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Anki를 기본(Basic) 노트로 질의/응답 형식으로만 만들었을 때는 카드를 만드는게 조금 골치아픈 문제였다. 질의/응답 형식의 카드 만들기는 완성형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조금 어렵다. 어떤 문제를 만들까? 어떤 사항이 핵심일까? 고민하고 그것을 일일이 타이핑하고 사진을 붙이고 작업을 해야 한다. 실은 이미 해당 내용에 대한 공부가 되고 나서야 질의/응답 형식의 카드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카드를 만들다보면 자연스럽게 공부가 된다. 해당 주제에 대하여 고민하고 이를 다각적으로 고찰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카드를 다 만들고 나면 이미 상당히 깊은 수준까지 해당 지식을 체득하게 되고 그 뒤의 카드는 그저 기억을 환기하는 정도다. 따라서 카드를 만드는 과정도 학습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 이미 공부한 내용이다. 새롭게 이해하고 고찰하는 과정은 그닥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너무 많은 공부량이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정리하고 보고 싶지는 않다. 그저 기억을 환기할 수 있고 숙련될 수 있도록 누군가 만든 자료가 있었으면 좋겠다. 가령, 초중고의 수학 같은 것들이다. 이것을 하나하나 정리해서 다시 보기는 그 양이 너무 많아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트렌드는 수학을 자주 사용해야 해서 기억을 환기시키고 싶다. 누군가 잘 정리해 놓은 것이 없을까?
과거에 공부한 그러나 지금은 기억이 희미한 내용들을 다시 공부하고 싶을 때 타인이 해 놓은 것을 업어올 방법이 없을까? 몇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처음 생각한 것은 문제집이었다. 평생 문제집이라는 말을 부담스럽게 생각했는데, 막상 스스로 공부할 생각을 하니 문제집이라고 하는 것이 모든 분야에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간단한 질의/응답 문제를 만들어 보니 알 것 같다. 이것도 골머리 아픈데, 난이도 별로 복잡한 온갖 요소들을 고려해서 섬세하게 답까지 유도하는 문제와 답을 만든다는 것은 상당한 정신적 노동이다. 문제집이라는 것이 학습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인프라인 것이다. 하지만 문제집 파일이 웹에 돌아다니는 경우를 찾지 못했다. 유료 이북이거나 학원 강의 같은 것을 들어야만 제공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 흔한 PDF도 찾지 못했다. 관련 속내를 살펴보니 문제들 하나하나가 출판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자산 취급을 받는 것 같았다. 해외의 문제집은 조금 돌아다니는데 워드 파일보다는 주로 웹에서 학습을 하는 형태들이 많았다.
서점에서 문제집을 사서 해당 내용을 Anki로 옮기는 것도 생각해보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학습한 개념에 대한 기억을 환기하고 간단히 적용해보는 정도의 기본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문제집의 문제들은 문제를 어렵게 꼬아서 학생들의 수준을 변별하려는 의도를 가진 그런 문제들 위주다. 오히려 기본적인 질문은 상대적으로 적다. 또는, 자리에 앉아서 연습장을 펼쳐놓고 풀어야 하는 그런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들은 그 자체로 학습에 도움을 주기는 하겠지만 개인적으로 Anki를 사용하고자 하는 방식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나는 Anki를 주로 모바일로 운동 중이거나, 이동 중이거나 대기 중일 때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공부하는 용도로 사용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의 문제집을 이용하는 것은 개인적인 Anki 사용 방식과도 대치되고 또, 이를 멋모르고 공유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저작권 문제도 있기 때문에 포기했다. 그 다음으로 살펴본 것이 AnkiWeb의 공유카드(Shared Deck)들이었다. AnkiWeb의 공유카드는 이 페이지를 방문하면 된다. 다음과 같은 화면이 나타난다. 딱히 로그인을 하지 않아도 들어가서 해당 카드들을 다운받을 수 있다.
위의 사진은 Anki가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 잘 보여준다. 단순히, Anki 공유카드의 모든 카테고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선호되는 카드들 위주로 나열되어 있는 것 같다. 1차적으로는 대부분 언어이고 2차적으로는 압도적인 암기량을 자량하는 의학계열의 공유카드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노골적으로 암기하는 과정이 필요한 분야들이 암기와 의학계열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어떤 내용이 있나 둘러보면 영어(English)와 Anatomy(해부학) 정도가 정말 해당 카드를 쓸만한 정도의 품질을 보여준다. 이미 의대생에게 Anki는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적인 앱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YouTube에서 Anki를 설명하고 있는 많은 동영상들이 같은 다른 의대 출신의 대학생들에게 Anki를 권유하는 내용인 것은 이래서 그렇다. 실제로 해부학의 Anatomy 카드들은 엄청난 용량으로 엄청난 고품질이다.
해부학을 공부할 필요를 못 느끼니 그것은 논외로 하고 평소에 관심 가는 분야에서 흥미로운 카드들을 검색하여 공부해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카드를 사용한다는 것이 녹록치 않았다. 일단, 카드를 특정하기 어렵다. 1만개의 단어가 수록된 English 단어 암기용 카드뭉치를 다운 받아 사용해보니 태반이 아는 단어이고 몇 가지 단어는 제대로 작성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그 뒤에 어떤 단어가 왜 나오는지도 알 수 없고 그저 파편화된 상태로 단어를 암기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가 왜 이런 것을 공들여 암기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또, 어떤 카드들은 자신만의 맥락이 있어서 처음 카드를 접하는 사람들은 맥락을 이해할 수 없게 카드가 만들어진 경우도 있다. 어떤 것은 너무 부실하고 어떤 것은 뜬금없는 카드들만 모여있는 경우도 있었다.
타인의 카드를 쓰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운 것일까? 일단은 근본적으로 맥락의 부재 때문이었다.
카드를 이용한 암기는 카드의 양면에 지식을 매우 축약한 것이다. 맥락을 아는 사람은 속으로 “맞아 이것만 외우면 돼!”라고 말하지만 실은 수많은 맥락이 그 카드에 축약된 것이다. 가령 주기율표를 외우는 방식 중에 두음을 이용하여 암기하는 방식이 있다. 각 원소의 첫 글자를 따서 연달아 외우는 것인데 "에헤리베...." 라는 식으로 주욱 이어진다. 작성자 본인이야 다음과 같이 카드를 만들어 공부하면 된다.
질문 : 에[ ]리베 의 빈칸에 들어갈 원소는?
답 : 헤
작성자는 본인이 왜 이런 카드를 만들었는지 알기 때문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하지만 다른 사용자는 이런 의도와 맥락을 알 수 없으니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이 카드를 열심히 추론하여 깊은 고민 끝에 두음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활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것 외에도 수많은 맥락이 있다. 스스로 공부를 할 때는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암기를 한다. 어떤 사람은 공부하다가 자신이 모르는 사실을 발견할 때만 암기하고, 어떤 이는 헷갈리는 부분만 암기한다. 어떤 이는 너무 많은 카드를 만들고 어떤 이는 너무 적은 카드를 만든다. 하지만 그 모든 낱장의 카드들은 각자의 필요에 각자의 관점에서만 만들어질 수밖에 없고 그런 카드 제작자의 맥락을 모르는 다른 사용자들은 이러한 카드들이 너무 많거나 너무 적거나 너무 지엽적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이렇게 주욱 살펴보니 해부학과 같이 교과서를 Anki가 대체하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쓰기 어려웠다. 혹은, 딱 자신이 원하는 취향의 카드뭉치를 찾기 어려웠다. 결국, 카드 업어오기는 포기하게 되었고, 완성형 스타일로 카드를 만들게 되면서 공부할 내용이 너무 많아져 다른 카드를 업어올 생각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한쪽으로는 카드를 공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생각이 맴돌았고 그에 대한 고민이 후에 Ankilog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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