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를 떠올리면 1+12가 된다는 것은 매우 의심스러운 사실이었다. 진흙으로 만든 공 2개를 겹치면 더 큰 진흙공 1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1개의 사과를 5개로 쪼개면 5개의 사과조각이 되지만 숫자만 가지고 보면 1=5가 된다. 이런 다양한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1이 반드시 2가 된다고 가르칠 때마다 나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런 불만을 어머니에게 말하면 어머니는 내가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고 항상 받아들이라고 종용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결국, 나는 학교에는 1+1이 반드시 2가 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규칙이 있다고 생각했다. , 일종의 게임 규칙처럼 학교에서 물어볼 때, 1+1은 반드시 2라고 답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건 마치 이것과 같았는데 현실에선 거리에서 돈을 주웠을 때 그 돈을 찾아주는 사람이 거의 없음에도 도덕 시험지에는 그 돈을 찾아준다고 기입하게끔 되어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 학교에서 가르친 것은 현실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상식이나 진리와는 상관없이 학교의 규칙대로 말하고 따르는 법을 익히는 사람을 원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공부를 하고 학문을 한다는 것이 스스로의 생각을 구체화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규칙을 받아들여서 이를 응용해서 잘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만 느껴졌다.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가서 수학사 관련 책을 읽다가 알게 된 것인데, 원래 지식의 구조가 그랬다. , 가장 완벽한 논리적 정합성을 갖춘 증명된 지식도 그 밑바닥에는 증명하기 어려운 어떤 주어진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당연하다는 듯이 암묵적으로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가령, 유클리드 기하학의 전제는 완벽한 평면이다. 그런 완벽한 평면에서는 평행하는 두 직선이 서로 마주치지도 않고, 삼각형의 세 각의 합은 반드시 180도를 이룬다. 하지만 지구 표면처럼 동그란 구면을 전제로 한다면 평행하는 두 직선은 끝에서 만나고 삼각형의 세 각의 합은 180도 보다 커진다

 

1+12가 되는 것도 이러한 암묵적인 전제가 있다. 그것은 어떤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 1을 기준으로 볼 때, 2가 되는 것이다. 진흙공 2개를 겹치면 진흙공 1개가 되지만 당초 진흙공 1개를 기준으로 보면 2개 분량인 셈이다. 사과 1개를 기준으로 볼 때, 사과를 5개로 쪼개면 각 사과 조각은 원래의 1개의 사과를 기준으로 볼 때 1/5개의 사과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이라는 말을 매번 집어넣지 않으니 나처럼 머리가 나쁜 사람은 1+1=2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기준이 바뀌면 계산식도 바뀐다. 만일, 우리가 기준을 개체의 개수로 바꾼다면 각각 1개씩 2개의 개체가 합해져서 다시 1개의 개체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1+1=1이 되고 5=1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숫자로 세는 것이 어떤 기준을 따르는 지를 명확히 한다면 아이들하고 같이 다양한 방식의 숫자 세기를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가끔 이런 날이 있다. 뜬금없이 오랫동안 묵혀서 이젠 그 존재조차 희미해진 문제가 뜬금없이 생각나고 갑작스럽게 문제가 해결되어 버리는 날이다. 이 뜬금없는 축복이 기꺼워 글을 쓴다. 물론, 이 글은 당시의 내가 납득할지도 모르는 설명이다. 버트란드 러셀이나 화이트헤드의 복잡하고 어려운 논리적 증명과는 관계가 없으니 행여나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것은 1+12가 되는 것에 항상 의문을 가졌음에도 이 규칙을 기반으로 다음 단계인 곱하기로 넘어가 구구단을 외우게 되었을 때에는 이러한 의문을 풀고 싶은 욕구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오히려, 그냥 1+12가 되는 세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버렸다. 왜냐하면 구구단을 힘들게 공부하고 나니 그것이 근본적으로 불안한 기반 위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큰 부담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의심하던 소년이 이번에는 그 사실을 부정당할까봐 편집증적으로 그것을 방어하게 되었다.

 

살다보니 공부하는 과정이 매번 그런 식이었다. 납득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것을 툴툴거리면서 공부하다가 그것을 응용하여 이것저것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버리니 그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라는 부분을 애써 지워버리고 무마하는 과정의 반복이었던 것이다. 이제라도 먼 옛날의 의문점 하나를 풀어서 다행이다. 

기말시험이 내일로 다가왔다. 당연히 평소에 공부는 전혀 하지 않았다. 오늘 밤을 꼴딱 새면 어찌어찌 성적은 나올 것 같다. 이제부터 공부해야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공부를 시작하려고 하면 갑자기 시험과목이 아닌 다른 과목을 공부하거나 엉뚱한 책을 읽고 싶거나 어떤 끝내주는 영감이 생기면서 시험공부를 하기 어려웠던 경험을 해본 적 있는가?

 

난 있다. 아니 항상 그래왔다. 시험 전날이 되어 더 이상 게으름 피우지 말고 밤을 새워서라도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하려고 하면, 갑자기 딴짓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만화책이나 무협지를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야 쉬고 싶고 놀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갑자기 너무나 뜬금없이 물구나무서기를 숙련되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평생 쓰지 않던 소설에 대한 착상이 떠오르면서 소설을 쓰고 싶거나, 평소 어려워서 보지도 않던 전문서적에 대한 탐구심이 넘치게 되는 현상은 분명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이상한 일이다.

 

이런 성향이 나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드물게 나타나는 성향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존 페리의 미루기의 기술을 읽어보니 이러한 현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는 것 같아 위로가 되었다. 존 페리는 미루기의 기술에서 이런 식으로 일을 미루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자신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이러한 미루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그것은 미루기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시도 보다는 미루기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이를 오히려 합리적으로 이용하라는 것이다. 이를 존 페리는 합리적 미루기 주의자라고 불렀다. 그리고 합리적 미루기 주의자로서도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미루기 습관이 없는 사람은 더 많은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위트가 넘치는 문장과 일상에서의 스스로의 단점을 수용하고 이를 인생의 즐거움과 생산성으로 전환하는 지혜가 빛나는 책이니 여러분들도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특히, 미루기의 습관이 있으신 분들은 정말로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존 페리는 할 일을 미루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을 미루기라고 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것을 딴짓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딴짓은 나처럼 인생을 피해가려는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는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것이다.

 

나는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강의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평생 딴짓을 해왔다. 기본적으로 졸고, 무협지와 만화책을 보고 하는 것은 청소년기의 욕구에 따라서 그럴 수 있지만 공부를 해도 딴 공부를 했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에는 국어, 영어, 수학이 가장 주요한 과목이었고 다른 암기 과목은 시험을 보게 되어서야 암기하는 것이니 이런 시간에 딴짓을 하거나 국영수를 공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짓을 국어 시간에는 영어를, 영어 시간에는 수학을 공부하는 식으로 했다. 선생님의 강의가 재미없고 내 진도를 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그렇게만 공부가 가능했다. , 딴짓만이 내가 평소에 공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흔히, 우리는 사람들이 합리적인 목적과 목표를 세우고 그에 따라 합리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래서 교육하는 방식도 대부분 그러하다. 우선, 아이들에게 공부를 잘하면 어떤 이득이 있는지 이야기해준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목적을 갖고 목표를 세우게 한다. 그 다음에는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할 일을 제시해주고 이를 하도록 강하게 종용한다.

 

아쉽지만 보통 목적과 목표를 세우는 일부터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목적과 목표가 너무 추상적이다.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 존경 받는 것, 모두 추상적이다. 40대가 되어버린 나도 그런 추상적인 목표는 세우지 않는다. 그런 목적을 세우고 목표를 만들어도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 들어가게 되면 추상적으로 세웠던 목적과 목표는 그저 추상적인 것에 머물고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목적이 생기게 된다. 그것은 바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고 있는 이 모든 빌어먹을 고통스러운 일들을 빨리 끝내고 쉬고 싶다는 목적이다. 그리고 더 이상 이런 고통을 자초하지 않을 인생을 살고 싶은 욕구로 가득차게 된다. 정말 모든 요건이 우연히 잘 맞아서 공부가 되고 공부를 통하여 스스로 이득을 얻고 그 이득에 만족하는 선순환을 구축하는 학생들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추상적인 목표를 향해서 달리는 것의 고통에 질려서 쉬고 싶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학생들은 다시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 부류는 쉬고 다시 그 목적을 생각하면서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는 친구들이다.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정상적인 친구들이고 시간을 들여서 열심히 하다 보면 결국, 공부를 어느 정도 잘하게 된다. 하지만 두 번째 부류는 그렇지 않다. 고통에 질린 나머지 자신의 목적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그 목적의 공허함과 현실적인 고통 사이의 괴리를 발견한다.

 

고통스러운 현실과 추상적인 목적과 그 목표에 대한 괴리를 메우는 방식도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목적을 부정하고 새로운 목적을 찾는 것이다. 이들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외치면서 지금의 현실에 충실하려고 하고 현재의 자신에게 충만함을 가져다 주는 행위를 추구하여 매순간 충만함을 기반으로 삶을 대안을 모색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런 친구들이 현재의 고통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공허하지 않은 목적과 목표를 찾아 다시 열정이 일어나면 다시 일어나서 움직이게 된다. 하지만 목적을 찾지 못하면 현재의 쾌락에 머물러있게 된다. 두 번째는 목적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현재의 고통이 너무 커 보이고 따라서 불공정한 거래인 것 같은 마음에 실제로 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다. 새로운 것을 모색하지도 않고, 기존의 체계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냥 경계선에서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는 것이다.

 

내가 바로 이 최악의 경우였다. 공부를 잘 해야 성공할 수 있고, 돈도 벌고, 대우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런 것을 원하므로 목적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미래에 대우받지 못하고 돈도 없는 삶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느끼지 못하니 현재에 고통을 감수할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머리로는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열정을 불태워야 하고 하는 것을 알지만 내 몸은 절대로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자극적인 것에 눈이 돌아가고 몸은 계속 움직이려고 한다. 그리고 놀고 나면 죄책감과 무력감이 엄습한다. 이러다 보면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고 자존감이 낮아진다. 하지만 아무리 한심하게 느껴져도 몸과 나의 무의식은 그저 노느라 바쁘다.

 

절대로 고통을 감수하지 않고 제멋대로인 몸과 무의식은 통제가 되지 않는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할까? 자유롭게 노는 시간이거나 통제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는 놀아야 하니 전혀 공부할 수 없다. 여기까지는 대부분 비슷하다. 그래서 통제된 상황이 만들어져야 공부를 하는데, 아쉽게도 통제된 상황에 놓이면 그 상황에 순응해서 공부를 하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그 통제된 상황에서 비로소 한 가지 잘 정제된 욕망이 나타난다. 그것은 이 통제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다. 하지만 육체는 이미 통제되어 있으니 정신적으로나마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게 된다. 그래서 현실을 보지 않고 다른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거기에 현재 수업과 다른 교과서가 있으면 그 교과서를 열심히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수학시간에 영어를 보고, 국어 시간에 수학을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수업시간에 수업을 열심히 듣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공부법이다. 앞에서 선생님이 온갖 시청각 교재를 제공하고 있고, 판서하고 설명하고 있으니 이를 열심히 듣고, 보고 공부하는 것이 오감에 입체적인 효과를 부여하여 가장 효과적인 공부법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러한 공부가 전혀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내가 그랬다. 나는 이중삼중으로 설계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공부를 함에 있어서 절대 공부가 목적이면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이 공부가 딴짓이 될 때에만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있을 때에만 그 탈출구로 다른 교과서가 있을 때에만 그것을 읽고 공부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내 공부는 단 한번도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목적으로만 공부가 된다는 것은 공부법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패턴의 발견 덕분에 어떻게든 공부가 가능해지긴 했다. 멘탈이 약하기 때문에 공부가 중요하고 이것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 때부터는 그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만 남게 된다. 그래서 일단, 다른 상황을 설정해야 한다. 지금 바로 현재에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을 설정해야 한다. 평소에는 수업시간에 다른 공부를 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하게 된다. 하지만 시험 때에는 시험에 대한 강력한 압박 덕분에 오히려 공부하기 더 편하다. 공부를 한다는 것 보다는 내일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서고 시험공부를 하게 되면 오히려 시험의 부담이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이 좋아서 빨리 해방을 맞이하기 위하여 공부하는 편이었다.

 

당연히, 수업시간만 공부해서는 부족하다. 자율학습을 할 때 공부를 해야하는데 이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신비주의류나 기공류의 연구 덕분에 스스로를 관찰하고 심상이라는 것을 구축하게 되면서 스스로 믿는 심상을 스스로에게 부과하면서 공부가 가능해졌다. 주로, 수학 공부와 연구였지만 결국, 성공을 위한 공부라는 것을 뒤로 제치고 지금 당장 자신의 발전을 위한 연습이라는 것으로 구체화시키는데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멘탈이 약한 사람들 혹은 무의식적 욕망이 너무 강한 사람들은 자신을 관찰해서 어떤 상황을 만들어야 스스로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하지만 좌절하지 말고 자신을 잘 관찰해보길 바란다. 구하면 얻어질 것이다.



공부가 뭔가요?

 

공부가 굉장히 중요한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어머니가 극성이셨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공부에 대한 압박감은 전방위적으로 받아 왔었다. 하지만 공부를 하라고 압박해서 아이들이 공부를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연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공부를 하라고 해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안한다. 그런 아이들도 다양한 유형이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공부를 하라고 해도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몰랐다.

 

, 강아지를 교육시킬 때, 강아지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바로 즉시 혼을 내야한다. 그렇지 않고 조금 시간이 지나서 혼을 내면 강아지는 자신이 왜 혼을 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일이 벌어진 즉시 혼이 나면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혼을 내는구나 하고 감을 잡을 수 있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강아지는 무슨 일로 혼을 내는지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런 경향은 더 심할 것이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혼을 내더라도 아이가 잘못이 무엇인지 확실히 인지해야 혼나고 나서 행동을 바꾸고, 혼난 것에 대해서 건강하게 소화할 수 있게 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당연히 아이는 그냥 내가 미워서 혼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초등학생이라고 해도 시험을 봐서 성적을 매기고 성적에 따라서 체벌도 가해지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시험에 대한 압박을 받는다. 하지만 나는 압박감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당시 내가 알기론 시험이란 학교에서 열심히 수업을 듣고 그 들은 것을 적는 것이었다. 그저 순수하게 알고 있는 것을 작성하고 나오면 되지 무슨 공부를 한다는 개념이 전혀 없었다. 물론, 시험은 완전히 망했다. 하지만 그런 망한다는 것도 머릿속에는 없었다. 그냥 시험을 보는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그 것으로 내 할 일을 다했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일 무렵, 시험을 대하는 나의 해맑은 태도가 친척들 사이에 퍼졌다. 시험 당일에 통학길에 사촌형을 만났는데 사촌형이 나의 유난히 밝은 얼굴에 좋은 일이 있냐고 물어봤고, 나는 시험이 있어서 일찍 끝나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사촌형은 살짝 흠칫했던 것 같은데, 다시 물어보길 시험 보는데 부담은 없냐고 물어봤고, 나는 정말 순진무구한 얼굴로 왜 부담을 가져야 하느냐고 반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시험결과와 함께 나의 순진무구함이 자신감이 아니라 개념없음으로 확증되었고 친척들은 이때의 내 태도를 지금까지 이야기 하고 있다.

 

너무 성적이 안 좋으니, 어머니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를 혼내고는 과제를 내주었다. 교과서의 앞에 3페이지를 외어오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 외운다.’, ‘암기와 같은 말들을 처음 들어봤고 그래서 어머니에게 그 뜻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3페이지에 있는 내용을 전부 아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이렇게 해석했다. 3페이지를 토씨하나 빼지 않고 전부 암송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무언가를 암송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중간 중간에 아직도 다 못했느냐고 물어봤지만, 그럴 때마다 야속했다. 잔뜩 혼이 나서 위축된 상태에서 과제를 받았기 때문에 얼어있었고, 처음 해보는 암송이어서 그 막막함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리고 3페이지나 암송하는 것이 너무 버거워서 속으로 엄마가 이걸 진짜로 하라는 의미는 아닐 거야.”라고 하면서 어쩔 줄 모르고 가만히 눈치를 보며 있었다. 머릿속에 3페이지 분량의 정보를 집어넣는다는 행동이 불가능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2~30분에 한 번씩 아직 안 끝났냐고 물어보니 독촉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왠지 억울했고 결국, 눈물을 흘리면서 교과서를 외우기 시작했다.

 

암송을 시도해보면 알겠지만 토씨가 자꾸 틀리게 된다. ~, ~, ~이 따위가 자꾸 헷갈리게 된다. , 머릿속에서 해당 문장을 새롭게 조합해버리기 때문에 문장의 내용은 같아도 문장 자체가 바뀌는 경우가 많다. 처음 시도해보는 암송에 3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분량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토씨가 틀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나의 암송은 끝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계속 언제쯤 끝나냐고 물어보다가 잠이 들었다(당시 어머니는 체력이 좋지 않았다.). 나는 아무리 암송을 해도 토씨가 틀리는 상황에 절망하면서 끊임없이 외웠다.

 

집안에 적막함이 돌고 밖에서는 즐겁게 노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리는 가운데, 땅거미가 지면서 책을 암송하고 있던 나는 서러움이 목까지 치밀어 올랐다. 어머니는 잠들었고 나는 기약없는 암송을 하면서 끊임없이 토씨를 맞추고 있었다. 그리고 다 외웠다는 생각이 들 때쯤, 어머니가 깨어났다. 나는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어머니에게 다 외웠다고 이야기했고, 어머니 앞에서 암송을 했다. 중간에 토씨가 틀렸다. 나는 얼굴이 시뻘개졌고, 울면서 다시 외운다고 말했다. 하지만 얼굴은 완전히 억울한 상태였을 것이다.

 

결국, 암송하는 것은 끝났고 난 밖으로 나갈 수 있었지만 이미 친구들은 다 들어가서 재미있게 놀 상대가 없었다. 잠깐 혼나고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하루 종일 책만 외워서 너무 억울하고 서러웠다. 그리고 과제가 끝났다고 이야기하면서 나를 내보내던 어머니의 표정이 머리에 깊이 남았다.

 

그 이후 나의 시험에 대한 태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어머니가 뭐라고 이야기하는 일은 없었다. , 산수는 계속 시키고 공부를 했다. 하지만 다른 과목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성적을 받아와도 국어하고 산수만 어느 정도 받아오면 별 말이 없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다 같이 수업을 듣는데 나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 내용들을 친구들은 어떻게 맞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이 처음 생겼다. 특히, 체육 같은 과목은 수업은 없고 운동만 했는데 어떻게 친구들은 체육 시험 문제를 풀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첫 질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친구에게 물어봤는데 그 친구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책에 나오잖아.”

 

충격이었다. 교과서는 선생님이 교과서를 피라고 할 때만 펼쳐서 보는 것 인줄 알았지 거기에 있는 내용이 시험에 나온다는 사실은 그 날 처음 알았다. 그리고 시험공부를 하려면 책을 펼쳐서 해당 내용을 봐야 한다는 사실도 그 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시험문제를 맞추기 위해서 책을 암기한다는 개념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시험이라는 목적이 분명해지자 책을 암기하는 이유와 방법도 명확해졌다. 물론, 이로 인하여 시험이 아니면 책을 암기하지 않게 되었지만 시험공부를 하는 것이 책을 암기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개념이 처음으로 제대로 서게 되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의 표정이 무슨 의미인지 이제는 이해한다. 아마도 어머니가 외우라고 했던 것은 시험공부 하듯이 암기하고 어머니가 책을 보면서 물어본다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혼자서 전문을 암송하고 있는 내 모습에서 어머니는 아들이 어머니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공부를 한다는 개념을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포기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암기보다는 단순히 일상적으로 숙련이 필요한 과목이고 나중에 하기 어려운 산수는 계속 시켰지만 그 외의 과목에 대해서는 공부하라고 전혀 강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교훈 : 때론, 공부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초등학생도 있다. 




본 문서는 Anki 2.0 유저 매뉴얼을 번역한 문서입니다.


기본적으로 구글 번역을 통해서 초벌을 번역하고 이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번역했습니다. 


또한, 본문에 충실한 직역보다는 매뉴얼을 숙지하기 쉽도록 의역 위주로 번역하였습니다.



Anki 매뉴얼 전체 개요 페이지 가기

 


Introduction

 


Anki는 무언가를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Anki를 이용한 학습은 전통적인 학습보다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에 공부에 소모되는 시간은 줄이고 공부하는 양은 크게 늘릴 수 있다.

 

Anki는 내용과 상관없이 이미지, 오디오, 비디오들을 지원하고 LaTeX를 통해 과학 마크 업을 지원하는 등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프로그램으로써 일상에서 무언가 기억할 것이 있다면 Anki를 적절히 이용해서 효과를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

 - 언어 공부

 - 의학이나 법학 시험 준비

 -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 암기

 - 지리학적인 구분

 - 긴 시를 마스터하기

 - 또는 기타 코드를 연습하기


 

Anki에는 두 가지 간단한 핵심개념을 구현하고 있다.

 

하나는 능동적 기억환기(Active Recall Testing)이고 다른 하나는 간격 반복(spaced repetiton)이다. 

 

이 두가지 개념은 수년간 과학 문헌에서 논의되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학습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의 작동방식을 이해하면 보다 효과적인 학습이 가능해질 것이다. 


 

 

 Active Recall Testing(능동적 기억환기)



능동적 기억환기는 질문을 받고 그 해답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식의 시도를 의미한다.

 

능동적 기억환기와 대조적인 것이 일반적으로 수행하는 정적이고 수동적인 공부들이다.

 

가령, 우리가 무언가를 읽고 듣는 식으로 공부할 때, 만일 해당 내용을 알고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 잠시라도 숙고해보지 않고 넘어가는데 이것이 정적이고 수동적인 공부방식이라면 능동적 환기를 요구하는 공부방식은  질문을 받고 그에 대한 해답을 기억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방식이다. 

 

연구에 따르면 능동적 기억환기는 정적이고 수동적인 공부보다 강력한 기억을 구축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다.

 

이것에는 다음의 두 가지 이유가 있다.

 - 뭔가에 대한 기억을 환기하려고 하는 행위 자체가 기억을 강화하고 그것을 다시 기억해낼 가능성을 높인다.

 - 질문을 받았을 때 해답을 말할 수 없었다면 다시 공부하거나 복습할 필요성을 느껴 복습할 수 있다.

  

 

당신은 깨닫지 못했겠지만 아마도 학교에서 능동적 기억환기를 해봤을 것이다. 

 

훌륭한 선생님은 교육 문건을 읽은 후 대답해야할 일련의 질문을 주거나 매주 진행 정도를 점검하는 테스트를 수행하거나 한다.

 

이때, 이러한 테스트는 단순히 해당 내용을 이해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만 한 것이 아니라 테스트를 통해 능동적으로 해당 내용을 환기하도록 하여 미래에 해당 내용을 기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늘리고 있는 것이다. 

 

능동적 기억환기를 공부에 도입하는 좋은 방법이 플래시 카드를 사용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종이 플래쉬 카드를 사용하는 방법은 카드의 한면에 질문을 쓰고 다른면에 해답을 적는다. 

 

그리고 답을 생각해 낼 때까지 카드를 뒤집지 않는 식으로 능동적으로 기억환기를 하는 것이다.

 

이는 단지 수동적으로 내용을 흝어 보는 것보다 효과적인 학습을 가능케 한다.

 



 Use It or Lose It(사용하지 않으면 잊는다.)



우리의 두뇌는 매우 효율적인 기계여서 별로 쓸모없어 보이는 정보는 빠르게 폐기한다.

 

가령, 2주 전 월요일의 저녁 식사에 대해서 기억이 전혀 안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정보는 별로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2주전 그날 정말 환상적인 레스토랑에 갔고 지난 2주 동안 사람들에게 그게 얼마나 대단하고 환성적이었는지 말하고 다녔다면 아마도 세부 사항까지 생생하게 기억날 것이다.


우리의 두뇌는 "사용하지 않으면 잊는다"라는 원칙 하에 움직이인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은 우리의 학습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만일 오후시간 내내 뭔가 어려워보이는 과학 용어를 암기하고 2주 동안 그 암기한 것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면 아마 대부분 잊어 버리게 된다.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학습한 내용의 75%를 48시간 이내에 잊어 버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결과에 따른 정보 손실을 생각한다면 정말 많은 정보를 배워야 하는 상황이 매우 우울하게 느껴질 것 같다. 


해결책은 복습으로 매우 간단하다. 새로 학습한 정보를 다시 복습함으로써 잊어버리는 내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유일한 문제는 전통적으로 복습을 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이다.

 

종이 플래쉬카드를 사용하여 복습하는 상황을 생각해보라.

 

다시 검토하고 복습할 내용이 플래쉬 카드 30개만으로 충분하다면 간단하게 복습할 수 있다.

 

하지만 복습할 내용이 많아져서 필요한 카드의 수가 300 또는 3000으로 커지면 종이 플래쉬 카드로 다루기 힘들어진다.

 

 

 

 Spaced Repetition(간격 반복)

 
 

간격 효과는 1885년 독일의 심리학자에 의해 보고되었다.

 

그는 한 세션에서 여러 번 반복하여 공부하는 것 보다 복습 세션을 여러 시간에 걸쳐서 갖는 것이 좀 더 기억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것을 관찰했다.

 

1930년대 이래로 이러한 간격 효과를 사용하여 학습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많은 제안이 있었다.

 

이때 명칭이 간격효과에서 간격 반복(spaced repetition)으로 지칭되었다.

 

한 예로 1972년에 독일의 세바스찬 라이트너(Sebastian Leitner)라는 과학자가 종이 플래쉬 카드를 이용하여 간격을 두고 반복하는 방법을 대중화 한 것이 있다.

 

우선 종이 카드를 일련의 상자에 나누어 두고 복습을 하면서 카드를 성공과 실패로 나눈다. 성공 또는 실패한 카드를 다른 상자로 옮김으로써 해당 카드가 얼마나 잘 외어졌는지 아니면 언제쯤 다시 복습을 해야 하는지 대략적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이 방법은 하나의 카드 상자만을 사용하는 것에 비해 큰 발전이었으고 플래쉬 카드를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로 전환하면서 이 방법이 널리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복습해야할 정확한 날짜를 제시할 수 없고 다양한 난이도의 학습내용을 잘 다루지 못하는 다소 대략적인 접근법이다.

 

지난 30년 동안 간격 반복의 가장 큰 발전은 간격 반복을 구현한 상업용 플래시 카드 프로그램인 SuperMemo의 저자로부터 나왔다.

 

SuperMemo는 학습한 내용을 복습해야할 이상적인 일정을 따르면서 동시에 사용자가 얼마나 학습을 잘했는지에 따라서 스스로를 최적화하는 시스템이라는 개념을 개척한 것이다.


SuperMemo의 간격 반복 시스템에서는 질문에 답할 때마다 얼마나 기억하기 용이했는지, 즉 답을 하는 사용자가 느낀 주관적인 난이도를 프로그램에 제시하도록 되어 있다.

 

완전히 잊어먹은 것인지, 그저 작은 실수를 한 것인지, 기억하는데 문제가 있었지만 기억을 해냈다던지, 쉽게 기억했는지 등등을 사용자가 프로그램에 피드백한다.

 

프로그램은 이 피드백을 이용하여 당신에게 질문을 다시 보여줄 최적의 시기를 결정한다.

 

능동적으로 기억환기를 성공적으로 할 때마다 기억은 더욱 강해지기 때문에 다시 복습이 필요해지는 시기는 점점 뒤로 밀린다.

 

그래서 어떤 카드를 처음 본 다음에는 3일 후, 그 다음에는 15일 후, 다시 45일 후 등등 학습간격이 점점 늘어나게 된다.

 

이것은 필요한 최소한의 노력으로 자료를 습득하고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학습 혁명이었다.

 

SuperMemo의 슬로건은 공간 반복을 통해 망각을 잊어 버릴 수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Why Anki?(왜 Anki인가?)

 

 

SuperMemo가 학습 현장에 주었던 큰 충격을 부정할 수 없지만 동시에 문제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었다.

 

이 프로그램은 자주 버그가 나타나고 탐색하기가 어렵다는 비판을 받았다.

 

, Windows 컴퓨터에서만 실행이 되었다.

 

독점 소프트웨어로, 사용자는 해당 프로그램을 확장하거나 원시 데이터에 액세스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현대적인 용도로는 거의 사용하기 어려운 아주 오래된 버전만 무료로 제공된다.

 

Anki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다.

 

많은 플랫폼에서 Anki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클라이언트가 많아서 예산에 구애받는 고학생들과 선생들도 사용할 수 있다.

 

오픈소스이므로 이미 많은 사용자들이 만든 풍부한 애드온 라이브러리가 제공된다.

 

또한, Windows, Mac OSX, Linux/FreeBSD 및 일부 모바일 장치에서 실행되는 멀티 플랫폼이다.

 

그리고 SuperMemo보다 훨씬 사용하기가 쉽다.

 

내부적으로, Anki의 간격 반복 시스템은 SM2라고하는 이전 버전의 SuperMemo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다.

 

SM2의 후속 버전은 학습 효율을 조금 더 쥐어짜내는데 성공했지만 복잡성이 크게 증가하였고 실제 사용에서도 학습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가 체감될 정도가 되었다.

 

간격반복과 학습일정 알고리즘의 차이점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자주 묻는 질문(FAQ)의 해당 절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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