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서유기를 통해서이다. 천방지축 날뛰는 손오공도 결국,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다는 이야기와 그 부처님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서 삼장법사가 천축으로 향하는 이야기는 어린 시절 가장 멋진 판타지에 다름 아니었다. 물론, 손오공이 좋았지, 답답하고 무능해 보이는 삼장법사가 좋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 삼장법사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알았을 때에는 많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관광을 하면서 사찰을 가보기도 하고 신자들로부터 얼마나 훌륭한 분인지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잘 와닿지 않았다. 그냥 구도자적인 느낌을 주는 사람이 일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기복을 위하여 치성을 드리고 기도를 올리는 무속과 구별하기 어려웠다.


그 다음으로 불교를 접한 것은 무협지에서였다. 소림사로 대표되는 무술의 고향 이미지는 젊은 남자에게 어필하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겸사겸사 불교도 무언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무협지의 세계에서 이단적인 존재가 나타났는데, 그는 무협지에 깨달음이라는 요소를 가장 적극적으로 결합시킨 작가인 백상이었다. 당시, 그의 글의 재미있는 점은 주인공이 전혀 노력도 안하고 빈둥빈둥 살고 있고 찌질하고 전혀 존중받기 어려운 이라고 해도 깨달음을 거치면서 이 모든 것을 한번에 뒤집는 다는 점이다. 그의 무협에서 깨달음은 불교적 깨달음이기도 했고, 도가적 곡선에 대한 깨달음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힘이 바로 구현되는 권능에 가까운 힘과 동시에 세상에 대한 어떤 근원적인 지혜를 동시에 획득한 느낌을 준다. 비유하자면 구석기 시대의 부족전쟁에 꼬맹이가 갑자기 양자역학을 깨닫고 최첨단 핵미사일을 투하하는 느낌이다. 한마디로 차원이 달라지는 셈이다.

 

무협지로 봤을 때는 그냥 재미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즐기기만 했을 테지만 마침 그 때 영화 매트릭스가 전 세계적으로 히트 하면서 나타났다. 주인공 네오가 죽었다 부활하면서 매트릭스 내부의 세상을 코드의 흐름으로 인식하고 이를 마음껏 변화시켜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권능을 구사하는 장면이 바로 그 백상 무협에서 주인공이 깨달음을 얻는 장면과 완벽하게 부합하는 장면이었다. 그래서 매트릭스 상영 후에 많은 비평가들이 이를 기독교적 삼위일체와 죽음과 부활의 상징으로 읽었지만 나는 이를 백상의 무협에서 읽은 불교적인 깨달음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 불교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게 일어났다.

 

무협지에 자주 나타나는 불교의 경전이 금강경이다. 소림의 4대 금강, 금강불괴, 나한금강기공 등, 금강이라는 말은 그 근원을 금강경에 두고 있고, 무슨 깊은 깨달음이 어쩌구 하면 대부분 금강경이 주된 핵심 깨달음의 원천으로 등장한다. 사실, 이것은 금강경이 대한민국 불교 조계종의 소의경전이기 때문에 한국의 문화적 토양이 금강경에 대한 찬사를 많이 들을 수밖에 없는 토양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느 날인가 호기심이 생겨서 민족사에서 나온 금강경을 사서 읽어보았다. 정말 무슨 말인지 한 마디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름 문해력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관련 설명서나 주해서 역사서 등을 흝어 보면 불립문자(不立文字)이므로 말로 전할 수 없고, 오직 깨우쳐야만 알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책을 읽어보면 읽어볼수록 이해할 수 없는 정도가 심해지기만 했다.

 

가령, 이런 경구가 있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곧 상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가는가? 서로 모순된 말들을 배치해서 똑같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창의력을 발휘하고 불교에 관련된 해박한 지식을 이용하여 위의 경구를 말이 되게끔 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것은 불교를 진심으로 믿고 이 경전에 보물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나 가능한 일이다. 나처럼 그냥 지나가면서 무슨 내용인가 한 번 슬쩍 보기만 하려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동문서답으로 가득한 소리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모순된 경구가 딱 한 구절 나와서 그 부분만 풀면 어떤 전체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은 것이 아니라 경전의 대부분이 이런 경구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대략의 느낌도 받기 어려웠고 솔직히, 경전이 스스로 독해되는 것을 거부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기 때문에 결국, 독해를 포기했다.

 

그 후에는 다른 경전을 찾아서 읽어봤지만 반야류와 금강류의 경전은 알아듣기 어려웠고 쉬운 경전은 어린이 동화책 같은 우화에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불교에 대한 호기심이 완전히 식어버렸다

너무 좋아하면 미치는 법이다. 영웅문을 보면서 난생 처음 겪은 강력한 쾌락은 바로 부작용을 동반했다. 다시 똑같은 감동을 느껴보고 싶은 욕심에 관련 작품을 찾아서 서울 시내를 전부 뒤졌다. 마치 금단증세에 시달리면서 약을 찾는 사람들이 이런 몰골이 아니었을까? 조금의 시간만 나면 교보문고나 종로서적 같은 대형서점을 방문해서 각종 무협지를 찾기 바빴다. , 이리 재미있었을까? 왜 이렇게 그 무협의 세계에 탐닉하게 되었을까? 앞서 영웅문의 그 심원한 깊이와 신필에 대한 찬양을 마구 늘어놓았지만 중학교 1학년에 이제 막 올라온 꼬맹이가 그 심원한 깊이를 어찌 알았겠는가?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역사의 도도한 흐름과 함께하면서 희로애락을 보이면서 흘러가는 것이 큰 인상을 주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려서부터 열심히 무공을 배워서 강해진다는 설정이 나를 매혹시킨 것이다.

 

어린 시절 많은 남자 아이들이 슈퍼맨을 동경한다. 보자기를 망토처럼 두르고 슈퍼맨이 된 기분을 내고 다니던 나와 친구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슈퍼맨은 지구인이 아니다. 그저 외계인이기 때문에 슈퍼맨이 될 수 있었다. 그저 주어진 것이다. 슈퍼맨의 기분을 내는 그 누구도 우연이라도 슈퍼맨이 될 수는 없다. 역시, 인기 있는 슈퍼 히어로들인 스파이더맨이나 헐크, 후레쉬맨 같은 것들은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생 다시 없을 우연들이 겹치면서 되거나 태어날 때부터 그냥 되는 것이다. 돌연변이 거미에게 물렸거나 남들은 다 죽는 방사능에 오염되었거나 이상한 약을 먹었거나 해야 한다. 결국, 선택된 사람들만 슈퍼 히어로가 된다. 그런데 김용의 소설에서 읽은 내용은 조금 달랐다. 거기에도 우연과 선택이라는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슈퍼맨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슈퍼 히어로가 될 수 있는 비법을 제시하고 있었다.

 

무협에 나오는 무공은 이전까지 서유기나 전우치전, 머털도사에서 나오는 도술과는 조금 달랐다. 도술은 그저 주문을 외우거나 특별한 물건을 휘두르면 결과가 바로 튀어나오는 것이지만 무협에 나오는 무공은 두발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 연습하는 아이의 노력과 닮아있었다. 당연히 두발 자전거를 타기 위해 연습을 해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숙련되고 발전하는 감각을 잘 알고 있다. 처음엔 무서웠지만 어느 순간 자신감이 붙고 자연스럽게 두발 자전거를 타게 된다. 그런데 무협의 고수들은 이 두발 자전거를 타는 수준을 높인다. 두발 자전거가 외발 자전거가 되고 외발 자전거를 하나의 밧줄 위에서 타고 있는 느낌이다.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 수는 없지만 정말 미친 듯이 노력하고 연습하면 약간의 재능이 있다면 외발자전거를 탈 수 있을 것이다. 그에 이어서 외발자전거로 밧줄타기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 무협에서 제시하는 무공은 이러한 가능한 것들을 조금 과장하여 묘사하거나, 쉬운 재주들을 여러 개 섞어서 극한의 기예를 만드는 형식이었다. 또한, 힘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고통스러운 훈련을 해야 하는 부분도 현실감을 강조해주었다.

 

이러한 현실감은 나도 주인공처럼 무예를 전수받아 강해지고 싶다는 욕구로 발전했다. 당연히 이 욕구는 학교에서 싸움도 못하고 공부도 잘 하지 못해 주목 받지 못하고 큰소리도 치지 못하고 사는 나의 열등감에 대한 반동이이기도 했다. 열등감은 정말 괴롭다. 무의식적으로 이미 스스로 스스로의 존재를 낮추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 열등감이다. 그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그 반대로 행동하려고 한다. 내 경우는 희망을 썼던 것 같다. 영웅문에서 본 주인공처럼 비록 지금은 비루해도 스승님을 찾아서 무예를 익히고 나면 달라질 것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는 것이다.

 

무협의 핵심은 내공이다. 외공은 운동과 기예를 단련하는 것이고 내공은 그 내면에 폭발적인 에너지를 갖추는 것이다. 외공은 체육 시간에 열심히 하고 운동을 하면 얻을 수 있는 근육의 힘이지만 내공은 내면의 신비한 힘이고 내공이 있어야만 진정 강해질 수 있다. 하지만 내공을 수 있는 방법은 너무 뜬구름 잡는 식으로 설명해 놓아서 내공을 얻기 위한 방법을 찾거나 스승을 찾아야 했다.

 

어른들에게 무협의 세계처럼 나도 무술을 익히고 싶다고 하면 다들 표정이 이상해졌다. 슈퍼 히어로의 존재를 현실에서 완전히 부정한 것과는 달리 무술의 세계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고 그런 세계를 어떻게 경험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양의 오랜 판타지로써 무협의 세계가 은연중 어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 실체를 명확히 아는 사람도 없었고, 무술한다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주위에 내공을 닦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없었고 반응도 별로 좋지 않아서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친척 집에 갔다가 중국기공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기공(氣功)이라니 내공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닌가? 잘은 모르겠지만 내공에 대해서 설명한 책들이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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