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ki로 문장 암기하기 2


 이전 포스팅은 Anki로 문장 암기하기 1을 참고하면 된다. 


 문장 암기하기를 말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서 재미있는 경험을 무척 많이 했기 때문이고 이와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이야기하면 문장 암기를 꼭 해야한다는 식으로 들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우선 문장 형태의 암기로 시작된 나의 공부가 어떤 식으로 변화되었는지 미리 전체를 개괄하여 그 장단점을 미리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내가 문장으로 암기하게 된 이유와 과정, 그리고 최근의 고민과 결론을 요약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문장 암기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우선, 가장 편하게 카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시작했다. 원하는 구절을 발췌해서 빈칸을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하나의 주제나 내용들을 포괄하는 문장으로 암기를 하니 공부의 질적 체험이 보다 깊어지고 깊은 이해에 도달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 글을 쓴 사람의 생각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지는 체험이었기에 그 즐거움에 중독이 되었다. 암기가 조금 익숙해지고, 암기를 하면서 깊은 이해에 도달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이라도 난해한 글들은 이해하려하지 않고 일단 카드로 만들어서 암기하면서 이해하는 버릇이 생겼다. 입으로 문장을 수십번 곱씹으면서 그것을 말 그대로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다. 


 문장으로 암기하고 깊게 이해하는 것이 즐거웠지만, 실은 그만큼 정신적 에너지 소모도 많을 수밖에 없다. 또, 이젠 외워서 이해하는 것이 습관이 되다 보니 책을 보면서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카드로 만들기 바빴다. 그러다 보니 책을 통째로 외어버리는 상황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지식이 몸으로 체득되고 깊게 이해되는 그 자체의 경험은 재미있지만 솔직히 시간과 에너지를 너무 많이 잡아먹는다. 암기와 학습이 쉬워지면서 배우고 익히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데 진도가 너무 더디게 나가니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울 필요가 생겼다. 


 첫 번째 대책은 문장을 요약하고 글자의 수를 줄이는 것이었다. 글자의 개수가 많을 수록 정신적 스트레스와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기 때문이고, 한정된 글자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꾹꾹 눌러 담아 효율을 추구하기 위함이었다. 


 두 번째 대책은 카드의 개수를 줄이는 것이었다. 이것은 암기를 하면서 스스로의 암기 패턴을 알게 되면서 가능해졌다. 처음 Anki를 시작할 때는 문장 암기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정말 많은 카드를 만들어해 해당 문장을 반복에 반복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적당한 분량과 회수가 어느 정도인지 조금씩 알 것 같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제대로된 질의-응답 형식의 카드를 다시 만드는 것이었다. 질의-응답 카드는 만들기도 어렵고, 기계적 암기에 빠지기 쉬우며, 지나치게 단순한 정보만 전달한다는 단점에 대해서 말한 바 있다. 그래서 실제 만들 때도 기본(Basic) 노트로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빈칸 만들기(Cloze Deletion)으로 다음과 같이 단순한 질의-응답 카드를 만든다. 


 즉, 다음과 같이 단순하고 명확한 지식의 나열을 만들고 이를 빈칸으로 만들어 필요한 만큼 카드를 만든다. 


가령, 다음과 같이 외울 내용을 정리한다. 

    

멕시코의 수도 - 멕시코 시티


이를 빈칸 만들기(Cloze Deletion) 형식의 노트로 간단하게 만들어낸다.

    

노트

{{c1::멕시코}}{{c2::수도}} - {{c3::멕시코 시티}}


그러면 다음과 같은 3개의 카드가 만들어진다. 

    

Q: [...]의 수도 - 멕시코 시티

A: 멕시코의 수도 - 멕시코 시티


Q: 멕시코의 [...] - 멕시코 시티

A: 멕시코의 수도 - 멕시코 시티


Q: 멕시코의 수도 - [...]

A: 멕시코의 수도 - 멕시코 시티


 핵심은 완결된 지식의 체계를 최대한 단순하게 최소의 글자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기계적 암기가 되어도 필요한 항목을 전부 기계적으로 암기하기 때문에 문장 암기와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익숙해지면 전체 지식의 체계가 머릿속으로 나열되어 버리게 된다. 그리고 문장 암기와는 달리 카드가 많아져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한 번 익숙해지면 한 개의 카드를 넘기는데 걸리는 시간은 0.5초 이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이렇게 단순한 카드로 만들면 학습할 때 상쾌함이 돈다. 그야말로 빠르게 카드가 넘어가기 때문에 그 수월함이 자신감과 성취감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순하게 카드를 만드는 것의 단점은 지식을 머리로만 익히기 때문에 깊은 이해와 체득이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점이 불안했다. 하지만 남이 제시한 카드가 아니라 스스로 공부할 카드를 만들었다면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재미있게도 스스로 카드를 만들었다면 그 내용이 단순하고 드라이하더라도 암기를 하기 위하여 카드를 만들었던 상황과 전체적인 내용이 무척 생생하게 같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즉, 가장 단순하고 명확한 것만 암기해도 전체가 모두 떠오르는 것이다. 이는 하나의 키워드만 주어지면 당시의 상황이 전부 떠오르는 키워드 암기와 비슷한 효과를 보여준다. 물론, 그런 효과를 누리려면 스스로 요약하고 정리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내가 현재 사용하는 카드 만드는 방법은 너무 감명 깊은 문장이나, 전체를 꿰뚫는 미묘함을 담은 핵심적인 문장 1~2개만 요약해서 문장 형태로 암기하고 나머지는 최대한 단순화된 질의-응답 형식의 단순한 카드로 암기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문장 암기에서 출발해서 이러저러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최근에 도달한 결론이다. 어찌 보면 암기를 계속 하면서 내 암기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견적이 나오면서 그 동안 과도하게 많았던 반복 학습량을 더 효율적으로 가다듬을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암기의 능력이라는 것은 문장 암기를 하면서 깨닫게 된 것들이다. 이제 다음에는 이 문장암기를 하면서 겪었던 일화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다. 

처음 Anki기본(Basic) 노트로 질의/응답 형식으로만 만들었을 때는 카드를 만드는게 조금 골치아픈 문제였다. 질의/응답 형식의 카드 만들기는 완성형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조금 어렵다. 어떤 문제를 만들까? 어떤 사항이 핵심일까? 고민하고 그것을 일일이 타이핑하고 사진을 붙이고 작업을 해야 한다. 실은 이미 해당 내용에 대한 공부가 되고 나서야 질의/응답 형식의 카드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카드를 만들다보면 자연스럽게 공부가 된다. 해당 주제에 대하여 고민하고 이를 다각적으로 고찰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카드를 다 만들고 나면 이미 상당히 깊은 수준까지 해당 지식을 체득하게 되고 그 뒤의 카드는 그저 기억을 환기하는 정도다. 따라서 카드를 만드는 과정도 학습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 이미 공부한 내용이다. 새롭게 이해하고 고찰하는 과정은 그닥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너무 많은 공부량이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정리하고 보고 싶지는 않다. 그저 기억을 환기할 수 있고 숙련될 수 있도록 누군가 만든 자료가 있었으면 좋겠다. 가령, 초중고의 수학 같은 것들이다. 이것을 하나하나 정리해서 다시 보기는 그 양이 너무 많아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트렌드는 수학을 자주 사용해야 해서 기억을 환기시키고 싶다. 누군가 잘 정리해 놓은 것이 없을까? 

     

과거에 공부한 그러나 지금은 기억이 희미한 내용들을 다시 공부하고 싶을 때 타인이 해 놓은 것을 업어올 방법이 없을까? 몇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처음 생각한 것은 문제집이었다. 평생 문제집이라는 말을 부담스럽게 생각했는데, 막상 스스로 공부할 생각을 하니 문제집이라고 하는 것이 모든 분야에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간단한 질의/응답 문제를 만들어 보니 알 것 같다. 이것도 골머리 아픈데, 난이도 별로 복잡한 온갖 요소들을 고려해서 섬세하게 답까지 유도하는 문제와 답을 만든다는 것은 상당한 정신적 노동이다. 문제집이라는 것이 학습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인프라인 것이다. 하지만 문제집 파일이 웹에 돌아다니는 경우를 찾지 못했다. 유료 이북이거나 학원 강의 같은 것을 들어야만 제공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 흔한 PDF도 찾지 못했다. 관련 속내를 살펴보니 문제들 하나하나가 출판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자산 취급을 받는 것 같았다. 해외의 문제집은 조금 돌아다니는데 워드 파일보다는 주로 웹에서 학습을 하는 형태들이 많았다. 

      

서점에서 문제집을 사서 해당 내용을 Anki로 옮기는 것도 생각해보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학습한 개념에 대한 기억을 환기하고 간단히 적용해보는 정도의 기본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문제집의 문제들은 문제를 어렵게 꼬아서 학생들의 수준을 변별하려는 의도를 가진 그런 문제들 위주다. 오히려 기본적인 질문은 상대적으로 적다. 또는, 자리에 앉아서 연습장을 펼쳐놓고 풀어야 하는 그런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들은 그 자체로 학습에 도움을 주기는 하겠지만 개인적으로 Anki를 사용하고자 하는 방식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나는 Anki를 주로 모바일로 운동 중이거나, 이동 중이거나 대기 중일 때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공부하는 용도로 사용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의 문제집을 이용하는 것은 개인적인 Anki 사용 방식과도 대치되고 또, 이를 멋모르고 공유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저작권 문제도 있기 때문에 포기했다. 그 다음으로 살펴본 것이 AnkiWeb공유카드(Shared Deck)들이었다. AnkiWeb공유카드는 이 페이지를 방문하면 된다. 다음과 같은 화면이 나타난다. 딱히 로그인을 하지 않아도 들어가서 해당 카드들을 다운받을 수 있다. 



위의 사진은 Anki가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 잘 보여준다. 단순히, Anki 공유카드의 모든 카테고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선호되는 카드들 위주로 나열되어 있는 것 같다. 1차적으로는 대부분 언어이고 2차적으로는 압도적인 암기량을 자량하는 의학계열의 공유카드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노골적으로 암기하는 과정이 필요한 분야들이 암기와 의학계열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어떤 내용이 있나 둘러보면 영어(English)와 Anatomy(해부학) 정도가 정말 해당 카드를 쓸만한 정도의 품질을 보여준다. 이미 의대생에게 Anki는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적인 앱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YouTube에서 Anki를 설명하고 있는 많은 동영상들이 같은 다른 의대 출신의 대학생들에게 Anki를 권유하는 내용인 것은 이래서 그렇다. 실제로 해부학의 Anatomy 카드들은 엄청난 용량으로 엄청난 고품질이다. 

       

해부학을 공부할 필요를 못 느끼니 그것은 논외로 하고 평소에 관심 가는 분야에서 흥미로운 카드들을 검색하여 공부해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카드를 사용한다는 것이 녹록치 않았다. 일단, 카드를 특정하기 어렵다. 1만개의 단어가 수록된 English 단어 암기용 카드뭉치를 다운 받아 사용해보니 태반이 아는 단어이고 몇 가지 단어는 제대로 작성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그 뒤에 어떤 단어가 왜 나오는지도 알 수 없고 그저 파편화된 상태로 단어를 암기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가 왜 이런 것을 공들여 암기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또, 어떤 카드들은 자신만의 맥락이 있어서 처음 카드를 접하는 사람들은 맥락을 이해할 수 없게 카드가 만들어진 경우도 있다. 어떤 것은 너무 부실하고 어떤 것은 뜬금없는 카드들만 모여있는 경우도 있었다.


타인의 카드를 쓰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운 것일까? 일단은 근본적으로 맥락의 부재 때문이었다. 

      

카드를 이용한 암기는 카드의 양면에 지식을 매우 축약한 것이다. 맥락을 아는 사람은 속으로 “맞아 이것만 외우면 돼!”라고 말하지만 실은 수많은 맥락이 그 카드에 축약된 것이다. 가령 주기율표를 외우는 방식 중에 두음을 이용하여 암기하는 방식이 있다. 각 원소의 첫 글자를 따서 연달아 외우는 것인데 "에헤리베...." 라는 식으로 주욱 이어진다. 작성자 본인이야 다음과 같이 카드를 만들어 공부하면 된다. 

       

질문 : 에[ ]리베 의 빈칸에 들어갈 원소는?

답 : 헤


작성자는 본인이 왜 이런 카드를 만들었는지 알기 때문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하지만 다른 사용자는 이런 의도와 맥락을 알 수 없으니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이 카드를 열심히 추론하여 깊은 고민 끝에 두음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활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것 외에도 수많은 맥락이 있다. 스스로 공부를 할 때는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암기를 한다. 어떤 사람은 공부하다가 자신이 모르는 사실을 발견할 때만 암기하고, 어떤 이는 헷갈리는 부분만 암기한다. 어떤 이는 너무 많은 카드를 만들고 어떤 이는 너무 적은 카드를 만든다. 하지만 그 모든 낱장의 카드들은 각자의 필요에 각자의 관점에서만 만들어질 수밖에 없고 그런 카드 제작자의 맥락을 모르는 다른 사용자들은 이러한 카드들이 너무 많거나 너무 적거나 너무 지엽적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이렇게 주욱 살펴보니 해부학과 같이 교과서를 Anki가 대체하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쓰기 어려웠다. 혹은, 딱 자신이 원하는 취향의 카드뭉치를 찾기 어려웠다. 결국, 카드 업어오기는 포기하게 되었고, 완성형 스타일로 카드를 만들게 되면서 공부할 내용이 너무 많아져 다른 카드를 업어올 생각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한쪽으로는 카드를 공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생각이 맴돌았고 그에 대한 고민이 후에 Ankilog로 이어졌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