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시험이 내일로 다가왔다. 당연히 평소에 공부는 전혀 하지 않았다. 오늘 밤을 꼴딱 새면 어찌어찌 성적은 나올 것 같다. 이제부터 공부해야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공부를 시작하려고 하면 갑자기 시험과목이 아닌 다른 과목을 공부하거나 엉뚱한 책을 읽고 싶거나 어떤 끝내주는 영감이 생기면서 시험공부를 하기 어려웠던 경험을 해본 적 있는가?

 

난 있다. 아니 항상 그래왔다. 시험 전날이 되어 더 이상 게으름 피우지 말고 밤을 새워서라도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하려고 하면, 갑자기 딴짓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만화책이나 무협지를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야 쉬고 싶고 놀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갑자기 너무나 뜬금없이 물구나무서기를 숙련되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평생 쓰지 않던 소설에 대한 착상이 떠오르면서 소설을 쓰고 싶거나, 평소 어려워서 보지도 않던 전문서적에 대한 탐구심이 넘치게 되는 현상은 분명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이상한 일이다.

 

이런 성향이 나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드물게 나타나는 성향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존 페리의 미루기의 기술을 읽어보니 이러한 현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는 것 같아 위로가 되었다. 존 페리는 미루기의 기술에서 이런 식으로 일을 미루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자신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이러한 미루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그것은 미루기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시도 보다는 미루기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이를 오히려 합리적으로 이용하라는 것이다. 이를 존 페리는 합리적 미루기 주의자라고 불렀다. 그리고 합리적 미루기 주의자로서도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미루기 습관이 없는 사람은 더 많은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위트가 넘치는 문장과 일상에서의 스스로의 단점을 수용하고 이를 인생의 즐거움과 생산성으로 전환하는 지혜가 빛나는 책이니 여러분들도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특히, 미루기의 습관이 있으신 분들은 정말로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존 페리는 할 일을 미루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을 미루기라고 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것을 딴짓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딴짓은 나처럼 인생을 피해가려는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는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것이다.

 

나는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강의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평생 딴짓을 해왔다. 기본적으로 졸고, 무협지와 만화책을 보고 하는 것은 청소년기의 욕구에 따라서 그럴 수 있지만 공부를 해도 딴 공부를 했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에는 국어, 영어, 수학이 가장 주요한 과목이었고 다른 암기 과목은 시험을 보게 되어서야 암기하는 것이니 이런 시간에 딴짓을 하거나 국영수를 공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짓을 국어 시간에는 영어를, 영어 시간에는 수학을 공부하는 식으로 했다. 선생님의 강의가 재미없고 내 진도를 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그렇게만 공부가 가능했다. , 딴짓만이 내가 평소에 공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흔히, 우리는 사람들이 합리적인 목적과 목표를 세우고 그에 따라 합리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래서 교육하는 방식도 대부분 그러하다. 우선, 아이들에게 공부를 잘하면 어떤 이득이 있는지 이야기해준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목적을 갖고 목표를 세우게 한다. 그 다음에는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할 일을 제시해주고 이를 하도록 강하게 종용한다.

 

아쉽지만 보통 목적과 목표를 세우는 일부터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목적과 목표가 너무 추상적이다.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 존경 받는 것, 모두 추상적이다. 40대가 되어버린 나도 그런 추상적인 목표는 세우지 않는다. 그런 목적을 세우고 목표를 만들어도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 들어가게 되면 추상적으로 세웠던 목적과 목표는 그저 추상적인 것에 머물고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목적이 생기게 된다. 그것은 바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고 있는 이 모든 빌어먹을 고통스러운 일들을 빨리 끝내고 쉬고 싶다는 목적이다. 그리고 더 이상 이런 고통을 자초하지 않을 인생을 살고 싶은 욕구로 가득차게 된다. 정말 모든 요건이 우연히 잘 맞아서 공부가 되고 공부를 통하여 스스로 이득을 얻고 그 이득에 만족하는 선순환을 구축하는 학생들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추상적인 목표를 향해서 달리는 것의 고통에 질려서 쉬고 싶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학생들은 다시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 부류는 쉬고 다시 그 목적을 생각하면서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는 친구들이다.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정상적인 친구들이고 시간을 들여서 열심히 하다 보면 결국, 공부를 어느 정도 잘하게 된다. 하지만 두 번째 부류는 그렇지 않다. 고통에 질린 나머지 자신의 목적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그 목적의 공허함과 현실적인 고통 사이의 괴리를 발견한다.

 

고통스러운 현실과 추상적인 목적과 그 목표에 대한 괴리를 메우는 방식도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목적을 부정하고 새로운 목적을 찾는 것이다. 이들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외치면서 지금의 현실에 충실하려고 하고 현재의 자신에게 충만함을 가져다 주는 행위를 추구하여 매순간 충만함을 기반으로 삶을 대안을 모색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런 친구들이 현재의 고통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공허하지 않은 목적과 목표를 찾아 다시 열정이 일어나면 다시 일어나서 움직이게 된다. 하지만 목적을 찾지 못하면 현재의 쾌락에 머물러있게 된다. 두 번째는 목적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현재의 고통이 너무 커 보이고 따라서 불공정한 거래인 것 같은 마음에 실제로 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다. 새로운 것을 모색하지도 않고, 기존의 체계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냥 경계선에서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는 것이다.

 

내가 바로 이 최악의 경우였다. 공부를 잘 해야 성공할 수 있고, 돈도 벌고, 대우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런 것을 원하므로 목적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미래에 대우받지 못하고 돈도 없는 삶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느끼지 못하니 현재에 고통을 감수할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머리로는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열정을 불태워야 하고 하는 것을 알지만 내 몸은 절대로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자극적인 것에 눈이 돌아가고 몸은 계속 움직이려고 한다. 그리고 놀고 나면 죄책감과 무력감이 엄습한다. 이러다 보면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고 자존감이 낮아진다. 하지만 아무리 한심하게 느껴져도 몸과 나의 무의식은 그저 노느라 바쁘다.

 

절대로 고통을 감수하지 않고 제멋대로인 몸과 무의식은 통제가 되지 않는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할까? 자유롭게 노는 시간이거나 통제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는 놀아야 하니 전혀 공부할 수 없다. 여기까지는 대부분 비슷하다. 그래서 통제된 상황이 만들어져야 공부를 하는데, 아쉽게도 통제된 상황에 놓이면 그 상황에 순응해서 공부를 하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그 통제된 상황에서 비로소 한 가지 잘 정제된 욕망이 나타난다. 그것은 이 통제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다. 하지만 육체는 이미 통제되어 있으니 정신적으로나마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게 된다. 그래서 현실을 보지 않고 다른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거기에 현재 수업과 다른 교과서가 있으면 그 교과서를 열심히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수학시간에 영어를 보고, 국어 시간에 수학을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수업시간에 수업을 열심히 듣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공부법이다. 앞에서 선생님이 온갖 시청각 교재를 제공하고 있고, 판서하고 설명하고 있으니 이를 열심히 듣고, 보고 공부하는 것이 오감에 입체적인 효과를 부여하여 가장 효과적인 공부법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러한 공부가 전혀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내가 그랬다. 나는 이중삼중으로 설계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공부를 함에 있어서 절대 공부가 목적이면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이 공부가 딴짓이 될 때에만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있을 때에만 그 탈출구로 다른 교과서가 있을 때에만 그것을 읽고 공부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내 공부는 단 한번도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목적으로만 공부가 된다는 것은 공부법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패턴의 발견 덕분에 어떻게든 공부가 가능해지긴 했다. 멘탈이 약하기 때문에 공부가 중요하고 이것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 때부터는 그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만 남게 된다. 그래서 일단, 다른 상황을 설정해야 한다. 지금 바로 현재에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을 설정해야 한다. 평소에는 수업시간에 다른 공부를 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하게 된다. 하지만 시험 때에는 시험에 대한 강력한 압박 덕분에 오히려 공부하기 더 편하다. 공부를 한다는 것 보다는 내일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서고 시험공부를 하게 되면 오히려 시험의 부담이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이 좋아서 빨리 해방을 맞이하기 위하여 공부하는 편이었다.

 

당연히, 수업시간만 공부해서는 부족하다. 자율학습을 할 때 공부를 해야하는데 이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신비주의류나 기공류의 연구 덕분에 스스로를 관찰하고 심상이라는 것을 구축하게 되면서 스스로 믿는 심상을 스스로에게 부과하면서 공부가 가능해졌다. 주로, 수학 공부와 연구였지만 결국, 성공을 위한 공부라는 것을 뒤로 제치고 지금 당장 자신의 발전을 위한 연습이라는 것으로 구체화시키는데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멘탈이 약한 사람들 혹은 무의식적 욕망이 너무 강한 사람들은 자신을 관찰해서 어떤 상황을 만들어야 스스로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하지만 좌절하지 말고 자신을 잘 관찰해보길 바란다. 구하면 얻어질 것이다.



좋아하는 수학은 공부할수록 성적이 떨어지는 이상한 공부법을 실천했고 일상적으로는 열심히 무협지를 읽고 기공류와 신비주의의 세계를 연구했으니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성적이 좋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 와중에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아도 발군의 성적이 나오는 영역이 있었으니 국사, 세계사, 한국지리 같은 과목과 수리에서 사회탐구 영역이 그것이었다.

 

세계사를 잘하는 이유는 사실 명확하다. 초등학교 시절 가장 열심히 읽었던 책이 먼나라 이웃나라였기 때문이다. 정말 즐겁게 읽었고 몇 번을 봤는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읽었다. 거의 처음으로 제대로 접한 만화책이어서인지 너무 좋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덕분에 세계의 역사 흐름이 머릿속에 항상 있었고 전체 윤곽이 매우 잘 잡혀서 교과서를 펼쳤을 때 대부분 익숙하게 아는 내용이었다.

 

그 다음은 국사였는데 국사는 세계사와 달리 잘 몰랐고 그래서인지 세계사보다 국사가 훨씬 어렵게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국사를 공부하면서 조선사를 기술하는 어떤 일정한 기술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교과서는 조선의 정치적인 세력을 위주로 기술하고 있고 그 외에 그 시대에 특이한 점이나 기억해야할 점 몇 가지를 얹어서 드러내는 식이었다. 시대상, 임금, 정치세력의 3가지가 주요한 카테고리였고 시대상을 근거로 임금과 정치세력의 변화를 논하는 방식이 주된 방식이었다. 이런 큰 틀이 자리 잡히면서 국사 교과서가 어떤 식으로 정리되어야 하는지 머리에 그 틀이 잡혔고 덕분에 공부도 무척 수월해졌다.

 

그 외에 한국지리와 사회탐구 쪽을 무척 잘했는데, 특히 사회탐구는 공부를 한 적이 없어도 항상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개인적으로 문제가 무척 쉽게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들과 대화해보니 내가 잘하는 것이었다. 내가 왜 지리와 사회탐구 영역에 뛰어난가를 고민해보니 그 원인은 중3에 만났던 선생님의 덕인 것 같다.

 

중학 시절에 사회라는 과목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고, 그냥 밑줄 치고 암기하는 과목이다. 매 사회 시간은 그저 선생님이 시험에 나올 것이라고 하는 부분을 메모하고 밑줄 치는 것이 수업의 대부분이었다. 그 선생님은 중2에서도 사회를 가르쳤고 중3에서도 사회를 가르치셨는데 중2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중3 때는 어느 날인가부터 사회시간에 백지도를 준비해오라고 했다. 백지도는 아주 기본적인 구분만 되어 있는 표기가 거의 없는 지도(map)을 말하는데 백지도로만 만들어진 얇은 책을 문방구에서 팔았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해당 수업의 진도에 해당하는 내용을 전부 지도에 표기하도록 시켰다. 당시 백지도를 준비해오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꽤 강하게 혼을 내셔서 모두들 굉장히 귀찮아하면서도 필사적으로 그 백지도를 준비했던 것 같다. 그 지도를 보면서 축척을 확인하고 방향을 확인하고 팔도와 나라 등의 모든 것을 크레파스로 칠하고 표기하고 예쁘게 꾸미게 하셨다. 그리고 제대로 했는지 안했는지 일일이 검사까지 전부 하셨고 숙제도 엄청 많이 내주었다.

 

당시에는 다른 사회 선생님들은 전혀 이런 것을 시키지 않는데 이 선생님만 시킨다고 원성이 자자했고 솔직히 많이 귀찮고 부답되었다. 당연히 선생님이 좋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백지도에 이것저것 예쁘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남자애의 입장으로서는 뭔가 안 어울리고 간지러운 것 같아서 대충 해버리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거의 세어 버린 목소리로 크게 화를 냈다. 그 목소리가 너무 히스테릭하게 느껴져서 마치 사람들이 칠판에 손톱을 긁을 때 나는 소리처럼 소름이 끼치면서 거부감을 줬다. 당시 느끼기에는 이상한 짓을 하는 말 그대로 미친 여자였다.

 

그런데 중3 시절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 수능 모의고사를 보면서 내 감각이 다른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리와 연관된 사회탐구의 지문이 나에게는 자연스럽게 상황을 인지하고 답을 제시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독하게 간단한 추리만 하면 자연스럽게 답을 알게 된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친구들이 사회탐구의 지리와 관련된 지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어떤 내용을 알고 있어도 잘 응용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령, “낙농업은 대도시를 주요 수요처로 삼고 있기 때문에 그 근교에서 발달한다.”라는 말을 외우고 있지만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령, 근교가 어디까지인지 모르고 낙농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왜 대도시가 수요처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사실, 이런 내용은 글로 보면 당연히 모른다. 글을 보고 사회과 부도나 지리부도를 봐서 익혀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도로 나타내면 지극히 간단한 내용을 말로 부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로 연애를 배우고 글로 미묘한 예술을 배우는 것 같이 교과서만 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중3 시절 만난 선생님 때문에 매주 두 개의 백지도를 전부 그려야 하는 과제를 만났기에 해당 지도가 전부 친숙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뒤로 백지도를 그리거나 하지 않았지만 지리에 관한 내용은 교과서에서 글로만 봐도 무슨 의미인지 바로 파악이 되었고 사회탐구에서도 지문만 보면 지도 위에서 대충 답이 도출되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 백지도를 예쁘게 그리는 숙제가 머릿속에 기본적인 지도라는 틀을 만들어 주었고 덕분에 지리 관련 공부를 할 수 있는 기초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기초가 있었기 때문에 수업에서 듣거나 교과서를 보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실력이 발전한 것이다. 그런 기초가 없었다면 흥미를 잃고 공부를 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무의미한 암기로만 그쳤을 공부가 기초가 생김으로써 너무나 쉽고 수월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기초는 내 일생에 걸쳐서 더 쉽게 역사적 사건을 이해하고 그 상호작용을 알게 해주었을 것이며 지리와 관련된 많은 일들에서 무형의 이익을 주었을 것이다. 아마도 세계사와 국사 공부가 수월했던 것의 밑바탕에는 그 지도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자리하고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기초가 준 이익은 무궁무진했다.

 

젊은 여선생님이 백지도를 그리게 하는 과제를 내주고 그것을 일일이 검사하고 아이들을 단속했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아이들의 노골적인 짜증이나 불만스러운 눈빛을 수없이 마주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백지도 숙제를 하지 않는 아이들을 다그치다가 목이 쉬어서 히스테릭한 목소리가 나왔을 것이다. 다른 사회 선생님들이 하지 않는 과제를 왜 내주냐면서 하지 말라는 압박도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꿋꿋하게 이것을 해야 한다고 강단 있게 아이들을 몰아붙였고 이 백지도 숙제를 왜 해야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나같은 학생도 기초를 형성할 수 있게 하셨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 처음으로 스승을 만났던 것 같다.

 

선생님이 포기하지 않아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

 

요즘에는 백지도를 국토교통부에서 바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 아래의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국토교통부의 백지도 다운로드가 가능하니 많이 이용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http://dokdo.ngii.go.kr/child/contents/contentsView.do?rbsIdx=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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