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같은 환상과 어울리는 방법 - 02



 전쟁 같은 환상을 피해 거실에서 숙면을 취하고 난 뒤에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 여행은 순탄했고 지하에서 본 귀신과 묘실 체험도 하나의 무용담 마냥 여행의 이야깃거리가 되었을 뿐 어떠한 불길함도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잊혀졌다.


 여행이 끝나고 밀린 일을 바쁘게 처리하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한 여름에 갑자기 등줄기에 소름이 올라왔다. 장마로 인한 습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러다가 또 소름이 돋았는데, 이번엔 다이어트 삼아 하루 단식을 하던 중이라서 배고픔에 따른 우울감이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장마로 인한 습기를 무척 싫어하는데, 거기에 다이어트로 인한 우울감이 겹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무 취약한 상황이었다. 즉, 체력이 떨어져서 사소한 자극에도 과하게 반응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점점 상황이 심각해졌다. 


 한 번은 밤에 열린 틈으로 화장실 변기 위를 보다가 뜬금없이 거기에 귀신이 앉아있구나 하는 확신이 들면서 소름이 확 끼쳤다. 그 뒤로는 항상 뒤에 무언가 따라오고 있는 느낌을 받으면서 수시로 한기를 느끼게 되었다. 


 바쁜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쫓기던 심신도 조금 쉬었는데도 기가 허한 느낌, 귀신이 끊임없이 따라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고 점점 빈번해졌다. 급기야는 불만 꺼도 그런 느낌에 사로잡히기 일쑤였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하던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우선 신체적인 문제가 있는지 살펴봤다. 의사가 아니므로 병을 진찰할 순 없고 그저 신체에 고통, 불균형, 불편한 부분이 있는지 살펴봤다. 항상 있는 증세들만 있다. 어깨의 통증, 살찐 배의 더부룩함, 골반의 뒤틀림과 밤마다 찾아오는 불편한 감각 등은 항상 그대로 존재했던 그대로 여전했다. 이 증세들은 평생의 지병으로 어차피 병원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므로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런 증세들이 충분히 괴롭지만 그렇다고 지금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요인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활력의 문제일 수 있다. 활력이 떨어지면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기가 허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기가 허해지는 느낌을 계속 받아왔기에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오랜 기간 스스로에게 실험하면서 깨달은 활력의 처방은 홍삼과 운동이다. 운동을 할 의욕과 에너지가 없는데 운동을 하면 운동을 시작하기도 어렵고 운동을 한다고 해도 활기가 도는 것이 아니라 몸이 아파오고 축나는 느낌이 든다. 이 때 잘 써먹는 것이 홍삼이다. 홍삼을 반티스푼 정도만 소량으로 먹어주면 반나절 정도는 각성이 되면서 활동적이 된다. 이렇게 활동적이 될 때, 운동을 하면 몸이 상쾌해지면서 활기를 끌어올릴 수 있게 된다. 


 홍삼을 반티스푼 정도만 먹는 것은 경험을 통하여 익힌 것이다. 홍삼은 내 체질과 잘 안 맞는다. 그래서 평상시에 정량(한 티스푼)을 먹으면 하루 종일 두통에 시달린다. 그리고 식욕이 지나치게 늘어나 과식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홍삼의 부작용에 시달리지 않는 방법은 너무 피곤하거나 힘든 상황일 때 홍삼을 먹거나, 먹고나서 바로 상당한 강도로 운동을 하는 것이다. 이 때 반티스푼 정도로 정량의 반만 먹으면 거의 부작용이 없고 상당한 활력을 얻을 수 있다. 


 기가 허한 것을 보충하고 활기를 끌어올렸지만 여전히 으스스한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심리적인 것이다. 심리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이런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기 보다는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사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이 심리적 문제가 아직은 일상생활에 영향을 줄 정도로 강력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미 다년간의 불안과 고통 속에서 심리적 문제를 다루는 방법을 어찌어찌 스스로 알아내 익혔기 때문에 먼저 스스로 구제를 시도해보기로 한다.


 처음부터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접근하지 않은 이유는 오랜 기간의 경험 때문이다. 누군가 말하기를 모든 마음의 문제는 그 원인이 대부분 몸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경험상 옳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삶을 힘들게 할 정도의 마음의 문제는 대부분 신체나 외부적인 상황에 그 원인이 있었다. 이런 문제를 명상이나 상담 등으로 해결하거나 자신의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버티면 고통을 해결할 수 없다. 가령, 혈압이 오르면 지속적으로 감정이 과잉되고 분노에 시달리기 쉽다. 이를 상담이나 명상 등의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일시적으로 분노를 완화할 수 있지만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근본 원인이 남아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치미는 분노에 결국 먹혀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혈압이 문제라는 것을 알면 간단하게 조절할 수 있다. 따라서 심리적인 문제로 보이는 것들도 우선적으로 몸에 병이 있는지 혹은 노화에 따른 증세가 아닌지 확인하고 병을 치유하거나 영양제 등으로 신체의 문제를 방어하는 것이 먼저다. 


 물론, 모든 것이 신체의 문제일 뿐 심리적인 문제는 부차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진정으로 마음 자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인식하기 어렵다. 그게 자신의 본질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만일, 누군가 조급한 성격 때문에 인생이 망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외부에서 보기에 그 사람의 문제는 조급한 성격이다. 하지만 조급한 성격을 가진 본인은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어쩔 방법이 없다. 그런 성격이 자신의 본질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치 물고기에게 물속에서 사는 것이 모든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릴 것이다. 물론, 사람은 이성적으로 사고하여 자신의 조급한 성격이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바꿀려고 시도할 때마다 그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면서 포기할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자신이 자신이 아니게 되는 참기 어려운 느낌이 치밀어 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다만, 지금의 경우 마음의 구조를 개선하는 수준의 대공사가 아니라 일시적으로 발생한 이상 현상을 바로잡는 수준이므로 마음을 돌아보는 방법을 통하여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불면증과 올빼미 생활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이 기적과 같은 일의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단순하고 명쾌한 이유가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 동안 쌓아올린 것들이 조금 많았다. 대부분 두통과 체증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지만 수면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몇 가지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한 번의 실험이 있었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최근 대두된 인지심리학과 불교의 영향력이 국제 심리학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었고, 평소 불교에 대한 호기심이 있던 터라 관련 공부를 하다가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실험을 해본 것이다. 그것은 과연 번뇌가 제거 가능한 것인가? 라는 의문이었다.

 

어떤 욕구나 생각이 우리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어찌 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욕구는 그냥 치밀어 오르는 것이고, 생각은 떠오르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적인 규범이나 윤리에 거슬림이 없다면 하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참으면서 사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이다. 어떤 생각이나 욕구가 일어났을 때 그 생각을 억제하거나 배척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는 없다. 평생을 좋지 않은 생각과 욕구를 누르면서 살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런 것 없이 편하게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한 생각과 욕구를 제거할 수 있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도박 중독자는 도박을 안하는 부작위의 행위를 끊임없이 해야만 도박을 안할 수 있고, 담배나 약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부작위의 행위를 의지라고 부른다. , 우리는 번뇌를 의지로 제어할 수는 있어도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는 할 수 없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번뇌를 해탈한다는 식으로 그러한 생각과 욕구를 완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래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에 이 말이 맞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 내가 절대로 끊지 못할 것이라고 여겨왔던 담배를 불교식으로 해탈해보는 과정을 가져보기로 해보았다. 그 결과 20년 정도 담배를 피웠고 10번 정도 담배를 끊으려고 할 때마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구걸하거나 쓰레기통을 뒤져 꽁초를 찾아본 경험이 있던 내가 담배를 완전히 끊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담배를 피고 싶은 욕구를 전혀 느끼지 않고 있다.


이 실험을 통하여 불교적 방법론이 어느 정도 유효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서 명상을 지속해왔다. 그리고 덕분인지 인생에 많은 유의미한 발전이 있었다. 눈에 뜨이지는 않지만 조금씩 삶이 방향성이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단순한 자극에 대한 욕구도 10초 참을 것을 11초 참는 식으로 조금씩 참을성이 늘어났고, 삶의 여유도 그런 식으로 늘어났다. 시도해 보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운동, 공부, 연구를 모두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내용들이 내 속에 축적되면서 그동안 멈춰있던 삶의 거대한 바퀴가 드디어 작동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내 삶을 나락으로 잡아당기던 검은 충동과 마주치게 되었다. 1년에 한 두 번 씩 밑도 끝도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공포를 느끼고, 스스로의 비루한 모습을 열등감과 함께 떠올리며 이룬 것 없이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만 끼치고 흔적 없이 갈 것이라는 불안과 공포가 마음속에 갑자기 떠올라서 생난리를 치다가 사라지면서 기분을 잡치게 해왔었다. 하지만 이 때는 달랐다. 그 날은 침대에 누워서 갑자기 떠오른 공포와 불안감에 몸을 사시나무 떨 듯이 떠는 것은 똑같았지만 그 날은 공포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냥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이 어째서인지 보였다. 그것은 그냥 죽음에 대한 무한한 규정하기 어려운 공포심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외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심어진 터무니없는 공포가 내 속에 남아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죽으면 편해질 것인데 왜 무서워하는가?”(나는 윤회를 믿지 않는다.)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고, 그 즉시 불안과 공포는 사라져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의 삶은 솔직히 대부분의 공포가 사라지면서, 내 스스로 나를 억누르던 많은 기제들이 날아갔다. 사회에서의 낙오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고, 한 번 사는 인생을 충실하게 후회없이 살고 싶은 욕구만 남았다. 나 혼자 고통을 느끼면서 산다는 피해의식도 사라지고, 지금은 고통이 있었기에 그것을 극복하고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인간적 관계나 관습적 관계에 따라 지고 있던 의무감과 부담도 전부 벗어버리고 일도 그만두었다. 그리고 마지막 개선에 몰두한 결과 올해 초에 25년간의 짐인 두통과 체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 결국, 올해에는 모든 것이 노력하면 성과가 나타나고 급격히 개선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불면증과 올빼미 생활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이 기적과 같은 일이 이러한 삶의 상승무드로 인한 것인가?

 

수면의 개선은 너무 즉각적으로 이루어졌고 약을 복용하거나 식생을 바꾼 적이 없고 항상 하던 일과를 해오던 참이라 이 변화의 근저에 심리적인 변화가 원인일 것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심리적인 부분에서 상승무드의 삶이 나의 자존감을 넓히고 삶을 통제 가능한 것으로 어느 정도 느끼게 해주면서 수면을 개선하는데 일조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동안 각종 개선이 있었음에도 수면의 질은 여전히 좋지 않았었고 지금도 여전히 하지불안증후군(Restless legs syndrome)이 남아서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점을 설명할 수 없었고 바로 직전에 리처드 와이즈먼의 나이트 스쿨을 읽었다는 점도 조금 공교롭게 느껴져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불면증과 올빼미 생활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이 기적과 같은 일의 원인은 무엇이란 말인가? 



악몽을 해소하고 난 후에도 여전히 낮과 밤이 바뀌고 종종 밤늦도록 잠이 들지 못하는 나날이지만 체증과 두통의 극복이라는 문제가 더욱 중요했기 때문에 수면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속이 뒤집어지고 머리가 아파오면 그 날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그저 통증이 가라앉을 때까지 5~6시간 동안 걷는 것만이 내가 해볼 수 있는 전부였다. 체증과 두통은 항상 새벽 3~4시가 되어야 가라앉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시간까지 잠을 잘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잠을 자면서 발생하는 통증, 악몽 등의 문제들이 해결된 이후로는 수면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체증이 없고 머리가 지끈거리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매우 소중했기 때문에 맑은 정신에 밤에 잠을 못자면 감사한 마음으로 밤새 이것저것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수면에 관련된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상 생활을 어렵게 하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수면 습관은 밤 3~5시 사이에 잠들어서 정오에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일이 있을 경우에는 일찍 일어나기는 하지만 항상 정신적인 불만족감과 집중력 저하가 있고 헛배가 부르며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 밤에 일찍 자서 충분히 수면을 취하고 일찍 일어나도 반드시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 그래서 항상 정오에 일어나게끔 알람을 맞췄다. 특이한 것은 정오를 넘어서 일어나면 반드시 체증과 두통이 두 배로 밀려온다는 것이었다. 특히, 오후 3~4시에 낮잠을 자거나 그 시간까지 자는 경우가 발생하면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속이 뒤집어지고 오한과 두통에 시달리게 된다. , 잠을 과도하게 자면 하루가 고통스럽고 특정 시간대에 자도 큰 통증과 두통이 밀려오는 현상이 있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서 아무리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자는 삶으로 변화해보려 했지만 결코, 내 몸은 그러한 상황에 맞게 변형되지 않았다. 낮 동안은 깨어 있지만 졸린 상황이니 대부분의 일을 하지 못하고 그냥 커피 마시고 담배 피고 웹서핑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밤이 되어서야 일을 하니 자는 시간은 점점 부족해지고 자기 시간을 전혀 가질 수 없지만 일은 거의 못하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이런 식이니 하루를 쓰는 효율이 극히 나빴다. 이런 상황에 대한 인식 때문에 어떻게든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자는 리듬을 갖추어 보려고 했지만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겪는 증상들은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일의 효율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프리랜서로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길고 긴 시간 동안, 탐색과 연구, 노력 끝에 올해 초 체증과 두통을 완전히 극복하게 되었다. 참 오랜 기간의 노력이 있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명확하게 말하기는 너무 어렵다. 시도해본 것도 많고 그로 인하여 점진적으로 개선된 것도 많았기 때문이다. 심리적이고 육체적인 문제였고 그러한 문제에 대하여 충분히 개선을 시도한 결과 모든 것이 무르익어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러한 시도들은 나의 삶의 중추를 세우기 위한 시도였고 결국 그 중추가 똑바로 서기 시작했다. 이것을 뭐라고 해야할까? 이제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중 수신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느낌이었다.

 

이제 상황은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두통과 체증이 사라지면서 일주일의 대부분의 시간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삶은 의욕적으로 변했고 변화와 발전에 대한 욕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매일매일이 너무 말끔하고 개운하게 느껴진다. 조금만 집중해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두통과 체증이 와서 모든 것을 집어던지고 걷다가 쉬다가 하던 과거에는 하지 못했던 모든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마지막 장애가 내 앞을 가로막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바로 불면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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