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Anki를 할 때는 알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변화가 발생한다. 내 경우에 그 첫 번째 변화는 우선 암기를 귀찮아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고, 두 번째 변화는 Anki에 카드가 쌓이는 것이고 마지막 변화는 Anki에 중독되는 것이다. 


 암기라는 그 지겹고 귀찮은 행위가 어느 정도 인에 박히게 되면 이제 운동에 중독된 사람들처럼 지식을 갈구하게 된다. 이건 운동과 달리 매우 솔직한 행위다. 운동으로 인하여 근력과 체력이 증가하고 근육이 생성되는 것도 나름 투자한 만큼 돌아오는 매우 좋은 과정이다. 하지만 암기만큼은 아니다. 암기는 그야말로 외운 만큼의 정신적 자산이 쌓인다. 암기라는 힘들고 귀찮은 과정이 필요하지만 그만큼 정직하게 정신적인 재산이 축적된다.


 처음 암기를 시도할 때는 거의 15년 만에 해보는 암기 행위가 너무 낯설었다. 암기할 내용을 어떻게 선정하고 어느 정도 길이로 만들지도 몰랐다. 그저 마음에 드는 문구들을 통으로 외웠다.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면서 잊어먹을까 봐 동일한 내용의 카드를 빈칸 만들기(Cloze deletion)로 20개가량 만들기 일쑤였다. 새 카드에는 20개라고 찍혀 있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문구를 외우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하루에 문구를 하나에서 두개 정도 외웠다. 


 암기를 반복하니 점차 익숙해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암기에 대한 거부감이 옅어졌다. 예전에는 암기가 필요하다는 말만 들어도 짜증이 나고 머리가 무거웠지만 지금은 당연하다는 듯이 하게 된다. 게다가 암기를 하게 되면 단순히 읽은 것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매우 깊이 이해하고 공부하게 된다.


 암기가 몸에 배이면 욕심이 생긴다. 알고 싶은 것이 많다. 어떤 지식은 자신을 뽐낼 수 있게 해주고, 어떤 지식은 직업에서의 전문성을 늘리고 돈을 벌 기회를 만들어 준다. 그리고 어떤 식은 순수한 자기만족을 얻을 수 있다. 더 현명해지고 더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질적인 변화를 통하여 삶의 충만함을 이끌어낸다. 욕심이 안날 수 없다. 그러면 카드를 늘리게 된다. 


 Anki에서 학습할 카드의 양이 줄어드는 것을 보여주면서 얼마나 학습 효율이 좋은지 강조한 적이 있다(링크). 하지만 실제로는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공부에 욕심이 생기면 자신의 한계까지 공부할 카드의 수를 늘리게 되기 때문이다. 복습할 카드의 양이 줄어드는 만큼 새로운 카드를 늘리게 된다. 이건 운동에 중독된 사람이 자신의 몸을 한계까지 운동하지 않으면 뭔가 하다 만 것처럼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운동과는 달리 큰 한계도, 부상의 위험도 없이 진도가 쑥쑥 나가기 때문에 카드수를 늘리는 것은 매우 쉽다. 


 이쯤 되면 Anki에 중독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매일 한계까지 공부해야 해치울 수 있는 카드들을 만들고, 그것을 해치우는 것에 중독되는 것이다. 이러면 직장에 나가서도 어떻게든 짜투리 시간을 만들어 이 카드들을 해치우려고 한다. 친구와 만나고 연인과 만나도 빨리 카드를 해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 한켠을 차지하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암기하다가 점점 정신이 흐려지는 것을 경험했다. 나의 뇌가 감당할 수 있는 공부량을 초과한 것이다. 몇 번 그런 상황을 겪고 나니 공부량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하여 카드수를 줄이고 오후 8시쯤에 암기를 끝났다. 적어도 저녁에 다른 짓을 즐겨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정신적인 허탈감과 허무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도 재미가 없고, TV나 영화도 그저 그랬다. 결국, 자극적인 내용을 찾아 인터넷 서핑을 하게 된다.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맞추기 위한 암기가 아니라, 내 스스로 향유할 지식을 갖추기 위한 암기는 많이 다르다. 평생을 기억하고 싶어서 암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암기하고 내용을 궁구하게 된다. 흔히, 한번 읽을 때는 대략적인 이해를 하고 넘어간다. 마치 해당 문구를 한 단어로 이해했다는 듯이 넘어가게 된다. 실제로는 한 단어 정도만 어설프게 떠오르는 셈이다. 하지만 암기를 하게 되면 그 문구가 머릿속에 온전히 담기기 때문에 머릿속에 들어온 문구들이 살아서 움직여 배경지식과 섞이게 된다. 그것이 하나의 문구를 이해하는 방식인 것이다. 이렇게 공부를 해보니 암기가 바로 공부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보다 깊은 이해에 도달하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면, 지식을 스치듯이 지나가는 것이 너무 허전하고 부족해 보이기 시작한다. 지식을 이해하고 그것이 내면화되는 과정 자체가 매우 자극적인 쾌락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제 독서를 예전만큼 잘 하지 못한다. 그저 스치듯이 읽고 지나가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책을 쪼개고 정리해서 암기하고 싶어지지 한 번 읽고 지나치는 것은 무언가 너무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이는 Anki의 부작용이다. 


 최근에는 Anki의 카드수도 줄이고 화장실에서만이라도 편안하게 독서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서 공부도 천자문하고 한문만 하고 있다. 천자문도 카드의 수가 너무 넘치지 않게 주말에는 새로운 카드를 추가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좀이 쑤시고 진도가 너무 느린 것 같아 다시 또 카드의 수를 늘리고 싶은 욕구와 싸우고 있다. 이런 것이 중독일 것이다. 아마 평생 이런 문제로 고민하지 않을까 싶다. 

 2019년 올해는 시작부터 난감하다. 블로그가 잘 써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은 천자문만 포스팅하고 있다.


 예전에 블로그에 올린 글을 읽을 때마다 참 슬프다. 평생 글을 쓰지 않고 남의 글만 읽다가 글을 쓰려고 하니 자기 수준이 보이기 시작한다. 맞춤법은 틀리고 글은 중구난방이다. 특히, 해외의 글을 번역한 경우는 정말 어떻게 이렇게 글을 썼을까 싶을 정도로 절망적이다.


 영어를 번역한 글이 너무 이상하고 작위적이라고 느껴서 번역 관련 책을 찾아보았다. 그 동안 우리말을 얼마나 모르고 썼는지 깨닫게 되면서 부끄럽기도 하고 글쓰기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책 한두 권을 읽으니 이제는 내적인 규범이 생기면서 글을 쓰기 너무 어려워졌다. 자기 검열이 강화되었다고나 할까?


 자기 검열이 강화된 것에 이어 욕심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왜 이리 하고 싶은 것이 많아지는지, 거기에 이것저것 처리해야할 일들이 끼어들어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지금은 열심히 욕심을 들여다보면서 빨리 처리할 수 있는 것은 빨리 처리하고 필요없는 욕심은 정리하려고 노력중이다.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해가면 될 테지만 그럼에도 마음은 답답해지고 자꾸 조바심이 난다. 공부하고 싶은 것도 많고, 현실에서 이루어야할 일들 때문에 마음은 쫓긴다. 올해는 유난하다. 


이건 슬럼프일까? 슬럼프라고 하기에는 전성기가 없었다. 뭔가 잘 되고 있어야 슬럼프가 오는 것인데 지금은 끊임없는 모색과 시간부족에 시달리는 것이므로 슬럼프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하고 싶은 것은 많고, 정리는 되지 않고, 저돌적으로 밀고 나가고 싶지만 안 되고 답답한 기분. 이 기분은 상당히 친숙하다. 부족한 것이 많고 감내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입을 꽉 물고 있는 이 기분, 하나에 집중하려고 하는데 정신이 산란해지는 이 기분, 20대에 느꼈던 기분이다. 


 아마도 글쓰기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부족한 것들이 보인다. 부족한 것들을 채우려고 생각하니 막막하다. 덕분에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부정적인 가치평가가 내 속에서 줄을 잇고 있다. 즉,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욕심이 과해졌다. 


 아마도 당분간은 지속될 것 같다. 가장 먼저 불필요한 것들을 잘라내고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희망을 가져본다. 한 번도 자각하지 못했던 글쓰기의 문제점이라든가 구체적인 목표 등을 세워야 하는 이 상황은 그 막막함과 불안이 성장통과 닮아있다. 익숙한 것과 결별해야만 하는 결단과 다시 변화의 낯설음에 대한 불안과 그 결과를 알 수 없다는 막막함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성장통의 결과는 성장이다. 늦깎이에 새로운 성장을 맞이하게 된다니. 가슴이 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