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마라”(이하 영절하) 공부 방법을 듣고 나서 호기심에 무작정 미드를 녹음해서 귀에다 때려 박아보았지만 성과가 없었다. 영어 전반에서 기량이 향상되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주구장창 듣는 미드도 여전히 잘 알아듣지 못했다. 몇 개월이 지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배경음만 점점 친숙해질 뿐이었다. 필시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뭔지 알 수 없었다. 호기심이 늘 그렇듯 효과가 없어 보이니 더 이상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고 그렇게 공부를 접었다. 




 몇 년 후에 도서관에서 “English RE-start” 시리즈를 봤다. 책이 예뻤고 무슨 의도로 책을 만들었는지 명확해보여서 읽어봤다. 적절한 수준의 쉬운 영어로 주변을 묘사하고 단순한 이야기를 그림과 같이 전개하고 있었다. 한국어가 개입되지 않고 직관적인 그림을 보면서 영어를 이해하는 과정을 그려나간 것이 흥미로웠지만 그 뿐이었다. 영어 공부에 관심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인연인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하면서 계속 관련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책도 사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학습하는 앱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앱이 나의 호기심을 다시 자극했다. 






 “English RE-start”는 한 페이지를 4컷으로 분할하여 간단한 이야기를 전개하는 구조를 가진다. 그리고 “English RE-start” 학습 앱은 분할된 컷을 한 화면으로 해서 그림과 함께 텍스트를 보여주면서 원어민이 천천히 텍스트를 읽어준다. 그리고 다음 컷으로 이동한다. 이 간단한 구성이 내게 아이디어를 주었다. 즉, 영절하식 공부 방법을 이 앱을 통해서 구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즉, 영절하 식 공부방법을 “English RE-start”의 한 컷 별로 구현하는 것이다. 한 컷에 들어간 텍스트는 몇 마디 되지 않으니 반복해서 듣기 편하다. 그러니 소리가 들릴 때까지 그 짧은 문구를 반복해서 듣느다. 또, 원어민의 목소리를 바로 따라서 읽으면 흔히 말하는 섀도잉이 된다. 내가 정확하게 들었는지 여부는 짧은 그 문장을 듣자마자 그대로 따라할 수 있는지 확인하면 된다. 문장을 외우지 않아도 짧은 문장이기 때문에 바로바로 따라할 수 있었다. 아이디어는 훌륭해 보였다.


 “English RE-start”의 Basic에서 advanced까지 시간이 되는대로 순차적으로 반복했다. 운동을 하거나 이동시간에 간단히 읊조리면서 반복했다. 그리고 2~3개월 정도 지나자 성과가 나타났다. 처음으로 미드를 자막 없이 온전히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자막 없이 본 미드는 정말 재미있었다.  


 대단한 성과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성과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 드라마 하나만 가능했다. 이미 수십번 반복해서 보았기 때문에 모든 단어와 내용을 완전히 꿰고 있는 에피소드만 자막 없이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여전히 처음 보는 미드는 자막 없이는 보지 못하고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멘붕에 빠지기 일쑤였다.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이전에는 수십 번을 봐도 자막 없이는 감상에 불가능했다. 명백한 발전이고 성취였다. 


 일단, 성취가 생기니 욕심도 같이 생긴다. 성장이 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태를 살펴보고 부족한 점을 찾아봤다. 그 결과 2가지가 문제였다. 


 첫 번째는 듣기가 안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단어를 전혀 듣지 못한다. 자막 없이 볼 수 있었던 미드는 모든 단어와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새로운 단어가 나오면 그게 실제로 아는 단어라 할지라도 소리로는 알아듣지 못하고 힘겹게 유지하던 정신이 무너져버렸다. 한국말이라면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대충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이를 추론해볼 수 있는데, 영어에서는 아예 단어의 소리를 알 수 없으니 이게 되지 않았다.


 두 번째는 맥락이었다. “English RE-start”는 그저 매우 단순한 이야기와 쉬운 말만 사용하고 있어서 사회적 의사소통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았다. 즉, 관용어나 농담, 반어 등 다양한 감정이 섞여서 문장에 반영될 때는 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처음엔 문법을 몰라서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저것 뒤져본 결과, 영어권의 문화와 전통들에 무지하고 관용적인 표현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도 조금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건 언어 형식에 익숙해진 것이었다. 매일 “English RE-start”의 원어민이 발음한 것을 듣고, 따라하며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입으로 영어 문장을 말하는 게 익숙해졌다. 그리고 입이 영어 구조에 익숙해지면서 수십번 반복해서 봐도 어색하던 미드가 처음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수십 년간 문법을 공부하고 좋은 점수를 받아도 익숙해지지 않았던 영어 형식이 입으로 반복숙달하면서 바로 익숙해진 것이다.


 영어를 못해도 20년은 공부했지만 전혀 늘지 않고 그저 영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요령만 생겼을 뿐이다. 그런데 입으로 연습한지 2~3개월 만에 눈에 보일 정도로 실력 성장이 있었다. 이렇게 되니 무엇을 해야할지 매우 명백해졌다. 필요한 것은 영어 공부가 아니라 영어 훈련이었다. 나아갈 길이 보이니 조금 신났다. 도서관과 서점을 뒤지면서 어떻게 영어 훈련을 하면 좋을지 책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영절하식 공부방법에는 더 이상 호기심이 생기지 않게되었다. 나에겐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지만 영어 훈련의 관점에서 보면 별로 효율적인 방법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English RE-start”에서 짧은 컷 단위로 공부해본 마지막 시도에서조차도 영절하식 훈련방법 보다는 입으로 반복한 것에서 더 큰 효과를 봤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호기심에 영미권의 문법책을 보면서 신기한 것을 보게 되었다. 영미권의 문법책은 우선 철자를 제대로 쓰는 법, 잘 틀리는 스펠링부터 지적하고 흔한 실수들, 주어와 술어를 일치시키기 등등 소소한 팁들로 가득 차 있다. 거기에는 말을 만들고 조립하는 내용들이 많지 않다. 반대로 말을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듬어서 좀 더 품격 있는 영어를 쓸 수 있게 할까 하는 내용들 위주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다. 한국어를 하는데 문법이 필요하지 않다. 자연스럽게 알고 익힌다. 그렇지만 말이나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정확하게 전달되고 격조있게 보이려고 한다. 그 때, 문법이 필요하다. 문법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언어들을 좀 더 정련된 방식으로 조직하여 목적에 충분히 부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입말이 있어야 문법도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언어 공부는 먼저 언어를 몸에 붙이고 그 다음에 문법을 익히는 것이 맞을 듯하다.


 그렇다면 입말은 어떻게 완성해야 할까? 듣고 따라하면 된다. 그렇게 반복연습을 하고 어느 정도 이상 공부량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입말은 완성된다. 영어 공부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이야기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영어로 꿈을 꾸게 되면 언어가 장착된 것이다.”라는 말이다. 실제로 친척 중에 이런 현상을 겪은 사람이 있었는데 이상해 보이는 영어를 자랑스럽게 말하고 그것을 외국인이 잘 받아줘서 놀란 기억이 있다. 그런데 입말의 완성에는 큰 난관이 있다. 그건 음성체계가 다르다는 점이다. 


 언어에서 사용되는 말소리는 실제 소리와 다르다. 가령, 개가 짖는 것을 보면, 나라와 상관없이 개들은 비슷하게 짖는다. 하지만 그것을 나타내는 말소리는 다르다. 우리는 ‘멍멍’, 독일은 ‘바우바우’, 러시아는 ‘가우가우’, 일본은 ‘왕왕’처럼 다르게 표시하고 다르게 발음한다. 이는 언어에서 사용되는 소리가 자연의 소리를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그저 흉내만 내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라들 마다 저마다의 음성체계에 따라서 소리를 유사해 보이는 말소리로 옮긴다. 


 그러면 음성체계가 다를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존에게 ‘배트맨’에 대해서 신나게 이야기했을 때, 존은 한 참을 듣다가 내가 배트맨이 박쥐처럼 날아다니는 모습을 묘사하고 나서야 알았다는 듯이 'bat man'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말한 ‘배트맨’을 ‘bat man’이 아니라 ‘pet men’으로 듣고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박쥐 인간이 아니라 애완동물을 다루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음성학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되었다. 영어 원어민에게 우리의 ‘ㅂ’ 발음은 ‘p’에 가깝다. 그래서 여권을 보면 박씨는 ‘Park’씨이고, 백씨는 ‘Paik’이다. 우리 귀에는 ‘b’가 ‘ㅂ’에 더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영어 원어민들은 목의 성대를 울리는지 아닌지를 민감하게 인지하기 때문에 우리가 말하는 ‘ㅂ’를 'p'로 받아들인다. 내가 ‘배트맨’에서 목의 성대를 울리면서 ‘ㅂ’을 발음했다면 존도 알아들었을 것이다. 


 또, ‘배트맨’을 ‘pet men’으로 알아들었을 때 존은 ‘애’를 전부 ‘e’로 들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우리 언어의 변화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애’와 ‘에’의 발음이 우리에게 있었지만 현재는 전부 ‘에’로 융합되고 있다. 즉, ‘애’와 ‘에’를 구별하여 인식하거나 발음하지 못하고 전부 ‘에’로 발음한다. 그래서 이제는 ‘네가’라고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니가’라고 말하게 된다. ‘네가’와 ‘내가’가 말소리로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배트맨’이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실제 한국어 발음은 ‘베트멘’이라고 한 셈이다. 


 존과 나는 같은 언어를 말한다고 했지만 실은 전혀 다르게 듣고 있었다. 음성 체계가 다르니 의사소통이 근본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치 이런 느낌이다. 내가 ‘배트맨’이라고 발음하는 것은 키보드에서 한글로 ‘배트맨’이라고 적는 것과 같다. 상대는 한글 자판이 아니라 영어자판만 있어서 영어 알파벳 'qoxmaos'로 알아듣게 된다. 당연히, 상대는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영어를 하고 있지만 상대는 그것을 들을 때마다 어색해하고 어이없어하며 의문스러워 하니 내 자신이 영어를 제대로 한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


 더 슬픈 것은 우리는 이러한 말소리 차이에 대해서 알기도 어렵고 극복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언어의 말소리는 일종의 대표소리라서 비슷하게 들리는 음들을 하나의 언어음으로 묶어서 생각한다. 따라서 모국어가 있는 사람들은 세상의 소리를 특정 말소리로 뭉뚱그려서 인식한다. 그래서 한국인이 영어를 배우려고 하면 영어의 소리를 한글에 맞춰 인식하기 때문에 영어의 말소리들이 이상해진다. 그래서 아무리 내가 존이 말하는 ‘bat man’을 정확하게 흉내내보지만 나오는 말은 ‘배트맨’이 된다. 이를 모국어 함정이라고 하는데, 모국어의 음성체계 때문에 외국어의 음성체계가 왜곡되어버리는 현상이다. 따라서 절대음감 같이 소리를 미세하게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음성체계의 왜곡으로 인하여 제대로 외국어를 받아들이기 어렵게 된다. 


 그런데 말소리를 정확하게 익히는 것이 중요한가? 모국어 발음이 형편없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이런 사람들도 안 좋은 발음의 모국어를 이용하여 사는데 문제가 없다. 그런데 굳이 외국인인 한국인이 정확한 발음을 지켜야할까? 당연히 중요하다.


 일단, 언어의 본질인 의사소통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정확한 말소리는 중요하다. 기껏 영어를 배워놓고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큰 손해인가? 하지만 그럼 점 외에도 제2외국어로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에겐 정확한 말소리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어야 정확하게 들을 수 있고 정확하게 상대의 언어경험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다 함은 정확하게 입과 혀를 움직이고 성대를 진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겪어봐야 그 미묘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가령, 군대 생활이 얼마나 짜증나는지 아무리 이야기해도 어떤 이는 관심이 없고 어떤 이는 군대를 동경하기도 한다. 하지만 같이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은 눈만 마주치고 대략 ‘군대’라는 말만 해도 어느새 공감 모드가 되어 듣게 된다. 마찬가지로 언어를 발화하는 것도 같은 경험이다. 왜 ‘파티(party)’가 ‘파뤼’로 발음되는지에 대해서 언어학에서 방언이 어떻고 지역이 어떻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실제 ‘파티’를 제대로 발음하다보면 왜 ‘파뤼’라고 발음하는지 느낌이 온다. '파티'라고 발음하면 마지막까지 각 잡고 긴장하며 발음하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파뤼'라고 발음하면 긴장을 풀고 즐기는 마음이 되면서 개방되는 느낌, 캐주얼한 느낌을 준다. 이런 느낌을 받고 경험이 쌓이면 언제 '파티'라고 말하고 언제 '파뤼'라고 말해야 할지 감이 온다.


 발음 연습을 하다보면 정확한 발음과 그 발음의 미묘한 변형, 강세, 억양 등이 결합되어 언어의 맛이 살아나고, 입에 착 달라붙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발화 경험이 쌓이면 상대의 말이 단순히 사전에서 찾은 대응하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그 자리에서 상대의 말을 경험하듯 공감하게 해주는 공통의 언어가 된다. 단순히 상대가 내뱉은 단어 ‘I love you.’를 ‘나 사랑해 너’로 번역하는 게 아니라 지금 이 데이트 자리에서 서로의 감정이 오가는 모든 상황을 ‘I love you’로 공감한다.


 결국, 영어를 공부하려면 우선, 입말을 정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시작으로 정확한 발음과 음성체계를 구축하는 일이 필요하다. 음성체계가 구축되면 이제 스스로 발음하듯 상대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이 때부터는 영어를 정확히 듣고 발화할 수 있어 유튜브나 미드를 이용해서 영어 공부를 하거나 외국인과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어가 발전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런 토대가 없다면 매순간 자막을 보면서 단어를 확인하고 그 단어를 한글화된 발음으로 다시 뭉뚱그려서 익혀야 한다. 언어 경험이 축적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의미 찾기와 해석의 조합을 연습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매번 머리를 싸매고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피곤한 일이다. 그렇게 에너지를 쏟아도 언어 경험의 미묘한 내용들은 전부 놓치게 된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꽤 명백해 보인다.



세상에는 굉장히 어려운 단어들이 많다. 특히, 어떤 전문 영역에서만 사용되는 전문용어들은 매우 복잡한 개념을 구현하고 있어서 외국어가 아니더라도 그것을 익히기 위해서 상당한 배경지식과 이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의사들이 사용하는 의학용어일 것이다. 


미국 드라마 닥터 하우스는 메디컬 드라마라서 대사의 많은 부분이 생전 처음 들어보는 전문 의학용어다. 그래서 영어로 직접 듣거나 한국어 자막으로 읽거나 전혀 모르는 용어라는 점에선 똑같다. 하지만 이 모르는 용어라도 한국어 자막으로 드라마를 시청할 때는 드라마를 즐기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런데 같은 단어를 자막 없이 영어로 듣게 되는 순간 갑자기 너무나 낯선 용어가 되어 버린다.


너무 많이 본 나머지 에피소드의 내용과 캐릭터 대사들에 매우 익숙해진 미국 드라마를 자막 없이 봤을 때, 잘 들린다고 생각했던 영어가 자막이 사라지면 안 들리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앞서 추론한 바가 있다. 즉, 자막에 대해서 익숙해진 나머지 영어로 들은 것이 머릿속에서 자막으로 동시 재생이 되면서 그런 착각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바로 다음에는 새로운 의문점이 생기게 되는데 왜 전부 아는 단어로만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드라마를 알아먹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 문제는 언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광범위한 이해를 선물한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문제를 다루기 전에 처음 생긴 의문은 이것이다. 닥터 하우스에서 현란하게 구사되는 전문용어들이 어차피 모르는 단어들인데 왜 한국어 자막으로 볼 때에는 괜찮고 자막 없이 영어로 볼 때에는 너무나 낯설고 정신을 사납게 하는 단어로 변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즉, 이때의 관심사는 어차피 모르는 것은 똑같은데 한국어 자막으로 볼 때는 마치 내가 그 단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다. 반면, 자막 없이 영어로 들을 때는 그 단어가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끝나는지도 파악할 수 없는 그저 엉망진창이었다. 


처음 이 문제를 궁금하게 여겼을 때에는 모르는 단어를 한국어의 체계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데 모르는 외국어의 체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즉,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언어적 체계가 있고 그러한 언어적 체계 안에서 단어들이 설명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일정부분 사실이고 추후 이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하지만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보니 외국어를 몰라서 생긴 부분과 별도로 고민해볼 문제가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전문용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힘들다. 관련 배경지식을 알고 실제로 적용해보면서 힘들게 하나하나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겨우, 드라마 한편을 보면서 수많은 전문용어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모르고 넘어갈 때는 그렇지만 호흡을 가다듬고 주의 깊게 살펴보면 대단히 신기한 현상이었다.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진짜로 알고 있는 것일까? 그 안다는 것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등등의 수많은 질문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다.


자막이 있다고 하지만 어떻게 뜻 모르는 단어들을 들으면서 아무런 문제없이 드라마를 즐기는 것일까? 다행히 상당히 빠르게 이것에 대한 답을 낼 수 있었다. 드라마 자체가 어려운 의학용어를 쓰기 때문에 당연히 의학에 문외한인 일반 시청자들은 그것을 알아들을 수 없다. 시청자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용어를 남발하면 드라마가 재미있을 수 없는 법이다. 따라서 드라마 제작자는 일반인들이 즐겁게 시청할 수 있도록 영상과 대사가 자연스럽게 이 의학용어가 무슨 의미인지 꼭 필요한 부분은 설명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바이러스가 신체 곳곳에서 퍼지는 영상, 기생충이 세포 조직을 넘나드는 영상 등을 직접 제공하여 시청자들이 직관적으로 자연스럽게 해당 의학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모르는 의학용어라고 해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면서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이다.


하지만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 감염(infection)이라는 자막과 함께 무언가 노란 기류 같은 것들이 세포들 사이로 퍼지는 영상을 본다고 내가 그것을 이해했을까?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것이 어디서 생겨나 어떻게 사멸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자연스럽게 그것을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아무런 궁금증이나 답답함 없이 넘어간다. 이상한 일이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이런 문제를 왜 제시하는지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현상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이야기에 필요한 부분만 맥락에 따라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일상에서 너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단어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수준의 이해를 갖추어야 하거나 또는 그러한 부가 설명을 붙여서 말을 해야 한다고 하면 그 번거로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간략하게 말하고 듣는 사람들은 맥락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넘어간다. 알면 아는 만큼 모르면 모르는 대로 무심하게 이해하거나 단정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일상다반사인 일들을 갑자기 문제제기하는 것은 실은 나의 의문은 반전된 의문이기 때문이다. 만일, 영상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황색의 기류가 퍼지는 영상 없이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 감염(infection)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그냥 드라마의 맥락에 따라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상당히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드라마를 보려고 한 것이지 환자의 병을 토론하려고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금세 흥미를 잃고 드라마를 끌 것이다. 그런데 그 영상이 들어감으로써 시청자는 문제의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 감염(infection)이라는 말을 듣고 흥미진진하게 여긴다. 영상으로 인하여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 감염(infection)이 무엇인지 진실로 이해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여기서 비약하여 한 가지 영감을 받았다. 그것은 뜬금없게도 언어라는 것이 인간이 인지하는 여러 가지가 자연스럽게 반영되어 장전되었다가 자동으로 발사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너무 뜬금없는 이야기이긴 하다. 

 

그림 파일 삽입의 필요성

 

정보에는 다양한 형식이 있다. 그리고 그 정보는 자신과 어울리는 형식을 취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만일 소리와 언어는 글이나 오디오 형식이 적합할 것이고 풍경이나 인물은 이미지 형식이 적합할 것이다. 그리고 형식을 잘 지킨다면 굉장히 효율적인 학습이 가능해진다. 효과적인 학습을 위하여 지식을 구조화하는 20가지 규칙에서 6번 규칙

이 이러한 이미지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가령, 영어단어를 예로 들어보자. car라는 단어를 백날 설명하는 것보다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렇다면 Anki에서 앞면에는 car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뒷면에는 이것을 영어로 'car'라고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영어단어 공부 카드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 만들어보자. 

 

 

기본 카드 유형으로 영어단어 공부 카드 만들기

 

보통 매뉴얼에서 미디어(Media) 삽입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하지만, 매뉴얼이 상당히 간접적으로만 설명하고 있어서 우선, 아무런 추가 기능(add-on)이 없을 때 어떻게 이미지나 그림 파일을 삽입해서 카드를 만드는지 알아보자.

 

우선, 사진을 찍든 인터넷에서 다운을 받든 자동차 관련 그림 파일을 준비한다. 그리고 원하는 카드뭉치를 만들고 노트 추가창(Note Editor)로 들어가서 노트 유형은 기본 카드 유형인 Basic 으로 고른다. Front 필드에 자동차 사진 파일을 집어넣는다. 

 

 

Front 필드에 사진 파일을 넣는 방법은 간단하다. 해당 파일을 [CTRL]-c 키로 복사해서 프론트 필드에 [CTRL]-v 키로 붙여넣으면 된다. 즉, 복사붙여넣기를 하면 된다. 

 

 

 

 

 

이제 Back 필드에 'car'라고 적고 [추가] 버튼을 클릭하면 카드가 만들어진다.

 

 

 

완성된 카드를 열어보니 우선 처음에는 자동차 그림만 나타나고 아래의 [답 보기] 버튼을 클릭해보니 해당 카드의 영어단어인 'car'가 답으로 나타난다. 상당히 쓸만한 것 같다.

 

 

 

 

그런데 이 방식에는 문제점이 있는 것 같다. 가령, 다음과 같은 그림이 있을 때 과연 어떻게 카드를 만들어야 할까?

 

 

위의 그림은 우리가 각종 단어집 등에서 흔히 보는 그림으로 하나의 사물에 각 부위별 명칭을 표시하고 있다. 이 모든 부위를 위에서 설명한 기본 형식의 카드로만 만들게 되면 일단, 위의 그림에서 단어와 화살표를 지우고 필요한 화살표만 남겨야 한다. 즉, 이 그림의 약간 변형된 버전이 6개가 필요한 것이다. 열심히, 포토샵이나 그림판 등으로 부위별 사진을 잘 만들어서 카드를 일일이 만들 수는 있다. 그런데 그렇게 일일이 작업 하려고 하면 너무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지금이야 사진 한 장에 불과하니 어찌어찌 해볼 수 있지만 당장 수십개의 그림만 처리하려고 해도 하루 종일 작업량이 훌쩍 늘어난다. 해결책이 필요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경우를 위하여 만들어진 추가 기능(add-on)이 있다. 바로 Image Occlusion Enhanced 이다. 

다음에는 이 추가 기능(add-on) Image Occlusion Enhanced에 대해서 알아보자. 

 

 

관련 포스팅들...

 

 

간단하게 그림 파일을 삽입하여 카드 만들기  ☜ 현재 포스팅

 

IOE 01 Image Occlusion Enhanced 소개

 

IOE 02 Image Occlusion Enhanced 설치하기

 

IOE 03 Image Occlusion Enhanced 사용하기

 

 

미국 드라마 ‘닥터 하우스’는 각종 단서를 이용하여 병의 정체를 찾고 이를 치료하는 형식의 의학 추리 드라마다. 처음 이 드라마를 보고 주인공인 하우스의 캐릭터가 너무 재미있어서 거진 2년 정도 밤마다 이 드라마를 끊임없이 반복 시청하곤 했다. 너무 많이 봐서일까 자막을 보면서 시청했는데도 어느 순간부터 영어가 조금씩 들리는 듯 했다.


영어가 들리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던 것 같다. 이 드라마는 메디컬 추리 드라마였기 때문에 주로 질병과 그 질병의 원인이 핵심이었다. 그래서 어려운 영어 단어는 대부분 의학적인 전문 용어였고 그 외의 그리 많지 않은 일상적인 대화나 농담들은 매우 쉬운 영어가 사용되었다. 어차피 전문 의학용어의 학술적인 의미는 영어를 잘 모르는 나 뿐만 아니라 영어를 잘 아는 사람들도 비전문가로서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따라서 꼭 알아야할 이미지에 대해서는 드라마가 바이러스가 퍼지고 근육이 부러지는 등의 영상으로 표현해주므로 그냥 유추하는 수준으로 드라마를 보는데 전혀 지장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드라마를 수십번 반복하여 시청하면서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각인되었고 그 캐릭터들이 일상적으로 대충 어떻게 말하는지 대충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니 슬슬 영어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 이상하진 않았다. 


영절하식 영어 공부에 영감을 받고 아무런 자막 스크립트 없이 미국 드라마를 시청해본 적이 있는데 그 답답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앞에서 펼쳐지는 풍경이 아무리 아름답고 장엄해도 미남미녀의 외모와 표정이 멋지고 섹시해도 솔직히 전혀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고, 그저 딴나라 일이었다. 그것을 보는 것은 상상 외의 고역이었다. 그래서인지 시도할 때마다 아무것도 모르는 답답한 상태에 처하는 괴로움 속에 정신력이 완전 방전되고 탈진한 상태에 도달하게 되었고 그렇게 자제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다시 자막과 함께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힐링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번은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너무 많이 본 드라마에서도 더 많이 본 에피소드였고 그 스토리와 캐릭터가 이미 머릿속에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으니 이는 마치 지금까지 노래 가사를 보면서 불렀는데 이제 노래를 완전히 외운 것 같아 이번에는 가사를 보지 않고 불러봐야지 하는 정도로 쉽게 생각한 것이다. 당연히 자막 없이 보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상황은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르게 전개되었다. 


우선, 아무것도 모르던 상태에서 자막 없이 미국 드라마를 봤을 때 느꼈던 지나친 고역은 많이 경감되었다. 엄청나게 집중해서 보니 그래도 스토리의 흐름을 어찌어찌 가까스로 따라가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것이었다. 그건 내가 좋아해서 그렇게 반복적으로 보던 그 드라마가 아니었다. 자막 없이 보니 안보이던 것이 자꾸 드러나기 시작했다. 배우의 대사와 그에 따른 몸짓, 떨리는 눈가와 확장된 동공 등 온갖 미묘한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저 스토리상에 잘 짜여진 부속품처럼 여겨지던 조연과 엑스트라들이 갑자기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많은 디테일들에 집중하게 되니 뭔가 그 상황의 정서에 푹빠지는 느낌도 강하고 공감은 크게 되는 것 같은데 오히려 영어는 거의 들리지 않고 전체적인 흐름은 산산조각 나서 하나의 스토리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즉, 드라마를 시청한 것이 아니라 조각조각난 독립된 영상클립을 본 것 같은 느낌이고 하나의 이야기로서 기승전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저 기존의 스토리 라인에 억지로 집어넣어 생각했지만 자연스럽게 기승전결을 타지 못한 것이다. 자막 없이 드라마를 시청할 때마다 비슷한 경험을 했고 그 상황과 배우에 대한 공감이 재미있었지만 결국, 드라마 본연의 즐거움을 느끼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또 정신적인 에너지가 고갈되어서 그만두게 되었다.


이 경험으로 다음과 같은 의문점을 얻게 되었다. 


거의 외우다시피 해서 익숙했던 드라마 에피소드가 왜 이리 낯설게 느껴지는가? 


그리고 잘 들리던 영어가 왜 갑자기 안 들리게 되는 것인가? 


마지막으로 영어가 안 들리는데 어째서 각각의 장면과 등장인물에 대한 공감은 더 강해지고, 반대로 익숙하던 스토리는 갑자기 조각조각 나서 서로 연결되지 않는가?


이 의문점들은 결국 마지막 의문점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이 의문점이 떠오르면서 의문을 해결할 수 있는 키로 뜬금없이 같이 떠올랐던 것이 그동안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잊고 있었던 올리버 색스의 언어상실증(실어증) 사례였다.

AwesomeTTS 설치하기


일단, AwesomeTTS를 설치해보자.

 

Anki를 실행하고 아래와 같이 메인 메뉴에서 도구 추가 기능(A) 둘러보고 설치하기를 클릭한다.


 



그러면 설치 코드를 기입할 수 있는 대화창이 아래와 같이 나타난다. AwesomeTTS 설치 코드를 알면 해당 코드를 집어넣고 확인을 클릭하고 코드를 모르면 탐색을 눌러 추가 기능을 볼 수 있는 웹페이지로 이동한다.




추가 기능 페이지의 가장 상단에 AwesomeTTS가 나타나 있다. 이를 클릭한다



 

그러면 AwesomeTTS에 대한 설명과 소개가 있는 화면이 나타나고 그 아래에는 설치 코드가 표시된다. 코드를 복사한다.




 복사한 코드를 다시 추가 기능 설치 대화창의 코드 부분에 붙여넣고 확인을 클릭한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설치 성공 메시지가 나타난다.


 


Anki를 다시 시작한 후에 도구 추가 기능(A)을 눌러보면 아래와 같이 AwesomeTTS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AwesomeTTS 란 무엇인가?


매우 Awesome(끝내주는) TTS(Text to speech)라는 의미로 읽고 있다.

 

, 간단하게 말하면 컴퓨터가 텍스트를 소리내어 읽어주는 끝내주는 추가 기능인 셈이다.

 

그럼 정말 끝내주는 추가기능일까?


1) 이미 사용자들에게 인정받은 추가 기능


내가 2015년 말부터 Anki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는데, 그 때부터 지금까지 추가 기능(Add-on)의 순위에서 거의 항상 부동의 1위를 유지할 정도로 Anki에서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추가 기능이다.

 

2) TTS 서비스 사용에 있어 편의성을 극대화


직접 사용해보니, 일단 몇 가지만 파악하면 AwesomeTTSAnki 카드에 너무나 쉽게 오디오 사운드를 집어넣을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어 정말 쓸만하.

 

또, 좋은 점은 다양한 TTS 서비스를 Anki에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TTS 서비스를 이용하여 카드를 만들려면 우선, 다양한 TTS 서비스를 찾아서 공부하고자 하는 언어를 읽을 수 있는지 그 품질이 좋은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해당 TTS 서비스를 통해서 얻은 오디오 파일을 다시 조작하고 카드에 붙여넣는 작업을 전부 손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AwesomeTTS를 설치하면 사용 가능한 대부분의 TTS 서비스를 찾을 필요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실행해보고 오디오 품질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카드에 바로 해당 사운드 오디오를 삽입하는 과정이 거의 자동으로 이루어지므로 그 편안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외에도 Anki 카드를 만들어 사용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오디오 사운드를 삽입하고 제거할 수 있는 등 그 편의성이 뛰어나고 다양한 설정을 적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3) 어학 공부에 있어 TTS의 필요성

 

어학을 공부할 때, 글자를 익히고 단어를 외우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단순히 글자로만 어학을 공부하게 되면 언어를 귀로 듣고 이해하는 과정이 없어 공부의 질과 효율이 좋을 수 없다. 

 

물론, TTS는 컴퓨터가 읽어주는 것이므로 사람의 목소리만큼 생동감이 있지는 않다. 따라서 복잡한 감정이 표현되는 문장을 TTS로 읽을 때는 어색함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순한 단어는 그 발음과 악센트를 명확하게 읽어주기 때문에 단순히 글자와 발음기호를 눈으로 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효율적인 단어 학습이 가능해지게 된다.

 

4) 오디오를 이용한 짜투리 시간 활용성 극대화


또한, 이를 응용하면 이제껏 눈으로 보고 확인하던 학습에서 귀를 이용한 학습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 카드를 볼 필요 없이 음성을 제공해주므로 지하철의 이동구간이나 산책, 운동을 하면서도 일일이 카드를 볼 필요 없이 학습을 지속할 수 있게 되므로 짜투리 시간을 활용한 학습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1997IMF 이후 영어의 중요성은 그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해졌다. TOEIC 시험 점수는 사람의 가치를 재는 가장 기본적인 척도가 되었고, 영어학원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러면서 영어가 비즈니스 환경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면서 사람들은 실제로 영어를 잘 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문법과 시험 위주의 공부에 대한 대안을 사람들이 모색하고 있었을 때 나온 것이 영절하(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였다. 군대에서 진중 문고로 보게 되었는데 그 이야기의 핵심은 쓸데없는 문법공부는 배격하고 원어민처럼 되면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그 책을 읽었을 때 그야말로 그 자리에서 바로 완독했을 정도로 글쓴이의 주장은 신선했고 접근하기 쉽게 잘 구성되었으며 무척이나 설득력 있게 쓰여진 책이었다. 읽자마자 바로 영절하식 영어공부 방법을 요약해서 노트화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영절하에서 제시된 영어 공부 방법은 기존의 영어 공부법을 폐기하고 올바른 길로 이끄는 혁명적인 방법처럼 느껴졌다. 기본적으로 영어 공부를 단순히 좋은 시험 점수를 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원어민처럼 되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했고 그 실행방법도 단순하고 명확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영절하식 영어공부를 시도했다.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 개인의 입장에서 이 공부 방법은 그렇게 단순하고 명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영절하식 공부를 통하여 영어실력이 늘었다고 이야기 하지만 내 스스로 적용하면서 많은 혼란을 겪게 되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영절하는 공부방법을 단계별로 나눠놨는데 그 단계를 뛰어넘는 기준이나 공부해야할 공부량 등이 그다지 명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책으로 읽었을 때에는 쉬워보였지만 막상 실천해보면 막막하고 어리둥절한 경우가 많았고 같은 내용의 자료를 계속 들어야 하므로 무척 지루하게 느끼기도 했다. 

 

가령 영절하에서 제시한 1단계가 카세트 테이프 한 개를 그 테이프에 있는 모든 소리가 들릴 때까지 계속한다는 것인데, 해보면 소리가 다 들린다는 기준이 애매하다.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인지 확인할 수 없는데,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스크립트를 보면 안된다. 그러니 계속 속으로 소리가 다 들린 것인지 아닌지 의심하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도 되는지 판단하지 못한다. 그리고 같은 테이프를 매일 들으니 정말 지루하다. , 이를 무의식적으로 해석하지 말라는 지침도 있어서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해석하는지 점검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 언어를 알아듣는 것인지 스스로 무의식적으로 독해하듯 해석하는지 잘 구분도 안 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데 스스로 발전하는지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 이 공부법의 가장 어려운 점인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발전하는 것이 느껴지면 계속할 수 있는데, 이를 측정할 수 있는 점수도 없고 어떤 책의 진도가 나가는 것도 아니라서 더더욱 쉽게 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니었다. 여튼 영절하를 시도했던 사람들이 이 공부의 어려움을 토로했고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난 것으로 안다.

 

세상을 삐딱하게 사는 나같은 사람은 영절하를 읽고 그 방법에 동의하면서도 제 입맛대로 그것을 변형해서 스스로 편한 것만 받아들인다. 당시 아무리 세상에서 영어가 중요하다고 말해도 별로 체감하지도 못했고, 솔직히 한국어로 되어 있는 정보도 소화하기 벅찼다.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니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딱히 여행 가고 싶은 욕구도 없어서 영어가 필요하지 않았다. 당연히 영어 공부에 목숨 걸 생각도 없고 영절하식으로 최선을 다해 영어공부를 할 생각이 있을리 없었다. 그런데 영절하의 논리에는 그대로 설득되어서 영어 공부에 대한 모든 방법을 영절하의 논리를 이용하여 잘못된 공부 방법으로 규정했다. 반공부주의라고나 할까, 문제집이나 교과서를 공부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신념만 강하게 형성되었기에 기존의 영어 공부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여기면서도 영절하식 공부를 할 여건도 의욕도 없으니 그냥 영어공부를 전혀 안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미국 드라마 열풍과 함께 좋아하는 미드에 꽂혀서 밤을 새다시피 하는 나날이 지속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미드는 많고 현실은 개떡 같으니 매일매일 미드 삼매경이었다. 미드에 빠져서 현실을 잊고 사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질 때마다 스스로 핑계를 댔던 것이 영어공부를 한다는 것이었다. , 미드를 보면서 그냥 미드만 보고 있자니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지니 영절하식 영어공부를 시도한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하면서 영절하의 공부방법을 따라해본 것이다. 그러면서 영절하식 영어공부의 지루함을 재미있는 미드로 보완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기만했다. 물론, 미드를 보다가 다시 자막을 틀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다시 정신이 들면 자막을 꺼보고 그러다가 결국, 발음에 주의하면서 듣는다고 스스로를 속이면서 그냥 자막 키고 봤다. 공부가 되었을 리가 없다.

 

스스로 영어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니 뭔가 하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미드를 통째로 녹음해서 돌아다니면서 이어폰으로 듣기 시작했다. 계속 듣다 보니 점점 잘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몇 단어는 3년 동안 절대로 들리지 않았고 컨디션에 따라서 잘 들리고 안 들리고가 반복되기 시작했다. 그 상태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지 잘 알 수 없었다. 안 들리는 단어는 전혀 안들리는데 그런 단어를 추적해서 영영 사전을 찾고 그것을 낭독하라고 되어 있었는데 결국, 못 찾고 끝났다. 스크립트나 자막을 찾아봤으면 그 단어를 찾아낼 수 있겠지만 그러면 지는 것 같았고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생활이 바빠지면서 조용히 영절하식 공부는 접게 되었다. 


거진 3년간 열심히 녹음한 미드를 들었는데 영어 실력이 늘었을까? 그 부분은 조금 미묘하다 영어 문장이 자연스럽게 들리는 느낌적 느낌은 있다. 하지만 열심히 녹음하여 들은 미드를 자막없이 보기는 어려웠다. 정말 열심히 했다기 보다는 그냥 BGM식으로 움직이거나 여유로울 때만 똑같은 미드를 계속 들었던 것이지만 3년이나 똑같은 미드를 들었다면 영어 전반이 발전하진 않더라도 그 미드 정도만이라도 잘 들렸으면 성취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그러지 못했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반복한 이야기라 지루하지만 그래도 한국의 영어 공부는 문법에서 출발했기에 이에 대해서 먼져 따져보아야 할 것 같다. 


90년대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는 영어 공부라는 것이 문법을 공부하고 그 문법에 따라서 영어를 합리적인 규칙에 따라서 말하는 것이다. 당연히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그냥 영어를 계속 듣게 하면 영어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므로 최소한 영어의 뜻을 알기 위해서라도 이를 자신의 모국어로 설명해주는 문법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론적으로 생각해보면 영어의 모든 규칙을 알고 이를 적절히 적용한다면 완벽하게 그 언어를 구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우선 여기서 궁금한 것은 인간의 언어를 일련의 규칙으로 정립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정립할 수 있다면 이미 우리 시대에 말을 하는 기계들이 나타났을 것이고 모든 외국어 공부는 필요없어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일련의 규칙에 따라서 번역이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번역기가 만들어졌을 것이고 그 번역기는 모든 언어를 완벽하게 번역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런 기계는 없다. 이제 딥러닝이나 이런 것을 이용하여 일상적인 회화를 겨우 번역하는 수준이다. 그리고 수많은 석학들은 여전히 언어에 달라붙어서 그 규칙을 이것저것 찾아보는 정도다. 그러니 현재까지론 문법으로 어떤 언어의 모든 규칙을 규정할 수 없다.

 

두 번째는 문법으로 어떤 언어를 기계적으로 번역할 수 없는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문법을 공부함으로써 그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므로 문법을 되도록 많이 알고 그것에 숙달되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문법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법이 지나치게 상세하고 그 규칙이 많다면 점점 고려해야할 문법이 많아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문법을 일일이 판단하고 적용하려 한다면 당연히 말이 튀어나오지 않게 된다. 문법을 1개만 아는 사람이라면 그 1개의 문법에 맞는지만 따지면 되지만 100개의 문법을 아는 사람은 그 100개의 문법에 맞는지 전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말할 타이밍에 문법을 고려해야 하니 말을 할 기회를 놓치기 일쑤일 수밖에 없다. , 자신이 모르는 수많은 문법을 고려하면 언제 틀릴지 모르므로 말은 더더욱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독해도 마찬가지다. 글을 읽으면서 글의 논리적 구조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해당 글이 어떤 문법에 맞는지 틀리는지 일일이 검증하면서 봐야하니 독해도 더뎌지고 그 언어로 된 책을 읽기 싫어질 수밖에 없다.

 

어느 날 한국이 아닌 영어권에서는 문법을 어떻게 공부하는지 궁금해져서 열심히 구글링을 해봤다. 그리고 문법에 대한 두 가지 접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접근 방식은 second language로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한 문법이었다. 주로, 가장 기본적인 영어를 가르치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영어를 어떻게 쓸 수 있는지 설명하고 연습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두 번째는 이미 영어를 매우 잘 쓰는 원어민들이 영어를 공적으로 세련되게 전문적으로 쓰기 위하여 공부하는 문법이었다. 기자, 정치권의 대변인, 아나운서, 글쓰는 사람들이 영어를 다듬기 위하여 문법을 공부하는 것이었다


, 영어를 전혀 못하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영어를 알기 위해서 필요한 수준의 문법이 있고, 실제로 영어를 잘 쓰는 사람들이 자신의 영어를 공적으로 세련되게 사용하거나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제공되는 문법 교육이 있는 것이다. 그 어느 문법도 영어의 모든 규칙을 제정하고 있지 않다. 그냥 초심자는 사용할 수 있는 언어를 제공하고 있고, 전문가에게는 자주 하는 실수를 지적하는 것이다. , 문법이 보조적인 역할과 제한적인 역할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특히, 세련된 영어 사용자들을 위한 문법은 언어를 가다듬고 절제하기 위한 수단이므로 이미 영어 원어민 수준의 영어 실력을 전제로 깔고 들어가니 우리 같이 영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배우기에는 시기상조인 문법이다


따라서 초심자 수준의 문법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면, 자주 쓰고 문화에 익숙해지고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숙련된 영어 사용자가 되고 난 후에 세련된 문법이 필요한 셈이다. 그런데 한국의 문법은 초심자의 문법도 고급 영어 사용자의 문법도 아닌 그저 모든 문법이다. , 문법은 영어를 배우기 위한 첫 가교 역할을 하고 영어를 잘 쓰게 되면 이를 다듬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문법 위주의 영어 교육은 이러한 구분 없이 영어를 문법 공부로 대체해버리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90년대식으로 문법으로 영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영어라는 언어를 합리적으로 분석하는 언어학에 가깝지 영어 자체를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문법이 전혀 필요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어권의 문법 교육처럼 영어를 처음 배울 때와 숙련된 영어 사용자가 되고 난 후에 이를 다듬을 때 필요한 것이지 영어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특히 문법을 아무리 잘 공부해도 잘 듣고 말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거의 확실했다. 90년대에는 이런 문제의식은 많았던 것 같지만 이런 문제의식을 극복할 방안이 마땅한 것이 없었다.

한국어는 참 훌륭한 언어이다. 이 언어를 쓰면서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고 의사소통하는데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오히려 그 복잡미묘한 표현의 우수성과 즐거움을 충분히 누리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충분히 좋은 언어생활을 누리고 있는데 영어 공부를 해야 하나?


영어를 언제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따져보니 사용한 적이 거의 없다. 영어와 관계된 것이라고는 좋아하는 미드를 보는 것이지만 자막 덕분에 불편함 없이 충분히 잘 즐기고 있다. 가끔씩 영어로 된 문서를 읽긴 하지만 사전도 잘 되어 있고 번역 기술도 좋아져서 약간의 영어 문서를 읽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그리고 영어로 된 문서를 읽는 경우가 거의 없다. 국내에 출판되는 양질의 책과 자료를 읽기에도 굉장히 많은 시간을 쓰고 있고 정말 좋은 영어 책들은 번역된다. 정말, 영어를 쓸 일이 없다.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면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사람도 있지만, 한국인 친구도 잘 안 만드는데, 외국인 친구를 왜 만들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게다가 대화할 공통의 화제를 만드는게 쉬울까? 서로의 문화를 조율하고 서로를 이해하고등등, 평생 같이 산 부부도 힘든 일을 외국인들하고 하라고? 사교적인 사람들이라면 가능하겠지만 나같이 비사교적인 사람은 생각만 해도 힘들고 귀찮고 부담스럽고 너무 힘들다. 그렇다고 딱히 친구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영어가 정말 필요한 경우는 비즈니스적인 경우인 것 같다. 업무상 뛰어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영어 성적을 제시하거나, 해외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경우에는 정말 필수적인 것이다. 결국, 스펙과 제한적인 해외 영업 말고는 거의 쓸 일이 없는 셈이다. 하지만 40대쯤 되면 토익성적이 스펙이 될 수는 없다. 또, 국내에서 한국말로 영업하는 것도 불편한데 더듬더듬한 영어로 영업을 뛰겠다는 생각이 과연 합리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평생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영어에 집착하는 것을 보았지만 사실 감흥이 별로 없었다. 영어를 잘 하면 당연히 좋겠지만 매일매일 공부하고 자책하고 열등감을 갖고 그러면서 영어를 공부해야할 만큼 영어가 필요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 가시밭길을 걸어서 영어를 유의미하게 쓸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한지 그리고 영어를 유창하게 쓰게 되었을 때 그에 따른 이익이 충분히 있을지 미심쩍기 때문이다. 

 

평생을 영어는 별로 필요없다는 생각으로 살다가 처음 영어 공부가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주식 투자를 시작하면서 부터다. 주식 투자를 하게 되면 온 세상의 일에 촉을 세우게 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직접 간접으로 환율과 주식과 지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내외의 뉴스를 주의 깊게 들여다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면서 몇 가지 사실에 눈뜨게 되었다. 우선, 국내의 각종 가십이나 뉴스를 신뢰해선 안된다. 어쩌면 그렇게 일관되게 뉴스와 주가의 방향이 반대로 갈 수 있는지 신기했다. 한창 올라가던 주식이 신문이나 뉴스에 소개되는 순간 주가는 곤두박질 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신문이나 뉴스들이 소식이 늦고 사실을 검증하느라 뒷북을 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주식을 조작하는 작전세력에 반드시 기자가 끼어있거나 공동작업을 하는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되었다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증거는 없다그냥 반복되는 패턴과 소문들을 조합한 것이다그러다 보니 국내의 뉴스를 보면 손해가 발생한다라는 생각이 머리에 박혔다. 반면, 해외의 영어로 나오는 정보는 정말 그 양과 깊이가 대단했다. 물론, 영어로 된 뉴스가 국내의 주식에 대해서 언급하는 바는 없다. 하지만 국내의 지수나 국가적 가치에 대한 판단은 결국 글로벌한 투자동향에 좌우되었고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해외의 뉴스를 직접 읽어보아야만 했다. 글로벌한 투자 동향에 대한 국내의 뉴스는 결국 해외 뉴스를 번역하여 한참 늦게 나오기 때문에 무조건 영어로된 원문을 읽어야만 했다. 버벅이면서 영어를 한자한자 더듬으면서 읽었을 때, 그 미묘한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때, 기자가 쓴 글로 기자의 생각과 신뢰도를 추정하기 어려웠을 때 처음으로 영어가 아쉬워졌다. 그리고 영어로 된 뉴스들이 다음날이나 바로 그 다음날 국내에 번역되면서 입맛대로 왜곡하거나 이상하게 번역되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선 반드시 영어를 알아야 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슬프지만 주식 투자는 망했고, 해외 뉴스를 보면서 연구할 일이 사라지면서 다시 영어에 대한 관심이 식으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조악하게 번역한 책들이 다시 한번 영어의 필요성을 환기시켜 주었다. 사람들이 주목하는 베스트셀러나 대작들은 충분히 멋진 번역가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책을 번역해준다. 하지만 마이너한 분야의 책들은 정말 번역의 질이 좋지 않다. 전문 번역가는 해당 분야를 잘 모르기 때문에 번역이 어렵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은 번역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글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구나 최근에는 구글 번역기가 좋다는 이야기가 많아져서인지 번역을 이것으로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진 듯하다. 나도 개인적으로 Anki 매뉴얼을 번역하면서 구글 번역기를 사용했는데, 이 구글 번역기가 상당히 악질적이라고 느꼈다. 초창기 구글 번역기는 번역을 못하는 것이 너무 명확했다. 누가 봐도 못한 번역이기 때문에 그 부분은 다시 번역한다. 하지만 최근의 구글 번역기는 조금 달라졌다. 얼핏 보기에는 무언가 문장이 잘 성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잘 번역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정말 이상한 문장이 완성되어있다. 마치 문장이 아닌 비문을 교묘하게 만들어 삽입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한참을 읽어봐야 이 문장이 정말 이상하구나 하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교묘하다. 그래서 이런 점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냥 구글 번역기를 돌리고 대략적인 손질만 해서 출판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책들은 대부분 마이너한 취향의 책들이다. 이런 경우가 몇번이나 반복되면서 어느 날은 책을 읽다가 차라리 원서로 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후 영어 공부를 조금 시도해보았고 몇 가지 중요한 변화의 계기도 생겨서 영어 수준이 조금 올라가게 되었다. 덕분에 정말 좋아하는 미드 시리즈를 자막 없이 보게 되었다. 물론, 자막 없이 미드를 볼 수준이라서가 아니라 그 미드를 거의 20번 이상 봤기 때문에 내용을 전부 알고 있어서 자막 없이 봤을 뿐이다. 그리고 그 동안 미드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려 20번 이상을 반복하면서 보았던 미드인데도 자막 없이 보니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고 신기했다배우의 표정이나 목소리억양 등 그 모든 표현이 생생하게 보이면서 더욱 뛰어난 몰입감과 즐거움을 주었던 것이다그 동안 스스로 미드를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자막을 본 것에 불과했던 셈이다. 

 

영어를 잘 하면 좋은 점에 대해서 하나 둘씩 체감하면서 영어를 잘하는 것이 단순히 업무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영어를 알면 보다 양질의 객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전 세계의 최고의 석학들이 제공하는 논문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으며, 방대한 문학과 드라마를 절절하게 즐길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영어를 무시할 때는 보지 못했지만 영어를 보고 익히기 시작하면서 그 동안 몰랐었던 다양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방대하고 훌륭한 양질의 자료와 인프라, 새로운 시도들, 각 대학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노벨상 수상자의 직강들 영어를 잘 쓸 수 있다면 전 세계와 소통할 수 있고 전 세계에서 가장 양질의 자료를 볼 수 있으며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획득하게 되는 셈이다.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전 세계에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현재에 영어는 단순히 외국인과 대화하는 수단에 머물지 않는다. 이제 영어는 세계의 정보에 접속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소양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영어가 없어도 잘 살 수 있지만 영어를 잘 하게 되면 보다 넓은 세계를 보게 되고 보다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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