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노력 끝에 두통과 체증이 사라지면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불면증이 갑자기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동안 불면증은 그저 이빨이 아파서, 두통과 체증 때문에, 생활습관이 좋지 않아 생겨났다고 생각했었지만 모든 것들을 제거하고 나니 불면증은 그러한 증세로 인하여 부차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증상이었다.

 

두통과 체증을 극복했다고 생각한 그 순간부터 삶의 질은 급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세상이 맑고 투명하게 보여 사물 하나하나의 정묘한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고 세상은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천상 세계에 사는 것 같은 이러한 느낌은 대략 2주일이 지나면서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다시 일상이 되었다. 물론, 이전에 비하면 너무나 소중하고 벅찬 일상이지만 일상은 일상이다. 어느새 통증 없는 삶에 익숙해지고 늘어난 시간을 이용하여 이것저것 하면서 다시 시간이 부족해지는 일상이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이러한 일상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면증이 왔다. 이제껏 불면증의 형태는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었다. 치통을 해결하고 악몽을 퇴치한 이후 불면은 많이 완화되어서 잠에 드는 것은 어려워도 일단 자면 피로를 풀 수 있는 만큼은 잘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일이 있고 약속이 있으면 잠을 자지 못하는 것 때문에 밤을 새고 약속에 나가는 등 피로한 삶이긴 했지만 어찌어찌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찾아온 불면증은 그렇지 않았다. 잠은 잘 수 있지만 한 시간이나 두 시간 만에 깨어나고 그 다음 잠을 잘 수 없었다. 그 동안 실천해온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강렬한 고통도 없고, 악몽도 없지만 절대적인 수면 부족은 나를 서서히 말려버리기 시작했다.

 

불면으로 인한 고통은 이런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잠은 오지 않고 그렇다고 생산적이거나 필요한 일을 할 정신적 에너지는 없다더 슬픈 것은 영화나 드라마 게임 등을 즐길 정신적 힘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그저 서서히 말라붙고 모든 것이 우울해진다서서히 고통과 우울함에 잠식된다. 그리고 잠을 희구하게 된다. 불면의 고통을 제대로 묘사하고 싶지만 그냥 힘들고 정신이 하나도 없고, 삶이 힘들다 정도로 밖에 묘사하지 못할 것이다. 겪어보지 않으면 뭐라 설명하기 어렵다. 물론, 개인적으로 두통과 체증이 더 괴롭다고 생각하지만 어떠한 고통이라도 그 순간을 지배하고 있는 고통이 가장 힘들고 괴로운 것이다.

 

자려고 시도할 때마다 찾아오는 다양한 증상은 그 와중에 사람을 더 미치게 했다. 자려고 이불을 덮으면 더워서 몸에서 땀이 나는 끈적끈적한 불쾌한 느낌이 찾아오고, 이불을 벗으면 춥고, 다리에는 하지불안증후군(Restless legs syndrome)이 찾아오고 잡념은 들끓어 올랐다. 이런 증상들은 평소에도 항상 느끼던 증상들이지만 갑자기 유난히 강렬해져서 평정심을 흔들었다. 강렬한 고통도 아니고 마치 약을 올리는 것 같은 불쾌한 감각으로 인한 짜증은 대상 없는 분노를 유발시키면서 나를 괴롭혔다.

 

그런데 이 모든 지옥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갑작스럽게 끝났다. 계기는 불면증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 리처드 와이즈먼의 나이트 스쿨을 읽은 것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평소 리처드 와이즈먼이 글을 가볍게 잘 쓴다고 생각했고 책에 최상의 수면을 위한 모든 것을 개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서 읽어보았는데 그 동안 살면서 수면과 관련된 대부분의 궁금증이 대부분 설명되면서 이해되었고 생각 외로 엄청나게 몰입하여 읽게 되었다. 그런데 직후 바로 불면증이 나았다.

 

나이트 스쿨에서는 최고의 잠을 자는 방법을 소개해주고 있었지만 나는 그 어떤 방법을 실천하기도 전에 그냥 잠을 잘 자기 시작했다. 내 스스로도 어안이 벙벙했다. 아직도 정말 나은 건가 싶다. 게다가 불면증만 나은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저녁 7시부터 정신없이 졸려오기 시작하더니 새벽 4~5시쯤에 깨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년간 바꾸려고 그렇게 노력했고 결국 바꾸지 못했던 25년간의 올빼미 생활이 5일 만에 청산되고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드는 보통 사람들의 수면패턴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평소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나타나던 헛배가 부르거나 정신이 맑지 않다든가 하는 모든 부작용도 흔적없이 사라져 버렸다.

 

수면 개인사를 쓰고 있는 이유는 불면증과 올빼미 생활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이 기적 같은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파악해보려고 쓰는 것이다. 수면클리닉을 다닌 것도 아니고 나이트 스쿨에서 제시하고 있는 방법을 실천한 것도 아닌데 불가능했던 일이 갑자기 가능해지면서 원인 모를 변화에 선후를 따져보기 위하여 수면과 관련된 개인적인 경험을 상기하며 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몇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악몽을 해소하고 난 후에도 여전히 낮과 밤이 바뀌고 종종 밤늦도록 잠이 들지 못하는 나날이지만 체증과 두통의 극복이라는 문제가 더욱 중요했기 때문에 수면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속이 뒤집어지고 머리가 아파오면 그 날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그저 통증이 가라앉을 때까지 5~6시간 동안 걷는 것만이 내가 해볼 수 있는 전부였다. 체증과 두통은 항상 새벽 3~4시가 되어야 가라앉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시간까지 잠을 잘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잠을 자면서 발생하는 통증, 악몽 등의 문제들이 해결된 이후로는 수면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체증이 없고 머리가 지끈거리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매우 소중했기 때문에 맑은 정신에 밤에 잠을 못자면 감사한 마음으로 밤새 이것저것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수면에 관련된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상 생활을 어렵게 하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수면 습관은 밤 3~5시 사이에 잠들어서 정오에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일이 있을 경우에는 일찍 일어나기는 하지만 항상 정신적인 불만족감과 집중력 저하가 있고 헛배가 부르며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 밤에 일찍 자서 충분히 수면을 취하고 일찍 일어나도 반드시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 그래서 항상 정오에 일어나게끔 알람을 맞췄다. 특이한 것은 정오를 넘어서 일어나면 반드시 체증과 두통이 두 배로 밀려온다는 것이었다. 특히, 오후 3~4시에 낮잠을 자거나 그 시간까지 자는 경우가 발생하면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속이 뒤집어지고 오한과 두통에 시달리게 된다. , 잠을 과도하게 자면 하루가 고통스럽고 특정 시간대에 자도 큰 통증과 두통이 밀려오는 현상이 있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서 아무리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자는 삶으로 변화해보려 했지만 결코, 내 몸은 그러한 상황에 맞게 변형되지 않았다. 낮 동안은 깨어 있지만 졸린 상황이니 대부분의 일을 하지 못하고 그냥 커피 마시고 담배 피고 웹서핑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밤이 되어서야 일을 하니 자는 시간은 점점 부족해지고 자기 시간을 전혀 가질 수 없지만 일은 거의 못하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이런 식이니 하루를 쓰는 효율이 극히 나빴다. 이런 상황에 대한 인식 때문에 어떻게든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자는 리듬을 갖추어 보려고 했지만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겪는 증상들은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일의 효율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프리랜서로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길고 긴 시간 동안, 탐색과 연구, 노력 끝에 올해 초 체증과 두통을 완전히 극복하게 되었다. 참 오랜 기간의 노력이 있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명확하게 말하기는 너무 어렵다. 시도해본 것도 많고 그로 인하여 점진적으로 개선된 것도 많았기 때문이다. 심리적이고 육체적인 문제였고 그러한 문제에 대하여 충분히 개선을 시도한 결과 모든 것이 무르익어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러한 시도들은 나의 삶의 중추를 세우기 위한 시도였고 결국 그 중추가 똑바로 서기 시작했다. 이것을 뭐라고 해야할까? 이제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중 수신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느낌이었다.

 

이제 상황은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두통과 체증이 사라지면서 일주일의 대부분의 시간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삶은 의욕적으로 변했고 변화와 발전에 대한 욕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매일매일이 너무 말끔하고 개운하게 느껴진다. 조금만 집중해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두통과 체증이 와서 모든 것을 집어던지고 걷다가 쉬다가 하던 과거에는 하지 못했던 모든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마지막 장애가 내 앞을 가로막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바로 불면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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