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구조에 대한 개인적인 발견으로 시작되어서 신경세포에 영감을 받은 나는 큰 호기심을 가지고 책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인간의 추상적인 정신이란 결국, 인간의 구체적인 행위와 사상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이는 이항구조와 같은 어떤 추상적인 구조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에 문학, 사상 등의 책을 읽고 그러한 추상적인 구조를 추가적으로 발견하고 싶었고, 발견된 구조를 통하여 인간을 총체적으로 이해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공부들은 바로 큰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인문학 공부라는 것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공부량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암기할 것이 너무 많고 외국어 소양도 충분해야 하는데 두 가지 전부 내가 할 수 없는 종류의 행위들이었다. 결국, 깊은 수준까지 제대로 공부는 하지 못하고 교양으로 이해가능한 수준의 책만 뒤적이기를 반복하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인문학 공부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지는 못했지만 다량의 독서 경력은 생겼고 나름 인문학 쪽에 소양이 생겼다. 또, 그만큼 전공 공부를 놓아버렸기 때문에 탈출구를 고민하다가 고시를 생각했다. 안정적인 신분으로 나름 편하게 살면서 평생 독서나 연구를 하면서 살겠다는 안이한 생각이었다. 당연히, 고시는 실패했다. 암기가 안 되는 사람이 고시를 공부한다는 것이 코미디였다. 그런데 이 실패가 매우 치명적이었다. 


 고시 공부는 시작부터 난항이었다. 대학을 거치면서 공부하는 법을 전부 까먹은 것인지 공부라는 행위 자체가 되지 않았다. 책상 앞에 앉아있으면 잡념이 끊이질 않았다. 그래서 처음엔 인간관계를 끊었다. 친숙하게 노는 친구들이 전부 공부랑 담을 쌓고 있어서 한번 어우러질 때마다 1~2주일의 시간이 훅 날아갔기 때문에 결단을 내리고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휴대폰도 없애버렸다. 하지만 인터넷이 남아있었다. 다른 관계를 모두 끊었더니 오히려 인터넷이 삶을 좌지우지 할 정도로 비중이 높아져버렸다. 인터넷 뉴스는 매일매일 자극적인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홀로 심각하게 받아들여 밤마다 세상의 불의에 분노하고 좌절하느라 공부는 뒷전이었다. 세상에 대한 분노, 공부가 안되는 좌절감 등이 너무 고통스러울 때는,  생각을 잊게 해 줄 재미있는 영화나 게임을 찾아 인터넷을 헤매기도 했다. 결국, 내 잡념은 결국, 항상 인터넷으로 연결되었다.


 공부를 하다보면 꼭, 그 동안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다른 것이 하고 싶어진다. 꼭, 시험 전날 한창 바쁠 때, 엉뚱하게도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평소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엉뚱한 이상한 책을 읽고 싶어진다. 고시 공부를 하는 기간도 내내 이런 엉뚱한 충동을 겪어야 했다. 당시, 책꽂이에 대략 10년쯤 있었던 칼릴 지브란의 우화집 《어느 광인의 이야기》가 있었다. 누군가 사와서 책꽂이에 꽂아놓은지 한참 지난 책이었고 한번도 펼쳐보지 않은 책이었다.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이 우화집이 눈에 확 들어왔고 충동적으로 그것을 펼쳐 읽었다. 그리고 “자아가 허무함을 응시”하는 이야기에 꽂혀 버렸다. 공부를 하거나 길을 걷다가도 불현듯 “자아가 허무함을 응시”하는 것을 떠올리는 것이다. 


 시간은 흘러가고 자신에 대한 한심함과 자괴감이 이미 강해질대로 강해졌다.  결국,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던 어느 날, 너무 많은 상상과 생각이 머릿속에 넘쳐흘러서 괴롭던 어느 날 망상을 뿌리째 잘라내고 싶다는 강력한 충동이 생겼다. 그 충동은 방법도 같이 제시했다. 그 방법이란 "허무함을 응시"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충동이다. 여튼 당시 머릿속의 생각은 망상의 연쇄작용을 따라 올라가보면 "허무함"이 있을 것이라는 이상한 확신이었다. 망상을 뿔리째 잘라내고 싶었던 것인지 망상에 휘둘린 것인지 잘 구별이 가지 않는다.


 그것이 망상인지 충동인지 구분할 수는 없었다. 단지 괴로웠고, 평화가 필요했다. 모든 것의 연쇄작용을 따라 올라가서 그 망상의 근원을 보고 그것을 파괴하거나 제어하여 내면의 평화를 찾지 못하면 죽을 것 같았다. 어쩌면 "허무함"을 내면의 평화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방바닥에 책상다리로 앉아서 스스로의 망상을 따라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망상을 하나하나 인식하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인식된 망상의 원인을 찾아 그 뿌리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망상은 항상 흘러넘쳤기에 망상을 인식하는 것은 쉬웠다. 망상은 인식하면 그 망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보려고 했다. 하지만 망상을 인식하고 그 원인을 찾으려는 순간 인식된 망상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갑자기 망상이 없어지니 망상의 원인도 왜 찾아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망상을 다시 인식하려고 한다. 어라 조금 망상이 줄었다. 망상을 찾아 헤맨다. 다시 망상을 찾았다. 인식하고 그것의 원인을 궁구하려고 하는데 다시 망상도 사라지고 그 망상의 원인은 붕 떠버린다. 그리고 필름이 끊겼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음란한 망상의 한 가운데서 의식을 자각한다. 음란한 망상이라고 구태여 말한 것은 일관된 것이 아니었지만 그 모든 것의 주제가 성행위나 폭력이었기 때문이다. 이야기처럼 서사나 내러티브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온갖 야동과 폭력 영화가 머릿속에서 한꺼번에 플레이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 음란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머릿속의 영상이 어떻든 간에 거기에 투영되는 욕구가 너무 강하고 동물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무한반복이 몇 번이나 지나갔는지 알 수 없지만 멍하니 그 모든 것을 보고 들으면서 체험하다가 서서히 의식이 깨기 시작했다.


 의식이 깨어나는 순간을 뭐라고 설명해야할까? 의식이 깨어나기 이전의 체험이 전부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순간에 나는 방관자, 혹은 무기력한 정보의 수용자에 가까웠다. 어떤 역겨운 내용도 의도도 그저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길가의 돌멩이처럼 무력했다. 하지만 의식이 깨어나는 순간 이 모든 것이 조금씩 옅어졌다. 역겹다는 나의 느낌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의식이 있기 전에는 그저 돌멩이 마냥 있었다면 의식이 생기면서 ‘나’라는 인식이 생기고 안정감이 돌아왔다. 통제가 가능해지는 느낌과 함께 안도감이 몰려왔고, 머릿속에서 무한 재생되고 있는 음란한 망상들이 인식되고 의식이 없는 동안 그런 음란한 망상들 속에 있었다는 기억이 떠오르면서 상황 인식이 형성되었다. 동시에 노출된 스스로의 욕망으로 인한 역겨움이 같이 떠밀려 왔다. 그리고 서서히 그런 망상들이 사라지고 안정된 현실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필름이 끊긴 것을 전혀 몰랐다. 그저 지독하게 낯설고 강력한 상상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자신을 보았을 뿐이다. 앞서 망상을 인식하고 그 원인을 파악하려는 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전혀 기억할 수 없었다. 의식이 깨어나고 한참 후에 기억을 되짚어 보고서야 망상을 인식하고 그 원인을 파악하려는 행위가 갑자기 종료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고 그 다음은 아무런 기억이 없다. 눈을 떠보니 지독하게 낯설고 날것의 강력한 망상의 와중이었을 뿐이다. 즉, 단기적 기억상실에 가까운 단절이 일어난 것이다. 


 망상의 근원으로 올라가 잡념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것을 제거해보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수행했고, 그 결과는 실패였다. 그래서 다시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항상 다락에 가까운 단기적 기억상실을 겪고 온갖 망상 속에서 깨어날 뿐이었다. 그리고 망상을 끊어보겠다는 의도와는 달리 망상은 오히려 늘어났고 그 힘도 더 강해졌다. 즉, 예전에는 잡념 수준으로 귀찮은 것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거부하기 어려운 욕구가 되어 끊임없는 갈증을 선사했다. 


 원래, 잡념이 많아서 공부가 안 되는 상황에서 출발했다. 이때만 해도 모든 것은 어느 정도 건강했었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이 책상 앞에 억지로 앉아서 지겨움에 몸을 비비꼬면서 망상에 빠지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내가 망상의 근원을 파헤쳐보겠다고 앉아서 머릿속을 응시하면서 이 모든 것은 확연하게 병적인 것으로 악화되었다. 잡념에 불과했던 것들이 이제는 충동으로 바뀌어서 나를 제어하기 시작했다. 매순간 모든 욕구가 나를 파괴시킬 정도로 강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성적인 욕구가 너무 강해져 낮이고 밤이고 잠을 잘 수 없었고, 감당하기 어려운 성욕이 가라앉기를 바라면서 하루 종일 야동만 보고 있어야만 했다. 지쳐 쓰러질 지경이 되어서도 머릿속에서 망상이 떠나질 않았다. 식욕도 너무 강해져서 고칼로리 음식 위주로 먹고 끊임없이 먹었다. 단맛이 역겹게 느껴지고 속이 물려도 식욕이 통제가 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각종 망상이 스테레오로 각성되어서 잠은 지쳐 쓰러질 지경이 되어야만 겨우 잠깐 눈을 붙일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이상한 통증 때문에 수면 부족이 되기 일쑤였다. 담배는 줄담배로 피었고, 야동을 벗어나도 갈 수 있었던 곳은 만화방 정도였다. 무협지와 판타지의 단순한 대리 욕구로 머리를 도배해야만 가까스로 조금이나마 평화를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씩 내가 미쳐가고 있구나 하는 자각이 몰려왔지만 방법이 없었다. 충동이 들 때마다 나는 너무나 무력하게 충동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범죄는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것은 이성적인 통제와 절제가 아니었다. 그저 그런 충동이 잘 일어나지 않았고, 범죄적인 충동이 있을 때마다 또 다른 충동인 공포가 나타나서 더 강한 충동에 따랐을 뿐이다. 즉, 타인을 상하게 하는 것에 대한 공포와 벌을 받고 싶지 않다는 공포가 있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고시 공부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것 그대로 좌절이 되어서 나를 옭아매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매일매일 스스로에 대한 역겨움과 혐오감, 탐욕과 색욕, 식욕, 좌절, 공포 속에서 미친놈처럼 펄떡이다가 어느 순간 내가 진짜로 미친 것일지 모른다는 점을 깨달았다. 파국이었다.

고시에 도전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순전히 재수시절의 기억 때문이었다. 재수생 시절의 마법같은 일이 다시 발생한다면 단 기간에 고시 패스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물론, 이 마법같은 경험은 대학교 공부를 할 때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해 학점은 참혹했지만, 그 때는 청춘의 교우 관계에 힘을 쏟고 각종 행사에 토론에 정신이 없었고 전공 공부에는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대학 시험은 벼락치기로 간단히 넘어가기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차근차근 시간을 들여가면서 대입공부를 하던 때처럼 공부한다면 고시의 수월한 통과가 가능할 것이라고 속단한 것이다.

 

7년을 내리 놀기만 하다가 다시 공부를 하려고 하니 공부가 잘 될 리가 없다. 솔직히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있는 것도 어려웠다. 몸이 공부에 익숙해지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였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 것은 정말 큰 문제였다. 모든 활동을 정지하고 공부에 전력투구하기 시작했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수면에 난조가 왔다. 어차피 다른 활동을 하고 있지 않으니 졸리면 자고 일어나서는 공부하면 되는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묘사해야할까? 졸려서 자려고 누우면 정신이 맑아지고, 잠이 오지 않으니 일어나서 공부하려고 하면 미친 듯이 졸리고 피곤하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다. 누워있어도 고통스럽고 활동을 해도 고통스럽다. 내가 할 수 있는 활동은 오직 강력한 자극으로 정신을 각성시키는 활동만 가능했다. 공부를 하거나 사색을 하거나 책을 읽으려고 하면 너무 피곤하고 눈이 감기며 글은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너무 졸리고 피곤해서 이제 누우면 자겠지 하고 누우면 잠은 오지 않고 이런 저런 생각만 머리를 어지럽힌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이제 시험은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자고 싶었다. 아니 깨어있을 때는 정신이 맑고 잘 때는 푹 쉬고 싶었다. 하지만 오만가지 이유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첫 번째는 소리였다. 눕기만 하면 주위의 소리가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뇌로 쏙쏙 박히는 것만 같아서 계속 신경이 쓰였다. 문 밖에서 소곤거리는 소리, 어디선가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 대로변에서 차량이 이동하는 소리 등 정말 많은 소리가 침범해왔고 나는 그 소리를 감내할 수 없었다. 그 모든 소리에 분노하고 짜증을 내며 소리를 질렀다. 귀마개를 꽂아도 그런 소리는 여전히 너무나 잘 들렸다. 두 번째는 온도였다. 몸이 뜨거운 건지 항상 더워서 땀을 흘리고 그러한 땀이 배는 것을 참지 못하고 일어나게 되었다. 세 번째는 욱신거림이었다. 지금에는 하지불안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확인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해서 원인 불명의 증세가 나를 괴롭힌 것이다. 눕기만 하면 발을 쭉 뻗고 움직이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그 느낌이 신경을 미친 듯이 건드리고 있어 전혀 무시할 수 없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체증이었다. 나는 자주 체했다. 정말 자주 체해서 일주일에 5일은 체해있는 상태였다. 체하면 두통이 밀려오고 속이 뒤집어져서 잠 뿐만 아니라 어떠한 활동도 할 수 없었다. 잠이 들기 전에 체증이 가라앉으면 다행이지만 일단, 체증에 걸려있는 상황에서는 잠을 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지쳐 쓰러질 때가지 걷거나 자극적인 인터넷 세계를 탐방하는 것, 만화책을 보는 것이었다. 그것 말고는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서 체력을 완전히 소모하고 나면 체증이 가라앉고 지쳐 쓰러지면서 잠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이러한 조치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눕기만 하면 누가 머리를 바이스 같은 도구로 조이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어서 꽝꽝 때리는 느낌도 왔다. 그것은 실질적인 통증을 동반했고 정말 무지 아팠다. 이제는 지쳐 쓰러지듯 잠을 자는 것도 만만하지 않게 되었다. 다양한 실험을 해보았는데 일단 베개를 사용하면 머리를 조이는 느낌이 강해졌고, 모로 누워서 잘 수도 없었다. 엎드려 자는 것이 가장 심했기 때문에, 정자세로 누워서 목이 15도 정도 좌우로 기운 상태에서만 잘 수 있었다. 그 자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이제는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엄격한 규칙을 지켜야 잠을 잘 수 있었고, 이러한 규칙은 종종 나를 배반했다.  

 

스트레스가 극심해져서인지 체증은 더 자주 찾아왔다. 이 체증에 대해서는 따로 말해야겠지만 중등 시절부터 자주 겪어온 증세였고 평생의 지병처럼 생각하고 있는 증세였다. 그리고 고시생 시절에야 이 증세의 이름이 체증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 체증은 최근에야 완전히 극복되어서 극복하는데 25년이 걸렸다. 당시, 스트레스가 극심하고 무언가의 균형이 깨졌는지, 체증이 정말 극심해졌다. 평소에는 머리가 아프고 속이 뒤집어지는 정도였다면 이 때 부터는 항상, 오한을 동반하고 몸이 미친듯이 떨리고 고통으로 정신을 하나도 차릴 수 없게 만드니 나중에는 이 체증이 말라리아 같은 학질이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했었다.

 

그러고 누우면 다시 공포스러운 고통이 찾아왔다. 너무 지쳐서 의식을 잃을 때까지 밀어붙여야 가까스로 잠을 잤는데, 일어날 때는 식은땀에 흠뻑 젖어서 고통스러워하며 일어나는게 일상이었다. 잠을 잔 것이 말끔하고 개운한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죽다 살아난 것 같은 기분을 주면서 허우적거리며 일어나서는 그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는 듯이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수면 무호흡증도 심했던 것 같다.

 

당연히, 병원을 찾아가서 이것저것을 하소연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의사들의 말은 한결같이 스트레스를 줄여라.”였다. 물론, 이 모든 증세에 스트레스가 한몫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또 증세로부터 오는 스트레스가 너무 극심했기 때문에 증세를 없애는 것이 우선이어야 했다. 하지만 의사들의 처방은 스트레스 과다였고, 나는 좌절하면서 병원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고시 공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정도로 아프게 되면 아무리 주위 보기가 민망하고 인생에서 낙오하는 것 같아도 내가 살아야 했기에 고시의 포기는 깔끔하게 되었다이 상황을 개선해야겠다는 생각 말고는 어떠한 생각도 할 수 없었고 고시 공부를 포기해서 스트레스를 줄여여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시 공부를 포기했어도 여전히 증세는 계속되었다. 오히려 고시 포기에 따른 우울증까지 겹쳤다. 끊임없이 악몽을 꾸었다. 악몽을 꿀 것을 알아도 자지 않을 수는 없었다. 수면은 어쩔 수 없이 지옥으로 입장하는 것이었지만, 그 지옥도 깨어있는 현실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아귀의 고통이 이런 걸까? 아귀는 먹고 싶은 탐욕에 미쳐있지만 먹을 기회가 거의 없고 가까스로 먹을 것을 구해 먹을 것을 넘길 때 어마어마한 고통을 느낀다. 내가 바로 그러한 느낌이었다. 쉬고 싶고 자고 싶은 열망에 몸부림치지만 잠을 자면 첫 번째로 잠을 잘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미친 듯이 수면에 대한 욕구에 시달렸다. 두 번째로는 잠에 들기 직전까지 반드시 머리를 조이고 때리는 것 같은 고통에 시달렸고, 가까스로 잠을 자면 악몽이 덮쳤다. 그리고 깨어날 때는 전혀 개운하지 않고 죽었다가 살아난 느낌으로 일어났다. 몸은 식은땀으로 젖어서 숨이 부족해 숨을 몰아쉬었고 기분에 끔찍했다.

 

3년을 버티다가 결국 수면제를 받아서 복용해보았다. 이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수면제를 복용했는데, 일단, 잠은 바로 잘 수 있었다. 하지만 1시간 만에 일어났다. 그것은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고통과 함께 잠에서 쫓겨나듯이 일어났다. 처음 겪어본 고통이었던 것 같다. 평소 머리를 조이는 것 같은 고통과 머리를 꽝꽝 때리는 것 같은 고통을 한계가지 밀어붙이면 어떤 고통이 오는지 처음 알았다. 고통을 없앨 수만 있다면 나는 내 머리를 부수어도 좋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머리를 벽에다가 찍었다. 아무런 느낌이 없고 무언가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고통이 가라앉을 때까지 끊임없이 머리를 벽에다가 찍었다. 나는 원래 겁이 많고 소심한 편이라 이런 식의 고통스러운 자해 행동을 매우 싫어하지만 당시는 살고 싶지 않았고 모든 두려움과 걱정은 없었다. 그냥 실행에 옮겼다. 다행히, 고통으로 힘이 없었는지 내 머리가 부서지지도 않았고 고통도 가라앉았다. 이 때의 고통은 지금도 떠올리기만 해도 무섭고 진저리쳐진다.

 

그리고 이 고통을 겪고 나서야 나는 의심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나는 이러한 수면의 장애가 체증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고시에 대한 스트레스, 그리고 평소의 낮과 밤이 바뀐 불규칙한 생활습관이 맞닿아 일어난 증세라고 의심했었다. 체증은 항상 있었고 고시공부를 시작하자마자 너무 갑작스럽게 수면 장애가 왔기 때문에 그렇게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머리를 조이는 통증과 꽝꽝거리는 통증도 그 동일선상에서 왔다고 생각했다그 때 내 스스로가 반쯤은 말 그대로 미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정신병원을 가서 확증하는게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스스로 미치지 않았다고 자위하면서 이 모든 문제를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그래서 통증도 내 자신의 광증의 소산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고시를 포기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건강한 수면 패턴을 다시 찾으면 체증은 어떻게 안되더라도 수면은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그 일환으로 수면제를 처방 받은 것이다(엄밀하게 확인할 정신은 없어서 진짜 수면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가 정신적인 것이었다면 수면제로 인한 그 지독한 고통이 설명되지 않았다. 이 때, 나는 잠시 차분해졌다. 그 동안의 전제를 내려놓고 상황을 둘러보다가 물을 마실 때마다 어금니 쪽이 시려지는 느낌이 갑자기 떠올랐다. 확신이 왔다.

 

치과에서 10년간 교정을 해서 치과에 매우 익숙하면서도 정말 싫어한다. 이빨을 가는 드릴의 소리와 느낌이 이상하고 그 뾰족한 도구들을 보는 것도 싫다. 숱하게 겪었던 치료와 진료도 지겨웠고 교정이 끝나면서 다시는 치과를 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환호했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치과를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날은 그 모든 불쾌감을 무릅쓰고 결연하게 치과에 갔다. 어쩌면 치과를 싫어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동안 충치라는 가능성을 애써 외면해왔던 것이 아닌지, 그래서 그 보다 더 강력한 고통을 겪고 나서야 그 가능성을 떠올린 것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치과 선생님은 한 번 입안을 스윽 보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사랑니가 다섯 조각으로 갈라져 균열이 갔습니다. 고통이 심했을 텐데 빨리 오시지.”

 

그 날 사랑니를 뽑고 집에 돌아오면서 앓던 이를 뽑는 느낌이 무엇인지 정말 확실하게 배웠다.

 

그리고 충치를 뽑자마자 머리를 바이스로 꽉 누르는 통증과 때리는 통증은 사라졌다.

 

하지만 나의 문제는 전부 사라지지 않았다. 극히 일부만 사라졌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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