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ki로 문장 암기하기 3 아는 것이 없어서 일단 통째로 외운 이야기


 Anki로 문장 암기하기 2에서 문장 암기의 장단점과 현재의 생각을 이야기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이제는 문장 암기하기를 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시작 해보자. 


 Anki를 통해 암기가 가능해지자 동양학을 외우기 시작했다. 십여년 전부터 동양의 사고체계를 나름 분석해보고 싶다는 열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 어떤 지혜가 있는지,  어떤 인간의 정신적 구조를 보여줄지 궁금했다. 특히, 사람이 이중-구조로 작동한다는 나의 생각과 중국의 음양사상과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으로 비교해보고 싶었다. 


 십수년 전부터 동양학에 관한 책을 곁눈질해왔지만 곁눈질은 곁눈질일 뿐이었다. 그 내부로 파고들 방법을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주제들은 일관되지 않거나, 혹은 너무 총체적이고 문학적이어서 책을 읽다보면 막연한 동양적 느낌만 남을 뿐이었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동양학을 공부하는 방법은 일암기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추상적인 사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의학이나 명리학 같은 구체적인 술기들 위주로 외워 익혀서 현실에서 끊임없이 사용해보아야만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잠정적인 결론에 도달했었다. 평생, 암기를 거부해왔던 나에게는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Anki를 만나면서 암기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자신감이 붙으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유도 모른채 닥치고 외워야 하는 동양학이 만만해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명리학, 한의학, 풍수, 병법, 동북아의 역사와 지리, 언어, 과학기술 모두에 음양오행이라는 형이상학적인 이론을 기반으로 전개하고 있다. 결국, 명리학이든 한의학이든 하나만 제대로 익히면 그 음양오행이라는 틀의 변주를 통하여 나머지 풍수, 병법, 동양 과학 등을 모두 쉽게 익힐 수 있다는 이야기다. 너무 효율적이다. 그리고 6~70세 이후에는 배운 것으로 용돈벌이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노후에도 좋을 것 같았다. 동양학 공부에 확 꽃혀버린 나는 명리학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좋은 Anki 카드를 만들려면 열심히 책을 읽고 요약 정리하여 그에 맞추어 노트와 카드를 만들면 된다. 하지만 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때라면 그런 방법은 완전히 무의미해진다.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명리학 공부가 그랬다. 일반적인 교과서처럼 이해를 하나하나 쌓아올려 체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원인도 이유도 알 수 없는 수많은 해석이 나오고 가끔은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은 해석이 나온다. 뭔가 이치를 제시하는 책들은 대부분 주역과 하도낙서를 언급하지만 제시된 근거와 이치들이 어째서 이런 결론으로 이어지는지 알 수가 없거나 설득력이 전혀 없다. 걸핏하면 ‘심오’하고 ‘오묘한’ 이치들이다. 어떤 말들은 서로 모순되고 이랬다저랬다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책을 요약하고 간략하게 정리하여 Anki로 카드를 만들 수 없다.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이런 상황에서 책을 덮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이해가 어려우면 그냥 책을 통째로 외우면 무언가 이해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되면 빈칸 만들기로 카드를 만들었다. 문장을 통째로 Anki에 집어넣고 빈칸을 만들어 저장한 것이다.  문장 암기가 처음이고 내용도 너무 어려워 보여서 똑같은 카드를 수십개씩 과잉으로 만들어서 반복해서 암기했다. 이해가 어려우니 그냥 이해를 포기하고 무턱대고 반복 숙련으로 암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문장을 통으로 암기하다 보니 그냥 책으로 읽었을 때는 전혀 이해되지 않던 문장들이 하나둘씩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너무 당연한 현상이다. 책을 통째로 외우고 있으니 단순히 읽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앞뒤로 문장을 다 대조하고 머릿속에 담아둔 상태에서 다른 문장을 외우고 있으니 잘 이해가 안 되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할 것이다. 


 오해하지 말자. 이해가 되었다고 명리학 책에서 없던 근거를 깨닫거나 무언가 심오한 이치를 깨달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 외우고 나서는 그 책이 믿을 수 없는 엉터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처음엔 한두 가지씩 미세한 흠들이 보이더니 뒤로 갈수록 중구난방에 오타와 비문이 많아졌고, 스스로 한 말을 뒤집고 포장하는 것이 전부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마지막 한 챕터를 남겨두고 더 이상 책을 외우지 않게 되었다.


 그럼 무엇을 이해하게 되었나? 매우 많아서 한 가지로 말하긴 어렵다. 지금부터는 문장으로 외운 경험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설명해보고 싶다.


 우선, 문장은 책에 쓰여진 그대로 외워지지 않는다. 문장에 비문이 있거나 오타가 있으면 외우다가 강력한 거부감이 든다. 때론, 글의 구성이나 리듬이 이상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문장을 외우는 과정은 첫번째로 문장이 말하는 바를 문장이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이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수정이나 파악 없이 억지로 외우려고 하면 당일은 외워도 다음에 카드가 나왔을 때 자주 혼동하게 된다. 놀랍게도 잘못되거나 어색한 문장을 암기하면 내 머릿속은 그 문장을 기피하고 싫어한다. 그렇다고 내가 평소에 오타에 민감하거나 문법을 따지는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문장 암기를 하면 내 머릿속은 노이로제에 걸린 것처럼 오타와 문법을 따진다.


 문장을 적절히 파악하여 이를 수정하면 가장 먼저 입이 반응한다. "입에 착 달락붙는다."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그대로 들어맞는다. 그리고 그 순간 외운 문장을 "알겠다"라는 감각이 찾아온다. 이 감각이 정말 신기했는데, 잘 모르는 내용임에도 정말로 "내가 그것을 알고 이해하고 있다."라는 감각이었다.


 "안다"라는 감각은 왜 생기는 것일까? 곰곰이 따져보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문장이 입에 착 달라붙는 순간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문장이 전개되고 "안다"라는 감각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고양감과 함께 지식이 손에 잡히듯 느껴진다. 그리고 머릿속이 간질간질해지면서 무언가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는 느낌을 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감각이 왜 찾아오는지 고민한 끝에 생각해낸 가설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신경체계는 양방향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기쁜 일이 있어도 웃지만, 역으로 계속 웃는 표정을 짓고 있으면 뇌가 기쁜 일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상황을 기쁘게 해석하고 기쁜 기억들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울상을 하고 있으면 뇌가 슬픈 일이 있다고 판단하고 상황을 슬프게 해석한다. 우리가 입에 착 달라붙는 문장을 수차례 반복하면서 외울 때, 뇌는 그 문장을 스스로 말한 것으로 판단한다. 즉, 나 자신이 생각해서 말한 것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머릿속을 뒤져 그 이유를 만들어낸다. 적절한 이유가 될 수 있는 기억을 떠올리고, 활발하게 신경세포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아마도 신경세포들이 연결될 때의 느낌이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는 느낌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이 "안다"라는 감각에 유효기간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내용을 전하는 문장을 외웠을 때, 가끔씩 머릿속이 간질간질하면서 어떤 중요한 것을 알듯말듯한 감각은 익숙하게 해당 문장을 외우게 된 순간 사라진다. 이 때부터는 그저 문장이 기계적으로 외워질 뿐 고양감과 성취감, 새로운 통찰로 연결되는 영감이 사라져 버린다. 이미 관련 신경들의 연합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변화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가설에 따르면 문장암기는 나의 내면에 저자를 재형성하는 과정에 가깝다.  즉, 내 깜냥 안에서 내 스스로 저자가 된다. 그러니 저자가 무슨 생각으로 글을 썼는지 손에 잡힐 듯이 이해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책을 통째로 외운다면 거의 책을 쓴 저자를 통째로 형성시키는 셈이다. 물론, 중간중간 납득할 수 없는 내용들과 중언부언하는 내용들,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들 때문에 설득력을 잃고 말았지만 그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모를 수 없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효과들은 암기할 내용이 복잡한 문장의 형태를 띨 수록 잘 드러난다. 복잡한 문장들일 수록 머리가 할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반면, 단순한 지식의 대응인 "소년-boy"  같은 단순 암기는 "안다"는 느낌이나 "새로운 통찰력으로 이어지는 깊은 고양감"을 주는 경우는 잘 없다. 


 이런 문장암기 덕분에 엉망진창의 명리학 책을 외우면서, 필요한 지식은 흡수하고 냉정하게 그 책을 폐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깊은 독서 경험은 게걸스럽게 책을 외우는 시작이 되었다. 새로운 지식을 문장형태로 외웠을 때, 맛보는 "안다"라는 감각과 "새로운 통찰로 이어지는 영감"이 쾌락에 가까운 성취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2년 정도 지나니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해당 방식을 고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Anki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2015년 말쯤이었다. 

    

오래전 어빙하우스의 망각곡선에 대한 글을 읽었을 때, 망각곡선에 따라 공부를 하면 정말 효율적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그 공부할 지식의 스케줄 관리가 얼마나 복잡해질지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2010년쯤에이 되어서는 IT가 발달된 지금이라면 컴퓨터를 사용하여 그런 복잡한 관리를 쉽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망각곡선을 활용한 공부 앱 같은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찾아보았지만 쓸만한 걸 찾지 못했다. 그 다음은 예전에 영어단어를 종이카드에 적어서 외우던 것을 떠올랐다. 이렇게 간단한 방식의 앱이 없을리 없다고 생각하고 앱이나 프로그램 등을 종종 찾아보았지만 역시 찾지 못하다가 드디어 2015년에 Anki와 마주치게 된 것이다. Anki의 개발 내역을  확인해보니 2010년쯤 Anki는 이미 나왔던 것 같은데 당시에는 인연이 아니었는지 찾지 못했다.

   

2015년에는 새로운 행위라는 것을 시도하고 있었다. 오랜 기간 스스로 만든 한계나 열등감을 극복하려고 시작한 개인적인 프로젝트였다. 거창한 목표는 아니었고 그저 별거 아닌 일임에도 어째서인지 평생 피해다니고, 싫어하고, 스스로 할 수 없다고 믿고 그 관련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하던 것들을 마주쳐 누구나 이룰 수 있는 간단한 목표를 수행함으로써 스스로 만든 한계를 넘어보련느 의도에 계획한 행동이었다. 가령, 훌라후프는 초등학교에 한 번 돌려봤지만 실패하고 그 뒤로는 "나는 훌라후프를 돌리지 못한다."라고 결론이 난 상태로 평생을 살아왔다. 초등학교 시절 건성으로 10분 정도 시도하고 만들어진 스스로의 한계였다. 이런 한계는 그저 일주일에 2~3시간 정도 투자해서 어느 정도 훌라후프를 돌릴 수 있게 되면 간단히 해소되는 문제였다. 실제로 시도해보니 어린 시절과는 달리 너무나 수월하게 훌라후프를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내적인 자신감이 차오르는게 느껴졌다. 그 뒤로는 운동 중에서는 턱걸이와 윗몸일으키기를 못한다고 생각했고 하기 싫은 운동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턱걸이 1번 하기와 윗몸일으키기를 매일 50번씩 하기에 도전했다. 이 간단한 도전 역시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그 동안 스스로에게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혹은 하기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마주치면서 하나씩 날려버릴 때마다 오랫동안 어딘가 꽉 막혀있던 것들을 해소한 듯한 시원한 느낌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래서 새로운 행위의 범위를 확장시켜서 암기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평생 암기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해왔다. 처음에는 주입식 교육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지만 점점 심해져서 대학 때는 암기라는 행위 자체를 할 수 없는 식으로 발전했고, 어떤 과목이든 암기가 필요한 과목을 공부할 때마다 토할 것 같은 구역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래서 암기관련 과목은 항상 학점을 D로 깔았다.

    

아무리 새로운 행위를 시도한다고 해도 암기라는 정신적인 중노동을 하기 싫은 마음이 너무 크고, 나이 들어서 갑자기 한두가지 상식을 암기해서 무엇에 쓰겠는가 하는 회의감이 강해서 선뜻 시도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가 어떤 변화의 시기였던 것인지  갑자기 어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이 다시 떠오르면서 암기할 지식을 카드식으로 어빙하우스의 망각곡선 공식을 활용하여 관리할 수 있는 형태의 프로그램이 있는지 찾아보게 되었고 이번에는 바로 Anki를 찾을 수 있었다. 오랜 기간 틈틈이 찾았던 프로그램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또, 당시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챙김'이라는 정신 작용이 올바른 앎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유지하고 그 기억에 맞춰 스스로를 끊임없이 단속한다는 점에서 '암기'하는 정신 작용과 일부분 비슷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암기하고 암기한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기억을 유지하고 그래서 암기한 것을 활용하여 항상 올바르게 쓰라는 말로 해석하면 완전히는 아니지만 얼추 맞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암기라는 것을 해본지 20년 가까이 너무 오래되어서 그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다시 실험이 필요했다. 이런 저런 호기심과  새로운 시도라는 명분이 겹쳐지면서 고리타분한 노동으로써 암기가 아니라 프로그램은 과연 효과적일까? 또, 암기라는 것이 불교식 "마음챙김"과 비슷한 것일까? 하는 호기심과 연구 주제로 대체되면서 거부감이 사라진 것이다. 

      

새로운 행위의 시도라는 측면에 맞춰서 원소 주기율표 암기하기로 했다. 화학이라는 과목은 외워야 할 것들이 무척 많았다. 당시, 과학에 대한 나의 정의는 모든 것을 아우르고 하나로 꿰뚫는 아름다운 공식을 만들고 일반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화학은 물리와 달리 무언가 체계적이지 않고 책을 달달 외워야 하는 아름답지 못한 과목처럼 느꼈다. 그래서 화학은 싫은 과목이었고 화학과 많은 관련이 있는 전공임에도 불구하고 화학 쪽을 외면해왔었다. 화학에 대한 그런 선입견은 주기율표로 대표되는 각종 물성들을 암기해야 하는 화학이 너무 싫다는, 즉, 암기하는 행위에 대한 약간은 편집증적인 거부감 때문이었다. 따라서 주기율표를 외운다는 것은 암기에 대한 편집증적인 거부감으로 스스로 만들어낸 화학에 대한 묵은 선입견과 화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당시 Anki 사용법을 몰라서 간단하게 Basic 카드의 앞면과 뒷면으로만 다음과 같이 카드를 만들어서 주기율표를 외우기 시작했다. 




엉성한 솜씨로 카드를 힘들게 하나하나 만들었지만 사용은 굉장히 쉬웠다. 지하철이나 화장실에서 짬짬이 카드를 확인하면서 하나하나 외우다 보니 주기율표는 일주일 내에 외울 수 있었다. 주기율표를 외운 경험은 그야말로 신선하고 혁명적이었다.

     

일단, 큰 거부감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좋았다. 이것은 아마 암기할 분량을 카드 단위로 분할해서 암기하기 때문에 일상 생활이나 직업에 부담이 가지 않는 수준에서 또, 스스로의 암기 능력을 벗어난 수준으로 암기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항상, 암기하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지식을 통째로 암기하려고 노력해야만 했었다. 만일, 중학교 시절에 주기율표를 암기하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주기율표를 더듬거리면서 전체를 암기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거의 하루 종일 암기를 해야 했을테고 암기를 하다가 중간에 친구들과 놀러가거나 새로운 일을 하는 상황이 되면 암기했던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타이밍을 놓치고 지나가면 다시 전체 암기를 시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Anki는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냥 시간 되는 대로 카드를 하나씩 넘기다 보면 그 자리에서 전부 외우는 것에 비해선 조금 늦긴 하지만 착실하고 확실하게 하지만 부드럽게 암기가 진행되는 것이다. 

     

간만에 해보는 암기라는 행위가 무척 낯설고 신기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암기를 할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이 외우고 암기하는 정신 작용이 일반적인 정신작용하고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어쩌면 불교식 "마음챙김" 효과를 떠올리면서 암기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척 강력한 집중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암기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보고 읽는 정신적인 행위의 밀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짜투리 시간에 카드 한 장을 암기하거나 복습할 때마다 매순간 자동적으로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이 집중에는 확실하게 에너지가 소모된다. Anki로 암기를 시작하면서 정신적인 에너지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암기를 할 때마다 고갈된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당시 밤마다 생각이 많아서 불면증이 있었는데, 암기로 정신적인 에너지가 고갈되면 참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이렇게 에너지가 소모되지만 암기를 하다 보니 점점 암기할 수 있는 카드의 양이 늘어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거의 하루에 카드 한장을 외우는 수준으로 시작했다. 잊어먹을까봐 카드 한장을 거의 하루 종일 머릿속으로 반복하면서 기억에 새길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카드는 보통 4~50장 정도 외울 수 있게 되었고, 복습은 거의 하루종일 반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카드가 50장을 넘어가면 거의 중노동 수준으로 정신이 지쳐버린다. 확실히 정신의 근육이 효율적으로 단련이 되는 것이다. 

     

또, 암기를 하는 행위에는 필연적으로 집중력을 사용하게 된다. 머리에 기억을 주입하고 그 기억을 다시 꺼내는 행위는 모두 매우 집중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암기를 하기 위해서 카드를 보면 자동적으로 집중력이 형성된다. 그리고 암기 능력이 발전하면서 집중력의 유지가 쉬어졌다. 덕분에 평소에는 산만했던 정신들이 암기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면서 잘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지키는 것을 느껴볼 수 있었다. 집중력이 좋아지니 업무의 효율도 개선되기 시작하면서 삶의 무게도 조금 줄어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머릿속에 지식을 기억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니 머리가 해당 지식을 장기기억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인지 저절로 지식을 다른 지식과 연계시킨다. 과거에 익혔던 지식과 흘려들었던 여러 정보들, 과거의 사건들이 연계되면서 단순히 암기하려고 했던 내용들이 구슬이 꿰어지듯이 새로운 지혜로 엮이게 된다. 그러나 보니 과거에 몰랐던 일들이 갑자기 알아지는 재미가 꽤나 쏠쏠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동안 해왔던 작업이 수치로 제시되면서 스스로 암기하고 공부한 양을 확인할 수 있어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는 유형의 성취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매일매일 Anki의 과제는 그날 하루의 과제였고, 그 과제를 끝낼 때마다 하루가 결코 아무것도 없이 무의미하게 지나간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최소한 공부한 Anki의 기록만큼은 발전한 것이다. 공부해야할 카드의 숫자가 하나하나 줄 때마다 미약하지만 성취감이 있었고, 대략 30분이면 모든 공부를 할 수 있었으므로 부담도 없었다. 그런데 머릿속에는 평생 가져보지 못했던 지식들이 정착되어서 확실한 변화가 생긴 것이다. 주기율표를 아는 나와 주기율표를 모르는 나는 전혀 다른 무엇이었다. 손으로 사물을 보고 만질 때마다 이것이 어떤 원소인 것인지, 원소들이 어떻게 엮이면 이런 질감이나 경도를 가지는지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과거에 억지로 공부했던 화학도 같이 살아나서 이것저것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려준다. 원소들이 결합하고 분리하는 것이 마치 사람들이 연애하고 결혼하고 이혼하는 것과 비슷했다. 일관되지 못하고 잘 정리되지 못한 화학의 억지스러움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주기율표가 머릿속에 정착되고 암기를 시작하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구체적인 현상으로부터 가장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이론으로 이를 설명하기 윟서 시도된 수많은 지혜들의 노고로 보이기 시작했다. 허무하게 무언가 재미있는 글이나 게임을 찾아서 웹 서핑을 하던 때는 가져보지 못한 충만감이었고 새로운 변화는 스스로가 좋아지게 되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제공해주었다. 

     

또, 정신적인 에너지가 늘어나고, 집중력이 개선되며 자신이 하는 행위에 대한 만족감으로 성취감이 강화되니 자존감이 강화되었고, 과거에는 전문서적이나 전공서적 등은 피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그러한 책들을 볼 때마다 어서 빨리 전부 지식으로 소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이제 삶은 너무나 즐겁고 재미나게 되었다. 

     

Anki로 암기하는 새로운 시도는 이렇게 혁명적인 변화를 나에게 안겨주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부가 재미있다는 것을 깨닫고  두려움 없이 공부를 통해서 매일매일 새로워지고 있는 즐거움과 성취감을 누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공부하고 싶은 내용은 너무 많은데 시간이 부족해서 문제이다.  마치, PC방에 디아블로2가 처음 나왔을 때 하루가 멀다하고 PC방에서 살면서 게임 삼매경에 빠졌듯이 이제는 공부에 빠지고 있다. 이런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해본 적도 없고 이렇게 살고 싶다고 시도한 것도 아닌데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아마 이것이 2015년에 얻은 최고의 성과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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