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Anki를 할 때는 알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변화가 발생한다. 내 경우에 그 첫 번째 변화는 우선 암기를 귀찮아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고, 두 번째 변화는 Anki에 카드가 쌓이는 것이고 마지막 변화는 Anki에 중독되는 것이다. 


 암기라는 그 지겹고 귀찮은 행위가 어느 정도 인에 박히게 되면 이제 운동에 중독된 사람들처럼 지식을 갈구하게 된다. 이건 운동과 달리 매우 솔직한 행위다. 운동으로 인하여 근력과 체력이 증가하고 근육이 생성되는 것도 나름 투자한 만큼 돌아오는 매우 좋은 과정이다. 하지만 암기만큼은 아니다. 암기는 그야말로 외운 만큼의 정신적 자산이 쌓인다. 암기라는 힘들고 귀찮은 과정이 필요하지만 그만큼 정직하게 정신적인 재산이 축적된다.


 처음 암기를 시도할 때는 거의 15년 만에 해보는 암기 행위가 너무 낯설었다. 암기할 내용을 어떻게 선정하고 어느 정도 길이로 만들지도 몰랐다. 그저 마음에 드는 문구들을 통으로 외웠다.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면서 잊어먹을까 봐 동일한 내용의 카드를 빈칸 만들기(Cloze deletion)로 20개가량 만들기 일쑤였다. 새 카드에는 20개라고 찍혀 있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문구를 외우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하루에 문구를 하나에서 두개 정도 외웠다. 


 암기를 반복하니 점차 익숙해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암기에 대한 거부감이 옅어졌다. 예전에는 암기가 필요하다는 말만 들어도 짜증이 나고 머리가 무거웠지만 지금은 당연하다는 듯이 하게 된다. 게다가 암기를 하게 되면 단순히 읽은 것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매우 깊이 이해하고 공부하게 된다.


 암기가 몸에 배이면 욕심이 생긴다. 알고 싶은 것이 많다. 어떤 지식은 자신을 뽐낼 수 있게 해주고, 어떤 지식은 직업에서의 전문성을 늘리고 돈을 벌 기회를 만들어 준다. 그리고 어떤 식은 순수한 자기만족을 얻을 수 있다. 더 현명해지고 더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질적인 변화를 통하여 삶의 충만함을 이끌어낸다. 욕심이 안날 수 없다. 그러면 카드를 늘리게 된다. 


 Anki에서 학습할 카드의 양이 줄어드는 것을 보여주면서 얼마나 학습 효율이 좋은지 강조한 적이 있다(링크). 하지만 실제로는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공부에 욕심이 생기면 자신의 한계까지 공부할 카드의 수를 늘리게 되기 때문이다. 복습할 카드의 양이 줄어드는 만큼 새로운 카드를 늘리게 된다. 이건 운동에 중독된 사람이 자신의 몸을 한계까지 운동하지 않으면 뭔가 하다 만 것처럼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운동과는 달리 큰 한계도, 부상의 위험도 없이 진도가 쑥쑥 나가기 때문에 카드수를 늘리는 것은 매우 쉽다. 


 이쯤 되면 Anki에 중독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매일 한계까지 공부해야 해치울 수 있는 카드들을 만들고, 그것을 해치우는 것에 중독되는 것이다. 이러면 직장에 나가서도 어떻게든 짜투리 시간을 만들어 이 카드들을 해치우려고 한다. 친구와 만나고 연인과 만나도 빨리 카드를 해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 한켠을 차지하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암기하다가 점점 정신이 흐려지는 것을 경험했다. 나의 뇌가 감당할 수 있는 공부량을 초과한 것이다. 몇 번 그런 상황을 겪고 나니 공부량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하여 카드수를 줄이고 오후 8시쯤에 암기를 끝났다. 적어도 저녁에 다른 짓을 즐겨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정신적인 허탈감과 허무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도 재미가 없고, TV나 영화도 그저 그랬다. 결국, 자극적인 내용을 찾아 인터넷 서핑을 하게 된다.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맞추기 위한 암기가 아니라, 내 스스로 향유할 지식을 갖추기 위한 암기는 많이 다르다. 평생을 기억하고 싶어서 암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암기하고 내용을 궁구하게 된다. 흔히, 한번 읽을 때는 대략적인 이해를 하고 넘어간다. 마치 해당 문구를 한 단어로 이해했다는 듯이 넘어가게 된다. 실제로는 한 단어 정도만 어설프게 떠오르는 셈이다. 하지만 암기를 하게 되면 그 문구가 머릿속에 온전히 담기기 때문에 머릿속에 들어온 문구들이 살아서 움직여 배경지식과 섞이게 된다. 그것이 하나의 문구를 이해하는 방식인 것이다. 이렇게 공부를 해보니 암기가 바로 공부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보다 깊은 이해에 도달하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면, 지식을 스치듯이 지나가는 것이 너무 허전하고 부족해 보이기 시작한다. 지식을 이해하고 그것이 내면화되는 과정 자체가 매우 자극적인 쾌락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제 독서를 예전만큼 잘 하지 못한다. 그저 스치듯이 읽고 지나가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책을 쪼개고 정리해서 암기하고 싶어지지 한 번 읽고 지나치는 것은 무언가 너무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이는 Anki의 부작용이다. 


 최근에는 Anki의 카드수도 줄이고 화장실에서만이라도 편안하게 독서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서 공부도 천자문하고 한문만 하고 있다. 천자문도 카드의 수가 너무 넘치지 않게 주말에는 새로운 카드를 추가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좀이 쑤시고 진도가 너무 느린 것 같아 다시 또 카드의 수를 늘리고 싶은 욕구와 싸우고 있다. 이런 것이 중독일 것이다. 아마 평생 이런 문제로 고민하지 않을까 싶다. 

Anki가 카드의 앞뒷면을 이용한 학습도구라는 점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해왔고 분명히 Anki는 지식을 효과적으로 다루고 볼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카드 학습도구다. 그렇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Anki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Anki의 진정한 가치는 개별 카드의 학습을 매우 효율적으로 관리해주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다.

      

앞서 처음 암기(Anki)한 이야기에서 언급한 대로 헤르만 어빙하우스 망각 곡선의 원칙에 따라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망각곡선에 따라 지식을 관리하고 조절할 수 있는 학습 관리 시스템을 찾았다. 그러다가 마주친 것인 Anki였다. 

      

Anki학습 관리 원칙망각 곡선과는 조금 달랐다. 망각 곡선의 원리와 완전히 다른 원칙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망각 곡선 외에 더 많은 요소를 고려한 복잡하고 섬세한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어떤 카드를 공부했을 때, 이 카드를 공부한 횟수가 많을수록 더 카드의 노출 간격이 길어지면서 더 드문드문 그 카드와 마주치게 된다는 점은 망각 곡선과 유사하다. 하지만 카드를 학습한 후 학습자가 평가한 난이도에 따라 조금씩 간격이 길어지거나 짧아지고 항상 비슷한 카드들이 비슷한 순서로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약간의 무작위적 변동(±α)이 적용되도록 한 점 등 좀 더 섬세하게 바뀐 점이 많다. 이런 Anki의 학습 관리 시스템은 결국 카드의 노출 간격을 적절히 조절하여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므로 간격 반복 시스템(spaced repetition system)이라고 부른다. 

      

Anki간격 반복 시스템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01_Introduction(개요)_Anki_2.0 유저 매뉴얼

107_(FAQ)_자주_묻는_질문_2.0_유저_매뉴얼



그렇다면 이러한 간격 반복 시스템은 실제 얼마나 효율적일까?

     

우선 카드를 처음 만들면 새 카드를 익히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 충분히 익혔다고 판단되면 복습카드로 변한다. 그리고 복습카드 부터는 한번 공부할 때마다 간격 반복 시스템이 적용되어 해당 카드가 나타나는 노출 간격이 늘어나므로 실제 카드가 나타나는 빈도수는 줄어들게 된다. 

     

이 때, 카드의 간격은 기본적으로 앞서의 간격의 2.5배±α 가 증가하는 식으로 늘어난다. 

     

카드의 간격은 기본적으로 2.5배씩 늘어나지만 응답시간이나 난이도 평가에 따라서 조금씩 그 비율이 변경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루고 이번에는 기본 간격인 2.5로만 이야기를 진행하도록 하자.

     

±α는 카드들이 매번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도입된 변동 요소다. 

     

아래의 그림을 보자 ±α가 없을 때 1,000개의 카드가 시간이 지나가면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주고 있다. 2.5배씩 간격이 벌어지지만 매번 하루에 1,000개의 카드가 나타난다


±α가 있으면 양상이 달라진다. 간격이 벌어지면서 카드들이 여러 날에 걸쳐서 분산되기 시작한다.


±α가 있음으로 인하여 카드들은 공부한 회차가 늘어날수록 점점 여러 날에 걸쳐 나타나게 되기 때문에 카드를 공부할수록 1,000개의 카드가 점점 넓게 여러날로 분산되고 그만큼 매일매일 공부하는 부담도 같이 줄어들게 된다

     

±α 값은 공개된 값을 찾지 못해 임의로 추정하여 적용한 값이다. 



간격 반복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살펴 보았으니 이번에는 간단한 사례로 실제로 카드가 시간에 따라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확인해보자. 


우선, 카드 1개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자. 

    

카드의 노출 간격은 앞선 간격의 대략 2.5배로 늘어난다. (±α는 평균적으로 0이므로 개별 카드 1개의 기간을 계산할 때는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면 첫날 공부한 카드는 3일, 9일, 26일, 75일, 218일, 632일 순으로 노출 간격이 늘어나게 된다. 이를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카드 학습 횟수 

간격 

학습기간 

 1회

 1일

1일 

 2회

 3일

4일 

 3회

 9일

13일 

 4회

 26일

39일 

 5회

 75일

114일

 6회

 218일

332일 

 7회

 1.7

2.6 

 8회

 5.0

7.7 

 9회

 14.6

 22.2



즉, 하나의 카드를 9번 공부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22.2년이므로 평생 1개의 카드를 9번 정도 반복해서 공부하게 된다. 바꿔서 생각해보면 한 개의 카드를 9번만 반복해서 익히면 평생 해당 기억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니 얼마나 효율적인 학습인지 가늠할 수 있다. 물론, 매순간마다 제대로 학습한다는 전제하에서 하는 말이다.



학습을 하면서 전체 학습하는 카드가 줄어드는 양상을 살펴보면 얼마나 효과적인 학습인지가 분명해진다. 가령, 1,000개의 카드를 매번 적절하게 학습한다고 가정할 때 카드의 개수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시뮬레이션 해보자

      

1,000개의 카드는 대략 2일 후에 500개 3일 후에 500개 정도의 카드로 반으로 쪼개져서 나타난다. 

     

그래서 첫 주는 첫날 1,000개의 카드와 3일 500개, 4일 500개로 2,000개의 카드를 7일 동안 학습하게 되므로 첫 번째 주에는 일평균 286개의 카드를 학습한다. 하지만 두 번째 주부터는 일평균 카드의 수가 143개로 반으로 줄어들고 매주 마다 거의 절반 수준으로 일평균 카드의 수가 줄어들다가 반년(26주)이 지나면 이제 주당 1~2개의 카드 정도를 학습하게 된다.



Anki의 간격 반복 시스템은 결국, 학습할 카드들을 대략 9번 정도 반복하면서 그 때마다 간격을 크게 늘리고 카드를 분산시켜 극한의 효율로 학습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터무니없게 공부량이 줄어드는데 과연 제대로 학습이 이루어지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최적의 실험을 설계해서 이를 철저히 검증하면 좋겠지만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므로 Anki에서 주장하는 그 학습 관리 원칙이 옳은지 틀린지는 개인으로 검증하긴 어렵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는 Anki를 사용하고 있는 나 자신의 경험상 Anki 학습 관리 원칙에 따른 학습은 매우 만족스럽다는 정도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카드를 학습할수록 카드들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공부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왜냐하면 지금 이 고비만 넘어가면 그 다음부터는 카드의 개수가 훨씬 줄어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힘들 때에도 속으로 “이번만 잘 넘기면 다음부턴 훨씬 쉬워”라고 뇌까리면서 카드를 끝까지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에 파격적으로 줄어드는 카드의 개수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고 후련하게 된다. 이런 식의 선순환 덕분에 나의 Anki 공부는 카드를 치워서 점점 부담이 줄어들고 후련해진다는 식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지금은 매일매일 카드를 치워 버릴 때마다 느끼는 후련함에 중독되어 버렸다

기공류 등 신비의 세계를 파헤친 결과 얻은 또 하나는 자기 계발서를 발견한 것이다. 정확히는 자기 계발서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한 것이다.

 

, 자기 계발서는 나의 욕망이 현현된 것이고 거기에 심상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이해한 것이다.

 

중학교 1학년인 나에게 자기 계발서는 무공비급처럼 보였다. “○○○을 하시면 ○○○이 됩니다.”라는 단순하고 명확한 구조는 어린 아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 “삼시 세끼를 들깨로 120일간 먹으면 몸을 날릴 수 있습니다.”와 같은 문구는 얼마나 이해하기 쉬운가. 그저 그대로 하면 된다. 특히, 내공류나 기공류의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들보다 훨씬 쉽게 다가오는 친절한 무공비급처럼 보였다. ‘3시간 수면법을 읽고 하루 3시간만 수면하면 하루 21시간의 시간을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타인의 심리를 읽는 법, 여자 꼬시는 법, 사기치는 법, 안마하는 법 등 온갖 책을 읽고 가능한 경우에는 시도도 해보았다. 신비주의 계열도 많이 읽어봐서 점성학부터 연금술까지 열심히 읽어 봤다.

 

자기 계발서는 항상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다. 사람들을 성공시키고 뛰어난 능력을 주고 온갖 신비한 능력을 갖추게 해준다. 이 모든 자기 계발서가 허황된 것은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자기 계발서도 있고 허황되어 보이고 믿을 수 없는 자기 계발서도 있다. 하지만 자기 계발서를 읽는 사람의 마음은 대부분 허황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자기 계발서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모르는 분야,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를 바라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결핍에 대한 반작용으로 욕망이 발생할 때 평소에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도 자기 계발서를 읽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부족한 것이 없을 때는, 자신의 일에 바빠서 그러한 자기 계발서를 들추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기 계발서에 빠지는 많은 사람들이 맹목적이고 어리석어 보이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주는 ‘How to’ 시리즈 같은 매뉴얼이 아니라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것을 다루는 기공류나 연금술, 신비주의 등은 정말 오래된 자기 계발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 계발서는 언어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비유를 사용하고 약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내용을 보면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과 그것을 얻기 위하여 해야할 절차 등을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관과 가치관으로 자연스럽게 전환하여 상상한다. 저자는 그저 독자가 그러한 상상력을 발현할 수 있도록 처음에 욕망을 자극하고 어느 정도 가능해 보이는 절차를 상상해서 제시하고 마지막으로 몇 가지 성공사례를 보여주면 나머지는 독자가 알아서 빠져든다.

 

그런데 그러한 방법이나 내용이 상당 부분 개연성 있게 제시되는 경우가 많다. 잘 알려진 사례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닌자들이 높이 뛰기 위한 기술을 수행하는 방법이라고 하는데 이 방법을 따르면 어지간한 집들 정도는 가볍게 뛰어오를 수 있게 된다고 하는 능력을 익히는 방법이다. 이 기술은 초능력 같은 것을 준다는 자기 계발서의 핵심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방법은 간단하고 명확하다. 핵심은 나무 묘목을 마당에 심고 매일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그 묘목을 뛰어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나무 묘목은 천천히 커진다. 따라서 사람이 매일 열심히 훈련을 하면 그 나무 묘목이 자라는 속도에 맞추어 뛰는 능력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나무는 작은 초가집 정도는 뛰어넘게 자란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능력도 집을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커진다.

 

여기에서 사람들에게 구축하려고 하는 심상(心象)이 보이는가?

 

묘목이 낮게 땅위에 모습만 보인 상태일 경우에는 사람은 당연히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은 사람은 그것을 뛰어넘는 자신의 상태를 당연히 긍정할 수 있다. 그리고 매일 열심히 연습한다면 그 구체적인 연습량이나 발전 정도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나무 묘목이 매일 0.1밀리미터 정도 올라가는 수준이라면 가능하겠지 하는 식의 등식이 성립된다. 따라서 사람은 나무의 성장속도에 따라서 스스로의 점프 실력을 늘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나무가 집보다 커짐으로써 사람의 점프 실력도 자연스럽게 집보다 높이 뛸 수 있게 된다.

 

실제로는 따져야할게 더 많다. 첫 번째는 훈련량이 얼마나 되어야 하며, 매일 훈련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고 두 번째는 인간의 발전 한계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을 문학적인 표현을 이용하여 뛰어넘어 버렸다.

 

, 첫 번째로 묘목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한번 동의하게 되고, 두 번째 구절에서 그 묘목이 적당히 낮다고 스스로 전제하면서 당연히 그 묘목이 커지는 속도에 따라서 일정하게 발전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에 동의하게 된다. 그리고 그 동의가 그야말로 해당 명제에 대한 동의이므로 그냥 나무가 집보다 커진다면 사람의 점프실력도 그냥 집보다 높게 뛸 수 있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동의하게 되면 내 머릿속에 등록된 심상은 충분히 노력한다면 극히 작은 정도의 발전을 언제나 이룩할 수 있다.”가 된다. 이러한 심상은 사실 본인이 가진 욕망 즉, “높이 뛰고 싶다.”라는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스스로 구축한 것이고 그 이면에는 인정 욕구와 성적인 욕구도 아마 동반될 것이다. 사실, 이것 자체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냥 이런 심상을 이용해서 다른 영역에서 스스로 노력할 수 있다면 오히려 노력하게 하고 발전하게 해주는 좋은 심상이 된다. 하지만 진짜로 집보다 높이 뛰겠다고 노력하게 되면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좌절이 심상의 긍정적인 면까지 파괴하게 되고 인생이 헝클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자기 계발서를 볼 때, 그 자기 계발서를 고른 나의 욕망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당연히 내가 낚인 것이라는 생각을 전제로 깔고 보게 된다. 그러면 예외 없이 너는 할 수 있다라는 식의 응원을 본다. 이 부분은 천천히 즐긴다. 현실에서 나를 칭찬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자기 계발서에서라도 가능하다고 말해주니 참 다행이다. 미약하나마 자존감을 추스릴 계기가 되어준다. 그리고 읽는다. 역시 나의 욕망을 자극하니 짜릿하고 흥분된다. 큰 바위를 쪼개고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집을 뛰어넘는 자신을 생각해본다.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으로 일을 쾌도난마로 해결하는 본인의 모습도 상상해본다. 책에서는 그런 자신이 가능하다고 연신 다독여준다. 잠시 고조된 자존감과 함께 그렇게 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방법을 찾는다. 방법을 실천하는 자신을 생각해본다. 거듭 생각하다 보면 거기에 구축된 심상이 보인다. 많이 읽다 보니 어느 순간 패턴이 보이는 것이다.

 

자기 계발서의 기본 패턴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어”, “조금만 노력하면 될거야”, “너의 잠재력을 믿어봐라는 식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나아가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심상을 기본으로 깔고 들어간다. 이것을 설득하는 과정은 대부분 원효대사의 모든 것이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와 같은 패턴이고 이것을 적극적으로 설득한다. 이 부분은 제일 좋아하는 심상이지만 현실에서는 구축하기 어려우므로 자기 계발서를 통해서 고양시킬 수밖에 없었다. 자기 계발서에서는 저마다 근거를 가지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심상을 강조하기 때문에 볼 때마다 새로운 재미가 있고 새로운 관점으로 나에게 이 심상을 제공해주었다. 이 맛에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색다른 재미를 주는 자기 계발서를 찾는 것에 중독되어버리기도 했다.

 

그 다음 즐길 거리는 그들이 제시하는 방법이다. 가능할 것 같은 방법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너무 어렵기도 하고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때로는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방법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다. 그것은 그대로 재미있다. 그야말로 병맛의 최고봉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마주치기 어렵거나 수행하기 어려운 방식이지만 동시에 가능할 것 같다고 상상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쉽다고 생각되는가? 나는 그것도 나름 문학창작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축지법을 쓰는 방법을 해설한 책을 봤는데, 몸을 완벽한 오각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우주가 알아서 축지를 일으켜 준다나? 너무 재미있었다. 완벽한 오각형은 대단한 떡밥 아닌가? 누구도 그 사람의 자세가 완벽한 오각형이라고 말해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해볼법한 쉬운 해결책이고 또, 동시에 객관적으로 완벽하지 않다고 부정하기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믿고 실제로 오각형을 만들려고 버둥대는 내 모습을 생각해보면 너무 웃긴다. 게다가 이런 것을 진짜 축지법을 쓰는 방법이라고 제시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서 역시 세상은 넓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류의 책들은 점점 창의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보았던 책에서는 축지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보폭을 늘려야 한다고 했는데 이제는 완벽한 오각형이라니 아마도 이러한 떡밥은 개연성 위주의 방법을 버리고 신비주의 방식으로 바꾼 것 같다. 다음에는 어떤 방법이 등장할지 내심 기대가 된다. 그러한 방법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도 대단한 창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시도해보지 않을 테지만 정말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면 그것은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 결론적으로 나는 자기 계발서를 이해함과 동시에 그 자기 계발서 읽기에 중독되었다. 이것은 무협과는 다른 읽는 재미가 있고, 때로는 내 정신을 정말 판타지로 옮겨주기 때문에 무척 즐겨 읽었다. 물론, 실행은 조금밖에 하지 않았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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