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ki로 문장 암기하기 3 아는 것이 없어서 일단 통째로 외운 이야기
Anki로 문장 암기하기 2에서 문장 암기의 장단점과 현재의 생각을 이야기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이제는 문장 암기하기를 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시작 해보자.
Anki를 통해 암기가 가능해지자 동양학을 외우기 시작했다. 십여년 전부터 동양의 사고체계를 나름 분석해보고 싶다는 열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 어떤 지혜가 있는지, 어떤 인간의 정신적 구조를 보여줄지 궁금했다. 특히, 사람이 이중-구조로 작동한다는 나의 생각과 중국의 음양사상과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으로 비교해보고 싶었다.
십수년 전부터 동양학에 관한 책을 곁눈질해왔지만 곁눈질은 곁눈질일 뿐이었다. 그 내부로 파고들 방법을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주제들은 일관되지 않거나, 혹은 너무 총체적이고 문학적이어서 책을 읽다보면 막연한 동양적 느낌만 남을 뿐이었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동양학을 공부하는 방법은 일단 암기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추상적인 사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의학이나 명리학 같은 구체적인 술기들 위주로 외워 익혀서 현실에서 끊임없이 사용해보아야만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잠정적인 결론에 도달했었다. 평생, 암기를 거부해왔던 나에게는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Anki를 만나면서 암기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자신감이 붙으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유도 모른채 닥치고 외워야 하는 동양학이 만만해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명리학, 한의학, 풍수, 병법, 동북아의 역사와 지리, 언어, 과학기술 모두에 음양오행이라는 형이상학적인 이론을 기반으로 전개하고 있다. 결국, 명리학이든 한의학이든 하나만 제대로 익히면 그 음양오행이라는 틀의 변주를 통하여 나머지 풍수, 병법, 동양 과학 등을 모두 쉽게 익힐 수 있다는 이야기다. 너무 효율적이다. 그리고 6~70세 이후에는 배운 것으로 용돈벌이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노후에도 좋을 것 같았다. 동양학 공부에 확 꽃혀버린 나는 명리학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좋은 Anki 카드를 만들려면 열심히 책을 읽고 요약 정리하여 그에 맞추어 노트와 카드를 만들면 된다. 하지만 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때라면 그런 방법은 완전히 무의미해진다.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명리학 공부가 그랬다. 일반적인 교과서처럼 이해를 하나하나 쌓아올려 체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원인도 이유도 알 수 없는 수많은 해석이 나오고 가끔은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은 해석이 나온다. 뭔가 이치를 제시하는 책들은 대부분 주역과 하도낙서를 언급하지만 제시된 근거와 이치들이 어째서 이런 결론으로 이어지는지 알 수가 없거나 설득력이 전혀 없다. 걸핏하면 ‘심오’하고 ‘오묘한’ 이치들이다. 어떤 말들은 서로 모순되고 이랬다저랬다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책을 요약하고 간략하게 정리하여 Anki로 카드를 만들 수 없다.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이런 상황에서 책을 덮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이해가 어려우면 그냥 책을 통째로 외우면 무언가 이해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되면 빈칸 만들기로 카드를 만들었다. 문장을 통째로 Anki에 집어넣고 빈칸을 만들어 저장한 것이다. 문장 암기가 처음이고 내용도 너무 어려워 보여서 똑같은 카드를 수십개씩 과잉으로 만들어서 반복해서 암기했다. 이해가 어려우니 그냥 이해를 포기하고 무턱대고 반복 숙련으로 암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문장을 통으로 암기하다 보니 그냥 책으로 읽었을 때는 전혀 이해되지 않던 문장들이 하나둘씩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너무 당연한 현상이다. 책을 통째로 외우고 있으니 단순히 읽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앞뒤로 문장을 다 대조하고 머릿속에 담아둔 상태에서 다른 문장을 외우고 있으니 잘 이해가 안 되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할 것이다.
오해하지 말자. 이해가 되었다고 명리학 책에서 없던 근거를 깨닫거나 무언가 심오한 이치를 깨달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 외우고 나서는 그 책이 믿을 수 없는 엉터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처음엔 한두 가지씩 미세한 흠들이 보이더니 뒤로 갈수록 중구난방에 오타와 비문이 많아졌고, 스스로 한 말을 뒤집고 포장하는 것이 전부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마지막 한 챕터를 남겨두고 더 이상 책을 외우지 않게 되었다.
그럼 무엇을 이해하게 되었나? 매우 많아서 한 가지로 말하긴 어렵다. 지금부터는 문장으로 외운 경험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설명해보고 싶다.
우선, 문장은 책에 쓰여진 그대로 외워지지 않는다. 문장에 비문이 있거나 오타가 있으면 외우다가 강력한 거부감이 든다. 때론, 글의 구성이나 리듬이 이상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문장을 외우는 과정은 첫번째로 문장이 말하는 바를 문장이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이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수정이나 파악 없이 억지로 외우려고 하면 당일은 외워도 다음에 카드가 나왔을 때 자주 혼동하게 된다. 놀랍게도 잘못되거나 어색한 문장을 암기하면 내 머릿속은 그 문장을 기피하고 싫어한다. 그렇다고 내가 평소에 오타에 민감하거나 문법을 따지는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문장 암기를 하면 내 머릿속은 노이로제에 걸린 것처럼 오타와 문법을 따진다.
문장을 적절히 파악하여 이를 수정하면 가장 먼저 입이 반응한다. "입에 착 달락붙는다."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그대로 들어맞는다. 그리고 그 순간 외운 문장을 "알겠다"라는 감각이 찾아온다. 이 감각이 정말 신기했는데, 잘 모르는 내용임에도 정말로 "내가 그것을 알고 이해하고 있다."라는 감각이었다.
"안다"라는 감각은 왜 생기는 것일까? 곰곰이 따져보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문장이 입에 착 달라붙는 순간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문장이 전개되고 "안다"라는 감각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고양감과 함께 지식이 손에 잡히듯 느껴진다. 그리고 머릿속이 간질간질해지면서 무언가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는 느낌을 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감각이 왜 찾아오는지 고민한 끝에 생각해낸 가설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신경체계는 양방향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기쁜 일이 있어도 웃지만, 역으로 계속 웃는 표정을 짓고 있으면 뇌가 기쁜 일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상황을 기쁘게 해석하고 기쁜 기억들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울상을 하고 있으면 뇌가 슬픈 일이 있다고 판단하고 상황을 슬프게 해석한다. 우리가 입에 착 달라붙는 문장을 수차례 반복하면서 외울 때, 뇌는 그 문장을 스스로 말한 것으로 판단한다. 즉, 나 자신이 생각해서 말한 것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머릿속을 뒤져 그 이유를 만들어낸다. 적절한 이유가 될 수 있는 기억을 떠올리고, 활발하게 신경세포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아마도 신경세포들이 연결될 때의 느낌이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는 느낌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이 "안다"라는 감각에 유효기간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내용을 전하는 문장을 외웠을 때, 가끔씩 머릿속이 간질간질하면서 어떤 중요한 것을 알듯말듯한 감각은 익숙하게 해당 문장을 외우게 된 순간 사라진다. 이 때부터는 그저 문장이 기계적으로 외워질 뿐 고양감과 성취감, 새로운 통찰로 연결되는 영감이 사라져 버린다. 이미 관련 신경들의 연합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변화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가설에 따르면 문장암기는 나의 내면에 저자를 재형성하는 과정에 가깝다. 즉, 내 깜냥 안에서 내 스스로 저자가 된다. 그러니 저자가 무슨 생각으로 글을 썼는지 손에 잡힐 듯이 이해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책을 통째로 외운다면 거의 책을 쓴 저자를 통째로 형성시키는 셈이다. 물론, 중간중간 납득할 수 없는 내용들과 중언부언하는 내용들,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들 때문에 설득력을 잃고 말았지만 그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모를 수 없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효과들은 암기할 내용이 복잡한 문장의 형태를 띨 수록 잘 드러난다. 복잡한 문장들일 수록 머리가 할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반면, 단순한 지식의 대응인 "소년-boy" 같은 단순 암기는 "안다"는 느낌이나 "새로운 통찰력으로 이어지는 깊은 고양감"을 주는 경우는 잘 없다.
이런 문장암기 덕분에 엉망진창의 명리학 책을 외우면서, 필요한 지식은 흡수하고 냉정하게 그 책을 폐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깊은 독서 경험은 게걸스럽게 책을 외우는 시작이 되었다. 새로운 지식을 문장형태로 외웠을 때, 맛보는 "안다"라는 감각과 "새로운 통찰로 이어지는 영감"이 쾌락에 가까운 성취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2년 정도 지나니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해당 방식을 고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