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일이 그렇지만 정말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나면 그 문제보다 간단해 보이던 문제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더 쉽게 느껴졌던 이 문제가 그 전의 문제보다 더 극복하기 힘들고 나를 괴롭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어떠한 종류의 고통이든 그 고통은 우리의 인생을 지배하게 된다.

 

충치를 뽑고 나서 극단적인 통증은 사라졌다. 충치를 뽑은 날 자리에 누우면서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익숙한 고통이 밀려오지 않는 것을 느껴보았다. 정말, 눈물 날 정도로 좋았다. 그리고 반성했다. 2년 전에 이것이 충치라는 것을 알고 이를 해결했으면 사태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흐르지 않았을 것이다. 사소한 방치가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는 점에서 전율이 일었다. 그렇다 이미 인생은 나락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극단적인 고통은 사라졌지만 그 고통이 몸과 마음에 남기고 간 것은 사라지지 않았다대단하지는 않지만 치명적인 후유증이었는데누운 자세가 조금만 불안정하면 숨이 가빠지면서 긴장도가 올라간다몸의 오른쪽 왼쪽으로 모로 누울 경우에도 긴장도가 올라가고 코가 막히는 것 같은 불안감이 생겼다밤마다 필사적으로 고통없는 자세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장하던 버릇이 여전히 남아서 내가 자세를 조금만 바꿔도 그 자세를 매우 불편하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배게 없이 정 자세로 누워서 자는 것이 습관이다. 모로 누워서 잘 수도 없고 그저 정자세로만 자야 한다. 그리고 불면증도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불면증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지쳐서 쓰러져 자는 삶의 패턴이 익숙해서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백수의 삶이 그렇듯이 낮과 밤이 바뀌어도 괜찮았고 이게 불면증인건지 잠자는 시각이 낮으로 결정된 것인지 구별하기도 어려웠다. 오히려 문제는 체증과 두통이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수면에 관련된 가장 중요한 이슈는 바로 악몽이었다.

 

악몽은 그 전부터 계속 있어왔다. 하지만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점점 악몽은 심해졌고 다양한 악몽을 서라운드로 즐기게 되었다. 가장 자주 꾸는 꿈은 검은 개가 나를 쫓아오고 그 개를 피하기 위하여 도망가는데 사막에 발이 빠져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꿈이었다. 깨어나서 생각해보면 기분은 더럽고 숨은 가쁘고 무력감이 드는데다가, 하필이면 개가 쫓아오는 것이어서 개꿈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한번 더 나빠지는 꿈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수면 무호흡으로 호흡이 막히니 내 몸이 도망가는 상황으로 착각하고 그에 맞추어 검은 개에게 쫓기는 꿈을 제공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튼, 이 검은 개는 몇 년간 줄기차게 꿈에서 나타나서 나를 괴롭혔고 나중에는 점점 발전해서 다양한 상황에서 나의 악몽에 거의 대부분 동반하는 악우가 되었다. 그 외에 과거의 잘못했던 부끄러운 기억들, 군대 재입대, 악몽같은 직장에 다시 나가는 꿈 등... 악몽이 너무 많아져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 였다. 그리고 악몽을 겪으면서 사람의 정신구조에 대한 상당히 많은 의문을 품게 되기도 했다. 그 이야기야 여기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므로 넘어가기로 하자.

 

악몽들은 신체적 고통이 현존하고 있을 때는 그냥 그러한 고통에 수반되는 것에 불과했다. , 부차적인 문제들이었다. 하지만 신체적 고통의 문제가 상당수 완화되면서 이 문제는 전면으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삶의 비루함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적의가 누적되면서 악몽을 꿀 때는 생각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고 기분은 끔찍했다. 특히, 체증으로 자주 아픈 두통에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을 악몽들은 넌지시 비추면서 이러한 삶이야말로 나의 몫이라는 듯이 삶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꺾기 위한 최후의 일격을 가하곤 했다. 처음엔 별것 아닌 악몽이 계속 누적이 되고 빈번해지면서 모든 것이 우울하고 암울한 것 같은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당시, 이것저것 책을 읽다가 정신세계사에서 나온 로버트 웨거너의 자각몽, 꿈속에서 꿈을 깨다를 읽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악몽을 직시하고 이 악몽을 껴안거나 물리치는 행동을 꿈속에서 하도록 자기 암시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을 보고 검은 개를 사냥하기로 결심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깨어있을 때 꿈속에서 자주 보는 검은 개를 떠올리면서 한 대 때리는 상상을 지속하고 자기 전에 검은 개를 때려야겠다가 굳게 마음먹고 자는 것이었다. 모든 악몽 중에서 검은 개가 가장 최악의 악몽이었고 항상 동반하는 악몽이었기 때문에 이 검은 개에 대해서 속으로 많이 별렀었다. 책에서 제시한 제일 좋은 방법은 포용하고 흡수하는 것이지만 너무 오랫동안 시달려서 한 대 때리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했다. 간만에 목적이 분명하고 의욕도 충만하고 방법도 명확해서인지 3일 만에 검은 개에게 주먹을 날릴 수 있었다. 주먹을 날림과 동시에 잠에서 깨어났기 때문에 검은 개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손맛을 강하게 느꼈고 때려서 쫓아냈다는 확신이 섰다. 그 일이 있고나서 지금까지 검은 개의 악몽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당시 제대로 쫓아낸 것 같다.

 

악몽을 쫓으면서 로버트 웨거너의 자각몽, 꿈속에서 꿈을 깨다의 주제인 자각몽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자각몽을 통한 수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자각몽의 경험담도 흥미로웠고 시도해보고 싶지만 그러한 흥미로운 순간으로 들어가기 위한 긍정적인 긴장감이 충치가 남겨놓았던 두려움을 상쇄해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비록, 자각몽을 꾸지는 못했지만 자각몽에 들어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잠을 자면, 몸의 자세에서 오는 긴장감, 누울 때마다 느껴지는 심장의 소리와 혈관에서 피가 꿀렁꿀렁 흐르는 감각 등이 자각몽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다는 열망에 의해서 희미해지면서 나의 잠자리는 조금 편안해졌다.


고시에 도전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순전히 재수시절의 기억 때문이었다. 재수생 시절의 마법같은 일이 다시 발생한다면 단 기간에 고시 패스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물론, 이 마법같은 경험은 대학교 공부를 할 때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해 학점은 참혹했지만, 그 때는 청춘의 교우 관계에 힘을 쏟고 각종 행사에 토론에 정신이 없었고 전공 공부에는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대학 시험은 벼락치기로 간단히 넘어가기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차근차근 시간을 들여가면서 대입공부를 하던 때처럼 공부한다면 고시의 수월한 통과가 가능할 것이라고 속단한 것이다.

 

7년을 내리 놀기만 하다가 다시 공부를 하려고 하니 공부가 잘 될 리가 없다. 솔직히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있는 것도 어려웠다. 몸이 공부에 익숙해지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였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 것은 정말 큰 문제였다. 모든 활동을 정지하고 공부에 전력투구하기 시작했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수면에 난조가 왔다. 어차피 다른 활동을 하고 있지 않으니 졸리면 자고 일어나서는 공부하면 되는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묘사해야할까? 졸려서 자려고 누우면 정신이 맑아지고, 잠이 오지 않으니 일어나서 공부하려고 하면 미친 듯이 졸리고 피곤하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다. 누워있어도 고통스럽고 활동을 해도 고통스럽다. 내가 할 수 있는 활동은 오직 강력한 자극으로 정신을 각성시키는 활동만 가능했다. 공부를 하거나 사색을 하거나 책을 읽으려고 하면 너무 피곤하고 눈이 감기며 글은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너무 졸리고 피곤해서 이제 누우면 자겠지 하고 누우면 잠은 오지 않고 이런 저런 생각만 머리를 어지럽힌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이제 시험은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자고 싶었다. 아니 깨어있을 때는 정신이 맑고 잘 때는 푹 쉬고 싶었다. 하지만 오만가지 이유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첫 번째는 소리였다. 눕기만 하면 주위의 소리가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뇌로 쏙쏙 박히는 것만 같아서 계속 신경이 쓰였다. 문 밖에서 소곤거리는 소리, 어디선가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 대로변에서 차량이 이동하는 소리 등 정말 많은 소리가 침범해왔고 나는 그 소리를 감내할 수 없었다. 그 모든 소리에 분노하고 짜증을 내며 소리를 질렀다. 귀마개를 꽂아도 그런 소리는 여전히 너무나 잘 들렸다. 두 번째는 온도였다. 몸이 뜨거운 건지 항상 더워서 땀을 흘리고 그러한 땀이 배는 것을 참지 못하고 일어나게 되었다. 세 번째는 욱신거림이었다. 지금에는 하지불안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확인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해서 원인 불명의 증세가 나를 괴롭힌 것이다. 눕기만 하면 발을 쭉 뻗고 움직이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그 느낌이 신경을 미친 듯이 건드리고 있어 전혀 무시할 수 없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체증이었다. 나는 자주 체했다. 정말 자주 체해서 일주일에 5일은 체해있는 상태였다. 체하면 두통이 밀려오고 속이 뒤집어져서 잠 뿐만 아니라 어떠한 활동도 할 수 없었다. 잠이 들기 전에 체증이 가라앉으면 다행이지만 일단, 체증에 걸려있는 상황에서는 잠을 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지쳐 쓰러질 때가지 걷거나 자극적인 인터넷 세계를 탐방하는 것, 만화책을 보는 것이었다. 그것 말고는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서 체력을 완전히 소모하고 나면 체증이 가라앉고 지쳐 쓰러지면서 잠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이러한 조치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눕기만 하면 누가 머리를 바이스 같은 도구로 조이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어서 꽝꽝 때리는 느낌도 왔다. 그것은 실질적인 통증을 동반했고 정말 무지 아팠다. 이제는 지쳐 쓰러지듯 잠을 자는 것도 만만하지 않게 되었다. 다양한 실험을 해보았는데 일단 베개를 사용하면 머리를 조이는 느낌이 강해졌고, 모로 누워서 잘 수도 없었다. 엎드려 자는 것이 가장 심했기 때문에, 정자세로 누워서 목이 15도 정도 좌우로 기운 상태에서만 잘 수 있었다. 그 자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이제는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엄격한 규칙을 지켜야 잠을 잘 수 있었고, 이러한 규칙은 종종 나를 배반했다.  

 

스트레스가 극심해져서인지 체증은 더 자주 찾아왔다. 이 체증에 대해서는 따로 말해야겠지만 중등 시절부터 자주 겪어온 증세였고 평생의 지병처럼 생각하고 있는 증세였다. 그리고 고시생 시절에야 이 증세의 이름이 체증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 체증은 최근에야 완전히 극복되어서 극복하는데 25년이 걸렸다. 당시, 스트레스가 극심하고 무언가의 균형이 깨졌는지, 체증이 정말 극심해졌다. 평소에는 머리가 아프고 속이 뒤집어지는 정도였다면 이 때 부터는 항상, 오한을 동반하고 몸이 미친듯이 떨리고 고통으로 정신을 하나도 차릴 수 없게 만드니 나중에는 이 체증이 말라리아 같은 학질이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했었다.

 

그러고 누우면 다시 공포스러운 고통이 찾아왔다. 너무 지쳐서 의식을 잃을 때까지 밀어붙여야 가까스로 잠을 잤는데, 일어날 때는 식은땀에 흠뻑 젖어서 고통스러워하며 일어나는게 일상이었다. 잠을 잔 것이 말끔하고 개운한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죽다 살아난 것 같은 기분을 주면서 허우적거리며 일어나서는 그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는 듯이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수면 무호흡증도 심했던 것 같다.

 

당연히, 병원을 찾아가서 이것저것을 하소연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의사들의 말은 한결같이 스트레스를 줄여라.”였다. 물론, 이 모든 증세에 스트레스가 한몫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또 증세로부터 오는 스트레스가 너무 극심했기 때문에 증세를 없애는 것이 우선이어야 했다. 하지만 의사들의 처방은 스트레스 과다였고, 나는 좌절하면서 병원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고시 공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정도로 아프게 되면 아무리 주위 보기가 민망하고 인생에서 낙오하는 것 같아도 내가 살아야 했기에 고시의 포기는 깔끔하게 되었다이 상황을 개선해야겠다는 생각 말고는 어떠한 생각도 할 수 없었고 고시 공부를 포기해서 스트레스를 줄여여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시 공부를 포기했어도 여전히 증세는 계속되었다. 오히려 고시 포기에 따른 우울증까지 겹쳤다. 끊임없이 악몽을 꾸었다. 악몽을 꿀 것을 알아도 자지 않을 수는 없었다. 수면은 어쩔 수 없이 지옥으로 입장하는 것이었지만, 그 지옥도 깨어있는 현실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아귀의 고통이 이런 걸까? 아귀는 먹고 싶은 탐욕에 미쳐있지만 먹을 기회가 거의 없고 가까스로 먹을 것을 구해 먹을 것을 넘길 때 어마어마한 고통을 느낀다. 내가 바로 그러한 느낌이었다. 쉬고 싶고 자고 싶은 열망에 몸부림치지만 잠을 자면 첫 번째로 잠을 잘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미친 듯이 수면에 대한 욕구에 시달렸다. 두 번째로는 잠에 들기 직전까지 반드시 머리를 조이고 때리는 것 같은 고통에 시달렸고, 가까스로 잠을 자면 악몽이 덮쳤다. 그리고 깨어날 때는 전혀 개운하지 않고 죽었다가 살아난 느낌으로 일어났다. 몸은 식은땀으로 젖어서 숨이 부족해 숨을 몰아쉬었고 기분에 끔찍했다.

 

3년을 버티다가 결국 수면제를 받아서 복용해보았다. 이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수면제를 복용했는데, 일단, 잠은 바로 잘 수 있었다. 하지만 1시간 만에 일어났다. 그것은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고통과 함께 잠에서 쫓겨나듯이 일어났다. 처음 겪어본 고통이었던 것 같다. 평소 머리를 조이는 것 같은 고통과 머리를 꽝꽝 때리는 것 같은 고통을 한계가지 밀어붙이면 어떤 고통이 오는지 처음 알았다. 고통을 없앨 수만 있다면 나는 내 머리를 부수어도 좋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머리를 벽에다가 찍었다. 아무런 느낌이 없고 무언가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고통이 가라앉을 때까지 끊임없이 머리를 벽에다가 찍었다. 나는 원래 겁이 많고 소심한 편이라 이런 식의 고통스러운 자해 행동을 매우 싫어하지만 당시는 살고 싶지 않았고 모든 두려움과 걱정은 없었다. 그냥 실행에 옮겼다. 다행히, 고통으로 힘이 없었는지 내 머리가 부서지지도 않았고 고통도 가라앉았다. 이 때의 고통은 지금도 떠올리기만 해도 무섭고 진저리쳐진다.

 

그리고 이 고통을 겪고 나서야 나는 의심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나는 이러한 수면의 장애가 체증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고시에 대한 스트레스, 그리고 평소의 낮과 밤이 바뀐 불규칙한 생활습관이 맞닿아 일어난 증세라고 의심했었다. 체증은 항상 있었고 고시공부를 시작하자마자 너무 갑작스럽게 수면 장애가 왔기 때문에 그렇게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머리를 조이는 통증과 꽝꽝거리는 통증도 그 동일선상에서 왔다고 생각했다그 때 내 스스로가 반쯤은 말 그대로 미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정신병원을 가서 확증하는게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스스로 미치지 않았다고 자위하면서 이 모든 문제를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그래서 통증도 내 자신의 광증의 소산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고시를 포기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건강한 수면 패턴을 다시 찾으면 체증은 어떻게 안되더라도 수면은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그 일환으로 수면제를 처방 받은 것이다(엄밀하게 확인할 정신은 없어서 진짜 수면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가 정신적인 것이었다면 수면제로 인한 그 지독한 고통이 설명되지 않았다. 이 때, 나는 잠시 차분해졌다. 그 동안의 전제를 내려놓고 상황을 둘러보다가 물을 마실 때마다 어금니 쪽이 시려지는 느낌이 갑자기 떠올랐다. 확신이 왔다.

 

치과에서 10년간 교정을 해서 치과에 매우 익숙하면서도 정말 싫어한다. 이빨을 가는 드릴의 소리와 느낌이 이상하고 그 뾰족한 도구들을 보는 것도 싫다. 숱하게 겪었던 치료와 진료도 지겨웠고 교정이 끝나면서 다시는 치과를 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환호했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치과를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날은 그 모든 불쾌감을 무릅쓰고 결연하게 치과에 갔다. 어쩌면 치과를 싫어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동안 충치라는 가능성을 애써 외면해왔던 것이 아닌지, 그래서 그 보다 더 강력한 고통을 겪고 나서야 그 가능성을 떠올린 것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치과 선생님은 한 번 입안을 스윽 보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사랑니가 다섯 조각으로 갈라져 균열이 갔습니다. 고통이 심했을 텐데 빨리 오시지.”

 

그 날 사랑니를 뽑고 집에 돌아오면서 앓던 이를 뽑는 느낌이 무엇인지 정말 확실하게 배웠다.

 

그리고 충치를 뽑자마자 머리를 바이스로 꽉 누르는 통증과 때리는 통증은 사라졌다.

 

하지만 나의 문제는 전부 사라지지 않았다. 극히 일부만 사라졌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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