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ki로 문장 암기하기 7  적절한 카드 수


 하루에 몇 시간의 공부가 적당할까? 재수생 시절에 하루 13시간 까지 집중해서 공부해보았다. 하지만 이는 극한에 몰린 심리와 발버둥, 공부에 완전히 맞추어진 환경과 우연이 겹쳐져 만들어진 지나치게 특별한 경험이었기에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퍼포먼스로 보긴 어렵다.(링크 참조) Anki를 처음 시작한 2015년에는 하루에 30분도 공부하기 어려웠다. 화장실이나 이동시간에 짬짬이 외우는 수준이었다. 일을 줄이고 조금 여유가 생기면서 공부시간이 늘었는데 하루에 1시간 반 정도를 공부하면 지쳤다. 그리고 카드수가 늘어나고 공부하는 내용이 늘어나면서 하루에 6시간 까지 공부하게 되었다. 


 6시간, 재수생이던 시절 이후 온전히 집중하여 하루에 6시간씩 매일 공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처음엔 1시간 반에 지쳐서 쓰러졌지만 조금씩 근력이 늘어나듯 공부량이 늘어나더니 자연스럽게 6시간이 되어버렸다. 이 6시간에는 불만이 없다. 오히려 그 정도로 정신적 체력이 늘어났으니 기분이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6시간 동안 하는 공부가 너무 뻔하다. 그리고 그 6시간 공부를 하고 나면 힘이 빠져서 새로운 카드를 만들 시간이 없다. 여력이 있어도 이미 6시간의 한계를 맞이했는데 갑자기 7시간이나 8시간 공부를 시도할 수 있을까?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공부는 많고 열심히 하고 있는데 개미눈물만큼 나아가고 있으니 답답해서 속이 터지려고 한다. 이 속도로 공부하면 환갑에 프로그래밍을 짤 판이다. 그리고 온갖 것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엉터리 번역들, 번역기의 이상한 문장들, 지루함,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불안감 등등 분노와 불안이 조급한 마음에 엉겨 붙었다. 그렇게 그 날 공부는 공쳤다. 


 길거리를 쏘다니면서 한참을 방황한 후 겨우 진정이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단, 카드가 너무 많아서 생긴 문제로 보였다. 카드가 너무 많으니 공부량에 눌리고 새로운 공부를 추가하기 어려워 복습 위주로 공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새로운 자극이 없으니 공부가 재미없어지고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먼저 필요없는 카드를 지워보기로 했다. 오랫동안 쌓인 카드들을 죽 살펴보면서 삭제할 카드를 선택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문장 하나를 외우기 위해서 하나의 문장을 지나치게 많은 카드로 만든 노트들이었다. 가령 다음과 같은 노트다. 


원은 직경이 1이면 둘레는 3이 조금 더 되고, 네모는 직경이 1이라면 둘레는 4가 되는데 양은 하나로 움직이므로 1은 1이고, 3은 3이며, 5는 5로 그 수가 줄어들지 않으나, 짝수는 쌍방향으로 나가므로 2는 1이 되고, 4는 2가 되어 반으로 줄어든다. 따라서 하늘은 그대로 3으로 표시하고, 땅은 4의 반인 2로 상징하는 것이다.


 위의 문장을 노트로 만들어 다음과 같이 23개의 빈칸 만들기 카드를 생성했다. 


{{c1::원}}은 직경이 {{c2::1}}이면 둘레는 {{c3::3}}이 조금 더 되고, {{c4::네모}}는 직경이 {{c5::1}}이라면 둘레는 {{c6::4}}가 되는데 {{c7::양}}은 {{c8::하나로 움직이므로}} {{c9::1은 1}}이고, {{c10::3은 3}}이며, {{c11::5는 5}}로 {{c12::그 수가 줄어들지 않으나}}, {{c13::짝수}}는 {{c14::쌍방향}}으로 {{c15::나가므로}} {{c16::2는 1}}이 되고, {{c17::4는 2}}가 되어 {{c18::반으로 줄어든다}}. 따라서 {{c19::하늘}}은 그대로 {{c20::3}}으로 표시하고, 땅은 {{c21::4의 반}}인 {{c22::2}}로 {{c23::상징하는 것}}이다.


 하나의 글을 23개의 빈칸 만들기 카드로 만들었다. 즉, 똑같은 문장을 23번 반복해서 외운 셈이다. Anki 사용 초기에는 카드를 이렇게 만들었다. 벼락치기 시험공부 외에는 외우고 암기해본 경험이 거의 없으니, 자신의 기억력을 믿지 못하고 혹시나 잊을까봐 편집증적으로 많은 카드를 만들었던 것이다. 오래된 흑역사다. 자신의 기억력을 믿지 못하고 쓸데없이 많은 카드를 만드니 카드가 지나치게 많이 쌓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전부 동일한 내용이니 진도도 지지부진하고 지루할 수밖에 없다. 과거의 노트들을 뒤져보니 전부 이런 식이었다. 


 지나치게 많은 카드를 지우려고 생각하니 몇 개의 카드가 적절한지 알 필요가 생겼다. 과거엔 외우기에 급급했지만 그래도 경험이 쌓였는지 적당한 수량의 카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일단, 얼마나 긴 글인지, 얼마나 많은 내용을 포함한 글인지와 상관없이 글 전체를 한 번 외우면 끝이다. 일단, 외우면 그 다음부터는 외운 내용을 반복할 뿐이다. 빈칸만 다르게 뚫린 카드가 몇 십번 나와도 동일한 내용의 지루하고 기계적인 반복일 뿐이다. 따라서 외우기를 생각한다면 1개의 카드로 충분할 수 있다.


 그렇지만 숙달의 과정을 고려해야 한다. 문장을 곱씹어 외우는 과정은 입과 머리의 상호조화다. 입으로 반복하여 씹어 삼키면 해당 정보를 머리가 먹고 소화시키는 구조다. 따라서 자근자근 씹을수록 머릿속에서 쉽게 해당 지식을 소화한다. 따라서 숙달을 위한 단순 반복을 고려해야 한다. 나는 이 횟수를 3회로 생각한다. 어차피 카드들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복습이 되므로 새로운 카드는 3개 정도면 입과 머리가 충분히 숙달할 수 있을만큼 반복할 수 있다.  2번은 조금 간당간당하고 3번이면 적절하게 넘친다.


 마지막은 지식이 머릿속에서 숙성되는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즉, 앞서 말했지만 지식은 머릿속에서 숙성의 과정을 거친다. 이는 지식이나 생각이 머릿속에서 기존 지식과 어우러져 안착되는 과정이다. 이렇게 지식이 숙성되고 머릿속에 안착되면서 다양한 시행착오가 일어난다. 카드 속 문구가 마음에 안들어 수정에 수정을 거듭할 수 있다. 혹은 외운 문장의 내용이 필요없다고 생각해서 노트를 삭제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이 정보량에 따라서 일어난다. 즉, 안착할 정보가 많다면 상당기간에 걸쳐서 안착이 이루어진다. 처음에는 A라는 사항에 초점이 맞처지지만 해당 지식이 안착되면 이번에는 B라는 사항이 초점이 맞춰진다. 따라서 정보량이 많을 수록 지식이 안착되는 속도가 늦어진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정보량을 어떻게 판단할까? 정보량을 초점이 되는 지식의 수라고 한다면 간단하게 말하기 어렵다. 공부를 하다보면 이해되는 정도에 따라서 정보량이 늘어나거나 줄어들기 때문이다. 긴 글도 하나의 단순한 정보일 수 있고, 짧은 글이 무척 복잡한 정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보통 문장의 형태로 가공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마침표로 구분되는 문장의 개수로 정보량을 판단하고 있다. 즉, 이 기준을 따르면 마침표로 구분된 문장의 개수만큼 카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경험적으로 보면 정보량이 많아도 카드의 개수가6~7개를 넘어가면 무의미해진다. 그 때부터는 단순 기계적 반복으로 입만 숙달되고 정신은 가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드의 개수보다는 카드가 장기적으로 계속 노출되는 상황이 정보량이 많은 카드를 흡수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아무리 정보량이 많은 카드라고 해도 4~5개의 카드로 만들면 충분하다. 대신, 몇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반드시 복습 카드를 먼저 공부하고 이후에 새카드를 공부한다. 두 번째는 동일한 노트에서 나온 카드들은 같은 날 학습되지 않도록 한다. 


 복습 카드를 먼저 공부하고 이후에 새카드를 공부하려면 아래와 같이 도구 → 환경 설정 을 클릭하여 환경 설정 창을 띄운다.




환경 설정 창에서  빨간색 테두리에 해당하는 부분의 드롭다운 목록을 눌러 "새 카드는 복습 카드보다 나중에 등장"을 선택한다.  이렇게 하면 카드뭉치에 복습 카드와 새 카드가 같이 있을 때 복습 카드를 전부 공부하고 나야 새 카드의 학습이 이루어진다.



 

 동일한 노트에서 나온 카드들은 같은 날 학습되지 않도록 하고 싶으면 학습할 카드뭉치의 옵션(Deck Option)을 클릭하여 카드뭉치 옵션 창을 연다. 




 카드 뭉치 옵션 창에서 "새 카드" 탭 아래의 "Bury related new cards until the next day"의 체크 박스에 체크하고, "복습" 탭에서도 동일하게 아래의  "Bury related new cards until the next day"의 체크 박스에 체크한다. 이렇게 하면 학습된 카드와 같은 노트에서 나온 카드들이 카드 대기열에서 사라지고 다음 날로 미뤄지기 때문에 매일매일 동일한 카드가 지루하게 반복되는 것을 막고, 적은 수의 카드를 장기적으로 학습할 수 있게 된다. 




  이제 문장 단위 암기에서 카드의 개수는 문장의 개수가 많으면 4~5개의 카드를 만들고, 문장의 개수가 적어도 최소 3개로 만들면 된다. 즉, 문장의 정보량과 중요성에 따라서 하나의 노트당 3, 4, 5개로 배치하는 셈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기억이 숙성되도록 동일한 노트의 카드들이 같은 날 중복해서 학습되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런 조치들을 통해서 과거에 하나의 노트에서 2~30개씩 만든 카드를 4~5개 정도로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드들이 만들어진지 오래라서 3~4년 이후에나 나온다. 따라서 카드 수가 줄어든 것을 체감하긴 어려웠다. 또, 너무 익숙하게 외우고 있는 카드라서 다시 복습할 때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이런 카드를 줄인다고 딱히 공부 부담이 많이 줄지는 않는다. 하지만 덕분에 새로운 카드를 만들 때, 적절한 카드 수를 확립하여  불필요하게 많은 카드를 만드는 습관을 고칠 수 있었다. 

Anki로 문장 암기하기 5 문장 암기로 알게된 암기 과정


 문장 암기를 하면서 어떻게 카드를 만들고 암기할지 고민한 과정의 전반부를 이야기해보자. 


1. 처음 책을 그대로 외우다.


 정말 하나도 모르는 분야의 책을 공부하기 위해서 문장을 통째로 외우기 시작했다. 말이 좋아 문장을 통째로 외우는 것이지, 실제로는 책을 거의 통째로 외우는 것이었다.


 처음엔 책에서 문장을 그대로 베꼈다. 이런 식의 암기도 처음이었고 책의 내용도 전혀 몰라 책을 맹목적으로 외우고 이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 글을 정리하고 요약하는 것이 더 어려운 나 같은 사람에게는 책을 그대로 베끼는 것이 오히려 쉬웠다. 또, 글을 외우다 보면 알아서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이면서 내용을 명료하게 꿰뚫을 수 있었다. 나중에는 이런 경험 때문에 책을 주의깊게 보지 않고 통째로 외워서 파악할려고 하는 버릇까지 생겨버렸다. 



2. 정보를 농축한다.


 하지만 조금씩 이런 식의 공부에 익숙해지면서, 좀 더 효율적으로 그리고 깊게 공부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효율적이고 깊은 공부일까? 당시의 생각은 간단했다. 정보가 농축된 문장을 만드는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보자. 


 문장1 : 멕시코의 수도는 멕시코 시티다.

 문장2 : 멕시코 시티의 면적은 1,400이다.

 문장3 : 멕시코 시티의 인구는 대략 900만 정도다.


 위에 나열된 3개의 문장은 서로 연관된 정보다. 개별 카드로 만들어 공부하면 다음과 같이 각 문장별로 2개의 카드를 만들어 6개의 카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문장1을 노트1로, 문장2를 노트2로, 문장3을 노트3으로 하여 빈칸 만들기(Cloze Deletion)로 노트별로 2개씩 카드를 만들어 보았다.


 노트1 : {{c1::멕시코의 수도}}는 {{c2::멕시코 시티}}다.

 노트2 : {{c1::멕시코 시티의 면적}}은 {{c2::1,400}}이다.

 노트3 : {{c1::멕시코 시티의 인구}}는 대략 {{c2::900만}} 정도다.

*{{c1::text}}은 내부의 text를 빈칸으로 만든 카드1이라는 의미

 

 하지만 이를 다음과 같이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 수 있다.


문장 : 멕시코의 수도는 면적 1,400에 인구 900만 정도의 멕시코 시티다.

노트 : {{c1::멕시코의 수도}}는 면적 {{c2::1,400}}에 인구 {{c3::900만}} 정도의 {{c4::멕시코 시티}}다.


  이제, 동일한 정보를 공부함에 있어서 글자 수가 줄어들었고, 노트는 3개에서 1개로 줄어들었으며, 카드는 6개에서 4개로 줄어들었다. 확실히 효율적인 것 같다. 


 이렇게 문장을 농축하면 효율성 말고도 2가지 이익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첫 번째 이익은 지식이 총체적이고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들어오는 효과다. 연관된 정보를 동시에 머릿속에 떠올리면 경험적으로나 생리적으로나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지식은 그저 1개의 지식일 뿐이지만 총체적인 지식은 하나의 지식 덩어리가 된다. 더 많은 정보들이 지식에 결합할수록 그 지식은 구체적인 모양새를 갖추고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된다. 


 두 번째 이익은 지식의 정보량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문장 속에 포함된 다양한 지식들의 관계는 명시적으로 적시된 내용 말고도 암묵적인 내용들을 암시한다. 가령, 위의 경우에는 인구밀도를 계산해볼 수 있다. 



3. 문장을 다듬다.


 나름 흡족하게 카드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공부를 하다보면 계속 부족한 점이 보이지 않을 수 없다. 


 아래와 같은 문장을 외운다고 생각해보자. 


不은 동사나 형용사 앞에서 부정하고 … 그러므로 不 다음에 오는 단어는 동사로 풀이해서 이를 부정한다.


 위 문장은 처음 외울 때 별 문제없었다. 입에 인이 박히도록 반복해서 자연스럽게 글을 읊을 수 있도록 만들어놨는데 다음 날 복습을 하려니, 머릿속이 헝클어지면서 혼란이 일어난다. 왜 그럴까? 한참을 들여다보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앞에서 不(아닐 불)자가 동사나 형용사 앞에 온다고 말하고서는 뒤에서는 不(아닐 불) 뒤에 동사가 온다고 적혀있었다. 앞 문장에는 포함된 형용사가 다음 문장에서 빠지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저자가 오타를 낸 것인지, 오타라면 앞의 형용사가 오타인 것인지 아니면 형용사가 빠진 것이 오타인지 알 수 없었다. 또,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지도 고민된다. 이러니 머리가 복잡하고 기억이 헝클어진 것이다. 결국, 책을 한참 들여다보고 형용사를 뺀 것이 오타로 판단하여 형용사를 추가해서 문장을 만들었더니 그 다음부터는 문제없이 명쾌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이런 문장은 어떤가?


 뇌의 시스템들은 가솨적(plastic)으로 경험에 의해 변형될 수 있다.

 

 위의 문장은 “가소적(plastic)”이라는 단어가 오타가 발생했다. “가소적”이라는 말을 잘못 쓴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가솨적”이라고 썼는지 구별하지 못한다면, 이 문장은 매번 복습할 때마다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오타들은 상대적으로 찾기도 쉽고 구별하기도 쉽다. 악질적인 경우는 자연스럽지 않은 어색한 문장이나 말이 되는 것 같은 비문들이다. 가령, 다음의 문장은 아무리 봐도 어색한 문장이다. 


겹친 분포를 보이는 음들은 음성적 환경에 의해서 음이 선택되는 것이 아니므로 대체 틀의 빈칸에 어떤 음이 들어갈지 예측할 수 없다.


 위의 문장은 아직도 외울 때마다 허둥대는 문장이다. 왜 이리 입에 달라붙지 않는지 알 수 없다. 영어 번역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라고 추정한다. 최근 번역기 사용이 늘어나면서 무언가 잘못된 부분을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이상하고 불쾌한 문장들이 늘어난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타, 비문, 이상한 문장, 내부적으로 무언가 납득이 되지 않는 글들을 외우게 되면 공부의 효율이 급속히 떨어진다. 처음 공부할 때도 입에 잘 달라붙지 않고, 의미도 혼란스럽다. 입으로 반복하면서 적정한 리듬과 의미를 찾아도 그 당시에만 외워질 뿐, 다시 복습을 하면 처음 외울 때 새겼던 의미들이 불분명하고 다시 기억해내기 힘들다. 지식이 어려워서는 아니다. 분명히, 글을 처음 외울 때는 납득했다. 글을 입 안에 굴려보면서 적절한 리듬과 의미를 발견하고 납득하면서 글을 외웠다. 그런데 다음 날이면 그 납득이 사라져 버리고 다시 의문에 생긴다. 무슨 일일까?


 이런 글이나 문장을 복습하면 글을 정확하게 떠올릴 수 없어도, 그 대강의 내용은 머릿속을 맴돈다. 분명히 알고 있다는 것은 안다. 그 점은 명확하다. 하지만 몇 가지 키워드만 간간이 떠오른다. 혀끝에서 말이 맴돌지만 설명할 수 없다. 이건 아는 것일까? 모르는 것일까? 그런데 문장을 다듬고 오타를 고치면 신통하게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입에서 해당 글이 자동으로 튀어나오고 내용들은 조화롭게 배치된다.


 경험이 쌓이면서 외워야할 문장을 다듬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오타를 없애고, 비문을 미리 제거한다. 입으로 읊어보면서 어색한 문장인지 확인한다. 문장 내부적으로 상호 모순되거나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있는지, 적확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분명히 공부하기 한층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외울 문장과 글을 추리면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문장과 글을 머릿속에 집어넣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이 있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야 많은 것들이 명쾌해진다.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별 수 없이, 매순간 카드를 복습할 때마다 문장을 수정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더 이상 수정할 필요가 없어지고, 깔끔하게 정리된다.



4. 내용을 정리하다.


 아쉽게도 문장만 정리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내용도 중요하다. 외우려는 글 내용들이 서로 중복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처럼 문장 내에서 정보가 잘 안 맞거나 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이미 기존에 외운 카드들과 새로운 카드의 내용이 겹쳐지면 혼선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는 눈앞의 카드를 처음 외울 때는 잘 외워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복습하려고 하면 잘 외웠던 문구가 갑자기 혼선되거나 먹통이 되어버린다. 문장과 어휘의 문제가 아니다. 내용은 대충 기억나지만 비슷한 여러 구절이 동시에 떠오르면서 혼동되거나 혹은, 내용을 전혀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내용은 대충 기억나지만 비슷한 여러 구절이 동시에 떠오르는 경우는 비슷한 내용을 문장만 다르게 외운 경우다. 아래는 불교에서 “금생의 행복”의 조건을 나열한 두 문장이다. 


문장 1 : 인간은 자기에게 맞는 기술을 익히고, 도덕적으로 건전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금생의 행복을 얻게 된다.

문장 2 : 보시, 지계, 학문, 기술이 금생의 행복의 조건이 된다.


 위의 두 문장은 동일하게 “금생의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미묘하게 다르다. 앞의 문장에는 “학문”이 빠져 있다. 그래서 매번 이 문장을 외울 때마다 “학문” 때문에 혼동이 온다. 즉, 첫 번째 문장을 잘 외우고 나서도 무언가 빠졌다는 느낌을 계속 받거나, 두 번째 문장을 잘 외우고 미심쩍은 기분이 남게 된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두 문장이 믹스되어서 이상한 문장으로 떠올리기도 한다. 즉, “보시, 지계, 기술이 금생의 행복의 조건이 된다.”로 외우고 하나가 더 있었는데 그게 뭐였지 하고 기억을 떠올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식이다. 


 내용이 상충되는 경우는 더 큰 혼동이 온다. 다음은 문단 나누기를 설명하는 글이다. 


문장 1 : 문단은 보통 3줄이 지나면 가독성을 위하여 나눠줘야 한다. 

문장 2 : 문단은 글자 수가 아니라 장면과 의미단위에 따라서 나눠줘야 한다. 동일한 이야기는 한 문단으로 다른 이야기는 다른 문단으로 나눈다.


 글쓰기를 설명하는 서로 다른 두 책에서 발췌한 문장이다. 하나는 가독성을 중시해서 문단을 대략 3번째 줄에서 나누라고 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의미 단위, 이야기 단위에 따라서 문단을 나누고, 분량은 상관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문장을 외울 때는 보통 처음부터 막힌다. 이미 문장 1이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문장 2를 받아들이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문장 2를 외우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다음번 복습에서는 어김없이 충돌이 일어나면서 혼란이 발생한다. 


 중복된 문장은 교통정리를 해줘야 수월하게 공부를 할 수 있다. 가령, 비슷한 내용들이 미묘하게 다른 경우 통합해서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고 다른 문장을 삭제하는 편이 좋다. 그러면 문장도 정리되고 외워야할 카드의 수를 줄일 수 있다. 


 서로 상충되는 내용의 카드는 고민이 필요하다. 본인에게 확신이 있다면 그 확신에 부합되는 카드를 외우면 된다. 확신이 없다면 절충안을 만들어 본다. 가령, 위의 예시된 문장에서 이렇게 바꿔본다. “문단은 의미단위에 따라 나누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가독성을 위해서라면 되도록 짧게 써라.” 정도로 절충해볼 수 있다. 마지막은 서로 다른 의견들 앞에 그 맥락이나 작성자를 적어주는 방법이다. 대부분의 학문에서는 다양한 논쟁이 벌어지고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이 경우 여러 다양한 관점을 의미하는 상충된 문장을 그 자체로 이해하고 외우면 보다 풍부한 공부를 할 수 있다. 이 때는, 서로 대비되는 문장을 함께 나열해서 아래와 같이 하나의 글을 만들어 외운다. 


A라는 책은 문단을 글자 수가 아니라 장면과 의미단위에 따라서 나누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B라는 책은 문단은 보통 3줄이 지나면 가독성을 위하여 나누라고 이야기한다.


 A라는 책과 B라는 책이 등장하면서 서로 다른 입장의 문장을 나란히 배치하고 있다. 이렇게 문장을 만들어 암기하면 서로 내용이 대조되는 효과가 일어나 오히려 기억히 선명해진다. 


 앞서, 문장 다듬기에서 말했듯이,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처음 공부할 때 기존에 공부한 내용과 중복되는지 상충되는지 여부를 파악하면 좋겠지만, 보통은 처음 공부할 때 그런 내용들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문장이나 글을 외우고 곱씹으면서 머리에 정착되는 과정이 진행되어야 비로소 이런 내용의 중복이나 상충을 확연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공부를 하면서 지속적으로 카드를 수정하고 정리해야 한다.



5. 빈 공간


 앞서, 문장을 다듬고 내용을 정리하는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글이나 문장 형태로 머릿속에 집어넣게 되면서 지식을 머리에 주입할 때,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감이 오기 시작한다. 보다 나은 학습을 위하여 이런 부분을 한 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비록 개인적인 경험들을 정리해봤다. 


 우선, 공부는 시간이 걸린다. 옛말에 “보는 즉시 깨닫는다.”라는 말이 있다. 한 번 보고 다 아는 천재들에 대한 묘사다. 이 말을 잘 생각해보면 보는 즉시 알고 깨닫는 사람은 천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나 같은 일반인은 배우고 익혀야만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Anki로 공부를 시작하기 전 이야기다. 그저 일상에서 보거나 들은 내용이 어느 날 문득 깨달아지는 경우가 있다. 무척 뜬금없는 경험인데, 지하철에서 졸다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갑자기 알아진다. 곰곰이 그런 내용들을 추적해보면 보통 2년 전에 발생한 일이 갑자기 정리되어 나타난다. 2년 전에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2년 전에 했던 누군가의 행동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생하게 드러난다. 뜬금없이 깨달아지는 생생함과 명료함을 경험해보면서, 직관적으로 그 지식이 이제 나에게 안착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2년 만에 깨닫는 경험을 자주 접하다 보니 지식의 숙성 기간을 2년이라고 생각했었다. 즉, 어떤 내용을 보고 접했을 때, 별 다른 사항이 없으면 2년 후에 그 의미를 알게 되거나 혹은 영원히 묻혀버린다.  하지만 Anki로 카드를 외우니 그 과정이 훨씬 빨라지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단순히, 스치면서 보고 들은 것을 깨우치게 되는 것이 2년이라면 입으로 문장을 곱씹어 보면서 외우면 그 과정이 짧으면 1~2일에 길면 2~3주 내로 압축적으로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과정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했다. 


 열심히 외워서 머릿속에 들어간 지식들은 숙성된다. 그렇다 숙성이다. 즉,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다. 그리고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어떤 일들이 바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음은 내가 정말 잘 외우고 있는 카드다. LaTeX에서 문서 클래스를 설명하는 문장이다.


 문서 클래스 proc은 article 클래스에 기반한 프로시딩용 문서 클래스다. 


 위 문장은 참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있지만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모른다. 프로시딩이 무엇인지 모르고, article 클래스에 기반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 그래서 이 문장을 읽고 있으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너무 수월하게 기억에서 꺼낼 수 있다. 그래서 외울 때마다 신기하기 그지없다. 보통은 호기심이 생겨서 찾아보겠지만 이상할 정도로 관심도 안생기고 몰라도 문제가 없어서 여전히 그 내용을 찾아보지 않는다. 아마도 끝까지 찾아보지 않을 것 같다. 


 이상한 문장으로 구성된 카드, 내용이 중복되거나 상충되는 카드에서 발생한 문제는 대부분 이해와 관련이 있다. 이상한 문장은 그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점이 문제이므로 내용을 이해하고 그에 맞추어 문장을 정리하면 해결된다. 내용의 중복은 중복된 부분을 이해하고 수정하면 되며, 내용의 상충은 절충하거나 대비되는 의견을 나란히 제시하여 이해하면 해결된다. 즉, 제대로 이해될 수 있도록 문장을 정리하고 내용을 구분하여 정리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그래서 처음엔 지식의 숙성은 머릿속에 들어간 지식이 이해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위의 문장처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임에도 일단 외운 것들이 온전히 유지되는 것을 보면서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이 이해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럼 무슨 일이 벌어질까? 위와 같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지만 잘 외워지는 카드의 내용을 나는 ‘빈 공간’에 들어간 지식이라고 부른다. 이런 지식들의 공통점은 정말 듣도 보도 못한 내용이라는 점이다. 내 머릿속에는 이 카드에 실린 내용을 판단할 수 있는 어떤 정보도 없었다. 오직, 문장이 이상하지 않은지 정도만 판단할 뿐이다. 그래서 다른 머릿속의 지식에 의해서 검증되지 않고, 섞이지도 않는다. 즉, 복잡한 머릿속에서 온전히 빈 땅에 정착한 지식인 셈이다. 


 명리학을 처음 공부할 때의 상황이 떠오른다. 어떤 책이 좋은 것인지 몰라서 대형서점에 가서 괜찮아 보이는 책 하나를 골라 다짜고짜 외웠다. 처음 외웠을 때는 관련 지식이 하나도 없었기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책에 적혀진 말들을 금과옥조처럼 외우고 새기고 또 새겼다.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지식으로 인한 성취감으로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그 책의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중복된 내용과 상충된 내용이 하나둘씩 발견되었다. 기를 쓰고 문장을 수정하고 내용을 정리하면서 공부를 계속했지만 저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처음에 신명나게 외웠던 내용들은 매번 기억을 떠올리려고 할 때마다 혼란스럽고 신뢰할 수 없다는 인상을 주면서 지금은 혼란스러운 일련의 지식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완전히 새로운 지식은 이해할 수없어도 일단 암기하면 머릿속에서 그대로 유지된다. 왜 그럴까? 머릿속에 들어간 지식은 신경적 상호작용을 통해 기존 지식 체계 속에 자리 잡아야 한다. 완전히 새로운 지식이라면 기존의 지식체계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므로 그저 지식이 더해질 뿐이다. 하지만 기존 지식체계와 관련이 있다면 새로운 지식은 융화되거나 분리되어야 한다. 그래서 처음에 외운 지식이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변형되기 시작한다. 좀 더 익숙한 문장으로 변화되고, 내용들도 섞인다. 이 과정은 합리적인 이해를 낳거나 정확한 정답을 담보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저 삶의 흐름과 개인적인 신념에 따라 지식이 통합되거나 분류될 뿐이다. 이 과정은 기존 지식체계에 새로운 지식이 끼어들어 자라나는 과정에 가깝다. 새롭게 심어진 지식은 많이 사용되면 자라나면서 주위의 지식을 통합할 것이다. 반면, 별로 사용되지 않는다면 다른 지식에 통합되어 변형될 것이다. 그리고 주위에 지식이 없는 완전히 빈 공간에 터를 잡은 새로운 지식은 일단 심어지면 주위의 다른 지식으로부터 변형되지 않으므로 그 자리에서 별 문제 없이 유지된다.



6. 의미와 형식


 내용적인 측면 위주로 이야기했지만 문장도 고려해야 한다. Anki를 이용하여 많은 것을 외우면서, 지식이라는 것이 단순히 추상적인 무형의 정보가 아니라는 확신을 얻었다. 지식은 사진, 영상, 소리 등을 매개로 언어로 나타낼 수 있어야 비로소 우리가 느끼는 지식이 된다. 물론, 언어 이외의 정보 형태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반드시 다른 정보 형태가 언어와 연합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할 뿐이다. 이 점에 대해선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이번엔 글과 문장을 외우면서 겪게 되는 것들을 이야기해보자.


 열심히 외운 문장이나 내용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지식 체계 속에서 변형된다. 앞서, 지식 공간에 새로운 지식이 삽입되었을 때 의미들의 상호 작용에 의하여 해당 지식의 의미가 변형되는 현상을 이미 이야기했다. 이번에 이야기할 것은 의미(내용)와 언어(글이나 문장)의 상호 관계에 의하여 기억이 변형되는 경우다. 이 두 가지 경우는 의미(내용)와 언어(글이나 문장)가 얼마나 불가분의 관계를 겪는지 역설적으로 알려준다. 


경우 1 : 의미(내용)가 중심이 되어 언어(글이나 문장)가 변형된다. 

경우 2 : 언어(글이나 문장)가 중심이 되어 의미(내용)가 변형된다.


 의미(내용)가 중심이 되어 언어(글이나 문장)가 변형되는 경우는 다음과 같은 경우다. 


문장 1 : student는 학생이라고 풀이한다. 

문장 2 : student는 학생이라고 해석한다.


 외국어 관련 책에서는 외국어를 “풀이한다”, “해석한다”, “번역하다” 같은 문구들이 자주 등장한다. 의미는 차이가 없다. 어느 것으로 외워도 틀리지 않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풀이한다”와 “해석한다”가 계속 헷갈렸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문장의 자체 내용을 떠올리지 못하고 복습에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지금은 이 단어의 혼용에 단련이 되어서 서로 헷갈려도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지만 해당 카드를 만날 때마다 살짝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마 위와 같은 사례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의미가 동일한 사소한 단어 차이이므로 무시하면 되기 때문이다. 완전히 동의한다. 그렇지만 이런 사례를 든 이유가 있다. 우리 머릿속에서 문장과 의미가 얼마나 상호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는지 설명하고 싶어서다. 글과 문장이 의미를 전달하므로 너무 당연한 말이라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뒤집으면 의미가 동일하다면 말이나 단어가 다른 단어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의 사례도 “풀이한다”와 “해석한다”를 철저하게 구분지어 외어보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지금은 마음을 비우고 있다. 이 사례가 너무 사소하게 느껴질 수 있으므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살펴보자. 


戌에 대한 설명

사기-율서: 言萬物盡滅

연해자평: 滅也 萬物滅盡


 위의 문장은 역학에서 12지지 중 戌(술)토에 대한 설명이다. 위의 문장은 사기-율서에서 발췌했고 아래 문장은 연해자평에서 발췌했다. 의미는 동일하다. 사기-율서는 말미에 盡滅(진멸 - 없어짐)로 끝났고, 연해자평은 말미에 滅盡(멸진 - 없어짐)으로 끝냈다. 의미의 차이 없이 그저 한자의 순서만 다르다. 내 머릿속은 “戌(술)토-없어짐-滅盡 또는 盡滅” 로 구조화되어서 3년째 외우고 있어도 매번 혼동이 일어난다. 의미가 동일하니 아무리 구별하여 머릿속에 넣어도 서로 혼용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 사례를 조금 깊이 생각해보면, 아무리 문장을 정확하게 외워도 그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들은 동일하거나 비슷한 의미의 다른 단어로 대체되고 우리는 이를 파악하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낯선 단어를 사용했다면 자주 쓰는 동일한 의미의 단어로 바뀐다. 실제로 오랜 기간이 지나 문장을 다시 복습하려 할 때, 낯선 단어들이 완전히 익숙한 단어들로 대체되는 것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내용들이 지식 공간에서 변형되듯이 문장들도 자신의 고유한 언어습관에 따라서 변형되어 버린 것이다.


 언어(글이나 문장)가 중심이 되어 의미(내용)가 변형되는 경우는 한문을 공부하면 자주 마주치게 된다. 음이 동일하지만 뜻이 다른 한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경우다. 


千字文 112 해구상욕 집열원량(骸垢想浴 執熱願凉)


 위의 구절을 외울 때마다 浴(목욕할 욕)은 매번 欲(하고자할 욕)으로 잘못 쓴다. 다행히, 떠올려 보고 틀렸다는 것을 항상 자각하지만 매번 欲(하고자할 욕)으로 한 번 쓰고, 그 다음에 틀렸다는 것을 자각하고 浴(목욕할 욕)으로 고쳐 쓴다. 두 글자가 음이 같고 모양도 나름 유사하기 때문에 혼동이 발생한다. 실제로 한자는 음이 같은 글자들이 동일한 글자처럼 통용되는 경우가 많다. 非(아닐 비)와 匪(도둑 비), 維(벼리 유)와 惟(생각할 유), 而(말 이을 이)와 以(써 이) 등이 그런 사례다. 옛날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정해본다. 


 글이나 문장을 외우기 위해 입 속에서 열심히 음미하다 보면 적절해 보이는 리듬과 호흡이 생기고 의미도 유려하게 연결되어 총체적인 지식이 형성된다. 하지만 그 리듬과 호흡은 정해진 것은 아니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혹은 앞서 복습한 카드의 호흡이 그대로 남아서 매번 새롭게 읽히기도 한다. 완전히 같은 글이 새롭게 읽힐 때마다 문장의 의미는 새로워진다.


 매번 새로워지는 문장의 맛 때문에 이를 사색의 수단으로도 잘 사용했다. 잠이 안 오는 날이면 집 앞의 놀이터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굴할 때까지 입으로 문장을 외우면서 새로운 리듬과 호흡을 찾아보려고 했었다. 새로운 의미는 반드시 새로운 호흡과 리듬을 가지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험들을 돌이켜 보면 의미와 형식이 서로 얼마나 분리 불가능하고 긴밀한지 절절이 느끼지 않을 수 없다.



7. 신나게 공부하다.


 앞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처음엔, 책을 그대로 외웠다. 외우기가 쉽지는 않지만 내용에 대한 이해도 잘 되고 독서도 깊이 있게 이루어지면서 재미있게 했다. 그러다가 공부의 효율을 높이려고 정보를 농축해서 문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보다 효율적이고, 더 생생한 지식을 얻으며 암묵적으로 내포된 지식들까지 한꺼번에 공부하려고 욕심을 부린 것이다.


 이런 밑바탕에서 실제로 공부해보니 공부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자주 복습에 실패하게 하는 몇 가지 요소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나는 문장이고 다른 하나는 내용이다. 


 문장은 외우기 쉬운 문장과 외우기 어려운 문장이 있다. 외우기 어려운 문장은 글 내부의 정합성이 망가진 문장, 비문, 오타 등의 문장이다. 일단 외웠다 하더라도 다시 복습을 할 때도 문제가 많다. 


 내용도 문제다. 중복된 내용들은 혼동을 주고, 상충되는 내용들은 기억을 되새기는데 큰 장애가 된다. 


 이런 저런 사례를 겪으면서 지식이라는 것이 머릿속의 지식체계에 섞여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숙성 시간이 필요하고 적절한 문장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기존의 지식과 새로운 지식 간의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 언어와 지식은 거의 한 몸을 이루고 있어 의미가 동일한 단어들은 서로 대체되고 동일한 음을 가진 글자들도 서로 대체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여기까지가 폭주 기관차처럼 미친 듯이 책을 외우면서 얻었던 경험을 정리한 것이다. 정말 즐겁게 공부했고, 얻는 바가 많았었다. 하지만 점점 공부하는 카드가 늘어나면서 어느 순간 이런 식의 공부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장 암기의 비효율성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지능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심리학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런데 심리학 교과서는 지능에 대해서는 납득할만한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고 당황스럽게도 신경세포에 대한 설명을 가장 먼저 하고 있었다.


과학은 현상을 설명할 때, 그 현상을 더 작은 단위로 쪼개어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즉, 기계를 설명할 때, 이 기계의 부속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제시함으로써 해당 기계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이것을 보통 환원주의라고 부르는데, 당시 기계적인 환원주의적 세계관에 대한 많은 비판이 있었다. 심리학에서 사람의 마음을 신경세포의 활동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것도 이러한 환원주의라고 할 수 있다. 즉, 사람의 마음을 신경세포의 작용으로 환원하여 계산하겠다는 발상이다. 


공학도로써 기계적인 환원주의는 가장 명쾌한 방식이다. 보다 작은 단위로 환원된 단위를 이용하여 수학적 모델을 구축하고 정교한 논리와 실험으로 수학적 모델을 개선하여 현상을 꿰뚫어 이해한다. 그리고 그 수학적 모델을 통하여 해당 현상의 변인을 조절하여 원하는 효과를 얻는다. 이 일련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현상의 본질을 완벽히 통찰하고 그것을 지배한다는 감각을 준다


따라서 당시의 기계적 환원주의에 대한 비판은 과학이 모든 것을 정량화하여 인간을 고깃덩이로 이해하는 식의 그 가치를 훼손하는 것에 대한 인문학적인 저항의 목소리일 뿐 과학적인 분석에서 기계적 환원주의를 배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신경세포를 보면서 처음으로 기계적 환원주의가 가진 한계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건 복잡성의 한였다. 우리는 복잡한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것을 인식하는 방법이 단순한 것으로 쪼개거나, 비슷한 것들은 묶어서 동질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실은 기계적 환원주의의 정체다. 그런데 신경 세포들은 그런 방법을 적용하기 어려워 보였다. 


기체 분자는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상호작용을 하지만 우리는 이를 통계적으로 아니 실은, 그냥 하나로 이해한다. 동질적인 부분들을 하나의 계(system)로 묶어서 판단하고 개별 분자의 행동을 일일이 전부 따지지 않는다. 따질 수도 없고 말이다. 그 때, 몇 가지 지표가 있다. 가령, 온도는 기체분자들의 활동성(운동에너지)를 보여준다. 개별, 분자들은 서로 다른 운동에너지를 가지지만 우리는 그냥 해당 계 전체의 평균 운동에너지로 인식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과학의 성공에서 볼 수 있듯이 현실에서 매우 잘 작동한다.


신경세포들도 기체 분자들처럼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상호작용을 한다. 신경세포 자체들도 서로 비슷한 것들이고 비슷한 행동을 하고 비슷한 작용을 한다. 하지만 기체 분자들의 일부분을 제거해도 그들은 여전히 비슷하게 움직일 테지만, 우리의 대뇌를 열어서 뇌의 한 부분을 떼어내면 심각한 손상으로 죽거나 미쳐버릴 것이다. 신경세포들은 서로 비슷하지만 또, 완전히 달라서 개별 세포들의 고유성이 존재한다. 즉, 개별적으로 하는 역할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체 분자들을 다루듯이 하나의 계로 묶어서 이해하는 방식이 적합하지 않다.


그럼 개별 신경세포들을 일일이 관찰할 것인가? 이건 굉장히 어려워 보였다. 첫 번째로는 너무 많다. 개별 신경세포들은 그저 on/off 하듯이 스위치가 켜지고 꺼지고 하는 것만 있다. 이미 당시에도 이것은 밝혀졌었다. 그리고 이런 것이 셀 수 없이 많이 중첩되어 복잡한 정신적 작용을 일으킨다. 너무 단순한 것들이 복잡하게 얽힌 것이다. 결국, 이런 단순한 것들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해야지 정신이 출현하느냐는 문제로 이어진다. 


하나의 방법이 떠오른다.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약 1000억 개가 넘는 개별 신경세포들의 모든 연결을 추적하는 것이다. 즉, 사람의 모든 신경세포의 연결을 파악하여 지도를 작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경세포는 매순간 연결이 달라진다. 가령, 영어를 학습한다고 하면, 학습을 할 때마다 신경세포의 연결이 이루어지고 강화된다. “body”라는 단어를 익히게 되면 글자의 모양에 대한 정보, “body”가 나타내는 각종 몸의 모양, “body”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음성, “body”라는 말을 했을 때의 내 입의 움직임 등이 신경세포들 간의 연결로 전부 결합된다. 그건 이전에 없었던 연결이다. 새로운 신메뉴 음식을 먹었을 때, 재미있는 TV를 시청했을 때 등등 모든 순간에 신경은 다시 배선된다. 


따라서 죽은 사람의 뇌를 잘라서 그 연결을 일일이 파악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살아있는 사람의 뇌의 배선을 전부 파악하고 이렇게 파악된 사람이 활동하면서 발생하는 신경세포의 변화를 추적해야만 우리의 정신을 신경세포로 환원하여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능할리가 없어 보였다(당시에는 불가능해 보였는데 이후 fMRI가 나타나 부분적으로나마 살아있는 인간의 뇌를 스캔할 수 있게 되면서 뇌과학이 무척 발전하게 되었다.).


대안으로 동물의 뇌를 생각해보았다. 즉, 실험용 동물을 복제해서 수천마리의 클론을 만들고 이들을 각종 환경에서 통제된 실험적 환경에 집어넣어 신경계의 변화를 만들어낸 다음 일일이 뇌를 해부하여 변화를 추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의 무식함과 잔인함 외에도 갈 길이 너무 멀어 보였다. 동물의 내적 동기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뇌의 변화와 피실험자 본인이 자각하는 변화를 같이 이야기함으로써 총체적인 정신작용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가령, 수학문제를 풀면서 뇌의 변화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확인하거나 사랑을 느꼈는지? 불안을 느낀 것인지 단순히 똥이 마려운 것인지 주관적이고 내적인 동기를 일일이 확인해볼 수 있다. 하지만 동물은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실험용 동물들이 뇌 해부로 숱하게 죽어나가도 얻을 수 있는 이해에는 큰 제한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동물의 지성을 연구하는 것도 아니니 더더욱 의미 없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지능이나 인간의 정신을 신경세포로 환원해서 연구하겠다는 발상이 얼마나 어려운 길인지 눈치 챌 수 있었다. 기계론적인 환원론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상황이 온 것이다. 마치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처럼 양자를 관측하려고 하는 행위가 양자의 행동을 왜곡시킨다는 것처럼 뇌의 신경세포 간 연결을 파악하자니 사망한 인간의 뇌가 필요하고 살아있는 인간의 행위를 관측하자니 신경세포 간 연결을 파악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어찌어찌 연구한다고 해도 그 복잡성 때문에 어디까지 파악할 수 있는지 그것도 요원한 상황이었다. 


물론, 장기간 데이터가 축적되고 실험이 진행되면서 결국, 조금씩 상황이 개선될 것이고 어느 순간 인식의 장벽을 돌파하고 뇌를 이해하게 될 수단을 구할지도 모르지만 기계적 환원주의가 그것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 문제에 대하여 반대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on/off를 하는 신경세포와 유사한 것을 이용하여 인간의 정신세계를 구현한다면 바로 그것을 통해서 뇌의 작동원리를 밝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신경세포를 통해서 이 간단한 세포의 작용이라도 무수한 조합을 통해서 인간의 정신세계가 출현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를 현실에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구현하는 것이 수많은 동물의 머리를 해부하고 사람을 관찰하는 것보다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 이 당시는 2000년이어서 지금처럼 많은 발견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근의 연구결과는 잘 모르고 당시의 생각 위주로 작성된 내용이므로 현재와 많이 다를 수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