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을 추억해 보니, 보수가 어쩌면 처음으로 산수와 수학에 대해서 무언가 느낀 첫관문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숫자를 50까지는 셀 수 있었지만, 그게 무엇이고 숫자가 무엇인지 전혀 개념이 없었다. 그러다가 속셈 학원을 다녔는데, 그 속셈 학원에서 제일 먼저 배운 것이 보수(짝궁수)였다. 선생님은 큰 성냥곽 같은 상자를 보여주면서 그것을 보수 상자라고 불렀다.

    

요렇게 생긴 상자였다



보수 상자는 가운데에 상자 높이 반 정도 되는 문턱이 있고 빨간 구슬들이 들어 있었다. 성냥곽처럼 양 옆에 뚫려 있어서 양 옆으로 상자를 꺼내볼 수 있었는데 선생님은 그 상자를 손에 잡고 마구 흔드시면서 자신은 한쪽만 열어 보고 반대쪽에 몇 개의 구슬이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보수상자를 주면서 흔들어 보고 한쪽을 박스 내부를 밀어서 몇 개의 구슬이 있는지 보여주라고 하셨다. 나는 열심히 흔들었고 한쪽을 열어 보니 6의 구슬이 보였다.

    

선생님 : 몇 개의 구슬이 있나요?

나 : 6가 있어요.

선생님 : 그럼 다른 쪽에는 4의 구슬이 있습니다. 확인해보세요.

나 : 반대쪽을 열어 보았고 놀랍게도 4의 구슬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몇 번을 더 해봤지만 선생님은 웃으면서 정확하게 반대쪽의 구슬의 개수를 정확하게 모두 맞추었다. 호기심과 신기함에 내 눈이 반짝반짝 빛났을 즈음에 선생님은 보수의 개념을 설명해주었다.

   

선생님 : 손가락은 몇 개가 있나요?

: 10

선생님 : 그럼 손가락을 모두 펴고 그 중에서 6만 접어 보세요. 그럼 몇 개의 손가락이 남나요?

나 : (손가락을 세어보면서) 4

선생님 : 그럼 그 4의 손가락에서 다시 10의 손가락으로 손을 모두 활짝 피려면 몇 개의 손가락을 다시 펴야 하나요?

나 : 6.

선생님 : 10의 손가락이 우리 손가락의 개수예요. 만약 1의 손가락을 핀 상태에서 다시 10개를 채우려면 다시 9의 손가락을 펴야 합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죠. 9의 손가락을 핀 상태에서 10개의 손가락을 채우려면 1의 손가락을 펴줘야 해요. 그런가요?

나 : (손가락을 꼬물거려 보면서)

선생님 : 이렇게 1의 손가락에서 10의 손가락을 채우기 위해서 필요한 수가 9지요. 1의 손가락이 10가 되고 싶어서 필요하고 보충해야할 손가락이 9니까 1의 보수는 9예요

 

선생님은 이런 과정을 숫자마다 반복했고, 그 다음은 보수 상자를 주면서 잘 생각해보라고 말씀하시고 다른 학생을 가르치러 가셨다. 나는 호기심에 보수 상자를 갖고 이쪽저쪽의 숫자를 계속 확인해보다가 그제서야 상자의 한쪽에 있는 구슬의 개수와 상대의 반대쪽에 있는 구슬의 개수가 보수 관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자 안에는 총 10개의 구슬이 있었고 따라서 한쪽에 6의 구슬이 있으면 반대쪽에는 4의 구슬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보수상자는 다음처럼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현상이 내게는 너무 신기한 것이었다. 초등학생의 인지 수준에서 인과란 무언가 직접적인 작용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직접적인 작용 없이 한쪽이 결정되면 반대쪽도 그 개수가 결정되는 것에 경이감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잘 납득이 되지 않아서 계속 보수 상자를 흔들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어떤 짓을 해도 그 관계가 바뀌지 않는 것을 확인하면서 처음으로 숫자라는 것이 무언가 실체적으로 다가왔다.

      

숫자를 50까지 셀 수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몰랐다. 그냥 1 다음은 22 다음은 3 식으로 하다 보니 50까지 셀 수 있었지만 이 숫자라는 것이 무언가를 가리키고 어떤 관계를 가지는 것이라는 점에 대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냥 어머니가 시키는 알 수 없는 무의미한 숫자 세기에 불과했던 것이 이 보수 상자를 통해 최초로 어떤 실체감을 가지고 다가온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분이라면 이 보수 상자를 만들어 보수의 개념을 스스로 발견하게끔 유도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Anki 파일 


보수(짝궁수)에 대한 Ankl는 다음과 같이 구성했다.

첫 번째 파일은 10에서 숫자를 빼기해서 나오는 수를 계산한다.

두 번째 파일은 어떤 수를 제시하고 그 수를 10으로 만들기 위해서 어떤 수가 필요한지 묻는다.

세 번째 파일은 10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수가 보수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각각의 수의 보수를 묻는다. 

네 번쩨 파일은 이 보수가 (19), (28), (37), (46), (55)로 서로 짝을 이루는 짝궁수라는 것을 확인한다.


보수(짝궁수)의 개념1(10에서 숫자 빼기).apkg

보수(짝궁수)의 개념2(10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수).apkg

보수(짝궁수)의 개념3.apkg

보수(짝궁수)의 개념4(짝궁수 확인).apkg







초등학생 아들을 두고 있는 친구가 초등학생 아들과 게임처럼 하겠다고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서 만든 Anki 공부 자료입니다.

       

친구는 아이가 기본적인 사칙연산과 수개념을 아빠와 놀면서 몸에 완전히 익힐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하네요.

    

그 친구가 수포자였기 때문에 아이에게 수학을 공부시키는데 조금 열성적인 것 같습니다. 

    

여튼, 친구의 부탁을 듣고 조금 고민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단계별로 난이도를 나누어서 아이가 쉽게 풀 수 있고, 스스로 잘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카드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적정한 수준의 반복을 통해서 이를 숙련시킬 필요도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행히 Anki는 적정한 수준의 반복에 특화된 프로그램이니 금상첨화인 셈입니다. 

     

그래서 우선 초급부터 만들어 봤습니다. 초급이란 아이가 잘 인지할 수 있는 1~10까지의 숫자를 이용하여 덧셈을 하고 뺄셈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은 손가락을 이용하여 1부터 10까지의 숫자를 쓰는데 가장 익숙하니까요...

     

그리고 이 초급 덧셈과 뺄셈도 난이도에 따라서 구성하여 덧셈은 3개로 뺄셈은 2개로 구성했습니다. 

     

우선, 1~10까지의 숫자만 사용해서 덧셈을 하도록 만들었는데 덧셈의 결과가 10이 넘어가지 않는 것 위주로 덧셈의 첫 번째 카드 뭉치를 만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덧셈의 결과값을 스스로 체감할 수 있게 하려면 숫자 10을 넘기지 않아야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 다음 카드뭉치는 덧셈의 결과를 15보다 작은 수준으로 확장해서 사용하는 숫자의 범위를 늘린 것입니다. 그 다음 카드뭉치는 20까지 확장한 것입니다이렇게 하면 아이는 1~10까지의 숫자를 전부 더할줄 알게 됩니다.

     

뺄셈은 덧셈과 동일한 방식으로 구성하기 어려웠습니다. 빼기의 결과는 무조건 0에서 9까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용하는 숫자의 크기에 따라서 2가지 난이도로 구성했습니다. 

    

두자리수의 덧셈과 뺄셈은 수를 세로로 배치해서 더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다르게 익혀야 합니다. 그러니 이것은 다음 기회에 포스팅 하도록 하겠습니다. 

     

초등학교 아이가 Anki로 스스로 학습하는 것은 어렵고 그 결과를 신뢰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친구는 Anki를 들고 같이 아이와 재롱을 떨면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옆에서 보니 육아란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과 같은 카드를 앞에 두고


2+1=?

 

아빠 손가락 2개가 여기 있네그런데 손가락 1개를 더 피면 몇 개야?

아들 : 3개요.

아빠 그럼 여기에 답은 뭘까?

아들 : 3이요.

아빠 아이쿠 잘한다.

 

이런 식으로 공부하네요..

     

아이가 조금 어렵게 답하는 것 같으면 손가락 대신 용돈이나 장난감을 이용해서 학습 의욕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일 좋은 점은 아이가 아빠와 같이 어울리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도 아빠가 열심히 자극하니 지루하지 않게 공부를 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아라비아 숫자와 수학기호에 익숙해지고 숙련할 수 있도록 별다른 기교 없이 카드를 만들었습니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부모가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이리저리 유도하면서 가르치는 것이니까요. 누구나 집에서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수준이지만 참고하실 분은 아래의 Anki 카드 뭉치를 첨부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초급_덧셈_1.apkg

초급_덧셈_2.apkg

초급_덧셈_3.apkg

초급_뺄셈_1.apkg

초급_뺄셈_2.apkg






사파(邪派)의 공부법을 깨달았다고 바로 암기 과목을 잘하게 될 리는 없다. 물론, 깨달음의 추동력이 있으므로 어찌어찌 잘하게 될 수는 있다. 한 순간 꽂혀서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라는 깨달음이 자생적으로 발생하면,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치면서 목욕탕에서 발가벗고 나올 수밖에 없게 만드는 획득한 아이디어를 실현해보려는 강력한 욕구도 같이 발생하기 때문에 강력하게 노력해볼 수 있는 힘이 발생하긴 한다.

 

하지만 그것이 실현되려면 한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책을 읽는데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깨달은 것은 시험공부에 맞춰서 책을 암기하는 방법이지 책을 읽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나는 책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활자중독이다.

 

1970~80년대에 아이들이 놀만한 것은 많지 않았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엔 컴퓨터 게임이라고 할 만한 것이 나타나면서 아이들의 눈을 돌아가게 만들었지만 너무 비쌌기 때문에 눈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밖에서 뛰어다니면서 놀았다. 공을 차고 놀이터에서 술래잡기하고, 싸우고, 팽이치기, 딱지치기, 땅따먹기 등을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면서 논다. 솔직히, 단순한 컴퓨터 게임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재미있다. 하지만 반드시 친구가 있어야만 즐겁게 놀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친구가 잘 없었다.

 

친구가 많으려면 대범하고 활달하고 영민하고 등등 온갖 좋은 미사여구를 몸에 붙이고 있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적당히 친구가 있으려면 말을 잘 듣고 눈치가 좋아야 한다. 이런 친구들은 친구가 많은 친구 옆에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친구가 없는 아이들은 보통 다른 아이들 기준으로 찌질한 친구들이다. 그리고 내가 바로 찌질한 아이였다. 겁이 많고 행동이 굼뜬데, 욕망은 많아서 남의 말도 잘 안 듣는 그런 아이였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모범적인 아이도 아니었고, 싸움을 잘하고 아이들을 리드하는 아이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런 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서 눈치 빠르게 구는 아이도 아니었다. 겁이 많아서 모험과 같은 일에 끼어들지도 않고 친구들과의 싸움에도 끼어들지는 않으면서 욕심은 많아서 베풀지도 않았다. 그러니 날 끼워서 놀아주던 아이들도 나의 부족한 눈치와 굼뜬 행동에 답답해 하면서 다른 친구들과 놀게 되고 자연스럽게 나는 소외되었다.

 

아이들에게 지옥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40도가 넘는 고열에 쓰러져서 사경을 헤맨 적도 있고 뼈가 부러진 적도 있으며, 형들에게 맞는 공포의 순간도 있었고,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혼나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러한 모든 고통보다는 무료한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은 시간이 정말 느리게 지나간다. 1시간이라는 시간이 정말 크게 느껴진다. 그나마도 무료함이 느껴지면 시간의 흐름은 거의 멈춰버린다. 그것은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함이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항상 말하는 얌전히 있어!”라는 말은 지옥의 주문처럼 들렸다. 얌전히 있으라니 난 11초도 얌전히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그 활동이 재미있어야 하고 흥미로워야 한다. 초등학생 시절에 어떤 활동이 재미있고 흥미로우려면 반드시 친구가 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친구는 무한한 즐거움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에게 친구는 가뭄에 콩 나듯이 만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니 지옥을 탈출할 대체재가 있어야 했다.

 

내가 스스로 의식적으로 그런 대체재를 찾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면 허겁지겁 물을 목으로 넘기게 되듯이 언제든지 새로운 즐거움에 몸을 던질 준비는 되어있었다. 그리고 서유기를 만났다. 유치원 아이들이 보는 착하고 단순하고 악한 그런 캐릭터가 아닌 굉장히 복잡하고 다층적인 인물들이 모여서 천축까지 먼 거리를 여행하는 서유기는 꼬맹이의 상상력을 완전히 잡아먹어 버렸다. 신비한 도술과 요괴의 세계, 다양한 캐릭터, 사고뭉치 손오공에 대한 애정은 상상력을 완전히 폭발시켰다. 그 때부터 책은 재미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박혔다. 친구가 없어서 무료하게 되면, 책장으로 가서 보물을 찾는 기분으로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을 찾는 것이 일이었다. 그리고 보물을 찾게 되면 그 날은 하루 종일 무료한 지옥에서 해방되어 완전 흥미로운 세계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재미있는 책을 좋아했지, 어려운 책이나 재미없는 교과서를 보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상황이 계속되다보면 무엇이든 상상할 꺼리가 필요해진다. 서유기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10번 이상 읽으면 지루해지는 법이다. 그러다 보면 조금 다르게 변주가 이루어진 작품을 찾게 된다. 서유기는 각종 환상기담의 세계로 나를 인도했고, 그러다가 환상기담의 패턴에 식상해지게 되면 조금 더 사실적인 모험담으로 넘어가게 된다. 어느 순간 각종 전기물을 읽다가 서부 세계로 넘어가서 총질에 열광하고 사실적인 것에 질리면 메르헨으로 넘어가는 등 끊임없는 여정이 시작된다. 그 와중에 이야기의 주변부에 등장하는 각종 사물과 철학이 머릿속에서 살아 숨쉬고 나의 세계는 조금씩 넓어져갔다.

 

찌질한 나와 달리, 많은 친구들이 책에서 시험문제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성적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고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한, 그들은 영리했기 때문에 더 큰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었다. 바로, 친구들과 노는 것이었다. 그리고 책을 읽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당연히 더 큰 즐거움을 추구했고, 덕분에 우리 같은 아이들은 그런 친구들을 항상 부러워했다. 하지만 나는 고립되어 그런 즐거움을 추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시험공부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을 때, 그 아이디어가 너무 소중했다. 내가 힘들게 얻은 나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하라고 주입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알아내고 얻은 나의 것이었다. 완전히 자발적인 그리고 내 스스로에서 연유한 그것, 그것은 바로 처음으로 획득한 내 스스로에서 말미암은 것인 자유(自由)였다.

 

교훈 : 아이들도 스스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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