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나에게 항상 맞서 싸워야할 대상이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지 않을 때 내 마음 깊은 곳을 누설하는 것도 졸음이었다. 평소에는 놀고 흥미로운 것을 하느라 잠과 싸웠고, 시험기간에는 시험공부를 모두 끝내기 위해서 잠과 싸웠다. 그리고 잠을 자지 않는 모든 행위는 3시간 수면법의 강력한 논리에 의해서 정당화되었다.
3시간 수면법의 논리대로라면 나는 점점 더 잠을 줄여서 3시간에 가까워져야 했지만 아쉽게도 해당 논리의 정당화만 남았을 뿐, 3시간만 자야겠다는 목표의식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잠을 자지 않아도 3시간 수면이 정착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전혀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그저 놀 수 있는 만큼 놀다가 배터리가 다 되듯이 그냥 정신을 잃고 자는 것이 나의 수면 패턴이었다. 그리고 부족한 잠은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잤다.
매번 부족한 잠을 학교 수업시간에 책상에 엎드려서 보충하다 보면 갑자기 손발이 바깥으로 튕기면서 발작을 일으키는 경우가 잦았고, 몸은 과로에 시달린 것처럼 근육이 뻣뻣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컨디션이 조금 안 좋을 때에는 발목의 근육이 경직되어서 발을 질질 끌면서 걷는 습관도 생겼다. 가장 최악은 어깨와 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순간부터 어깨가 단단하게 굳기 시작했는데, 손가락으로 스치기만 해도 자지라지게 아파서 눈물을 쏙 빼기 일쑤였다. 그리고 눈도 같이 침침해지면서 결국 눈은 난시로 고정되어 버렸다. 결국, 그 때의 내 모습을 총체적으로 나타내면 이렇다. 매일같이 두통에 시달리면서 얼굴은 짜증으로 일그러졌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폭식을 해서 살이 엄청나게 올랐고 이빨 교정으로 입에는 철길이 깔려서 그야말로 완벽한 비호감이었다. 그런데 졸음으로 눈은 반쯤 감고 있으면서 난시로 잘 안보여 뚫어지게 응시하는 버릇이 있었고, 발은 불구자마냥 질질 끌거나 쥐가 나서 저는 경우가 많았다. 수업시간에는 자다가 수면발작으로 소음을 일으키는 경우도 많아서 자주 혼나기도 했다.
이 모든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잠을 안 자고 버티는 능력은 시험공부를 벼락치기로 할 때 큰 힘을 발휘했다. 평소 공부를 하는 습관이 없지만 성격은 소심해서 시험이 다가오면 공부를 하긴 꼭 해야 했다. 이때, 내 공부의 비법은 내일이 시험이라는 긴장감을 이용하여 벼락치기를 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나는 스스로의 집중력이 시험까지 남은 시간에 반비례하고 시험범위까지 외어야 할 학습량에 비례한다는 명확한 공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식은 대부분의 경우 제대로 작동해서 스스로 생각해도 믿기지 않을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이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러다보니 평소에 시험공부 하는 것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험에 가까이 다가가서 벼락치기를 할수록 공부의 효율이 올라가니 당연히 그 전날 밤을 새서 공부하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 때 가장 필요한 능력이 잠을 안자고 버티는 능력이었다. 잠을 안자고 긴장도를 올려야 전날 모든 과목을 공부하고 시험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고등학교 때에는 바쁜 기말고사에 3일간 전혀 잠을 자지 않고 버틴 일이 있었다. 이때 정말 최악의 경험을 했다. 일단, 세상이 끊겼다가 다시 이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즉, 오늘날 마이크로 수면이라고 불리는 현상을 겪었는데, 스스로 잠을 잤다는 인식은 전혀 없고 세상이 불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것 같은 무서운 경험이었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상태로 시험시간을 패스할 것 같은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걷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그냥 술에 취한 마냥 걷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땅이 위아래로 흔들려서 균형을 전혀 잡을 수 없었고, 넘어지면서 얼굴을 땅에 박아도 거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날 이후로는 하루 중에 몇 시간이라도 반드시 자게 되었다. 그리고 이 때, 했던 생각이 “하긴, 적어도 3시간은 자야지!”라는 것이었다. (정말, 어린 시절 잘못 읽은 책은 위험하다.)
아이러니 하지만 재수시절을 성공적으로 보낼 수 있게 된 것은 양질의 잠이었다. 이 부분은 대입 재수 준비하다가 겪은 마법같은 상황을 참조해주면 좋겠다. 그 핵심은 스스로를 흔드는 온갖 욕망에 맞서지 말고 그냥 짧게 자주 자다 보면 욕망도 쉽게 사라지고 머리도 엄청나게 맑아져 정신적인 능력이 극대화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재수시절 뿐이었다. 대학에 올라와서 공부를 할 때 해보려고 했지만 잘 안되었고, 나중에는 엎드려서 자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되면서 이 기술은 현재까지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잠을 자지 않으려는 노력은 다시 시작되었다. 과거에는 밤에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던 것이라면, 낮에는 수업과 동아리 활동이 있고 각종 할 일이 생겨서 잠을 잘 수 없었다. 특히, 대학은 수업이 이동식이고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낯설고 교수님도 어려워서 잠을 자기가 더 어려웠다. 그리고 선후배들과 같이 하는 많은 활동은 정신을 각성 상태로 몰아가기 충분했다. 게다가 밤이 되면 거의 대부분 술자리가 있어 잠은 태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공부에 관심 없는 학생답게 아침 수업은 전부 다운 시키고 정오까지 자고 오후에 학교에 기어나와 활동했다. 그런데 그래도 잠이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중고등 시절보다 깨어 있어야 할 필요성이 더 강하니 각성하기 위한 노력을 정말 많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자발적 노력은 결국, 습관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자는 것이 매우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엎드려서 잠을 청하면 잠을 자는 것이 게으름처럼 느껴졌다. 자세도 매우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엎드려 잠을 자고 난 후에 오는 손과 발의 저림 현상이라든가 입에서 흐르는 침도 너무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졸음이 오는 것이 그냥 정신적인 응석처럼 느껴져 깨어있기 위하여 노력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런 현상은 엎드려 자는 낮잠뿐만 아니라 누워서 정식으로 자는 순간에도 작동했다. 결국, 재수 시절의 잦은 수면으로 얻은 마법같은 효과 덕분에 관대해졌던 수면에 대한 태도는 다시 수면을 방해물로 여겼던 이전의 상태보다 더 악화되어 버렸다. 그 전에는 재미있는 일, 자신만의 시간을 누리기 싶다는 욕망으로 인하여 수면을 방해물로 여겼다면, 대학 시절에는 수면은 정신적인 게으름이고 현재와의 타협으로 완전히 배척해야만 하는 것으로 규정된 것이다. 결국, 3시간 수면법은 정착되지 않았지만 수면을 배척하는 나의 태도는 완전히 정립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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