿐만 아니라 누워서 잘 때도 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잠을 잘 수 없게 되었고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깨어있지 못하고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불면증이 생겼고 삶이 철저히 파괴되고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노력 끝에 원인을 파악하고 제거했지만 트라우마가 남아서인지 엎드리기만 하면 각성이 높아지게 되어 여전히 잠을 자지 못합니다. 


물론, 이 방법을 이젠 사용할 수 없게 되었지요. 

알 수 없는 질병과 고통으로 삶이 밑바닥을 쳤을 때,

 

자신의 생각이 이해되지 않고 행동은 제어되지 않았을 때,

 

그리고 자존감이 밑바닥을 쳤을 때,

 

평생 이루지 못하던 것, 회피하던 것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한평생 해보지 못한 턱걸이를 성공했을 때, 기뻤다.

 

훌라후프를 10분 이상 돌리고 나니 성취감이 들었다.

 

화학 주기율표를 외웠더니 머리가 맑아졌다.

 

그렇다. 화학 주기율표를 외웠더니 머리가 맑아졌다. 10년 내에 가장 맑았다.

 

머리로 외우느니 몸으로 숙련되고 습관적으로 행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었지만

 

나이 40대에 익숙하지 않은 문장을 더듬더듬 따라하면서 외우는 것이 복잡한 생각을 버리고 집중하기에 좋았다.

 

이후, 많은 기억술 계열도 살펴보았지만 단순히 정보를 빨리 외우는 것보다는

 

좋은 것을 외우고 그 뜻을 살피면서 내 인생에 밑바닥에서 작동하는 무의식에 집어넣다 보면

 

단순히 학교 공부에서 시험을 잘보기 위해서 공부하던 때에는 얻을 수 없었던

 

스스로가 커지고 발전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또, 그저 독서가 좋아서 책을 한번 흝어보고 그저 공감되는 내용에 공감하고 넘어가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충실감이 있었다.

 

또한, 책을 읽고 요약하고 주요한 내용을 정리해서 암기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머리에 외우는 근육이 생기는 것 같다. 근육이 강해지면서 점점 암기가 수월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운동에 스쿼트가 있다면, 정신을 단련하는데는 정신을 집중하고 암기하는 것이 최고인 듯 싶다.

 

흥미로운 것들, 갈구하는 것들을 다른 책을 찾아 읽어보자.

 

그리고 읽고 정리하고 암기하자. 머리는 맑아지고 정신은 튼튼해지고 영혼은 살찔 것이며 발전은 가속화될 것이다.

운동에 스쿼트가 있다면 공부의 기초는 무엇일까?


운동이 체력과 신체의 발달이라는 측면과 테니스, 골프, 농구 등의 각종 운동기술의 습득이라는 측면에서 볼수 있다.


그리고 운동에서 체력이 뒷받침이 되면 다른 운동을 익히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공부에는 그런 것이 없을까?


어떤 능력이 좋아진다면 공부가 편하게 될까?


우리는 무엇때문에 공부가 하기 싫은 것일까?


아마도 공부할 때 가장 하기 싫은 바로 그것이 우리 공부의 기초체력일 것이다.


공부는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기 → 이해 →  → 숙고 → 응용 → 통달


한눈에 보아도 가장 어려운 부분은 이해 →  → 숙고의 과정이다. 


동기는 작은 호기심 같은 일상적인 것에서 대입이나 취직을 위한 전략적인 공부일 수도 있고, 개인적 연구를 위한 것일 수 있다.


동기는 그래서 항상 있는 것이고 단지, 동기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게 힘들 뿐이다. 


이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것에서부터 아무리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까지 넓은 스펙트럼이 있다. 


이해가 안된다면 해당 과정을 바꿔서  → 숙고 → 이해의 과정으로 변용하여 쓰는 경우가 있다. 


대입시험이나 취직시험 등 당면한 과제가 있고 이를 이해하고 기억해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면 


아쉽게도  → 숙고 → 이해의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고 정 안되면  → 성적의 과정으로 머리를 혹사하기도 한다. 


옛 공부법에서 선현의 문장들을 수천번 반복해서 읽어서 그 깊은 의미를 체득하는 식의 공부라면 기억을 먼저하고 이를 바탕으로 숙고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런 식의 공부를 하려면 동기가 정말 강력하고 신념도 강해야 한다. 


그리고 당시에는 그저 선현의 문장 외에는 공부할만한 자료가 많지 않았다. 오늘날은 그럴 이유가 없다. 


오늘날처럼 교육교재가 풍부한 환경에서는 이는 크게 신경쓸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통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공부하지 않거나 이해할 수 있도록 낮은 난이도에서 단계적인 과정을 밟아가며 공부를 한다. 


하지만 역시 기억하는 과정이 가장 어렵다. 결국 외우는 것이 싫어서 공부를 하지 않는다.


역으로 말한다면 무언가를 외우고 기억하는 것이 부담되지 않는다면 사람은 정말 쉽게 공부한다.


체력이 충분한 사람이 몸을 써서 운동하는 것을 즐기듯이 기억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공부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물론,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이어야 할 것이다. 


RPG식 게임으로 치면 이해의 수준은 해당 플레이어의 레벨일 것이고, 기억하는 것은 해당 레벨을 올리기 위한 경험치이다.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과 유전적 소인이 있어서 지능에 소소한 차이가 있다면 이해하는 수준이 다를 것이다. 이는 그저 시작 레벨이 다른 것이다 .


하지만 경험치를 쌓다보면 동일한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머리에 이상한 기관이 달린 것 마냥 이해할 수 없는 생각들을 척척하는 천재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결국, 공부의 기초 체력은 외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 외우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어려워하는 마음이 우리로 하여금 공부하지 못하게 한다. 

상승의 경지에 대해서 주저리 주저리 말했는데,

 

사실, 이야기하고자 하는 요지는 매우 간단하다.

 

좋아하는 분야를 어느 수준까지 공부해야 이후 그저 삶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발달할 수 있을까?

 

이 경계를 알고 싶은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라는 것이 있다. 그건 간단하게 말하면

 

자신이 가진 자산의 수익률이 본인의 소비를 능가하면 그 뒤부터는 무조건 자산이 늘어나게 된다.

 

가령, 내가 1년에 1000만원 가량을 각종 이유로 지출하는데 내가 가진 자산에서 나오는 일년 이자가 1500만원이라고 한다면

 

내가 1000만원 수준에서 매년 실컷 놀고 먹어도 돈은 점점 더 늘어나고 계속 부자가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자산이 구축되어야 하고 해당 자산이 구축된다면 그 뒤부터는 일할 필요가 없게 된다.

 

부익부 빈익빈처럼 공부라는 것도 어느 정도의 한계를 넘어서면 그 뒤부터는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그리고 삶을 같이하면서 내 인생을 해석하고 평가할 중요한 평가기준이 될 것이고 스스로 쌓아올린 공든 탑이 되기도 하고

 

중요할 때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단계를 거쳐야 하는 걸까?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일단, 기초를 쌓고 기초 위에서 응용해보고 잘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기본적인 단계가 마무리된다.

 

기본적인 단계에 도달하면 잘 사용할 수 있게 되고 잘 사용하면서 현실에서 문제를 적용해보고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상승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니 현실에서 잘 사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단계를 마치면 늦든 빠르든 상승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 결국은 지루한 기본과정을 마스터하는 것이 첩경이다.

 

으엑 항상 들어왔던 이야기들이다. 생각만 해도 힘들고 지겨워 보이는 기본을 갖추어야 한다니! 갑자기 공부하기 정말 싫어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초는 해당 공부의 코어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코어를 익히고 응용할 수 있으면 기본이 마무리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요즘은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기초로 스쿼트를 강조한다. 


이게 왜 기초일까? 데드리프트도 많이 이야기하지만 일단, 스쿼트만 살펴보자.


스쿼트는 앉았다 일어나기로 허벅지를 단련하고 인간의 몸을 위아래로 움직이는 대부분의 근육을 강화한다. 


실제로 우리 몸의 움직임은 대부분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을 기반으로 땅을 미는 힘을 기반으로 에너지를 얻어쓴다. 


걷기, 달리기, 춤, 무술, 격투기, 농구, 역도 등등 셀수도 없이 많은 운동에 요구되는 것이 바로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의 강력함과 지속성이다. 


우리의 팔이 힘을 쓰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하지만 다리는 일상의 전반에 막대한 에너지 소비를 주도하고 있다. 


그런데 해보면 알겠지만 정말 하기 싫은 운동이다. 이런 가장 하기 싫은 운동이라는 점이 꼭 강화되어야 할 부분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스쿼트를 하다보면 허벅지가 강화되기 시작하면 운동의 효율이 증가하고 신체 전체의 퍼포먼스가 좋아진다.


다리가 튼튼해지면 쉽게 피로해지지 않기 때문에 운동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줄게 되고 일상생활에서도 좀더 활동적으로 변하게 된다. 


집에서 늘어져서 있기 보다는 산책이라도 즐기게 되고, 조금 더 힘이 붙으면 등산도 다녀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다시 운동량이 늘어나므로 다시 신체가 강건해지고 운동이 즐거워진다. 이로 인하여 스쿼트 뿐만 아니라 다른 운동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만일 팔굽혀펴기라면 어땠을까? 생활에서 팔힘을 쓸 때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 전반적인 컨디션 개선의 효과가 많이 느껴지지 않는다. 


스쿼트의 온갖 좋은 점을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스쿼트로 인하여 선순환 구조가 발생하게 된다. 


결국, 스쿼트만 제대로 해도 몸의 다른 부분의 강화도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즉, 가장 자주쓰고 항상 쓰고 더 잘 쓸 필요가 있는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을 강화하면 모든 것이 극적으로 개선된다. 


그런데 팔굽혀펴기를 통하여 팔힘의 증진 외에는 무엇을 기대해볼 수 있을까?


그래서 운동에서 첫번째 고지는 하체가 충분히 강력해지는 것이다. 하체를 강화하는 단계는 힘들겠지만 하체가 강화되고 나면 그 열매는 달콤하다.


혈행이 개선되고, 생활하면서 필요한 모든 노동으로 발생하는 피로도가 줄어드므로 삶의 적극성이 올라가고, 잘 지치지 않게 되고, 하고자 하는 운동의 발전속도도 점점 빨라진다. 


그리고 일정한 수준이 되면 하체의 강화가 어려워지는 단계에 도달하므로 이 때에는 그 힘을 기반으로 다른 운동을 하면 보다 쉽게 발전할 수 있게 된다. 


기초를 쌓는다는 것은 이러한 것이다. 그리고 모든 공부가 기초를 쌓는 것이 가장 어렵다. 


왜냐하면 결국, 기초는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필요한 영역이면서 가장 하기 싫은 우리의 약점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공부의 난이도는 기초만 떼고 나면 쉬워지게 된다. 


만일 기초를 떼고 나서도 쉬워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기초가 아닐 것이다. 

무협지를 즐겁게 보던 어느 날 


이상한 문구를 보았다. 


'상승의 경지'에 도달한 고수


드디어 그의 경지가 '상승'에 이르렀다.


이런 문구였다. 


당시에는 상승의 경지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해당 한자어도 찾아보지 않아서 그 뜻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군대에서 바둑을 배우면서 이 단어가 떠오르고 이것을 개인적으로 해석해서 쓰기 시작했다.


당시, 바둑 2급의 이등병이 자대에 배치되면서 병장들을 중심으로 바둑 공부의 열풍이 불었는데,


정말 무슨 수를 써도 2급의 고수를 이기기 어려웠다. 그 고수(이등병)가 병장들 면을 세워준다고 봐주기도 하고 


별별짓을 다했지만 모두들 알고 있었다. 어떤 수단을 써도 바둑으로 이 친구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신기한 일이다. 18급의 눈으로 보면 바둑은 완전한 카오스의 세계이고 우연이 상당 부분 작용할 것 같은데, 


결과는 지극히 일방적이다. 정말 박빙의 실력을 가진 자들만 어떤 우연이 작동할 뿐이다. 


가령, 두 사람이 칼을 들고 싸우다 보면 운이 좋은 사람이 이길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커리큘럼을 하고 나면 누군가 일방적으로 이기기 시작한다.


물론, 훈련과정, 전술, 재능 등의 다양한 요소가 작용하지만 결국, 우연적인 과정이 사라지고 일방적인 결과로 귀결된다.


이런 승부의 세계를 보면 사람이 쌓아올리는 것에 대해서 약간의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어째서 이런 것이 가능해지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상승의 경지라는 것을 제멋대로 두 가지 의미로 본다.


하나는 상승(勝)으로 항상 이긴다는 의미다.


고수가 자신보다 수가 낮은 하수를 상대로 항상 이기는 것으로 어떤 법칙을 깨우치고 그것을 몸으로 체득한 상태이다. 


정말 어지간히 드문 우연적 개입이 아니라면 고수는 항상 하수를 압살한다. 이는 고수의 눈에는 하수의 행동패턴이 보이고 이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수가 이해하는 하수의 패턴은 명시적이지 않다. 고수는 그냥 안다. 하수들에게 그것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것은 무언가 어떤 체계와 시스템이 머릿속에서 완결되었는데 이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하기 어려운 느낌이다. 


두번째는 상승(昇)으로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계속 실력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우리가 배우는 공부란 것은 처음에는 정말 더듬더듬거리면서 거북이처럼 움직이지만 어느 정도 이상의 실력이 쌓이면 더 이상 공부하지 않아도 실력이 늘게 되는 지점이 발생한다. 


가령, 한글이나 한국어가 대표적이다. 우리는 처음 언어를 배울 때는 떠듬떠듬 배웠다. 한글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글을 잘 쓸고 읽을 수 있고 한국어 구사가 기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은 한국어 공부가 이루어진다. 친구들과 인터넷 신조어를 만들어 놀고, 학교 공부를 하고 개그프로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는 표현이 는다. 물론, 힘써서 노력하는 경우가 더욱 많이 늘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이젠 자연스럽게 한국어 실력이 깊어진다.


내가 개인적으로 해석한 '상승의 경지'라는 표현은 우리 머리나 몸으로 어떤 완결된 구조를 체득한 상태, 그래서 그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발전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한글을 예로 들어보자. 한글의 자음인 'ㄱㄴㄷㄹ....' 만 공부하고 익히고 말면 이것은 하등의 쓸모가 없다. 


하지만 자음과 모음을 전부 파악하고 이를 조합하고 발음하는 법을 알게 되고


그래서 한글 공부가 큰 노력 없이 읽고 쓰는 수준까지 도달하면 즉, 스스로 "한글을 어떻게 읽고 쓰는지 알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시점에 다다르면


완전한 변화가 시작된다. 이때부터는 자신이 한글을 읽고 쓸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신의 인생의 수단으로 한글을 항상 이용하게 된다.


자음만 공부한 사람과는 다르다.  자음만 공부한 사람은 "한글의 자음은 알지만 그래서 뭐를 어떻게 하라고?" 하는 상태가 된다.


하지만 한글과 관련된 완결된 구조를 마무리한 순간 그는 스스로 "나는 한글을 알아"라는 상태가 된다. 


앞의 친구는 한글로 무엇을 할지 모르지만 뒤의 친구는 한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이는 완전히 구별된 상태이고 한글의 자음만 공부한 친구는 하수라면 전부를 공부한 친구는 고수가 된다.


이 고수는 한글을 할 수 있으므로 자신의 생활에서 한글을 사용한다. 주위의 간판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쓰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등등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결과적으로, 고수는 자연스럽게 한글을 더욱 잘쓰게 되고 더욱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자음만 공부한 친구는 당연히 이를 잊어버리고 더이상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서 괜히 시간만 버렸다고 불평할 것이다.


이러한 상승의 경지는 결국 발전의 토대를 의미하고 우리가 하는 공부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목표인 셈이다. 


또한 공부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구조적으로 완성되고 실제로 적용가능한 형태로 마무리 짓는 방식이 되어야 상승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중에 '쿵푸'라는 영화가 있었다. 


지금은 검색을 해보아도 그 영화가 맞는지 긴가민가 하고 있어 제대로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인상깊은 영화였다.


간단하게 기억나는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중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할아버지가 있는데 이 할아버지는 태극권의 초고수이다. 


이 할아버지는 자식들이랑 같이 미국으로 이민왔지만 문화가 달라지고 세상이 달라서 소외감을 느끼고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무력감을 느낀다. 그래서 끊임없이 힘들어하고 갈등한다. 


힘들 때마다 이 할아버지는 태극권을 수련한다.


태극권을 수련하는 동안 이 할아버지는 평화로워졌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영화를 보던 내내 그 할아버지가 무척 부러웠다. 


평생을 공부해서 쌓아올린 태극권은 이 할아버지에게는 즐거움이요 낙이고, 


힘들 때는 자신을 잊고 위로할 수 있는 수단이었고, 


급할 때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호신 기술이고, 


마지막으로는 태극권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밥벌이 수단이 되기도 했다.


결국, 태극권의 고수로서 해당 커뮤니티에서 존경도 받게 된다.


평생을 스스로 노력하고 쌓아올린 결과를 스스로 존중할 수 있고 뿌듯할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스스로 쌓아올린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의미를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공부라는 말은 중국어로 말하면 쿵푸다.


현실에서는 쿵푸를 익혀서 하늘과 땅을 가를 수 없을지라도 이 영화의 할아버지처럼 평생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스스로 살아갈 삶의 수단으로써 쿵푸를 익힌다면 하늘과 땅을 가르지 않더라도 그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되었다. 


살짝 늦은 듯 하지만 나도 이러한 공부를 쌓아올려 보고 싶다. 


조금 늦더라도 하나하나 축적하면서 스스로 익힌 것을 돌아보면서 자랑스럽게 생각해보고,


그걸로 삶이 다할 때까지 공부하고 베푸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알 수 없다.


공부가 중요한지는 여부와 상관없이 힘들지만 재미있다


대한민국에서 흔히 공부를 이야기할 때, 당연히 대입, 취업준비, 승진 시험 등을 생각하기 때문에 어렵게 생각된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을 떼어내고 그냥 공부만 생각해보면 이것은 정말 재미있는 것이다.


공부를 통해서 사람은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즐거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어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대입이나 취직을 위한 스펙이 아닌, 그저 영어를 생각해보면 영어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정말 큰 차이가 있다.


 영어공부를 하는 것은 어렵지만 영어를 잘 할 수 있게되면 해외 뉴스를 통해서 세계를 볼 수도 있고, 


 국내에는 없는 양질의 정보를 바로 접해볼 수 있다. 


 미드나 영화를 자막없이 시청해볼 수도 있다. 자막없이 시청했던 경험은 자막을 보는 것과는 격이 다른 몰입감과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물론, 영어권 친구를 사귀어서 인간관계를 즐겨볼 수도 있다. 


 이처럼 가능성이 생겨나고 삶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확장된다.


영어공부는 너무 식상한 주제라고 생각한다면 프로그래밍은 어떨까?


프로그래밍을 잘 안다면 인터넷 공간이 그저 즐기고 향유하는 공간이 아닐 것이다.


끊임없이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고, 자신이 무엇인가를 만들어볼 생각을 할 수 있는 공간일 것이다.


더 깔끔하고 효율적인 프로그램을 구상하다보면 어느 순간 사업이 될 수도 있고 예술처럼 생각해볼 수도 있다.


위에서 제시한 영어와 프로그램 같이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다양한 잡기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FACE 리딩이나, 바디 랭귀지 같은 것을 공부하면 삶에서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이 정말 흥미로워지는 것을 경험해 볼 수 있다.



그렇다. 공부는 힘들지만 그 결과는 정말 달콤하다.


아프리카 오지를 탐구하여 숨겨진 비경을 찾아보는 모험도 즐겁다.


하지만 그 시간에 열역학을 파고들어 모든 세상을 열과 에너지의 작용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보다 나을까?


그 결과는 공부쪽이 솔직히 더 낫다. 삶에 대한 모든 것이 송두리째 달라지는 경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부가 싫어진 이유는 명쾌하다 공부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그 성과가 공부와는 상관없는 순위 경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공부의 결과가 오직 순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면서 공부는 항상 극한의 점수를 받기 위한 살을 깎는 고통일 뿐이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직 공부 그 자체만을 보고 공부를 해보려고 한다. 


공부 그 자체는 정말 정직하게 우리에게 그 과실을 주기 때문이다. 


그저 공부하면서 스스로의 성과에 기꺼워하면서 자신의 변화를 즐겁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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