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불안 증후군을 치료하기에 앞서 시도해볼 것 두 가지


 늦은 밤, 눈이 피로로 감기고, 몸은 한없이 늘어져, 침대에 눕는다. 한시라도 곯아떨어질 상황이지만 아쉽게도 불길한 신호가 온다. 그것은 이상한 불편함이다. 자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다리에서 올라오는 불편한 감각은 꿀잠을 허용하지 않는다.


 눕기만 하면 하체에서 발생하는 이 불편한 감각은 초등학교 때부터 간혹 나타났다가 2005년부터는 거의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2017년에는 불편한 감각이 너무 강해져서 침대에 누울 때마다 짜증과 분노를 유발하게 되었다.


 이 불편한 감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통은 아니다. 찌르는 것 같은 느낌도 없고, 욱신거리지도 않는다. 그저 불편하기만 하다. 답답함에 가깝다. 좀이 쑤시는 느낌이고 나가서 뛰어야할 것 같다. 그렇지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운동을 하면 조금 시원해지고 답답함이 풀리는 것 같다가도 다시 누우면 또 그 답답한 불편한 감각이 올라온다. 이번엔 다른 부위다. 


 주먹으로 불편한 감각이 있는 부위를 치면, 치는 순간은 시원한 느낌이 들지만 바로 다시 불편한 감각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그저 잠깐의 시원함을 위하여 불편한 부위를 밤새 두드리기 일쑤다. 그러다 피곤함과 절망과 울분에 북받쳐 해당 부위를 멍이 들 정도로 심하게 때린다. 차라리 그 부위를 때려 부수고 싶다. 하지만 불편한 감각은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등 이내 다른 부위로 이동해서 다시 그 존재감을 강렬하게 어필한다. 


 이런 증세를 병원에서 호소해도 의사들은 속시원하게 병명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에는 ‘성장통’이므로 참으라고 들었다. 또, 나이를 먹고 가니 스트레스를 줄이고, 담배를 끊고, 술을 마시지 말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증세를 설명하는 단어를 인터넷을 뒤져 찾아내었다. 그것이 ‘하지불안 증후군’이다. 알고 보니 그 동안 처방이 없다가 그 시기 즈음에 새로운 병명이 등록된 것이었다.


 하지불안 증후군은 증후군으로 즉, 증세를 알 뿐, 그 원인을 명확하게 찾아내지 못한 증세들의 무리다. 그래서 명확한 치료법이 없다. 의학 관련 내용을 찾아서 해당 처방을 찾아보니, 의사들의 해법은 불편한 감각을 줄여주는 약이었다. 도파민제, 항경련제, 아편계 약물 등이 거론되어 있었고 꽤 오랜 기간 먹어야했다. 그리고 약물의 목적은 완치가 아니라 불편한 감각을 줄여주는 것 정도였다. 재수가 없으면 평생을 먹어야 할지도 몰랐다. 게다가 진료하는 시간과 진료비 그리고 약값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차라리 혼자 방법을 찾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에서 밀려오는 답답함과 짜증으로 다리를 부술 듯이 때리다가 참지 못하고 인터넷을 뒤졌다. 마침, 철분의 결핍으로 하지불안 증후군이 생기는 사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때는 피로, 불면, 다리의 불편한 감각으로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철분 결핍에 전해질을 떠올렸고, 전해질이므로 스포츠 음료를 떠올렸다. 아님 말고, 밑져봐야 본전이며, 어차피 잠들기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편의점에 나가 게토레이, 포카리 스웨트 같은 스포츠 음료를 마셨다. 그리고 즉시, 모든 불편한 감각이 사라지는 치유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 뒤로 집 냉장고에 항상 스포츠 음료를 구비해두고 매일 자기 전에 의무적으로 마셨다. 하지만 이 스포츠 음료는 효과가 있을 때도 있지만 없을 때도 많았다. 그런 날은 스포츠 음료 1리터를 마셔도 효과를 보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 이불을 덮고 자기가 불편하여 다리를 밖으로 빼고 자다가 이불을 포개서 쌓아올린 위에 다리를 올리고 잤다. 그리고 그 며칠 놀랍게도 하지불안 증후군에 시달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런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지만 어느 날 다리에서 불편한 감각이 올라왔을 때 어째서인지 다리를 올리면 나아질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대로 했더니 바로 불편한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처음엔 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워서 두 발을 죽 뻗어 포개놓은 이불 위에 올려놓았지만, 나중에는 무릎 아래에 폼롤러나 베개 같은 받쳐 넣었다. 폼롤러처럼 높고 딱딱한 것은 다음 날  무릎이 꽤 아파왔기 때문에, 베개 같이 부드럽고 적당히 낮은 것을 무릎 아래에 넣으면 하지불안 증후군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두 다리를 전부 올려놓을 필요도 없다. 그저 불편한 감각이 올라오는 다리의 무릎 아래에 아래의 사진처럼 받쳐놓기만 하면 된다. 




 무릎 아래에 베개를 받쳐놓는 것만으로도 모든 하지불안 증후군이 사라졌다. 물론, 자다보면 뒤척이기도 하고 어느새 무릎 아래에 받쳐놓은 베개를 침대밖으로 밀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잠은 잘 온다. 그리고 중간에 깨면 다시 베개를 받치고 자면 된다. 여전히 불편하고 답답한 감각을 느끼고 있지만 이 방법을 발견한 이후로 더 이상 하지불안 증후군 때문에 잠에 들지 못하는 일은 없어졌다.


 효과가 나타나는 빈도를 보면, 스포츠 음료는 1주일에 한 번 정도 효과를 보고, 무릎 아래에 베개를 받치는 것은 항상 효과가 있다.  그러면 스포츠 음료를 마실 이유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스포츠 음료로 효과를 본 적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는 내 몸에 전해질이 부족하고 어느 정도 보충되어야 한다는 신호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스포츠 음료를 마셔주고 있다.


 내 자신이 의사를 찾아가 ‘하지불안 증후군’이라는 확진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러니 어쩌면 내 증세는 ‘하지불안 증후군’이 아닐지도 모른다. 또, 내 스스로 왜 상황이 나아졌는지 이유를 모른다. 어쩌면 내가 제시한 방법이 다른 사람에게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완치를 장담하지도 않고, 그저 불편한 감각을 줄여주는 약물을 기약 없이 먹기 보다는 천원을 투자해서 스포츠 음료 1캔을 마셔보고 무릎 아래에 베개를 받쳐보면 어떨까?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을 것 같다. 


0004_웹브라우저를 열어보자.

웹브라우저는 우리가 흔히 마주치는 인터넷 익스플로어, 크롬, 사파리 등이다. 이러한 웹브라우저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주소와 검색, 그리고 앞으로 가기와 뒤로가기 정도를 사용하고 마지막으로 즐겨찾기 정도 쓰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제 HTML을 공부하려고 하니 이 웹브라우저라는 것에 대해서 흥미가 생긴다. 그래서 이번에는 웹브라우저라는 것에 대해서 몇가지 호기심을 채워보려고 한다. 


웹브라우저는 무척 간단한 쓰임새를 가지고 있지만 다양한 자료가 웹브라우저에 올라온다. 우리는 웹브라우저를 통해서 예쁘게 꾸며진 웹페이지의 글, 동영상, 음악, 사진 등등을 보고 듣고 즐긴다. 갑자기 브라우저의 다재다능함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호기심이 생겨서 이것저것 실험을 해보고 싶어졌다.


여러 HTML 관련 교재를 읽어보니 브라우저에 무엇인가를 쓰는 방법은 매우 간단했다. 


우선 메모장(Notepad)을 열고 거기에 쓰고 싶은 내용을 쓴다. 그리고 저장할 때 확장자를 .txt가 아닌 .html로 저장한다.


그래서 아래의 그림처럼 만들어서 저장해보았다.



그랬더니 이 파일의 아이콘이 웹페이지 아이콘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파일을 크롬하고 인터넷 익스플로어의 두 종류의 웹브라우저로 열어보았다. 





크롬과 인터넷 익스플로어의 웹브라우저에 Hello World! 라고 쓰여진 문장이 보인다. 


평소 URL을 보여주던 주소입력 부분에는 파일 경로가 나타난다. (URL과 파일의 경로가 어느 정도 유사한 개념인가 보다?)

 

탭 부분은 크롬에서는 파일명을 보여주고 있지만, 인터넷 익스플로어에는 파일경로가 들어간 것이 조금 다르다. 



메모장으로 확장자를 .html로 만들어서 저장하면 해당 파일이 브라우저에서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또 궁금하다. .html로 뒤이어 붙여야만 되는 것일까?


그냥 메모장에 .txt로 쓴 것도 웹브라우저가 읽을까?

 

이번에는 메모장(Notepad)Text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적어 보았다.

 



저장하면서 start002.txt 라고 저장하니 더블 클릭을 하면 메모장만 열리지 웹브라우저가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웹브라우저를 열고 거기에 start002.txt 파일을 드래그해서 집어넣으니 훌륭하게 다음과 같이 읽힌다.


(여기서 확장자라는 것은 컴퓨터에게 이 파일을 열 때 어떤 프로그램을 쓰는지 가르쳐주는 것일뿐 해당 파일의 내용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번에는 메모장에서  굵게기울임꼴 등.... 여러 가지 서식을 적용해보고 이를 웹브라우저로 읽어보았지만 웹브라우저에는 해당 서식은 전혀 적용되지 않고 그냥 위의 그림처럼 평면적인 텍스트만 보여주었다.

 

그 외에도 평소 자주 사용하는 다양한 파일을 드래그해서 웹브라우저에 넣어 보았다. 


한글2010 파일과 MS의 파워포인트, 워드 파일은 전혀 열리지 않았다.

 

사진은 바로 화면에 표시되고 음악은 바로 플레이되지만 동영상은 열리지 않았다. 

  

요약하면 이렇다.

 

웹브라우저에서는

- 메모장의 텍스트는 바로 읽지만 서식은 반영되지 않는다.

- 사진과 음악은 바로 열리고 실행된다.

- 동영상, Office, 한글 파일 등은 열리지 않는다.

 

이와 같은 몇가지 실행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는 점이 이것이다. 사진과 음악, 그리고 서식이 적용되지 않은 텍스트는 웹브라우저에서 바로바로 해당 파일을 읽어서 표시할 수 있는 형식이다. 하지만 특별한 글의 서식이나 화면 분할, 동영상 같은 것은 웹브라우저에서 쓰는 방식과 다른 워드프로세스 프로그램, 동영상 프로그램에서 쓰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웹브라우저에서 서식을 지정하고 동영상을 플레이함에 있어서 몇가지 제약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앙키로그(Ankilog)는 실습이자 실험이므로 간단하게 해당 실습을 환기할 수 있는 수준의 간단한 Anki 파일로 만들었으니 이점 참고하시고 아래의 파일을 다운받기 바랍니다. 


Anki 학습 파일 :  0004_웹브라우저를 열어보자..apkg









나는 이공계인데 수학 성적이 가장 나쁘다. 솔직히 수학으로만은 전교1등을 해도 괜찮을 정도로 공부했지만 실제 성적은 평균보다는 조금 높은 수준에 불과하다. 사실, 이것은 수학에 대한 완벽하게 잘못된 접근이고 동시에 나 개인에게는 유일하게 가능한 접근법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의 수학에 대한 접근법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당시에는 본고사라고 해서 각 대학별로 수능 외의 시험을 각 대학별로 주관식 서술형으로 보던 때라서 문제의 난이도가 엄청나게 높았다. 게다가 해당 문제를 풀어낸 과정에 대하여 일일이 서술하고 그 과정이 합리적이어야만 답안을 정확하게 작성한 것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수학문제를 풀면서 논리를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도 고민해야만 하던 시절이었다. 학력고사가 없어지고 수능과 본고사로 시험방식이 대체됨에 따라서 국어와 영어, 그리고 수학의 중요성은 훨씬 더 높아지게 되었다.

 

수능이 나온 배경의 한 축에는 주입식 위주의 교육에서 단순히 암기하여 맞추는 학력고사가 아니라 창의적 교육을 하고 암기보다는 합리적인 추론과 창의적 생각을 유도할 수 있는 방식의 시험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그렇게 나온 것이 수능이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그러한 수능의 장점에 대해서 엄청나게 홍보하면서 주입식 교육과 암기 위주의 시험을 엄청나게 비판했기에 나도 당연히 그러한 대세에 따라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수능이 학력고사보다 훨씬 유리했고 암기하는 것이 너무 싫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한 언론의 홍보에 따라서 주입식 교육을 증오하고 암기를 격렬하게 배척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냥 대세에 따라서 생각하는 수준에서 멈췄으면 이익만 보고 끝낼 수 있었는데 거기서 누구도 가지 않는 한발을 더 나아가버리면서 문제가 생겨버렸다.

 

국사나 세계사의 역사 과목이나 생물, 지리 같은 과목들은 필연적으로 암기를 할 수 밖에 없다. 일단, 암기하는 것이 공부의 전부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이야기를 만들고 생생하게 함으로써 이런 단순 암기에서 탈피하려고 하는 노력을 하지만 공부는 결국 암기의 형태로 마무리 된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수학은 나에게 결코 암기의 대상이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두 가지 요인 때문인데, 하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시계문제를 풀면서 직접 시계를 관찰하고 증명하고 풀어낸 것으로 인하여 수학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수학이라는 과목에 대한 심상도 같이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 나에게 수학은 지혜의 학문이었다. 사물을 관찰하거나 어떤 사실을 논리적으로 연역해서 이를 기반으로 증명하는 것이 내가 수학에 가진 심상이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논리적 추론과 사물에 대한 관찰이지 암기해서 문제를 푸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나에게 수학은 단순하고 기계적 반복과 정반대의 위치에 있어야 했다. 나의 이런 심상은 평소라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을 일인데, 이미 다년간의 신비주의 연구 경험을 통해서 관련 자료를 찾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몸에 붙으면서 수학에서 암기라는 행위를 축출하는 과정을 실제로 수행하게 되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수학 문제를 풀어보고 해당 문제를 풀었던 경험을 다 잊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를 원점에서 다시 푸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문제는 이렇게 저렇게 푼다는 식의 유형을 외우지 말고 해당 문제를 최대한 다각도로 살펴보고 진지하게 고찰한 후 해당 개념의 정의부터 시작해서 구축해 나가는 식으로 공부하는 것이다. 나는 이 과정을 지혜의 단련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활용하기 시작한 심상을 이용해서 개념의 정의부터 근본적으로 생각하면서 어떤 문제를 모든 방향에서 차근차근 생각하는 훈련을 통해서 실제로 정신과 뇌를 훈련하고 개발한다고 생각했다. 더 어려운 문제를 풀면 풀수록 집중력과 뇌가 개발된다는 식의 심상을 구축했기 때문에 수학문제를 정말 탐욕스럽게 풀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심상에는 해당 문제를 전혀 외울 필요가 없다는 인식도 같이 프로그램 되었다.

 

눈치 빠른 분이라면 알겠지만, 이 실험은 정말 처참한 결과를 안겨주었다. 고등학교 3학년 내내 열정적으로 수학만 공부했고, 하나의 문제를 3일 밤낮을 붙잡고 고민해서 풀기도 했지만 대학입시에서 가장 성적이 안 좋은 과목은 수학이었다. 수능과 본고사 모두 최악의 결과를 받았다. 슬프지만 가장 좋은 성적을 받은 것은 국어였다. 아마도 거기에 재능이 있었나 보다.

 

사실, 실패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신비주의 연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수학문제를 푸는 것과 관련된 책을 찾아서 읽어보기 시작했는데, 당시 스스로 골몰하던 문제에 대한 가장 밀접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었던 책은 G. 폴리아의 어떻게 문제를 풀 것인가?라는 책이었다. 이 책의 주요 논지는 수학 문제를 풀 수 있는 만능키와 같은 방법론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학문제를 잘 풀기 위해서는 문제 유형을 외우고 이를 정복하는 과정을 통해서 점차적으로 쌓아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암기와 문제유형에 대한 학습을 배제해야한다고 생각했던 나와는 정반대의 방법론인 셈이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나는 이를 이렇게 해석했다. “현재까지는 만능키와 같은 방법론이 개발되지 않았고 나중에 개발될 수는 있다. 그리고 그런 발견을 내가 해볼 수도 있다.”라는 식으로 전환해서 생각했다. 또한, 스스로 만들어낸 방법이 무협지에서 수련하듯이 정신과 뇌를 단련하는 개념에 가깝다 보니 수학문제를 통해서 해당 문제를 모든 방향에서 바라보고 근원적인 개념부터 구축해서 정신을 과하게 움직이는 훈련을 하는 것에 가깝다 보니 수학문제를 푸는 방법에 천착한 책의 내용을 어느 정도 외면해 버렸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이렇게 해서 시험을 잘 보겠다.”하는 오기도 같이 작동했으니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많이 어리석은 행태였던 것 같다.

 

그런데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망각하는 것이 가능할까? 처음에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망각이 되었다. 나중에는 똑같은 수학문제를 3분 안에 다시 봐도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냥 문제 풀이를 망각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수학문제를 망각한 것이 아니다. 그냥 해당 문제를 기본적인 개념으로 축소하는 것에 골몰하다 보니, 그냥 기본 개념만 강화된 것이고 문제 유형을 외울 생각이 없으니 그 문제 유형이라는 생각의 틀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그런 지식은 스쳐지나가 버린 것이다. 게다가 스스로 그런 문제의 유형이나 해법을 외우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하다 보니 그 쪽으로의 무의식적인 거부도 작동해서 사고의 틀도 왜곡된 것 같다.

 

당연히 이런 망각의 영향 때문에 당연히 부작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어떤 문제를 간단하게 풀다가도 5분 후에 보면 어떻게 풀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으니 다시 푼다. 그런데 이번에는 3일 밤낮을 집중해도 풀리지 않는다. 이러니 매일 매일의 컨디션에 따라서 수학문제가 쉽게 풀리기도하고 어렵게 풀리기도 한다. 그래서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시험 당일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 버리면 간단한 문제도 못풀기 일쑤였다. 그리고 망각하는 것이 무의식적 억압으로 작동한 것인지 어떤 문제를 쉽게 풀게 되면 그 문제를 다시 풀 때 그 방법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이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덕분에 문제 풀이를 많이 할수록 수학성적이 떨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나타났다. , 문제풀이를 기억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생각이 억압으로 작동하면서 자승자박의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두 번째 모험으로 인해서 얻은 것은 슬프지만 객관적으로는 부작용말고는 없다. 공부할수록 성적이 떨어지는 공부법이라니 이런 희극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되지는 않는다. 경제학적인 사고방식으로 그 시간에 제대로 된 공부를 했다면 얼마나 좋은 성적을 얻고 스스로 발전했겠는가를 따지는 기회비용을 들이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난 오히려 반대로 그러한 호기심과 열정을 꺾지 않아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호기심과 열정을 꺾었으면 당연히 게임과 친구, 만화책 등에 몰두했지 공부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시행착오가 아깝다는 식의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 연소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실패와 성공은 모두 나만의 유일한 경험이 되어주었고 스스로의 정체성이 되어주어서 내가 스스로의 비루한 삶이라도 온전히 그 삶의 주인이 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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