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Anki기본(Basic) 노트로 질의/응답 형식으로만 만들었을 때는 카드를 만드는게 조금 골치아픈 문제였다. 질의/응답 형식의 카드 만들기는 완성형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조금 어렵다. 어떤 문제를 만들까? 어떤 사항이 핵심일까? 고민하고 그것을 일일이 타이핑하고 사진을 붙이고 작업을 해야 한다. 실은 이미 해당 내용에 대한 공부가 되고 나서야 질의/응답 형식의 카드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카드를 만들다보면 자연스럽게 공부가 된다. 해당 주제에 대하여 고민하고 이를 다각적으로 고찰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카드를 다 만들고 나면 이미 상당히 깊은 수준까지 해당 지식을 체득하게 되고 그 뒤의 카드는 그저 기억을 환기하는 정도다. 따라서 카드를 만드는 과정도 학습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 이미 공부한 내용이다. 새롭게 이해하고 고찰하는 과정은 그닥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너무 많은 공부량이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정리하고 보고 싶지는 않다. 그저 기억을 환기할 수 있고 숙련될 수 있도록 누군가 만든 자료가 있었으면 좋겠다. 가령, 초중고의 수학 같은 것들이다. 이것을 하나하나 정리해서 다시 보기는 그 양이 너무 많아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트렌드는 수학을 자주 사용해야 해서 기억을 환기시키고 싶다. 누군가 잘 정리해 놓은 것이 없을까? 

     

과거에 공부한 그러나 지금은 기억이 희미한 내용들을 다시 공부하고 싶을 때 타인이 해 놓은 것을 업어올 방법이 없을까? 몇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처음 생각한 것은 문제집이었다. 평생 문제집이라는 말을 부담스럽게 생각했는데, 막상 스스로 공부할 생각을 하니 문제집이라고 하는 것이 모든 분야에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간단한 질의/응답 문제를 만들어 보니 알 것 같다. 이것도 골머리 아픈데, 난이도 별로 복잡한 온갖 요소들을 고려해서 섬세하게 답까지 유도하는 문제와 답을 만든다는 것은 상당한 정신적 노동이다. 문제집이라는 것이 학습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인프라인 것이다. 하지만 문제집 파일이 웹에 돌아다니는 경우를 찾지 못했다. 유료 이북이거나 학원 강의 같은 것을 들어야만 제공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 흔한 PDF도 찾지 못했다. 관련 속내를 살펴보니 문제들 하나하나가 출판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자산 취급을 받는 것 같았다. 해외의 문제집은 조금 돌아다니는데 워드 파일보다는 주로 웹에서 학습을 하는 형태들이 많았다. 

      

서점에서 문제집을 사서 해당 내용을 Anki로 옮기는 것도 생각해보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학습한 개념에 대한 기억을 환기하고 간단히 적용해보는 정도의 기본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문제집의 문제들은 문제를 어렵게 꼬아서 학생들의 수준을 변별하려는 의도를 가진 그런 문제들 위주다. 오히려 기본적인 질문은 상대적으로 적다. 또는, 자리에 앉아서 연습장을 펼쳐놓고 풀어야 하는 그런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들은 그 자체로 학습에 도움을 주기는 하겠지만 개인적으로 Anki를 사용하고자 하는 방식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나는 Anki를 주로 모바일로 운동 중이거나, 이동 중이거나 대기 중일 때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공부하는 용도로 사용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의 문제집을 이용하는 것은 개인적인 Anki 사용 방식과도 대치되고 또, 이를 멋모르고 공유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저작권 문제도 있기 때문에 포기했다. 그 다음으로 살펴본 것이 AnkiWeb공유카드(Shared Deck)들이었다. AnkiWeb공유카드는 이 페이지를 방문하면 된다. 다음과 같은 화면이 나타난다. 딱히 로그인을 하지 않아도 들어가서 해당 카드들을 다운받을 수 있다. 



위의 사진은 Anki가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 잘 보여준다. 단순히, Anki 공유카드의 모든 카테고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선호되는 카드들 위주로 나열되어 있는 것 같다. 1차적으로는 대부분 언어이고 2차적으로는 압도적인 암기량을 자량하는 의학계열의 공유카드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노골적으로 암기하는 과정이 필요한 분야들이 암기와 의학계열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어떤 내용이 있나 둘러보면 영어(English)와 Anatomy(해부학) 정도가 정말 해당 카드를 쓸만한 정도의 품질을 보여준다. 이미 의대생에게 Anki는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적인 앱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YouTube에서 Anki를 설명하고 있는 많은 동영상들이 같은 다른 의대 출신의 대학생들에게 Anki를 권유하는 내용인 것은 이래서 그렇다. 실제로 해부학의 Anatomy 카드들은 엄청난 용량으로 엄청난 고품질이다. 

       

해부학을 공부할 필요를 못 느끼니 그것은 논외로 하고 평소에 관심 가는 분야에서 흥미로운 카드들을 검색하여 공부해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카드를 사용한다는 것이 녹록치 않았다. 일단, 카드를 특정하기 어렵다. 1만개의 단어가 수록된 English 단어 암기용 카드뭉치를 다운 받아 사용해보니 태반이 아는 단어이고 몇 가지 단어는 제대로 작성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그 뒤에 어떤 단어가 왜 나오는지도 알 수 없고 그저 파편화된 상태로 단어를 암기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가 왜 이런 것을 공들여 암기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또, 어떤 카드들은 자신만의 맥락이 있어서 처음 카드를 접하는 사람들은 맥락을 이해할 수 없게 카드가 만들어진 경우도 있다. 어떤 것은 너무 부실하고 어떤 것은 뜬금없는 카드들만 모여있는 경우도 있었다.


타인의 카드를 쓰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운 것일까? 일단은 근본적으로 맥락의 부재 때문이었다. 

      

카드를 이용한 암기는 카드의 양면에 지식을 매우 축약한 것이다. 맥락을 아는 사람은 속으로 “맞아 이것만 외우면 돼!”라고 말하지만 실은 수많은 맥락이 그 카드에 축약된 것이다. 가령 주기율표를 외우는 방식 중에 두음을 이용하여 암기하는 방식이 있다. 각 원소의 첫 글자를 따서 연달아 외우는 것인데 "에헤리베...." 라는 식으로 주욱 이어진다. 작성자 본인이야 다음과 같이 카드를 만들어 공부하면 된다. 

       

질문 : 에[ ]리베 의 빈칸에 들어갈 원소는?

답 : 헤


작성자는 본인이 왜 이런 카드를 만들었는지 알기 때문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하지만 다른 사용자는 이런 의도와 맥락을 알 수 없으니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이 카드를 열심히 추론하여 깊은 고민 끝에 두음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활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것 외에도 수많은 맥락이 있다. 스스로 공부를 할 때는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암기를 한다. 어떤 사람은 공부하다가 자신이 모르는 사실을 발견할 때만 암기하고, 어떤 이는 헷갈리는 부분만 암기한다. 어떤 이는 너무 많은 카드를 만들고 어떤 이는 너무 적은 카드를 만든다. 하지만 그 모든 낱장의 카드들은 각자의 필요에 각자의 관점에서만 만들어질 수밖에 없고 그런 카드 제작자의 맥락을 모르는 다른 사용자들은 이러한 카드들이 너무 많거나 너무 적거나 너무 지엽적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이렇게 주욱 살펴보니 해부학과 같이 교과서를 Anki가 대체하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쓰기 어려웠다. 혹은, 딱 자신이 원하는 취향의 카드뭉치를 찾기 어려웠다. 결국, 카드 업어오기는 포기하게 되었고, 완성형 스타일로 카드를 만들게 되면서 공부할 내용이 너무 많아져 다른 카드를 업어올 생각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한쪽으로는 카드를 공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생각이 맴돌았고 그에 대한 고민이 후에 Ankilog로 이어졌다.

드라마가 결국 언어적 구조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니 많은 것들이 설명되기 시작한다. 앞서 이 모든 이야기가 출발했던 의문점을 제시한 바 있다. 미국 드라마를 자막 없이 보다가 생긴 의문점에서 출발함이라는 포스팅에서 처음으로 제시했던 질문들이다. 이 포스팅에서는 거의 외우다시피 할 만큼 자주 봤던 미국 드라마를 자막 없이 봤는데 전부 외우고 있던 드라마의 스토리는 전혀 생각나지 않고 거의 들린다고 여겼던 영어는 전혀 들리지 않으면서 드라마는 완전히 낯설었던 경험을 말하면서 발생한 의문들을 다음과 같이 질문했었다. 


거의 외우다시피 해서 익숙했던 드라마 에피소드가 왜 이리 낯설게 느껴찌는가?


그리고 잘 들리던 영어가 왜 갑자기 안 들리게 되는 것인가?


마지막으로 영어가 안 들리는데 어째서 각각의 장면과 등장인물에 대한 공감은 더 강해지고, 반대로 익숙하던 스토리는 갑자기 조각나서 서로 연결되지 않는가?



이 모든 것의 대답은 처음부터 명백하고 단순했다. 바로 언어의 부재가 바로 그 답이다. 하지만 위의 질문들은 언어의 부재를 통하여 언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기 때문에 이 대답은 좀 더 심화될 필요가 있다. 


자막과 함께 드라마를 봤을 때, 인식구조는 자막에서 영상과 소리로 넘어간다. 즉, 자막을 먼저 확인하고 그 확인된 자막의 내용을 영상이나 소리와 일치하는지 확인한다. 자막이 말소리와 동기화(sync)가 맞지 않을 때, 드라마를 보기가 얼마나 불편한지 느껴봤다면 이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자막이 말소리와 동기화가 되면 그 때부터는 자막의 내용이 하나의 언어적 구조물로써 작동하면서 이야기가 성립되고 드라마의 말소리와 영상은 그 이야기에 실제감과 몰입감을 부여한다. 반면, 언어를 직접 들으면서 보는 드라마는 영상을 보는 와중에 소리를 듣기 때문에 영상과 소리가 동시에 존재한다. 이 경우 소리가 언어적 구조를 형성하고 이 언어적 구조는 영상과 동시에 인지된다. 자막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른 차이는 결국 정보량의 차이로 이어진다. 자막과 함께 보는 경우는 자막을 먼저 확인하기 때문에 주요 영상의 누락이 축적되고 영상을 길고 세세하게 살펴볼 시간이 부족하다. 또, 말소리에서 직접 전달될 수 있는 억양과 발음에 따른 미묘한 감정 표현, 그 캐릭터의 출신지역이나 성장환경 등에 대한 직접적인 느낌 등이 모두 사라지고 그저 자막으로만 나타나게 된다. 이는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자막으로 드라마를 보는 것은 시나리오에 영상과 배우의 목소리를 첨부하면서 글을 읽는 것과 같고 자막 없이 보는 것은 입체적인 공감을 통하여 충실하게 이야기에 몰입하는 것이 된다.


잘 들린다고 생각했던 영어들은 주로 짤막한 대사들인데 이들이 잘 들린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자막 읽기에 숙련되었고 그 자막을 거의 통째로 외우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자막이 머릿속에 해당 언어의 뜻을 이미 전개시켜 놓았고 그 다음 대사를 듣게 되거나 혹은 대사를 듣는 동시에 자막을 확인하기 때문에 그것을 사후적으로 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는 대사의 길이로도 확인해볼 수 있었는데, 단어의 개수가 한 두 단어일 때는 자막과 배우의 대사를 일치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영어가 들린다고 생각하지만 대사의 길이가 늘어나면 영어는 무시하고 자막만 보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자막을 보는 동안은 영상도 보지 못하게 된다. 여하튼, 자막을 통해 영어를 들을 수 있다는 인식의 오류가 생긴 것이기 때문에 자막이 사라진 순간 잘 들린다고 착각했던 영어 안 들리게 되는 것이다. 


자막이 없어져서 영어가 들리지는 않게 되었지만 오히려 직접 드라마의 영상을 눈으로 보고 대사를 듣게 된다. 자막이 있었을 때는 자막이 들어야할 것과 보아야할 것을 가이드 해주었지만 동시에 보고 듣는 것에 할애할 시간을 빼앗고 해석의 방향을 미리 제시하기 때문에 주마간산 하는 식으로 드라마를 보게끔 했다. 자막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날 것으로 영상과 소리를 직접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풍부한 비언어적 표현들이 자연스럽게 인식되고 그로 인하여 공감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공감은 언어로 인식되지 못했기 때문에 종합적인 인지를 구성하지 못하고 단지, 각 장면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정서적 요소나 캐릭터에 대한 미묘한 공감과 애정으로만 남게 된다. 대사와 같은 언어의 형태로 전달되고 공감되지 못한 그러한 인지들은 매우 제한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들은 기억하기도 쉽지 않고 기억을 환기하기도 쉽지 않으며 접한 정보를 가공하여 새로운 정보를 만들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자막 없이 모르는 언어의 드라마를 시청한 느낌은 현저하게 느낀 장면과 정서 몇 가지로 축약되고 하나의 이야기로 성립하지 않는다. 


게다가 드라마가 현실과는 달리 언어적 구조물이기 때문에 언어적으로 인식되는 정황을 통하여 이야기의 영상과 소리가 시공간을 도약하면서 정신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언어가 없을 경우 시청자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언어가 영상과 소리의 널뛰기를 매개해서 드라마를 성립시켜 주는 것인데 그러한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자막도 사용하지 않으면 드라마가 하나의 연속체가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것들의 일관성 없는 묶음 같은 것이 되기 때문에 하나의 이야기로 성립되는 것은 더 어려워진다. 이에 대해서는 고통의 원인에 대해서 포스팅한 것을 참조하기 바란다.


결국, 일련의 실어증 체험으로 자막 없이 미국드라마를 본 것에 대한 의문점은 모두 풀었다. 실어증을 체험하는 것에는 실패했고, 드라마를 자연관찰하듯이 보는 것도 실패했다. 하지만 이런 체험을 통해서 그 동안 이론적으로 듣기만 했던 다양한 것들을 실제 체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고 자막을 통해서 어떻게 드라마를 보고 있는지도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다음에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체감하게 된 '언어'에 대해서 이야기해볼 생각이다. 

드라마가 결국 언어적 구조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후에서야 자막 없이 드라마를 보는 것이 조금 편안해졌다. 그리고 드라마나 영화가 실은 실어증 체험이나 언어적인 훈련을 위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다른 자료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큰 기대 없이 영화나 드라마를 쪼개어 가면서 보게 되었다. 즉, 장면 전환으로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끊고 다시 정리하고 보는 식이었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줄여 보니 언어가 없기 때문에 보이는 것들이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소한 손동작이나 표정 등 영상으로 제공되는 모든 것이었다. 이건 언어가 없기 때문에 보인다는 측면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자막이 없기 때문에 보이는 것에 가까웠다. 수십번 반복하면서 본 드라마도 자막 없이 보게 되면 전혀 새로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 자막으로 인한 경우가 많았다. 


자막이 있으면 눈은 끊임없이 자막과 영상을 오가게 된다. 눈으로 영상을 보면서 귀로 대사와 음악을 들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눈으로 영상과 자막을 보고 귀로 음악을 듣는 식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눈은 매우 바쁘게 자막과 영상을 오가게 된다. 앞서 언급한 현실 관찰처럼 눈은 사물을 따라가면서 관찰한다. 눈은 그것이 어떻게 변화하고 움직이고 오가는지를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본능적으로 따라간다. 하지만 대사가 있을 때 마다 눈은 자막을 향한다. 드라마가 언어적 구조물이기 때문에 대사는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모든 장면이 대사에 맞춰 구성되어 대사와 영상은 그 순간 최대의 시너지를 내게끔 되어 있지만 자막으로 보는 사람은 그 순간 가장 중요한 영상을 미묘하게 보지 못하게 된다. 물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장면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누적되면 상당량의 영상을 보지 못하고 넘어가게 된다. 또, 대사가 길면 어떻게 될까? 그 대사를 전부 빠르게 읽어야 한다.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맥락에 따라 파악까지 해야 한다. 당연히 대사가 길어지면 눈은 거의 자막으로 넘어가 있고 빠르게 대사를 읽고 영상으로 눈이 돌아와도 영상에 의식이 집중되지 않는다. 눈은 영상을 보고 있어도 머리는 상황을 파악하느라 정신없는 것이다. 결국, 자막과 함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은 본인은 제대로 보고 듣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내용의 상당부분이 누락된 채로 그것을 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자막과 함께 드라마를 보는 것에 익숙해지면 정말 전혀 불편함이 없다. 자막이 대사와 싱크가 안 맞는 경우를 제외하면 나중에는 자막의 존재 자체를 잊을 정도로 편안하게 시청하게 된다. 나아가 어느 순간부터 배우들이 한국말로 대사를 말하는 것처럼 느끼거나 영어를 바로바로 알아듣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즉, 정리하자면 자막이 있으면 외국어의 어색함도 없고 어떤 문화적인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도 못하며 상당부분의 영상이 누락됨에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모두 드라마 속에 현전하고 있어 시청자가 느껴야하는 것들이다. 당연히 미국과 대한민국은 의사소통하는 법부터 문화적인 코드까지 전부 미묘하게 다르다. 하지만 그런 차이를 전혀 실감하지 못한다. 상당부분의 중요한 영상이 누락되거나 영상을 보는데 방해를 받았음에도 그것을 실감하지 못한다. 외국어를 말하는 것이니 입모양도 한국어와 다르고 억양 발성도 전부 다르다. 또, 결정적으로 모르는 단어를 말하고 있는데 그것을 실감하지 못한다. 영화나 드라마가 언어적 구조물이기 때문에 그 언어적 의미가 소통된다면 당연히 전체의 이야기 전개가 자연스럽게 인식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에 따른 다른 이질적인 요소까지 전부 실감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떻게 여겨야 할까?


반대로, 자막 없이 드라마를 볼 때는 이 모든 이질성이 극대화되어 튀어나온다.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니 제시되는 상황과 배우의 표정 손짓 등 사소한 디테일을 통하여 그것을 해석하게 되는데 공감되는 것도 있고 이질적인 것도 있다. 그리고 그 이질적인 것 중 하나를 찾아낸 것이 페퍼의 눈동자였다. 드라마에서 시공간 널뛰기 없이 어느 정도 연속적인 시선 처리와 제한적인 시공간의 상황을 보여줄 경우에는 많은 디테일한 의미들이 영상을 통해 발견된다.


그렇다면 이제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직접 보는 경험과 비교할 필요가 있다고 느낄 것이다. 이런저런 미국 드라마에 대한 시도가 없었다면 한국어로 된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아무 것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상황과 대사와 표정이 너무 일체화되어 있어서 느끼는 것이라곤 그저 배우가 연기를 잘 하네 못 하네 정도에 불과하다. 무언가 새로 발견할만한 문화나 행동양식이 없고 그저 모든 것이 친숙하고 그저 공감하고 말고 하는 것만 있다. 아마 이것이 미국 드라마를 원어민이 볼 때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발견하기가 너무 어렵다. 반면 모르는 외국어의 드라마는 이 모든 것이 이질적이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발견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외국 드라마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한국 드라마를 보게 되면 조금씩 보이는 것이 있다. 


그것은 대사가 나오기 전에 그 대사가 나올 맥락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 표정 등에 의해서 공감이 발생하고 그렇게 생긴 공감을 언어가 규정하고 전개시킨다. 그래서 상황과 대사가 엉뚱하게 어우러져 오해를 낳기도 하고, 그 모든 상황과 표정을 통하여 그 말의 무게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산전수전 다 뚫고 만나러 가서 절박한 표정으로 “좋아한다.”라고 말할 때 시청자들은 그 캐릭터가 겪은 수많은 간난신고를 통해 그 마음의 진실성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좋아한다.”라는 대사와 함께 마무리된다. 이제 시청자에게 그 “좋아한다.”라는 대사는 그 캐릭터가 수많은 간난신고를 뚫고 행동하게 된 원인이자 그 결과가 된다. 즉, “그 캐릭터가 상대를 그렇게 좋아했다.”라고 짤막하지만 무거운 문장으로 마무리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상황과 맥락이 언어와 연결되면서 그 언어가 실체적인 성격을 갖게 되는 것이 바로 공감이다. 그리고 그렇게 언어로 종결되면서 그 디테일한 부분은 그 감상과 무게를 대사에 더하고 누락된다. 


하지만 자막으로 통해서 보게 되면 장면장면에서의 맥락 설정이 완전 반대가 된다. 원래 드라마의 구조는 각종 상황과 캐릭터의 표현을 통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것이 대사를 통하여 규정되고 전개되고 마무리된다. 하지만 자막을 읽는 경우에는 먼저 자막을 읽고 언어적 맥락이 먼저 파악된 다음에야 영상을 해석하게 된다. 대사가 짧고 영상이 주된 액션영화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사가 많고 상황이 주로 언어적으로 전개되는 드라마나 말이 많은 영화 장르일 경우에는 자막을 파악하고 해당 자막에 맞춰 영상을 해석하게 된다. 아무래도 언어적 맥락 파악이 우선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막으로 미국 드라마를 보게 되면 그 공감의 상당부분이 퇴색된다. 자막으로 보는 것 때문에 영상의 중요 부분이 누락되고 영상에서 눈을 떼지 않았을 경우 발견했을 가장 사소한 디테일들, 몸짓이나 손동작 등이 누락되고 그만큼 공감되는 정도가 낮아지게 된다. 원작자가 100의 공감을 전달하려고 했다면 자막을 보는 시청자는 대략 80정도 공감하는 것 같다. 세세한 디테일은 사라졌지만 그 이야기의 골간은 분명하게 전달되었기 때문에 드라마는 재미있다. 하지만 만일, 자막 없이 본 드라마를 자막과 함께 다시 보게 될 경우에는 그 헛헛한 느낌과 괴리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또 배우들은 극중 상황에 따른 특유의 문화와 행동양식 등을 충분히 녹이려고 노력하지만 자막으로 보는 경우에는 이미 자막에 맞춰서 모든 영상을 판단하게 되기 때문에 자막에서 제시해주는 언어적 맥락을 지탱해주는 영상이나 내용은 수용되지만 그와 상관없는 세세한 디테일들은 완전히 누락된다. 따라서 배우가 연기를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어지간해서는 판단하기 어렵고 배우들이 전달해주는 생동감도 상당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자막으로 통해서 언어적 맥락이 머릿속에서 전개되고 대사를 맞추기 때문에 짧은 대사는 잠깐이지만 서로 공존한다. 또, 나와 같이 거의 드라마를 외우다시피 했던 경우에는 실은 외운 것은 자막에 불과하다. 그리고 자막을 외웠기 때문에 자막의 첫마디만 봐도 다음 자막의 내용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전개될 정도가 되면 영어를 한국어처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즉, 상대방이 다음에 할 말이 “고맙다”라는 것을 알고 머릿속에는 “고맙다”라는 말이 이미 준비된다. 그리고 배우가 “thanks”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그 말이 머릿속에서는 바로 준비된 “고맙다”라는 대사로 전환되는 식이다. 결국, 영어가 들린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완벽한 오류였던 셈이다. 


자막을 통해 영상과 소리를 통해 제시되는 모든 이질성이 사라지고, 영상과 상황에 따른 전개로 대사가 연결되지 않고, 대사를 먼저 확인하고 그에 따라 영상을 취사편집하게 되는데 스스로 그러한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중에 거의 드라마 대사를 외우다시피해서 자막 없이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거은 매우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개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자연은 아름답고 그 속의 다양한 동식물들은 아무런 말이 없어도 우리를 매혹시키고 빠져들게 한다. 그런데 드라마는 그 언어를 모르면 보는 것이 너무 괴롭고 힘들다. 어째서 이런 것일까? 처음에는 언어를 백지처럼 완전히 모르는 것은 아니니 어떤 언어적인 기능이 본능적으로 발동하고 또 다시 좌절되기 때문에 답답함과 좌절감이 온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 스스로 설정한 언어적인 기능에 대한 과대망상에 빠져서 ‘모든 것이 언어다’식의 얼버무리기 식의 결론에 도달했었다. 하지만 자연관찰에 몰입하게 되면서 그 언어적인 기능에 대한 과대망상에서 벗어나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우선, 언어가 있고 그것을 조금이나마 알아듣기 때문에 고통을 느낀다는 스스로의 가설을 검증해볼 필요가 있었다. 유사한 상황에 처해 보면 된다. 즉, 내가 모르는 언어를 말하는 외국인을 관찰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된다. 자연관찰이지만 동시에 언어가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평소,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해답은 금방 튀어나왔다. 전혀 괴롭지도 않고 답답하지도 않다. 모르는 외국어도 그 의미를 몰라서 괴롭지는 않고 오히려 그 사람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음성이 어우러져서 들리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계속 시선을 주는 것으로 인한 무례가 아니라면 사람을 관찰하는데 있어서 어떤 장애도 느끼지 않는다. 어떤 이는 웅얼거리면서 말하기 때문에 외국어가 아니라도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있고 누군가의 말은 모르는 외국어임에도 머릿속에 새겨질 만큼 또렷하고 아름답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입고있는 옷과 손에 들고 있는 짐들은 그들이 일시적인 관광객인지 국내에 거주중인 것인지 알게 해주고, 표정과 목소리의 톤, 몸짓은 그들이 연인인지, 친구인지, 가족인지 알려준다. 잠깐의 관찰로도 상당히 많은 것을 알게 해준다. 이렇듯 외국인을 관찰할 경우 모르는 언어가 개입하고 있지만 전혀 고통스럽지고 괴롭지도 않으며 오히려 무척 흥미진진하다. 아무래도 언어적인 기능이 작동하고 다시 좌절하면서 고통을 겪는다는 가설은 폐기해야할 것 같다.


새로운 해답을 찾아 생각이 표류하다가 고통에 초점을 맞춰보게 되었다. 자막 없이 드라마를 볼 때 생기는 그 고통에 대해서는 앞서 포스팅한 미드를 자막 없이 보다가 생긴 의문점에 대하여 고찰함 2에서 명칭실어증과 개인적인 경험을 버무려서 명칭을 모르는 것에 대한 고통과 답답함을 언급했다. 이 경우 소설이나 텍스트 등 언어적 맥락 속에서 의미를 향유하다가 갑자기 나타난 이름 모를 기호 하나 때문에 무지의 벽에 부딪히고 답답해지면서 읽고 있던 맥락보다 지금 현재 눈앞의 기호 하나를 모른다는 맥락에 매몰되어서 전체 맥락이 단절되고 갑자기 글에 대한 흥미도 급격하게 사라지는 그러한 고통을 말했다. 그리고 그 고통과 답답함은 마치 자신의 위치와 맥락을 잃고 길을 잃었을 때 생기는 당혹감 또는 갑작스러운 급격한 시공간적 변화로 현재 자신의 상황을 납득하기 어려운 비현실감과 매우 닮아있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는 납득하기 어려운 갑작스러운 변화를 겪게 되면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심리적 타격을 입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언어적 맥락과 현실적 맥락이 전부 동일하다. 앞서 명칭실어증에서 모르는 기호에 마주쳤을 때는 언어적 맥락이 꼬이면서 심리적 타격을 입힌 것이라면 자고 있는 사이에 본인도 모르게 대한민국에서 몽고로 옮겨진 사람이 겪는 심리적 고통은 현실적 맥락이 꼬이면서 심리적 타격을 입는 것이다. 


완전언어상실증과 언어적 맥락의 상실이라는 것에 천착한 나머지 드라마를 자막 없이 보면서 겪는 고통도 언어적 맥락이 꼬이면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언어적 맥락이 꼬일 때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맥락이 꼬일 때도 비슷한 고통을 겪을 수 있다. 


그럼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드라마와 자연 관찰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째서 자연 관찰은 언어 없이 가능한데, 드라마는 힘든 것일까? 이렇게 두 가지 서로 다른 상황을 대조하는 질문을 하니 갑자기 깨닫게 되는 바가 있었다. 딱따구리를 발견했을 때, 딱따구리의 맥락은 무척 뜬금 없었지만 이로 인한 혼란은 없었다. 딱따구리가 나무에 날아왔다는 것 그 자체로 자명하고 그 외에 별도의 맥락이 주어질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그 딱따구리는 날아와서 나무를 두들기다가 날아갔다. 딱따구리의 생태, 종의 종류, 서식지 등을 모른다고 해서 또는, 딱따구리의 의사를 모른다고 해서 아무런 고통이나 답답함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몰입해서 그것을 관찰한다. 이것과 드라마 시청의 차이는 무엇일까?


자연 관찰은 일종의 현실이다. 현실은 드라마와 달리 수많은 엉뚱하고 알 수 없는 맥락들이 섞여있다. 서로 상관없는 사람들이 매일매일 마주치고 또 그것을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현실적인 경험세계라는 맥락을 갖고 있고 사람들은 그것에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그 현실적 경험세계라는 맥락은 시간적 공간적 한계 내에서 물리법칙에 따라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을 보여준다. 그래서 조금 신기하거나 일상적이지 않은 일이 있어도 순식간에 적응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반면, 드라마의 맥락은 어떠한가? 우리는 신이라도 되는 것 마냥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거의 동시에 관찰하고 그 사람만의 사적인 장소에서 그를 엿보면서 관음증을 즐긴다. 1초전에는 뉴욕 맨하탄의 커피샵에서 노닥거리는 연인들을 보다가 그 다음 1초 후에는 사하라 사막의 한 가운데에서 낙타를 몰고 있는 남자를 보게 된다. 현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스스로 제정신인지 의심할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왜 그럴까? 그것은 드라마가 실은 언어적 질서를 통하여 구축된 가상세계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시나리오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시나리오는 결국 글이다. 하얀 노트 위에 글로 작성된 것을 배우들이 연기하고 영상을 덧칠한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것이 아무리 현실처럼 보여도 결국, 배우들의 대사로 연결된 한편의 문학인 것이다. 그리고 배우의 연기와 배경의 사실성 등은 그 문학을 더욱 현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장치일 뿐이지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따라서 집중해서 드마라를 보게 되면, 현실적 맥락에 충실한 상황이 전개될 때에는 자연스레 관찰이 이루어지고 고통스럽지도 않게 된다. 하지만 다음 순간 장면이 확 바뀐다. 또, 다른 인물들이 나오고 도시에서 시골로 바다에서 사막으로 완전히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 관찰하는 사람은 갑자기 변한 이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그리고 내용은 계속 전개되고 있다. 현실적 맥락은 이미 꼬였다. 물론, 용을 써서 바로 이전 맥락을 놓아버리고 다시 현재의 상황에 집중해서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그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다. 한두 번은 어찌 노력해서 적응해도 그것이 반복될 때마다 우리의 정신은 피곤해지고 집중력은 떨어지게 된다. 결국, 길을 잃고 답답함과 고통에 매몰되고 더 이상 드라마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 맥락이 꼬이는 이유는 그 현실적 맥락의 전환을 언어적 맥락을 통하여 전달하고 있는데 그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드라마에 대한 순수한 자연관찰은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었다. 드라마는 처음부터 언어적인 산물이었고 그 사이에 있는 배우와 소품으로 이루어진 영상들도 현실적인 요소처럼 보이지만 잘 통제된 언어적 배치들일 뿐이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학습을 위하여 지식을 구조화하는 20가지 규칙 원문 링크는 다음과 같다.


https://www.supermemo.com/en/articles/20rules



역자의 자질 부족으로 상당수 의역이 있으니 잘 이해가 가지 않거나 원문이 궁금하신 분은 원문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효과적인 학습을 위하여 지식을 구조화하는 20가지 규칙(15~16번)

(The 20 rules of formulating knowledge in learning)



15. 감정 상태에 의지하라.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례로 묘사하거나 아니 나아가 충격적이기까지 한 사례를 사용하여 학습할 내용을 잘 묘사할 수 있다면 나중에 이 내용을 떠올리는 것은 매우 쉬울 것이다(동일한 사례를 과도하게 사용하여 다른 지식과 간섭이 일어나지 않는 한). 물론 그 내용의 형태는 좀 기괴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적인 이유로만 사용된다면 목적을 이루는데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니 정당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매우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면서 구체적인 것을 이용하라. 사랑, 섹스, 전쟁, 친척, 열중했던 것들, 린다 트립, 넬슨 만델라 등 다양한 것이 있다. 감정 상태로 인하여 회상이 용이해진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명심해야할 것이, 실제 삶에서 마주치는 상황에서 그 기억을 회상해야할 때, 슬픔과 같은 감정적인 단서를 박탈당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스스로의 상태를 확인해야한다.

 

생생하게 감정 상태를 환기하는 사례가 없어 학습하기 어려운 경우


Q: 가벼운 농담과 같은 대화를 의미하는 영단어

A: banter


영단어가 의미하는 바에 대한 생생한 사례가 있어 학습하기 쉬운 경우


Q: 1992년의 Mandela와 de Klerk과 같은 가벼운 농담과 같은 대화를 의미하는 영단어

A: banter


Nelson MandelaF.W. de Klerk 사이의 만남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있다면, banter라는 단어의 의미를 빨리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가 없으면 badinage 또는 chat과 같은 단어의 의미가 banter의 의미에 간섭이 이루어져 고생했을 수 있다. 여기에서는 해당 사례에 대한 감정적인 상태가 우리가 배우고 있는 개념의 의미를 정의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으므로 해당 사례와 무관한 감정적 상태로 인하여 기억하는 것을 방해받을 위험은 없다.


좋은 사례는 학습 시간을 매우 짧게 만들어준다. 나는 사례 없이 학습한 내용을 1년에 20번까지 잊어버린 기록을 가지고 있다. 반면, 동일한 내용을 간섭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세밀하게 설계된 사례와 같이 학습한 경우에는 5년 동안 10회 정도만 반복했음에도 해당 내용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이것은 20년 기간 동안으로 생각해보면 대략 25배의 시간을 절약한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드물지 않으니 잘 찾아보길 바란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들은 앞서 언급한 규칙들, 단순하게 하고 간섭을 배제하라는 규칙들에 의해서 그 효과가 가장 극대화된다




16. 맥락에 대한 단서는 문구를 단순하게 해준다.


다양한 학문과 학습할 내용들은 그 맥락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외국어를 학습할 때 한국어의 학생이라는 말을 일본어로 바꿔보라는 것인지, 영어로 바꿔보라는 것인지 그 맥락을 알아야 학습자는 자연스럽게 학습을 진행할 수 있다. 질의 문구에 영어로 전환하시오라는 문구를 포함하면 되지만 이러한 맥락이 길어질수록 그러한 문구를 질의에 포함시키는 것이 귀찮고 힘든일이 될 뿐만 아니라 학습자에게도 부담이 된다. 이러한 경우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간단하게 축약된 라벨을 붙이는 것이 좋다. 참조 라벨(제목, 작성자, 날짜 등)을 사용하고, chemistry에는 chem, mathmatics에는 math와 같은 문자열로 라벨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하위 카테고리에 명확한 라벨을 부여하면 질문의 맥락을 일일이 구체적으로 나열할 필요가 없어져 학습할 사항들의 문구를 단순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래의 예제에서 잘 정의된 접두어 bioch(biochemistry의 라벨) 덕분에 GRE라는 약어와 대학원 시험(Graduate Record Examination)의 약어를 헷갈리지 않고 바로 구별할 수 있다. 이러한 약어를 라벨로 사용하지 않으면 질문에 장황하게 맥락을 기술하고 학습할 때도 그것을 읽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덕분에 이를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제시된 사례를 보면 알겠지만 해당 학습 내용은 bioch라는 라벨로 서두를 시작하고 있다. 왜냐하면 서두부터 라벨을 제시함으로써 두뇌가 처음부터 올바른 문맥을 파악하고 해당 내용을 학습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이렇게 제시된 사례와 달리 서두를 라벨로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맥락을 명확하게 인지하지 않은 채로 해당 내용을 학습할 경우, 우선, 소중한 몇 밀리초(milliseconds)를 GRE의 표준적인 의미인 대학원 시험(Graduate Record Examination)을 떠올리는데 낭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 최악인 것은 이렇게 표준적인 의미를 생각함으로써 두뇌에서 잘못된 영역이 활성화되어 잘못된 영역과 제대로 된 영역이 서로 간섭하게 되는 경향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구구절절한 학습 내용으로 결과적으로 간섭이 발생하고 기억을 환기하는데 실패할 수 있는 사례


Q: What does GRE stand for in biochemistry?

A: glucocorticoid response element


맥락에 대한 라벨을 붙여서 학습 성공률은 높인 사례


Q: bioch: GRE

A: glucocorticoid response element




Anki 카드를 만들 때 어떻게 지식을 정리하고 구조화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발견한 SuperMemo 사이트의 문건이다. 이 사이트의 원문은 아래의 링크를 참조하길 바란다.


https://www.supermemo.com/en/articles/20rules



번역을 하다보니 영어 실력 부족인지, 원문이 너무 이상해서인지 알 수 없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상당수 의역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이 다시 번역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문건의 길이가 조금 길어 몇 번에 걸쳐서 분할하여 포스팅할 계획이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효과적인 학습을 위하여 지식을 구조화하는 20가지 규칙


 

이 문건은 학습 효율을 증진할 때 직면하게 될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인 지식의 구조화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작성된 문건이다.

 

배움의 속도는 자료를 정리하하고 구조화하는 방식에 따라서 달라진다. 어떤 학습 자료가 얼마나 짜임새 있게 정리되었는지에 따라서 학습 속도가 몇 배씩 차이가 난다. 이러한 학습 속도의 차이는 생각보다 깜짝 놀랄만한 수준일 수 있다!

 

이 규칙들은 중요도 순으로 늘어놓았다. 먼저 제시된 규칙들은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위반하지만 이 규칙을 준수할 경우 가장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규칙들이다.

 

이 문서는 기본적으로 간격 반복 시스템을 사용하여 학습을 진행할 것이라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 한 번만 배우고 마는 것이 아니라 학습 자료를 최적으로 반복하여 학습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말이다.

 

(역자 : 전체 규칙을 하나하나 상술하기 전에 20가지 규칙을 요약해서 제시하는 것이 보기 좋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학습을 위하여 지식을 구조화하는 20 가지 규칙 요약을 아래와 같이 나열하니 참고하기 바란다.)

 


 --------- 요약(Summary) ----------

 

여기에 지식을 공식화하는 20가지 규칙을 요약한다. 상세히 살펴보면 처음 16개 규칙은 기억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과 관련된 규칙들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규칙들은 서로 강력하게 중첩되어 있다. 가령, 배우기 전에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규칙은 최소 정보 원칙이 적용 방식이이고 이것은 다시 모든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1. 배우기 전에 먼저 이해해야 한다.

 


2. 외우기 전에 먼저 배워야 한다.


개별적인 단순한 지식으로 쪼개서 카드로 만들기 전에 해당 내용의 큰 그림을 먼저 구축해야한다. 그리고 전체 그림에 빈틈이 있으면 다시 검토해야 한다.



3. 기초를 쌓은 뒤에 그 위에 지식을 구축해야 한다.


절대 복잡한 매뉴얼에 두발 모두 뛰어들면 안 된다. 보통 끝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배우고 기억된 기초 지식들은 나머지 지식들을 수월하게 배울수 있게 해준다.

 


4. 최소 정보의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어떤 내용을 계속 잊게 된다면 일단, 최대한 해당 항목을 간단하게 만들어 봐야 한다. 만일 그래도 계속 잊게 되면, 다른 규칙들(빈칸 만들기, 그림그리기, 연상법, 집합을 열거형으로 바꾸기 등)을 적용해보길 권한다.

 


5. 빈칸 만들기는 쉽고 효과적이다.

 

삭제된 단어 또는 구절을 완성하는 방식의 학습을 빈칸 만들기라고 하는데 학습에 효과적인 방법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지식을 정리하고 구조화하는 속도가 빠르고 초보자에게 적극 추천되는 방법이다.

 


6. 이미지를 사용해라

 

그림 하나가 백마디 말보다 가치가 있다.

 


7. 연상법(mnemonic techniques)을 사용하라.

 

페그(peg) 리스트, 마인드 맵에 대해서 읽어보라. 토니 부잔의 책을 공부하고 기억을 재미나는 그림으로 바꾸는 방법을 배워라. 전화번호나 복잡한 수치를 공부하는 방법으로 최고다.

 


8. 그림에서 빈칸 만들기도 매우 좋다.

 

빈칸 만들기를 그림에 적용하여 그림의 일부를 가리고 이를 완성하는 방식의 학습 방법은 해부학이나 지리학 등을 배우는 데 정말 좋다.

 


9. 집합을 피해라.


지식을 어떤 요소의 집합으로 나열하면 해당 집합이 커지면 커질수록 사실상 외우는 것이 불가능하다. 집합을 기억하고 싶으면 열거식 지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10. 열거를 피해라.


집합보다 낫지만 열거식 지식도 기억하기 어렵다. 열거식 지식을 다뤄야 할 경우 빈칸 만들기를 사용하면 좋다.

 

 

11. 기억 간섭을 적극적으로 배제하라.


정말 단순한 내용의 학습에서도 다른 비슷한 항목이 있으면 서로 기억 간섭이 일어나 다루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예제, 문맥적 단서, 생생한 삽화, 정서적 상태에 대한 참조, 그리고 개인적 생활과의 연계를 이용해야 한다.


 

12. 문구를 최적화해야 한다.


수학적 방정식을 줄이는 것처럼 복잡한 문장을 영리하고 함축적이고 즐길 수 있는 격언처럼 줄일 수 있다.

 


13. 다른 기억들을 참조해야 한다.

 

다른 기억들 위에다가 기억들을 만들어 구축하면 일관되고 서로 꽉 물린 구조의 기억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기억은 쉽게 망각되지 않는다. 기초적인 지식 위에 기억을 구축하고 의도적으로 중첩하여 학습함으로써 기억들 간의 간격을 채워야 한다.

  

 

14.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예제를 사용하라.

 

개인적인 삶과 기억을 연결하는 것은 기억을 구축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개인적인 삶은 참조할 수 있는 다양한 사실들과 사건들의 금광이다. 스스로 카드뭉치 컬렉션을 만든다면 이러한 개인적인 삶을 이용하여 기억을 구축해라.


 

15. 감정적인 상태에 의지하라.


감정은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 슬픈 상태에서 어떤 사실을 배운다면 슬플 때 그 기억을 떠올릴 가능성이 높다. 어떤 기억들은 감정을 유도하고 기억을 회상할 때 두뇌의 이런 속성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16. 맥락에 의한 단서는 문구를 단순하게 해준다.


해당 기억의 맥락을 이용하면 기억을 단순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 선행 지식 위에 지식을 구축하게 해주고 기억의 간섭을 피하게 해준다.


 

17. 지식의 중첩은 최소 정보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몇 가지 형식의 중첩적인 지식의 사용은 매우 좋다. 동일한 사실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것을 외운다면 별달리 해로울 것이 없다. 특히, 단어 쌍과 같은 것을 배울 때는 중첩적인 질의를 수동적이거나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매우 쓸만하다. 문제를 해결하면서 해당 문제해결로 인하여 파생되는 단계를 기억하는 것은 지적 능력을 극적으로 향상시키는 방법이다.


 

18. 출처를 제공하라.


출처를 알면 해당 지식을 대상으로 중요성을 판단하고, 신뢰도를 측정하고, 갱신하고, 학습 프로세스를 관리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19. 날짜를 명시하라.

 

날짜를 명시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지식을 관리하기 좋다.


 

20. 우선순위를 두어라.

 

효과적인 학습의 모든 것은 결국 우선순위이다. 발전적 독서법(incremental reading)에서는 처음에는 매우 잘못된 방식으로 구조화된 지식들을 공부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공부가 쌓이는 만큼 해당 지식들의 형태를 다듬고 개선시켜 나간다. 필요한 경우, 지식의 조각들을 다시 검토하고, 부분으로 분할하고, 재구조화하며, 우선순위를 다시 결정하거나 삭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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