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ki에서 특수 기호와 수식 작성을 위한 레이텍(LaTeX)


레이텍( LaTeX)은 조판 프로그램입니다. , 책자, 프로그램, 논문, 단행본 등 다양한 출판물을 인쇄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프로그램입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프로그램이라 일부 사람들만 쓰는 프로그램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논문을 쓸 때, 거의 반드시 레이텍( LaTeX)으로 써야할 정도로 이미 그 중요성과 효용성을 인정받은 대단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논문을 쓰지 않을 저와는 무관합니다만, Anki 때문에 인연이 닿게 되었습니다. Anki로 이공계 과목을 공부하려고 할 때, 부딪히게 되는 장애가 있습니다. 바로, 수학식, 공식, 함수, 분수 등을 Anki의 텍스트 툴로는 표현하기 어렵다는 문제입니다. , 발음기호, 그리스 문자 등 특수 기호를 Anki에 넣기도 어렵다. 물론, 웹에서 이미지를 찾거나 다른 수식 작성 프로그램으로 수식을 작성해서 이미지로 넣을 수는 있지만 너무 번거롭고 Anki 내부에서 배치하기도 쉽지 않아서 결국, Anki 매뉴얼에서 추천하는 레이텍( LaTeX)을 사용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수식 외에도 그래프, 화학 기호, 분자식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어서  레이텍( LaTeX)을 익히기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올린 내용은 레이텍( LaTeX) 기초에서 수식 작성까지에만 정리된 내용입니다. 그래프, 화학 기호, 분자식 까지 가고 싶었지만 일단, 필요한 부분에만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레이텍( LaTeX) 공부 교재는 KTUG에서 권장하고 있는 lshort-ko 문서입니다. 이 중 수식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제3장 수학식 조판 까지만 공부했고 그 내용을 Anki의 카드로 정리했습니다.

 

 단순 암기 위주로 작성되어 있기 때문에 따로 설명을 위한 Ankilog를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전체 내용을 확인하고 싶다면  lshort-ko 를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레이텍( LaTeX)은 Anki에서 사용하기 위한 용도이므로 Anki에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내용 위주로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실제 매뉴얼에서 누락된 부분도 조금 있으니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Ankilog 모음


다음 파일을 다운 받아 사용하시면 됩니다.


레이텍(LaTeX)_수식조판까지.ap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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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m 기초사용법 Ankilog 모음  (0) 2019.07.27

Anki 문장 암기하기 8 - 단순 암기의 발견


 컴퓨터 관련 공부를 생각만큼 하지 못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블로그다. 초기에는 vim이나 HTML/CSS 등을 공부하면서 블로그로 올릴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매일 공부한 것을 블로그에 올리려면 스스로 내요을 편집하고 정리해야 하는데, IT 공부는 생각 외로 전혀 단순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의문점이 나타나고 관련 내용을 찾아보지만 스스로도 신뢰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책을 그대로 베껴서 포스팅을 작성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중단하게 되었다. 덕분에 블로그에 올릴 수 있는 다른 공부에 집중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번역이다. 블로그에 포스팅하지 않고, 그냥 공부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번역이 이상한 책들하고만 인연이 닿았다. 신뢰할 수 없는 번역, 지나치게 이상한 문장 등으로 책을 덮기 일쑤다. 그렇게 공부하기를 포기한 책들이 3~4권정도 된다. 매번 의욕에 차서 공부를 시작했다가 실망하고 덮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공부에 대한 의욕도 저하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번역되지 않은 영어 원서로 공부하고 싶을 정도였다.


 마지막은 Anki에 이공계 관련 과목을 집어넣는 방법이다. 이공계를 비롯하여 IT 분야는 수식과 그림을 적극 활용할 수밖에 없다. 이제껏 한문, 영어 등의 공부는 그저 텍스트로 충분했다. 하지만 이공계 과목은 텍스트로 표현하면 지나치게 길어지고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간단한 기호와 수식이면 그 함의가 정확하고 간결하게 전달된다. Anki에서 기호와 수식 표현으로 사용하기를 권장하는 소프트웨어는 LaTeX이고 제대로 정리하려면 이를 익혀야 했다. 의욕에 차서 공부하려고 책을 폈는데, 그 전에 공부해야할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셈이다. 그렇다고 그 공부할 내용이 간단한 것도 아니다. 거의 책 한권 분량이니 부담이 되었다. 공부하고 싶은 내용도 아니니 더더욱 의욕이 꺾였다. 이 경우에도 LaTeX을 습득할지 말지 꽤나 오래 고민했다.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낯설고 공부할 내용도 많으며 별로 알고 싶은 내용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든 정신을 가다듬고 LaTeX을 공부하기로 했다. 스스로에게 필요성을 역설하기 시작했다. 수식 사용이 필요한 다양한 상황을 그려보면서 의욕을 부추겼다. Anki의 카드뿐만 아니라 블로그 포스팅에도 수식을 집어넣어야 하고 아마도 무척 많이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수식이 필요할 때마다 사진을 찍거나 파워포인트로 얼기설기 그림을 그리면 카드 만들 때마다 고역이고, 공부할 때도 그 어설픔이 눈에 밟힐 것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지도 모르는 카드이므로 LaTeX을 써서 깔끔하게 조판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렇게 힘들게 LaTeX을 공부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유용한 LaTeX 교재를 찾기 어려웠다. LaTeX은 IT 소프트웨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특유의 문서(document)가 돌아다니는데, 이러한 문서들은 읽기 쉽지 않다. 문서는 친절한 가이드가 아니고 그저 취지와 각종 명령 사용법 등을 건조하게 제시하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서들은 하나하나 조작해보면서 씨름을 해야지 겨우 감이 온다. 그것도 어느 정도 개발 경험이 있고, 다른 비슷한 소프트웨어를 써본 경험이 있어야 빠르게 익힐 수 있다. 처음 접하는 사람이 문서로 소프트웨어를 공부하는 것은,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공부하겠다고 사전을 통째로 외우는 것처럼 막막한 행위가 될 수 있다. 게다가 문서들 대부분 읽기 쉽게 정서된 글도 아니고,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것도 아니어서 더 까다롭다. 그래서 이런 문서류는 좋아하지 않고 잘 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LaTeX은 적당한 교재를 구하기 어려웠다. 어떤 것은 너무 자세해서 부담스럽고, 어떤 것은 너무 간단해서 이해하기 어려웠다. 전문가가 될 것은 아니므로 적당히 쓸 수준의 간단한 교재를 원했지만 아쉽게도 시중에서 구입하지 못했다. 결국, 이리저리 탐색하다가 포기하고 국내 TeX 사용자 그룹인 KTUG에서 가장 초보자에게 권장하는 lshort-ko를 골랐다. 


 당시에는 지나치게 많은 Anki 카드에 질려서 쓸데없는 카드를 최대한 만들지 말자는 주의였다. 그래서 열심히 문서를 이해하고 중요한 내용만 카드로 옮겨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했다.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필요 없는지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요약하고 정리할까? 게다가 LaTeX 매뉴얼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서술 방식이 사용자 친화적인 아닌 점도 있지만 생소한 조판에 대해서 다루고 있어서 이기도 하다. 게다가 LaTeX의 버전이 너무 다양해서 혼란스럽고 그 다음에 등장하는 수많은 명령어와 패키지는 이런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결국, 이리저리 탐색만 하다 지지부진 진도가 나가지 않고 또 의욕이 꺾였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교착된 상태가 시작되면서 잠시 무기력한 나날을 보냈다. 무기력하게 노는 상황과 원래 하던 대로 무조건 외우는 상태를 비교해보니 이미 충분히 시간낭비를 했고, 무기력한 상황이 더 지속되면 더 시간낭비를 할 것 같았다. 결국, 카드를 정리하기를 포기하고 닥치는 대로 외우기 시작했다. 


 IT 관련 Anki 카드를 처음 만드는 상황은 아니다. vim이나 HTML/CSS 관련 카드를 만들어 공부했었다. 그리고 이때는 블로그 포스팅도 같이 했기 때문에 외워야할 내용들이 문장이나 글의 형태로 만들어 단순한 지식이 아닌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지식의 형태가 되도록 어느 정도 노력했다. 그런데 LaTeX은 부담스러운 상황에 갑자기 얹어진 반갑지 않은 공부였고, 빨리 끝내고 싶었다. 그래서 lshort-ko 문서에 나온 단순한 설명과 명령어, 부호 등을 최대한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명령어와 해당 결과를 Q/A 식으로 작성했다.


Q : 다음 레이텍 명령의 결과는? \AE 

A : Æ

    

Q : 다음 레이텍 출력을 만드는 명령은? Æ

A : \AE 


 첫 번째 Q/A는 명령어의 작동 결과를 묻고, 두 번째 Q/A는 특정 결과를 만들어내는 명령어를 묻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카드를 이런 방식으로 간단하게 신속하게 만들었다. 기존에 하던 것처럼 프로그램 내부의 작동이나 배경, 조판 용어 설명 등을 추가로 찾아보지 않고, 그저 필수적인 몇몇 간단한 개념과 필요한 기능을 나열해서 외운 것이다. 물론, 카드는 많이 만들어졌다. 모든 특수문자와 명령어를 전부 카드로 옮겼기 때문이다. 

 

 이건 상당히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단답형의 카드들은 너무나 쉽고 빠르게 흡수되었다. 문장과 글을 곱씹어 외우는 방식을 살펴보면 처음 공부하는 새 카드는 대략 짧게는 3~4분에서 길게는 15분 정도 걸린다. 하지만 단답형 카드들은 5~10초 정도면 학습이 된다. 너무 쉽게 진도가 나가니 즐겁고 상쾌했다. 복습은 더 빨랐다. 보통 1초면 하나의 카드를 복습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단순한 사실들을 상기하면서 빠르게 복습할 수 있게 되니 Anki에 수백 개의 복습 카드가 있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오히려 상쾌했다. 외우고 곱씹는 방식에서는 느낄 수 없는 빠른 카드 클리어는 속도감을 주어 지루하지 않았고, 너무 쉽게 답을 기억해낼 수 있어서 공부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고 자존감도 살짝 올려주었다. 


 덕분에 진도가 빠르게 나아갔다. LaTeX 공부는 필요한 부분인 수식 조판을 다루는 부분까지만 공부했다. 이는 메뉴얼 절반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70페이지 정도 된다. 다른 공부라면 최소 2달은 걸렸을 분량이지만 이 경우는 10일 정도로 공부를 끝낼 수 있었다. 끝내주는 속도감이었다.


 게다가, 단순히 매뉴얼을 눈으로 볼 때는 이상할 정도로 손에 잡히지 않던 내용들이 자잘 자잘한 명령어와 특수기호 사용법을 외우면서 빠르게 친숙해지고 손에 딱 달라붙기 시작했다. 단순 암기를 시도했을 때는 미리 단순한 명령들을 암기하고 다시 LaTeX 매뉴얼을 보면서 몸에 익히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단순 암기만 했음에도 막막했던 LaTeX을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 손에 잡힐 듯 감이 오기 시작했다.


 종합하자면 LaTeX 공부 경험은 빠르게 진행되는 즐겁고 가벼운 공부라고 할 수 있다. 공부 결과도 매우 좋았다. 빠르게 LaTeX을 필요한 부분까지 익혔고 잘 사용한다. 무엇보다도 어떻게 사용할지 감이 잡혀 매우 만족하고 있다.


 왜 그 동안 한 번도 이렇게 상쾌하게 만족스럽게 공부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바람직한 공부는 주입식으로 단순 지식을 암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고 그것에 더하여 지금껏 공부해온 내용들이 이런 공부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스스로 믿는 바람직한 공부는 지식과 정보를 다른 지식과 정보와 연계시켜 입체적으로 살아있는 지식을 익히는 공부다. 그러면 해당 지식이 자연스럽게 응용되고 장기간 기억하기 편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문장이나 글 형태로 외우고, 그림이나 시청각 자료를 동원해서 익힌다. 어찌 보면 흔히 듣게 되는 교육 모델이랑 비슷하다. 쉬운 개념부터 차근차근 접근하고 다양한 교보재와 시청각 자료를 이용해서 생생하게 인지시키고, 개념을 추출해 심화시키는 식의 교육법이다. 이러한 교육법은 뇌 속의 다양한 신경들을 자극한다. 그 결과 지식과 활동들이 탄탄하게 결속되어 효과적으로 장기 기억을 형성하고 죽은 지식이 아닌 언제든 응용 가능한 살아있는 지식을 형성하게끔 도와준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이런 믿음에 따라서 글이나 문장 형태로 외워보니 비록 속도가 느리기는 하지만 깊은 충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믿음과 경험이 공부방식이 옳다고 확신시켜주었다.


 하지만 단순 지식으로 외운 경험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단순 지식으로 외웠다는 것은 그냥 명령어와 기호 쓰는 법 등 개별적이고 파편화된 지식으로 공부했다는 것이다. 공부하기 싫고 최소한으로 빨리 끝내려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이전의 공부처럼 명령어가 작동하는 원리를 찾거나 이렇게 조판하는 이유를 더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등의 노력을 일체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어떻게 쓰는지 전혀 모르고 중요성을 분별할 수도 없으니 일단, 외우고 매뉴얼을 다시 읽거나 실제로 사용하면서 정말 필요한 것만 하나하나 들여다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외웠더니 그 다음 부터는 바로바로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었고, 더 이상의 추가적인 공부가 필요 없었다. 깊게 공부하지 않았음에도 머릿속에 흡수된 단순 지식들이 알아서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LaTeX 수식 작성이라는 체계를 세웠기 때문이다. 


 이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두 가지 요인을 추정할 수 있었다. 그것은 머릿속에 있는 지식들의 상호작용과 암기의 힘이다. 


 일단, 머릿속에 들어온 지식들은 서로 상호작용한다. 이 점은 문장과 글을 곱씹어 외우는 과정에서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따라서 단순한 지식들도 흡수하면 머릿속에서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하나의 체계를 구축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호작용을 과대평가할 수는 없다. 경험에 따르면 머릿속의 지식들이 상호작용하여 체계를 구축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또, 모든 지식들이 상호작용하여 체계를 구축하지도 않는다. 사례를 들면, 문득 깨닫는 경험들이 머릿속에서 지식들이 저절로 상호작용하여 체계를 구축하는 경험인데,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 보통 2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 경험은 1년에 2~3번 있을까 말까하니 극히 일부의 지식과 정보만 체계화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식이나 정보가 중복되거나 서로 모순될 경우 잘 기억되지 않거나 기억된 내용이 왜곡되는 등 상호작용이 바로 일어나지만 서로 연관이 없는 파편화된 단순 지식들이 상호작용하여 하나의 체계를 형성하는 경우는 많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 파악한 원인은 암기의 힘이다. 무엇을 암기의 힘이라고 하는가? 암기를 하다보면 굳이 외우지 않은 것들이 자연스레 기억이 되는 경험을 한다. 가령, 장황한 근거를 제시하고 추론 과정을 거쳐서 컴퓨터가 TV와 같은 바보상자라고 논증하는 글을 생각해보자. 글을 열심히 읽고 글의 결론에 동의하며 “컴퓨터는 TV와 같이 사람들을 바보로 만든다.” 라는 문장 하나만 외운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이 문장만 되새겨도 글에서 제시한 근거와 논리들이 상당히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즉, 본인이 직접 읽고 요약하여 필요한 내용들을 암기하면 요약하지 않은 다양한 맥락들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게 된다. 암기한 문장이나 지식이 마치 키워드처럼 작동하여 암기하지 않은 수많은 내용과 맥락들을 떠올릴 수 있게 해준다. 


 추정하면, LaTeX 공부에서 벌어진 일이 이런 일이었다. 단순한 내용들만 간단간단하게 외웠지만 이러한 내용들을 암기하면서 그 주위의 맥락을 전부 흡수한 것이다. 덕분에 머릿속은 LaTeX 수식 작성에 필요한 단순한 명령어와 파일, 환경들을 엮어서 나만의 총체적인 수식 작성 요령을 만들어냈다. 


 글이나 문장을 곱씹어 외우려고 했던 이유가 단순한 지식들과 그 지식들이 엮이어 만드는 다양한 맥락, 함의 등을 명시적으로 표현하고 전부 흡수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LaTeX 공부를 하면서 단순 지식을 외우는 것만으로 이러한 맥락이 저절로 흡수된다는 점을 깨달았다. 깨달은 순간부터 곱씹어 외우기가 지나치게 시간과 노력을 잡아먹는 사치스러운 공부로 보이기 시작했다.

Anki로 문장 암기하기 7  적절한 카드 수


 하루에 몇 시간의 공부가 적당할까? 재수생 시절에 하루 13시간 까지 집중해서 공부해보았다. 하지만 이는 극한에 몰린 심리와 발버둥, 공부에 완전히 맞추어진 환경과 우연이 겹쳐져 만들어진 지나치게 특별한 경험이었기에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퍼포먼스로 보긴 어렵다.(링크 참조) Anki를 처음 시작한 2015년에는 하루에 30분도 공부하기 어려웠다. 화장실이나 이동시간에 짬짬이 외우는 수준이었다. 일을 줄이고 조금 여유가 생기면서 공부시간이 늘었는데 하루에 1시간 반 정도를 공부하면 지쳤다. 그리고 카드수가 늘어나고 공부하는 내용이 늘어나면서 하루에 6시간 까지 공부하게 되었다. 


 6시간, 재수생이던 시절 이후 온전히 집중하여 하루에 6시간씩 매일 공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처음엔 1시간 반에 지쳐서 쓰러졌지만 조금씩 근력이 늘어나듯 공부량이 늘어나더니 자연스럽게 6시간이 되어버렸다. 이 6시간에는 불만이 없다. 오히려 그 정도로 정신적 체력이 늘어났으니 기분이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6시간 동안 하는 공부가 너무 뻔하다. 그리고 그 6시간 공부를 하고 나면 힘이 빠져서 새로운 카드를 만들 시간이 없다. 여력이 있어도 이미 6시간의 한계를 맞이했는데 갑자기 7시간이나 8시간 공부를 시도할 수 있을까?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공부는 많고 열심히 하고 있는데 개미눈물만큼 나아가고 있으니 답답해서 속이 터지려고 한다. 이 속도로 공부하면 환갑에 프로그래밍을 짤 판이다. 그리고 온갖 것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엉터리 번역들, 번역기의 이상한 문장들, 지루함,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불안감 등등 분노와 불안이 조급한 마음에 엉겨 붙었다. 그렇게 그 날 공부는 공쳤다. 


 길거리를 쏘다니면서 한참을 방황한 후 겨우 진정이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단, 카드가 너무 많아서 생긴 문제로 보였다. 카드가 너무 많으니 공부량에 눌리고 새로운 공부를 추가하기 어려워 복습 위주로 공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새로운 자극이 없으니 공부가 재미없어지고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먼저 필요없는 카드를 지워보기로 했다. 오랫동안 쌓인 카드들을 죽 살펴보면서 삭제할 카드를 선택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문장 하나를 외우기 위해서 하나의 문장을 지나치게 많은 카드로 만든 노트들이었다. 가령 다음과 같은 노트다. 


원은 직경이 1이면 둘레는 3이 조금 더 되고, 네모는 직경이 1이라면 둘레는 4가 되는데 양은 하나로 움직이므로 1은 1이고, 3은 3이며, 5는 5로 그 수가 줄어들지 않으나, 짝수는 쌍방향으로 나가므로 2는 1이 되고, 4는 2가 되어 반으로 줄어든다. 따라서 하늘은 그대로 3으로 표시하고, 땅은 4의 반인 2로 상징하는 것이다.


 위의 문장을 노트로 만들어 다음과 같이 23개의 빈칸 만들기 카드를 생성했다. 


{{c1::원}}은 직경이 {{c2::1}}이면 둘레는 {{c3::3}}이 조금 더 되고, {{c4::네모}}는 직경이 {{c5::1}}이라면 둘레는 {{c6::4}}가 되는데 {{c7::양}}은 {{c8::하나로 움직이므로}} {{c9::1은 1}}이고, {{c10::3은 3}}이며, {{c11::5는 5}}로 {{c12::그 수가 줄어들지 않으나}}, {{c13::짝수}}는 {{c14::쌍방향}}으로 {{c15::나가므로}} {{c16::2는 1}}이 되고, {{c17::4는 2}}가 되어 {{c18::반으로 줄어든다}}. 따라서 {{c19::하늘}}은 그대로 {{c20::3}}으로 표시하고, 땅은 {{c21::4의 반}}인 {{c22::2}}로 {{c23::상징하는 것}}이다.


 하나의 글을 23개의 빈칸 만들기 카드로 만들었다. 즉, 똑같은 문장을 23번 반복해서 외운 셈이다. Anki 사용 초기에는 카드를 이렇게 만들었다. 벼락치기 시험공부 외에는 외우고 암기해본 경험이 거의 없으니, 자신의 기억력을 믿지 못하고 혹시나 잊을까봐 편집증적으로 많은 카드를 만들었던 것이다. 오래된 흑역사다. 자신의 기억력을 믿지 못하고 쓸데없이 많은 카드를 만드니 카드가 지나치게 많이 쌓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전부 동일한 내용이니 진도도 지지부진하고 지루할 수밖에 없다. 과거의 노트들을 뒤져보니 전부 이런 식이었다. 


 지나치게 많은 카드를 지우려고 생각하니 몇 개의 카드가 적절한지 알 필요가 생겼다. 과거엔 외우기에 급급했지만 그래도 경험이 쌓였는지 적당한 수량의 카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일단, 얼마나 긴 글인지, 얼마나 많은 내용을 포함한 글인지와 상관없이 글 전체를 한 번 외우면 끝이다. 일단, 외우면 그 다음부터는 외운 내용을 반복할 뿐이다. 빈칸만 다르게 뚫린 카드가 몇 십번 나와도 동일한 내용의 지루하고 기계적인 반복일 뿐이다. 따라서 외우기를 생각한다면 1개의 카드로 충분할 수 있다.


 그렇지만 숙달의 과정을 고려해야 한다. 문장을 곱씹어 외우는 과정은 입과 머리의 상호조화다. 입으로 반복하여 씹어 삼키면 해당 정보를 머리가 먹고 소화시키는 구조다. 따라서 자근자근 씹을수록 머릿속에서 쉽게 해당 지식을 소화한다. 따라서 숙달을 위한 단순 반복을 고려해야 한다. 나는 이 횟수를 3회로 생각한다. 어차피 카드들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복습이 되므로 새로운 카드는 3개 정도면 입과 머리가 충분히 숙달할 수 있을만큼 반복할 수 있다.  2번은 조금 간당간당하고 3번이면 적절하게 넘친다.


 마지막은 지식이 머릿속에서 숙성되는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즉, 앞서 말했지만 지식은 머릿속에서 숙성의 과정을 거친다. 이는 지식이나 생각이 머릿속에서 기존 지식과 어우러져 안착되는 과정이다. 이렇게 지식이 숙성되고 머릿속에 안착되면서 다양한 시행착오가 일어난다. 카드 속 문구가 마음에 안들어 수정에 수정을 거듭할 수 있다. 혹은 외운 문장의 내용이 필요없다고 생각해서 노트를 삭제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이 정보량에 따라서 일어난다. 즉, 안착할 정보가 많다면 상당기간에 걸쳐서 안착이 이루어진다. 처음에는 A라는 사항에 초점이 맞처지지만 해당 지식이 안착되면 이번에는 B라는 사항이 초점이 맞춰진다. 따라서 정보량이 많을 수록 지식이 안착되는 속도가 늦어진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정보량을 어떻게 판단할까? 정보량을 초점이 되는 지식의 수라고 한다면 간단하게 말하기 어렵다. 공부를 하다보면 이해되는 정도에 따라서 정보량이 늘어나거나 줄어들기 때문이다. 긴 글도 하나의 단순한 정보일 수 있고, 짧은 글이 무척 복잡한 정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보통 문장의 형태로 가공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마침표로 구분되는 문장의 개수로 정보량을 판단하고 있다. 즉, 이 기준을 따르면 마침표로 구분된 문장의 개수만큼 카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경험적으로 보면 정보량이 많아도 카드의 개수가6~7개를 넘어가면 무의미해진다. 그 때부터는 단순 기계적 반복으로 입만 숙달되고 정신은 가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드의 개수보다는 카드가 장기적으로 계속 노출되는 상황이 정보량이 많은 카드를 흡수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아무리 정보량이 많은 카드라고 해도 4~5개의 카드로 만들면 충분하다. 대신, 몇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반드시 복습 카드를 먼저 공부하고 이후에 새카드를 공부한다. 두 번째는 동일한 노트에서 나온 카드들은 같은 날 학습되지 않도록 한다. 


 복습 카드를 먼저 공부하고 이후에 새카드를 공부하려면 아래와 같이 도구 → 환경 설정 을 클릭하여 환경 설정 창을 띄운다.




환경 설정 창에서  빨간색 테두리에 해당하는 부분의 드롭다운 목록을 눌러 "새 카드는 복습 카드보다 나중에 등장"을 선택한다.  이렇게 하면 카드뭉치에 복습 카드와 새 카드가 같이 있을 때 복습 카드를 전부 공부하고 나야 새 카드의 학습이 이루어진다.



 

 동일한 노트에서 나온 카드들은 같은 날 학습되지 않도록 하고 싶으면 학습할 카드뭉치의 옵션(Deck Option)을 클릭하여 카드뭉치 옵션 창을 연다. 




 카드 뭉치 옵션 창에서 "새 카드" 탭 아래의 "Bury related new cards until the next day"의 체크 박스에 체크하고, "복습" 탭에서도 동일하게 아래의  "Bury related new cards until the next day"의 체크 박스에 체크한다. 이렇게 하면 학습된 카드와 같은 노트에서 나온 카드들이 카드 대기열에서 사라지고 다음 날로 미뤄지기 때문에 매일매일 동일한 카드가 지루하게 반복되는 것을 막고, 적은 수의 카드를 장기적으로 학습할 수 있게 된다. 




  이제 문장 단위 암기에서 카드의 개수는 문장의 개수가 많으면 4~5개의 카드를 만들고, 문장의 개수가 적어도 최소 3개로 만들면 된다. 즉, 문장의 정보량과 중요성에 따라서 하나의 노트당 3, 4, 5개로 배치하는 셈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기억이 숙성되도록 동일한 노트의 카드들이 같은 날 중복해서 학습되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런 조치들을 통해서 과거에 하나의 노트에서 2~30개씩 만든 카드를 4~5개 정도로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드들이 만들어진지 오래라서 3~4년 이후에나 나온다. 따라서 카드 수가 줄어든 것을 체감하긴 어려웠다. 또, 너무 익숙하게 외우고 있는 카드라서 다시 복습할 때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이런 카드를 줄인다고 딱히 공부 부담이 많이 줄지는 않는다. 하지만 덕분에 새로운 카드를 만들 때, 적절한 카드 수를 확립하여  불필요하게 많은 카드를 만드는 습관을 고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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