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 ‘닥터 하우스’는 각종 단서를 이용하여 병의 정체를 찾고 이를 치료하는 형식의 의학 추리 드라마다. 처음 이 드라마를 보고 주인공인 하우스의 캐릭터가 너무 재미있어서 거진 2년 정도 밤마다 이 드라마를 끊임없이 반복 시청하곤 했다. 너무 많이 봐서일까 자막을 보면서 시청했는데도 어느 순간부터 영어가 조금씩 들리는 듯 했다.


영어가 들리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던 것 같다. 이 드라마는 메디컬 추리 드라마였기 때문에 주로 질병과 그 질병의 원인이 핵심이었다. 그래서 어려운 영어 단어는 대부분 의학적인 전문 용어였고 그 외의 그리 많지 않은 일상적인 대화나 농담들은 매우 쉬운 영어가 사용되었다. 어차피 전문 의학용어의 학술적인 의미는 영어를 잘 모르는 나 뿐만 아니라 영어를 잘 아는 사람들도 비전문가로서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따라서 꼭 알아야할 이미지에 대해서는 드라마가 바이러스가 퍼지고 근육이 부러지는 등의 영상으로 표현해주므로 그냥 유추하는 수준으로 드라마를 보는데 전혀 지장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드라마를 수십번 반복하여 시청하면서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각인되었고 그 캐릭터들이 일상적으로 대충 어떻게 말하는지 대충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니 슬슬 영어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 이상하진 않았다. 


영절하식 영어 공부에 영감을 받고 아무런 자막 스크립트 없이 미국 드라마를 시청해본 적이 있는데 그 답답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앞에서 펼쳐지는 풍경이 아무리 아름답고 장엄해도 미남미녀의 외모와 표정이 멋지고 섹시해도 솔직히 전혀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고, 그저 딴나라 일이었다. 그것을 보는 것은 상상 외의 고역이었다. 그래서인지 시도할 때마다 아무것도 모르는 답답한 상태에 처하는 괴로움 속에 정신력이 완전 방전되고 탈진한 상태에 도달하게 되었고 그렇게 자제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다시 자막과 함께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힐링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번은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너무 많이 본 드라마에서도 더 많이 본 에피소드였고 그 스토리와 캐릭터가 이미 머릿속에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으니 이는 마치 지금까지 노래 가사를 보면서 불렀는데 이제 노래를 완전히 외운 것 같아 이번에는 가사를 보지 않고 불러봐야지 하는 정도로 쉽게 생각한 것이다. 당연히 자막 없이 보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상황은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르게 전개되었다. 


우선, 아무것도 모르던 상태에서 자막 없이 미국 드라마를 봤을 때 느꼈던 지나친 고역은 많이 경감되었다. 엄청나게 집중해서 보니 그래도 스토리의 흐름을 어찌어찌 가까스로 따라가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것이었다. 그건 내가 좋아해서 그렇게 반복적으로 보던 그 드라마가 아니었다. 자막 없이 보니 안보이던 것이 자꾸 드러나기 시작했다. 배우의 대사와 그에 따른 몸짓, 떨리는 눈가와 확장된 동공 등 온갖 미묘한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저 스토리상에 잘 짜여진 부속품처럼 여겨지던 조연과 엑스트라들이 갑자기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많은 디테일들에 집중하게 되니 뭔가 그 상황의 정서에 푹빠지는 느낌도 강하고 공감은 크게 되는 것 같은데 오히려 영어는 거의 들리지 않고 전체적인 흐름은 산산조각 나서 하나의 스토리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즉, 드라마를 시청한 것이 아니라 조각조각난 독립된 영상클립을 본 것 같은 느낌이고 하나의 이야기로서 기승전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저 기존의 스토리 라인에 억지로 집어넣어 생각했지만 자연스럽게 기승전결을 타지 못한 것이다. 자막 없이 드라마를 시청할 때마다 비슷한 경험을 했고 그 상황과 배우에 대한 공감이 재미있었지만 결국, 드라마 본연의 즐거움을 느끼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또 정신적인 에너지가 고갈되어서 그만두게 되었다.


이 경험으로 다음과 같은 의문점을 얻게 되었다. 


거의 외우다시피 해서 익숙했던 드라마 에피소드가 왜 이리 낯설게 느껴지는가? 


그리고 잘 들리던 영어가 왜 갑자기 안 들리게 되는 것인가? 


마지막으로 영어가 안 들리는데 어째서 각각의 장면과 등장인물에 대한 공감은 더 강해지고, 반대로 익숙하던 스토리는 갑자기 조각조각 나서 서로 연결되지 않는가?


이 의문점들은 결국 마지막 의문점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이 의문점이 떠오르면서 의문을 해결할 수 있는 키로 뜬금없이 같이 떠올랐던 것이 그동안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잊고 있었던 올리버 색스의 언어상실증(실어증) 사례였다.

1997IMF 이후 영어의 중요성은 그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해졌다. TOEIC 시험 점수는 사람의 가치를 재는 가장 기본적인 척도가 되었고, 영어학원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러면서 영어가 비즈니스 환경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면서 사람들은 실제로 영어를 잘 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문법과 시험 위주의 공부에 대한 대안을 사람들이 모색하고 있었을 때 나온 것이 영절하(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였다. 군대에서 진중 문고로 보게 되었는데 그 이야기의 핵심은 쓸데없는 문법공부는 배격하고 원어민처럼 되면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그 책을 읽었을 때 그야말로 그 자리에서 바로 완독했을 정도로 글쓴이의 주장은 신선했고 접근하기 쉽게 잘 구성되었으며 무척이나 설득력 있게 쓰여진 책이었다. 읽자마자 바로 영절하식 영어공부 방법을 요약해서 노트화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영절하에서 제시된 영어 공부 방법은 기존의 영어 공부법을 폐기하고 올바른 길로 이끄는 혁명적인 방법처럼 느껴졌다. 기본적으로 영어 공부를 단순히 좋은 시험 점수를 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원어민처럼 되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했고 그 실행방법도 단순하고 명확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영절하식 영어공부를 시도했다.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 개인의 입장에서 이 공부 방법은 그렇게 단순하고 명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영절하식 공부를 통하여 영어실력이 늘었다고 이야기 하지만 내 스스로 적용하면서 많은 혼란을 겪게 되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영절하는 공부방법을 단계별로 나눠놨는데 그 단계를 뛰어넘는 기준이나 공부해야할 공부량 등이 그다지 명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책으로 읽었을 때에는 쉬워보였지만 막상 실천해보면 막막하고 어리둥절한 경우가 많았고 같은 내용의 자료를 계속 들어야 하므로 무척 지루하게 느끼기도 했다. 

 

가령 영절하에서 제시한 1단계가 카세트 테이프 한 개를 그 테이프에 있는 모든 소리가 들릴 때까지 계속한다는 것인데, 해보면 소리가 다 들린다는 기준이 애매하다.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인지 확인할 수 없는데,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스크립트를 보면 안된다. 그러니 계속 속으로 소리가 다 들린 것인지 아닌지 의심하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도 되는지 판단하지 못한다. 그리고 같은 테이프를 매일 들으니 정말 지루하다. , 이를 무의식적으로 해석하지 말라는 지침도 있어서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해석하는지 점검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 언어를 알아듣는 것인지 스스로 무의식적으로 독해하듯 해석하는지 잘 구분도 안 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데 스스로 발전하는지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 이 공부법의 가장 어려운 점인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발전하는 것이 느껴지면 계속할 수 있는데, 이를 측정할 수 있는 점수도 없고 어떤 책의 진도가 나가는 것도 아니라서 더더욱 쉽게 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니었다. 여튼 영절하를 시도했던 사람들이 이 공부의 어려움을 토로했고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난 것으로 안다.

 

세상을 삐딱하게 사는 나같은 사람은 영절하를 읽고 그 방법에 동의하면서도 제 입맛대로 그것을 변형해서 스스로 편한 것만 받아들인다. 당시 아무리 세상에서 영어가 중요하다고 말해도 별로 체감하지도 못했고, 솔직히 한국어로 되어 있는 정보도 소화하기 벅찼다.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니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딱히 여행 가고 싶은 욕구도 없어서 영어가 필요하지 않았다. 당연히 영어 공부에 목숨 걸 생각도 없고 영절하식으로 최선을 다해 영어공부를 할 생각이 있을리 없었다. 그런데 영절하의 논리에는 그대로 설득되어서 영어 공부에 대한 모든 방법을 영절하의 논리를 이용하여 잘못된 공부 방법으로 규정했다. 반공부주의라고나 할까, 문제집이나 교과서를 공부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신념만 강하게 형성되었기에 기존의 영어 공부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여기면서도 영절하식 공부를 할 여건도 의욕도 없으니 그냥 영어공부를 전혀 안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미국 드라마 열풍과 함께 좋아하는 미드에 꽂혀서 밤을 새다시피 하는 나날이 지속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미드는 많고 현실은 개떡 같으니 매일매일 미드 삼매경이었다. 미드에 빠져서 현실을 잊고 사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질 때마다 스스로 핑계를 댔던 것이 영어공부를 한다는 것이었다. , 미드를 보면서 그냥 미드만 보고 있자니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지니 영절하식 영어공부를 시도한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하면서 영절하의 공부방법을 따라해본 것이다. 그러면서 영절하식 영어공부의 지루함을 재미있는 미드로 보완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기만했다. 물론, 미드를 보다가 다시 자막을 틀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다시 정신이 들면 자막을 꺼보고 그러다가 결국, 발음에 주의하면서 듣는다고 스스로를 속이면서 그냥 자막 키고 봤다. 공부가 되었을 리가 없다.

 

스스로 영어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니 뭔가 하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미드를 통째로 녹음해서 돌아다니면서 이어폰으로 듣기 시작했다. 계속 듣다 보니 점점 잘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몇 단어는 3년 동안 절대로 들리지 않았고 컨디션에 따라서 잘 들리고 안 들리고가 반복되기 시작했다. 그 상태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지 잘 알 수 없었다. 안 들리는 단어는 전혀 안들리는데 그런 단어를 추적해서 영영 사전을 찾고 그것을 낭독하라고 되어 있었는데 결국, 못 찾고 끝났다. 스크립트나 자막을 찾아봤으면 그 단어를 찾아낼 수 있겠지만 그러면 지는 것 같았고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생활이 바빠지면서 조용히 영절하식 공부는 접게 되었다. 


거진 3년간 열심히 녹음한 미드를 들었는데 영어 실력이 늘었을까? 그 부분은 조금 미묘하다 영어 문장이 자연스럽게 들리는 느낌적 느낌은 있다. 하지만 열심히 녹음하여 들은 미드를 자막없이 보기는 어려웠다. 정말 열심히 했다기 보다는 그냥 BGM식으로 움직이거나 여유로울 때만 똑같은 미드를 계속 들었던 것이지만 3년이나 똑같은 미드를 들었다면 영어 전반이 발전하진 않더라도 그 미드 정도만이라도 잘 들렸으면 성취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그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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