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우에는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다. 어렸을 때나 나이를 먹은 지금이나 그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몸의 에너지가 넘쳐서 움직이고 싶은데 그것을 제어했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답답해진다. 그리고 몸 여기저기의 근육이 부들거리면서 떨리고 정신적으로 무척 부산스러워 진다. 이런 경향이 강한 사람도 있고 약한 사람도 있지만 나는 정말 강한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한시도 가만히 있기 힘든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공부한다고 앉아있으면 상황은 보통 이렇게 흘러간다. 처음에는 몸을 비비꼬면서 꿈틀거리지만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어떤 특이한 행동을 시작한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 나에게 그런 행위는 자신의 혀를 빠는 것이었다. 그러고 있으면 그냥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물론, 그러고 있을 때는 주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인지하지 못한다. 큰 소리로 내 이름을 호명하거나 누구나 주목할만한 사건이 벌어지면 그것을 인지하지만 그 외의 일들은 꿈결처럼 조용히 지나간다. 지속적으로 혀를 빠는 습관으로 인하여 혀의 근육이 너무 발달해서 혀로 내 코를 핥을 수 있을 정도였다. 너무 크고 강력한 혀가 앞니를 밀어버렸고, 앞니가 크게 앞으로 돌출되어 나와서 치과 교정을 해야 했다. 치과 선생님은 혀가 앞니를 밀지 못하게 혀의 움직임을 구속하는 장치를 입안에 끼워넣었고 결국, 혀를 빠는 행위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혀를 빠는 행위를 대체한 행위는 손톱으로 피부를 긁는 행위다. 왼손의 엄지손톱 끝을 살짝 다른 손톱으로 잘라서 뾰족한 부분을 만든다. 그리고 그 뾰족한 부분으로 피부를 긁는 것이다. 이것은 자해와는 다르다. 자해와는 달리 상처가 나거나 피를 흘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부를 손톱으로 긁으면 그 부위가 무척 시원하게 느껴졌다. 이 행위가 혀를 빠는 행위보다 조금 나은 것이 적어도 손톱으로 피부를 긁으면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혀를 빠는 행위는 몰입도가 너무 높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반면에 그나마 인간적인 생활이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흥미가 떨어지는 즉시, 이 행위에 1~2시간 씩 몰두하게 되므로 시간을 잡아먹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앉기만 하면 몸을 비비꼬거나 손톱을 긁으면서 스스로를 잊고 망아의 상태로 몰입해버리니 공부가 될 리가 없다. 앉아서 공부하는 시간을 분석해보면 1시간을 앉아 있을 때 30분은 몸을 비비꼬다가 30분은 손톱을 피부에 긁으면서 무아지경에 있거나 망상에 빠져있는 것으로 실제 공부하는 시간은 10분도 채 안 되는 것 같다. 주관적 느낌으로는 책의 제목을 읽고 일단, 앞으로 펼쳐질 재미없는 공부시간을 떠올리면서 이런 재미없는 행위를 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다. 그리고 펼쳐질 지옥같은 공부시간을 상상하며 괴로워하다가 앉아있는 자신의 몸이 답답하다고 보내오는 신호에 짜증이 나고 마지막으로, 스트레스를 못이겨 정신적으로 퇴행해서 손톱을 피부에 긁으면서 멍하니 앉아있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가 될 수 없으니 시험성적을 잘 받고 싶었던 나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 아이디어를 강구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것은 아이디어를 강구한 것이 아니라 그냥 발악한 것에 가까웠다. 자세를 바꿔보고 다리를 꼬아보고 하면서 신체를 구속해보기도 하고, 수시로 기지개를 키면서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래도 정신적으로 퇴행되는 것을 피하려고 하다보니 멍하니 앉아있지는 않게 되었고 반대로 몸의 답답한 감각은 계속 올라와서 조금만 힘들어져도 일어나서 움직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몸을 움직일 때는 정신이 맑아지는데 앉으면 다시 고통을 참다가 일어나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그냥 앉는 것을 포기했다. 도저히 앉아서 공부가 되지 않으니 굳이 머리를 굴리는데 앉아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걷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공부의 효율이 붙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실험을 하다보니 걸으면서 공부하는 방법이 명확하게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구체화된 방식은 아래와 같다.


우선책을 1페이지 가량 혹은 챕터 별로 잘게 쪼개서 집중해서 읽는다다 읽는데 2~3분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책은 놓고 일어나서 걷는다걸으면서 그 읽었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걸으면서 관련 내용을 전부 떠올렸다고 생각하면 책으로 돌아와서 확인하면서 미심쩍은 부분이나 의심스러운 부분을 확인한다.


그리고 다시 걸으면서 복습처럼 떠올리고 해당 내용을 확정한 후 책의 다음 내용으로 넘어간다.


우선, 걷기 시작하니까 평소에 앉아서 공부할 때 느껴야 했던 신체의 답답한 느낌이 다 사라지고 스트레스를 거의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오히려 신체에 걷는다는 목적과 방법을 부여해서인지 난잡하게 비비꼬이던 몸이 정렬되고 걷는다는 목적을 충실하게 구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몸을 세워서 걷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주의력과 통제력이 항상 작동하고 있어야 한다. 덕분에 걷는 것만으로도 애써 노력할 필요 없이 주의력과 통제력이 자연스럽게 작동해서 어느 정도 이상의 집중력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몸이 피곤한 상태가 아니라면 졸음이나 지겨움 같은 장애요소가 나타나지 않아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나 저항감이 굉장히 완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걸음을 걷는 코스 동안 책을 보지 않고 해당 내용을 상기하려고 노력한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많은 이득을 안겨 주었다. 책을 암기하지 않고 내용만 흝어본 다음에 그것을 떠올리려고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책을 암기한 것이 아니니 토씨하나 놓치지 않고 책을 달달 외울 수 있게 될 리는 없다. 오히려 반대다. 읽은 내용을 스스로 상상하고 구축하게 된다(물론, 이 때 스스로 이것을 할 수 있다고 계속 스스로를 북돋워야 한다.). 한 페이지의 짧은 구간의 이야기가 어떤 구조로 작성되어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당장, 책을 보면서 확인할 수 없으니 머릿속으로 내가 떠올린 것이 논리적으로 맞는지 서로 비교하게 된다. , 잔머리를 굴려서 이건 이거하고 서로 안 맞으니까 이게 맞을 것 같아.” 따위의 논리적 추론을 시도하게 된다. 그래서 가장 적은 정신에너지를 들여서 해당 내용을 완전히 떠올리게 된다. 원하는 코스를 다 걷기 전까지는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 맞는지 틀린지 알 수 없으므로 미심쩍은 부분과 확신하는 부분에 대해서 계속 추론을 하면서 코스를 걷게 된다. 그리고 책이 나타났을 때 이것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일어난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니 읽은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암기할 수 있게 되었다(아쉽지만 요약이나 축약은 힘들다.).


이 방식이 훈련되기 시작하면서 중학생쯤 되었을 때는 머릿속으로 책의 전개를 쭉 이어서 하나의 이미지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해당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반복적으로 돌리면서 공부를 했다. 나는 이것을 이미지 트레이닝이라고 불렀다. 이 이미지 트레이닝의 효과는 정말 좋아서 하다보면 책의 내용들이 꿰어지면서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되었다. 그 때 스스로 내가 이것을 공부했고 알고 있구나 하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엇다. 다른 친구들은 교과서를 끊임없이 베끼고 읽고 또 읽으면서 공부했는데 그렇게 암기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이 좋았다.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혀를 빨거나 손톱으로 피부를 긁는 행위들은 모두 일종의 유아 퇴행현상이었다. 결국, 가만히 앉아있는 것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 자리에서 바로 퇴행해버린 것이다. 이런 퇴행은 내 인생에서 굉장히 큰 마이너스 요소였다. 결국,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정말 이상적인 것은 이러한 퇴행현상을 완전히 극복하는 것이지만 그게 그리 쉬울 리가 없다.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아쉽게도 많은 손해를 보게 될 수도 있다. 정확한 이유를 알고 극복할 방법과 자원이 준비되어 있다면 시도해볼 수 있지만 정확한 원인도 모르고 시도해서 실패할 경우 스스로의 자존감에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나는 이러한 퇴행현상을 극복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저 바로 내일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하는가?라는 질문에만 집중했고 내가 가지고 있던 근본적인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지는 않았다. 일단, 그게 퇴행현상이고 나쁜 것이고 극복해야할 것이고 이런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냥 내일 시험인데 어떻게 해야하나 발을 동동 구르면서 1차원적으로 아이답게 방법을 강구했을 뿐이다. 만일, 그 때 공부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추려서 극복하고 나서 공부를 하자고 했다면 아마도 공부를 전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40이 넘는 시점까지도 이 습관인지 기질인지 모를 것들은 여전히 잘 남아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것을 먼저 고치려고 했다면 인생이 헤어날길 없는 미궁으로 빨려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그것을 건드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찌나 다행인지!

 

퇴행현상을 고치지 않고 오히려 내 삶의 전제조건으로 받아들이고 공부하는 방법을 강구함으로써 걸어다니면서 공부하는 방법을 몸에 붙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는 기술을 얻었다. 이 이미지 트레이닝은 평생을 줄기차게 써먹은 기술이다. 만일, 계속 앉아서 공부할 생각을 했다면 평생 교과서를 연습장에 받아쓰면서 손가락으로 익숙하게 숙련이 될 때까지 반복하는 식의 공부를 해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퇴행 덕분에 머리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이야말로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고시에 도전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순전히 재수시절의 기억 때문이었다. 재수생 시절의 마법같은 일이 다시 발생한다면 단 기간에 고시 패스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물론, 이 마법같은 경험은 대학교 공부를 할 때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해 학점은 참혹했지만, 그 때는 청춘의 교우 관계에 힘을 쏟고 각종 행사에 토론에 정신이 없었고 전공 공부에는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대학 시험은 벼락치기로 간단히 넘어가기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차근차근 시간을 들여가면서 대입공부를 하던 때처럼 공부한다면 고시의 수월한 통과가 가능할 것이라고 속단한 것이다.

 

7년을 내리 놀기만 하다가 다시 공부를 하려고 하니 공부가 잘 될 리가 없다. 솔직히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있는 것도 어려웠다. 몸이 공부에 익숙해지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였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 것은 정말 큰 문제였다. 모든 활동을 정지하고 공부에 전력투구하기 시작했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수면에 난조가 왔다. 어차피 다른 활동을 하고 있지 않으니 졸리면 자고 일어나서는 공부하면 되는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묘사해야할까? 졸려서 자려고 누우면 정신이 맑아지고, 잠이 오지 않으니 일어나서 공부하려고 하면 미친 듯이 졸리고 피곤하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다. 누워있어도 고통스럽고 활동을 해도 고통스럽다. 내가 할 수 있는 활동은 오직 강력한 자극으로 정신을 각성시키는 활동만 가능했다. 공부를 하거나 사색을 하거나 책을 읽으려고 하면 너무 피곤하고 눈이 감기며 글은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너무 졸리고 피곤해서 이제 누우면 자겠지 하고 누우면 잠은 오지 않고 이런 저런 생각만 머리를 어지럽힌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이제 시험은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자고 싶었다. 아니 깨어있을 때는 정신이 맑고 잘 때는 푹 쉬고 싶었다. 하지만 오만가지 이유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첫 번째는 소리였다. 눕기만 하면 주위의 소리가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뇌로 쏙쏙 박히는 것만 같아서 계속 신경이 쓰였다. 문 밖에서 소곤거리는 소리, 어디선가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 대로변에서 차량이 이동하는 소리 등 정말 많은 소리가 침범해왔고 나는 그 소리를 감내할 수 없었다. 그 모든 소리에 분노하고 짜증을 내며 소리를 질렀다. 귀마개를 꽂아도 그런 소리는 여전히 너무나 잘 들렸다. 두 번째는 온도였다. 몸이 뜨거운 건지 항상 더워서 땀을 흘리고 그러한 땀이 배는 것을 참지 못하고 일어나게 되었다. 세 번째는 욱신거림이었다. 지금에는 하지불안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확인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해서 원인 불명의 증세가 나를 괴롭힌 것이다. 눕기만 하면 발을 쭉 뻗고 움직이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그 느낌이 신경을 미친 듯이 건드리고 있어 전혀 무시할 수 없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체증이었다. 나는 자주 체했다. 정말 자주 체해서 일주일에 5일은 체해있는 상태였다. 체하면 두통이 밀려오고 속이 뒤집어져서 잠 뿐만 아니라 어떠한 활동도 할 수 없었다. 잠이 들기 전에 체증이 가라앉으면 다행이지만 일단, 체증에 걸려있는 상황에서는 잠을 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지쳐 쓰러질 때가지 걷거나 자극적인 인터넷 세계를 탐방하는 것, 만화책을 보는 것이었다. 그것 말고는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서 체력을 완전히 소모하고 나면 체증이 가라앉고 지쳐 쓰러지면서 잠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이러한 조치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눕기만 하면 누가 머리를 바이스 같은 도구로 조이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어서 꽝꽝 때리는 느낌도 왔다. 그것은 실질적인 통증을 동반했고 정말 무지 아팠다. 이제는 지쳐 쓰러지듯 잠을 자는 것도 만만하지 않게 되었다. 다양한 실험을 해보았는데 일단 베개를 사용하면 머리를 조이는 느낌이 강해졌고, 모로 누워서 잘 수도 없었다. 엎드려 자는 것이 가장 심했기 때문에, 정자세로 누워서 목이 15도 정도 좌우로 기운 상태에서만 잘 수 있었다. 그 자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이제는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엄격한 규칙을 지켜야 잠을 잘 수 있었고, 이러한 규칙은 종종 나를 배반했다.  

 

스트레스가 극심해져서인지 체증은 더 자주 찾아왔다. 이 체증에 대해서는 따로 말해야겠지만 중등 시절부터 자주 겪어온 증세였고 평생의 지병처럼 생각하고 있는 증세였다. 그리고 고시생 시절에야 이 증세의 이름이 체증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 체증은 최근에야 완전히 극복되어서 극복하는데 25년이 걸렸다. 당시, 스트레스가 극심하고 무언가의 균형이 깨졌는지, 체증이 정말 극심해졌다. 평소에는 머리가 아프고 속이 뒤집어지는 정도였다면 이 때 부터는 항상, 오한을 동반하고 몸이 미친듯이 떨리고 고통으로 정신을 하나도 차릴 수 없게 만드니 나중에는 이 체증이 말라리아 같은 학질이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했었다.

 

그러고 누우면 다시 공포스러운 고통이 찾아왔다. 너무 지쳐서 의식을 잃을 때까지 밀어붙여야 가까스로 잠을 잤는데, 일어날 때는 식은땀에 흠뻑 젖어서 고통스러워하며 일어나는게 일상이었다. 잠을 잔 것이 말끔하고 개운한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죽다 살아난 것 같은 기분을 주면서 허우적거리며 일어나서는 그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는 듯이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수면 무호흡증도 심했던 것 같다.

 

당연히, 병원을 찾아가서 이것저것을 하소연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의사들의 말은 한결같이 스트레스를 줄여라.”였다. 물론, 이 모든 증세에 스트레스가 한몫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또 증세로부터 오는 스트레스가 너무 극심했기 때문에 증세를 없애는 것이 우선이어야 했다. 하지만 의사들의 처방은 스트레스 과다였고, 나는 좌절하면서 병원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고시 공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정도로 아프게 되면 아무리 주위 보기가 민망하고 인생에서 낙오하는 것 같아도 내가 살아야 했기에 고시의 포기는 깔끔하게 되었다이 상황을 개선해야겠다는 생각 말고는 어떠한 생각도 할 수 없었고 고시 공부를 포기해서 스트레스를 줄여여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시 공부를 포기했어도 여전히 증세는 계속되었다. 오히려 고시 포기에 따른 우울증까지 겹쳤다. 끊임없이 악몽을 꾸었다. 악몽을 꿀 것을 알아도 자지 않을 수는 없었다. 수면은 어쩔 수 없이 지옥으로 입장하는 것이었지만, 그 지옥도 깨어있는 현실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아귀의 고통이 이런 걸까? 아귀는 먹고 싶은 탐욕에 미쳐있지만 먹을 기회가 거의 없고 가까스로 먹을 것을 구해 먹을 것을 넘길 때 어마어마한 고통을 느낀다. 내가 바로 그러한 느낌이었다. 쉬고 싶고 자고 싶은 열망에 몸부림치지만 잠을 자면 첫 번째로 잠을 잘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미친 듯이 수면에 대한 욕구에 시달렸다. 두 번째로는 잠에 들기 직전까지 반드시 머리를 조이고 때리는 것 같은 고통에 시달렸고, 가까스로 잠을 자면 악몽이 덮쳤다. 그리고 깨어날 때는 전혀 개운하지 않고 죽었다가 살아난 느낌으로 일어났다. 몸은 식은땀으로 젖어서 숨이 부족해 숨을 몰아쉬었고 기분에 끔찍했다.

 

3년을 버티다가 결국 수면제를 받아서 복용해보았다. 이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수면제를 복용했는데, 일단, 잠은 바로 잘 수 있었다. 하지만 1시간 만에 일어났다. 그것은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고통과 함께 잠에서 쫓겨나듯이 일어났다. 처음 겪어본 고통이었던 것 같다. 평소 머리를 조이는 것 같은 고통과 머리를 꽝꽝 때리는 것 같은 고통을 한계가지 밀어붙이면 어떤 고통이 오는지 처음 알았다. 고통을 없앨 수만 있다면 나는 내 머리를 부수어도 좋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머리를 벽에다가 찍었다. 아무런 느낌이 없고 무언가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고통이 가라앉을 때까지 끊임없이 머리를 벽에다가 찍었다. 나는 원래 겁이 많고 소심한 편이라 이런 식의 고통스러운 자해 행동을 매우 싫어하지만 당시는 살고 싶지 않았고 모든 두려움과 걱정은 없었다. 그냥 실행에 옮겼다. 다행히, 고통으로 힘이 없었는지 내 머리가 부서지지도 않았고 고통도 가라앉았다. 이 때의 고통은 지금도 떠올리기만 해도 무섭고 진저리쳐진다.

 

그리고 이 고통을 겪고 나서야 나는 의심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나는 이러한 수면의 장애가 체증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고시에 대한 스트레스, 그리고 평소의 낮과 밤이 바뀐 불규칙한 생활습관이 맞닿아 일어난 증세라고 의심했었다. 체증은 항상 있었고 고시공부를 시작하자마자 너무 갑작스럽게 수면 장애가 왔기 때문에 그렇게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머리를 조이는 통증과 꽝꽝거리는 통증도 그 동일선상에서 왔다고 생각했다그 때 내 스스로가 반쯤은 말 그대로 미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정신병원을 가서 확증하는게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스스로 미치지 않았다고 자위하면서 이 모든 문제를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그래서 통증도 내 자신의 광증의 소산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고시를 포기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건강한 수면 패턴을 다시 찾으면 체증은 어떻게 안되더라도 수면은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그 일환으로 수면제를 처방 받은 것이다(엄밀하게 확인할 정신은 없어서 진짜 수면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가 정신적인 것이었다면 수면제로 인한 그 지독한 고통이 설명되지 않았다. 이 때, 나는 잠시 차분해졌다. 그 동안의 전제를 내려놓고 상황을 둘러보다가 물을 마실 때마다 어금니 쪽이 시려지는 느낌이 갑자기 떠올랐다. 확신이 왔다.

 

치과에서 10년간 교정을 해서 치과에 매우 익숙하면서도 정말 싫어한다. 이빨을 가는 드릴의 소리와 느낌이 이상하고 그 뾰족한 도구들을 보는 것도 싫다. 숱하게 겪었던 치료와 진료도 지겨웠고 교정이 끝나면서 다시는 치과를 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환호했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치과를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날은 그 모든 불쾌감을 무릅쓰고 결연하게 치과에 갔다. 어쩌면 치과를 싫어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동안 충치라는 가능성을 애써 외면해왔던 것이 아닌지, 그래서 그 보다 더 강력한 고통을 겪고 나서야 그 가능성을 떠올린 것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치과 선생님은 한 번 입안을 스윽 보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사랑니가 다섯 조각으로 갈라져 균열이 갔습니다. 고통이 심했을 텐데 빨리 오시지.”

 

그 날 사랑니를 뽑고 집에 돌아오면서 앓던 이를 뽑는 느낌이 무엇인지 정말 확실하게 배웠다.

 

그리고 충치를 뽑자마자 머리를 바이스로 꽉 누르는 통증과 때리는 통증은 사라졌다.

 

하지만 나의 문제는 전부 사라지지 않았다. 극히 일부만 사라졌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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