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ki가 카드의 앞뒷면을 이용한 학습도구라는 점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해왔고 분명히 Anki는 지식을 효과적으로 다루고 볼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카드 학습도구다. 그렇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Anki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Anki의 진정한 가치는 개별 카드의 학습을 매우 효율적으로 관리해주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다.
앞서 처음 암기(Anki)한 이야기에서 언급한 대로 헤르만 어빙하우스의 망각 곡선의 원칙에 따라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망각곡선에 따라 지식을 관리하고 조절할 수 있는 학습 관리 시스템을 찾았다. 그러다가 마주친 것인 Anki였다.
Anki의 학습 관리 원칙은 망각 곡선과는 조금 달랐다. 망각 곡선의 원리와 완전히 다른 원칙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망각 곡선 외에 더 많은 요소를 고려한 복잡하고 섬세한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어떤 카드를 공부했을 때, 이 카드를 공부한 횟수가 많을수록 더 카드의 노출 간격이 길어지면서 더 드문드문 그 카드와 마주치게 된다는 점은 망각 곡선과 유사하다. 하지만 카드를 학습한 후 학습자가 평가한 난이도에 따라 조금씩 간격이 길어지거나 짧아지고 항상 비슷한 카드들이 비슷한 순서로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약간의 무작위적 변동(±α)이 적용되도록 한 점 등 좀 더 섬세하게 바뀐 점이 많다. 이런 Anki의 학습 관리 시스템은 결국 카드의 노출 간격을 적절히 조절하여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므로 간격 반복 시스템(spaced repetition system)이라고 부른다.
Anki의 간격 반복 시스템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01_Introduction(개요)_Anki_2.0 유저 매뉴얼
그렇다면 이러한 간격 반복 시스템은 실제 얼마나 효율적일까?
우선 카드를 처음 만들면 새 카드를 익히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 충분히 익혔다고 판단되면 복습카드로 변한다. 그리고 복습카드 부터는 한번 공부할 때마다 간격 반복 시스템이 적용되어 해당 카드가 나타나는 노출 간격이 늘어나므로 실제 카드가 나타나는 빈도수는 줄어들게 된다.
이 때, 카드의 간격은 기본적으로 앞서의 간격의 2.5배±α 가 증가하는 식으로 늘어난다.
카드의 간격은 기본적으로 2.5배씩 늘어나지만 응답시간이나 난이도 평가에 따라서 조금씩 그 비율이 변경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루고 이번에는 기본 간격인 2.5배로만 이야기를 진행하도록 하자.
±α는 카드들이 매번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도입된 변동 요소다.
아래의 그림을 보자 ±α가 없을 때 1,000개의 카드가 시간이 지나가면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주고 있다. 2.5배씩 간격이 벌어지지만 매번 하루에 1,000개의 카드가 나타난다.
±α가 있으면 양상이 달라진다. 간격이 벌어지면서 카드들이 여러 날에 걸쳐서 분산되기 시작한다.
±α가 있음으로 인하여 카드들은 공부한 회차가 늘어날수록 점점 여러 날에 걸쳐 나타나게 되기 때문에 카드를 공부할수록 1,000개의 카드가 점점 넓게 여러날로 분산되고 그만큼 매일매일 공부하는 부담도 같이 줄어들게 된다.
※ ±α 값은 공개된 값을 찾지 못해 임의로 추정하여 적용한 값이다.
간격 반복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살펴 보았으니 이번에는 간단한 사례로 실제로 카드가 시간에 따라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확인해보자.
우선, 카드 1개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자.
카드의 노출 간격은 앞선 간격의 대략 2.5배로 늘어난다. (±α는 평균적으로 0이므로 개별 카드 1개의 기간을 계산할 때는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면 첫날 공부한 카드는 3일, 9일, 26일, 75일, 218일, 632일 순으로 노출 간격이 늘어나게 된다. 이를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카드 학습 횟수 |
간격 |
총 학습기간 |
1회 |
1일 |
1일 |
2회 |
3일 |
4일 |
3회 |
9일 |
13일 |
4회 |
26일 |
39일 |
5회 |
75일 |
114일 |
6회 |
218일 |
332일 |
7회 |
1.7년 |
2.6년 |
8회 |
5.0년 |
7.7년 |
9회 |
14.6년 |
22.2년 |
즉, 하나의 카드를 9번 공부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22.2년이므로 평생 1개의 카드를 9번 정도 반복해서 공부하게 된다. 바꿔서 생각해보면 한 개의 카드를 9번만 반복해서 익히면 평생 해당 기억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니 얼마나 효율적인 학습인지 가늠할 수 있다. 물론, 매순간마다 제대로 학습한다는 전제하에서 하는 말이다.
학습을 하면서 전체 학습하는 카드가 줄어드는 양상을 살펴보면 얼마나 효과적인 학습인지가 분명해진다. 가령, 1,000개의 카드를 매번 적절하게 학습한다고 가정할 때 카드의 개수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시뮬레이션 해보자.
1,000개의 카드는 대략 2일 후에 500개 3일 후에 500개 정도의 카드로 반으로 쪼개져서 나타난다.
그래서 첫 주는 첫날 1,000개의 카드와 3일 500개, 4일 500개로 2,000개의 카드를 7일 동안 학습하게 되므로 첫 번째 주에는 일평균 286개의 카드를 학습한다. 하지만 두 번째 주부터는 일평균 카드의 수가 143개로 반으로 줄어들고 매주 마다 거의 절반 수준으로 일평균 카드의 수가 줄어들다가 반년(26주)이 지나면 이제 주당 1~2개의 카드 정도를 학습하게 된다.
Anki의 간격 반복 시스템은 결국, 학습할 카드들을 대략 9번 정도 반복하면서 그 때마다 간격을 크게 늘리고 카드를 분산시켜 극한의 효율로 학습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터무니없게 공부량이 줄어드는데 과연 제대로 학습이 이루어지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최적의 실험을 설계해서 이를 철저히 검증하면 좋겠지만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므로 Anki에서 주장하는 그 학습 관리 원칙이 옳은지 틀린지는 개인으로 검증하긴 어렵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는 Anki를 사용하고 있는 나 자신의 경험상 Anki의 학습 관리 원칙에 따른 학습은 매우 만족스럽다는 정도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카드를 학습할수록 카드들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공부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왜냐하면 지금 이 고비만 넘어가면 그 다음부터는 카드의 개수가 훨씬 줄어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힘들 때에도 속으로 “이번만 잘 넘기면 다음부턴 훨씬 쉬워”라고 뇌까리면서 카드를 끝까지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에 파격적으로 줄어드는 카드의 개수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고 후련하게 된다. 이런 식의 선순환 덕분에 나의 Anki 공부는 카드를 치워서 점점 부담이 줄어들고 후련해진다는 식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지금은 매일매일 카드를 치워 버릴 때마다 느끼는 후련함에 중독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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