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처음 새 본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인 것으로 기억한다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는데, 도대체 밤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너무 궁금했다. 밤이 지나면 다음 날이 된다는 현상이 너무 궁금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었기 때문에 어린이용 책을 잔뜩 쌓아놓고 이를 읽으면서 밤을 새려고 했다. 그리고 새벽 1~2시 정도가 되면 어느새 잠이 들었다. 일주일 정도 동일한 시도를 했지만 매번 새벽 1~2시를 넘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고 결국, 어머니에게 밤에 늦게 자는 것이 발각되면서 시도를 포기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단순히 화를 낸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나를 옆에 재우면서 자는지 감시했다. 그 날 밤을 새겠다는 계획을 최종적으로 포기했지만, 어째서인지 어머니의 옆에서 아무리 자려고 해도 잠을 잘 수 없고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면서 밤을 새게 되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밤을 뜬 눈으로 넘겨보았고, 날이 바뀌는 밤 동안 별일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도전은 나를 완벽한 올빼미 인간으로 거듭나게 해주었다. 더구나 부모님은 9시만 넘어가면 깊이 잠에 들기 때문에 저녁 9시 이후는 완전히 자유로운 세상이었다. 따라서 밤에 늦게 자는 것은 최고의 축복이었다. 몰래, 만화책을 보고, 나가서 돌아다니고 텔레비전만 크게 틀어놓지 않는다면 무엇을 해도 괜찮았고 나는 그 자유를 맘껏 누렸다. 덕분에 밤은 온전히 나의 시간이었다. 각종 소음이 가라앉고 맘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부모님에 대한 눈치, 내일에 대한 걱정도 함께 가라앉았다. 내 주위를 맴도는 부모, 텔레비전 소리에 대해서 더 이상 신경쓸 필요가 없게 되어서야 스스로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형광등이 켜진 영역은 어둠을 몰아내고 나만의 영역을 만들어 주었고 그 영역에서 주인이 되어 충실하게 자신의 일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나만의 시간이 자리를 잡으면서 실상 모든 활동은 밤에 이루어졌다. 재미있는 놀이, 게임, 독서, 운동 등 모두 밤에 이루어졌다. 공부도 사실상 밤이 아니면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나에게 낮은 전혀 생산적인 시간이 아니었다. 낮에는 자고 밤에는 일어나서 활동하는 방식의 생활이 결국 40대까지 이어졌다.

 

세상은 넓고 즐길 것은 정말 너무 많다. 잠에 드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항상 깨어 있었으면 했다. 선현들도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항상 깨어있으라'라고, 중학생이 되어서 취미는 서점에 들려 온갖 이상한 자기계발서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자기계발서의 세계는 매우 신비스럽고 흥미로웠다. 어린 나이라서 처세니 경쟁이니 하는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고 무언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기계발서에 관심이 많았다. 사춘기 답게 자신의 본질을 찾기 위한 여행을 권장하는 자기계발서부터 초능력 계발, 명상과 마인드 컨트롤, 신선들의 세계, 중국 무술에 대하여 소개하는 자기계발서에 관심이 많았고 나의 밤은 이런 책들에 나온 내용을 검증하고 연구하는데 온전히 바쳐졌다. 그러니 항상 잠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고 잠을 안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 때, 내 눈 앞에 나타난 자기계발서가 3시간 수면법이었다. 최근 서점에 가보니 아직도 그 책이 나오고 있는 것에 실소를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에야 3시간 수면법이라는 책이 허황된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중학교 2학년이었던 당시에는 혁명적이라고 생각했다. 공부처럼 재미는 없지만 꼭 해야하는 것을 할 때, 가장 먼저 장애로 다가오는 것이 졸음이다. 재미없는 공부를 하려면 정말 미친 듯이 졸음이 밀려오고 공부하는 시간은 대부분 졸음과의 사투로 점철되는 것이 거의 일상이었다. 그러니 이 졸음의 문제를 얼마나 해결하고 싶었겠는가? 나는 잠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기대에 이 책을 열심히 정독하지 않을 수 없었다.

 

3시간 수면법의 논리는 간단했다. 3시간을 자도 깊게 자면 괜찮다는 것이다. , 잠을 많이 자도 얕게 자면 계속 피곤하고 졸리지만 잠을 짧게 자도 깊게 자면 개운하고 전혀 피곤하지 않고 졸리지도 않는다는 것이 핵심 논리였다. 짧은 단잠으로도 정신이 맑아지고 긴 밤을 설치면서 자면 다음날 피곤한 경험은 흔히 할 수 있는 경험 아닌가? 이는 우리가 흔히 겪는 경험을 근거로 제시하고 이를 통해 깊게 잠이 들면 된다는 결론을 정당화하고 있다. 당시, 중학교 2학년으로서는 완벽해 보이는 논리였다. 논리적 설명은 이게 다였다. 그 다음부터는 흔히 볼 수 있는 자기계발서의 패턴대로 누가 이렇게 3시간 수면법을 실천해서 성공했는지 마구마구 설명해주고 계셨다. 그리고 이 멋진 3시간 수면을 습관으로 정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소개해주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논리도 중학교 2학년이 매우 명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매우 단순명쾌했다. 사람이 잠을 못자면 당연히 더 피곤해지고 그러면 더 깊게 잠이 든다. 그래서 체계적으로 잠을 안 재우면 더 깊게 잠이 들게 될 것이고 이를 습관화하면 3시간 수면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완벽해 보이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3시간 수면법을 실천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밤에 잠을 자지도 않았고, 낮에는 학교 수업이다 뭐다 해서 깨어있으므로 잠을 자지 않고 버티는 것은 쉬워보였다. 그 전에는 이것저것 할 욕심에 잠을 자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 잠을 자지 않았다. 아마, 결론을 예상했겠지만 완전히 실패했다. 중학생 시절은 매일매일 아침에 코피를 흘리면서 깨어났다. 매일 상시적으로 두통에 시달려 표정은 항상 짜증이 나 있었고 거의 눈을 뜨지 못해서 학교생활도 엉망이었다. 당시 친척이던 소아과 의사선생님에게 이 증세를 물어보았을 때, '수면부족'이라고 하셨지만 어째서인지 믿지 않았다. 무려,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 와서야 그 때의 행동이 무모했다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그냥 스스로가 부족해서 3시간 수면법을 익히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3시간 수면법의 논리는 그대로 내 속에 남아서 잠을 안 잘수록 깊은 잠을 잘 수 있기 때문에 잠을 자지 않으려고 버티는 행위는 당연히 유익한 행위라고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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