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ki로 문장 암기하기 7 적절한 카드 수
하루에 몇 시간의 공부가 적당할까? 재수생 시절에 하루 13시간 까지 집중해서 공부해보았다. 하지만 이는 극한에 몰린 심리와 발버둥, 공부에 완전히 맞추어진 환경과 우연이 겹쳐져 만들어진 지나치게 특별한 경험이었기에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퍼포먼스로 보긴 어렵다.(링크 참조) Anki를 처음 시작한 2015년에는 하루에 30분도 공부하기 어려웠다. 화장실이나 이동시간에 짬짬이 외우는 수준이었다. 일을 줄이고 조금 여유가 생기면서 공부시간이 늘었는데 하루에 1시간 반 정도를 공부하면 지쳤다. 그리고 카드수가 늘어나고 공부하는 내용이 늘어나면서 하루에 6시간 까지 공부하게 되었다.
6시간, 재수생이던 시절 이후 온전히 집중하여 하루에 6시간씩 매일 공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처음엔 1시간 반에 지쳐서 쓰러졌지만 조금씩 근력이 늘어나듯 공부량이 늘어나더니 자연스럽게 6시간이 되어버렸다. 이 6시간에는 불만이 없다. 오히려 그 정도로 정신적 체력이 늘어났으니 기분이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6시간 동안 하는 공부가 너무 뻔하다. 그리고 그 6시간 공부를 하고 나면 힘이 빠져서 새로운 카드를 만들 시간이 없다. 여력이 있어도 이미 6시간의 한계를 맞이했는데 갑자기 7시간이나 8시간 공부를 시도할 수 있을까?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공부는 많고 열심히 하고 있는데 개미눈물만큼 나아가고 있으니 답답해서 속이 터지려고 한다. 이 속도로 공부하면 환갑에 프로그래밍을 짤 판이다. 그리고 온갖 것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엉터리 번역들, 번역기의 이상한 문장들, 지루함,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불안감 등등 분노와 불안이 조급한 마음에 엉겨 붙었다. 그렇게 그 날 공부는 공쳤다.
길거리를 쏘다니면서 한참을 방황한 후 겨우 진정이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단, 카드가 너무 많아서 생긴 문제로 보였다. 카드가 너무 많으니 공부량에 눌리고 새로운 공부를 추가하기 어려워 복습 위주로 공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새로운 자극이 없으니 공부가 재미없어지고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먼저 필요없는 카드를 지워보기로 했다. 오랫동안 쌓인 카드들을 죽 살펴보면서 삭제할 카드를 선택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문장 하나를 외우기 위해서 하나의 문장을 지나치게 많은 카드로 만든 노트들이었다. 가령 다음과 같은 노트다.
원은 직경이 1이면 둘레는 3이 조금 더 되고, 네모는 직경이 1이라면 둘레는 4가 되는데 양은 하나로 움직이므로 1은 1이고, 3은 3이며, 5는 5로 그 수가 줄어들지 않으나, 짝수는 쌍방향으로 나가므로 2는 1이 되고, 4는 2가 되어 반으로 줄어든다. 따라서 하늘은 그대로 3으로 표시하고, 땅은 4의 반인 2로 상징하는 것이다.
위의 문장을 노트로 만들어 다음과 같이 23개의 빈칸 만들기 카드를 생성했다.
{{c1::원}}은 직경이 {{c2::1}}이면 둘레는 {{c3::3}}이 조금 더 되고, {{c4::네모}}는 직경이 {{c5::1}}이라면 둘레는 {{c6::4}}가 되는데 {{c7::양}}은 {{c8::하나로 움직이므로}} {{c9::1은 1}}이고, {{c10::3은 3}}이며, {{c11::5는 5}}로 {{c12::그 수가 줄어들지 않으나}}, {{c13::짝수}}는 {{c14::쌍방향}}으로 {{c15::나가므로}} {{c16::2는 1}}이 되고, {{c17::4는 2}}가 되어 {{c18::반으로 줄어든다}}. 따라서 {{c19::하늘}}은 그대로 {{c20::3}}으로 표시하고, 땅은 {{c21::4의 반}}인 {{c22::2}}로 {{c23::상징하는 것}}이다.
하나의 글을 23개의 빈칸 만들기 카드로 만들었다. 즉, 똑같은 문장을 23번 반복해서 외운 셈이다. Anki 사용 초기에는 카드를 이렇게 만들었다. 벼락치기 시험공부 외에는 외우고 암기해본 경험이 거의 없으니, 자신의 기억력을 믿지 못하고 혹시나 잊을까봐 편집증적으로 많은 카드를 만들었던 것이다. 오래된 흑역사다. 자신의 기억력을 믿지 못하고 쓸데없이 많은 카드를 만드니 카드가 지나치게 많이 쌓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전부 동일한 내용이니 진도도 지지부진하고 지루할 수밖에 없다. 과거의 노트들을 뒤져보니 전부 이런 식이었다.
지나치게 많은 카드를 지우려고 생각하니 몇 개의 카드가 적절한지 알 필요가 생겼다. 과거엔 외우기에 급급했지만 그래도 경험이 쌓였는지 적당한 수량의 카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일단, 얼마나 긴 글인지, 얼마나 많은 내용을 포함한 글인지와 상관없이 글 전체를 한 번 외우면 끝이다. 일단, 외우면 그 다음부터는 외운 내용을 반복할 뿐이다. 빈칸만 다르게 뚫린 카드가 몇 십번 나와도 동일한 내용의 지루하고 기계적인 반복일 뿐이다. 따라서 외우기를 생각한다면 1개의 카드로 충분할 수 있다.
그렇지만 숙달의 과정을 고려해야 한다. 문장을 곱씹어 외우는 과정은 입과 머리의 상호조화다. 입으로 반복하여 씹어 삼키면 해당 정보를 머리가 먹고 소화시키는 구조다. 따라서 자근자근 씹을수록 머릿속에서 쉽게 해당 지식을 소화한다. 따라서 숙달을 위한 단순 반복을 고려해야 한다. 나는 이 횟수를 3회로 생각한다. 어차피 카드들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복습이 되므로 새로운 카드는 3개 정도면 입과 머리가 충분히 숙달할 수 있을만큼 반복할 수 있다. 2번은 조금 간당간당하고 3번이면 적절하게 넘친다.
마지막은 지식이 머릿속에서 숙성되는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즉, 앞서 말했지만 지식은 머릿속에서 숙성의 과정을 거친다. 이는 지식이나 생각이 머릿속에서 기존 지식과 어우러져 안착되는 과정이다. 이렇게 지식이 숙성되고 머릿속에 안착되면서 다양한 시행착오가 일어난다. 카드 속 문구가 마음에 안들어 수정에 수정을 거듭할 수 있다. 혹은 외운 문장의 내용이 필요없다고 생각해서 노트를 삭제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이 정보량에 따라서 일어난다. 즉, 안착할 정보가 많다면 상당기간에 걸쳐서 안착이 이루어진다. 처음에는 A라는 사항에 초점이 맞처지지만 해당 지식이 안착되면 이번에는 B라는 사항이 초점이 맞춰진다. 따라서 정보량이 많을 수록 지식이 안착되는 속도가 늦어진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정보량을 어떻게 판단할까? 정보량을 초점이 되는 지식의 수라고 한다면 간단하게 말하기 어렵다. 공부를 하다보면 이해되는 정도에 따라서 정보량이 늘어나거나 줄어들기 때문이다. 긴 글도 하나의 단순한 정보일 수 있고, 짧은 글이 무척 복잡한 정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보통 문장의 형태로 가공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마침표로 구분되는 문장의 개수로 정보량을 판단하고 있다. 즉, 이 기준을 따르면 마침표로 구분된 문장의 개수만큼 카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경험적으로 보면 정보량이 많아도 카드의 개수가6~7개를 넘어가면 무의미해진다. 그 때부터는 단순 기계적 반복으로 입만 숙달되고 정신은 가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드의 개수보다는 카드가 장기적으로 계속 노출되는 상황이 정보량이 많은 카드를 흡수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아무리 정보량이 많은 카드라고 해도 4~5개의 카드로 만들면 충분하다. 대신, 몇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반드시 복습 카드를 먼저 공부하고 이후에 새카드를 공부한다. 두 번째는 동일한 노트에서 나온 카드들은 같은 날 학습되지 않도록 한다.
복습 카드를 먼저 공부하고 이후에 새카드를 공부하려면 아래와 같이 도구 → 환경 설정 을 클릭하여 환경 설정 창을 띄운다.
환경 설정 창에서 빨간색 테두리에 해당하는 부분의 드롭다운 목록을 눌러 "새 카드는 복습 카드보다 나중에 등장"을 선택한다. 이렇게 하면 카드뭉치에 복습 카드와 새 카드가 같이 있을 때 복습 카드를 전부 공부하고 나야 새 카드의 학습이 이루어진다.
동일한 노트에서 나온 카드들은 같은 날 학습되지 않도록 하고 싶으면 학습할 카드뭉치의 옵션(Deck Option)을 클릭하여 카드뭉치 옵션 창을 연다.
카드 뭉치 옵션 창에서 "새 카드" 탭 아래의 "Bury related new cards until the next day"의 체크 박스에 체크하고, "복습" 탭에서도 동일하게 아래의 "Bury related new cards until the next day"의 체크 박스에 체크한다. 이렇게 하면 학습된 카드와 같은 노트에서 나온 카드들이 카드 대기열에서 사라지고 다음 날로 미뤄지기 때문에 매일매일 동일한 카드가 지루하게 반복되는 것을 막고, 적은 수의 카드를 장기적으로 학습할 수 있게 된다.
이제 문장 단위 암기에서 카드의 개수는 문장의 개수가 많으면 4~5개의 카드를 만들고, 문장의 개수가 적어도 최소 3개로 만들면 된다. 즉, 문장의 정보량과 중요성에 따라서 하나의 노트당 3, 4, 5개로 배치하는 셈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기억이 숙성되도록 동일한 노트의 카드들이 같은 날 중복해서 학습되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런 조치들을 통해서 과거에 하나의 노트에서 2~30개씩 만든 카드를 4~5개 정도로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드들이 만들어진지 오래라서 3~4년 이후에나 나온다. 따라서 카드 수가 줄어든 것을 체감하긴 어려웠다. 또, 너무 익숙하게 외우고 있는 카드라서 다시 복습할 때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이런 카드를 줄인다고 딱히 공부 부담이 많이 줄지는 않는다. 하지만 덕분에 새로운 카드를 만들 때, 적절한 카드 수를 확립하여 불필요하게 많은 카드를 만드는 습관을 고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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