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음성학을 통해서 발음을 공부하고 이를 통하여 간단하게 성과를 본 바를 이야기했다. 처음 음성학을 공부하고 발음을 연습할 때만 해도 큰 기대는 없었다. 그저 발음을 교정하고 IPA를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수준이었다. 내용이 너무 어려웠지만 Anki는 그런 점에서 강점이 있다. 조금씩 조금씩 진도를 나가도 충분히 숙련되고 전에 공부했던 내용을 까먹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쌓이고 쌓여서 어찌 공부를 했다. 


 원래의 조급한 성격이라면 공부를 하면서 바로바로 블로그에 올렸겠지만 이 경우에 확신이 없었다. 발음과 언어가 어떤 상관이 있을까? 하는 의문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매우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Anki를 통해서 다른 공부를 할 때, 입으로 하는 말이 지식에 얼마나 큰 효과가 있는지 매번 느꼈기 때문이다. 입으로 문장을 곱씹을 때마다 그 지식을 직접 체험하는 것 같고 의미를 재발견하니 입이 내 정신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조들이 그렇게 소리내어 낭독하는 공부를 중요시 여겼나 싶었다. 또, 입으로 하는 말은 입으로 하는 행위므로 당연히 말하고 발음하는 연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춤을 잘 추고 싶으면 몸을 움직여 춤을 춰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손을 써서 그림을 연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언어를 익히고 싶다면 입을 열심히 써서 언어를 익혀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를 포함하여 발음이 형편없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국어를 못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발음이 안 좋아도 한국어를 익혔고 생활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그런데 굳이 발음을 연습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결국, 스스로 실행해 보면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지만 생소한 분야에 생소한 연습 과정 때문에 언어학자들의 글처럼 매우 지루하고 힘든 공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각오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너무 모르고 살던 분야라서 그럴까? 얻는 바가 굉장히 많았다. 


 우선, 한국어 발음이 좋아졌다. 어린 시절 치아 교정 때문인지 발음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자주 쓰는 발음인 ""를 ""로 발음했다. 발음 연습을 위해서 혀를 놀리고 입술을 오므리는 등 입 운동을 하면서 각종 음성기호를 발음해본다. 그리고 그 발음이 내 한국어 발음과 어떻게 다른지 확인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발전하라는 영어 발음이 아니라 우선 내 자신의 한국어 발음이 개선되었다. 안 좋은 습관을 많이 고칠 수 있었고 좀 더 또박또박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 끝에서는 ""를 ""로 발음할 수 있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발음이 교정된 것이다.


 그 다음은 어린 시절의 궁금증을 풀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 국어 교과서에 있는 표현 중에 이런 것이 있다. 


 “가 골기퍼야!”

 “가 골기퍼야!”


 “”와 “”가 서로 다른 두 문장이다. 그런데 글로 써놓으면 의미를 파악할 수 있지만 말로는 전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는 이게 항상 궁금했다. 누군가 “가”라고 말하면 그것이 “가”라고 말한 것인지 “가”라고 말한 것인지 항상 궁금했고 문맥과 행동에 따라서 의미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내 자신도 이를 구별해서 말할 수 없었기에 결국 “가”라는 말은 피하고 “가”로 바꿔서 말했다.


 그런데 한국인의 음성 습관을 연구한 결과에서 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와 “”를 구별하지 못하고 또 이를 구별해서 발음할 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확히는 한국에서 “”와 “”가 서로 융합되어 “”가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이상 “가”를 알아듣지 못하니 “가”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실제 발음은 이렇게 되었다. 사람들이 “가”라고 말할 때는 실제 발음은 “가”다. 그리고 기존의 “가”는 보통 “가”로 바꿔서 말하게 되었다. “” 발음이 없어진 것이다. 이렇게 어린 시절 묵혀두었던 오랜 궁금증이 해결되었고 나아가서 이제는 어색하게나마 “가”라고 발음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도 일본어의 특이성을 배워 일본인의 발음이 왜 그런지도 알게 되었고 한글의 우수성도 새삼 절감하게 되었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들리지 않던 영어가 자연스럽게 들린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냥 들리는 것이 아니다. 소리가 선명하게 구분되어 말을 알아듣는 느낌이 아니다. 그보다는 상대가 입술과 혀를 이렇게 써서 소리를 낸다는 것을 아는 느낌에 가깝다. 즉, 상대의 소리 내는 방식을 나도 어느새 비슷하게 따라하고 아 이 소리구나 하고 알게 되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렇게 상대의 말을 입으로 따라할 수 있다는 점은 더 깊은 공감을 끌어낸다. 조금 세게 다문 입술, 강렬한 강세와 미묘한 강세, 절도 있게 움직이는 혀와 흐느적거리면서 움직여 발음을 뭉개는 혀 등은 매우 미묘한 느낌을 전달해준다. 이런 발화의 경험은 매우 기본적인 감정 상태를 공유하게 해준다. 그런 소리를 낼 때의 심리 상태가 그 소리를 따라하는 내 자신에게서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미묘한 부분을 바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는 확신으로 이어졌다. 영어를 들으면 아는 단어일 경우 바로 소통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상대의 말소리가 내 자신의 발화 경험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나서야 이제야 영어를 언어로 받아들이는 느낌이다. 이제 영어를 들어도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여전히 못 알아듣지만 예전만큼 막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단어를 알면 바로 알아듣겠구나 하는 것들이 점차 많아졌다. 이 길이 제대로된 길인 것 같다.


 이제껏 진행한 음성학 공부는 일반 언어학의 관점에서 전개된 음성학이어서 간략하고 추상적이다. 영미권에서 시작된 학문이라서 영어를 많이 사례로 올리고 있지만 그래도 영어를 익히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들을 전개하는 음성학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발음을 시작으로 입말을 구축하고 이어서 문법으로 다듬는 공부 방식이 매우 효과적이고 빠른 길이라는 점을 어느 정도 확신하게 되었기에 이제는 제대로 영어 공부를 해보려고 한다. 다양한 예제와 사례, 숙달을 위한 훈련 과제 등을 활용하여 지금까지의 맛보기식 간단한 연습이 아니라 숙련된 영어 사용을 위한 훈련을 해보려고 한다. 다음부턴 Ankilog로 올릴 수 있도록 하겠다. 



 음성학 공부는 별 기대 없이 시작했다. 국제음성기호(IPA)를 읽어보겠다는 의도로 책을 펼쳐보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너무 전문적이고 어려워서 Anki로 외웠다. 그리고 일단, 외우기 시작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기존에 외운 것에 대한 이해 때문에 그 다음 공부가 쉬워지고, 투자한 시간과 정신력이 아까워서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그래서 시작한 김에 끝까지 공부하게 되었다. 물론, 전문적인 수준이 아니라 개론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외국의 발음을 연습할 때 부딪치는 문제는 그 발음을 들을 수 없다는 점이다. 소리로는 듣는다. 하지만 언어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유튜브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들 영상을 찾아보면 좋은 예시들을 보여준다. 우리가 ‘공’하고 발음하면 영어 원어민은 ‘콩’하고 따라한다. 그 차이를 잘 인지하지 못한다. 우리가 다른 언어를 배울 때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그들에게 당연한 소리의 차이를 우리는 전혀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아무리 소리를 따라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영어로 ‘they’를 발음하면 우리는 ‘데이’로 이해한다. 그래서 우리가 ‘데이’라고 발하면 영어 원어민은 ‘tey'로 듣고 우리의 발음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서로 소리체계가 다르면 서로 소리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를 모국어 함정이라고 한다. 상대의 소리를 나의 소리체계로 번역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저 원어민의 발음을 듣고 따라하기를 반복하면 나아진다고 생각할까? 일부 발전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나처럼 소리에 둔감하고 원래 발음까지 어눌한 사람은 듣고 따라하기로는 전혀 발전이 없다. 오히려 모국어 함정에 빠져서 왜곡된 발음이 그대로 굳어버리게 된다. 모국어가 없다면 아기처럼 해당 언어를 빠르게 배울 수 있다. 하지만 모국어가 이미 정착되었다면 어렵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모국어 함정을 피해서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내지 못하는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음성학은 말소리를 설명할 때, 우리가 소리를 낼 때 사용하는 혀나 입술 등의 기관의 움직임으로 설명한다. 성대를 떠는가? 혀의 위치는 어디인가? 입술은 어떤 모양을 하는가? 코로 공기가 흘러가는가? 파열인가 마찰인가? 숨소리가 많은가? 등으로 소리를 묘사한다. 그리고 음성 연습은 전부 혀와 입술 그리고 성대 등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연습을 하면 일단 소리를 낼 수 있다.


 연습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처음엔 they의 /ðeɪ/ 발음을 들으면 우리말의 /데이/로 들었다. 지금은 /ðeɪ/로 들린다. 어떻게 들리는 걸까? 처음에는 이렇게 저렇게 발음하라는 말을 따라 해도 잘 들리지 않는다. /ð/를 발음할 때, 혀를 윗니에 살짝 대고 소리를 내보내라고 해도 그냥 /ㄷ/이랑 비슷하게 들린다. 하지만 /ð/와 함께 /d/와 /t/의 발음을 같이 연습하다 보면 조금씩 차이가 몸에 새겨진다. 세 음이 모두 성대 입과 혀가 다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그 움직임의 차이에 따라서 어떻게 음이 달라지는지 구분되기 시작한다. 이렇게 서로서로의 음이 구별되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비로소 음이 들려온다. /ðeɪ/가 /데이/로 들리지 않고 /ðeɪ/ 그 자체로 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때, 개별 음의 연습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다른 음과 비교를 통해서 그 음의 차이를 인지해야 소리가 명확해진다. 


 개인적인 가설은 이렇다. 우리가 발성기관을 다르게 써서 다른 소리를 내는 연습을 한다.  그런데 귀에는 똑같아 보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면 뇌는 현재 발성기관의 움직임과 소리를 동시에 비교하게 된다. /ð/, /d/, /t/를 각자의 발성 방식에 따라서 발음한다. 그러면 처음엔 우리 귀에는 /ㄷ/으로 들린다. 하지만 각각의 발성방식은 다르다. 따라서 이 소리를 듣는 뇌의 입장에서는 발성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그 차이에 따라서 소리를 구별하려든다. 성대가 진동되는지 여부에 따른 차이나 숨소리를 섞었을 때의 차이 등을 면밀하게 구별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구분된 소리에 대한 신경 배선이 이루어지면 그 때부터는 /ð/, /d/, /t/, /ㄷ/를 구별하여 듣고 발음할 수 있게 된다. 즉, 서로의 소리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구별함으로써 음성이 체계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구분되면서 비로소 상대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이제 영어 듣기가 상당히 편해졌다. 내 발음이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영어를 들을 때 생기는 이질감이 상당부분 사라졌다. 이제 음성 기호가 어느 정도 머릿속에 장착이 되어서 해당 소리를 그대로 머릿속으로 옮겨주는 느낌이다. 이렇게 장착이 되고 나니 예전에 얼마나 힘들게 들었는지 알게 되었다. 영어 단어를 들을 때, 정확한 소리를 듣지 못하니 영어를 한글로 전환해서 문맥에 따라 비교하고 그에 맞는 단어를 찾아 영어로 다시 쓰는 과정이 머릿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머리가 핑핑 도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러니 영어 듣기가 그리 힘들었고 미드를 보다가 모르는 단어 하나가 나오면 그대로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정확한 음성 기호가 어느 정도 장착 되니 자연스럽게 말소리를 듣는 게 조금씩 가능해졌다. 영어가 자연스럽게 들리는 경험은 꽤나 신세계였다.



 국제음성기호(IPA)는 이상한 도표와 기호들로 범벅되어 읽기조차 어려웠다. 위키류를 검색해보아도 어렵긴 매한가지였다. 한글로 적힌 전문용어라고 쉽진 않았다. 첫 느낌은 난데없이 양자역학 수식을 푸는 정도의 난이도였다. 잠시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정말 이런 공부가 필요할까?


 수십 년간 쌓여온 영어가 필요하다는 결핍감, 영어에 대해서 감을 잡았을지도 모른다는 애매모호한 기대감, 어차피 할 일은 없고 영어가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사정 등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어가 너무 필요했기에 마음을 다잡고 자료 찾기에 몰두했다. 그리고 그렇게 언어학을 접하게 되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언어학이 아니라 언어학 중 음성학 파트였다. 일단, 언어학 개론서를 하나 집어서 음성학 부분만 읽어보기 시작했다. 여기서 읽었다는 것은 외웠다는 뜻이다. 언어학의 난이도는 너무 매우 지나치게 높아서 아무리 읽으려고 해도 읽히지 않는 수준이다. 전문용어도 어렵지만 언어현상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외국어의 언어 현상은 아무리 읽어도 이해하기 어렵고 와 닿지 않는다. 반면, 우리말의 언어 현상을 글로 읽고 이해하려는 것도 힘들었다. 입에서 잘 튀어나오는 말을 구태여 분석까지 하고 싶진 않다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어학 관련 책을 읽고 있으면 자꾸 튕겨 나간다. 집중력이 유지되지 않고 그만 읽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Anki에 넣어서 싹 외워버렸다. 보통은 이해를 하고 외우는 경우가 많지만 이처럼 인연 맺기 힘든 학문은 부득이한 경우 외워서 이해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편이 오히려 빠르다. 


 그렇게 하나를 외워서 기초를 닦았지만 뭔가 미진했다. 그래서 다른 책을 외웠는데, 앞서 외운 책과 내용이 다르다. 그 다음 책도 앞의 두 책과 내용이 서로 달랐다. 대혼란이었다. 상당 시간 동안 혼란에 빠졌고 이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 여러 책들을 봐야만 했다. 덕분에 음성학 공부를 어렵게 하는 몇 가지 난관을 알게 되었다.


 우선, 유럽과 미국의 관계가 문제가 된다. 국제음성기호(IPA)는 유럽에서 영어의 소리를 표시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학자들은 국제음성기호를 무시하고 자신들이 사용하는 음성기호를 따로 만들었다. 이를 미국음성기호(APA : American phonetic Alphabet)라고 한다. 국제음성기호와 미국음성기호의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처음 음성학을 펼쳐 든 사람들은 서로 다른 기호에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현재는 국제음성기호가 대세로 사용되는 것 같지만 여전히 많은 미국음성기호가 사용되고 그 외에 국내 사전의 발음기호 같은 다른 기호들도 같이 사용되고 있어서 초학자들은 혼란을 피하기 어렵다.


 또 다른 문제는 음성기호의 한계다. 음성기호는 모든 소리를 표시할 수 없다. 한국 사람들이 동일한 언어를 써도 말소리가 미묘하게 다른 것처럼 무한에 가까운 다양한 음성을 기호 몇 개로 표시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음성기호는 입술과 혀의 위치, 성대를 울리는지 여부, 얼마나 길게 소리를 내는지, 소리를 내는 방식 등으로 말소리를 정의한다. 


 가령 영어의 /t/에 해당하는 음은 혀끝을 윗잇몸에 대고 성대를 진동시키지 않는 상태에서 소리를 파열시키는 소리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마다 /t/ 음이 조금씩 다르지만 서로 알아듣는데 전혀 문제가 없게 된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에게 이런 발음을 하라고 하면 /t/가 아닌 /ㅌ/이 된다. 분명히 소리도 비슷하고 서로 알아듣는데 문제가 없지만 한국인은 /t/ 발음을 외국인의 버터 발음으로 느끼고 외국인은 한국인의 /ㅌ/을 한국 특유의 영어 발음이라고 생각한다. 즉, 서로 이질적으로 느낀다. 왜 그럴까? 이는 한국의 /ㅌ/ 음은 윗잇몸에서 이빨에 가까운 아래쪽에 혀를 대고, 영어의 /t/ 음은 그보다 조금 위에 혀를 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어의 /t/ 소리는 좀 더 혀를 굴리는 소리가 되고 한국어의 /ㅌ/은 좀 더 혀를 곧게 뻗는 소리가 된다.


 영미권에서 번역된 음성학 책들은 주로 자신들의 영어 음성을 위주로 기술되기 때문에 이런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지 않는다. 오직 한국어를 베이스로 영어를 익힐 때의 발성 차이를 연구한 경우에만 이런 미묘한 차이를 찾아낸다. 이런 문제로 인하여 영어권에서 소개한 음성학 관련 책들이나 이를 참고한 책을 읽으면 오히려 굉장히 한국적인 발음을 익히게 된다. 다른 언어를 모국어에 가깝게 이해하려는 모국어 함정으로 인하여 영어의 발음을 한국어 발음으로 이해해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확한 발음을 익히려면 한국어의 발음 방식과 영어의 발음 방식의 차이를 분명하게 구별해주는 책을 찾아야 한다.


 그 외에도 범람하고 있는 음성과 발음 관련 교재들이 너무 많다. 영국식 영어, 미국식 영어로 나뉘어서 발음을 가르치기도 하고 최근에는 변형 훈민정음을 이용한 발음연습까지 나와서 무얼 읽고 따라야 할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 경우는 이것저것 참고하다가 이화여자대학교 오은진 교수의 『외국어 음성 체계』라는 책의 1장을 중심 텍스트로 삼았다. 이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국내 국어학자가 쓴 음성학 책과 미국의 언어학자가 쓴 음성학 책 등에서 음성학 파트를 전부 외우고 비교해서 선택한 것이다. 책들이 전개하는 서로 조금씩 다른 이론을 판단할 방법이 없었기에 유튜브 등에서 실제 발음하는 시청각 자료들을 보고, 내 스스로 서로 다른 책들의 방식에 따라 발음 연습을 하면서 비교하여 판단했다. 그 결과  『외국어 음성 체계』 1장의 내용이 내 발음이 왜 이모양이고, 저 외국인은 왜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지를 매우 명쾌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 책을 영어 음성학 공부의 기준으로 선택했다.


 혹시나 해서 덧붙이면  『외국어 음성 체계』라는 책은 음성학 관련 다른 연구를 하는 책이다. 발음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책이 전혀 아니다. 게다가 매우 재미없다. 이 책의 1장은 기존의 음성학에 관련된 논의들을 축약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정말 좋지만 정말 재미없고 읽기 힘들다. 짧은 경험상 언어학자가 쓴 글에서 재미있는 글은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언어학자들은 글을 재미있게 쓸 수 없다는 보편원칙을 설정해도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언어학자들은 글을 재미없게 쓰는 것 같다. 그런 언어학 관련 책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외국어 음성 체계』는 재미없다. 거의 실험보고서에 가깝고, 1장도 정말 축약에 축약을 거듭한 내용이라서 전혀 친절하지 않다. 그런데 무슨 인연인지 도서관에 갈 때마다 눈에 띄여서 읽어보고 덮기를 수십번은 반복하게 되었다. 결국, 읽기를 포기하고 Anki에 집어넣어 외워버렸다. 외울 때는 주로 중요한 문장 위주로 정리해서 외우는데 어찌나 축약을 잘 하셨는지 거의 토씨하나 빼지 않고 다 외워야 했다. 비록, 이 책과 인연이 닿아서 1장만 외우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이 책의 1장을 음성학 교재로 추천하고 있지만 읽기가 녹록치 않다는 점을 다시 말한다. 



 영어 발음을 어떻게 익혀야 할까? 라고 인터넷에 질문하면 IPA가 나타난다. IPA는 국제음성기호(International Phonetic Alphabet)인데 소리를 표시하기 위한 알파벳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어 단어를 사전에서 찾으면 붙어있는 발음기호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 IPA가 처음 생긴 이유가 재미있다. 영어를 글로 옮겼을 때의 알파벳과 발음이 크게 달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음성 기호를 만든 것이 시작이다.


 영어의 역사에서 이 문제는 매번 지적된다. 영어 사용자가 여러 지역에서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언어가 변형되기 시작했다. 방언이 발달했고, 외래어들이 그대로 영어 단어로 유입되어 변천되면서 철자는 그대로 남고 발음이 변형되거나 발음은 남고 철자가 변형된다. 단어의 철자와 발음을 통합하고 정리하려는 노력이 중간 중간 있었지만 대세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오히려 또 다른 변형된 철자와 발음을 만들어내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그래서 일부 언어학자들은 영어가 표의문자화 되었다고 생각한다. 알파벳을 말소리 그대로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영어권 사람들이 영어권 사람들을 위하여 출판한 문법책들을 보면 철자(spell)를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반드시 나온다. 하물며 오랫동안 출판 교정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수기를 읽어봐도 철자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틀린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나온다. 그래서 영어 사용자들도 자신들의 언어가 너무 복잡하고 이상하다고 말한다. 


 중고등학교 때가 생각난다. 영어 단어는 철자(spell)만 보고 발음할 수 없어서 발음 기호를 따로 봐야 했다. 쓰는 법과 읽는 법이 달랐다. 어쩌면 그냥 외우면 될 일이지만 당시의 나는 이 불일치가 너무 불편하고 짜증났다. 이건 나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친구들 중에는 영어 읽는 법을 자기 식으로 바꿔서 읽는 친구도 있었다. 어차피 시험에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 친구는 좋은 성적으로 승승장구하다가 영어 듣기 시험이 중요하게 대두되면서 영어 공부를 손 놓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발음과 알파벳의 불일치 때문에 영어권 사람들은 글을 쓸 일이 없다면 입말 위주로 편한 단어를 써서 의사소통을 한다. 철자는 따로 공부해야 하니까, 역시 쓰기 편한 단어들 위주로 쓴다. 이들이 철자를 공부할 필요를 느끼는 경우는 그야말로 제대로 글을 쓰거나 연설을 하려고 할 때이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영어권의 문맹률도 상당히 높게 나온다. 그런데 우리는 정반대다. 영어 발음은 입으로 한두 번 굴려보지만 그것보다는 철자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조금 영어공부 했다고 하는 이들은 철자를 틀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영어권 사람들은 입말을 위주로 익히고 한국인들은 글 위주로 익히는 것이다. 간혹 유튜브를 볼 때, 영어권 사람들이 한국 수능 문제를 풀면서 어려워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이유도 자신들이 쓰는 영어에서 잘 안 쓰는 단어들 위주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난이도를 높이기 위하여 난해한 글 위주로 익히는 한국의 교육 문화가 이상할 것이다. 언어 그 자체가 아니라 시험 성적을 위한 언어 공부라는 변종이기 때문이다.


 영어의 발음과 철자의 불일치는 나 같이 이런 사소한 불일치를 거슬려 하는 사람에겐 큰 장애였다. 분명히, 표음문자라고 들었는데 왜 소리와 철자가 일관되지 않을까? 한글처럼 비슷해야 하지 않은가? 등으로 생각하면서 궁금해 했다. 그리고 매번 영어공부를 할 때마다 발음과 철자 사이에 내재된 원리를 찾기에 바빠 정작 영어 공부는 등한시했다. 이해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수수께끼 때문에 영어를 아무리 공부해도 근본적으로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단지, 시험을 위해서 숙련시켰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공부하고 20년 가까이 지나서 그 때의 의문을 풀게 되었다. 원어민들도 영어를 쓰면서 이런 불편함을 겪고 있고 철자를 발음하는 무슨 규칙이 있지 않고 그저, 복잡하게 섞여버린 잡탕이라는 점을 깨달아서 불편함이 사라진 것이다. 


 IPA와 관련된 영어 역사를 살펴보면서 영어 훈련의 방향 하나를 깨닫게 되었다. 그건 우선 이해하기 어려운 철자(spell)를 제거하고 모든 단어를 음성기호로 바꿔서 훈련하면 철저히 입으로 하는 영어를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였다. 생각해보면 매번 글로 쓰여진 영어 위주로 학습을 하기 때문에 발음을 제쳐두고 눈으로 알파벳 영단어를 보게 된다. 발음이 같아도 글자가 다르니 그냥 별 생각 없이 단어를 구별한다. 리듬과 액센트도 고려할 필요가 없다. 의미단위로 분절되어 있는 단어를 하나하나 분석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말소리는 이어져 있고 변형된다. 이를 전부 음성기호로 표시하면 의미단위가 아니라 소리단위로 영어를 볼 수 있을 것이고 이에 익숙해질 수 있다. 게다가 이럴 경우 원어민들조차 질색하는 철자에서 오는 혼란을 겪을 이유가 없게 되기 때문에 학습 효율도 높아지게 된다. 


 일단, 괜찮은 생각으로 보였다. 어떤 언어든지 입말이 언어의 주를 이루고 글은 입말을 다듬고 형식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치상 입말 위주로 공부하는 방식이 옳고 제대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미 문법과 철자에 능숙한 사람이라면 입말만 트여도 기존의 수험식 영어 공부를 통해 머리로만 알던 지식들도 입으로 능숙하게 옮길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이 아이디어는 나를 고무시켰다. 어쩌면 무척 재미있는 결과를 이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몸을 달아오르게 했다. 


 아이디어에 고양되어 IPA의 도표를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기괴한 전문용어의 향연과 이해할 수 없는 도표 그리고 이상한 기호들이었다. 이해해보려고 끙끙대면서 읽어보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점만 확신하게 만들어주는 도표였다. 막다른 골목이었다.






 영어는 머리로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입과 귀로 훈련해야할 기술이라는 관점에 서서 영어 교재들을 살펴보면 모두 하나같이 발음을 먼저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 발음을 올바르게 하는 방법을 이야기 해주는데 매우 간단하다. 원어민이 발음한 것을 따라서 발음한다. 그리고 그 둘을 비교한다. 이 과정을 스스로 발음한 것과 원어민이 발음한 것이 똑같아 질 때까지 반복하면 된다. 


 절대 음감을 가졌다거나, 소리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들이라면 이런 방법으로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해하기도 실천하기도 어려운 방법이었다. 이미 영절하식 영어 공부를 시도할 때, 깨달았기 때문이다. 안 들리는 발음은 계속 안 들린다. 그런데 안 들리는 발음을 따라하고 비교하라고 하니 답답할 따름이다. 모든 책들이 이런 방법을 강조하니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쪽은 내 쪽인 것 같다. 하긴, 원래 음악을 어려워하고 소리에 민감하지 않은 편이라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안되는 방법을 시도할 순 없었다. 또, 내 영어 공부의 목적은 책과 기사를 읽는 것이다. 영어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거나 영어로 대화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런데 대화할 때에나 쓸모 있어 보이는 발음을 별로 가능성 없어 보이는 방법으로 익히라고 하니 거부감이 들었다. 


 발음에서 영어 훈련에 대한 관심을 접으려고 했지만, 번역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Anki로 책을 통째로 외우다 보니 그저 책을 간단하게 읽어내릴 때완느 다르게 책에 있는 대부분의 문제를 면밀히 파악하게 된다. 오타, 오기, 그리고 이상한 문장들을 전부 발견하고 이것을 수정하려고 끙끙거린다. 특히, 기술 관련 서적들은 슬플 정도로 오류가 많았다. 노골적으로 잘못된 정보가 적혀 있는 경우도 많고, 말을 얼버무리거나 두루뭉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구글 번역기의 여파인지 예전에는 보기 힘든 이상한 역어체와 이상한 번역도 종종 마주치게 된다. 이들은 그저 슥 지나가듯 읽을 때는 제대로 번역된 느낌을 준다. 그런데 한자한자 곱씹어 보면 비문이거나 인간으로서 수용하기 어려운 기묘한 문장인 경우가 많다. 기술 관련 번역서들은 온통 지뢰밭인 경우가 많다. 원작자가 글 재주가 없는 경우가 많고, 번역자가 해당 기술에 무지한 비전공자이거나 반대로 전공자이지만 글 재주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구글 번역기를 얹으면 화룡점정이다. 언뜻 읽으면 서툴게 번역된 느낌을 주지만 제대로 읽으면 읽을수록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의미의 미로를 완성시킨다. 결국, 번역서를 원서와 하나하나 비교하면서 읽거나 원서 그자체로 읽게 된다.


 영어와 마주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번역된 책을 읽으려고 해도 어디서 엉뚱한 오역이 나타날지 몰라 결국 원서를 봐야 한다. 매번 모르는 단어만 찾아보고 어떻게든 의미를 맞춰보고 넘어가는 식의 책 읽기가 싫다. 쓰여진 글의 의미를 찾지만 언어로써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의미를 이리저리 배치해 보면서 딱 맞는 한국어를 찾는 과정이다. 누군가에게 전해들은 풍경 마냥 자신 없는 투로 “제주도가 아름답다.”라고 말하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영어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한국어에 영어 단어를 좀 더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시간은 시간대로 소모되고 투입된 시간과 노력 대비 얻는 것도 적다. 마지막으로 독서 경험이 최악이다. 읽다가 조금이라도 모르는 단어나 구문이 나오면 이리저리 뒤져보다가 호흡이 끊기면서 몰입하지 못하기 일쑤다. 이렇게 문제가 쌓이다 보니 차라리 영어를 어떻게든 익히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영어를 익혀야 한다고 해도 무슨 팁 던져주는 듯이 “이렇게 읽으세요.” 하는 식의 발음 학습들이 발음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 내용을 신뢰하기도 어려웠다. 이런 경우 방법은 하나뿐이다. 시중에 나오는 학습서를 뒤지지 말고 좀 더 전문적인 학술 영역으로 들어가서 자료를 찾는 것이다. 당연히 새로운 개념과 내용을 익혀야 하는 귀찮은 길이지만 그나마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생산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거 하기 싫어서 영어 공부 안 하려고 했던건 데 결국, 이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눈물을 머금고 관련 영역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언어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결국, 음성학이라는 마이너해 보이는 분야를 발견했다.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마라”(이하 영절하) 공부 방법을 듣고 나서 호기심에 무작정 미드를 녹음해서 귀에다 때려 박아보았지만 성과가 없었다. 영어 전반에서 기량이 향상되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주구장창 듣는 미드도 여전히 잘 알아듣지 못했다. 몇 개월이 지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배경음만 점점 친숙해질 뿐이었다. 필시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뭔지 알 수 없었다. 호기심이 늘 그렇듯 효과가 없어 보이니 더 이상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고 그렇게 공부를 접었다. 




 몇 년 후에 도서관에서 “English RE-start” 시리즈를 봤다. 책이 예뻤고 무슨 의도로 책을 만들었는지 명확해보여서 읽어봤다. 적절한 수준의 쉬운 영어로 주변을 묘사하고 단순한 이야기를 그림과 같이 전개하고 있었다. 한국어가 개입되지 않고 직관적인 그림을 보면서 영어를 이해하는 과정을 그려나간 것이 흥미로웠지만 그 뿐이었다. 영어 공부에 관심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인연인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하면서 계속 관련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책도 사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학습하는 앱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앱이 나의 호기심을 다시 자극했다. 






 “English RE-start”는 한 페이지를 4컷으로 분할하여 간단한 이야기를 전개하는 구조를 가진다. 그리고 “English RE-start” 학습 앱은 분할된 컷을 한 화면으로 해서 그림과 함께 텍스트를 보여주면서 원어민이 천천히 텍스트를 읽어준다. 그리고 다음 컷으로 이동한다. 이 간단한 구성이 내게 아이디어를 주었다. 즉, 영절하식 공부 방법을 이 앱을 통해서 구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즉, 영절하 식 공부방법을 “English RE-start”의 한 컷 별로 구현하는 것이다. 한 컷에 들어간 텍스트는 몇 마디 되지 않으니 반복해서 듣기 편하다. 그러니 소리가 들릴 때까지 그 짧은 문구를 반복해서 듣느다. 또, 원어민의 목소리를 바로 따라서 읽으면 흔히 말하는 섀도잉이 된다. 내가 정확하게 들었는지 여부는 짧은 그 문장을 듣자마자 그대로 따라할 수 있는지 확인하면 된다. 문장을 외우지 않아도 짧은 문장이기 때문에 바로바로 따라할 수 있었다. 아이디어는 훌륭해 보였다.


 “English RE-start”의 Basic에서 advanced까지 시간이 되는대로 순차적으로 반복했다. 운동을 하거나 이동시간에 간단히 읊조리면서 반복했다. 그리고 2~3개월 정도 지나자 성과가 나타났다. 처음으로 미드를 자막 없이 온전히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자막 없이 본 미드는 정말 재미있었다.  


 대단한 성과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성과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 드라마 하나만 가능했다. 이미 수십번 반복해서 보았기 때문에 모든 단어와 내용을 완전히 꿰고 있는 에피소드만 자막 없이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여전히 처음 보는 미드는 자막 없이는 보지 못하고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멘붕에 빠지기 일쑤였다.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이전에는 수십 번을 봐도 자막 없이는 감상에 불가능했다. 명백한 발전이고 성취였다. 


 일단, 성취가 생기니 욕심도 같이 생긴다. 성장이 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태를 살펴보고 부족한 점을 찾아봤다. 그 결과 2가지가 문제였다. 


 첫 번째는 듣기가 안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단어를 전혀 듣지 못한다. 자막 없이 볼 수 있었던 미드는 모든 단어와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새로운 단어가 나오면 그게 실제로 아는 단어라 할지라도 소리로는 알아듣지 못하고 힘겹게 유지하던 정신이 무너져버렸다. 한국말이라면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대충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이를 추론해볼 수 있는데, 영어에서는 아예 단어의 소리를 알 수 없으니 이게 되지 않았다.


 두 번째는 맥락이었다. “English RE-start”는 그저 매우 단순한 이야기와 쉬운 말만 사용하고 있어서 사회적 의사소통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았다. 즉, 관용어나 농담, 반어 등 다양한 감정이 섞여서 문장에 반영될 때는 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처음엔 문법을 몰라서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저것 뒤져본 결과, 영어권의 문화와 전통들에 무지하고 관용적인 표현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도 조금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건 언어 형식에 익숙해진 것이었다. 매일 “English RE-start”의 원어민이 발음한 것을 듣고, 따라하며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입으로 영어 문장을 말하는 게 익숙해졌다. 그리고 입이 영어 구조에 익숙해지면서 수십번 반복해서 봐도 어색하던 미드가 처음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수십 년간 문법을 공부하고 좋은 점수를 받아도 익숙해지지 않았던 영어 형식이 입으로 반복숙달하면서 바로 익숙해진 것이다.


 영어를 못해도 20년은 공부했지만 전혀 늘지 않고 그저 영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요령만 생겼을 뿐이다. 그런데 입으로 연습한지 2~3개월 만에 눈에 보일 정도로 실력 성장이 있었다. 이렇게 되니 무엇을 해야할지 매우 명백해졌다. 필요한 것은 영어 공부가 아니라 영어 훈련이었다. 나아갈 길이 보이니 조금 신났다. 도서관과 서점을 뒤지면서 어떻게 영어 훈련을 하면 좋을지 책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영절하식 공부방법에는 더 이상 호기심이 생기지 않게되었다. 나에겐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지만 영어 훈련의 관점에서 보면 별로 효율적인 방법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English RE-start”에서 짧은 컷 단위로 공부해본 마지막 시도에서조차도 영절하식 훈련방법 보다는 입으로 반복한 것에서 더 큰 효과를 봤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호기심에 영미권의 문법책을 보면서 신기한 것을 보게 되었다. 영미권의 문법책은 우선 철자를 제대로 쓰는 법, 잘 틀리는 스펠링부터 지적하고 흔한 실수들, 주어와 술어를 일치시키기 등등 소소한 팁들로 가득 차 있다. 거기에는 말을 만들고 조립하는 내용들이 많지 않다. 반대로 말을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듬어서 좀 더 품격 있는 영어를 쓸 수 있게 할까 하는 내용들 위주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다. 한국어를 하는데 문법이 필요하지 않다. 자연스럽게 알고 익힌다. 그렇지만 말이나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정확하게 전달되고 격조있게 보이려고 한다. 그 때, 문법이 필요하다. 문법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언어들을 좀 더 정련된 방식으로 조직하여 목적에 충분히 부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입말이 있어야 문법도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언어 공부는 먼저 언어를 몸에 붙이고 그 다음에 문법을 익히는 것이 맞을 듯하다.


 그렇다면 입말은 어떻게 완성해야 할까? 듣고 따라하면 된다. 그렇게 반복연습을 하고 어느 정도 이상 공부량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입말은 완성된다. 영어 공부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이야기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영어로 꿈을 꾸게 되면 언어가 장착된 것이다.”라는 말이다. 실제로 친척 중에 이런 현상을 겪은 사람이 있었는데 이상해 보이는 영어를 자랑스럽게 말하고 그것을 외국인이 잘 받아줘서 놀란 기억이 있다. 그런데 입말의 완성에는 큰 난관이 있다. 그건 음성체계가 다르다는 점이다. 


 언어에서 사용되는 말소리는 실제 소리와 다르다. 가령, 개가 짖는 것을 보면, 나라와 상관없이 개들은 비슷하게 짖는다. 하지만 그것을 나타내는 말소리는 다르다. 우리는 ‘멍멍’, 독일은 ‘바우바우’, 러시아는 ‘가우가우’, 일본은 ‘왕왕’처럼 다르게 표시하고 다르게 발음한다. 이는 언어에서 사용되는 소리가 자연의 소리를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그저 흉내만 내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라들 마다 저마다의 음성체계에 따라서 소리를 유사해 보이는 말소리로 옮긴다. 


 그러면 음성체계가 다를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존에게 ‘배트맨’에 대해서 신나게 이야기했을 때, 존은 한 참을 듣다가 내가 배트맨이 박쥐처럼 날아다니는 모습을 묘사하고 나서야 알았다는 듯이 'bat man'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말한 ‘배트맨’을 ‘bat man’이 아니라 ‘pet men’으로 듣고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박쥐 인간이 아니라 애완동물을 다루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음성학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되었다. 영어 원어민에게 우리의 ‘ㅂ’ 발음은 ‘p’에 가깝다. 그래서 여권을 보면 박씨는 ‘Park’씨이고, 백씨는 ‘Paik’이다. 우리 귀에는 ‘b’가 ‘ㅂ’에 더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영어 원어민들은 목의 성대를 울리는지 아닌지를 민감하게 인지하기 때문에 우리가 말하는 ‘ㅂ’를 'p'로 받아들인다. 내가 ‘배트맨’에서 목의 성대를 울리면서 ‘ㅂ’을 발음했다면 존도 알아들었을 것이다. 


 또, ‘배트맨’을 ‘pet men’으로 알아들었을 때 존은 ‘애’를 전부 ‘e’로 들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우리 언어의 변화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애’와 ‘에’의 발음이 우리에게 있었지만 현재는 전부 ‘에’로 융합되고 있다. 즉, ‘애’와 ‘에’를 구별하여 인식하거나 발음하지 못하고 전부 ‘에’로 발음한다. 그래서 이제는 ‘네가’라고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니가’라고 말하게 된다. ‘네가’와 ‘내가’가 말소리로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배트맨’이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실제 한국어 발음은 ‘베트멘’이라고 한 셈이다. 


 존과 나는 같은 언어를 말한다고 했지만 실은 전혀 다르게 듣고 있었다. 음성 체계가 다르니 의사소통이 근본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치 이런 느낌이다. 내가 ‘배트맨’이라고 발음하는 것은 키보드에서 한글로 ‘배트맨’이라고 적는 것과 같다. 상대는 한글 자판이 아니라 영어자판만 있어서 영어 알파벳 'qoxmaos'로 알아듣게 된다. 당연히, 상대는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영어를 하고 있지만 상대는 그것을 들을 때마다 어색해하고 어이없어하며 의문스러워 하니 내 자신이 영어를 제대로 한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


 더 슬픈 것은 우리는 이러한 말소리 차이에 대해서 알기도 어렵고 극복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언어의 말소리는 일종의 대표소리라서 비슷하게 들리는 음들을 하나의 언어음으로 묶어서 생각한다. 따라서 모국어가 있는 사람들은 세상의 소리를 특정 말소리로 뭉뚱그려서 인식한다. 그래서 한국인이 영어를 배우려고 하면 영어의 소리를 한글에 맞춰 인식하기 때문에 영어의 말소리들이 이상해진다. 그래서 아무리 내가 존이 말하는 ‘bat man’을 정확하게 흉내내보지만 나오는 말은 ‘배트맨’이 된다. 이를 모국어 함정이라고 하는데, 모국어의 음성체계 때문에 외국어의 음성체계가 왜곡되어버리는 현상이다. 따라서 절대음감 같이 소리를 미세하게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음성체계의 왜곡으로 인하여 제대로 외국어를 받아들이기 어렵게 된다. 


 그런데 말소리를 정확하게 익히는 것이 중요한가? 모국어 발음이 형편없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이런 사람들도 안 좋은 발음의 모국어를 이용하여 사는데 문제가 없다. 그런데 굳이 외국인인 한국인이 정확한 발음을 지켜야할까? 당연히 중요하다.


 일단, 언어의 본질인 의사소통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정확한 말소리는 중요하다. 기껏 영어를 배워놓고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큰 손해인가? 하지만 그럼 점 외에도 제2외국어로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에겐 정확한 말소리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어야 정확하게 들을 수 있고 정확하게 상대의 언어경험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다 함은 정확하게 입과 혀를 움직이고 성대를 진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겪어봐야 그 미묘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가령, 군대 생활이 얼마나 짜증나는지 아무리 이야기해도 어떤 이는 관심이 없고 어떤 이는 군대를 동경하기도 한다. 하지만 같이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은 눈만 마주치고 대략 ‘군대’라는 말만 해도 어느새 공감 모드가 되어 듣게 된다. 마찬가지로 언어를 발화하는 것도 같은 경험이다. 왜 ‘파티(party)’가 ‘파뤼’로 발음되는지에 대해서 언어학에서 방언이 어떻고 지역이 어떻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실제 ‘파티’를 제대로 발음하다보면 왜 ‘파뤼’라고 발음하는지 느낌이 온다. '파티'라고 발음하면 마지막까지 각 잡고 긴장하며 발음하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파뤼'라고 발음하면 긴장을 풀고 즐기는 마음이 되면서 개방되는 느낌, 캐주얼한 느낌을 준다. 이런 느낌을 받고 경험이 쌓이면 언제 '파티'라고 말하고 언제 '파뤼'라고 말해야 할지 감이 온다.


 발음 연습을 하다보면 정확한 발음과 그 발음의 미묘한 변형, 강세, 억양 등이 결합되어 언어의 맛이 살아나고, 입에 착 달라붙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발화 경험이 쌓이면 상대의 말이 단순히 사전에서 찾은 대응하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그 자리에서 상대의 말을 경험하듯 공감하게 해주는 공통의 언어가 된다. 단순히 상대가 내뱉은 단어 ‘I love you.’를 ‘나 사랑해 너’로 번역하는 게 아니라 지금 이 데이트 자리에서 서로의 감정이 오가는 모든 상황을 ‘I love you’로 공감한다.


 결국, 영어를 공부하려면 우선, 입말을 정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시작으로 정확한 발음과 음성체계를 구축하는 일이 필요하다. 음성체계가 구축되면 이제 스스로 발음하듯 상대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이 때부터는 영어를 정확히 듣고 발화할 수 있어 유튜브나 미드를 이용해서 영어 공부를 하거나 외국인과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어가 발전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런 토대가 없다면 매순간 자막을 보면서 단어를 확인하고 그 단어를 한글화된 발음으로 다시 뭉뚱그려서 익혀야 한다. 언어 경험이 축적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의미 찾기와 해석의 조합을 연습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매번 머리를 싸매고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피곤한 일이다. 그렇게 에너지를 쏟아도 언어 경험의 미묘한 내용들은 전부 놓치게 된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꽤 명백해 보인다.



1997IMF 이후 영어의 중요성은 그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해졌다. TOEIC 시험 점수는 사람의 가치를 재는 가장 기본적인 척도가 되었고, 영어학원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러면서 영어가 비즈니스 환경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면서 사람들은 실제로 영어를 잘 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문법과 시험 위주의 공부에 대한 대안을 사람들이 모색하고 있었을 때 나온 것이 영절하(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였다. 군대에서 진중 문고로 보게 되었는데 그 이야기의 핵심은 쓸데없는 문법공부는 배격하고 원어민처럼 되면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그 책을 읽었을 때 그야말로 그 자리에서 바로 완독했을 정도로 글쓴이의 주장은 신선했고 접근하기 쉽게 잘 구성되었으며 무척이나 설득력 있게 쓰여진 책이었다. 읽자마자 바로 영절하식 영어공부 방법을 요약해서 노트화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영절하에서 제시된 영어 공부 방법은 기존의 영어 공부법을 폐기하고 올바른 길로 이끄는 혁명적인 방법처럼 느껴졌다. 기본적으로 영어 공부를 단순히 좋은 시험 점수를 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원어민처럼 되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했고 그 실행방법도 단순하고 명확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영절하식 영어공부를 시도했다.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 개인의 입장에서 이 공부 방법은 그렇게 단순하고 명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영절하식 공부를 통하여 영어실력이 늘었다고 이야기 하지만 내 스스로 적용하면서 많은 혼란을 겪게 되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영절하는 공부방법을 단계별로 나눠놨는데 그 단계를 뛰어넘는 기준이나 공부해야할 공부량 등이 그다지 명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책으로 읽었을 때에는 쉬워보였지만 막상 실천해보면 막막하고 어리둥절한 경우가 많았고 같은 내용의 자료를 계속 들어야 하므로 무척 지루하게 느끼기도 했다. 

 

가령 영절하에서 제시한 1단계가 카세트 테이프 한 개를 그 테이프에 있는 모든 소리가 들릴 때까지 계속한다는 것인데, 해보면 소리가 다 들린다는 기준이 애매하다.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인지 확인할 수 없는데,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스크립트를 보면 안된다. 그러니 계속 속으로 소리가 다 들린 것인지 아닌지 의심하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도 되는지 판단하지 못한다. 그리고 같은 테이프를 매일 들으니 정말 지루하다. , 이를 무의식적으로 해석하지 말라는 지침도 있어서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해석하는지 점검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 언어를 알아듣는 것인지 스스로 무의식적으로 독해하듯 해석하는지 잘 구분도 안 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데 스스로 발전하는지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 이 공부법의 가장 어려운 점인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발전하는 것이 느껴지면 계속할 수 있는데, 이를 측정할 수 있는 점수도 없고 어떤 책의 진도가 나가는 것도 아니라서 더더욱 쉽게 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니었다. 여튼 영절하를 시도했던 사람들이 이 공부의 어려움을 토로했고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난 것으로 안다.

 

세상을 삐딱하게 사는 나같은 사람은 영절하를 읽고 그 방법에 동의하면서도 제 입맛대로 그것을 변형해서 스스로 편한 것만 받아들인다. 당시 아무리 세상에서 영어가 중요하다고 말해도 별로 체감하지도 못했고, 솔직히 한국어로 되어 있는 정보도 소화하기 벅찼다.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니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딱히 여행 가고 싶은 욕구도 없어서 영어가 필요하지 않았다. 당연히 영어 공부에 목숨 걸 생각도 없고 영절하식으로 최선을 다해 영어공부를 할 생각이 있을리 없었다. 그런데 영절하의 논리에는 그대로 설득되어서 영어 공부에 대한 모든 방법을 영절하의 논리를 이용하여 잘못된 공부 방법으로 규정했다. 반공부주의라고나 할까, 문제집이나 교과서를 공부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신념만 강하게 형성되었기에 기존의 영어 공부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여기면서도 영절하식 공부를 할 여건도 의욕도 없으니 그냥 영어공부를 전혀 안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미국 드라마 열풍과 함께 좋아하는 미드에 꽂혀서 밤을 새다시피 하는 나날이 지속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미드는 많고 현실은 개떡 같으니 매일매일 미드 삼매경이었다. 미드에 빠져서 현실을 잊고 사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질 때마다 스스로 핑계를 댔던 것이 영어공부를 한다는 것이었다. , 미드를 보면서 그냥 미드만 보고 있자니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지니 영절하식 영어공부를 시도한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하면서 영절하의 공부방법을 따라해본 것이다. 그러면서 영절하식 영어공부의 지루함을 재미있는 미드로 보완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기만했다. 물론, 미드를 보다가 다시 자막을 틀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다시 정신이 들면 자막을 꺼보고 그러다가 결국, 발음에 주의하면서 듣는다고 스스로를 속이면서 그냥 자막 키고 봤다. 공부가 되었을 리가 없다.

 

스스로 영어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니 뭔가 하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미드를 통째로 녹음해서 돌아다니면서 이어폰으로 듣기 시작했다. 계속 듣다 보니 점점 잘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몇 단어는 3년 동안 절대로 들리지 않았고 컨디션에 따라서 잘 들리고 안 들리고가 반복되기 시작했다. 그 상태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지 잘 알 수 없었다. 안 들리는 단어는 전혀 안들리는데 그런 단어를 추적해서 영영 사전을 찾고 그것을 낭독하라고 되어 있었는데 결국, 못 찾고 끝났다. 스크립트나 자막을 찾아봤으면 그 단어를 찾아낼 수 있겠지만 그러면 지는 것 같았고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생활이 바빠지면서 조용히 영절하식 공부는 접게 되었다. 


거진 3년간 열심히 녹음한 미드를 들었는데 영어 실력이 늘었을까? 그 부분은 조금 미묘하다 영어 문장이 자연스럽게 들리는 느낌적 느낌은 있다. 하지만 열심히 녹음하여 들은 미드를 자막없이 보기는 어려웠다. 정말 열심히 했다기 보다는 그냥 BGM식으로 움직이거나 여유로울 때만 똑같은 미드를 계속 들었던 것이지만 3년이나 똑같은 미드를 들었다면 영어 전반이 발전하진 않더라도 그 미드 정도만이라도 잘 들렸으면 성취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그러지 못했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반복한 이야기라 지루하지만 그래도 한국의 영어 공부는 문법에서 출발했기에 이에 대해서 먼져 따져보아야 할 것 같다. 


90년대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는 영어 공부라는 것이 문법을 공부하고 그 문법에 따라서 영어를 합리적인 규칙에 따라서 말하는 것이다. 당연히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그냥 영어를 계속 듣게 하면 영어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므로 최소한 영어의 뜻을 알기 위해서라도 이를 자신의 모국어로 설명해주는 문법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론적으로 생각해보면 영어의 모든 규칙을 알고 이를 적절히 적용한다면 완벽하게 그 언어를 구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우선 여기서 궁금한 것은 인간의 언어를 일련의 규칙으로 정립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정립할 수 있다면 이미 우리 시대에 말을 하는 기계들이 나타났을 것이고 모든 외국어 공부는 필요없어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일련의 규칙에 따라서 번역이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번역기가 만들어졌을 것이고 그 번역기는 모든 언어를 완벽하게 번역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런 기계는 없다. 이제 딥러닝이나 이런 것을 이용하여 일상적인 회화를 겨우 번역하는 수준이다. 그리고 수많은 석학들은 여전히 언어에 달라붙어서 그 규칙을 이것저것 찾아보는 정도다. 그러니 현재까지론 문법으로 어떤 언어의 모든 규칙을 규정할 수 없다.

 

두 번째는 문법으로 어떤 언어를 기계적으로 번역할 수 없는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문법을 공부함으로써 그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므로 문법을 되도록 많이 알고 그것에 숙달되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문법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법이 지나치게 상세하고 그 규칙이 많다면 점점 고려해야할 문법이 많아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문법을 일일이 판단하고 적용하려 한다면 당연히 말이 튀어나오지 않게 된다. 문법을 1개만 아는 사람이라면 그 1개의 문법에 맞는지만 따지면 되지만 100개의 문법을 아는 사람은 그 100개의 문법에 맞는지 전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말할 타이밍에 문법을 고려해야 하니 말을 할 기회를 놓치기 일쑤일 수밖에 없다. , 자신이 모르는 수많은 문법을 고려하면 언제 틀릴지 모르므로 말은 더더욱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독해도 마찬가지다. 글을 읽으면서 글의 논리적 구조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해당 글이 어떤 문법에 맞는지 틀리는지 일일이 검증하면서 봐야하니 독해도 더뎌지고 그 언어로 된 책을 읽기 싫어질 수밖에 없다.

 

어느 날 한국이 아닌 영어권에서는 문법을 어떻게 공부하는지 궁금해져서 열심히 구글링을 해봤다. 그리고 문법에 대한 두 가지 접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접근 방식은 second language로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한 문법이었다. 주로, 가장 기본적인 영어를 가르치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영어를 어떻게 쓸 수 있는지 설명하고 연습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두 번째는 이미 영어를 매우 잘 쓰는 원어민들이 영어를 공적으로 세련되게 전문적으로 쓰기 위하여 공부하는 문법이었다. 기자, 정치권의 대변인, 아나운서, 글쓰는 사람들이 영어를 다듬기 위하여 문법을 공부하는 것이었다


, 영어를 전혀 못하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영어를 알기 위해서 필요한 수준의 문법이 있고, 실제로 영어를 잘 쓰는 사람들이 자신의 영어를 공적으로 세련되게 사용하거나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제공되는 문법 교육이 있는 것이다. 그 어느 문법도 영어의 모든 규칙을 제정하고 있지 않다. 그냥 초심자는 사용할 수 있는 언어를 제공하고 있고, 전문가에게는 자주 하는 실수를 지적하는 것이다. , 문법이 보조적인 역할과 제한적인 역할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특히, 세련된 영어 사용자들을 위한 문법은 언어를 가다듬고 절제하기 위한 수단이므로 이미 영어 원어민 수준의 영어 실력을 전제로 깔고 들어가니 우리 같이 영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배우기에는 시기상조인 문법이다


따라서 초심자 수준의 문법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면, 자주 쓰고 문화에 익숙해지고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숙련된 영어 사용자가 되고 난 후에 세련된 문법이 필요한 셈이다. 그런데 한국의 문법은 초심자의 문법도 고급 영어 사용자의 문법도 아닌 그저 모든 문법이다. , 문법은 영어를 배우기 위한 첫 가교 역할을 하고 영어를 잘 쓰게 되면 이를 다듬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문법 위주의 영어 교육은 이러한 구분 없이 영어를 문법 공부로 대체해버리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90년대식으로 문법으로 영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영어라는 언어를 합리적으로 분석하는 언어학에 가깝지 영어 자체를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문법이 전혀 필요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어권의 문법 교육처럼 영어를 처음 배울 때와 숙련된 영어 사용자가 되고 난 후에 이를 다듬을 때 필요한 것이지 영어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특히 문법을 아무리 잘 공부해도 잘 듣고 말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거의 확실했다. 90년대에는 이런 문제의식은 많았던 것 같지만 이런 문제의식을 극복할 방안이 마땅한 것이 없었다.

한국어는 참 훌륭한 언어이다. 이 언어를 쓰면서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고 의사소통하는데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오히려 그 복잡미묘한 표현의 우수성과 즐거움을 충분히 누리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충분히 좋은 언어생활을 누리고 있는데 영어 공부를 해야 하나?


영어를 언제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따져보니 사용한 적이 거의 없다. 영어와 관계된 것이라고는 좋아하는 미드를 보는 것이지만 자막 덕분에 불편함 없이 충분히 잘 즐기고 있다. 가끔씩 영어로 된 문서를 읽긴 하지만 사전도 잘 되어 있고 번역 기술도 좋아져서 약간의 영어 문서를 읽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그리고 영어로 된 문서를 읽는 경우가 거의 없다. 국내에 출판되는 양질의 책과 자료를 읽기에도 굉장히 많은 시간을 쓰고 있고 정말 좋은 영어 책들은 번역된다. 정말, 영어를 쓸 일이 없다.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면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사람도 있지만, 한국인 친구도 잘 안 만드는데, 외국인 친구를 왜 만들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게다가 대화할 공통의 화제를 만드는게 쉬울까? 서로의 문화를 조율하고 서로를 이해하고등등, 평생 같이 산 부부도 힘든 일을 외국인들하고 하라고? 사교적인 사람들이라면 가능하겠지만 나같이 비사교적인 사람은 생각만 해도 힘들고 귀찮고 부담스럽고 너무 힘들다. 그렇다고 딱히 친구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영어가 정말 필요한 경우는 비즈니스적인 경우인 것 같다. 업무상 뛰어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영어 성적을 제시하거나, 해외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경우에는 정말 필수적인 것이다. 결국, 스펙과 제한적인 해외 영업 말고는 거의 쓸 일이 없는 셈이다. 하지만 40대쯤 되면 토익성적이 스펙이 될 수는 없다. 또, 국내에서 한국말로 영업하는 것도 불편한데 더듬더듬한 영어로 영업을 뛰겠다는 생각이 과연 합리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평생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영어에 집착하는 것을 보았지만 사실 감흥이 별로 없었다. 영어를 잘 하면 당연히 좋겠지만 매일매일 공부하고 자책하고 열등감을 갖고 그러면서 영어를 공부해야할 만큼 영어가 필요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 가시밭길을 걸어서 영어를 유의미하게 쓸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한지 그리고 영어를 유창하게 쓰게 되었을 때 그에 따른 이익이 충분히 있을지 미심쩍기 때문이다. 

 

평생을 영어는 별로 필요없다는 생각으로 살다가 처음 영어 공부가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주식 투자를 시작하면서 부터다. 주식 투자를 하게 되면 온 세상의 일에 촉을 세우게 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직접 간접으로 환율과 주식과 지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내외의 뉴스를 주의 깊게 들여다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면서 몇 가지 사실에 눈뜨게 되었다. 우선, 국내의 각종 가십이나 뉴스를 신뢰해선 안된다. 어쩌면 그렇게 일관되게 뉴스와 주가의 방향이 반대로 갈 수 있는지 신기했다. 한창 올라가던 주식이 신문이나 뉴스에 소개되는 순간 주가는 곤두박질 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신문이나 뉴스들이 소식이 늦고 사실을 검증하느라 뒷북을 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주식을 조작하는 작전세력에 반드시 기자가 끼어있거나 공동작업을 하는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되었다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증거는 없다그냥 반복되는 패턴과 소문들을 조합한 것이다그러다 보니 국내의 뉴스를 보면 손해가 발생한다라는 생각이 머리에 박혔다. 반면, 해외의 영어로 나오는 정보는 정말 그 양과 깊이가 대단했다. 물론, 영어로 된 뉴스가 국내의 주식에 대해서 언급하는 바는 없다. 하지만 국내의 지수나 국가적 가치에 대한 판단은 결국 글로벌한 투자동향에 좌우되었고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해외의 뉴스를 직접 읽어보아야만 했다. 글로벌한 투자 동향에 대한 국내의 뉴스는 결국 해외 뉴스를 번역하여 한참 늦게 나오기 때문에 무조건 영어로된 원문을 읽어야만 했다. 버벅이면서 영어를 한자한자 더듬으면서 읽었을 때, 그 미묘한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때, 기자가 쓴 글로 기자의 생각과 신뢰도를 추정하기 어려웠을 때 처음으로 영어가 아쉬워졌다. 그리고 영어로 된 뉴스들이 다음날이나 바로 그 다음날 국내에 번역되면서 입맛대로 왜곡하거나 이상하게 번역되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선 반드시 영어를 알아야 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슬프지만 주식 투자는 망했고, 해외 뉴스를 보면서 연구할 일이 사라지면서 다시 영어에 대한 관심이 식으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조악하게 번역한 책들이 다시 한번 영어의 필요성을 환기시켜 주었다. 사람들이 주목하는 베스트셀러나 대작들은 충분히 멋진 번역가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책을 번역해준다. 하지만 마이너한 분야의 책들은 정말 번역의 질이 좋지 않다. 전문 번역가는 해당 분야를 잘 모르기 때문에 번역이 어렵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은 번역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글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구나 최근에는 구글 번역기가 좋다는 이야기가 많아져서인지 번역을 이것으로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진 듯하다. 나도 개인적으로 Anki 매뉴얼을 번역하면서 구글 번역기를 사용했는데, 이 구글 번역기가 상당히 악질적이라고 느꼈다. 초창기 구글 번역기는 번역을 못하는 것이 너무 명확했다. 누가 봐도 못한 번역이기 때문에 그 부분은 다시 번역한다. 하지만 최근의 구글 번역기는 조금 달라졌다. 얼핏 보기에는 무언가 문장이 잘 성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잘 번역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정말 이상한 문장이 완성되어있다. 마치 문장이 아닌 비문을 교묘하게 만들어 삽입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한참을 읽어봐야 이 문장이 정말 이상하구나 하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교묘하다. 그래서 이런 점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냥 구글 번역기를 돌리고 대략적인 손질만 해서 출판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책들은 대부분 마이너한 취향의 책들이다. 이런 경우가 몇번이나 반복되면서 어느 날은 책을 읽다가 차라리 원서로 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후 영어 공부를 조금 시도해보았고 몇 가지 중요한 변화의 계기도 생겨서 영어 수준이 조금 올라가게 되었다. 덕분에 정말 좋아하는 미드 시리즈를 자막 없이 보게 되었다. 물론, 자막 없이 미드를 볼 수준이라서가 아니라 그 미드를 거의 20번 이상 봤기 때문에 내용을 전부 알고 있어서 자막 없이 봤을 뿐이다. 그리고 그 동안 미드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려 20번 이상을 반복하면서 보았던 미드인데도 자막 없이 보니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고 신기했다배우의 표정이나 목소리억양 등 그 모든 표현이 생생하게 보이면서 더욱 뛰어난 몰입감과 즐거움을 주었던 것이다그 동안 스스로 미드를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자막을 본 것에 불과했던 셈이다. 

 

영어를 잘 하면 좋은 점에 대해서 하나 둘씩 체감하면서 영어를 잘하는 것이 단순히 업무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영어를 알면 보다 양질의 객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전 세계의 최고의 석학들이 제공하는 논문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으며, 방대한 문학과 드라마를 절절하게 즐길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영어를 무시할 때는 보지 못했지만 영어를 보고 익히기 시작하면서 그 동안 몰랐었던 다양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방대하고 훌륭한 양질의 자료와 인프라, 새로운 시도들, 각 대학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노벨상 수상자의 직강들 영어를 잘 쓸 수 있다면 전 세계와 소통할 수 있고 전 세계에서 가장 양질의 자료를 볼 수 있으며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획득하게 되는 셈이다.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전 세계에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현재에 영어는 단순히 외국인과 대화하는 수단에 머물지 않는다. 이제 영어는 세계의 정보에 접속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소양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영어가 없어도 잘 살 수 있지만 영어를 잘 하게 되면 보다 넓은 세계를 보게 되고 보다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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