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구조에 대한 개인적인 발견으로 시작되어서 신경세포에 영감을 받은 나는 큰 호기심을 가지고 책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인간의 추상적인 정신이란 결국, 인간의 구체적인 행위와 사상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이는 이항구조와 같은 어떤 추상적인 구조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에 문학, 사상 등의 책을 읽고 그러한 추상적인 구조를 추가적으로 발견하고 싶었고, 발견된 구조를 통하여 인간을 총체적으로 이해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공부들은 바로 큰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인문학 공부라는 것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공부량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암기할 것이 너무 많고 외국어 소양도 충분해야 하는데 두 가지 전부 내가 할 수 없는 종류의 행위들이었다. 결국, 깊은 수준까지 제대로 공부는 하지 못하고 교양으로 이해가능한 수준의 책만 뒤적이기를 반복하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인문학 공부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지는 못했지만 다량의 독서 경력은 생겼고 나름 인문학 쪽에 소양이 생겼다. 또, 그만큼 전공 공부를 놓아버렸기 때문에 탈출구를 고민하다가 고시를 생각했다. 안정적인 신분으로 나름 편하게 살면서 평생 독서나 연구를 하면서 살겠다는 안이한 생각이었다. 당연히, 고시는 실패했다. 암기가 안 되는 사람이 고시를 공부한다는 것이 코미디였다. 그런데 이 실패가 매우 치명적이었다.
고시 공부는 시작부터 난항이었다. 대학을 거치면서 공부하는 법을 전부 까먹은 것인지 공부라는 행위 자체가 되지 않았다. 책상 앞에 앉아있으면 잡념이 끊이질 않았다. 그래서 처음엔 인간관계를 끊었다. 친숙하게 노는 친구들이 전부 공부랑 담을 쌓고 있어서 한번 어우러질 때마다 1~2주일의 시간이 훅 날아갔기 때문에 결단을 내리고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휴대폰도 없애버렸다. 하지만 인터넷이 남아있었다. 다른 관계를 모두 끊었더니 오히려 인터넷이 삶을 좌지우지 할 정도로 비중이 높아져버렸다. 인터넷 뉴스는 매일매일 자극적인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홀로 심각하게 받아들여 밤마다 세상의 불의에 분노하고 좌절하느라 공부는 뒷전이었다. 세상에 대한 분노, 공부가 안되는 좌절감 등이 너무 고통스러울 때는, 생각을 잊게 해 줄 재미있는 영화나 게임을 찾아 인터넷을 헤매기도 했다. 결국, 내 잡념은 결국, 항상 인터넷으로 연결되었다.
공부를 하다보면 꼭, 그 동안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다른 것이 하고 싶어진다. 꼭, 시험 전날 한창 바쁠 때, 엉뚱하게도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평소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엉뚱한 이상한 책을 읽고 싶어진다. 고시 공부를 하는 기간도 내내 이런 엉뚱한 충동을 겪어야 했다. 당시, 책꽂이에 대략 10년쯤 있었던 칼릴 지브란의 우화집 《어느 광인의 이야기》가 있었다. 누군가 사와서 책꽂이에 꽂아놓은지 한참 지난 책이었고 한번도 펼쳐보지 않은 책이었다.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이 우화집이 눈에 확 들어왔고 충동적으로 그것을 펼쳐 읽었다. 그리고 “자아가 허무함을 응시”하는 이야기에 꽂혀 버렸다. 공부를 하거나 길을 걷다가도 불현듯 “자아가 허무함을 응시”하는 것을 떠올리는 것이다.
시간은 흘러가고 자신에 대한 한심함과 자괴감이 이미 강해질대로 강해졌다. 결국,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던 어느 날, 너무 많은 상상과 생각이 머릿속에 넘쳐흘러서 괴롭던 어느 날 망상을 뿌리째 잘라내고 싶다는 강력한 충동이 생겼다. 그 충동은 방법도 같이 제시했다. 그 방법이란 "허무함을 응시"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충동이다. 여튼 당시 머릿속의 생각은 망상의 연쇄작용을 따라 올라가보면 "허무함"이 있을 것이라는 이상한 확신이었다. 망상을 뿔리째 잘라내고 싶었던 것인지 망상에 휘둘린 것인지 잘 구별이 가지 않는다.
그것이 망상인지 충동인지 구분할 수는 없었다. 단지 괴로웠고, 평화가 필요했다. 모든 것의 연쇄작용을 따라 올라가서 그 망상의 근원을 보고 그것을 파괴하거나 제어하여 내면의 평화를 찾지 못하면 죽을 것 같았다. 어쩌면 "허무함"을 내면의 평화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방바닥에 책상다리로 앉아서 스스로의 망상을 따라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망상을 하나하나 인식하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인식된 망상의 원인을 찾아 그 뿌리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망상은 항상 흘러넘쳤기에 망상을 인식하는 것은 쉬웠다. 망상은 인식하면 그 망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보려고 했다. 하지만 망상을 인식하고 그 원인을 찾으려는 순간 인식된 망상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갑자기 망상이 없어지니 망상의 원인도 왜 찾아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망상을 다시 인식하려고 한다. 어라 조금 망상이 줄었다. 망상을 찾아 헤맨다. 다시 망상을 찾았다. 인식하고 그것의 원인을 궁구하려고 하는데 다시 망상도 사라지고 그 망상의 원인은 붕 떠버린다. 그리고 필름이 끊겼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음란한 망상의 한 가운데서 의식을 자각한다. 음란한 망상이라고 구태여 말한 것은 일관된 것이 아니었지만 그 모든 것의 주제가 성행위나 폭력이었기 때문이다. 이야기처럼 서사나 내러티브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온갖 야동과 폭력 영화가 머릿속에서 한꺼번에 플레이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 음란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머릿속의 영상이 어떻든 간에 거기에 투영되는 욕구가 너무 강하고 동물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무한반복이 몇 번이나 지나갔는지 알 수 없지만 멍하니 그 모든 것을 보고 들으면서 체험하다가 서서히 의식이 깨기 시작했다.
의식이 깨어나는 순간을 뭐라고 설명해야할까? 의식이 깨어나기 이전의 체험이 전부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순간에 나는 방관자, 혹은 무기력한 정보의 수용자에 가까웠다. 어떤 역겨운 내용도 의도도 그저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길가의 돌멩이처럼 무력했다. 하지만 의식이 깨어나는 순간 이 모든 것이 조금씩 옅어졌다. 역겹다는 나의 느낌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의식이 있기 전에는 그저 돌멩이 마냥 있었다면 의식이 생기면서 ‘나’라는 인식이 생기고 안정감이 돌아왔다. 통제가 가능해지는 느낌과 함께 안도감이 몰려왔고, 머릿속에서 무한 재생되고 있는 음란한 망상들이 인식되고 의식이 없는 동안 그런 음란한 망상들 속에 있었다는 기억이 떠오르면서 상황 인식이 형성되었다. 동시에 노출된 스스로의 욕망으로 인한 역겨움이 같이 떠밀려 왔다. 그리고 서서히 그런 망상들이 사라지고 안정된 현실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필름이 끊긴 것을 전혀 몰랐다. 그저 지독하게 낯설고 강력한 상상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자신을 보았을 뿐이다. 앞서 망상을 인식하고 그 원인을 파악하려는 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전혀 기억할 수 없었다. 의식이 깨어나고 한참 후에 기억을 되짚어 보고서야 망상을 인식하고 그 원인을 파악하려는 행위가 갑자기 종료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고 그 다음은 아무런 기억이 없다. 눈을 떠보니 지독하게 낯설고 날것의 강력한 망상의 와중이었을 뿐이다. 즉, 단기적 기억상실에 가까운 단절이 일어난 것이다.
망상의 근원으로 올라가 잡념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것을 제거해보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수행했고, 그 결과는 실패였다. 그래서 다시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항상 다락에 가까운 단기적 기억상실을 겪고 온갖 망상 속에서 깨어날 뿐이었다. 그리고 망상을 끊어보겠다는 의도와는 달리 망상은 오히려 늘어났고 그 힘도 더 강해졌다. 즉, 예전에는 잡념 수준으로 귀찮은 것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거부하기 어려운 욕구가 되어 끊임없는 갈증을 선사했다.
원래, 잡념이 많아서 공부가 안 되는 상황에서 출발했다. 이때만 해도 모든 것은 어느 정도 건강했었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이 책상 앞에 억지로 앉아서 지겨움에 몸을 비비꼬면서 망상에 빠지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내가 망상의 근원을 파헤쳐보겠다고 앉아서 머릿속을 응시하면서 이 모든 것은 확연하게 병적인 것으로 악화되었다. 잡념에 불과했던 것들이 이제는 충동으로 바뀌어서 나를 제어하기 시작했다. 매순간 모든 욕구가 나를 파괴시킬 정도로 강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성적인 욕구가 너무 강해져 낮이고 밤이고 잠을 잘 수 없었고, 감당하기 어려운 성욕이 가라앉기를 바라면서 하루 종일 야동만 보고 있어야만 했다. 지쳐 쓰러질 지경이 되어서도 머릿속에서 망상이 떠나질 않았다. 식욕도 너무 강해져서 고칼로리 음식 위주로 먹고 끊임없이 먹었다. 단맛이 역겹게 느껴지고 속이 물려도 식욕이 통제가 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각종 망상이 스테레오로 각성되어서 잠은 지쳐 쓰러질 지경이 되어야만 겨우 잠깐 눈을 붙일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이상한 통증 때문에 수면 부족이 되기 일쑤였다. 담배는 줄담배로 피었고, 야동을 벗어나도 갈 수 있었던 곳은 만화방 정도였다. 무협지와 판타지의 단순한 대리 욕구로 머리를 도배해야만 가까스로 조금이나마 평화를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씩 내가 미쳐가고 있구나 하는 자각이 몰려왔지만 방법이 없었다. 충동이 들 때마다 나는 너무나 무력하게 충동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범죄는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것은 이성적인 통제와 절제가 아니었다. 그저 그런 충동이 잘 일어나지 않았고, 범죄적인 충동이 있을 때마다 또 다른 충동인 공포가 나타나서 더 강한 충동에 따랐을 뿐이다. 즉, 타인을 상하게 하는 것에 대한 공포와 벌을 받고 싶지 않다는 공포가 있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고시 공부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것 그대로 좌절이 되어서 나를 옭아매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매일매일 스스로에 대한 역겨움과 혐오감, 탐욕과 색욕, 식욕, 좌절, 공포 속에서 미친놈처럼 펄떡이다가 어느 순간 내가 진짜로 미친 것일지 모른다는 점을 깨달았다. 파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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